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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해방전투

심양은 장개석국민당군의 동북지구 총사령부가 도사리고있던 마지막 지탱점이며 아성이였다

적들은 이미 동북지구의 모든 지역에서의 패망이 인정되자 심양만은 내놓지 않고 때를 기다려 포위를 뚫고 내빼려하였다.

처음에 심양은 중국인부대들이 포위하고있었는데 1948년 11월 1일 총공격을 개시하면서 조선인부대들이 주동이 되였다. 당시 심양에는 사방에서 쫓겨들어온 적군 20만여명의 병력이 공고한 방어진에 의거하여 반항하고있었기때문에 방어진을 돌파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때 장춘해방전투에서 빛나는 공적을 세운 조선인부대인 독립4사와 37사(연길에서 조직된 부대)가 땅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달려와 순식간에 적 1 500여명을 살상하고 북쪽방어진을 돌파하였으며 비행장을 점령하고 수십대의 비행기를 로획하였다. 적들은 갈팡질팡하였다. 바빠맞은 적들은 담판을 요구해나섰다.

아군부대의 정치위원이 나가 적들의 화평요구를 거절하고 무조건 투항을 요구하자 적들은 그 앙갚음으로 조선인부대들이 주둔한 비행장구역에 대한 대폭격과 포격을 가하였다.

조선인부대들과 중국인부대들은 련합하여 적들에게 일제히 포사격을 개시하였다.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10월 30일 오후에 적장교들은 비행기를 타고 달아나고 10만여명은 아군에게 투항해왔으며 일부 력량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심양은 11월 2일 오후 5시에 완전히 해방되였다.

심양이 해방된 다음 독립4사의 조선사람들은 심양위수근무를 수행하다가 주체38(1949)년 7월에 조선에 나와 조선인민군 제6사에 편입되였다.

사평, 금주, 장춘, 심양해방전투에서만 하여도 무려 50여만명의 적들이 살상포로되였다

3년만에 동북해방전쟁은 끝났다.

이 기간에 조선인부대들과 동북인민해방군은 국민당군 신1군, 신3군, 신6군, 신7군과 12군, 16군, 60군, 71군 그리고 10여만에 달하는 사문동의 토비부대를 비롯한 100만대군을 와해시키고 그중 70여만명을 살상포로하였다.

동북인민해방군과 조선인부대에 의한 심양해방에 대한 소식은 적들에게 공포를 주고 실망의 화제거리로 되였으며 인민들을 희망과 락관으로 들끓게 하였다.

그에 대하여 당시 봉천(심양)해방속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과거 1주일간 전투에서 국부측은 〈미국식〉훈련과 장비로 된 20만이상의 병력 및 기타 수십만의 지방군을 상실했으리라고 한다. 국부측은 〈미국화부대〉 36개 사단의 거의 전부를 상실한것이다. 중국 동북전선에서의 국부군의 이 인적, 물적손상외에 봉천함락은 중국인민해방군에게 전중국에서의 최대의 〈병기창〉을 제공한것을 의미한다고 AP현지보도는 전하였다. 남경 2일 AP통신은 당시의 권위있는 소식통에 의한것이라 하며 인민해방군의 봉천점령은 2일 오후 3시(봉천시간 오후 5시)에 완료되였으며 봉천수비의 국부군주력부대는 인민해방군이 입성하기 전에 이미 항복하였고 국부만주사령관 위립황장군과 기타 고급장교들은 전선을 버리고 비행기로 북평에 도망하였다고 전하고있다.》

《로동신문》 주체37(1948)년 11월 5일부는 《국민당정부총사직》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남경 4일 AP통신에 의하면 중국국민당정부 행정원은 전원회의를 소집한 결과 총사직하기로 결정하였다. …》

또한 《로동신문》 주체37(1948)년 11월 14일부는 동북지구의 완전해방과 관련하여 당시 섬북에 있던 신화통신이 비관에 싸인 장개석의 몰골과 동북해방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고 전하였다.

《장개석정부 붕괴위기

섬북에서 신화통신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동북지구를 완전히 해방시킨 위대한 승리는 남경정부를 뒤흔들고있다.

···

동북에서 미국무기로 무장한 3개 병단을 손실당한 장개석은 10월 30일 북평으로부터 당황히 남경으로 돌아가서 그날 오후에 … 고급조수들을 자기 관저에 모아놓고 긴급회의를 하였는데 동회의에서 이전에 보지 못하였던 음울한 공기가 돌고있었다. 장개석은 평상시의 락관적음성을 버리고 현하의 군사정세는 대일전쟁이 끝난 이후에 생긴 가장 엄중한 정세라고 말하였다.

《로동신문》 주체37(1948)년 11월 14일부에 실린 기사

장개석은 정부의 동북에서의 형편은 대단히 나쁘며 그것이 붕괴되느냐 마느냐는 앞으로 3개월내이면 결정될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앞으로의 3개월은 가장 넘기기 어려운 기간이라고 자인하였으며 그는 정부가 앞으로의 3개월을 넘길수 있느냐 넘길수 없느냐에 대해서는 신심을 가지고있다는것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음성으로 연설하였다.

···

이때에 와서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들은 북평, 천진들에서 다 달아났고 장개석을 지원하던 미국군사고문은 자살하였으며 장개석이 군사원조를 요구하는데 대하여 미국인들은 〈미국에 가서 휴식이나 하라〉고 하며 군사원조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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