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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항해방전투

영구는 적들의 기본해상보급기지로서 군사전략상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영구항은 이미 1948년 6월 조선인부대 독립4사에 의해 1차타격을 받아 증원보급기지로서의 사명은 수행할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료심전역에서 영구항은 적들의 주요한 퇴각로의 하나였다. 더우기 금주가 아군에게 장악된 후 영구는 적들이 희망을 거는 마지막 출로였다. 영구항을 완전히 해방시키지 않으면 패잔병에 불과한 수만명의 적들을 놓칠수 있었다. 때문에 심양해방전투와 때를 같이하여 영구항을 해방하기 위한 작전을 벌렸다.

심양포위전을 끝내고 적들을 소멸하면서 영구방향으로 진출한 7종대 20사는 14시간동안 강행군하여 영구에 도착하였다. 그때에는 이미 부두가에 있던 적들까지 기본적으로 소멸되고 군함 3척이 금시 항을 빠져나가고있었다.

먼저 도착한 보병들이 삼면에서 중기, 경기로 달아나는 군함에 집중사격을 가했으나 허사였다. 이때 뒤미처 도착한 7종대직속 조선인포병대대 포장 정원태는 재빨리 포를 전개하고 군함이 가는 앞길에 위협사격을 하였다. 그의 포탄 첫발은 군함의 앞에, 다음은 좌우옆에서 물기둥이 솟구쳐오르게하였다. 이렇게 반복하니 적들은 할수없이 배머리를 돌려 흰기를 내들고 돌아와 투항하였다. 포장 정원태는 포탄으로 적들의 군함 3척을 나포하였다.

1만여명의 패잔병들이 손을 들고 갑판에서 내려왔다. 그중에는 군단장급장령 3명, 사단장급장령 8명을 포함하여 500여명의 장교들도 있었다.

이처럼 포장 정원태는 여기서 또다시 대공을 세웠다.

이로써 패잔병들이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있던 영구까지 동북인민해방군에 의해 해방됨으로써 장개석국민당군은 동북땅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되였다. 장개석의 처지는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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