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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힘으로 바꾸어

일제침략자들은 중국 동북지방을 강점하고 통치하는 기간에 저들의 주구들을 많이 길러놓았다. 일제통치시기에 주구들은 수많은 혁명가들과 인민들을 살해하였고 갖은 악질적인 만행을 다 감행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는 일시 혼란된 틈을 리용하여 도처에서 파괴암해책동을 벌리면서 저들의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되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에게 일제주구를 비롯한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진압하고 인민들의 안전과 혁명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사업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연길에 도착한 강건은 1946년 4월에 룡정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주구청산대회를 조직하였다.

일제의 특무노릇을 하며 수많은 혁명가들과 인민들을 살해하고 탄압해온 주구들을 인민의 심판대에 세우고 그 죄상을 낱낱이 폭로한 다음 그 자리에서 처형하자 인민들의 투쟁기세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때 길동분구사령부로 한 녀인이 찾아왔다. 최광을 만난 그 녀인은 자기가 여기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그 녀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유격대의 대원이였던 김학군의 안해 김신숙이였다.

그는 1930년대초 일제의 해란강대학살때 남편을 잃었다. 피살된 그의 남편은 희생되기 전에 김일성장군님께 꼭 전달해 달라고 당부하며 사업보고와 함께 학살사건에 관여한 일제의 주구명단을 적은 종이쪽지를 그에게 주었다. 김신숙은 그것을 오래동안 병속에 넣어 깊이 묻어두었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해주신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이 연길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파견원들을 찾아왔던것이다.

파견원들은 이 사실을 무전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그 죄상을 밝혀낼 때가 왔다고 하시며 원쑤들의 살륙만행을 폭로단죄하고 주구들을 청산하는 청산대회를 열어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원쑤들에 대한 증오를 힘으로 바꾸어 근거지보위와 적들을 타승하는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 녀인이 내놓은 《하동자위단이 혁명동지들을 참살한 기록》에는 살인귀들의 명단과 그들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상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이 기록을 보고 파견원들은 일제와 그주구들의 죄행을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죄가 큰 18명의 살인귀들을 체포하였다.

해란강대학살사건은 일제와 그 주구들이 연길현 해란구에서 감행한 대학살사건이다. 해란구유격구역은 1931년 9.18사변후에 생겨난 유격구역이였는데 이곳은 깊은 산골로서 연길, 룡정, 도문을 련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유격구역의 인민들과 유격대는 일제의 《토벌》을 그때마다 물리치면서 유격구역을 견결히 사수하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침략자들은 《해란구유격구를 없애치우지 않으면 공산당을 멸종시킬수 없다.》고 하면서 잔인무도한 《토벌》을 감행하였다.

1932년 음력 8월초 해란구유격대는 린근에 있는 유격대와 함께 괴뢰호로대의 무장을 탈취할 계획이였다. 그런데 이 비밀이 탄로되여 8월 7일 새벽에 일본수비대와 자위단 70여명이 긴급출동하여 중기 3문과 화포 1문으로 해란구유격구의 류정촌을 포위하고 불의에 습격하였다. 적들은 촌에 있던 10여호의 농가를 몽땅 불사르고 유격대원들과 30여명의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당시 이 사건은 전동만땅을 뒤흔들어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8.7학살사건》이라고 부르며 사건현장인 페허로 된 류정촌으로는 지나가기조차 꺼려하였다.

그해 12월 12일 연길현 하동자위단은 일본수비대와 경찰과 합세하여 해란구유격구의 화련리를 또다시 《토벌》하였다.

이날 원쑤들은 앓고있는 유격대원 5명을 체포하여 나무가리우에 올려놓고 불태워죽였으며 사람들을 도끼로 나무패듯 찍어 불무지속에 던지거나 끓는 가마속에 집어넣었다. 지어는 사람을 묶어놓고 칼로 목을 자르거나 눈알을 도려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도 하였다.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얼마나 악독한놈들인가를 낱낱이 보여준 해란강대학살사건은 사람들에게 일제와는 영원히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다는 교훈을 새겨주었다.

적들은 이렇게 1932년부터 1933년에 이르는 기간에 해란구유격구에 대하여 94차의 《토벌》을 감행하여 1 700여명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피맺힌 원한을 언제나 잊지 않고 계시다가 해방후 희생된 유격대원의 안해가 우리 파견원들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달받으시자 곧 피맺힌 원한을 푸는 청산대회를 조직하도록 지시하시였다.

대회는 1946년 10월 연길시 서광장에서 진행되였다. 대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소영자, 마반산, 하동, 화련리의 피해자가족들은 물론 수십리, 수백리 떨어진 곳에 있던 피해자가족들까지 찾아왔다. 주석단정면에는 《연길시 해란강대학살사건주범청산대회》라고 쓴 글발이 걸려있었고 그옆에는 《살인귀를 잡아내고 그 죄악을 폭로규탄하자!》는 구호가 나붙어있었다. 개회가 선포되자 범죄자 18명을 군중앞에 끌어내였다. 대회장은 삽시에 분노의 함성으로 끓어번지였다.

제일먼저 김신숙이 연단에 나와 항일유격대원이였던 남편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귀들의 죄행을 폭로하였다.

연길시 해란강대학살사건주범청산대회(1946년 10월)

이어서 화련리에 살고있는 리달삼로인이 연단에 나와 가족 15명을 다 잃은 원한을 토로하였다. 인민의 원한은 하늘에 닿았다.

아들을 체포하여 항복시키려다 끝까지 비밀을 대지 않는다고 이발을 하나하나 다 뽑으며 고문하다 나중에는 그의 입에다 총을 들이대고 쏘아죽인 사실을 말하는 어머니, 자기 아들을 귀순시키려다 오히려 그에게서 질책을 당하자 그의 몸에 큰 돌덩이를 올려놓고 때리다 나중에는 연자방아에 갈아 참혹하게 죽였다고 비분에 떠는 아버지, 남편을 철사로 묶어놓고 총창으로 죽을 때까지 찔렀다고 원한을 터치는 안해, 아들의 눈알을 뽑고 간을 뽑아 죽였다는 어머니, 남편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성차지 않아 남편의 묘지에 찾아온 안해마저 엄동설한에 옷을 몽땅 벗기고 만행을 한 원쑤들에 대한 절규 ··· 참으로 구천에 사무치는 원쑤들의 죄행은 끝이 없었다.

청산대회는 인민들의 혁명적각성을 높이는 커다란 계기로 되였다.

정체를 감추고 군구사령부와 행정기관들에 잠입하여 국민당특무들의 지령에 따라 무장반란을 획책하고있던 18명의 악질주구들의 악랄한 살륙만행을 폭로한 대회에서는 악질주구 7명을 그 자리에서 즉시 처단하고 나머지는 죄상에 따라 응당한 징벌을 가하였다.

주구를 청산하는 대회는 다른 지방들에서도 활발히 조직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파견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전군중적인 심판대회를 열고 죄상에 따라 징벌하고 재산을 몰수하니 인민들은 피맺힌 원한을 풀었다고 환성을 올리였으며 계급적으로 더욱 각성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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