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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중을 만나시고

소화는 그후 부대를 이끌고 새로운 전방으로 이동하였으며 력량을 더욱 보강하여 동북해방전쟁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우리 나라에서 력사적인 토지개혁이 진행되여 온 나라에 밭갈이노래 높이 울리던 그 시기 국사에 매우 바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그곳까지 가시게 되였는가.

그것은 이웃나라 중국혁명을 돕기 위해서였다.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는 남양과 마찬가지로 중국 동북지방에도 봄빛은 짙어가고있었으나 자연의 봄과는 상반되게 정세는 나날이 엄동설한처럼 엄혹해지고있었다.

장개석이 동북을 차지할 야심밑에 여기에 들이민 국민당대군이 길림, 교하를 거쳐 돈화와 연변지구에로 물밀듯이 쓸어들어오며 해방지역까지 위협하였다.

이 시기 미국제무기로 무장하고 미국의 지원밑에 하늘과 땅과 바다로 거침없이 밀려든 장개석군대는 당장 공산당과 인민정권, 인민무장대를 일격에 집어삼킬 기세로 덤벼들었다. 력량대비에서 아군은 적들에 대비도 되지 않았고 그 장비수준도 말할수 없이 락후하였다. 게다가 적들의 침공을 격퇴할수 있는 방어진지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였다.

사실 장개석군대가 이렇게 빨리, 그렇게 많이 동북으로 밀려들어오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바로 장개석은 공산당군대가 자기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아직 갖추지 못한 약점을 간파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급히 저들의 군대를 동북땅으로 들이밀었던것이다.

주보중은 당시 중국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원, 길료군구 사령원으로서 이 정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마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혁명을 돕기 위하여 중국동북지방에 파견되여있던 강건과 박락권의 사업을 료해하고 급변하고있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방도를 밝혀주시려고 그들을 남양으로 부르시였다. 주보중은 급기야 강건, 박락권과 함께 남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 1946년 1월 14일 동북인민자치군을 동북민주련군으로 개칭하고 그밑에 동만, 서만, 남만, 북만의 4개 군구를 조직하였는데 주보중은 동만군구 사령원이였다. 동만군구에는 산동 2사 25련대, 제7종대와 길동, 통화, 료북 3개 분구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국 동북지방 도문의 대안 남양에까지 몸소 가신것은 동북이 처한 정세로 보아 빨리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렬차는 아침에 남양역에 도착하였다. 그때 강건과 박락권, 주보중이 그이앞에 나타나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보중을 만나시자 반갑게 그의 두손을 잡으시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다고 걱정부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받고 주보중은 속으로 뜨거운것을 삼키며 그이를 우러르며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 전해인 1945년 8월에 쏘련의 하바롭스크 북야영에서 헤여진 다음 겨우 반년이 좀 넘었는데도 오래동안 뵈옵지 못한것처럼 생각되는 장군님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반대하는 항일전쟁의 나날 어깨겯고 함께 싸운 전우인 주보중이 반년 남짓한 사이에 퍼그나 늙어보이는 모습에서 현재 동북혁명이 겪고있는 진통을 제꺽 헤아려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강건과 박락권이 먼저 구체적인 실태를 보고드리였다.

주보중은 중국혁명이 처한 위기를 타개할 출로를 열어주시고 전국을 역전시킬 방략을 제시해주실것을 바라며 위대한 수령님께 동북의 군사정치정세와 난관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보고를 다 들으신 후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가 적의 침공으로부터 연변지구와 동북의 해방지역들을 보위하고 공산당이 수세에서 공세에로 넘어갈수 있는 전략전술적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할바령을 중심으로 한 로야령산줄기와 송화강계선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그에 의거하여 적의 침공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킴으로써 이미 혁명의 보루로 꾸려놓은 해방지역을 보위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이미 항일대전시기 수없이 밟아보고 눈에 익혀오신 동북의 산과 강, 골짜기와 숲들을 렬거하시면서 할바령을 중심으로 한 로야령산줄기와 송화강이북지역 그리고 그 서남부의 지리적특성에 맞게 방어진지를 어디에 어떻게 구축하고 적들이 덤벼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멸해야하며 아군은 어디서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다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북만과 남만의 조선인부대들을 총동원하여 적아의 력량관계와 수시로 변하는 정황에 맞게 병력의 집중과 분산, 견고한 진지에 의거한 완강한 방어전과 적배후타격전의 배합 등 다양한 전법을 활용하여 적을 계속 타격하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개석군대의 공격을 저지파탄시키며 당면하게는 사평계선에 포위되여있는 중국인부대들을 구원하기 위해 장춘해방전투를 벌려야 한다는 전술적인 대책안까지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동북해방전쟁의 새로운 전략전술을 밝혀주신 온성군 남양국경려관 주체35(1946)년 3월 28일

 

박 영 순

1905년 10월 19일 출생. 해방전 중국 화룡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항일무장투쟁에 참가. 해방후 조선인민군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으로 사업하다가 주체76(1987)년 8월 18일 서거. 항일혁명렬사임.

 

사평계선에서 포위된 중국인부대(공산당)는 당시 동북지구에서 가장 큰 부대중의 하나인데 이 부대가 포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장차 동북해방전쟁에서 큰 타격으로 될수 있었다. 그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장춘에 도사리고있던 악질부대를 쳐서 포위를 뚫게 하라고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면서 주보중에게 모택동동지의 특사로 진운이 찾아와 무기를 요구하였는데 이제 곧 보내주겠으니 무기걱정은 하지 말라고, 앞으로도 자신과 조선인민은 중국 동북혁명에 최대의 지원을 줄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동북지방의 지리적특성과 적아간의 력량관계, 장차 있을수 있는 정황들까지 구체적으로 예견하시고 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강건과 박락권, 주보중에게 커다란 힘과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이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동북지방에 조직된 조선인부대들과 우리 나라와의 통신련락을 더욱 신속히 보장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주시면서 항일혁명투사 박영순에게 그 임무를 맡겨주시였다.

주보중은 항일의 그날처럼 동북해방전쟁의 시기에도 사심없는 지원을 주시고 고견을 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자신과 중국인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양국경려관에서 주보중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신 후 신심과 희망에 넘친 그를 떠나보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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