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2

 

제 8 장

2

 

금실이는 언제나 남편이 돌아올가 해서 손바닥만한 창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다가 문득 거기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호-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포동포동하던 볼이 홀쪽해지고 눈가장도 까칠해졌다. 신색이 이렇게 되니 눈언저리로는 보이지 않던 기미도 다닥다닥 드러났다. 그는 저도모르게 분기가 치밀었다. 태봉시에서 제일 크다는 밥집부엌에 들어가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앞이 아찔해진다. 예순도 넘는 광부들의 끼니를 아낙네 둘이서 해대야 하는데 그나마 아낙네 하나는 생손까지 앓아서 며칠동안은 그 엄청난 신역을 혼자서 치렀다.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자부터 그릇사태, 구정물사태 속에서 허우적여야 했다. 그런가위에 주인마누라년의 눈총은 장 뒤통수에 붙어다녔다. 고양이같이 생긴년은 일을 굼벵이같이 한다고 몰아치는가 하면 광부들 밥그릇에 밥낟가리를 가린다고 지청구가 심했다. 어느 밥집에선가 부녀회에 든 일이 발각된 다음부터는 아낙네년도 주인놈도 자기네 부엌데기들 뒤에도 공산당줄이 달려있지 않는가 해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했다. 그러는통에 이 밥집의 조직책임자가 어느 덕대의 첩년이 집에 자주 다니며 무슨 수작을 하는가고 알아보아달라는것도 번마다 다 해내지 못했고 련락임무도 어떤 때는 제 시간에 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김기준동지를 만났다. 김기준동지는 자기가 밥집일에 무척 힘들어한다는것을 조직을 통해서 이미 료해하고있었던것 같다. 그는 여러가지로 위로를 하더니 희섭동무가 근거지에 가서 혼자 고생을 할수 있으니 차라리 거기 가서 함께 일하는편이 어떻겠는가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삼엄한 경계속에서 지하사업을 하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김기준동지의 그 말이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인사말로라도 그냥 있겠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제 마음속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버렸다.

《정말, 내가 소부르죠아지는 소부르죠아지인 모양이야. 김기준동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가? 그래서 저 뚝한 량반이 나보고 눈을 흘기는거지. 정말··· 난···》

금실이는 혼자 중얼대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남편이 어쩜 이렇게 조용한데 와있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청지부사무실이라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람이 괴지 않으니 좋았다.

널직한 방안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났다.

이러는데 주인아낙네가 사이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선생님을 기다리시우. 우린 큰벌로 갈을 나갑니다.》

《그래요? 아유, 얼마나 수고를 하시겠어요. 저도 함께 나갔으면 좋겠는데 바깥어른을 만나야 하겠기에···》

《그럼요, 어제밤 찾아오셨다니 만나보셔야지요. 쯧쯧, 태봉시가 어디게 거기서 여기로 혼자 오셨을가?》

금실이는 서둘러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정지방엔 주인아낙네말고도 중촌지역아낙네들 둘이 가을 나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모두 새끼로 뜬 그물망태를 메고 시퍼렇게 간 낫가락들을 들었다.

《어쩜 전쟁판에나 나가는것 같군요.》

《큰벌이 전쟁판이지 전쟁판 아니겠어요?》

중촌의 아낙네 하나가 금실이의 말을 받았다.

《가을이 거의 됐어요?》

《한 절반 베였을거야요.》

《아유, 그럼 그걸 언제 다 베나?》

《베는게 무슨 걱정이겠소. 겨우내 베여먹을게 있으면 더 좋을 일이지.》

《하긴 그렇죠.》

아낙네들은 모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상고개쪽에선 콩볶듯하는 총소리가 울려왔다.

《륙실할놈들, 벌써 왔구나!》

《우리가 늦은것 같애요. 개안촌아낙네들은 아까 벌써 남정네들과 같이 강을 건너와서 큰벌로 나갔어요.》

아낙네들은 이런 소리를 하며 서둘러 사립문밖으로 나갔다. 손에 든 낫가락들이 해빛에 정말 무슨 무기처럼 번쩍거린다.

금실이는 호젓해진 방안에서 책상으로 다가가 책들을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큰 공책이 있기에 펼쳐보니 거기엔 남편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무얼 써놓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휘갈겨놓은 글씨였다.

금실이는 빙그레 웃으며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러는데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남편의 발자국소리였다.

금실이는 얼른 책상앞에서 물러나 보짐이 있는 곁에 가앉았다.

남편은 들어오자바람으로 책상앞에 들어앉아서 담배를 꺼내 붙여물고 후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금실은 엉거주춤히 일어서다가 도로 주저앉아서 남편의 눈치만 살폈다. 금실에게는 남편이 내뿜는것이 담배연기가 아니라 무슨 속이 타는 불김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남편의 맘은 편안치 않은것이 분명하였다.

담배대가 절반이나 하얀 재가 되도록 말이 없던 남편이 고개를 이편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정말 불김같은 한숨을 후유 내뿜었다. 그 한숨소리에 금실이는 가슴이 좁아드는것 같았다. 인제 벼락이 터질것이다. 남편이 벼락을 치는 경우는 여러가지이지만 떠들다가 치는 벼락보다도 이렇게 잔뜩 갈앉았다가 내리치는 벼락이 드문 대신에 더 무서웠다.

《당신이 누구에게 응석을 부려가지고 여기로 들어왔는가 하는것은 듣지 않아도 뻔하오.》

뜻밖에도 남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금실은 오히려 어리둥절하여 남편을 바라보았다. 벼락은 터지지 않았으나 남편은 보기 드물게 심각한 그리고 몹시 실망한 표정이였다. 금실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당신이 맡은 초소가 무엇이 그렇게 어렵다구 지켜내지 못해서 기준동무한테 걱정을 끼쳤단말이요? 그래 그 무거운 혁명임무를 짊어진데다가 설음까지 잔뜩 안은 기준동무한테 무슨 부담을 한가지 덜어는 못줄망정 남편따라 근거지에 들어가겠다는 말이 쉽게 입밖으로 나간단말이요?》

금실이는 낯이 약간 붉어지며 고개를 숙이였다. 억울했다. 김기준동지에게 꼭 남편이 말한것처럼 그렇게 말한적은 없다. 그러나 금실은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 설음을 잔뜩 안은 김기준동무 운운하는 말에 가슴이 쿡 찔렸던것이다.

《그건 벌써 혁명을 하자는 립장이 못되오. 혁명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요? 힘이 들면 좀 편한데는 없을가 하고 두리번거리는 거기에 바로 소부르죠아사상이 있단말이요. 그 타기할놈의 사상이, 응?》

희섭이의 어조는 격해졌다. 늘 안해에게서 못마땅한것이 이것이였다. 말은 흔연하면서도 행동은 말같지 않은것, 행동의 이모저모에서 풍기는 소시민적인것, 어떤 때는 자기자신의 소부르죠아인테리의 누데기조각을 비쳐주는 거울같은 존재이기도 하기때문에 더욱 역겨웠다.

《지금 이 문밖에선 혁명때문에 피를 흘리고있소. 글 한자 모르는 녀자들이 밤과 낮이 없이 상고개밑에 나가서 가을을 하다간 적탄에 맞아서 죽기도 하오···》

《당신은 너무해요. 나라구 뭐 여기 친정나들이라두 온줄 알아요? 나더러 상고개밑에 나가서 가을을 하라면 못할것 같아서 그래요? 내 머리속에 소부르죠아사상이 있는것은 사실이예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해요. 어쩜 비속을 걸어 찾아온 사람을 이처럼 공박해요?》

금실이는 가슴속에 동이 막혔던 억울하고 야속한 정을 비로소 터뜨렸다. 여느때같으면 이보다 훨씬 못한 잘못을 저질러도 찍소리 없이 숙어들었겠지만 무엇때문엔지 자기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남편에게 더 야릇한 반발심이 솟구치는것이였다.

희섭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담배를 빨았다. 안해의 말이 어쩐지 자기의 아픈 구석을 면바로 찌른듯싶기도 했다. 어디 가서 해볼데가 없으면 의례 안해에게 화풀이를 하던것도 사실이였다. 그 부당한 폭언들을 안해는 단지 안해라는 자기 처지때문에 감수해왔다. 그런 안해더러 갑자기 세련되고 자각적인 혁명가로 되라는것은 지내 억지인듯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언제 그런걸 돌아보게 됐는가. 저 대문바위너머에서는 지금도 총소리가 자지러지고 근거지를 지키기 위한 피투성이싸움이 벌어지고있다. 기왕 들어온바에는 첫자국부터 신을 단단히 신겨야 한다.

《혁명하러 왔다니 그럼 좋소. 나를 따라 일어서오!》

불쑥 희섭이가 담배불을 끄고 일어서며 하는 소리였다.

《어쩌자는거예요?》

금실이는 남편의 잡도리가 심상치 않은것 같아 치떠보며 물었다. 그의 눈에도 무엇인가 세찬 빛이 번쩍하였다.

《말은 뒀다 하고 큰벌에 나가서 가을부터 하잔말요. 당신이나 나나 총알이 비발치듯하는데 나가서 좀 맛을 봐야 할것 같소. 밥집 부엌일이 힘든지 적탄밑에서 혁명을 지켜내는 일이 힘든지 한번 겪어보우.》

《나가요. 무섭지 않아요. 나두 총알이 왔다갔다하는데 나가서 가을할만한 결심은 가지고왔어요.》

금실이는 눈물을 떨구며 일어섰다. 그는 비녀를 뽑아 낭자를 고쳐 틀었다. 희섭이는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단단히 길을 들이자는 결심이였다.

안해도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노끈으론지 치마도 걷어올려 든든히 동였다. 그는 맘이 무섭게 토라지고 한편으로는 섧은 생각도 났다. 학교앞 버들방천에서 속삭일 때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얼마나 살뜰하던 사람인가, 그런데 서로 믿고 의지하지 않고는 정말 살아가기가 끔찍한 이 험악한 세월에 저를 믿고 여기까지 찬비를 맞으며 찾아온 사람을 이렇게 구박해야 옳은가. 금실이는 고생도 고생이지만 남편과 함께 있고싶었다. 남편과 함께라면 정말 적탄이 비발치는 속에라도 웃으며 달려나갈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 자기 심정을 털어놓을수 없는게 더 분하였다.

그러나 금실이는 강심을 먹고 맵짠 표정으로 신을 찾았다. 사실 겁이 없는 금실이는 적탄이 비발친다는 말로 자기를 위협하려는것 같은 남편이 우습기도 하였다.

《어서 가요.》

그는 신을 발끝에 걸치며 내쏘았다. 두사람은 사립문밖으로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 하루 애들을 데리고 구들돌을 모아들이시였다. 개울가를 뒤지다 못해 뒤산을 넘어가시니 깊은 골짜기에 넙적넙적한 큰돌이 많았다. 구들돌로 쓰기엔 크기도 하려니와 애들 힘으로 옮겨갈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건 돌벼락을 쳐서 까기도 하고 그 깬 돌도 애들이 두셋씩 패를 지어 소리를 지르며 맞들고 산마루를 넘어갔다.

오늘은 기송이도 철이도 열성이였다. 홍갑이도 맘이 내켜서 땀을 빨빨 흘리며 큰 애들과 짝이 되여 돌을 맞들고 올라갔다. 애들 마음이란 이렇게 단순해서 좋았다.

《얘들아, 덤비지 말어. 앞을 찬찬히 보구 걸어.》

《힝, 그까짓데 보잖으면 못올라가요. 난 눈 감구두 올라가겠어.》

김정숙동지께서 주의를 주시면 애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뽐냈다. 모두 신바람이 났다. 정말 눈을 감고 영차영차 소리를 지르며 올라가는 애들도 있다. 부암의 태호도 눈을 감고 뽐내며 올라가다가 발끝이 나무등걸에 걸리는 바람에 화닥닥 놀라서 눈을 떴다. 함께 맞들고 올라가던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깰수도 없는 큰 돌은 김정숙동지께서 머리우에 이여나르시였다. 돌을 머리우에 들어올릴 때는 애들이 두셋씩 달려들어 받들어올렸다. 그러면 김정숙동지께서는 풀똬리를 댄 정수리를 살짝 들이밀고는 받아서 이시였다. 받아이기 바쁘게 김정숙동지의 연약한 목은 새빨개지시였다.

《얘, 누나가 장수다.》

《무르팍에서 뻐적뻐적 소리두 나는것 같다.》

《우리두 머리에 이여볼가?》

《피, 네까짓게 중대가리에 어떻게 이겠니? 누난 머리태가 있으니까 이지.》

애들은 김정숙동지를 앞세워놓고는 떠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줄곧 김일성장군님 생각을 하시였다. 지금 이렇게 하는 일이 장군님께서 가르치시는 일이란 생각을 하면 힘이 부쩍 더 생기고 눈구석에서 눈물이 솟아나시였다.

장군님께선 지금 어느곳에 계실가? 아, 장군님! 장군님은 어느곳에 계실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물퍼붓듯하는 땀을 한손으로 씻으시였다.

집터엔 구들돌이 쌓이기 시작했다. 오늘 모아들이는 돌들은 이때까지 모아들인 돌들보다 갑절이나 컸다. 김정숙동지께서 여들이신 어떤 돌은 구들고래를 둘이나 덮을만치 넓고 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녁무렵이 되여도 일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였다. 그저 한시바삐 집을 지어서 애들이 한지잠을 자지 않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만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날이 어두워서야 애들에게 땔나무를 한단씩 해지우고 자신도 한임 해이고 산에서 내려오시였다. 하긴 구들돌보다 더 급한게 땔나무이기도 했다.

합숙에 온 애들은 지쳐서 나무단들을 털썩털썩 내려놓았다. 어떤 애는 맨땅에 다리를 쭉 뻗고앉아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자, 어서 일어나라. 힘들어두 빨리 저녁을 먹고 또 앞말로 가야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무단들을 쌓아놓으며 애들을 달래시였다.

《헹, 또 앞말루 가나?》

《그럼 앞말로 가지 않구. 여기서야 어데 잘데가 있니? 땅바닥이 이렇게 질척거리는데···》

《야, 정말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집이야 우리 손으로 지어야지.》

애들이 웅성거리는 마당으로 리상녀가 걸어나왔다.

《얘 정숙아, 방안에 손님이 왔다.》

《네? 손님이라니요?》

《희섭선생네 안에서 왔구나.》

《아니 금실언니가요?》

그러자 리상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는 신호로 옆구리를 꾹 찌른다. 그러더니 김정숙동지를 집터쪽으로 이끌고가서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글쎄 여기서 살겠다구 왔다는구나! 손포가 생겨서 좋긴 하다만 저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사니?》

《아이참, 어머니두, 자리가 좁으면 다리를 좀더 오그리고 자면 되잖아요. 그리구 지금 합숙식구가 거의 다 한지에서 자나 다름이 없는데 무슨 방이 좁다 어떻다 말씀을 하세요?》

《글쎄 그렇긴 하다만··· 난 어쩐지 촌때 벗은 녀자가 들어서니 걱정이 되는구나. 그리구 지금 들어서듯마듯 좋은 얼굴도 안하는구나!》

《어쨌게요?》

《혁명위원회에서 가라고 해서 왔다곤 하면서도 무슨 일이 언짢은지 이고온 보짐을 베고 누워서 한숨만 푹푹 짓지 않니? 》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없이 합숙마당쪽으로 걸어나가시였다. 방안으로 들어가시니 정말 금실이가 보짐을 베고 누워있었다.

《아이, 금실언니!》

그제야 금실이는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언니는 언제 상촌으로 왔어요?》

《어제밤에 들어왔어. 정숙동무가 고생을 하는군요.》

금실이는 파릿해진 얼굴에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얼굴엔 어두운 그늘이 비껴있었다.

《이때까지는 어데 있었게요?》

《태봉거리에 가있었지. 그런데 무슨 일을 그렇게 점도록 해요?》

《애들을 데리고 산에 갔댔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소문이 나지.》

《무슨 소문이예요?》

금실이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 남편이 자기를 이끌고 큰벌로 나가며 꾸짖던 소리가 생각나서 김정숙동지에 대해 느끼는 살뜰한 정도 터놓기가 거북하였다.

남편은 대문바위골짜기를 비살치듯 걸어나가며 인젠 다른데서도 배우지 말고 정숙동무한테 가서 혁명을 배우라고 했다.

《그 훌륭한 투사한테 가서 배우오. 코대를 높이고 아는체 말고 허심히 배워야 해. 그래야 혁명을 할수가 있소.》

이렇게 으르렁대던 남편이 어떻게 일을 꾸몄는지 가을하다가 저녁때 밭머리로 나서니 웬 사람이 와서 빨리 혁명위원회로 가라고 했다. 혁명위원회로 가니 바로 어제밤 자기를 맞아주던 그 회장이라는 유순하게 생긴 사람이 지금 아이들 합숙일에 손포가 부치니 거기 가서 김정숙동무의 일을 도우라고 했다. 그래서 정숙동무랑 리상녀랑 낯익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이리로 찾아온것이였다. 그러나 남편의 처사를 생각할 때 역시 속이 내려가지 않는것도 사실이였다. 그래서 그 알찌근한 감정이 눈길에, 말투에, 낯빛에 얼찐얼찐 내비치였다.

얼마후 방안으로는 애들이 저녁을 먹으려 들이밀렸다. 그것도 한꺼번엔 들어오지 못하고 어제밤 앞마을에 가서 잔 애들부터 한패씩 들어왔다. 애들은 한가운데 밥함지 놓을 자리를 내자니 무르팍들을 오그리고 들어앉아야 했다. 그통에 금실이는 뒤구석으로 밀려들어가 사지를 옴짝할수 없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가마뚜껑우에 있는 밥함지를 애들의 머리우로 들어다가 방가운데 놓아주시였다. 무슨 일때문에 금실언니는 저렇게 기가 죽었을가. 합숙방이 스산스러워 저러는것일가. 이런것이야 지금 상촌의 누구네 집이 안그럴가. 그러게 이렇게 사는걸 면해보자고 사람들이 애를 쓰며 뛰는것 아닌가. 이 합숙에서도 새 합숙을 지어보자고 꼬마들까지도 이렇게 하루종일 개미역사를 하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표정이 흐려있는 금실이를 보는것이 어쩐지 서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금실이가 편히 앉게 하느라고 그의 앞에 앉은 애들을 밥함지쪽으로 나앉으라고 했다.

《헹, 나앉으면 밥함지우에 올라앉게?》

《그럼, 밥함지를 이쪽으로 당기도록 너희들이 뒤로 좀 물러앉아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문앞쪽으로 앉은 애들을 뒤로 물러앉게 하며 밥함지를 잡아당기셨다. 그제야 금실이앞에 앉았던 꼬마가 밥함지를 따라나오며 금실이앞에 조금 자리를 내주었다.

《언니, 편안히 앉으세요.》

《난 괜찮어.》

역시 시들한 목소리였다.

한패가 먹고 나가자 다른 한패가 또 밀려들었다. 이번엔 애들이 몇명 더 많아서 다시금 금실이를 구석쪽에다 죄여밀고 들어앉아 밥을 먹었다.

금실이는 기가 차서 호 한숨을 지었다. 그가 보기에도 눈앞에 벌어진 생활이 한심해보였다. 이 숱한 애들이 먹기는 이렇게 먹는다치더라도 자기는 또 어떻게 자는가. 아무리 생각해야 부엌 한간과 좁은 방 한간인데 여기엔 애들을 세워서 몰아넣어도 다 몰아넣어낼것 같지 못하다.

금실이는 점점 더 남편이 하는 일이 노여워 참을수가 없었다. 제 안해는 이런데로 가라고 일을 꾸며놓고는 전 지금 공청지부사무실이란 넓다란 방에 틀고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있겠지···

금실이는 속이 울떡 뒤번져오르는것을 간신히 참아나갔다. 애들을 세축이나 끌어들여 먹이고나서야 조그만 개다리소반에 밥 세그릇과 찬그릇을 올려놓은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녀와 함께 금실이더러 저녁을 먹자고 하시였다.

《난 먹구싶지 않아요. 어서들 자셔요.》

《언니, 왜 그렇게 기분이 없어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조심스레 물으시였다.

《내가 뭐 기분이 없어하는게 있어요? 그저 본시 생긴 그대로지.》

《아이참···》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가 꼭 아이들때문에 그러는것만 같아 안타까우시였다.

《어서 오라구. 종일 큰벌에 나가서 가을을 했다면서 먹구싶지 않다는건 무슨 소리요? 무슨 일이 언짢은지 언짢은 일이 있으면 말두 하구. 우리끼리야 무슨 담벽을 두고 지낸단말이요. 부암에서 함께 불더미를 헤치고 살아온것들이···》

《언니, 빨리 상머리로 와요. 금실언니가 안자시면 나두 숟가락을 못들겠어요. 난 금실언니가 왔기때문에 이렇게두 기쁜데 언니는 왜 심란해해요?》

리상녀의 말끝에 김정숙동지께서 또 이렇게 덧붙이시였다. 그리고는 금실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이끄시였다.

《어서 나앉아서 함께 들어요. 우리가 어떻게 부암에서 겪은 일을 잊겠어요. 인젠 영영 못만날 사람들두 많은데 우린 그래두 살았기에 이렇게 만나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그 소리엔 금실이도 가슴이 찔리였다. 그자신도 속눈섭밖으로 눈물방울이 밀려나와 그걸 감추느라고 얼른 눈덕을 깔았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있는가 하면 살뜰한 인정에 빠지는것 같은 고마움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의 옆에 있는 보짐을 빼앗아 시렁우에 얹으시였다. 그리고는 상에 있는 밥그릇의 뚜껑도 열어주고 숟가락도 바로 놓아주시였다.

그제야 금실이도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며 밥상으로 다가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속이 큰 리상녀도 방금 김정숙동지께서 하신 부암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큰 눈에 눈물이 듬뿍해 앉아서 숟가락질만 했다.

저녁을 치른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마당에서 앞마을로 나갈 애들을 정렬해 세우시였다.

《오늘밤에도 어제밤 가서 자던 그 집으로 가는데 떠들면 안돼요. 헛간이 추워두 춥다는 소리를 하면 안돼요.》

《오늘밤엔 화로불을 안주나요?》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렬을 지어선 애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물었다.

《땔나무가 어데 있게 매일밤 공불을 때서 화로불을 주겠어요? 우린 헛간이라도 자라고 빌려주는걸 고맙다고 생각해야 돼요.》

《누나, 그 집 어머니가 정말 고마와요. 어제밤에도 애들이 추워한다고 홑이불을 내다가 덮어줬어요.》

《그까짓거 내다가 덮어주면 뭘해? 덕호가 죄다 빼앗아 덮었는걸···》

《죽겠니? 내가 언제 죄다 빼앗아 덮었니?》

《너 그럼 뺏어덮지 않았니? 홍갑의 배우의걸 벗겨가지 않았니?》

《그만 조용해요. 왜 하불을 내다가 덮어주면 골고루 덮구 자겠지 혼자 빼앗아다 덮어요? 그런 욕심꾸러기는 앞으로 학교에두 못들고 소선대에두 못들고 총두 못메요.》

《헹, 잘코사니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왁작 끓어대는 애들을 데리고 앞벌을 향해 걸어나가시였다. 벌써 은대야같은 가을달이 들판을 푸르게 적셨다. 방구석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금실이는 공연히 안절부절 못해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어째 옹졸하고 용렬하고 보잘나위 없는 자기 세계에 정숙동무가 세찬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가는것 같았다. 어쩐지 정말 남편의 말을 부정할 힘이 꺾이는것도 같았다. 그는 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