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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무기도 서슴없이

주체35(1946)년 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의 모택동동지의 부탁을 안고 평양에 찾아온 진 운을 접견하시였다. 당시 진 운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일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택동동지의 특사로 온 진 운을 김 책의 집에서 류숙하게 하신 다음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에서 그와 식사를 함께 하시며 진지하게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진 운은 그때 우리 나라에 와서 자신께 무기를 줄것을 제기하였으며 자신께서는 진 운을 만난 다음 우리가 나라를 해방하면서 빼앗은 일본놈들의 무기를 몽땅 중국동지들에게 넘겨주었다고 하시였다.

진 운이 모택동동지의 이름으로 제기한 문제들가운데서 제일 중요한것은 무기를 해결해달라는것이였다.

당시 동북해방전쟁에서 중국공산당군대의 가장 애로되는것이 바로 무기였다. 전쟁은 원래 치렬한 사상정신적대결인 동시에 총과 총의 대결, 무장장비의 대결이다.

중국공산당의 군대는 정치사상적으로는 국민당군대와 대비할수 없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지만 수적으로나 무장장비에서는 장개석군대보다 훨씬 뒤떨어지고있었다. 이로부터 많은 고충을 겪고있던 모택동동지와 중국공산당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부장을 하던 진운에게 무기를 해결할데 대한 과업을 주어 평양에 파견하였던것이다.(진 운은 1946년 6월 16일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동북국의 부서기 겸 부정치위원으로 일하였다.)

무기문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 운의 요청을 심중히 들으신 다음 그의 요구대로 도와줄것을 승낙하시였다.

진 운은 너무 기쁘고 고마와 위대한 수령님께 어려운 시기에 중국혁명을 도와주신데 대하여 잊지 않을것이라고 진정을 담아 말씀드리였다.

진 운이 떠나간 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부문의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부문 일군들에게 지금 중국혁명이 큰 시련을 겪고있는데 우리는 국제주의전사로서 이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중국에 무상원조를 주기로 하였다고 하시고는 병기창고에 있는 일제침략군들에게서 로획한 무기와 탄약의 보관정형을 료해하시고 10만명을 무장시킬수 있는 무장장비를 중국에 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그 순간 누구도 얼른 찬성을 표시하지 못하였다. 너무도 엄청난 수자였기때문이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미제가 남반부를 강점하고 북반부까지 침략하려고 계속 도발을 걸며 전쟁준비를 다그치고있는 속에서 우리가 정규무력건설을 준비하고있었기때문에 유능한 군사일군과 함께 제일 필요한것이 무장이였던것이다.

실지로 우리도 무기가 부족하여 고심하고있었다. 그때 정규무력건설에 필요한 군정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평양학원을 내왔는데 이곳 학생들에게 줄 무기가 없어 해당 일군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것인가 론의하고있었다. 뜻밖에도 김보현할아버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어느날 대동강을 건느시다가 물속에 왜놈들이 처박아놓고간 무기와 탄약무지를 발견하시고 위대한 수령님께 이야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평양학원의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고 대동강에 나가 그 무기와 탄약들을 건져내여 부족되는 무기들을 보충하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리하여 평양학원에서는 그 무기를 가져다 군정훈련에 리용하였던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우리 나라의 무기사정이 얼마나 긴장하였는가를 말해주는 한가지 실례이다.

이처럼 무기가 우리에게도 부족한 때에 다른 나라에 한두정도 아니고 10만여정의 무기를 준다는것은 정말 상상도 못해본 일이여서 어느 한 일군은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 한 1만정쯤 주었으면 하는 의견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웃으시면서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나라 혁명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세계혁명에도 충실해야 한다고 하시며 중국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때에 우리는 진심으로 중국혁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있는대로 다 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시 중국혁명을 진심으로 도와주시였다고 하시면서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그때 중국공산당에서는 수령님께 무기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무기 한자루가 우리에게도 매우 귀중한 때였지만 10만여정의 무기와 탄약, 폭약, 군복천과 군복, 의약품들을 동북민주련군에 넘겨주도록 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수령님께서는 국제주의에 매우 충실하시였다고 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수송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 당시 경위련대장을 하던 항일혁명투사 강상호에게 책임지워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무기를 보내주시였는데 그때마다 무기가 무사히 동북땅에 도착할수 있게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화물들을 조사하지 말고 무사히 통과시킬것을 지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26일에 하달하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지령 제149호 《특별화물수송에􀀃관한􀀃건》에서 남양철도경비대장에게 특별화물을 실은 30대의 차량들을 무사히 국경을 통과시킬것을 지시하시였으며 같은날에 하달하신 지령 제149호 《특별화차경비에􀀃관한􀀃건》에서는 북조선철도경비대장에게 특별화차 30차량에 대해서는 각 철도경비대에서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증명서를 발행할것을 지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 10만여정을 보내실 때 포도 실어서 중국 동북지방에 보내주시였다.

이 무기를 받아안은 동북민주련군의 길림군구사령부와 료녕군구사령부에서는 즉시 그 무기들을 전선의 각 부대에 배정하였다. 그때 그 무기분배에 참가하였던 중국의 한 일군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감회깊이 이야기하였다.

《무기가 없어 창이나 곤봉을 총대신 메고다니던 많은 전사들이 총을 받아안고 환성을 올렸고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감격없이는 볼수 없는 광경이였다.》

어찌 그러지 않았겠는가. 제일 안타까와하던 총문제가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풀리게 되였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주체35(1946)년 8월과 주체36(1947)년 6월에도 많은 량의 포와 무기를 중국 동북민주련군에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와 군수물자만이 아니라 일제침략자들에게서 로획한 포를 가지고 포병련대와 공병부대를 조직하여 중국 동북전선에 파견하시는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강력한 포무장장비들을 갖춘 포부대와 공병부대가 중국 동북전선에 파견되였으며 이 부대들은 동북해방전쟁의 치렬한 격전장들마다에서 언제나 승리의 돌파구를 열어놓는데 결정적기여를 하였다.

1946년 10월 동북민주련군 동남군구사령부 특사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강환주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주신 10만여정의 무기와 포병련대, 공병련대는 현재 동북민주련군의 무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보낸 10만여정의 무기와 포병부대, 공병부대가 중국공산당과 인민들의 동북해방위업에 크게 도움이 된다니 매우 기쁘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해주신 조선인포병부대는 그후 중국의 최남단인 해남도해방전투에까지 참가하여 중국인민해방전쟁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위훈을 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과 포만이 아니라 중국에 폭약도 많이 보내주시였다.

동북해방전쟁과 전국을 해방하는 전쟁 전기간 피어린 격전장들에서 이름을 떨친 황색폭약도 우리 나라에서 보내준것이였다.

《로동신문》 주체36(1947)년 7월 23일부에 실린 기사

그때 우리 나라에서도 모든것이 부족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좀 지장을 받더라도 중국의 전장에서 긴절하게 요구하는 폭약수요를 충족시켜주자고 하시면서 황색폭약을 비롯한 여러가지 폭약들을 계속 보내주시였다.

황색폭약은 교량을 파괴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적의 요새화된 화점들을 까부시는데서 이 폭약은 없어서는 안될 절실히 필요한것이였다. 이 폭약이 터지는 곳마다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리군 하였다.

주은래총리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폭약을 생산하던 공장에까지 찾아가 그곳 로동자들앞에서 지난 시기 중국 인민의 해방투쟁을 지원해준데 대하여 진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은래총리가 연설한 그 자리에 그의 동상을 세우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중국 동북해방전쟁에 무기와 인원을 보내준데 대하여 적측에서도 알고 아연실색해하였다.

주체36(1947)년 7월 23일부 《로동신문》은 장개석군의 장령 두률명이 외국기자들과의 회견시 동북민주련군이 북조선으로부터 무기와 인원의 원조를 받고있다고 불평을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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