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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해방전투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은 창건되였으나 국민당군잔여분자들의 준동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적들을 마지막까지 소멸하기 위하여 조선인부대들은 중국인민해방군과 함께 계속 전진하였다.

중국에서 대만 다음으로 큰 섬인 해남도는 중국남해의 관문이다.

1949년 12월 광동성과 광서성이 해방되자 중국대륙은 기본적으로 해방되였다.

광동성과 광서성에서 살아남은 국민당군잔여분자들은 앞을 다투어 해남도로 도망쳐갔다.

장개석은 해남도방위총사령으로 설악을 임명하고 여기에 보병사단 19개, 해군함선 50척, 공군 4개 대대에 30여대의 비행기를 비롯하여 10여만명의 병력으로 륙, 해, 공군 립체방어체계를 수립하고는 이를 《깨뜨릴수 없는 성새》라고 하였다.

국민당군은 해남도를 장기적으로 강점하고있으면서 중국본토를 반공격할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그러면서 매일같이 군함과 비행기로 연해도시와 마을들에 대한 포격과 폭격을 감행하였다.

제4야전군 사령부에서는 해남도를 해방하기 위하여 제40군과 제43군에 전투임무를 하달하였다.

제40군에는 조선인포병부대가 있었다. 처음에 이 포병부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하여 동북해방전쟁에 보내주신 련대였는데 처음에는 산포를 가지고 많은 전투를 진행하였으나 료심전역, 평진전역으로부터 계림과 남녕에 이르기까지 수십차의 큰 전투를 하는 과정에 적들의 무기들을 로획하여 이시기에 와서는 57식야포, 38식야포, 14련식야포 등 현대적무기로 무장하게 되였다.

이때는 대대로 재구성되였는데 광서성을 해방한 후 광주에 와서 제40군의 직속포병대대로 되면서 150명씩 2개의 중대로 되였다.

광동성 뢰주반도에서 이 포병대대가 해남도를 해방하기위한 작전에 참가하게 되였다. 포병대대의 임무는 목선을 타고 적비행기와 군함의 공격으로부터 보병들이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 해남도에 상륙할수 있게 엄호하는것이였다.

당시까지 중국인민해방군은 해군도, 군함도, 공군과 비행기도 가지고있지 못하였으며 해상에서 싸워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인포병대대성원들은 하루빨리 해남도를 해방할 한마음으로 우선 물우에서의 전투훈련에 달라붙었다. 이들 모두가 우리 나라 북부지대와 중국 동북지방 연변에서 살았기때문에 대부분이 바다라는것조차 처음 보는 사람들이였고 헤염칠줄도 몰랐으며 배를 타보지 못해 배에 오르기만 하면 멀미를 하여 그 고통이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게다가 남방의 무더운 날씨에 습관되지 않아 자꾸 찬물을 마시고는 리질로 고생했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리였다.

이런속에서도 포병대대전투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끝까지 중국혁명을 도와주라고 하신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새기고 이악하게 훈련을 하였다. 이들은 해뜨기 전부터 밤늦게까지 풍랑속에서 노젓기, 헤염치기, 다리건느기훈련을 이악하게하여 끝내 해상작전을 할수 있게 되였다.

이와 함께 이들은 경험있는 배사공을 데려다 참대를 베여 배를 뭇고 돛을 달았으며 여기에 포를 설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12척의 참대배를 무었다.

이 참대배 1척에 산포 1문, 57식, 38식야포 각각 1문, 고사기관총 2정, 중기관총 2정, 경기관총 3정을 설치하였으며 돛 4폭을 달고 자동차발동기도 설치하였다.

해남도전투를 위해 진출하는 제40군 포병대대

포병대대전투원들은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자 달밤에 해상실전연습을 진행하였다. 연습은 성공적이였다. 기쁨에 넘친 포병대대전사들은 자신들을 중국인민해방군의 제1대 해군이라고 자랑하였다.

1950년 4월 16일 포병대대를 비롯한 전체 전투원들의 출정식이 있었다. 출정을 앞두고 40군사령부에서는 서문시 앞바다에서 해남도상륙부대를 환송하는 대회를 가지였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 주덕이 제4야전군에 보내는 축하문을 전달하고 붉은 바탕에 《풍랑을 헤가르며 승리적으로 전진하라!》고 쓴 뢰주반도인민들이 보내온 기발을 조선인 포병대대에 증정하였다. 이어 500여척의 참대나무로 만든 배에 사단의 보병이 타고 그 좌우량쪽에 조선인포병대대가 배 12척에 나누어 타고 저녁 6시에 출발하였다.

그들이 30리쯤 항행하였을 때 공중에 조명탄이 오르고 국민당군대 비행기와 군함이 나타나 폭격과 포격을 하며 달려들었다.

이때 조선인포병대대 전투원들은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를 장치한 참대나무배들을 적함의 배후로 몰고가서 갑자기 적함에 불벼락을 안기였다. 포병대대의 뜻하지 않은 불벼락에 급해맞은 적군함은 배머리를 돌려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적군함이 도망친 다음 포병대대는 상륙부대와 함께 어둠을 리용하여 쏜살같이 해남도를 향해 내달렸다. 이윽하여 해남도에서 해안을 지키고있던 적군함이 다가오는 아군 상륙부대를 발견하고 함포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인포병대대는 12척의 배에 설치한 36문의 각종 포로 일제히 불을 뿜어 적함선과 해안에 설치하였던 적의 방어시설들을 하나하나 소멸하였다. 이어 보병을 태운 500여척의 배들이 해안에 닿았다. 보병들은 조선인포병대대의 엄호밑에 륙지에 오르자 파죽지세로 국민당군을 공격하였다.

이에 앞서 포병대대에서는 이미 3월 26일 저녁에 제40군의 조선인포병 분대장들인 리여길과 리창길을 한개 포병분대와 함께 해남도에 선발대로 들여보냈다. 이들이 먼저 몰래 들어가 림고산을 점령하고 아군상륙을 보장하면 해남도전투가 쉽게 결속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들은 돛배를 타고 남강부두를 떠나 해남도의 림시항계선에 은밀히 상륙하였다. 날이 밝자 적들은 이들을 발견하고 대포를 쏘고 비행기로 폭격하였지만 선발대는 강행군하여 오지산에 숨어들어갔다.

4월 17일 새벽 그들은 해방군주력부대가 해남도에 상륙하던 그 시각에 림고산밑에 도착하였다. 림고산을 점령하는것은 림고현성의 적군을 막아내고 아군대부대의 해남도상륙을 보장하는데서 관건적고리였다. 림고산은 남쪽에 림고현성이 있고 북쪽에 바다를 끼고앉은 산인데 해남도의 해구시 서쪽 200리 해안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였다.

림고산의 전략적의의를 잘 알고있는 국민당군은 5문의 야포와 보병 2개 중대를 여기에 파견하여 견고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삼엄한 경계를 펴고있었다. 두 분대장은 4월 17일 이른 새벽 포병분대를 이끌고 가파로운 산꼭대기를 톺아올라 불의에 보초병을 제끼고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보루안의 적들을 답새겨 20분동안에 적의 포진지를 점령하였다. 그들은 포진지를 점령하자 적들이 버리고 간 600발의 포탄으로 야포를 쏘려고 하였으나 거리와 각도를 재는 기구만 있고 조준경이 없었다.

해방군주력부대는 이미 상륙을 시작하였는데 적들이 해안과 3척의 군함에서 저항하였으므로 아군 주력부대는 순조롭게 상륙할수 없었다.

이것을 본 포병분대장들은 생각끝에 각도와 거리를 재는 기구로 거리를 측정한 다음 눈으로 조준하여 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첫 포탄이 적군함곁에 떨어지며 물기둥을 일으켰다. 련이어 10발을 쏘았다. 포탄은 점점 적군함에 접근하였다.

앞에 있던 적군함이 질겁하여 도망치자 다른 2척의 적군함도 아군의 포사격에 달아나고말았다. 아군 포병분대에 의하여 적들이 제압된 유리한 조건에서 아군의 대부대가 상륙하였다.

이어 어둠이 깃들었다. 하루동안 긴장하게 전투를 하고난 전사들은 깊은 잠에 들었지만 두 포병분대장은 잠들수 없었다. 조준경이 없어 적군함들을 놓쳐버린것이 매우 아쉬웠던것이다. 포진지안팎을 샅샅이 뒤져 끝내 돌짬에서 조준경을 찾아내였다.

이튿날도 전투는 여전했다. 아군 대부대는 계속 상륙하였고 적들은 최후발악을 하며 세번이나 포위를 돌파하려고 하였다. 조준경을 찾은 후 포병분대가 쏘는 포탄은 거의 다 백발백중으로 적들을 소멸하였다. 포탄벼락에 적지휘부가 날아나자 적들은 더는 어쩌지 못하고 흰기를 들고 투항하였다.

포병분대는 한주일간 림고산에서 적들이 남겨놓았던 600여발의 포탄을 다 쏘고 다른 진지에 가서 또 적들이 버리고 간포탄 300여발을 가져다 계속 포사격을 함으로써 아군 주력부대의 해남도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였다.

한편 상륙부대를 호위하고 돌아오던 12척의 포병대대 배들은 대륙으로 돌아오다가 또다시 적군함 4척과 맞다들었다. 그때 포병들의 포사격에 적군함 한척이 명중되자 나머지 군함들은 방향을 돌려 도망치고말았다. 이때 적함에 명중탄을 안긴 사수 조찬수와 부사수 김동무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인민해방군과 중국인민들속에서는 조선인부대들이 참대나무배로 미국의 현대화된 군함을 격침시켰다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퍼지게 되였다.

해남도가 해방된 후 조찬수에게 전투영웅칭호가 수여되고 그가 탔던 배를 《조찬수》호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먼저 림고산에 올라 아군의 승리를 보장한 리여길과 리창길에게 대공상장이 각각 수여되였다.

제40군 118사 354련대 1대대 기준포중대 포병분대 전사전투영웅 김기남은 해남도상륙을 위해 바다를 건너올 때 온밤 노를 저었으며 적들이 돛배를 사격하자 자기 몸으로 배사공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상륙할 때에는 포 한문과 포탄이 바다속에 빠져들어가자 물속에 뛰여들어가 포판과 포탄 10발을 건져냈다. 해남도에 상륙한 후에는 적화점을 포탄 3발로 명중시켜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놓았다. 그는 포탄을 다 쏘자 적들의 시체에서 수류탄을 주어다 적들을 소멸하였다.

조선인부대들과 조선인전사들은 이처럼 해남도상륙작전에서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중국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1950년 4월 30일 해남도는 해방되였다.

중국혁명은 드디여 승리하였다.

조선인부대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은 중국인민의 해방위업에 지울수 없는 불멸의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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