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제 7 장

4

 

기송이와 철이는 합숙부엌구석의 섶나무우에 허리를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둘이는 연방 큰숨을 내쉬군했다. 기송이는 애들이 지나다니며 발을 건드려도 꿈쩍을 않고있지만 철이는 누가 다리나 발을 건드리기만 하면 탁 내차군했다. 그러다가 그는 부엌바닥으로 지나가는 리상녀의 짚세기끝이 약간 와닿는바람에 어머니의 다리를 발로 내찼다.

《어이쿠, 이녀석 봐라. 어데다 다리질이냐? 마방에서 자랐니?》

리상녀는 등을 꼬부리고 누워있는 철이의 엉덩판을 쾅쾅 두드려댔다.

《헹···》

《헹이 뭐냐, 이녀석, 밥해먹이구 시중들어주니까 은혜를 갚느라고 발길질이냐?》

철이는 그담엔 대꾸가 없다. 그는 애들이 부끄러운지 얼굴은 들지 않는다. 방안에 가득 앉아있는 애들이 내려다보며 싱긋벙긋 웃는다. 구석쪽에 앉아있는 꼬마가 어머니에게 방치를 들어보이며 달라느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그러는것을 곁에 있던 애가 주먹으로 꾹 찌르며 방치를 빼앗았다.

《이놈의 자식들, 그렇게 심술을 부리면 누가 무서워할줄 아니? 어데 굶어서 얼마나 견디나 보자! 기송이 넌 이 말썽꾸레기를 닮느라고 밥을 안먹냐? 어디 보자, 인제 애들을 데리고 앞말로 간 누나가 돌아오면 회의를 더하라고 해야겠다. 끼니가 원쑤게 밥을 안먹니?》

리상녀는 으름장을 놓으며 콩이 담긴 버치를 힝 들어서 방안에 앉아있는 애들에게 올려밀었다.

《옜다, 이것 좀 받아라.》

《어머니, 비지 해주겠어요?》

《그럼, 비지 해주고말고··· 말 잘 듣는 애들이야 등을 두드려가며 별걸 다 해주지, 이런 심술데기들한텐 누룽지도 안긁어주겠지만···》

어머니는 애들에게 눈을 끔뻑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애들은 콩담긴 버치를 받아놓고는 함지를 내놓는다 매돌을 함지속에 들여놓는다 하며 법석을 했다.

사실 기송이와 철이는 저녁도 못먹었다. 아니 저녁뿐만아니라 점심들도 굶었다. 낮에 큰벌에서 돌아오자 이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죄다 마당에 모여앉히고 회의를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이 기송이, 철이, 홍갑이를 비판하도록 부추기면서 회의를 이끌어나가시였다. 첨엔 애들이 철이를 나쁜 애라고 갈가마귀떼 같이 떠들며 들고일어났다. 그러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는 꽉 누르며 오늘 일에서 제일 나쁜것은 기송이라고 하시였다.

《기송이가 어째서 제일 나쁜가? 내가 오늘아침 나무 베러 떠나면서 기송이한테 애들과 함께 구들돌을 주어모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기송이는 철이와 홍갑이가 큰벌로 내빼는줄도 모르고있지 않았어요? 이게 첫째로 나빠요. 그담 또 하나 나쁜건 철이와 홍갑이를 데리러 큰벌로 나갔으면 그 애들을 데리고 들어와야지 제가 앞장에 서서 애들을 끌고 총쏘는데로 찾아다녔으니까 얼마나 나빠요? 그렇기때문에 철이가 제일 나쁜게 아니라 기송이가 제일 나빠요.》

그 소리에 인수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자기 의견을 말하려고 나섰다. 그러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끔뻑해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자기 동생을 더 아프게 비판하고 철이를 비판해야 철이가 애들 소리를 뼈저리게 들을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것이였다.

애들은 한참동안 기송이를 나쁘다고 비판했다. 오늘 일이 나쁘다는 소리만 하는것이 아니라 구들돌 나를 때 땅에 박힌 큰 돌을 뽑는데 도와주지 않았다느니 씨름할 때 남의 허리띠를 뺏어 샅바를 만들었다느니 나팔을 혼자만 분다느니 별별 소리가 다 쏟아져나왔다.

기송이는 밸이 불끈불끈 치밀지만 머리를 떨구고앉아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회의는 처음 겪어보았다. 부암에서 하던 회의는 여기에다 대면 정말 회의같지를 않았다. 이건 애들이 많아서 그런지 큰 보짱같은것이 꽉 짓누르는것 같고 죄다 틀려먹은 소리같긴 한데 들고일어나 윽박아놓을수가 없었다. 그는 누나가 너무 아던정보던정 없이 자기를 남보다 더 모질게 대하는게 이상하게조차 느껴졌다. 죄다 억울하게만 생각되였다.

이렇게 기송이를 되게 비판해놓고야 철이에 대한 비판이 벌어졌다. 첨부터 철이를 노려보고 앉아있던 인수가 들고일어나 불같은 말을 쏟아부었다.

《난 철이가 제일 나쁜 애라고 생각해요. 누난 철이가 기송이보다 나쁘지 않다구 하지만 난 철이가 기송이보다 더 나쁜 애라구 생각해요.》

《비판을 그렇게 하면 안돼요. 기송이가 잘못한것은 기송이가 잘못한것이니까 그것은 그것대로 비판하고 또 철이가 잘못한것이 있으니까 그것도 비판하고 그렇게 해야 해요. 철이가 잘못했다고 해서 기송이의 잘못이 없어질수는 없어요. 어쨌든 제일 나쁜것은 기송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철이의 훈수를 들어주시였다.

《씨, 날 막 놀리네.》

철이는 제 발가락을 비틀며 얼굴이 시뻘개서 두덜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속에 저대로 깊은 생각이 들어앉아있는줄은 모르고 철이를 그런 방법으로 교양하자고 한게 잘못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는 벌써 자기가 제일 나쁜 애라는것을 알고있다. 이걸 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에게서 잘못을 고칠수 있는 싹을 보신게 무척도 기쁘시였다.

《우리 합숙에 온 날부터 말썽을 부린게 누구야요? 그게 철이와 홍갑이 아니야요? 너 여기 오는 날 밤 강가로 내빼서 감자를 구워먹었지?》

인수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너 남의 감자는 왜 자꾸 캐다가 구워먹니? 너더러 캐다가 구워먹으라고 농사를 지어놨니?》

《그 감자밭에서 나만 캐다가 궈먹었니? 넌 그 감자밭 감자 안먹었니? 너두 주먹같은걸 까들고 앉아 훌훌 불며 잘만 먹더구나.》

《뭐야!···》

인수는 주먹으로 치기라도 할듯이 철이를 노려보다가 또 후들후들하며 말을 이었다.

《너 나보구 뭐라구 말했니? 갈미봉밑 곰골에서 홍갑이네와 앞뒤집에서 살며 숱한 고생을 했다고 했지? 너희네두 부대를 파먹구 홍갑이네두 부대를 파먹구··· 그런데 왜놈들이 달려들어 집에 불놓구 너의 아버지, 어머니도 죽이고 홍갑이네 아버지, 어머니도 죽이는바람에 홍갑이와 둘이 이리저리 뛰여다니며 엄마, 아빠를 불렀다고 했지? 그리구 또 넌 너네 네살먹은 어린 동생이 불속에서 타는걸 보고는 개구장으로 굴러들어가 진탕을 두드리며 엉엉 울었다고 했지?》

《씨, 별소리 다 한다.》

철이는 얼굴이 점점 더 시뻘개져서 발가락들을 비틀었다. 그는 숨이 차서 씩씩거렸다.

《철이야, 너 바로앉지 못하겠니? 발가락은 왜 자꾸 비틀어? 인수의 말이 뭐가 잘못된게 있니?》

김정숙동지께서 정색을 하시며 꾸짖으시였다.

《너 그렇게 하구 곰골을 떠나온 애가 왜 그따위 짓을 해? 그래 여기 와서 사는게 월평거리랑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던것만 못하니? 너 나보구 앞으로는 유격대에 들어가 총을 메구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를 갚겠다는 소리도 했지? 너 그런게 왜 그 모양이냐?》

《유격대에 들어가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갚을 생각도 했다면 합숙생활도 잘해야지.》

인수의 말끝에 김정숙동지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이 합숙이란게 애들이 모여들어 장난질 하는데가 아니잖아요? 여기는 무슨 말이나 조직에서 시키는대로 잘 듣구 규률을 잘 지키구 앞으로 학교가 열리면 학교에 들어가 글두 잘 배우고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지합숙이예요. 왜놈들한테 아버지, 어머니가 희생되고 동생이 죽고 했다면 그 피눈물나는 일을 한시도 잊지 말고 원쑤갚을 생각을 해야 할것 아니예요.》

《씨, 내가 그 생각을 안하나뭐. 난 지금이라도 총만 있다면 왜놈을 쏠테야.》

그 소리에 애들이 네까짓게 무슨 총을 쏘겠느냐고 들고일어났다.

《모두 좀 조용히들 해요. 인제 인수는 그만치 이야기하고 다른 애들이 한사람씩 일어서서 철이에 대해 말을 좀 해봐요!》

애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섰다. 모두 윽윽하며 철이의 잘못을 속속들이 발가냈다. 김정숙동지께서 가끔 그 말이 옳다느니 나도 그런걸 봤다느니 하시며 부추겨주자 더욱 신바람들이 났다. 멱을 감을 때 애들의 귀에 물을 처넣었다느니 벗어놓은 옷에 발을 문댔다느니 홍갑이와 둘이 뒤마을 누구네 배를 도적질해 먹었다느니 하는 별별 죄상이 다 드러났다. 제일 꼬마둥이인 하촌 리상준의 조카애 태국이는 흘러내려간 중이괴춤을 춰올리며 일어서더니 철이와 홍갑이는 하촌에 와있을 때 남의 집 헛간 지붕우로 발발 기여올라가 호박넝쿨속에 엎드려 호박이란 호박을 죄다 칼로 오렸다고 했다.

《헝, 맹꽁이, 그건 구장네 호박이야.》

《구장네 호박은 그렇게 하라디?》

《그럼 구장네 호박두 그렇게 하면 안돼? 구장이 뭐 좋은 사람이냐?》

철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태국이한테 덤벼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하셨다. 가슴에 못박힌 어린것의 원한이 번개불처럼 보이시였다. 어찌 이 어린것을 장난이 험하다고만 꾸짖겠는가. 그 장난속엔 무서운 복수심도 깔려있다. 바로 이 싹을 옳게 길러야 한다.

애들은 철이를 비판한 다음에는 홍갑이를 또 나쁘다고 비판했다. 홍갑이는 종시 울음이 터졌다. 애들은 울거나말거나 홍갑이를 철이의 그림자라느니 심부름군이라느니 하고 떠들어대며 비판했다.

어쨌든 오늘 셋은 된매를 맞았다. 그래서 철이와 기송이는 지금 기가 죽어서 부엌구석의 섶나무우에 쭈그리고 누워있다.

기송이는 지금 두눈을 끔뻑끔뻑하며 자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자기가 어째서 그렇게 되였는지 알수가 없었다. 큰벌로 나갔을 때 철이의 말을 듣고 괜히 맘이 들썽거려서 뛰였다. 철이는 자기 귀에 대고 유격대가 왜놈을 쏘아넘기면 빨리 뛰여가 그놈들이 가진 총을 빼앗아보자고 했다. 들어보니 비슷한 소리였다. 총을 빼앗아 한자루씩 메기만 하면 자기네들도 왜놈을 쏘아죽일수 있을것 같았다. 총, 총이면 그만 아닌가. 곤봉과 칼따위가 다 무언가. 애들도 죄다 총을 메기만 하면 유격대나 적위대처럼 전투를 할수 있지 않겠는가. 도리여 어른들보다 몸이 작아 땅에 붙어 살살 기며 왜놈을 더 잘 쏴죽일수도 있다. 이런 흥분에 사로잡혀 오늘의 일을 저질렀다. 기송이는 아무리 생각해야 이것이 잘못된 일 같지 않았다. 누나는 덮어놓고 애들을 휘동해가지고 위험한곳으로 갔다고 꾸중을 하는데 그럼 뭐 총 빼앗는데 위험한곳으로 가지 않고 어떻게 빼앗는가. 차라리 회의를 할 때 우리는 총 빼앗으러 갔다고 뻣뻣이 말할걸 그러지 않았는가. 기송이는 혼자 별생각을 다했다. 곁에서 철이가 씩하고 뒤쳐눕는다. 기송이는 마주 돌아누우며 철이의 코를 비틀어주고싶었다. 낮에 철이와 둘이 휩쓸리긴 했으나 철이가 밉다는 생각은 지금도 불끈불끈 솟았다. 이자식은 뭣때문에 밤낮 홍갑이를 끌고다니며 나쁜 장난만 할가? 기송이는 철이를 한번 단단히 윽박아주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방안에선 리상녀가 애들속에 앉아 망질을 했다. 저녁에 혁명위원회에서 수수를 타올 때 량식책임자가 큰벌에서 걷어들여온 콩도 한단 내주어서 이고 왔는데 래일아침엔 애들이 비지를 배불리 먹을수 있지 않을가싶어 맘이 무척 훈훈해졌다. 애들이 저마끔 리상녀를 돕겠다고 망에 달라붙었다. 세넷이 짧은 팔로 망자루를 쥐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하며 망을 돌리였다.

《어머니, 빨리 콩을 퍼넣어요.》

《팔을 좀 들어라, 매돌구멍이 안뵈는구나!》

《싫어요. 팔을 들다간 망자루를 놓쳐요.》

《망자루를 놓친다구 빈 망을 돌리겠니? 이녀석두 부엌구석에 누워있는 심술데기같구나.》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해해, 우리 어머니도 일해주니까 좋아하네.》

《정말이야. 저것봐, 눈귀에 주름살이 지며 자꾸만 웃지 않니?》

리상녀는 껄껄 웃었다. 어쩜 이녀석들이 이처럼 오장륙부를 간지럽힐가. 성재가 자라던 때 일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성재도 어릴 땐 꼭 이 말썽꾸레기들 같았다. 한번은 5월단오에 새옷을 해입혔는데 나가듯마듯 애들과 섭쓸려 뛰다가 논판에 빠져 흙물을 줄줄 흘리며 들어왔다.

《해해, 엄마, 나 멱감았어.》

어린것은 이러며 살짝 엄마눈치를 보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귀엽고 우스웠던가. 그래도 웃질 못하고 옷을 잡아벗기고는 볼기짝을 여러개 때려주었다. 아프게야 때렸을가? 그래도 어린것은 아갸갸 소리를 지르며 발가숭이가 되여 쫓겨달아났다. 그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흐르고 흐른 세월의 저편에서 확 날아와 안긴다. 이것들이 죄다 내 성재가 아닌가. 성재를 키우던 시중이 늙마에 더미로 쏟아졌으니 눈물속에서도 이렇게 기쁘질 않는가. 리상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얼마후 애들은 모두 얼기설기 쓰러졌다. 망에 달라붙었던 애들도 죄다 망함지옆에 쓰러져 잤다. 늘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것 같은 인수도 구석쪽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리상녀는 비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한참 망을 돌렸다. 그는 얼마후에야 비지감을 다 갈아 버치에 퍼담아 옮겨놓고 망과 망함지도 거두었다. 그리고는 엎치고덮친 애들속에서 꼬마 둘을 들어다가 망함지 놓았던 자리에 눕혔다. 어찌 곤하게 자는지 들어옮겨도 다리 하나 버둥거리지 못한다.

리상녀는 조용히 부엌으로 내려갔다. 김정숙동지께서 일러주시고 간대로 철이와 기송이의 분기가 삭았으면 저녁을 먹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부엌으로 내려온 리상녀는 웅크리고 누워있는 애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둘이 다 잠이 들었다. 손바닥을 귀밑에 붙이고 자는 기송이의 코허리엔 눈물이 젖어있었다. 그걸 보니 리상녀도 맘이 아팠다. 아마도 어머니생각을 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였다.

리상녀는 가마뚜껑을 열고 네개의 죽사발을 만져보았다. 가마안이 썰렁해져서 죽이 다 식었다. 심술데기 둘이 저녁을 안먹는 바람에 자기도 정숙이도 저녁을 건네였다. 앞마을로 간 정숙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릴수는 없고 애들에게 먼저 저녁을 먹여야겠는데 아무래도 식은걸 그대로 먹일수는 없었다.

리상녀는 가마뚜껑을 도로 닫고 아궁앞에 주저앉았다. 불을 좀 때자고 하는데 철이가 코숨을 내불며 몸을 웅크리였다.

《흥, 아직두 독을 쓰는구나! 독을 써야 네가 속았지 내가 속겠니? 어디 보자. 배가 쓰리지 않으면 한달이라도 눠있으렴.》

리상녀는 애들이 깰가봐 조심조심 불을 때자 했는데 자지도 않는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철이는 그다음엔 기척이 없다. 기송이도 깨긴 깼을터인데 그린듯이 웅크리고 누워있다. 리상녀는 나무를 밀어넣고 불을 붙였다,

얼마후 죽사발을 담가놓은 가마속의 물이 벌렁벌렁 끓었다. 이러는데 김정숙동지께서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걸어 돌아오셨다.

애들이 헛간에서 잠이 드는걸 보고는 합숙부엌에 쓰러져있는 기송이와 철이 생각을 하고 불이 난 걸음으로 돌아오신것이였다.

《쯧쯧, 네 고생이 막심하구나!》

리상녀는 얼른 일어서며 김정숙동지를 부엌아궁앞으로 끌어들였다. 삿갓을 얻어쓰고와서 옷은 그렇게 젖지 않았다.

《애들이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어요?》

《저녁이 다 뭐냐? 아직도 심술이 올라서 씩씩하고있단다. 내 아까 다리가 부러질번했다.》

《어째서요?》

《저 곰골 심술데기가 내 종아리를 어떻게 걷어찼게 그러니?》

《아이참···》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어머니에게 손을 저으시였다. 너무 꾸짖다간 또 심술을 부릴수 있으니 말을 그만두는게 좋겠다는 손짓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김이 확 떠올랐다.

《어머니, 죽사발에 물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물이 좀 들어가면 어떠냐? 죽이 훌거워졌으면 가마에 도루 쏟아붓고 졸이자꾸나!》

《호호호, 애들이 심술데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심술데기 같아요.》

《나두 그것들한테서 심술을 배웠단다.》

어머니도 웃고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끓는 가마속에서 죽사발들을 들어내시였다. 그리고는 웅크리고 누워있는 동생의 곁으로 가시였다.

《기송아!》

그이께서는 눈물흔적이 있는 동생의 코허리를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부르시였다. 기송이는 시뻘겋게 피줄이 얽힌 눈을 빠끔히 뜨다가 도로 감았다.

《기송아,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니? 네가 일어나 저녁을 먹어야 나두 저녁을 먹지, 그리구 어머니두 저녁을 자시구···》

그러자 기송이는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씽하고 일어났다. 그는 누나가 잔등의 짚검불을 털어주자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간다.

《아니 너 어디루 가니?》

《변소에 가.》

《호호호.》

《저녀석이 저녁 먹자고 일어난게 아니라 오줌 누자고 일어났구나.》

리상녀가 꾸짖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뒤손질로 꾹 찌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철이의 곁으로 다가가시였다.

《철이야, 일어나 저녁을 먹어야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를 흔들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철이는 그러기를 기다리기나 한듯 몸을 더 버쩍 오그리며 뒤흔들어댔다.

《철이야, 그러면 못써. 원쑤를 미워하는 애가 그러면 쓰나? 자, 어서 일어나자!》

그래도 철이는 두손을 샅에 점점 더 깊이 찌르며 몸을 똬리틀듯 꼬부리였다.

《가만있자,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고 이녀석 안됐다. 우리 합숙이 이녀석 하나 없다고 합숙구실을 못하겠니? 오늘밤엔 저 비오는 밖에다 들어내던지자.》

《어머니,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철이는 오늘 애들의 비판을 듣고 많은걸 생각했을거예요. 그리구 이제부턴 나쁜 일을 안하겠다고 맹세도 했을거예요. 그렇지, 철이?》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의 목밑으로 팔을 넣어 들어일으키시였다. 그러나 어떻게 힘을 쓰며 도사리는지 일으켜낼수가 없으시였다. 그러자 리상녀도 달려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샅에 낀 팔을 뽑아 잡아당기시고 리상녀는 잔등을 떠밀어올렸다.

《어이구, 이녀석 갖가지 재간이 다 있구나. 아깐 발길질을 하더니 이번엔 뒤골질이야.》

리상녀는 철이가 골질을 하는바람에 목을 젖히다가 낭자가 풀려내렸다. 밖에 나갔던 기송이가 들어오며 이 꼴을 보더니 철이에게 한개 맞겠느냐고 하며 덤벼들었다. 그러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 종아리를 때리며 물러서라고 하시였다. 부엌에서 이런 법석이 일어나는통에 방구석에서 자던 인수도 일어나앉아 내려다보았다.

《이녀석 또 누울가봐 겁이 나는구나. 끝이 삐죽한 창이라도 한 댓개 있었으면 좋겠다. 동서남북으로 뻗쳐놓게···》

리상녀의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음이 나는걸 겨우 참으시였다. 리상녀는 비녀를 잃어버리고 한참동안 섶나무를 뒤지며 찾았다.

얼마후에야 부엌바닥에 조그만 개다리소반이 놓이고 죽 네그릇을 갖다놓았다. 기송이는 잔말없이 대들어 죽을 퍼먹었다. 그러나 철이는 이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눈을 지릅뜨고 앉은 기상이 소반이라도 내찰것 같았다.

《먹겠니, 안먹겠니?》

리상녀가 한옆에 앉아 다그쳐물었다.

《어머니, 가만 좀 계셔요. 철이가 왜 안먹겠어요. 합숙에서 말을 잘 들어야 학교에도 들어가구··· 참 머지 않아 학교도 열린단다. 학교가 열리면 학교도 잘 다녀야 앞으로 소년선봉대에도 들구 그담에 유격대원이 되지. 너 유격대아저씨들 총메고 다니는걸 보았지? 너두 앞으로 그렇게 되라고 우리가 쌈싸우듯하며 말 잘 들으라고 하는거야.》

《씨···》

철이는 목을 비틀며 한마디 뱉었다. 확실히 총을 멘다는 소리에 무슨 움직임이 일어나는것 같다.

《우리 철이가 총을 잘 쏠테지, 총만 잘 쏘면 어릴 때 심술데기짓 한게야 무슨 큰일일가?》

리상녀가 좀 늦추며 북을 쳐주었다.

《철이가 총을 잘 쏘다뿐이겠어요. 아마 우리 합숙의 어느 아이 보다두 나을지 몰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돌같은 철이의 주먹을 들어올려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펴시였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억지로 쥐여주시였다. 그제야 철이는 눈을 지릅뜬채 죽그릇을 흘겨보며 숟가락질을 했다. 리상녀는 인젠 말을 말고 정숙이 너도 먹으라고 눈기질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의 죽 먹는 모양을 곁눈질해보며 그제야 숟가락을 드시였다. 하루종일 가슴을 긁던 일이 인제야 더운 죽과 함께 스르르 녹아내려가는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나서도 얼마후에야 자리를 보시였다. 방안엔 누울 자리가 없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바닥에 섶나무를 깔고 철이와 기송이 두 사이에 누우시였다.

리상녀도 불을 끄고 기송이 저편에 누웠다. 기송이와 철이는 인제 속이 내려간듯 이어 고르로운 숨소리를 내며 잠에 떨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손을 한손에 하나씩 더듬어쥐시였다. 괜히 눈물이 글썽해지시였다.

(정말 이렇게 하는것도 혁명일가! 희섭선생은 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갔을가! 그저 애들 일이라고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때문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