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

 

제 7 장

3

 

이날밤엔 이슬비가 내렸다. 쓸쓸한 비발이 대지를 축축히 적시였다. 이따금 찬바람이 휘 불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무란 나무는 후두두 비물을 떨구며 잎을 소란스럽게 훑어던졌다. 찬계절을 불러오느라고 이러는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혁명위원회 사무실에는 유격대와 적위대 책임자들은 물론 각 조직의 책임자들이 다 모여들어 김일성장군님께 갔다온 김봉석의 보고를 듣고있었다. 김봉석은 얼굴이 꺼멓게 탔다. 인젠 몸도 튼튼해져서 로동복을 걸친 몸집이 퉁실퉁실해뵈였다. 그는 몽강을 에돌아 량강구에까지 가서 장군님을 모시고 회의를 한 경로를 전달하며 여러번 검은 눈을 슴뻑거렸다. 가뜩 박여앉아 듣는 사람들도 김봉석이 그럴 때마다 가슴들이 찡 울리군했다. 김봉석은 량강구회의에서 토의된 반일통일전선문제를 한참 이야기하고나서는 장군님께서 각지의 근거지형편과 혁명조직들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주신 말씀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상촌에서 유격대를 뭇고 근거지를 꾸리는데는 이러저러하게 명확치 못한 문제들이 많았다. 무기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문제, 근거지를 지키며 적을 치는데서 나서는 전술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군사문제, 근거지내에서 군중조직을 뭇는 문제, 선전사업방향에 대한 문제, 적위대의 사명문제, 학교운영문제와 아동교양에 대한 문제, 이 허다한 문제들을 놓고 이렇게 해야 되느니 저렇게 해야 되느니 하며 론쟁도 많았다. 그런데 이 문제들이 김봉석이 전달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의해서 죄다 방향과 방법이 명백해졌다.

모두 열심히 기록했다. 차응도도 수첩에 큼직큼직하게 기록해나갔다.

《음, 이제야 눈앞이 환해지는군. 적위대 소대장동무, 군중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걸 똑똑히 기록해두라구. 우리 근거지일군들속엔 일부 좌경적편향이 있단말야. 다른 문제에 대해서두···》

차응도는 김봉석이 전달하는 내용을 다 받아쓰고나서는 좌중에다 한마디 이런 소리를 던졌다. 목이 길고 울대뼈가 나온 적위대 소대장은 공연히 몸을 움직이며 기침을 했다. 그는 언젠가 차응도를 보고 적구에서 올라온 군중을 어떻게 죄다 혁명군중으로 믿겠느냐고 하면서 그까짓 내가에서 자든 풀섶에서 자든 내버려두라고 한 일이 있다. 이게 지금 장군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아주 잘못된 소리다.

차응도의 말에 적위대 소대장 못지않게 강한 자극을 받는것은 희섭이였다. 그는 수가 깊은 차응도가 적위대 소대장을 걸어채며 침은 자기에게 놓는다는걸 알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이 며칠사이 여기서 벌어지는 생활을 목격하면서 은근히 자극을 받기도 했었는데 오늘밤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고보니 자기 생각이 아주 잘못됐다는것을 심각히 느꼈다. 자기는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로선과 방침을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지금 조선혁명을 어떻게 이끄신다는 그 전반적구상을 알게 되니 자기는 이때까지 혁명의 어느 한 귀퉁이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서 그야말로 몸부림을 쳤다는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차응도의 말이 옳다. 리성으로 굳어지기에는 이른 감정의 몸부림을 하고있은것 같았다. 그러기에 근거지인민들의 생활을 잘 돌보고 그들에게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며 그들에 의거해서 근거지를 튼튼히 꾸려야 한다는 장군님의 사상을 리해하지도 못했고 따라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같은것은 마치 오늘의 피투성이싸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처럼 여기기도 했다.

자기 역시 장군님의 근거지창설방침을 받들고 근거지를 튼튼히 꾸려야 한다고 뛰기도 하고 애를 쓰느라고 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유격전이란 본질에 있어서 광범한 인민대중에 의거해서만 승리할수 있는 인민전쟁이라는 장군님의 독창적인 사상과 원대한 구상에 대해 너무나 아는것이 없었다. 근거지를 군사적으로 튼튼히 꾸리는 문제 하나를 놓고보아도 우선 유격대를 강화하는것이 첫째 과업으로 나서지만 그와 함께 적위대같은 반군사조직도 믿음직하게 꾸리고 여기에 근거지안의 모든 인민의 힘을 동원하여 모두가 하나같이 근거지를 지키는 일에 달라붙어야 하는것이다. 그러자면 근거지를 찾아오는 인민들이 근거지를 자기의 목숨과 같이 귀중히 여기도록 해야 하는것이고 그들에게 자유와 권리를 줄뿐아니라 가능한 모든 힘을 다 동원하여 생활을 안착시켜주어야 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 밝히신 근거지창설방침을 옳게 관철하자면 병기창, 병원 같은것도 잘 갖추어놓아야 하며 아이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조직적으로 훈련하는것 역시 뒤로 미룰수 없는 문제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량강구회의에서 반일부대와의 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기본문제의 토의를 끝마치신후 회의에 참가한 각지 유격부대들과 유격근거지의 지휘관, 공작원들을 통하여 여러 근거지의 사업형편을 알아보시고 앞으로 근거지를 더 잘 꾸려나갈 방침과 방도를 밝혀주셨다고 한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근거지에 대한 문제도 이미 지난해 가을 명월구회의에서 유격전쟁과 관련한 다른 문제와 함께 이미 뚜렷이 밝혀주신 문제들이였다. 그런걸 자기는 성실히 그것을 연구하고 실천에서 정확하게 관철하려는 성의가 부족했다. 그러고보니 괜히 술덤벙물덤벙 뛰였을뿐이지 어느 하나도 똑똑하게 인식하고 똑바로 한 일이 없다.

이제 갓 태여난 유격대와 유격근거지를 강화하시기 위하여 몸소 고난에 찬 남만원정의 머나먼 길을 헤쳐오신 장군님께 근거지문제로 해서 심려를 끼쳐드렸을뿐아니라 직접 자기는 자신에게 분공된 학교를 잘 꾸려서 혁명의 대를 이어갈 아이들을 교양하는 문제를 놓고 차응도와 시비를 다투었다고 생각하니 죄송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래도 자기는 혁명에 대해 뭘 좀 아노라고 은근히 자처한바도 없지 않았지만 막상 엄혹한 현실에 부닥치고보니 자기라는 인간은 혁명에서 서야 할 자리가 어디쯤인가 하는것도 모르고있은것 같았다.

이제부터 준엄한 혁명의 불길에 단련되면서 하나하나 혁명의 진리- 김일성장군님의 로선과 방침을 익혀나가자는 각오가 굳어지기도 했다.

희섭이는 자기 생각에 깊이 잠겨있다가 장군님께서 머지 않아 두만강류역으로 나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방안이 갑자기 활기를 띠며 들끓었다.

《인제 중대장동무가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아니 못들었습니까?》

《네, 좀더 똑똑히 말해주시오. 이제 뭐라고 말했습니까?》

《장군님께서 불원간 이쪽으로 나오시게 된답니다.》

《그럼 우리 근거지쪽으로 오시게 된단말입니까?》

《두만강류역이라니까 이리로 오시게 될수도 있겠지요.》

희섭이는 가슴이 쿵쿵 뛰였다. 모두 웅성거리며 끓었다. 차응도는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벙글벙글 웃었다.

《자, 한번 잘해봅시다. 장군님께서 나오시기전에 근거지도 철벽으로 꾸리고 적도 본때있게 족쳐봅시다. 오늘 전투하는걸 보니까 우리 유격대나 적위대도 꽤 해낼줄 안단말이요. 상고개를 뚫고 넘어온 적을 벌판에서 순식간에 둘러싸고 쓸어눕혔거던···》

《벌에 들어온것만 쓸어눕혔습니까? 상고개밖에서도 족쳤답니다.》

《그러게말이요. 안팎에서 족치는데 무엇이 무서울게 있소?》

차응도는 책상을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지금 사무실의 딴 방에서는 유격대원들 네명이 낮에 상고개를 뚫고 넘어온 적들속에서 붙잡아낸 덕산동 박대동네 하인이라는놈을 앉혀놓고 문초를 들이대고있었다. 유격대원들속엔 부암의 최정수도 끼여있다.

《이놈, 바로 대라. 네가 경상도땅에서 조실부모하고 이리로 들어와 박대동네 집에서 개돼지같이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무산계급혁명을 도울 일이지 적을 달고 상고개를 기여넘어와? 이놈, 상고개 바른쪽 벼랑밑으로 빠지면 큰벌로 들어올수 있다는건 어떻게 알았느냐?》

최정수가 눈을 붉히며 질문했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상고개락 하는델 언제 당겨보기나 했능기요. 그저 박대동이 왜군을 따라넘어가락 하니 따라넘어왔심더.》

《이놈, 주리를 틀라느냐? 한마디도 정직하게 안댈테냐? 그래 박대동이 너를 큰벌로 넘겨보내면서 뭐라고 했어?》

《큰벌에 넘어가면 필시 작인들이 가을을 나왔을테니까 만나락 합디더. 만나서 불일간··· 애햄···》

길쭉한 얼굴에 상고머리를 한 작자는 뒤가 켕기는지 말을 채 못하고 기침을 했다. 손이 매끈하고 새끼손가락의 손톱눈이 긴걸 보니 일을 해먹는놈은 아니다.

《불일간 어쨌단말이냐?》

주위에서 딴 유격대원들이 꿱 소리를 질렀다.

《예, 말씀드리겠심더. 불일간 왜군이 상촌을 점령할테니까 그때 후회가 없도록 작인들이 처사를 잘하락고 이르락 합디더.》

《그래 소작료를 받아먹겠다는 수작이냐?》

《예, 그렇심더.》

《개자식···》

유격대원들이 눈에 독이 올라서 부르짖었다. 사실 덕산동 박대동은 큰벌에 적잖은 땅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유격대원들은 이놈이 정말 박대동의 소작료때문에만 넘어왔는지 아니면 그 무슨 딴 비밀이라도 더 가지고 넘어왔는지 그걸 알아내려는것이였다.

《이놈, 너는 무얼 해먹던놈이냐? 똑똑히 대라!》

《나리님, 저는 요만한 아이때부터 머슴살이 했심더. 한번만 용서해주이소!》

《이자식, 나리님은 무슨 나리님이냐? 여기가 뭐 왜놈의 관청인줄 아느냐?》

《예, 알겠심더. 다시는 안카겠심더.》

《다시구 나발이구 정직하게 말해라. 너 뭘 해먹던놈이냐?》

문초는 계속되였다.

유격대원들은 이놈이 진심을 털어놓지 않는다는것을 알고는 모두 분개했다. 최정수는 자기가 민가네 고간을 들이친 직후 월평시 경찰에 끌려가 다리가 부러지도록 고문을 당하던 일이 떠올라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는 이놈을 그런 방법으로 족쳐대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했다.

혁명위원회는 밤새 들끓었다. 이런 문초가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또 각 조직들이 이방 저방 모여앉아서 회의를 열었다. 장군님의 말씀이 있었으니 이때까지의 모든 일을 구체적으로 재검토해보아야 했다. 사무실방들이란 오늘밤엔 곡식을 말리느라고 세개의 부엌에 장작불을 지펴넣어서 발바닥이 데지게 뜨거웠다. 이 뜨거운 방에서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끓었다. 농민협회와 부녀회는 김이 문문 풍기는 조를 한쪽에 밀어놓고 앉아 회의를 했다.

사무실을 나선 희섭이는 찬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그는 뉘우침에 시달렸다.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차응도와 충돌만 안했어도 좋았을것 같았다. 론쟁이 있은 뒤 차응도는 다시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오늘저녁 은근히 침을 놓는걸 보면 어지간히 심각한 문제로 가슴속에 묻어두고있었던게 틀림없다.

다시금 먼곳에 계시는 장군님께 그지없이 죄송했다.

하루빨리 이 잘못을 고쳐야 한다. 그는 부리나케 걸었다. 낮에 추고하던 원고를 오늘밤으로 끝내서 래일 등사에 넘겨야 되겠다는 생각이 불같아졌다. 《상촌신보》라는 신문의 창간호 원고를 추고하는 일이였다. 이것도 역시 차응도가 발기해서 조직이 신문을 내기로 결정했다는것인데 일에 몰려서 추진시키지 못하고있다가 희섭이가 오자 속히 신문을 내자고 하면서 원고뭉치를 내밀어주었다. 신문을 내겠다고 각 조직을 통해 씌워온 숱한 원고가운데 그대로 발표할만한 글이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걸 하루종일 골라서 추고를 했다.

《신문을 내야지, 내야 하구말구. 장군님께서 오실지도 모른다는데 이 근거지에서 인테리가 해놓은 일이 없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장군님을 뵈올가!》

희섭이는 중얼거리며 바삐 걸었다. 이슬비인데 길엔 물이 홍건히 괴여서 질벅거렸다. 신발에 흙이 한말씩 묻어일어나는 진흙판이 돼서 그런지 모른다. 언덕 하나를 넘어서니 지형이 낮아지며 더욱 캄캄해졌다. 바람도 세지고 굵은 비발이 뿌렸다. 희섭이가 개울물을 건니는데 밭 최뚝으로 사람들이 울멍줄멍 급하게들 걸어왔다.

《그게 누구요?》

《네?···》

앞에서 가느다란 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요?》

희섭이는 어둠속에서 또한번 소리쳤다.

《저예요, 합숙에 있는 애들을 데리고···》

《아니, 그게 정숙동무 아니요?》

희섭이는 가슴이 뭉클해서 소리쳤다. 애들을 붙안고 고생을 한다기에 벌써 만나보자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밤중 여기서 만날줄은 몰랐다.

《전 정숙이예요. 희섭선생님 아니예요?》

《그렇소. 희섭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소리들 듣더니 밭 최뚝에서 마구 달려내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희섭이의 앞으로 와서 《선생님》 하고 너무나 반가와 떨리는 소리로 부르시였다.

《난 여기 온지 벌써 한 닷새 되는데 아이들 합숙엘 찾아가본다고 하면서 여태 못가보았소.》

《저두 선생님이 오셨다기에 찾았어요. 혁명위원회에 갔다가 공청지부에 계신다구 하기에 거기도 가보고···》

《허허허, 내가 좀 딴 일로 바삐 돌아치다나니 그렇게 됐소. 그래 이 밤중에 어디로 가오?》

《애들을 모두 합숙마당에다 재웠댔는데 오늘밤엔 마당에 재울수가 없어서 방금 앞말에 가서 재울데를 구해놓고 와서 애들을 데리고 가는길이예요.》

《수고를 하는군. 합숙이 몇방이요?》

《한방이예요.》

《한방? 애들은 몇인데?》

《애들이 많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씻으시는것 같다. 희섭이도 눈구석에 이슬이 핑 돌았다.

《음··· 그럼 빨리 가오. 애들을 찬비속에서 지체시키지 말구···》

희섭이는 김정숙동지의 잔등을 밀며 밭 최뚝으로 올라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찬비속을 얼마나 걸어다니셨는지 적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최뚝우엔 애들이 가뜩 늘어서있다. 모두 비에 젖어서 우들우들 떠는것 같다. 그래도 뭐라고 참새떼같이 지저귀였다. 한 아이는 흑흑거리며 울기까지 했다.

《이 앤 어째서 우오?》

희섭이가 우는 애의 곁으로 가며 물었다.

《회의에서 비판을 좀 받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대답하며 얼른 우는 애의 곁으로 가서 팔을 끼시였다.

《빨리 가자, 홍갑이가 나쁜 장난을 안했으면 왜 애들이 너를 자꾸 비판하겠니?》

《내가 나쁜 장난한게 뭐 있어요?》

《너 철이 따라다니지 않았니? 철이 심부름군 아니야?》

김정숙동지께서 홍갑이를 끼고 앞서시자 애들이 뒤를 따르며 벌떼같이 떠들어댔다.

《헹, 내가 뭐 철이 따라다녔냐? 내가 그 애 심부름해준게 뭐냐?》

키작은 홍갑이는 김정숙동지를 따라 밭은 다리로 뛰면서도 만만치 않게 애들 소리를 받아쳤다.

《이자식 맞겠니? 너 철이가 먹는 감자두 캐다주지 않았니?》

《그리구 철이 멱감을 때 잔등두 밀어주지 않았어?》

《잔등만 밀어줬냐? 머리에다 물도 끼얹어줬어.》

《허허허, 이 좁쌀친구들이 야박스럽게 긁는데 ··· 아니 그럼 동무들사이에 멱감을 때 잔등두 못밀어주구 물도 끼얹어주지 못할가!》

희섭이가 애들속을 걸어가며 한마디 했다. 애들은 이건 또 어데서 이런 사람이 나타나 끼여드는가 해서 시꺼멓게 솟은 희섭이의 큰 키를 흘끔흘끔 치떠보았다.

《선생님, 여기선 학교를 열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희섭이에게 물으시였다. 이 물음에는 자신께서 애들을 거두는 일을 희섭인 어떻게 보고있는가 하는것을 알고싶으신 심정이 들어있기도 하시였다. 희섭이의 생각까지도 최정수의 생각과 같다면 자신은 피눈물을 삼키면서라도 이 애들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는것이였다.

《인제 곧 열리게 될거요.》

《빨리 열렸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안도의 숨이 후 나왔다. 학교가 열린다는것은 상촌의 혁명이 애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학교가 열려두 이런 장난꾸러기 좁쌀친구들은 한명두 받아들이지 않을테야.》

희섭이는 애들이 들으라고 한마디 씩둑대주었다.

《헹···》

곁의 애들이 코방귀를 뀌였다.

《이녀석들, 코방귀는 무슨 코방귀냐? 그래 학교에 들어가고싶으냐?》

《넣어주겠나요?》

《말 잘 들으면 넣어주지.》

《피, 학교선생도 아닌게 큰소리하네.》

그 소리에 희섭이는 껄껄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였다.

희섭이도 량팔로 애들을 후려다가 곁에 다가붙이고 걸었다. 찬비속에서 온기를 만들어주고싶었다. 비에 젖은 미끈미끈한 목과 머리에 볼을 대고 비벼주고싶기도 했다. 모두 다리가 밭아서 달랑달랑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학교를 열게 된다는 소리에 힘이 생겨서 홍갑이의 손목을 더 꽉 잡아쥐시였다. 새삼스럽게 애란 애들에게 죄다 불같은 사랑을 마구 쏟아붓고싶은 심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을 데리고 어느 초가집앞에 이르시였다. 집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상촌의 어느 집이고 다 그러하듯이 이 집에도 중촌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가득 들어있다. 사람들은 지금 토방에 솔광불을 피워놓고 앉아서 낮에 큰벌에서 박대동네 하인이라는놈을 붙들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아낙네들 몇은 기윽자로 구부러진 헛간에서 섶나무단을 들어낸다, 멍석을 들어다 편다 하며 법석했다. 헛간은 흙벽도 안하고 수수바자를 둘러친 집인데 솔광불이 비친 마당쪽은 휑하니 터져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로 이 헛간을 애들 잠자리로 얻으신것이였다. 애들이 솔광불빛을 받아안으며 마당으로 들어서자 토방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쩍 벌리였다. 그들은 애들이 자러 온다니 그저 몇명 오는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벌둥지 떨어지듯 한마당 가득 들어설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선 많기도 하려니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 모습은 볼수가 없었다.

상촌 어느 구석에 이렇게 숱한 애들이 살고있었는지도 알수 없었다.

김정숙동지의 모습도 사람들의 가슴을 찔렀다. 홑적삼과 치마가 온통 비에 젖고 머리태에서도 비물이 뚝뚝 떨어져내린다.

사람들은 아까 집을 구하러 왔을 때엔 아무 주의가 없이 처녀를 무심히 보았으나 인젠 심상히 볼수가 없어서 모두 김정숙동지께로 눈을 보냈다.

《똑똑한 처녀로군.》

《부암에서 온 처녀랍디다.》

《나인 그렇게 숙성해뵈지도 않는데 애들을 위해서 저런 고생을 하는군.》

《보통집안에서 자라나지 않은것 같습디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모두 헛간 채양밑이며 토방우에다 들여세우고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시였다,

《아주머니, 화로에 불이 좀 없을가요?》

《불은 해서 뭘하게?》

《애들이 옷이 온통 젖었어요. 합숙에서 떠날 때는 이슬비가 내려서 괜치 않았는데 오다가 굵은 비를 맞았어요.》

《그럼 불을 좀 때야지. 이 상촌에 나무야 없겠소? 어린것들이 젖은 옷을 입고 떨면서야 어떻게 자겠소?》

주인아낙네도 성품이 거슬거슬해서 이어 부엌아궁에 나무를 와짝와짝 꺾어넣었다.

애들을 따라온 희섭이는 어쩔바를 모르고 마당가운데 뒤짐을 지고있었다.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불빛앞에 드러난 애들의 몰골을 볼수가 없었다. 함께 걸어올 때는 어둠에 가려서 애들의 행색이 이렇게 불성모양인줄은 몰랐다. 죄다 홑옷을 입고 벌벌 떨었다. 어떤 애는 남의것을 얻어입었는지 배가 내놓이는 짧은 적삼을 입었다. 진창길을 질벅거리며 뛰니 무얼 신은줄 알았는데 발도 맨발들이였다. 망국의 설음을 안고 쫓기는 민족의 축도가 눈앞에 드러난것도 같았다. 희섭이는 저도모르게 다리가 떨리였다. 그래도 처마밑에 들어선 애들은 그 직성이 참새무리들 같아 짝장그르르 떠들었다.

《헹, 합숙에 그냥 있는 동식이, 삼돌이 그 애들은 호박 땄다니까··· 우린 이렇게 비를 맞으며 오리나 걸어왔는데 그 애들은 걷지두 않구.》

《얘, 우리가 걸은게 뭐 오리나 되겠니? 앞에만 나서면 합숙이 빠끔히 뵐텐데···》

《그래두 오리는 걸었게 옷이 이렇게 젖었지?》

《옷이야 오리를 걷는다고 젖어? 비가 많이 오니까 젖지.》

《비가 뭐 많이 오니?》

《얘, 손 내밀어봐라, 얼마나 많이 오는가?》

애들은 저마다 처마밖에다 손을 내밀어보았다. 애들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껄껄 웃었다. 주인인듯한 사람이 비오는 뜰에 서있는 희섭이를 토방우로 비집고 올라서라고 하면서 애들을 데리고 왔는가고 물었다.

《네, 뭐 그저 따라온 사람이올시다.》

말을 하기에도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너무도 큰 죄악을 저지르며 낯가죽 두텁게 이 자리에 와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비가 뿌려쳐도 자기는 아직 살이 들이젖지는 않았다. 그런데 물이 줄줄 흐르는 저 벌거숭이들 뒤를 무엇때문에 따라와 서있는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우리 상촌에서 왜 일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소. 일하는 어른들이 외곬으로만 내다보며 일을 하기에 한쪽구석에선 이런 한심한 몰골이 드러나지··· 아니 그래 우리 김일성장군님께서 애들을 이렇게 거두라고 하셨겠소? 응?》

목이 밭고 가슴이 바라진 주인은 되게 노기가 올랐다. 마치 희섭이에게 된매를 치는것 같기도 했다.

《뭣들을 하고있어 엉? 애들이 벌벌 떨고있는데 빨리 어데 들어가게 하지 못할가?》

그는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자기 마누라를 꾸짖는 모양이였으나 애들을 데리고 오신 김정숙동지께서도 들으라고 웨치는것 같았다.

《가만 좀 계시우. 애들의 옷이 온통 젖었는데 헛간에 불을 좀 떠내다놓구 들어가게 해야겠어요.》

《불은 이따가 떠내다놓더라도 애들이 자리를 잡게 해야지. 장 처마밑에 버티고 서있게 해야 한단말야?》

부엌에서 김정숙동지께서 달려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바삐 조짚무지에서 조짚 한춤을 들어다가 헛간앞에 놓으며 애들에게 발을 문대고 들어가라고 하시였다.

《누나, 난 발이 깨끗해.》

《뭐가 깨끗하냐? 발뒤축에 온통 흙이구나, 다리를 좀 들어라.》

《해해···》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다리를 들고 발뒤축이며 발가락짬을 닦아주셨다. 같은 진창길을 걸어왔는데도 어떤 애는 발에 흙 한점 없는데 어떤 애는 온통 진흙투성이다. 장딴지나 엉덩판에까지 흙이 뛰여오른 애도 있다. 애들이 헛간으로 거의 들어가자 주인아낙네가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들고 나왔다. 뒤미처 중촌구역에서 왔다는 아낙네도 큰 옹배기에 불을 담아들고 나왔다.

《고마워요. 모두 이렇게 수고를 해주셔서 뭐라고 말씀드릴수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화로와 옹배기를 받아서 헛간바닥에 들여놓으며 너무도 송구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마울게 뭐가 있어요? 정숙동문 그 무슨 제 일이 돼서 그 숱한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애를 쓰나요?》

불을 떠내다놓으니 그래도 헛간안이 후끈후끈해졌다. 추워서 떨던 애들이 또 신이 나서 입을 까기 시작했다.

《헹, 집보다 더 좋네. 여기서 맨날 살라구 했으면 좋겠네.》

《졸게 뭐냐, 불만 없으면 얼어죽어. 저것 봐라. 수수바자구멍이 소눈깔 같지 않니? 인제 겨울이 돼서 바람이 씽씽 지나가며 얼어죽고프면 나오너라 할 땐 어떻게 할테야?》

《그땐 흙으로 벽을 바르지.》

《피, 네까짓게 어떻게 벽을 발라? 키가 자라니?》

《키가 모자라면 등상우에 올라서 바르지.》

아까 오면서 울던 홍갑이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약삭바른 그는 어느새 불담긴 옹배기를 독차지하다싶이하고 앉아서 이 애 저 애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술을 나불거렸다. 그는 훈훈한 기운에 당장 사지가 쭉 펴져서 애들과 맞들고 일어나 씨름이라도 하고싶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더러 불을 쏟지 말라고 타이르면서 한참동안 헛간구석에 놓인 물건들을 애들이 다치지 못하게 거두시였다. 헛간이 아니라 외양간으로 쓰던 집인지 기다란 소구유우에 베틀,함지, 항아리 같은것이 잔뜩 올려놓여있었다. 한쪽구석엔 소땀내가 밴 길마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걸 다 거두고나서야 밖으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이 자다가 물이라도 먹고싶어할가봐 부엌으로 물을 얻으러 들어가시였다.

마당에 섰던 희섭이는 애들이 헛간에서 떠드는걸 보고는 얼른 돌아서 나왔다. 가슴에 받은 충격이 너무도 컸다. 이 상촌에서 누가 저렇게 난관을 헤가르며 나가고있는가. 김정숙이 저 동무밖에 더 있는가. 저 동무야말로 혁명을 몸으로 깨닫고 수난을 박차며 내닫고있다. 그는 피눈물의 생활속에서 무엇이 옳은것인가를 너무도 깊게 체득했다. 이 현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뼈저린 아픔을 풀어나가는것, 바로 이것이 장군님의 로선을 받들고 나가는 조선혁명가들의 진짜 태도가 아니겠는가. 정숙동무, 동무야말로 혁명의 미래를 심장으로 붙안아키우는 진짜 혁명가이다. 장하다, 동무의 방법이 옳은 방법이다.

희섭이는 무엇인가 큰 진리를 체득하는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기쁘기도 하지만 너무도 큰 몽둥이에 두드려맞은것 같기도 했다. 비가 억수로 드리웠다. 그는 물창을 차며 바삐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