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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과 신발까지

군대에 있어서 군복과 신발 역시 중요한것이다. 동북해방전쟁시기 중국공산당군대에서는 군복과 신발문제가 크게 걱정거리로 된적이 있었다.

이때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풀어 주시였다. 주체35(1946)년 3월 2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길동분구사령부에서 군복문제때문에 우리 나라에 온 정두환을 접견하시였다.

정두환은 길동분구의 사령원과 정치주임이 련명으로 수표한 청원편지를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고나서 군복천을 해결하려고 우리 나라 여러곳을 다녀보았으나 해결하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보고를 받으시고 동무가 가본 그곳에는 원래 천이 없다, 벌써 나한테 찾아왔을걸 그랬다, 우리도 천이 매우 긴장하지만 싸우는 동무들을 위해 요구대로 보장해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정두환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이 너무도 고마와 그이께 거듭 사의를 표하였다.

그 시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동북국에서 군복문제는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들중의 하나였다. 해방지역에 병기공장과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 기업소들이 있었으나 전시조건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데다가 군대입대자가 급격히 늘어 나다나니 먹는 문제와 함께 입는 문제, 신발문제가 크게 걸렸던것이다. 분구사령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이 문제도 제기하려다가 너무 많은 부담을 끼쳐드리는것 같아 사령부의 공급부 부부장 정두환에게 자체로 풀어보라고 임무를 주었다.

그래서 정두환은 우리 나라에 와서 함경남북도와 강원도 등지를 다녀보았는데 돈을 주고도 천을 살수 없어 하는수없이 분구사령부에 사실을 보고하였다. 분구사령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수 없이 편지를 써서 정두환을 우리 나라에 보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두환으로부터 동북의 정세를 보고 받으시고 그 자리에서 해당부문 일군에게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고 최현에게는 한차량분의 의약품을 해결할 긴급과업도 주시였다.

며칠후 해당 일군에게서 질도 좋지 못하고 폭도 좁은 토목천을 구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싸우는 동무들에게 좀더 좋은 천을 해결해주자고 하시며 끝내 좋은 천과 의약품도 마련해주시였다.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방직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여 집들에서 베를 짜거나 무명낳이를 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 형편이였다.

 

정 두 환

1911년 3월 25일 출생. 주체16(1927)년부터
반일투쟁에 참가. 해방후 길동보안사령부 후방부부사령 겸 재정과장으로 동북해방전쟁에 참가. 그후 보안간부훈련소 후방주임, 조선인민군과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사업하다가 주체95(2006)년 1월 5일 서거. 반일애국렬사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많은 량의 군복천과 군복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공장과 기관, 개인소유의 면직물들을 수집할데 대한 지령들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하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4월 26일에 하달하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지령 제50호 《면직물일체(광목, 무명 등등) 수집회송에 관한 건》에서 황해도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황해도의 모든 면직물들을 수집하여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만포진 사무소로 보낼것을 지시하시였으며 주체35(1946)년 4월 27일에 하달하신 지령 제51호 《면직물통제를 강화하여 만포진 무역소에 수송함에 관하여》에서는 평안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신의주 등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면제품들을 수집하여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만포진 무역소에 수송할것을 지시하시였으며 주체35(1946)년 8월 17일에 하달하신 지령제141호 《광목이양에 관한 건》에서 평안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신의주의 공장들에서 보유하고있는 모든 광목천들을 수집하여 평양으로 수송할데 대하여 지시하시였다.

정두환은 이렇게 해결해주신것이 너무 고마와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떠나자고 찾아갔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복천외에 군복 1 000여벌을 더 주시면서 경위대와 군정간부들에게 주라고 하시고는 나라사정이 어려워 더 보내지 못하는데 대해 못내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을 끝없는 감격속에 받아안은 정두환은 두만강을 건너 분구사령부까지 가면서 줄곧 수령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였다.

그가 군복천과 군복, 의약품을 가지고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하달하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지령 제141호

분구사령부에서는 공급부 부부장의 귀환보고를 감동속에 청취하였다.

그때를 회상하여 당시 길동분구사령부 정치부주임이였던 당천제는 후날 자기의 회상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돌이켜보면 주석동지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배려를 거듭 받아안은 그 력사의 사연을 울먹이며 전하는 공급부 부부장과 숨을 죽이고 듣는 우리의 간부들도 조선전역에 기아와 빈궁이 엄습하고 내외반동들이 준동하던 8.15직후의 형언키 어려운 간고한 환경이였지만 조선당의 시종일관한 중국혁명지원정책, 연변방침을 심장으로 감수하며 위인에 대한 뜨거운경모의 정으로 가슴들을 들먹이였다.

정두환의 사업보고가 끝나자 장내에서는 환성이 울리고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1947년 여름 중국공산당 군대가 장개석의 대군을 동북땅에서 쓸어버리기 위한 제1단계 하기공세를 시작할 때였다. 1945년말에 27만 4 000여명이던 동북민주련군이 다음해말에는 36만명, 그 다음해 여름에는 51만명으로 늘어나게 되자 신발이 부족하여 일부 전투원들은 맨발로 가시덤불을 헤쳤고 자갈밭을 행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주보중은 신발문제를 풀기 위하여 1947년 여름 또다시 자기의 안해 왕일지를 우리 나라에 보내였다.

이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일지를 접견해주시고 그가 요구하는 신발문제를 쾌히 풀어주시였다.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원료, 연료부족으로 신발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여 도시에서도 고무신과 천신이 고작이고 아이들과 학생들도 고무신과 짚신을 신고다니는 형편이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우는 전우들을 생각하시며 우리 인민들에게 줄 신발생산을 미루시고 동북의 전사들에게 보내줄 신발을 먼저 생산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주보중이 그후 왕일지를 나에게 보낸것이 아마도 1947년 여름이였던것 같습니다. 동북민주련군이 50일동안의 전투에서 8만여명의 적을 살상하고 42개의 성, 진을 해방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전선형편은 여전히 긴장한 때였습니다. 민주련군측 장병들은 신발의 부족으로 큰 곤난을 겪고있었습니다. 많은 장병들이 맨발로 진흙탕과 자갈밭을 행군한다고 하였습니다. 왕일지가 나를 찾아온것은 신발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모든 신발공장들에서 다른 신발생산은 다 중지하고 중국의 전우들에게 보낼 신발만 생산할데 대한 긴급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찾아온 왕일지와 담화하시면서 우리 나라 경제형편에서 다른 나라를 돕는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좀 힘들더라도 항일전쟁때처럼 중국인민의 혁명전쟁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이번에도 중국동지들이 요구하는것을 다 해결해주자고 말씀하시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왕동무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라의 형편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중국 동북혁명을 여러모로 도와주고계시는데 대하여 중국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하는데 중국동지들을 물심량면으로 도와주는것은 우리 공산주의자들과 우리 인민들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발뿐아니라 싸우는 전우들의 식량을 걱정하시여 우리 나라 평안북도에서 생산한 쌀을 동북지방에 보내주시였고 다량의 의약품과 생활필수품도 무상으로 제공해주시였다.

주체36(1947)년 3월 2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에서 팔로군부대들이 장개석군대와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애로되는것이 많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해당일군에게 지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평안북도 벽동군 대안에서 동북민주련군부대들이 장개석국민당군대와 매우 어려운 전투를 벌리고있는데 그들이 전투에서 승리할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식량도 대주고 의약품, 신발, 군복도 보장해주며 모자라는 무기도 보충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좀 못먹고 곤난을 겪더라도 동북민주련군부대들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로 의약품을 비롯하여 신발과 군복도 보내주었으며 부상병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하여주었다.

리홍광지대에 평안북도청년들이 많이 입대하여 활동하고 있던 1946년 겨울 몽강일대에서는 소금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제기되였다. 조선인부대에서는 소금을 먹지 못해 대원들의 얼굴이 퉁퉁 붓고 음식도 전혀 먹지 못하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룡천진목재소를 습격하여 소금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당시 이 목재소를 타고앉아있던 국민당군대는 귀한 소금을 밀매하여 리득을 보고있었기때문에 조선인부대는 그 소금을 빼앗는것과 함께 그곳 인민들도 해방하려는 목적밑에 전투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막상 전투를 하고보니 소금은 거의 없었다. 룡천진에서 촌장을 하던자가 몽강일대의 민주련군부대에서 소금이 없어 아우성을 친다고 미리 알려주어 국민당군대가 선손을 써서 가지고있던 소금을 몽땅 휘남현성으로 빼돌렸던것이다.

하는수없이 리홍광지대에서는 소금문제를 해결하려고 두 사람을 압록강을 건너 우리 나라에 보내였다. 임무를 받은 김동무는 료동군구사령원 소화의 신임장을 동복앞섶을 째고 그안에 넣고왔다.(그때 신임장은 천에다 사령원의 도장을 찍은것이였다.)

부대에서는 이들에게 당시 중강에 있던 동북민주련군 군의소에 거처를 정하고 소금을 해결하되 만일 국경에서 체포되면 최현을 만나라고 지시하였다.

이들은 압록강을 넘어와서 우리 나라 국경경비대에 체포되였다. 그러나 함부로 내용을 밝힐수 없어 최현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그를 만날수 있었다.

며칠후 이들은 자동차 10대에 소금과 신에 댈 고무재료를 싣고 부대로 돌아갔다. 부대사령원은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금이 어떻게 해결되였는지는 몰랐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주체54(1965)년 김동무가 경성휴양소에서 최현을 만나 그때로부터 근 20년전에 있었던 소금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그 소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금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자 즉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였던것이다.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국경일대에는 동북민주련군부대와 그 가족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해주기 위하여 상점까지 따로 내왔다.

주체36(1947)년 4월 13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내무국장에게 중국전우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나라의 경제형편이 좀 어렵지만 그들에게 생활상 필요한 모든것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고 친혈육처럼 대해주어야 하며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무국에서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에 있는 국경연선 민주련군상점들에 자주 나가 거기에 들어오는 상품들이 다른데로 빠지지 않도록 하며 가격도 우리가 정한대로 판매되는가를 알아보고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해방직후 새 조국건설을 위해 사방에서 요구하는것이 전기였지만 싸우는 동북전선을 도와주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중국에 보내주시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기기술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에 가게 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2월 15일 집무실에서 중국에 파견되는 전기기술자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사업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인 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우는 중국인민을 도와주는것은 신성한 국제주의적의무라고 다시금 강조하시고 동무들이 우리 인민의 국제주의적의리를 안고 안산변전소로 가게 되는것만큼 거기에 가서 일을 책임적으로 잘하라고 고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에게 안산변전소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변압기를 비롯한 변전소의 설비들을 원상대로 복구하여야 수풍발전소에서 22만V 송전선을 통하여 중국의 국경연안지역들에 전기를 보내줄수 있다고 강조하시면서 중국측의 요구에 의하여 가게 되는 동무들이 안산변전소에가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우리 인민의 기개를 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조중친선의 뉴대를 더욱 두터이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전기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 수풍발전소의 전기가 중국의 동북지역에 보내여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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