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광고, 판이한 현실

서방의 정객들과 어용나팔수들이 입버릇처럼 외워대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것이다

대표적실례로 교육에서의 《우월성》을 내들고있다. 《그 누구나 배울수 있으며 졸업후에는 능력과 희망에 따라 바라는대로 직업을 얻고 많은 돈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야말로 현란한 광고이다.

하다면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얼마전 미국잡지 《뉴스위크》에 《미국에서 대학졸업생들의 직업선택》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리였다.

잡지는 글에서 대학졸업생들은 항시적인 걱정과 불안속에서 살고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전하였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수입불평등이 만연하는 세계에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걱정으로 신경증에 걸려 갈팡질팡하는 세대로 되겠는가. 아니면 이런 압박이 그들을 성공에로 추동하겠는가. 이것이 사회적모순이다.

22살 난 앨리슨은 펜실바니아종합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런데 불어난 대학대부금이 그가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앨리슨이 설사 직업을 얻는다고 하여도 날로 늘어나는 채무는 항시적인 걱정거리로 남아있을것이다.

앨리슨은 〈대학을 떠나게 된 지금 나는 매달 이것을 갚아야 하며 도시로 옮겨갈 충분한 돈을 마련할 생각에 고민하고있다. 이 모든것이 나의 생활을 질식시키고있다. 나는 대부금이 항상 나를 따를것이라는것을 알고있다. 그것이 나를 더욱 위축되게 할것이다.〉고 말하면서 앞날에 대하여 우려하였다.》

미국심리협회가 조사한데 의하면 실지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우울감이나 걱정과 같은 스트레스와 련관된 심리적 및 감정적증세를 느끼고있다.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학비보장을 위해 신용기관들로부터 자금을 대부받고있다. 이것이 그대로 대학생들의 골치거리로 되고있다. 원금과 함께 높은 률의 리자를 바쳐야 하기때문이다.

다른 자본주의나라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언제인가 중국의 신화통신은 《거액의 빚을 지며 대학공부를 해야 하는 일본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전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몸까기를 하느라고 야단이지만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것 그자체가 몸까기이다. 어서빨리 18살이 되여 술집에서 일하고싶다. 술집에서 일하면 돈을 벌수 있게 된다. 돈을 벌면 대학에도 갈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일본처녀 고바야시가 한 말이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려면 입학금과 첫해의 학비만으로도 아버지의 월급보다 3~4배나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 하여 그는 부모들에게 〈대학에 가고싶어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다.》

고바야시의 처지는 일본의 청년들이 겪고있는 고충의 축소판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에서는 《졸업후 직업을 얻어 달마다 물면 모두 반납할수 있을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대부금을 신청하여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 있는데 직업얻기 또한 하늘의 별따기여서 수많은 대학졸업생들이 초보적인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한채 빚독촉에 시달리고있다.

때문에 그들은 대부금을 반납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또다시 꾸게 되며 결국에는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빚만 커져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일부 녀졸업생들인 경우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해가고있다.

서방의 정객들과 어용언론들의 광고와는 너무나도 판이한 현실이다.

 

주체108(2019)년 9월 16일 월요일 로동신문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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