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2

 

제 6 장

2

 

경식이는 무슨 결심을 어떻게 했는지 인젠 내내 추상같은 표정을 하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밖에 나가서 걷는 련습을 했다. 병원 뒤에 큰 잣나무들이 서있는 메발이 있는데 그는 거기 나가서 무얼 깊이 생각하며 걷기도 했다.

《빨리 병을 고치오. 우리는 이렇게 누워있을 때가 아니요. 동무두 무얼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더욱 철저히 다져야 하오.》

그는 의식을 회복하신 김정숙동지께도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이런 때는 그의 얼굴에 무서운 빛이 번뜩이였다.

《내 어제밤 성재 어머니한테도 성재동무가 희생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었소. 첨엔 그 말을 알려드리지 말고 아들이 어데 가서 공작하는것으로 알고 일생을 사시도록 하는게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소.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소. 우린 우리가 겪는 불행과 비극을 철저히 알아야 되우, 죄다 알아야 된단말이요. 가슴이 아프더라도···》

어느날 아침엔 김정숙동지의 곁에 와앉아 이런 말을 했다. 몹시 흥분해있었다.

《청진집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구 어떻게 견딜가요? 저를 보고도 우리 성재는 어째서 상촌으로 오지 않는가고 몇번 물었는데요.》

《나도 그러리라고 짐작했소. 그렇지만 언젠가 한번은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견디여내야 할게 아니요? 그렇게 견디는 과정에 속이 시꺼멓게 탈수도 있겠지. 그러나 탄다고만 생각할수는 없는것이요. 모진 마음이 생기구 돌이 되고 철이 될수도 있단말이요.》

경식이의 비장한 목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윽박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가 어쩌면 이리도 딴사람같이 되였을가고 생각하시였다. 정말 그의 말과 같이 돌이 되고 철이 된것 같은 강직한 인상을 주었다.

경식이는 아직도 피흔적이 배여있는 로동복앞자락을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젠 지팽이엔 실리지 않고 약간 한쪽다리를 이끌며 뜰로 내려선다.

경식이가 나간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대청용마루를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청진집어머니가 어떻게 하고있는지 궁금하시였다. 인젠 출입도 자유스럽게 할만치 되여서 오늘래일 병원에서 나가겠다는 말도 했는데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어제밤 아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타격을 받고 가슴을 두드리고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청진집어머니에게로 가서 그 무슨 위안이 될 말이라도 해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 건너방으로 가자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시는데 동의가 약사발을 들고왔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원 쓸데없는 소리··· 인젠 오한기는 다 없어졌지?》

《네. 아무데도 아픈데가 없는것 같애요.》

《아픈데가 없다니? 단단히 치료를 받아야 하네. 이런 몸으로는 조선독립을 위해서 싸우질 못해.》

동의는 엄하게 말하며 약사발을 내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 뜨거운 정이 그득해져서 그것을 받으시였다. 얼마나 고마운 할아버지인가. 말끝마다 조선독립을 이야기하며 약을 먹으라고 한다. 젊어서도 독립군을 그렇게 수없이 치료를 했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엔 홍범도도 자기 손에서 침을 여러번 맞았느니라고 이야길 했다.

의사가 물러간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청을 내려서 청진집어머니가 있는 건너방으로 가시였다.

건너방엔 리상녀와 나이 비슷한 아낙네들이 여러명 들어서 치료를 받고있었다. 그런데 방안엔 리상녀가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데로 갔는가싶어 아래모퉁이로 해서 뒤울안에까지 돌아가보시였다. 거기에도 리상녀는 없었다. 어쩐지 머리끝이 쭈삣해지는 흉흉한 생각조차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아래모퉁이쪽으로 도로 돌아나오시였다. 나오다가 보시니 담장이 무너져내려 펑해진 저쪽 담장밖에 리상녀가 앉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걸음을 멈추시였다. 반백의 머리로 낭자를 튼 어머니가 하염없이 언덕너머의 강물을 바라보고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처량해서 당장 《어머니!》 하고 주저앉아 울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잠간 서서 이를 악물고 그런 감정을 참으시였다. 자기가 먼저 울고야 어머니에게 어떻게 힘이 될 말을 해주랴싶으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슬금슬금 걸어서 무너져나간 담장을 넘어서시였다.

《청진집어머니!》

리상녀는 대답이 없이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어머니!》

《넌 어째서 나왔니?》

리상녀는 여전히 얼굴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무얼 그렇게 혼자 생각하세요?》

《아니다. 넌 좀 낫니?》

《낫잖구요.》

리상녀는 눈물을 씻었다.

《어머니, 눈물은 무슨 눈물을 흘려요?》

《그저 울구싶어서 그러질 않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스럽게 리상녀의 곁에 가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두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가슴에 안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시였다. 리상녀는 주글주글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며 김정숙동지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더니 새로운 눈물줄기가 터진듯 눈물이 마구 쏟아져내렸다.

《어머니, 우지 말아요. 저두 어제밤 어머니가 무슨 소식을 들었다는걸 알아요. 그렇지만 우린 울어선 안돼요. 우리가 울고만 있으면 지금 우리의 쌈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는 울음을 악물어야 해요. 지금 누가 울지 않고 견딜 사람이 있어요? 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말씀하시였다.

《어제밤 경식이도 그런 말을 하더라. 그 말이 옳은줄이야 낸들 모르겠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이 터지고 뻐개지는 가슴을 어떻게 참니? 성재가 죽다니? 우리 성재가 죽다니, 이 몹쓸녀석아, 이 에미를 두고 네가 어데로 갔단말이냐? 으으으, 내가 어떻게 참니?》

어머니는 김정숙동지의 손에 잡힌 두 손길을 불거지도록 쥐였다폈다하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번에는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으며 마구 흔드시였다. 그 큰 몸이 온통 사시나무 떨듯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 공연히 울음을 촉발시킨것 같으시였다. 어머니는 발앞에 있는 풀을 쥐여뜯고 흙을 우벼파서 던졌다.

《어머니, 정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슬픔을 참아야 돼요.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같은 큰 슬픔을 안고있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그래두 누구나 다 원쑤와 싸우자고 강심을 먹고 울음을 참고있는데 어머니가 이러시면 그 사람들도 다 울고싶어질것 아니예요. 그러니 정말 이러지 말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흙을 우벼파는 리상녀의 손을 꽉 그러잡으며 안타까이 호소하시였다.

《오, 오냐 일없다. 내가 경식이의 말이나 네 말이 옳은 말인줄 안 담에야 마음을 다잡아내지 못하겠니?》

《그러게 다잡아야 해요. 전 정말 어머니가 울어서 그 설음이 다 없어진다면 실컷 울라고 하겠어요. 그렇지만 울어도 없어지지 않을 설음인데 뭘하려 자꾸 울겠어요?》

《이 인젠 안울겠다···》

어머니는 몸을 화들화들 떨며 머리를 저었다.

어머니를 달래던 김정숙동지께서도 어쩔수 없게 속눈섭밖으로 눈물이 흘러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입술을 악물며 얼른 눈굽을 훔치시였다.

《내 인젠 안울겠다. 지난밤엔 밤새 그것이 어떤데 묻히기나 했는지 부암에 한번 가보자고도 생각을 했댔는데 인젠 그것두 그만둬야겠다. 그 쑥밭에 가서 무덤이나 찾아보아선 뭘하겠니?》

어머니는 격정이 가까스로 잦아들어 말도 좀 순조로와졌다.

《거긴 가보아서 무얼 하겠어요. 희생된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쌈을 더 잘하라고 부탁을 하고 갔는데 무덤앞에 찾아가 울고불고하면 그게 뭐가 좋겠어요.》

《네 말이 옳다. 죽은 사람들이 우리 보고 이승에 남아서 거저 있으랬겠느냐? 경식이의 말마따나 일본놈 치라구 한을 남기구 갔을테지.》

리상녀는 설음을 삼키느라고 애를 썼다. 관골이 날카로와진 누런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도로 펴지군했다.

리상녀는 이튿날 무엇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보짐 하나를 들고 강건너 혁명위원회를 찾아간다고 떠났다. 경식이가 수첩장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밀어주며 가지고 가서 차응도회장에게 보이라고 했다.

리상녀가 떠나간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몰래 슬픈 생각에 잠기시였다. 역시 바래우고나니 가엾고 불쌍하시였다. 집도 자식도 다 잃어버리고 망망한 설음우로 떠나간것 같은 청진집어머니! 그 조그마한 보짐속엔 무엇이 있기에 그리도 소중히 들고갔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릴 때 어머니의 보짐속에서 빗첩과 바늘쌈지, 골무 같은것들을 본 생각이 나시였다. 청진집어머니도 그런걸 보짐속에 싸가지고 간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해종일 마음이 슬프시였다. 이날엔 아동단합숙에 가있는 기송이도 오지 않았다. 병원에 함께 있을수가 없어서 기송이는 의지가지없는 애들을 거두어주는 아동단합숙이 있다기에 그리로 보내시였다. 기송이는 첨 하루밤 가서 자고 와서는 단칸방에서 숱한 애들이 다 잘수가 없어서 자기는 마당에서 잤노라고 말했다. 먹긴 무얼 먹었는가고 물으시니 큰 옹배기에 수수밥을 해놓고 먹는데 애들이 숟가락쌈을 한다고 했다. 다음날 왔을 때 물으셔도 역시 그렇게 먹고 그렇게 잤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틀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계속 한지잠을 자며 한옹배기의 밥을 먹을가. 먹는게 수수밥이라니 집에서 먹이지 못하던 낟알을 근거지에 와서는 내내 먹는셈이다. 그런데 숟가락쌈을 한다니 그건 그릇이 없어서 저마끔 퍼주지 못해 그러는걸가. 하촌 리상준네 둥글상머리가 생각나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기다리고기다리던 동생은 이튿날 아침에야 달려왔다.

《너 어째 그새 영 기척이 없었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갑게 동생의 손목을 잡으며 물으시였다.

《병원에 자꾸 와선 뭘하게? 그런데 우리 합숙에 청진집어머니가 왔어.》

《아니 청진집어머니가 거길 갔어?》

《어제 회장아저씨가 그 어머니를 우리한테로 데리구 와서 싱글벙글 웃더니 애들 볼기짝을 꽝꽝 때리면서 교양두 하고 밥도 지어주라고 했어. 그리구 본시 있던 확실눈이 식모어머닌 어데론가 데리고 갔어.》

기송이는 본시 있던 식모가 눈이 크다고 확실눈이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말을 들으니 몹시도 기쁘시였다. 청진집어머니가 애들 합숙으로 갔다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일이 고되기는 하겠지만 애들 시중이야 좀 잘 들어줄가. 애들과 씨름을 하느라면 가슴에 맺힌 슬픔도 어언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어머니가 널 보고 뭐라지 않던?》

《어제밤엔 마당에서 나하구 같이 잤어. 밤새 별나라이야기를 하며···》

《밤에 우시진 않던?》

《울긴 왜 울어? 도리여 나더러 엄마생각 나도 우지 말라잖어. 자다가 내 눈이 젖었는가 해서 만져보기두 하구···》

가슴이 아픈 이야기였다.

애의 눈이 젖었는가 해서 만져보았을 때에야 어머니의 눈에 어찌 눈물이 없었을가.

그 한없는 슬픔이 언제 가야 리상녀어머니더러 웃고 살도록 물러가줄가.

《누난 좀 나어?》

《응, 난 인젠 퍽 나았다.》

《그래두 얼굴은 아직두 핼쑥해.》

《그럼 앓고난게 핼쑥하지 않구··· 그런데 넌 뭘 그런걸 손에 쥐고 다니니?》

기송이는 나팔은 어데다 두고 곤봉과 군데군데 녹이 쓴 길쭉한 칼을 쥐고 왔다.

《여기 소선대에선 모두 곤봉과 칼을 차고 다녀.》

《너는 아직 소선대원도 아닌것이 이런걸 가지고 다니니?》

《인제 빨리 커서 소선대가 될테야. 난 누나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어. 혁명근거지에 들어왔다는것이 자꾸 앓기만 하면 어떻게 해?》

《그러게말이구나. 인제 곧 일어나지.》

《난 정말 누나가 앓지만 않는다면 날아다닐것 같애. 누나가 자꾸 앓으니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어? 누나, 하늘로 혼자 날아가는 기러기 봤지? 난 정말 그 외기러기가 불쌍해. 그런데 나두 그 외기러기처럼 될것 같지 않어?》

《기송아, 넌 무슨 그런 소릴 하니? 외기러기가 무슨 외기러기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을 꾸짖으시였다. 이 애가 어째서 이런 생각까지 하며 가슴을 저리게 할가싶으시였다. 동생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머리를 들고 일어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신다.

《기송아, 난 인젠 자리에 눕지 않겠다.》

《아픈데도 눕지 않나뭐?》

《아프긴 뭐가 아파? 이렇게 다 나았는데···》

《나은것 같지 않어. 그리구 병이란건 물러갔다가도 도루 덤벼든데. 그건 꼭 왜놈과 같다니까···》

제법 어른다운 소리다. 그저 볼수록 귀엽고 눈굽에 이슬이 핑그르르해지는 사랑스러운 동생이였다.

기송이는 주머니속에서 붉은 끈을 꺼내서 곤봉의 잘룩한 목에 매였다.

정말 붉은 끈을 매놓고보니 그저 곤봉이 아니라 무슨 원쑤를 치는 무기같아도 보였다.

《누나, 이 칼은 내가 인제 번쩍거리게 갈겠어. 자루도 다른걸 든든히 해맞추구··· 이 자루는 낡아서 헐렁거려.》

《그렇게 하렴.》

《누나, 그럼 이걸 가지구 어머니와 아지미 원쑤를 갚는다.》

말하는것이 벌써 웅성거리는 근거지에 와서 무엇인가 더욱 철석같은 앙심이 생겨난것 같다.

《원쑤를 갚아야지. 너두 나두 원쑤를 갚자고 이리로 들어온게 아니냐. 너두 형님의 말을 잊지 말아라. 나두 잊지 않겠다. 난 네가 그런 말을 해주니 너무 기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나두 누나와 함께 싸우는게 기뻐. 정말 두 기러기가 날아가는것 같지 않니?》

《또 기러기소리냐! 그건 무슨 소리라구 그런 말을 자꾸 하니?》

기송이가 돌아간 뒤 얼마 안있어 차응도회장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여느때같이 기운차게 활개를 저으며 들어오다가 대문간에서 의사를 만났다. 둘이는 잠간 서서 개웃마을이 어데인지 그 동네의 환자들 이야기를 하였다. 의사는 오늘 올라가선 아무래도 한곳에다 격리시켜놓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했다. 무슨 전염병환자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았다. 의사가 나가자 차응도는 곧추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대청으로 들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하시였다.

《응 정숙동무가 인젠 괜찮은 모양이지? 뭘 또 오빠가 보구싶어 일어나앉았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웃으며 낯을 붉히시였다. 차응도는 오는적마다 김정숙동지께서 의식을 잃고 오빠를 부르셨다는 소리를 하며 비린청을 만들어 오빠 부르시던 흉내까지 냈다. 그리고는 두눈에 사람좋은 웃음을 띠며 혁명하러 들어온 커다란 처녀가 병을 이겨내지 못해서 오빠를 부른다고 한번 들었다놓듯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쨌든 무척 좋은 사람이였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농사군같이 미덥고 유순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차응도는 한참 앉아서 의사 못지않게 진맥을 했다.

《아직도 맥이 실하지 못하오. 그래 약은 계속 먹구있지?》

《네, 인젠 아무데도 아픈데가 없어요. 그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야, 더 치료를 해야 하우. 그렇게 보채다간 또 이어 오빠를 부르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못하고 또 고개를 숙이며 웃으시였다.

차응도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진맥해보았다. 그가 들어간 방안에선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차응도가 오면 할아버지의사는 늘 시중군처럼 따라 돌아다녔다. 차응도가 맥을 보는 곁에 가선 흐뭇해서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군했다. 의술은 없어도 이렇게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늘 차응도가 경식이의 방으로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도 차응도와 경식이 마주앉으면 그 무슨 중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사실 의사뿐만아니라 그 방에 있던 환자들도 차응도만 들어가면 슬금슬금 일어서 밖으로 나오군했다.

오늘도 그 방에선 둘이 마주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오래 했다.

얼마후엔 둘이 함께 방안에서 나와 대문밖으로 나갔다. 경식이는 여전히 한쪽 발을 불편스럽게 옮겨디뎠다. 차응도가 팔소매를 잡고 부축해주었다.

그들은 집뒤 메발로 올라가 잣나무숲앞에서 또 오래도록 이야기를 계속했다.

《될수 있으면 빨리 가서 기준동무의 일을 도와야 하겠소. 저놈들이 태봉시 골안에다 군대를 들이밀고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벌써 광부들을 수없이 잡아가두었다니 이런 삼엄한속에서 공작이 제대로 되겠소?》

차응도의 말이였다. 경식이는 신중히 듣고만 있었다.

《우선 급한것이 화약이요. 작탄제조를 큰일같이 여기지 않는 동무들도 더러 있지만 이것이 왜 큰일이 아니겠소? 우리가 무기를 잡는데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자력갱생해서 자체의 손으로 만들어 쓰기도 해야 한다는것은 장군님께서 이미 뚜렷이 밝혀놓으신 방침 아니요. 그런데 아직 우리 동무들이 이걸 잘 모르고있단말이요. 더구나 작탄 같은것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것은 장군님께서 찍어서 말씀하시기까지 하셨단말이요. 그래서 지금 저 병기창일이 열이 올랐소. 그런데 화약을 대주지 못하니 일이 제대로 돼나가지 못하고있단말이요. 빨리 화약이 와야겠소. 태봉시에 가면 기준동무와 이야길 해서 우선 화약 뽑아내는 일에 힘을 좀더 넣어주오.》

《기준동무가 여기 이런 형편을 알고있는지요?》

《대체로 알고있긴 하겠지만 병기창일은 구체적으로 모를수도 있지요. 화약이 이렇게 급하다는것은··· 그래서 빨리 누가 한사람 가서 형편을 알리고 화약을 뽑아와야겠다는 의견이지요.》

《일이 그렇게 됐다면 벌써 사람이 갔어야 했을걸 그랬군요.》

《앞을 예견치 못하니까 늘 괴목에 방울을 달고야 뛰지요. 화약이야 얼마든지 필요한데 거기에 힘을 넣지 못했단말이요. 그리구 또 한가지 문제는 지금 희섭동무가 태봉시에 들어가있는데 기준동무와 이야기를 해서 그 동무를 이리로 끌어오도록 해야겠소. 여기 지금 교육사업을 할 사람이 없소. 학교라는것도 짓기 시작은 했는데 빨리 진척이 안되구 또 지금 지어놓았대야 누가 학교를 맡아가지고 해나갈 사람도 없소. 내 생각엔 희섭동무가 이리로 와서 그 사업을 맡아주었으면 아주 적당할것 같단말이요.》

바람이 불었다. 쏴쏴- 바다물소리같은 바람소리가 내내 잣나무숲에서 울리였다.

경식이는 심중한 표정으로 차응도의 이야기를 듣고있더니 무겁게 입을 떼였다.

《내 기어이 희섭동무를 들여보내도록 토론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왕 말이 난김이니 내 회장동무에 대한 한가지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어서 말하시오. 내 그래서 늘 무슨 문제든 말할 때마다 경식동무의 의견을 묻지 않았소.》

차응도는 우선우선하며 가볍게 응하기는 하였으나 경식이의 사람됨됨으로 보아 이제 나올 의견이라는것이 만만치 않으리라는것을 짐작하고 은근히 눈빛이 긴장해졌다.

《의견이란 별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알고있고 회장동무도 늘 말하는 문제인데 근거지를 어떻게 꾸리느냐 하는것입니다. 회장동무가 지금 이 거창한 일을 맡아안고 무척 바삐 돌아가는데 사실 나는 무슨 일을 한가지 도와드리지도 못하면서 시비를 캘 까닭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격근거지를 잘 꾸려서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근거지창설방침을 옳게 관철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근본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마디 하자는것인데···》

《그 뭐 그리 힘들게 말할게 있소. 생각하는것을 툭 털어놓소. 난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밤잠을 못자오.》

차응도는 경식이의 무거운 말을 중둥무이하며 소탈하게 말했다.

《나두 그런줄 압니다. 그래서 말하기가 거북한것도 사실입니다.》

경식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근거지가 이제 갓 태여나서 여러가지 난관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번 남만으로 원정하신 중요한 목적의 하나도 우리에게로 쏠리는 적들의 공세를 몸소 자신께로 집중시키시여 남만쪽으로 끌어가자는데 두신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귀중한 근거지를 한시바삐 우리 혁명의 요새로 튼튼히 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여부가 없지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뛰여다니는게 아니겠소.》

《그런데 내 보건댄 회장동무는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걸 하나하나 푸는데 맥을 다 빼고있는것 같이 보입니다. 피난민문제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집이나 식량같은것을 해결해주는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것보다도 그들에게 이제는 나도 근거지사람이다, 그러니 김일성장군님의 근거지창설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내바쳐야 한다, 이런 각오를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사업은 별로 힘을 돌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는 피눈물을 뿌리며 장군님의 품을 찾아온 그들에게 누구네 웃간을 주선해준다든지 하는것보다 우선 이런 사상을 심어주는것이 더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차응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경식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차응도가 그렇게도 애쓰고 돌아가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그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 말이 없소? 계속하오.》

차응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의견은 그겁니다. 바로 그런 각도에서 모든 사업을 밀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겁니다. 사람들의 사상을 움직이도록말입니다.》

《알만하우, 뭐 또 딴 의견이 있으면 다 이야길 해주오.》

《글쎄 딴 의견은 없구 그저 그것뿐인데 참고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식이는 차응도의 세찬 반발을 기다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늘이 점점 흐려오며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고맙소.》

이윽고 차응도는 격하게 한마디 부르짖었다.

《아닌게아니라 동무는 내 가슴을 정통으로 찔렀소. 그러니 아프기도 하오. 동무의 말은 너무도 정확하오. 내 결함을 바로 갈겨주었단말이요. 사실 그 누가 나한테 이런 비판을 해주겠소. 고맙소. 내 당장 고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어쨌든 명심하고 노력하겠소. 김일성장군님의 방침을 내가 똑똑히 집행하지 못하고있는것 같소.》

《회장동무, 나두 회장동무가 수고를 하는줄 압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의견을 제기하는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근거지가 귀중하기때문입니다.》

《그걸 내가 모를 사람이요? 가서 일이나 잘해주오. 그리고 또 생각나는것이 있으면 인편으로라도 의견을 보내주오.》

두사람은 서로 굳게 손을 틀어쥐였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병원 식모의 일을 도우시였다. 병원 식모는 지주네 광속에 있는 놋그릇들을 죄다 뒤울안 샘물가에 내다놓고 닦았다. 초대, 새옹, 술잔따위들은 병기창에 올려보내겠다고 따로 내놓고 그밖의 놋바리, 놋대접은 모두 기와가루로 닦았다. 그건 병원에서도 쓰고 개암골 유격대병실로도 건너보내겠다는것이였다. 식모는 한사코 김정숙동지더러 팔힘을 빼지 말고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지 않고 해종일 그릇을 닦으시였다.

해가 아직 기울기전인데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가 부른다고 하기에 안마당으로 돌아나가시였다. 안마당에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경식이가 어데로 떠나는지 모자를 쓰고 나섰다. 할아버지의사도 어제 아침 상녀어머니가 들고 간 보짐보다 조금 더 큰 보따리를 들고 나섰고 환자들도 여러명 웅성거리며 마당에 나왔다. 나오지 못한 환자들은 누런 얼굴들을 문턱앞에 내대고 눈물들이 글썽해서 경식이를 쳐다보고있다.

《정숙동무, 동무두 빨리 치료를 하고 나와서 일을 하오. 난 오늘 여기를 떠나겠소.》

경식이는 김정숙동지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몸으로 어떻게 병원에서 나가요?》

《내 몸이 어떻게? 인젠 다 나았소.》

《어디로 가시게요?》

《좀 멀리로 가야겠소.》

《그런 다리로 걸어간단말이예요?》

《걸어가다가 힘들면 달구지신세를 지겠소. 밖에 그쪽으로 가는 달구지가 와있으니까··· 시간이 급해서 동무와 더 딴 이야기를 못하고 떠나오. 꼭 몸 건강해서 일을 잘하오.》

경식이는 돌아서 대문간으로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쭝해진 가슴으로 환자들과 함께 뒤를 따라나가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고 또 이어 병원에서 나가겠다고 말한적도 없는데 무엇때문에 갑자기 나가며 또 좀 멀리로 간다는것은 어데로 간다는것인가. 차응도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떠나는걸 보면 무슨 중요한 임무를 맡고 떠나는것 같은데 그게 무슨 임무이기에 낫지도 않은 몸으로 불시에 떠난단말인가.

바깥마당엔 정말 달구지가 와있었다. 무슨 곡식마대같은 짐짝들이 실려있었다.

《이 보따리속에 있는 약을 계속해서 자셔야 합니다. 달여자실 형편이 못될것 같다기에 환약을 넣어보내는것이니 잊지 말고 하루 세번씩 식후에 꼭 자시오.》

동의가 달구지우에 보따리를 올려놓아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먹기만 하겠습니까···》

달구지군이 경식이더러 달구지우에 올라타라고 했다.

《뭘 문앞에서부터 달구지를 타겠소. 어서 갑시다. 지금같애선 하루 백리는 넉근히 걸을것 같소.》

달구지군은 더 말을 못하고 달구지를 몰았다. 경식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달구지를 따라나갔다. 여전히 한쪽발을 불편스럽게 디디긴 했으나 단장을 힘있게 내짚으며 걸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가며 어데 가서든 몸조심하라고 일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굳어져서 떠나는 경식이를 지켜보시였다. 이 순간 그이께서는 시퍼런 바다물속같은 경식이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는것 같으시였다. 결국은 무섭게 달라진 경식이 제몸을 부서뜨릴것 같은 독한 마음을 품고 사나운 싸움의 길로 떠나가는것이 아닌가. 이것은 결코 눈물을 쥐여짤 서러운 일이 아니라 맘이 더욱 든든해지고 주먹이 스스로 틀어쥐우는 엄숙한 일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자신도 모르게 강가에 거의 나간 달구지를 따라서 바삐 걸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으시다가 또 우뚝 걸음을 멈추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르시였다.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고 날아가는 검은 구름장들에서 더운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마치 준엄한 싸움의 길에 그 무슨 의미를 암시하며 때려주는것 같은 후더운 비방울이였다. 김정숙동지의 달아오른 뺨에도 큰 비방울이 여러개 날아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