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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대호산전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개석군대가 동북땅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심양으로부터 단동을 련결하는 제2전선을 형성하여 적들을 소멸할데 대한 조언을 주시였다.

금주가 함락되고 장춘이 해방된 후 금서, 호로도에서 장개석군대가 동북인민해방군의 된타격을 받자 심양에서 금주에 원군으로 나왔던 료요상병단은 당황하여 북평선을 따라 관내로 통하는 길을 열고 화북으로 퇴각하려고 하였다.

흑산과 대호산은 료요상병단이 륙로로 혹은 바다로 빠져나갈수 있는 요충지였다. 금주를 거치면 륙로로, 영구를 거치면 바다로 도망칠수 있는데 흑산, 대호산이 앞에 가로놓여있어서 그것을 통과해야만 빠져나갈수 있었다.

이때 동북인민해방군 지휘부에서는 금주전투에 참가하였던 주력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3일간 료요상병단이 빠져나가지못하게 흑산, 대호산을 지킬데 대한 명령을 제10종대(28사, 29사, 30사)에 하달하였다. 제10종대도 조선사람들이 집중된부대였다.

흑산, 대호산전투는 전반적인 료심전역의 관건일뿐아니라 동북해방전쟁의 중요한 한 고리였다. 흑산, 대호산을 견지하면 료요상병단을 비롯한 동북에 들어온 장개석군대의 퇴로가 완전히 막혀 적들의 멸망은 결정적인것으로 되는것이였다. 때문에 동북인민해방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흑산, 대호산을 지킬 전투명령을 가장 강력한 조선인부대에 하달하였다. 흑산동쪽은 28사가, 흑산 서북쪽은 29사가, 대호산은 30사가 방어하고있었다.

1948년 10월 23일 적 5개 사단은 200대의 비행기와 155㎜포를 비롯한 각종 대포 200여문으로 흑산, 대호산일대에 대한 집중사격을 퍼부어 온 산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적들은 이날 3개 방면으로 5차례나 련속 공격하였지만 끝내 방어진을 뚫지 못하였다.

특히 동북인민해방군의 28사 83련대 3대대(조선인대대)가 지키고있는 101고지를 빼았기 위해 적들은 대포와 공군의 엄호를 받으며 10시간동안에 4개 방면으로 5차례의 맹돌격을 하였지만 그때마다 조선인부대용사들의 육박전과 완강한 방어에 부딪쳐 실패를 거듭하였다.

101고지는 대호산과 흑산사이의 9㎞ 남짓한 개활지대를 제압할수 있는 유일한 고지였다. 이 고지는 적들이 공격할 때마다 포사격을 맹렬히 퍼부어 불바다가 되였고 검은 연기로하여 하늘은 일식때처럼 캄캄하였다. 가렬한 전투는 수일간 계속되였는데 동북인민해방군은 하루에 거의 한개 대대의 병력을 잃었다. 101고지는 그때 국민당군의 폭격과 포격에 2m나 낮아졌다고 한다.

흑산의 서북쪽을 들이친 적 71군 87사, 91사는 련속 5차례나 공격하였지만 아군 29사에 의하여 격퇴되였으며 대호산을 공격한 적 신6군 22사도 아군 30사의 방어선을 한발자국도 뚫지 못하였다.

동북인민해방군 28사지휘부에서는 밤을 리용하여 적지휘부를 습격할 임무를 조선인부대에 하달하였다.

적들은 자기들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다는것을 알자 필사적으로 발악하며 날뛰였다. 101고지를 방어하던 조선인부대는 탄약도 식량도 떨어졌지만 끝까지 결사전을 벌리였다. 적들은 공산당군대가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귀중히 여긴다는것을 악용하여 인민들을 앞에 세우고 그뒤에 저들이 서서 기여오르기까지 하였다. 이때 전투원들은 인민들이 30m가까이까지 온 다음 그들을 엎디게 하고 적들을 총탄으로 그리고 육박전으로 소멸하였다.

전투원들은 3일간 이 고지를 영웅적으로 사수하였다. 뒤이어 10종대와 금주해방전투에 참가했던 부대가 여기에 도착하였다. 아군은 25일 밤에 적들의 종심으로 공격하였다

동북인민해방군부대들은 5일간의 격전을 통하여 료요상병단의 5개 군 12개 사단의 10만여명을 섬멸하고 료심전역의 결정적승리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흑산, 대호산전투에서 국민당군 병단사령원 료요상은 포로되고 부대는 소멸되였다.

료요상은 그때 자기의 일기에 《그들(조선인부대)은 공격할 때마다 모두 날창을 비껴들고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서 전진하였는데 비상히 용감하였다.》라고 썼다.

동북인민해방군 총부에서는 흑산, 대호산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운 10종대를 크게 표창하였다. 28사 83련대 3대대 8중대(조선인부대)는 《강철8중대》란 칭호를 받았으며 전군에 그 이름이 소문났다.

흑산, 대호산전투가 있은 후 아군의 총력량은 이미 포위속에 들어있는 심양을 해방하는 전투에로 집중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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