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1

 

제 7 장

1

 

희섭이가 태봉시에서 상촌근거지로 온것은 상촌에서 추수전투가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였다. 그는 로동자들 십여명에게 화약을 지워가지고 밤중에 혁명위원회에 들이닿았다. 혁명위원회 마당에서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수를 비벼서 턴다, 조이삭을 자른다 하며 웅성거렸다. 지주 리창근의 땅에서 난것을 가을해들여다가 혁명위원회 고간에 쟁이는것이였다. 군중은 로동자들이 짐을 지고 들이닿는바람에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해서 일손들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어데서 오는 피난민들이요?》

《피난민은 무슨 피난민이겠소. 태봉에서 오는것 같소.》

《그렇다면 화약짐이 아닌가요?》

《아마 그런것 같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화약이 왔다우.》

이사람 저사람 옆구리를 찌르며 서로들 알려주었다. 말은 안하나 모두들 속으로는 신바람이 났다. 요새 사람들은 내내 대문바위밖 큰벌에서 적과 싸우면서 추수를 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총이나 작탄이 없으면 추수도 못하려니와 상촌근거지가 위험에 빠진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군중은 추수를 하다가도 큰벌끝 상고개쪽에서 적을 격퇴하는 유격대의 총소리나 작탄터지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춤을 추며 기세를 올렸다.

《화약이 또 오는군요.》

어떤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땀을 씻는 로동자들에게 한마디 넌지시 던져보기도 했다.

《이걸 누가 화약이라고 합디까?》

《다 압지요. 그걸 광산에서 오는 화약짐인줄 모를 사람이 있는줄 압니까? 상촌사람도 꽤 눈이 밝답니다.》

그 소리에 로동자들은 껄껄 웃었다.

희섭이는 땀을 씻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도 빈몸으로 오지 않았다. 화약짐에다 경찰의 군도 한자루와 총탁이 떨어져나간 보총 한자루까지 얹혀가지고왔다. 동발막의 한기천이 짐이 무거운걸 세지 않고 동발목을 실어오는 달구지군들이 숲속에서 경찰을 때려넘기고 로획해온 무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면서 짐에 찔러넣었다. 평생 짐을 져보지 않은 희섭이는 그통에 더 땀을 뺐다.

희섭이 사무실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새끼를 꼬고 섬을 틀고 법석을 한다. 피곤해서 누워자는 사람들도 많다. 량통으로 지은 집인데 방이 여러간이다. 그는 회장 차응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무실엔 회장이 없고 적위대원들이 책상옆에 앉아서 보총을 분해해놓고 닦고있었다. 회장은 개암골유격대가 있는곳으로 올라갔다는것이였다.

《태봉에서 오셨다면 또 청년들을 데리고왔습니까?》

적위대원들이 물었다. 희섭이가 청년들도 왔다고 하자 적위대원 한명이 두덜거렸다.

《흥 또 입대하겠군.》

《입대가 무슨 입대야. 이번엔 문제를 세우잔말야.》

《남의 입대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문제를 세우나? 제 문제가 안풀린다고 남의 일을 훼방놓겠어?》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으니까 하는 소릴세. 이건 태봉시에서 올라온 청년이라면 무조건 입대란말야. 그 사람들은 적위대다리도 건느는법이 없지 않어.》

들어보니 유격대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불평이였다.

《적위대에서 싸운지 오래 되오?》

희섭이가 물었다.

《한 댓달씩 잘됩니다.》

《댓달이요? 그까짓 댓달이나 가지고야 셈이 되오? 태봉에서 뽑아오는 청년들은 몇해씩 싸운 청년들이요.》

《아니, 그 동무들이 적위대투쟁을 했단말입니까?》

《적위대투쟁은 아니더라도 무기를 로획한다든가 왜놈을 슬쩍 천당으로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펄 날지요.》

《말씀 마십시오. 가재두 게편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희섭이는 껄껄 웃었다. 역시 어디 가나 소박한 청년들이 있다.

손에 무장을 들고 쌈판으로 내닫지 못해 주먹이 찡찡 운다고 호소하는 청년들이 얼마든지 있다. 바로 혁명은 이렇게 농익었다. 일제의 미친듯한 공세는 그만치 혁명에도 새로운 변화를 주고있다. 인젠 오직 원쑤를 때려부시는 일만이 눈앞에 있다. 우리의 모든 잠재력량을 한시라도 빨리 들어일궈 원쑤를 쳐야 한다. 이게 오늘의 정세이고 혁명의 요구이다. 희섭이는 괜히 가슴속에서 홍두깨가 치밀듯 불끈해졌다.

사실 그는 은근히 불만을 품고 상촌으로 온 사람이였다. 그는 부암의 처참한 사변을 겪고나서는 사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도 그전엔 대중계몽을 하나의 중요한 투쟁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정력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인젠 그러한 방법으로는 오늘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준엄한 혈전장과 아득히 떨어져있는 글소리가 무슨 소용이란말인가. 《우리는 어째서 가난하게 사는가?》 이런 토론을 해서 그게 언제 무슨 힘으로 되여 이 준엄한 싸움에서 용을 쓴단말인가. 희섭이는 오늘의 절박한 현실이 요구하는 피어린 싸움터에 새롭게 뛰여들 각오를 했다. 그래서 김기준동지를 따라 태봉으로 나갔던것이다. 원쑤의 밑창으로 뚫고들어가 로동계급과 함께 피의 결투를 벌릴 각오였다.

그런데 태봉으로 나간지 한달도 못되여 조직의 결정으로 다시 상촌으로 옮겨오게 되였다. 경식이의 말을 들으면 차응도가 근거지의 교육사업때문에 자기를 부른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야 지금 교육을 운운하는것은 얼빠진 소리같기만 했다.

(차응도가 시대착오를 범하고있어.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거던.)

희섭이는 내내 이 생각을 하며 상촌으로 올라왔다.

그는 적위대원들이 총을 닦는 곁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고는 밖으로 도로 나왔다. 적위대원 한사람이 밖으로 따라나오며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저 미안하지만 무기는 가져온게 없습니까?》

《무기요? 부러진 총과 환도를 하나 가지고 왔지요.》

《부러진 총이요? 어디가 부러졌습니까?》

그는 희섭이가 토방에서 내려설가봐 팔소매를 붙들며 은근히 물었다.

《총탁이 부러졌소.》

《여보시오, 그럼 그걸 저한테 주십시오. 우리 적위대원들은 총 한번 메보지 못하고 그저 가슴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지금 저 총두 저 동무가 낮에 상고개쪽에서 자위단 한놈을 추격해가서 쳐넘기구 빼앗은건데 저녁때 유격대에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었지요. 그리군 나더러 회장동지한테 함께 가서 총을 유격대에 넘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사정해보자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둘이 여기 와서 회장동지를 기다리는중입니다. 어떻게 그 부러진 총을 저한테 줄수 없겠습니까?》

《주지요, 주겠소.》

희섭이는 그 안타까와하는 정상에 감동돼서 당장 승낙을 했다.

그리고는 적위대원을 데리고 마당가로 나가 자기 짐짝에서 총을 뽑아 얼른 안겨주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청년은 한손으로 총을 붙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희섭이의 손을 잡으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긴 뭐가 고맙겠소. 총이야 왜놈을 잡는 무기인데 의례 동무들이 메야 할것이 아니요.》

《그래도 어데 그렇습니까? 지금 유격대에도 총을 메지 못한 대원이 더러 있는데 적위대원이 어떻게 총을 멥니까? 저 선생님···》

총을 받더니 당장 선생님 소리가 나온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걸음 더 각근히 다가섰다.

《선생님, 저한테 총을 주었으니 제가 끝까지 이 총을 메고 나서서 싸우도록 해주셔야 할것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

《그럼 저··· 회장동지보구 말씀도 좀 해주십시오. 부러진 총 한자루를 가지고 와서 적위대에 있는 조경남이란 외사촌애한테 주었으니까 절대로 빼앗지 말라구요. 만약 빼앗는다면 다시는 태봉에서 로획한 무기를 올려보내지도 않을테고 동지간에 의리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회장동지는 사람이 좋아서 쩔 맬겁니다.》

희섭은 폭소를 했다. 눈귀에서 눈물까지 솟아나왔다. 부러진 총이라도 가지고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상촌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총문제로 이렇게 눈물을 자아내는 일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뜻밖의 소원을 푼 청년은 사무실로 도로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사람들이 들끓는 아래모퉁이쪽을 돌아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자기 동무에게도 말하기를 저어하여 내빼는것 같았다.

청년이 간지 얼마 안있어 차응도가 혁명위원회 마당으로 들어서며 일을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건 그만해두고 빨리들 큰벌로 나갑시다. 거둬들여온 곡식이야 어데로 가겠습니까? 큰벌에서 가을을 하는게 문제입니다. 벌써 개안촌과 룡신동에선 떠났습니다.》

《달구지들도 끌고 떠날가요?》

《달구지만 끌고 가겠소? 지게들도 지고 나갑시다. 한춤이라도 빨리 대문바위안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차응도의 소리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헤쳐놓았던 조춤들을 무져 세운다, 수수무지에 짚을 덮는다 하며 법석을 했다. 아침밥을 일찍 지어가지고 나오라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밤과 낮이 없이 들끓는 판이였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희섭동무 아니요?》

차응도는 사람들속에서 희섭이를 띠여보고 이렇게 소리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들하십니다.》

《난 수고가 없습니다. 이거 정말 훈장님께서 수고를 했군요. 허허허.》

사람좋은 차응도는 롱을 던지며 희섭이의 손을 격동적으로 잡아흔들었다.

《여기서도 난을 겪는것 같습니다.》

《난을 겪구말구요. 요새는 큰벌이 무서운 전투장으로 되였습니다. 아직은 놈들이 대부대로 올려밀진 않지만 추수를 훼방하려고 어지간히 덤벼들고있지요. 그래 혼자서 왔습니까?》

《왜 혼자겠습니까? 화약두 좀 가지구 오구···》

《화약두?》

차응도는 너무 좋아서 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화약을 지고 온 청년들앞으로 걸어가더니 일일이 악수를 하며 그들의 어깨를 흔들어주기도 했다.

《자, 들어들갑시다. 내가 없어서 한지에들 앉아있었댔군.》

《화약을 빨리 어데로 가져가야 할것 아닙니까?》

《가만, 그럼 우선 병기창으로 갈가? 참 이거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군.》

차응도는 희섭이의 말끝에 이러며 또 껄껄 웃는다.

얼마후 그들은 화약짐 진 청년들을 데리고 개안촌으로 건너갔다. 희섭이의 짐은 차응도가 지고 앞서서 걸었다.

《참 잘 왔습니다. 난 희섭동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인제 근거지형편을 보면 알겠지만 일이 사태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가위에 적의 공세는 날로 심해지지···》

차응도는 다리를 걷어붙이고 물을 건느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희섭이가 그렇게 힘들게 지고 온 짐도 무거워하는것 같지를 않았다.

《학교라는것도 집을 거의 만들어놓다가 말았지요. 일이 자꾸 덮치는통에 그저 이 일 하다가는 저 일 하고 저 일 하다가는 이 일 하구 마구 뒤섞어놓고 뛰질 않습니까. 그때문에 경식동무한테서 비판도 좀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하루이틀에 수습이 됩니까? 교육사업이란 애당초 억망입니다. 인젠 희섭동무가 한몫 메고 나서야겠습니다.》

희섭이는 아무 대꾸를 안했다. 확실히 차응도는 잘못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적이 코앞에까지 다가들어 총질을 하는데 교육을 운운할새가 있는가, 더 급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총이 없어 울고있는 청년들에게 우선 총부터라도 해결해주어야 할것 아닌가.

《근거지 간부들은 아무도 애들을 돌봐주지 못하고있습니다. 특히 의지가지없는 애들 문제는 중요한 문젭니다. 지금 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 자진해서 그런 애들을 맡겠다고 하기에 맡겨는 놓았는데 그 동무에게만 너무 짐을 지운것 같아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라니 정숙동무말입니까?》

희섭이는 김정숙동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바람에 얼른 되물었다.

《그렇지요, 그 동무가 저도 아직 병을 다 덜지 못했는데 왜놈들의 〈토벌〉에 그슬리다 남은 우리 애들이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강가를 헤매돌면서 감자돌찜을 해먹으며 거칠어져간다고 울면서 호소할 때는 내 가슴이 불을 맞는것 같았지요. 정말 누가 그 애들을 돌아볼 경황이 있었습니까. 정숙동무의 말이 가슴은 아프지만 손쓸 방도가 있었어야지요. 그래 하는수없이 그 동무가 제기하는대로 어서 좀 거두어보라고 했지요.》

희섭이는 경식으로부터 정숙동무가 앓는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쨌든 그가 병이 다소라도 덜려서 무엇인가 일을 하겠다고 제기해나섰다니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또 아이들 일을 맡아나설건 무언가, 김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라면 아까 그 청년들처럼 총을 내라고 조르지는 못할망정···

희섭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줄은 모르고 차응도는 또 말을 이어나갔다.

《그 동무가 지금 그 애들로써 아동단을 꾸리고 애들 힘을 동원해서 합숙을 짓겠다고 뛰고있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둘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손포를 보태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다 도와주겠습니까? 인젠 희섭동무가 왔으니 내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습니다.》

《짐을 이리 보내시오. 병기창이 어데 있는지 인젠 내가 지고 가겠습니다.》

물을 다 건너간 희섭이는 차응도의 잔등에 있는 짐을 빼앗아졌다. 그는 차응도의 말을 이젠 한마디도 들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병기창은 깊은 골짜기끝에 있었다. 밤이 희붐하게 새가는데 벌써 나무숲속 귀틀집안에선 무슨 쇠소리들이 요란히 울리였다.

차응도와 희섭이 문앞으로 다가가니 청장년 대여섯명이 간데라불앞에 앉아서 쇠를 쓸고 두드리고 했다. 소탕에선 시뻘건 불이 펄펄 피여올랐다. 모루앞에 앉아 쇠를 두드리는 장정은 웃동을 벗었는데 넓은 가슴팍에 땀이 번질거렸다. 화약이 왔다는 소리를 듣자 바로 그 장정이 뛰여나왔다. 그는 땀이 난 몸에 적삼을 걸치며 희섭이와 악수를 했다. 손도 불덩어리같이 후꾼거렸다.

《참 수고들 했습니다. 저리들 갑시다. 화약은 따루 간수해두니까요.》

병기창 책임자 영택이는 앞서서 숲을 헤치며 올라갔다. 화약짐을 진 사람들도 모두 뒤를 따랐다.

귀틀집안에서 줄칼로 쇠를 쓸던 사람들은 화약이 왔다는 소리에 신바람이 났다. 그들은 인젠 성능좋은 작탄을 얼마든지 만들어 쌈터에 보낼수 있게 되였다고 떠들었다. 머리를 모아붙이고 연구를 거듭하니 습기가 차서 불발이 많던 결함도 퇴치할수 있게 되였는데 화약이 없어서 기세가 떨어졌었다. 바로 이런판에 화약이 들이닿은것이였다.

화약을 지고 올라갔던 사람들은 귀틀집으로 내려왔다. 희섭이는 차응도와 함께 영택이를 따라 병기창안으로 들어갔다.

《화약이 왔으니 또 버쩍 만들어내야겠소.》

《만들어내다뿐이겠습니까. 그저 무기는 작탄이 제일입니다.》

차응도의 말에 영택이 대답했다.

《작탄도 작탄이지만 총도 만들어보란말이요.》

《지금 만들어보는중입니다.》

정말 무슨 총부속을 깎은것인지 번쩍번쩍하게 쓸어놓은 쇠붙이들이 한쪽구석에 수두룩이 쌓여있다. 희섭이는 병기창사람들속에서 아까 총을 준 적위대의 조경남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 뒤에서 고개를 끄덕하며 알은체를 했다. 조경남은 강을 건너오자바람으로 여기 와서 총탁을 만들어달라고 청을 했다.

병기창에서도 새것 못지않게 잘 만들어 붙여준다고 했는데 총곁을 떠나기가 아쉬워 여적 여기에 앉아있는것이였다.

그는 아까 희섭이와 한 약속이 있기때문에 배짱이 든든하기는 하였지만 한편 께름직하기도 하였다. 회장이 외사촌이요 뭐요하는 친분관계때문에 무기를 줄데다 안주겠느냐고 우겨대기만 한다면 방법이 없는것이다. 벽창호같은 차응도를 꺾어놓기엔 아직 자기따위는 이도 안났다.

차응도는 한참동안 이것저것 돌아보았다. 구석쪽에 놓여있는 작탄을 들어다가 추썩추썩 무게를 가누어보기도 했다. 그러는가 하면 수리해놓은 보총을 들어다가 한눈을 째긋하고 겨누어보기도 했다.

《희섭동무 총 한방 쏘아보지 않겠습니까?》

《무엇때문에 그런 실없는짓을 하겠습니까.》

희섭이의 대꾸에 차응도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희섭이는 차응도에게서 너무도 락천적인 인상을 받았다. 자기가 혁명을 생각하는것과 차응도가 혁명을 생각하는것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놓여있다는것이 여기서 드러나는것 같기도 했다.

혁명을 이렇게 락관적으로 받아들일수 있을가? 피바다 불바다를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이러는것일가? 혁명이 어떤 준엄성을 띠고있다는것을 심각히 인식하지 못하는 거기에 차응도의 놀라운 환상이 깃들 구석이 있는지 모른다.

희섭이는 먼저 병기창에서 나왔다. 차응도도 따라 나왔다. 그들은 화약을 지고온 청년들을 데리고 시뻘건 아침노을을 바라보며 골짜기를 내려왔다.

이날아침 차응도는 희섭이를 데리고 가서 짓다가 만 학교도 구경시켰다. 이영을 입히고 재벽까지 한 길다란 외채 집인데 지금은 학교가 아니라 살림집으로 씌여지고있다. 구들도 안놓은 장간방들에 보퉁이가 구석마다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죄다 추수전투를 나가고 늙은이들만 몇명 남아있는데 한 늙은이는 쇠약한 얼굴로 자꾸 기침을 했다. 마당엔 숱한 돌가마들이 걸려있다. 토방에도 풀을 베다가 깔았는데 아마도 방이 비좁아 밖에서도 자는것 같다. 두사람이 한창 집을 돌아보고있는데 큰벌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또 달려든 모양이군, 이놈들이 오늘은 주검을 얼마나 버리고 달아날터인고?》

차응도는 큰벌쪽,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유유한 태도였다.

《적이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상고개너머에서 쏘아대고있습니다. 놈들이 상고개를 넘어 큰벌로만 들어오려 해도 좀한 병력을 가지고는 안될것입니다. 요새 매번 상고개 저쪽에서 격퇴를 당하고있으니까요.》

도대체 상고개라는데 방어력량을 얼마나 튼튼히 배치했기에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큰소리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어쨌든 근거지가 지금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건 사실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집이 없어서 이렇게 아무데고 닥치는대로 들어서 살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산기슭마다 오두막들을 만들고있는데 그것도 추수때문에 빠르질 않습니다.》

《이런 집을 그냥 주택으로 쓰지요. 어느 하가에 집을 짓고있겠습니까?》

《아니, 학교는 열지 않구요?》

차응도는 눈을 흡뜨며 쳐다보았다.

《난 회장동무가 혁명을 너무 락관하는것 같습니다. 지금 원쑤들이 코앞에서 불질을 하고있는데 학교문제에 그렇게 머리를 쓸 여유가 있습니까?》

《언제는 원쑤들이 코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적구에서도 학교를 운영했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학교를 열지 못한대서야 됩니까?》

《이것은 바쁘다든가 어떻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거지자체의 운명과 관련된 준엄한 싸움이기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그럼 희섭동무 눈에는 우리 근거지가 어떻게 잘못될것 같은 위구라도 느껴집니까?》

《위구가 아니라 아까 회장동무가 말한대로 적들이 날마다 미친듯이 공격을 가해오는 조건에서 이 귀중한 근거지를 지키는데 모든 힘을 총동원해야 할것 아닙니까. 그런데 학교요, 교육이요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것 같단말입니다.》

《아니 그럼 우리가 언제 가면 적의 공격을 안받고 이 근거지에 있게 될것 같습니까? 그래 학교도 열지 말구 집도 짓지 말자 그겁니까?》

차응도는 못마땅한듯 낯을 붉히며 희섭이를 쳐다보았다.

사실 차응도는 본시에 락천적이기도 하였지마는 전날 경식이의 충고를 받고부터는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것이 아니라 허리춤을 푹 늦구어놓고 근거지를 근본적으로 튼튼히 꾸려나가리라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기도 했었다.

《허허허, 회장동무는 너무도 락천가이군요. 글쎄 어느땐가는 교육문제도 응당 토론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좀 이르지 않습니까? 어쨌든 근거지를 지켜내고야 학교도 있을게 아닙니까? 선차적인것은 근거지입니다.》

《락천가라? 이거 희섭동무가 나한테 그럴듯한 이름을 하나 달아주었습니다. 뭐 내가 락천가가 돼서 나쁠거야 있습니까? 그런데 희섭동무, 근거지의 교육문제를 다른 일과 따로따로 갈라놓아서는 안될줄 압니다. 하기는 이게 복잡한 문제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희섭동무를 청한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교육이 없는 근거지라는거야 근거지라고 말할수 없지 않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근거지창설방침을 관철하자면 반드시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말을 근거지에서 아예 교육을 없애자는 말로 리해하진 마십시오. 준엄한 현단계에 맞게 보다 선차적인 문제에 주목을 돌리자는 그겁니다. 지금 혁명과 반혁명사이에 철화가 엇갈리고있는 한복판에 앉아서 언제 교육이니 집이니 하고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난 회장동무와 무슨 원칙문제를 가지고 론쟁을 해보자는것도 아닙니다. 나는 혁명을 하고싶습니다. 아이들더러 당분간 참아달라지요. 그러면 어느땐가는 나도 아이들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좀더 본격적인 혁명의 초소가 필요합니다. 나는 심장의 붉은 피를 쏟으며 투쟁하고싶습니다.》

《음 한마디로 말해서 학교선생노릇을 못하겠다는 말씀이군요. 좀더 본격적인 초소라? 허허허, 그건 몸부림입니다. 우리 혁명은 그런 몸부림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그게 무슨 몸부림이란말입니까?》

《그럼 그것이 똑똑한 정신으로 하는 소리란말입니까? 그렇다면 견해를 고쳐야 하겠습니다. 아주 잘못됐습니다. 혁명은 희섭동무에게 아이들을 가르칠걸 요구하고있습니다.》

《그건 혁명이 아니라 회장동무가 그렇게 요구하는것 같습니다.》

《무얼 보고 그렇게 말합니까? 이 차응도도 혁명의 요구앞에선 쩔쩔매고있습니다. 며칠 두고 보십시오. 집을 지어야 되겠는가 짓지 말아야 되겠는가, 학교를 열어야 되겠는가 열지 말아야 되겠는가 하는것을 희섭동무자신이 잘 알수 있을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떤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 혁명의 요구입니다.》

차응도는 곁에 있는 등상널판자를 두드렸다. 눈에서 불꽃이 튕기였다. 그러나 그는 이어 부드러운 표정으로 희섭이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잔등을 밀었다.

《가십시다. 밤새 무거운 짐을 지고와서 몸이 무척 피곤할텐데 빨리 가서 조반이나 자시고 푹 쉬십시오. 난 곧 큰벌로 나가야겠습니다.》

희섭이는 말을 못하고 차응도와 함께 학교마당에서 걸어나왔다. 좀더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싶었으나 차응도가 한마디로 막아버리는것 같기에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