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3

 

제 8 장

3

 

김봉석이 량강구에서 돌아온 뒤 상촌근거지는 유격대를 중심으로 모든 근거지인민들이 달라붙어 방위체계를 확립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각 혁명조직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확대하며 유격대를 백방으로 원호하고 강화시켰다. 반군사조직인 적위대는 맹렬한 훈련을 진행하며 생산과 전투에 인입되였다. 상고개와 대문바위쪽에는 더욱 견고한 방어진지가 꾸려졌다. 적이 기여오르면 몰려가서 답새기군하였는데 이제는 전호를 파고 자기 위치를 분담하고 앉아서 갈겨대는 물샐틈 없는 체계가 섰다. 이렇게 되니 박대동의 하인이 적을 달고 넘어오는것 같은 일은 다시 있을수 없게 되였다. 경계근무체계도 확고히 세워졌다. 망원초, 중간초, 바닥초, 받을초, 문전초, 류동초 같은 여러가지 경계초소가 생겨났다. 유격대의 지도밑에 적위대원들이 곳곳에 별 박이듯 숨어서서 적을 감시했다. 이리하여 온 근거지는 철통같은 방위체계속에 들어 희망찬 생활이 끓어번졌다. 큰벌의 가을걷이도 끄떡없이 끝났다. 사람들은 이삭만 잘라들이고 내버려두었던 조짚이나 수수짚까지도 죄다 베여들였다. 대문바위쪽 큰길로는 매일같이 짚을 실은 집채같은 달구지들이 왈랑절랑 굴러들어왔다. 대문바위에서부터 상고개어간의 큰벌은 무거운 짐을 활짝 벗어던지고 등어리가 시원해졌다. 이따금 늦가을 돌개바람이 불어와서는 조잎과 수수잎들을 말아올렸다.

근거지사람들은 인젠 땅이 얼기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죄다 집짓는 일에 달라붙었다. 이산저산에서 나무를 베넘기는 톱질소리, 도끼질소리가 울리였다. 산기슭마다 귀틀집, 오두막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혁명위원회는 학교를 짓는데와 아이들 합숙을 짓는데도 사람을 붙이였다.

《어, 인제 내가 애들 합숙일을 돌보게쯤 됐구나. 그새 아마 이 합숙에서 차응도를 죽일놈 살릴놈 욕을 했겠지.》

희섭이와 함께 사람 다섯을 데리고 아이들 합숙마당으로 들어서는 차응도는 이런 소리를 하며 웃었다. 부엌에서 금실이와 마주앉아 감자를 깎던 리상녀가 달려나왔다.

《어이구, 회장어른이 어떻게 이처럼 오셨습니까? 희섭선생두!》

《허허허, 아주머니, 안녕하시우? 요새두 혁명위원회로 자주 다니긴 했겠는데 만나뵈질 못했군요.》

《만나선 뭘합니까? 회장 아니라도 식량부장이 량식을 잘주니 고맙기만 합데다.》

《허허허, 이 아주머닌 보기만 하면 걸구든다니까···》

차응도는 마당이 떠나가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리상녀는 차응도를 보는적마다 앉은뱅이가 아니면 애들 합숙에 자주 와보기도 하고 집도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차응도는 늘 량심에 가책을 받기도 했었다.

《그래 정숙동무는 어데 갔습니까?》

《어이구 맙시사, 정숙이가 이 불같은 세월에 어째서 합숙에 앉아있겠습니까? 벌써 애들을 데리고 산으로 나무를 찍으러 갔습지요. 회장을 믿고 앉아있다가 겨울에 얼어죽게요?》

《자, 그러게 오늘부터 빚을 갚으러 왔습지요. 여기 펄펄나는 목수를 다섯명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한번 궁궐같이 지어봅시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을 뜨뜻이 입히구 집도 좋은 집에 있게 하구 먹이기두 잘 먹이라고 하셨답니다.》

《장군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은 저두 요새 들었습지요. 아무튼 목수어른들이 수고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집이야 회장이 짓거나 내가 짓겠습네까? 괜히 목수어른들 데리고 와서 자기 생색을 낸다니까요.》

그 소리에 차응도와 희섭이는 또 큰소리로 웃었다. 리상녀도 웃었다.

금실이는 밖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못들은척하고 앉아서 감자를 깎았다. 맘이 별스럽게 자꾸 앙칼져간다. 인젠 합숙에 와서 생활이 몸에 익을만해가긴 하지만 남편과 차응도가 자기 문제를 놓고 쑥덕공론을 벌려 자기를 이리로 보낸 일에 대해선 속이 풀리질 않았다. 어쨌든 이 일에 대해선 차응도도 남편만치나 미웠다. 속에 의뭉수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나더러 뭘 일이 고되긴 하겠지만 애들 합숙으로 가서 정숙동무의 일을 돕는게 좋겠다구? 어쩜 그렇게 점잖고 유한것 같은 사람이 남의 일에 끼여들어 오그랑수를 썼을가. 금실이는 공연히 속이 앙칼져 감자껍질을 빡빡 긁었다.

사실 차응도는 지금 동도 서도 모르고 금실이의 눈총을 받게 된것이였다. 금실이는 둘이 짜고들어 자기를 이리로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차응도는 희섭이와 짠 일이란 하나도 없다. 희섭이 역시 제 안해를 앞에 놓고는 별별 공박을 다하지만 이 일을 남의 앞에 내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니였다. 그러기에 차응도에게 안해의 문제를 부탁할 때에도 아이들 합숙에 올라가보니 손이 부족해서 김정숙동무와 리상녀가 고생도 하는것 같고 또 구들이 뜨끈뜨끈하니 약골인 자기 안해를 그리로 가서 일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오게 됐는데 금실이는 천만 오해를 하고있는것이였다.

《어이구, 고진감래라더니 인제 이 오두막합숙에 큰 대문이 열린것 같다.》

리상녀가 떠들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다들 갔어요?》

《가긴 왜 가겠소? 둘이는 재목을 굴려내려 다듬고 셋은 나무 찍으러 산으로 갔지.》

《회장은 밖에 있어요?》

《밖에서 지금 희섭선생하구 둘이서 새끼줄을 늘이며 한눈을 찌긋하고 집지을 좌향을 보느라고 법석들 한다우. 애들 집엔 해빛이 잘 들어야 한다구 희섭선생이 더 우겨대면서 열성아니우. 그러나 저러나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할가? 저 목수들 점심두 지어야 하지 않을가? 어떻게 애들과 우리만 지어먹겠소?》

《아마 지어야겠지요. 혁명위원회에서 주는 량식 가지구 우리가 린색하게 할수야 없지요.》

금실이는 속에 아니꼬운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아이들 집을 지어주려고 목수들이 와서 수고를 하는데 가만있을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편이 이렇게라도 와주니 고마왔다.

《그 말이 옳아. 어떻게 린색하게야 하겠소?》

리상녀는 부리나케 광주리를 들고 뒤울안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듯마듯 디굴디굴한 감자를 한광주리 담아들고 들어왔다.

《감자만 삶겠어요?》

《웬걸 조밥에다 감자를 섞을 참이지.》

《쌀이 얼마 안되던데요.》

《그렇다구 손님들한테야 죽을 대접하겠소? 밥을 잡숫구 우리 아이들 집을 좀 잘 지어달래야지···》

리상녀는 연송 혀끝으로 트고 물집이 생긴 입술을 훔쳤다. 흥이 나면 하는 버릇이였다. 금실이가 와서 내내 보아온 얼굴의 컴컴한 그림자가 일조에 없어지는것 같았다. 금실이도 감자를 다 깎고는 얼른 일어나 행주치마를 걸치였다. 그는 가마를 부시고 가시물그릇을 들어옮기고 했다. 일을 하라면 남만치 못하는 금실인 아니였다. 맘만 내키면 눈에서 웃음이 끓으며 바람같이 돌아가는 성미인데 지금은 얼굴의 그늘이 벗겨지지 않아 그런 녀자같아보이질 않았다. 그는 남편이 문앞으로 와서 여겨보기라도 해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자기를 길들이자는 독한 결심때문에 그새 한번도 발길을 안한건 알고있지만···

리상녀는 목수들 반찬감 걱정을 한참 하더니 뒤마을에 가서 고추장이라도 좀 얻어와야겠다면서 힝하니 밖으로 나갔다.

리상녀가 나간 뒤에 잠시 부엌바닥에 섰던 금실이는 부엌문을 빠끔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저편 양지바른 넓은 공지에 새끼줄을 이리저리 건네띄웠다. 목수들이 여기저기에 말뚝을 텅텅 내리박는다. 남편과 차응도가 멀지 않은곳에 서서 무엇인가 의논하고있었다. 칠판이요, 교과서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것으로 보아 학교일을 의논하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다가 두사람은 천천히 혁명위원회쪽으로 걸어갔다.

부엌문을 도로 닫고 부뚜막앞으로 돌아온 금실이는 감자부터 숭덩숭덩 썰어서 가마에 넣었다. 그리고는 쌀도 일어서 안쳤다. 금실이가 아궁에 섶나무를 꺾어넣는데 별안간 애들 셋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애들은 부엌문과 방문으로 달려들어오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방금 뒤말로 갔단다. 왜 그러니?》

《아주머니, 누나가 다쳤어요.》

한 아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뭐가 어째?》

금실이는 벌떡 일어섰다.

《누나가 나무에 치였어요.》

《나무에 어떻게 치였단말이냐?》

《나무통을 끌고 내려오다가 깔렸어요. 골이랑 어깨랑 맞아서 피가 흐르구 일어나지 못해요.》

《아이구, 이 일을 어쩌니?》

《숨도 쉬지 않아요.》

《뭐 숨기가 없어?》

애들이 저마끔 떠들어댔다. 금실이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했다. 애들의 소리가 종잡을수 없는 소리같긴 했으나 그냥 어머니를 기다리고 앉아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애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나갔다. 집터에 있는 목수들께라도 알리려고 했는데 그들도 일감을 벌려놓은채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나무를 찍는데가 여기서 머냐?》

《멀어요. 오늘은 좋은 나무를 찍느라고 먼데 갔어요.》

애들이 앞서서 주먹을 쥐고 뛰였다. 금실이도 달음박질을 했다. 애들은 산굽이를 돌아 시내물을 건너서도 골짜기로 자꾸 뛰여들어갔다.

《얘들아, 아직두 머냐?》

《멀어요. 헹, 아주머닌 다리두 긴게 우리만치 못뛰네.》

《정말이야.》

애들의 뒤를 따르는 금실이는 숨이 턱에 닿아 달리였다. 제발 아무 불상사가 없기를 바랐다. 여기 와서 김정숙동무가 어떤 녀자라는것을 하루하루 더 잘 알게도 됐는데 그 똑똑한 처녀가 이 산속에 와서 나무에 치워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가. 아무리 불행이란들 이렇게 가혹할수야 있을가.

어쩐지 그 불행이 자기의 배틀어진 성미때문에 빚어진것만 같아 더 가슴이 죄였다.

발앞에서 또 개울물이 굽이쳤다. 그는 급하게 물을 차고 건너갔다. 바위에 부딪치는 물이 물거품을 얼굴에까지 쥐여뿌렸다. 개울을 건너 또 한참 걸어서야 애들이 끓는 산비탈에 이르렀다.

새가 우거진 비탈인데 애들이 새숲속에서 바글바글 끓었다. 산꼭대기에서 찍은 나무를 새밭으로 굴려내리는지 큰 통나무가 새를 쓸어눕히며 데굴데굴 굴러내려오는것이 보인다. 금실이는 새무데기를 헤치며 올라가다가 뜻밖에 김정숙동지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오는바람에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얘들아, 나무통아래로 내려가지 말아라. 우에 서서 뚱기쳐 굴려라. 그쪽 비탈에 세로 선 나무통은 대가리를 돌려 가로눕혀라! 그래야 군다, 옳지 옳지···》

새밭속 높은 바위우에 김정숙동지께서 올라서서 나무통 굴리는걸 지휘하고계신다. 적삼이 피에 젖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바람에 모로 쓸리며 날았다. 금실이는 새무데기를 휘여잡고 서서 그저 입을 벌리고 올려다만 보았다. 방금 숨도 쉬지 않는다고 하던 정숙동무가 무슨 힘으로 저렇게 장수처럼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고있을가! 어쩐지 정숙이가 아니라 딴 사람같아도 보였다. 저 정숙동무가 잘못되면 어쩔가? 내가 어쩜 그런 방정맞은 생각을 했을가. 감히 저런 녀자한테 무슨 불행이 침범하겠는가.

금실이는 바위우에 계시는 김정숙동지를 향해 한발한발 새무지를 헤치며 올라갔다.

《바위틈에 낀 나무통은 여럿이 달려들어 뽑아라. 인수야, 너 그쪽으로 가거라!》

애들이 새밭속으로 몰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영차영차 힘쓰는 소리가 나더니 나무통 구는 소리가 우룩우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지휘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아직도 금실이가 비탈로 춰오르는걸 모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저쪽에 있는 아이들한테 대고 나무통이 굴지 않으면 힘을 합쳐 새무데기우로 밀라고 소리치시였다.

《아니, 피를 흘리면서 이건 무슨 일이야요? 애들이 나무통을 어련히 잘 굴려내리겠기에 그렇게 고함을 쳐요?》

바위곁에 다가간 금실이가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언니는 여길 어째서 왔어요?》

《애들이 급하게 달려왔기에 무슨 일인가싶어서 왔지.》

금실이는 애들이 하던 끔찍한 말을 차마 옮기지 못하고 조용히 이렇게 말하며 피가 내배인 김정숙동지의 다리를 떨리는 손으로 씻어주었다.

《어서 내려서요. 어떻게 다쳤기에 피가 이렇게 흘러요? 피를 막아야 할것 안야요?》

합숙으로 달려왔던 애들도 바위밑에 와 서서 누나더러 내려오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내려다보며 그저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잠간 서서 새밭에 널린 애들을 지켜보다가 바위우에서 내려오시였다. 금실이는 내려서시는 김정숙동지를 얼른 붙안았다. 적삼이 온통 피자박이 되였다.

《어디서 피가 나는지 피나는 상처부터 막아요.》

《괜찮아요, 머리와 잔등을 좀 맞았는데 인젠 피가 멎은것 같애요. 그 먼델 괜히 오지 않았어요?》

《아깐 누나가 죽었댔어.》

한 아이가 울음섞인 소리로 웨쳤다.

《어데 죽었댔니? 나무통이 치는바람에 까무라쳤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슬픔이 스민것 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시였다. 금실이는 어쩐지 김정숙동지께서 숙성해갈수록 올케의 모습을 닮아가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참동안 김정숙동지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어보았다. 잔등과 뒤머리가 손벽같이 부어올랐다. 아직은 피가 완전히 멎지 않았다.

《온 이런 상처를 가지구···》

《언니, 어서 내려가요. 오늘은 나무를 열대나 찍었는데 인젠 산밑에 죄다 굴려내려간것 같아요. 저걸 애들 힘으로 날라가야 할텐데···》

《무슨 소리야요? 피가 멎어야 걸을게 안야요?》

금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붙잡아안으려고 새를 휘여깔았다.

《그리구 인젠 합숙을 짓는데 애들 힘이 아니라두 돼요. 오늘부터 혁명위원회에서 목수 다섯이 와서 일을 시작했어요.》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커져서 금실이를 쳐다보시였다.

《오늘아침 회장이 목수들을 데리고 와서 둘은 재목을 다듬게 하고 셋은 산에 재목을 찍으러 보냈다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말없이 금실이의 얼굴만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시였다. 핼쑥해진 얼굴이 보일락말락 경련을 일으키였다. 그것이 점차 커지며 물결처럼 번져질것 같았으나 아무 내색없이 온 얼굴이 이어 잔잔해졌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줄 아는 숭엄한 품위가 얼른 비꼈다 사라지는것이였다.

《언니, 그렇지만 애들의 집을 짓는 일이야 어떻게 혁명위원회에다만 맡기겠어요. 애들의 힘도 이끌고 나서기만 하면 일을 이렇게 해낼수 있잖아요?》

《글쎄 어른들이 해주겠다는 일에 굳이 애들을 끌어넣고 고생시킬건 없다니까. 어서 앉아요. 아무것으로라도 피를 막아야지 그냥 이러구 섰겠어요.》

애들이 굽혀놓은 새우에 보드라운 노루자리도 한아름 뜯어다가 깔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권에 못이겨 노루자리우에 잠간 앉으시였다. 금실이는 피자박이 된 적삼잔등을 들고 상처를 고쳐 들여다보았다. 가슴이 아프고 손이 떨렸다.

그는 얼른 돌아앉아 행주치마를 풀어 쫙쫙 찢었다.

《언니, 뭘 그렇게 찢어요?》

《행주치마지.》

《행주치마는 왜 찢어요?》

《사람이 이렇게 됐는데 행주치마가 아까울가?》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적삼속으로 손을 넣어 어깨와 겨드랑이로 엇걸어 상처를 한참 동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상처가 몹시 아프시였다. 온 잔등이 쓰리고 아리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싸매주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얼굴 한번 이그러뜨리지 않고 흔연히 참으시였다.

앞에 있는 새숲이 와삭와삭 소리를 내더니 애들이 밀려올라왔다.

《누나!》

애들은 김정숙동지의 앞으로 나타나며 누나를 불렀다. 기송이와 인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누나를 마주보았다.

《왜들 여기 도루 올라왔어요?》

어느 애도 대꾸가 없었다.

《그래 나무통들을 죄다 밑바닥까지 굴려내려갔어요?》

《예.》

그제야 애들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다만 기송이만이 대답을 못하고 주먹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누난 인젠 괜찮어요. 아주머니까지 이렇게 와서 상처를 동여매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젠 빨리 내려가서 나무통들을 메고갈 준비를 해야 돼요.》

《준비를 했어요. 그새 철이와 기송이가 칡줄도 다 끊어왔어요.》

《철이가?》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쯤 뒤에 서있는 철이를 찾아보시였다. 그 장난꾸러기 역시 키큰 애의 옆에 눈물이 글썽해서있다.

《철이!》

철이는 대답이 없이 목을 꼬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울면 못써요. 앞으로 총을 메고 왜놈과 싸우겠다는 철이가 맘이 약하게 울면 돼요.》

《누나, 그렇지만 철이도 누나 얼굴이 불쌍해서 울어요.》

딴 아이가 말했다.

《내 얼굴이 뭐 불쌍한게 있어?》

《누난 거울이 없으니까 그렇지 집에 가서 거울을 좀 보려무나.》

이번엔 기송이가 울며 소리쳤다.

《넌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피를 좀 흘렸다고 뭐 불쌍해? 인수, 어서 빨리 애들을 데리고 내려가요. 한번 정신이 들게 구령을 쳐요.》

인수는 쭈밋거리며 그도 눈물을 씻었다.

《왜 그리구 섰어요? 어서 애들을 데리고 내려가라는데두···》

인수는 마지못해 애들을 향해 돌아섰다.

《모두 뒤로 돌앗!》

인수의 구령소리에 애들이 뒤로 돌아섰다. 요새 인수를 반장으로 내세웠더니 애들이 그 애의 말에 제법 잘 복종했다.

《앞으로 갓!》

애들은 새숲을 헤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내려가더니 우야 소리가 일어나며 경주가 시작되였다.

그제야 김정숙동지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뒤에 앉아 머리의 상처를 동이는 금실이도 말없이 아래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었다.

이날밤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곁에 누워서 밤새 자기를 《배라먹을년》이라고 욕했다. 도대체 이런 처녀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가. 어떻게 그처럼 강의하고 부드럽고 영특할수 있을가. 이런 녀자야 이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기로니 그 무슨 일인들 못해낼것인가.

금실이는 낮에 산에서 본 그 모습에도 충격이 컸지만 다르게도 가슴 찔리는 일이 있다. 아니 가슴이 찔리울뿐만아니라 지금도 얼굴이 확 달아올라 견딜수 없다. 그 조그만 검은 천으로 싼 보짐이 자기의 량심을 이토록 아프게 침질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낮에 김정숙동지를 부축해가지고 와서 피자박이 된 옷을 갈아입히려고 그이의 보짐을 푸니 거기엔 옷도 아무것도 없었다. 쓰던 공책들과 소책자 다섯책, 연필 두자루, 바늘이 꽂힌 실패 그리고 그 무엇때문에 그런걸 보짐에 싸두었는지 끝이 닳고 우그러든 숟가락 한개가 들어있었다. 아마 불탄 부암집에서 파낸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자기 어머니의 숟가락이나 아닌지···

《그건 무엇때문에 풀어보우? 그 보짐은 공부보따리라우.》

리상녀가 눈물을 씻으며 하는 소리에 금실이는 얼굴이 붉어져 보짐을 도로 쌌다. 그래도 리상녀의 보짐속에서 소매와 앞섶을 기운 겹저고리가 나와서 피자박이 된 적삼을 갈아입혔다. 겹저고리는 품도 크고 소매도 길었다. 리상녀는 긴 소매를 걷어올려주며 코물을 삼키며 울었다.

금실이는 지금 그 《공부보따리》와 자기의 보짐을 놓고도 생각해보았다. 공책과 소책자 그리고 끝이 닳고 우그러든 숟가락이 떠오르는가 하면 화장품함과 수놓은 책상보, 남편의 양복저고리따위, 태봉시에 나가서 눈에 걸리는대로 사둔 물건들이 떠오른다.

(배라먹을것, 소부르죠아지! 내따위가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이 야단일가. 이따위니까 남편이 절 못잊어 따라왔는데도 도끼눈질을 하며 왕벌의 치로 찌르듯하지···)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험한 손을 그러쥐고 눈물을 꼭꼭 짜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