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상촌이라 불리우는 혁명구역, 지금에 와서는 상촌근거지라 부르기도 하는 이 구역은 험준한 산들로 둘러막히운곳이였다. 사방으로 산이 막힌 속에 십여개부락이 들어앉아있는 넓은 지대가 펼쳐져있었다. 여기서는 이미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유격근거지 창설방침을 받들고 해방지구형태를 띤 유격근거지가 형성되였다. 지주나 주구들이 깡그리 청산되고 무산대중이 활개를 펴고 살수 있는 자유천지로 되였다.

이 자유천지로 일제의 《토벌》을 맞은 군중이 자꾸 모여들었다. 벌써 부암, 사슴골, 금페, 갈골, 하촌을 비롯한 열두동네가《토벌》을 맞았는데 그 동네들에서 올리미는 군중은 중촌구역에 와서 일시 자리를 잡았다간 그곳도 안심이 안된다고 상촌으로, 상촌으로 올리밀었다.

상촌어구 상고개와 대문바위라고 불리우는 두곳의 관문엔 총을 멘 보초들이 츰츰 서있는데 그들은 찾아드는 사람을 하루에도 수없이 세넘겼다.

상촌은 불시에 사람사태가 났다. 혁명위원회마당은 물론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옆 풀밭에까지 사람들이 하얗게 덮였다. 모두 불더미속에서 빠져나와 얼굴과 옷이 새까맣게 되고 등짐까지도 구들고래속으로 굴려가지고 나온것 같이 되였다. 하긴 새까맣게 된 등짐들은 다 두번이상 《토벌》을 겪은 등짐이였다. 제 동네에서 《토벌》을 겪고 다음 동네는 무사하려니 해서 그리로 가면 그 동네에 또 왜놈들이 달려들고 또 그 다음 동네로 가면 또 그리로도 이어 뒤쫓아와 달려들군했다. 그렇게 《토벌》을 거듭거듭 겪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애들은 울며불며 야단을 했다. 늙은이들은 아무데고 퍼더버리고 앉아서 살이 빠진 다리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였다. 무얼 끓여먹느라고 여기저기서 돌가마를 걸고 연기를 피워올리였다.

혁명위원회에선 지금 이런 복새판에 앉아 회의를 했다. 량통으로 새로 지은 사무실안에는 십여명의 간부들이 둘러앉아서 담배질을 해대며 급한 문제들을 놓고 이야기했다. 밀려드는 군중을 안착시키는 문제, 식량문제, 집문제, 그러는가 하면 적의 새로운 공세에 대처한 근거지방위문제··· 혁명위원회사업에도 일이 더미로 쏟아졌다.

방안엔 담배연기가 가득차서 초벽을 한, 벽이 마르느라고 가로세로 금이 간 사이로 연기가 풀풀 새여나갔다. 혁명위원회가 조직된 뒤 인민들은 부리나케 사무실을 지었다. 구들을 놓고 초벽을 했으나 아직 방턱밑도 막지 못했다. 벽만 튼게 아니고 구들도 터서 불을 땔 때면 연기가 꾸역꾸역 솟아나와서 곰을 잡게 만들었다. 생활은 엉성한 속에서 들썩들썩 끓었다.

회의가 한창인 때에 장정 한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김기준동지의 누이동생이 병이 위중해서 달구지에 실려왔다고 보고를 했다.

《기준동무의 누이동생?》

큰 책상앞에 앉아있던 턱수염이 검실검실한 혁명위원회 회장 차응도가 얼른 얼굴을 쳐들며 물었다.

《네, 의식이 없습니다. 자꾸 헛소리만 지르는데 손발을 만져보니 얼음장처럼 찹니다.》

《〈토벌〉에 부상을 입고 그렇게 된거요?》

《부상당한것 같진 않습니다.》

《앓기두 할테지, 그만치 고생을 하구 〈토벌〉에 어머니까지 잃었다니까···》

《어떻게 하랍니까? 사내동생도 같이 왔는데 그 애의 말이 떠날 때 자기 형이 상촌에 들어가거든 우선 차응도회장을 만나라고 했다면서 꼭 회장동지를 만나뵙구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받겠다는겁니다.》

《알겠소. 자 그럼 회의는 이만합시다. 식량문제는 자꾸 토론을 했대야 지금 당장 완전히 풀릴 문제도 아니구 추수를 해들일 때까지 난관을 극복하는수밖엔 없습니다. 그리구 아까 이야기한대로 로력문제는 각 동네 농민협회가 발동이 되는수밖엔 없습니다. 오늘 대성동무가 각 동네에 나가서 협회책임자들을 만나시오. 집 짓는데 로력이 걸렸으니까 로력을 내라구. 우선 목수, 목수는 있는대로 죄다 동원시키라구 이르시오.》

차응도는 한참 지시를 주고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빛이 불깃불깃하고 정력이 왕성해보였다. 그는 전갈을 가지고 들어왔던 장정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회의를 하던 사람들도 모두 따라나왔다.

밖엔 아까보다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다. 그저 홍수 터지듯 들이밀리는판이였다.

사람을 배치할 책임을 진 청년들이 여기저기서 이름을 적으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해빛이 쬐는 마당가운데 달구지 한채가 있는데 거기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넘겨다보며 끓는다.

달구지우엔 김정숙동지께서 콩잎만한 포대기를 덮고 누워서 무어라고 새된 소리를 지르신다. 얼굴은 창백하게 질리고 이마전엔 땀방울이 돋았다. 입술은 타다 못해 가랑잎같이 되였다. 큰 보퉁이들이 놓여있는쪽엔 발이 내놓여있는데 사람들이 그 발을 보고는 모두 가슴이 아파 눈물을 씻으며 돌아섰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발이 저렇게 험해졌을가고 다들 혀를 찼다.

마당으로 나온 차응도는 사람들을 헤치며 달구지곁으로 다가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또 뭐라고 소리를 지르시였다.

그리고는 그 눈이 다시 초점이 없이 허둥대며 숨을 가쁘게 쉬시였다.

차응도는 손을 내밀어 김정숙동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한참동안 그의 팔목을 잡고 맥박도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앓습니까?》

맥박을 보고난 차응도는 달구지를 몰고온 사람에게 물었다.

《제 오래비와 헤여져 반나절을 못걷구 오한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첨엔 물을 달라고 하더니 차츰 떨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토벌〉맞기전부터 집에서 고생을 이만저만 겪은줄 압니까? 결국은 그놈의 고생살이가 사람을 이렇게 넘겨뜨렸습니다.》

달구지를 몰고온 길주집 영호의 형이 한참 설명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를 부르시였다.

무엇때문에 오빠를 그리도 찾는지 그 안타까운 소리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긁어내렸다.

《응, 그만···인제 그만···오빠가 여기 있어. 나두 동무의 오빠와 같은 사람이야.》

차응도가 큰 손으로 김정숙동지의 머리를 쓸어주며 달랬다. 몹시 갈린 목소리였다. 어느때인가 김기준동지가 밤새 집안이야기를 하며 무슨 말끝엔가 자기의 녀동생이 아홉살때부터 갈구랑호미를 들고 밭에 나와 김을 매기 시작했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차응도는 바로 그 녀동생이 이 처녀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회장동무, 이 애가 인사를 합니다.》

달구지군의 소리에 차응도는 얼른 곁을 돌아보았다. 기송이는 인사를 한다는것이 인사받을 차응도는 보지도 못하게 한쪽 옆구리에 와서 허리를 굽석했다.

《이 앤 누굽니까? 기준동무의 동생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애두 제 누이만치 똑똑하지요.》

《허 이녀석, 나팔까지 들구왔군. 네가 나팔을 잘 분다는 녀석이냐?》

《잘 불지 못해요.》

기송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었다.

《울면 되나? 혁명을 하러 온 녀석이 울어?》

차응도는 한마디 으름장을 놓으며 나팔을 빼앗아보았다.

《나팔도 불을 맞았군. 기와가루로 번쩍번쩍하게 닦아라.》

한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나기 시작했다. 요새는 하루 두번씩 이렇게 밀려드는 군중을 각 동네로 안내해가는 일이 벌어졌다. 청년들이 보퉁이를 이고지고한 군중을 한패씩 이끌고 나간다.

《자 우리도 가자! 누나의 병을 빨리 고쳐내야지. 울음을 그쳐라. 지금 해방지구살림이란것이 갓 시작되여 엉성은 하지만 인제 살아봐라. 재미가 솔솔 나지···》

차응도는 기송이의 뒤통수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는 달구지군더러 달구지를 끌고 앞서라고 했다. 병원이 있는 개안촌으로 가자는것이였다.

차응도는 달구지를 앞세우고 나오다가 풀밭에 앉아있는 아낙네들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어디로들 가게 돼있기에 이렇게 늦장을 부리며 앉아있소?》

《개안촌인가 쇠안촌인가 하는데로 가게 됐다우.》

《허허, 이건 뭐 일을 잘못한다고 비양하는 감정이 조금씩들 있는것 같군. 그런데 왜 개안촌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지들 않구 앉아있소?》

《밤새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서 이러구있지요.》

《그러지 말구 어서들 떠납시다. 가서 자리를 잡구 푹 쉬시오.》

차응도는 한아름씩 되는 큰 보퉁이들을 힝힝 들어서 머리우에 이웠다. 그는 애들이 조롱박같이 달린 아낙네앞으로 가서는 애 하나를 뉘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이런 조무래기를 두셋씩 달구 오시려니 좀 고생을 했겠소. 여 이놈, 너두 혁명을 하자구 태여났니? 옳지, 좋아서 벌씬벌씬 웃는군···》

차응도는 껄껄 웃었다. 아이어머니는 가냘픈 웃음을 짓더니 외면해서 눈물을 씻었다.

차응도는 종시 아낙네들까지 죄다 일으켜세워가지고 떠났다. 무슨 일이든 단쇠뿔 뽑듯하는 성미같았다.

사처에서 집을 짓고있었다. 지금 초벽을 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기둥을 세우고 연목만 걸어놓은 집들도 있다. 사람들이 못을 박고 톱질을 하고 한쪽에서는 다리를 걷어붙이고 흙을 이겼다. 어떤데선 집터를 닦느라고 가래질을 하기도 했다. 본시 있는 동네의 변두리에 새 동네가 몇개고 더 들어앉은것 같다.

차응도는 걸어가면서도 집짓는 사람들에게 토벽을 두텁게 하라느니 연목을 길게 해서 처마가 비갈망을 하게 하라느니 하며 연신 소리를 지른다.

동네뒤에 오니 물이 깊진 않으나 폭이 넓은 강이 있었다. 그 강물을 건너서니 개안촌이였다. 온통 초가집들인데 동네 맨뒤쪽에 지주를 처단하고 빼앗아낸 큰 기와집 한채가 있었다. 이 집은 지금 사랑채는 적위대합숙으로 쓰고 안채는 병원으로 쓰고있었다. 먼저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이 집 마당에 와서 웅성거렸다. 마당에서 사람들이 들끓게 되자 방금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늦조반을 먹던 적위대원들이 내다보며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또 밀려든다.》

《자꾸 밀려들어라. 신골박듯···》

《여 말 말어, 회장 들어온다.》

그제야 입들을 다물었다. 모두들 아닌보살을 하며 국에 만 밥을 수걱수걱 퍼먹었다. 칼을 찬 소대장이 먼저 일어서 퇴마루로 나가며 차응도에게 인사를 했다.

《아니 사람 데리고온 명진동무는 어데 가고 여기서들 이렇게 웅성거리오?》

차응도는 소대장의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좀 기다리라 해놓고 누굴 만나러 갔나봅니다.》

《만나긴 누굴 만난단말이요? 누구네 집에 사람 몇명씩 들어있다는 명세가 다 있는데 그걸 봐가며 빨리빨리 들이진 않구···》

《회장동지, 집집마다 신골박듯했습니다.》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 신골이 무슨 신골이요? 그럼 해방지구에 온 우리 사람들을 한지잠을 자게 할테요?》

적위대 소대장은 낯이 붉어져 말을 못했다.

《좌우간 좀 기다려들 주시오. 우리 살림이 이 모양이란걸 아시구 깊이 량해해주셔야 합니다. 아주머니들도 저기 그늘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쉬십시오.》

그는 함께 건너온 아낙네들을 돌아보며 마당가 나무그늘을 손짓했다. 아낙네들은 모두 마당가로 밀려나갔다. 그들은 집이 없어도 사람좋은 차응도의 말이 고마와 안도의 숨들을 내쉬였다.

차응도는 이어 안채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듯마듯 의사 둘을 데리고 나왔다. 한사람은 흰수염이 가슴에 드리운 동의이고 한사람은 젊고 날씬하게 생긴 신의였다. 이 신의도 월평시에서 의사 노릇하던 사람인데 차응도가 교양해서 이곳으로 끌어들여왔다.

《음, 이런 고생이 있는고? 저리 좀 비켜들 서우.》

동의가 달구지우에서 신음하시는 김정숙동지를 보자 활개짓을 하며 비켜들 서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김정숙동지를 품에 춧석 안아들고 돌아섰다. 활달하기도 하고 기운도 장사였다. 다리가 길어서 발을 내디디는것도 성큼성큼 둬발씩 내디디는것 같았다.

《몸이 이렇게 검불같으니 탈이 안날수 있는가.》

동의가 개탄했다.

그는 김정숙동지를 대청에 들여다눕혔다. 기송이, 차응도, 달구지를 몰고온 길주집 영호의 형까지도 따라들어와 대청이 웅성거리였다. 그통에 안채에 누워있던 환자들도 피골이 상접한 얼굴들을 들고 내다보았다. 환자란 모두 《토벌》을 맞은 동네들에서 맞들려 올라온 부상자들이였다. 이 부상자들속엔 부암에서 온 경식이며 성재의 어머니 리상녀도 있었다. 맏웃방에 있던 경식이가 지팽이를 짚고 비척비척하는 걸음으로 나왔다.

《김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 탈이 나서 달구지에 실려왔소.》

차응도가 경식이를 돌아보며 알려주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적은이가 여기 와 있나?》

영호의 형이 경식에게로 다가오며 부르짖었다.

《수고를 했습니다. 길주집형님이 정숙동무를 데려왔습니까?》

《그렇다네. 오다가 탈이 나서 짐실은 달구지에 태워가지고 오질 않았나. 그런데 참 몸은 어떤가?》

《전 많이 나았습니다.》

《그거 어디 나은것 같은가? 얼굴이 말이 아닐세.》

영호의 형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경식이를 쳐다보았다.

이러는데 부엌 저쪽 건너방에 누워있던 리상녀도 한손으로 상처를 붙들고 대청으로 나왔다.

《어이구, 이거 부암에서들 오지 않았나?》

《허 아주머니두 여기 와서 치료를 받구있군요?》

《그렇다우, 장군님 덕분에 이런 신선같은데 와서 치료를 받구있지 않소. 그래 부암사람들이 지금 모두들 올라오우?》

《예, 많이 올라들 오지요.》

《아니 그런데 이건 누구요. 정숙이 아니요? 이 앤 무슨 병이요?》

리상녀는 그제야 누워있는 김정숙동지를 띠여보고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오다가 탈이 났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고생살이가 이렇게 만들었지요.》

《기가 막혀라···》

리상녀는 눈물이 글썽해서 김정숙동지를 내려다보았다. 신의가 청진기를 가지고 진찰을 하는동안 리상녀는 한쪽에 서있는 기송이를 끌어다가 품에 꽉 그러안았다.

《이녀석아, 넌 어머니두 잃구 누나도 저렇게 됐구나! 저 불쌍한 누나가 언제 사람몰골이 되겠니?》

리상녀가 이러는바람에 기송이는 돌아서서 팔소매를 눈으로 가져갔다. 의사가 떠들지들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주머니, 북새를 일구지 말랍니다.》

《어허이구 참, 회장어른 말이 지당하우. 남의 설음에 제 설음을 덧짐치는군.》

《아주머니야 무슨 설음이 있겠소?》

《칼 맞구 못살게 됐는데 설음이 없겠소?》

차응도는 껄껄 웃었다. 리상녀가 온지 몇날 안되긴 하지만 차응도는 이 입심 센 리상녀를 대하기만 하면 롱을 던지군했다. 바로 그러는덴 아직 자기 아들의 불행을 모르고있는 리상녀에 대한 각별히 아픈 감정도 숨어있었다.

신의는 무슨 주사인지 여러대 놓았다. 경식이는 다리가 저려서 먼저 맏웃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그는 두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쏘아보았다. 무서운 회오가 또 검은 구름 밀려오듯 밀려왔다. 견디기 어려운 생각들이 북받치며 머리를 쳐들었다. 부암에서 벌어진 일체의 비극을 내가 책임지지 않고 누가 책임지겠는가. 그날 저녁에 시간이 없었단말인가. 갈골, 금페, 하촌의 군중이 올리밀 때 부암의 인민을 이동시킬 시간이 없었단말인가. 함께 손잡고 일하던 동지들, 귀중한 인민들, 늙은이들, 어린이들, 그 희생의 대가를 내가 내 일생에 무엇으로 보상한단말인가. 상준이, 봉진이, 성재, 그 열렬한 사람들을 인제 어데 가서 만나본단말인가. 성재의 희생은 아직 그 어머니도 모르고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자기의 아들이 상촌에 나타나기만 고대하고있다. 언젠가는 전해야 할 그 슬픔을 인제 어머니에게 어떻게 전한단말인가.

정숙이는 저렇게 앓다가 무사히 살아날수 있을가? 내가 인제 김기준동지의 낯은 어떻게 대하는가.

경식이는 주먹을 돌같이 틀어쥐였다. 한증막에 누운것 같이 얼굴과 목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얼마후 대청마루는 조용해졌다. 의사들이 어떻게 응급처치를 했는지 환자도 안정을 한것 같다.

《크게 념려할건 없습니다.》

젊은 의사의 말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니 경식이는 어지간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어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왔다. 아편으로 마취시킨 환자들옆으로 다리를 조심히 옮겨디디며 경식이의 곁으로 온다. 차응도였다.

《오늘은 어떻소? 다리가 부었던건 좀 내렸소?》

차응도는 소곤소곤 물으며 바지가랭이속으로 손을 넣어 더듬으며 다리를 만져본다.

《많이 내렸습니다.》

경식이는 서글프게 한숨을 지었다.

《한숨은 무슨 한숨이요. 또 부암생각을 하고있소?》

차응도는 혀를 끌끌 찼다.

《부암생각을 왜 안하겠소. 나는 부암의 피맺힌 원한을 한평생 잊지 못하겠소.》

경식이는 눈을 무섭게 굴리며 말했다.

《누가 잊으랬다간 얻어맞겠소. 허허허, 아무튼 몸이 낫고봐야 할것 아니요.》

차응도는 경식이의 다리를 쓸어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인젠 봉석동무가 몽강쪽에 다달았겠는데 장군님께 어떻게 보고를 드리는지 모르겠소.》

잠시후 차응도는 경식이의 손을 쥐고 앉아 수군수군말했다. 사실 김봉석은 얼마전 몸이 좀 회복되자 이어 이 지구에서 유격대조직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있다는 보고를 올리려고 장군님 계시는 몽강쪽을 향해 떠나갔다.

《장군님께서 봉석동무를 만나시면 모든 문제를 다 물으실텐데 정말 요새는 잠이 안오우. 무장대오를 꾸리는 문제도 그렇지만 이곳 사업이 죄다 이렇게 엉성하고 미흡한데 말씀을 들으시면 얼마나 심려를 하시겠소.》

경식이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빨리 몸을 고치고 일어나야 하겠소. 어느 누가 혼자 힘으로 이 많은 일을 다 해낼수 있겠소? 부암사건에 대해선 절대로 깊이 생각하지 마우. 포악한 원쑤와 맞서서 혁명투쟁을 하는데 어떻게 매번 사전에 딱딱 그놈들의 기도를 알아맞히겠소? 동무나 나나 다같이 생각이 밭은 사람들로서 장군님의 방침을 받들고 혁명을 하는건데 자기 잘못을 느낀다손치더라도 너무 그렇게 고민에만 빠져있어서야 되겠소.》

경식이는 차응도의 말이 몹시 고마왔다. 오는적마다 늘 이런 소리를 해주는데 자기는 왜 고민속에서 발을 뽑고 일어서지 못하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얼마후 차응도는 곁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나오다가 안정해서 잠이 드신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또 잠간 들여다보았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남동생이 보이지 않아 어데 갔는가 해서 살펴보았다. 병원 식모가 끌고들어가 밥을 먹이였다. 차응도는 그것을 보고야 안심하고 대문밖으로 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튿날 저녁때에야 정신을 차리시였다. 눈을 뜨시니 흰수염을 기다랗게 드리운 로인이 곁에 앉아있고 그옆에 또 얼굴이 갸름한 아낙네가 무슨 미음그릇같은것을 들고 앉아있었다. 아마 자기를 흔들어서 깨운것 같으시였다.

《자 어서 미음을 좀 먹자구.》

아낙네가 미음을 한숟갈 떠서 자기 입술에 대보더니 얼른 김정숙동지의 입으로 가져왔다.

《어서 입을 벌리세요.》

《아주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시였다. 그리고는 얄팍한 눈까풀속에 있는 아직도 몽롱한 기운이 벗겨지지 않은 눈망울로 여기저기 더듬어보시였다.

《어서 입을 벌리라는데두··· 미음을 먹어야 살아요.》

《여기가 어디예요?》

《여긴 상촌근거지 병원이라우.》

《상촌근거지 병원?》

김정숙동지께서는 꿈에서 듣는 소리같아서 또 여기저기 더듬어보시였다. 그리고는 자기를 둘러싸고 앉아있는 로인의 얼굴과 아낙네의 얼굴을 뚫어지게 고쳐 쳐다보시였다. 인제야 부암 안개더기우에서 오빠와 애기를 리별하던 생각이 떠오르고 사슴골 뒤령에서부터 불시에 오한을 느끼며 덜덜 떨다가 잡관목속에 넘어져 바위밑으로 굴러나던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그담 일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으시였다.

《자 어서 한숟갈 먹자구.》

《아주머니!》

《왜 그래요?》

《고마와요.》

그러자 손목을 잡고 앉아 맥을 보던 로인이 껄껄 웃으며 한마디 끼여들었다.

《여기선 그런 말이 필요없소. 집도 먹을것도 제것이구 병원두 다 제것이요. 어서 받아먹소. 인젠 먹기만 하면 쉬 나을수 있소.》

문득 근거지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혁명의 집이라고 하던 오빠의 말이 떠오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마운 생각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서 종이장같이 얄팍해진 입술을 방긋이 여시였다.

《좀더 크게 벌려요. 미음숟가락이 들어가게··· 옳지, 그렇게 벌려야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병원의 식모가 너무도 극진히 권하는바람에 미음 한그릇을 반이나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점점 몸이 훈훈해오는것을 느끼시였다.

미음을 들고나시자 로인이 손과 발에 침을 놓았다. 몹시도 아프시였다. 그런 침을 여러번 맞았겠는데 인제야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것 같으시였다. 침을 맞고나신 얼마후엔 또 젊은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가지고 진찰을 했다.

의사가 한창 진찰을 하는데 어데서인가 나팔소리가 들렸다. 웅글지 못하고 헛김이 세서 튀튀소리가 나는 나팔소리다. 그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기송이 생각을 하시였다. 참 기송이가 어떻게 됐는가? 그 애가 나와 함께 오긴 왔는가? 자신께서 잡관목 숲속에서 굴러나며 의식을 잃을 때 누나를 부르며 발을 굴렀다고 생각되시는 그 기송이가 그뒤 자기를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가. 나팔소리는 분명 기송이의 나팔소리였다.

《흥분해선 안되오. 또 가슴을 들먹이는군.》

《안···안야요.》

의사가 주의를 주는 소리에 대꾸하며 김정숙동지께서는 될수록 침착해지려고 애쓰시였다.

진찰을 마치고난 의사는 팔에 무슨 주사인가를 한대 놓았다. 그러는데 정말 기송이가 머리맡에 나타났다.

《누나!》

기송이는 누나가 눈을 뜨고 누워있는걸 보더니 반색을 해서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고 주사를 맞지 않는 팔을 내밀어 기송이의 터실터실한 발목을 붙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것을 간신히 참으시였다. 의사가 물러간 다음에야 동생을 곁에 앉으라고 하시였다. 기송이는 들고있던 나팔을 한옆에 놓으며 누나의 곁에 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못하고 쏟아지는 눈물을 한참 씻으시였다.

《우지 말어.》

《응, 울지 않을게.》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하며 또 손을 내밀어 동생의 손을 꼭 쥐시였다. 그이께서는 그제야 동생이 새옷을 입은걸 알아보시였다. 기송이는 여태 입고다니던 새까만 중의적삼은 어데다 벗어던지고 토목으로 지은 약간 품이 큰듯한 양복을 입었다.

《너 어디서 이런 옷을 얻어입었니?》

《회장아저씨가 오늘아침 웬 아주머니한테 말해서 한벌 얻어주었어.》

《회장아저씨가 누구냐?》

《누나두 참, 혁명위원회 회장아저씨 몰라? 형님이 떠날 때 이야기해주지 않던? 누난 참 정신이 없이 앓았으니까 몰랐을거야.》

《그 회장아저씨가 나두 여기 데려다가 치료를 받게 해주었니?》

《그럼, 우리가 혁명위원회마당에 들어서자 이어 회장아저씨가 나와서 맥을 보더니 달구지를 이리로 가자고 돌려세웠어. 그래서 여기 건너오니까 의사선생들이 달려들어 침을 놓는다 약을 먹인다 법석하지 않어? 여긴 병원이야. 지금 경식형님이랑두 여기서 치료를 받아.》

《뭐 경식오빠두?》

《그럼, 아까 지팽이 짚고 밖으로 나갔어. 그리구 청진집어머니두 여기 있잖어.》

《뭐 청진집어머니두···》

《저기 건너방에서 치료받는대.》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보다도 경식이가 여기 있다니 무척 반가운 생각이 드시였다.

《그래 내가 상촌에서 여기까지 오긴 어떻게 왔니?》

《누나두 참, 길주집달구지를 타구 왔지뭐. 그 집 아저씨가 달구지우에 안아다 눕히구선 랭수도 퍼먹이구 포대기도 꺼내 덮어주었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한숨을 내쉬시였다. 그사이 이만저만한 곡절이 있은것 같지 않으시였다. 그저 고맙고 송구하시였다. 불에 타는 가랑잎같은 자기를 그 모든 고마운 사람들이 받들어 안아다가 이렇게 살려준것만 같으시였다.

기송이는 신명이 나서 이야기를 하더니 얼른 돌아앉아 나팔을 닦았다. 차응도회장이 말하던대로 기와가루로 해종일 닦아서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걸 또 닦았다. 그는 인제 우그러진데를 펴고 몇군데 째진 구멍을 납과 청강수를 얻어 때기만 하면 틀림없이 소리가 제대로 날거라고 했다. 그에겐 벌써 부암에서 안고온 설음같은것이 꼬물만치도 남아있는것 같지 않았다. 그저 기운이 나서 어깨팍을 구핏구핏하며 나팔을 문질렀다.

《회장아저씨가 그러는데 난 인제 아동단에 들게 해준대나. 그리구 학교에도 다니게 하구···》

《여기 학교가 있다더냐?》

《체, 학교를 혁명위원회 있는 마을에다 얼마나 크게 짓게? 인제 종두 이만치 큰걸 단대나?》

기송이는 팔뚝 하나를 휘여안아보이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뻐근해지시였다. 상촌, 상촌 하더니 정말 이렇게 좋은 세상이였는가. 오빠는 어머니나 회령집의 품보다 김일성장군님의 품이 어방없이 더 크고 따사로운 품이라고 하셨지. 바로 그런 품으로 가는것이니 우지 말고 떠나라고 달래기도 했었지. 이게 그 품 아닌가. 그 사랑의 집, 혁명의 집이 아닌가. 바로 이런 세상을 꾸리는걸 혁명이라고 하는가. 장군님께서 이런 세상을 꾸리시자고 사람들의 힘을 단합시켜 혁명을 령도하시는것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무척 열려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 무서운 불길과 죽음의 아우성속에서 너무나도 크고 찬란하게만 들어오던 김일성장군님의 성함과 혁명이라는 말이 인제 여기 와서야 좀더 뚜렷한 의미를 안아다주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의식이 흐려오시였다. 의사가 흥분해선 안된다고 질색을 하더니 무슨 진정제를 썼는지도 모른다. 그이께서는 곧 두눈을 사르르 감으며 새까만 망각속에 떨어지시였다. 나팔을 한참 문질러대던 기송이는 누나가 잠드는걸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번쩍이는 나팔을 들고 대문밖으로 뛰여나갔다. 마당엔 기송이의 나팔소리에 모여든 애들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애들은 흰수염이 가슴에 치렁거리는 늙은 할아버지의사가 무서워 대문안으로는 밀려들지 못하고 기송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있었다.

《얘, 또 한번 불어봐라! 어데 건너말 개암골병실에서 부는것만치 잘 부나 보자!》

애들이 기송이를 둘러싸며 떠들었다.

《힝, 개암골병실이 다 뭐냐? 인제 이 째진델 납으로 때구 여기 우그러진것만 펴면 어림두 없다.》

기송이는 애들에게 나팔을 내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만 넌 개암골병실에서 나팔부는걸 못봤으니말이지 보기만 했다면 두주먹을 쥐고 내뺄거다.》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기송이도 씩 웃었다. 건너말 개암골병실에서 유격대가 나팔을 얼마나 잘 부는지 한번 가보고싶은 생각이 부쩍 들었다.

《애들아, 너들 그럼 개암골유격대 있는데 가보지 않으련?》

기송이는 슬쩍 애들을 구슬리였다. 개암골이 어덴지 모르기때문에 애들을 앞세우고 가려는것이였다.

《거긴 보초가 서서 못들어가.》

《보초가 어쨌게 못들어가? 저 상고개나 대문바위어구에도 보초가 여러명 서있었지만 우리는 달구지를 몰면서 막 들어왔어. 총멘 보초가 나더러 먼길에 수고했다고 벙싯 웃으며 뒤통수까지 줴박지 않아.》

기송이의 소리에 애들이 또 웃었다.

기송이는 종시 애들을 데리고 건너말로 떠났다. 강으로 나온 애들은 모두 중의와 적삼을 벗어서 허리띠로 묶어메고 첨벙첨벙 물에 들어섰다. 애들은 물을 건느며 법석 들끓었다. 어떤 애는 제 옷꾸레미를 다른 애한테 맡기고 강물에 엎디여 네발걸음을 하며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얕은 물인데 물밑엔 조약돌이 깔려 구슬같이 알른거렸다.

강을 건너선 애들은 혁명위원회가 있는 근방을 지나서 한참 산밑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들은 보초가 서있는 골짜기로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골짜기길로 살금살금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어데서 총소리가 땅하고 울렸다.

《이게 뭐냐? 왜놈들 안야?》

기송이가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그러자 애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한다는거다.

《여기 왜놈이 무슨 왜놈이야?》

《그럼 뭐냐? 누가 총을 쏘는거냐?》

《유격대아저씨들이 쏘지뭐.》

《유격대가 그저 망탕 총을 쏜단말이냐? 왜놈들이 덤벼들어야 쏘겠지.》

《아니야 총쏘는 련습을 하는거야.》.

기송이는 그제야 후두두 떨리던 가슴이 잦아들었다. 그는 두번씩이나 《토벌》에 놀랐던 가슴이라 총소리만 들으면 치가 떨렸다. 또 땅하는 총소리가 울린다. 정말 사격련습하는 총소리가 틀림없는것 같다. 왜놈과 쌈이 붙었으면 콩볶듯 쏴댈테지 무엇때문에 저렇게 이따금씩 땅땅 소리를 내겠는가?

기송이는 가둑나무숲으로 다람쥐처럼 기여올라갔다. 곁에서 기는 키 큰 애가 한번 여기 왔다가 보초한테 붙잡혀 혼이 났다고 하면서 살금살금 기라고 주의를 주었다.

《주먹으로 갈기던?》

《아니야, 그저 꾸짖지뭐. 유격대구역에 왔다구···》

한참 기여올라가니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등성이가 나졌다. 나무들새로 내려다보니 넓은 골짜기에 정말 지붕에 새를 입힌 귀틀집들이 여러채 앉아있다. 한 귀틀집은 학교처럼 기다랗게 지었는데 그 집 굴뚝에선 흰 연기가 구불거리며 피여올랐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했다. 애들은 모두 나무숲밑에 납작 엎드렸다.

《얘 저기서 콩나물을 씻는다.》

기송이곁에 엎드린 애가 속삭였다.

《콩나물은 씻어서 뭘하니?》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저 큰 집이 유격대식당이란다. 그러니까 식당의 유격대아저씨들이 나와서 콩나물을 씻는거지.》

나무사이로 내려다보니 정말 개울물이 줄줄 흘러가는데 유격대원이 앉아서 콩나물을 씻고있다. 콩나물버치가 한아름 잘되는것 같았다. 기송이는 그렇게 큰 버치는 처음 보았다.

또 총소리가 땅하고 들려온다. 연거퍼 또 한방 울린다. 아무래도 병실이 있는곳에서 나는 총소리는 아닌것 같았다.

《얘, 총은 어데서 쏘니?》

《저기 앞산너머에서 쏘는거야. 거기 훈련하는 마당이 있단다. 너 저 총 한방에 왜놈의 모가지 하나씩 떨어진단다.》

《왜놈을 잡아다놓구 쏘게?》

그 소리에 눈이 귀밀알같이 작은 애는 깔깔대며 웃는다. 그 애는 약삭바르고 빨라서 이 골짜기안의 일은 죄다 알고있었다. 그애의 이야기를 들으니 유격대원들이 널판장이나 마분지같은데 왜놈을 그려붙이고 눈깔이나 량미간을 겨누고 쏜다는것이였다.

《얘들아, 나왔다. 나팔수 나왔다.》

저쪽 가둑나무밑에서 애들이 떠들었다. 그 소리에 이쪽에 있는 기송이들도 싸리무데기를 굽히며 목을 빼들었다. 역시 귀밀눈애가 빨랐다. 그는 벌써 나팔수를 띠여보고 기송이의 너부죽한 큰 귀를 자기편으로 잡아당겼다.

《저것 봐라, 나팔 불러 나왔어. 저것 봐 저것, 바위돌우로 올라선다.》

그제야 기송이도 유격대식당앞 너럭바위우에 올라선 나팔수를 띠여보았다. 군복을 입었는데 몸이 날씬하고 맵시도 있었다. 나팔수는 앞산등성이를 향해 돌아서더니 나팔을 들어올린다. 붉은 수실 달린 번쩍번쩍하는 나팔이였다. 기송이는 뛰는 가슴을 누르며 숨을 죽였다. 나팔소리가 아니라 그 무슨 신기한 소리가 울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딴따 딴따 따안따 딴따따아···

산등너머로 아니 그 저편 석양이 물든 불구름속으로 나팔소리가 퍼져나간다. 당장 하늘과 땅사이에 엄청나게 힘차고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난것 같았다. 나팔수는 나팔을 이쪽저쪽으로 돌려대며 불었다. 어쩐지 하늘에서 내려온 장수같기도 하였다.

《저녁 먹으러 모여오라는 신호나팔이야.》

곁의 애가 또 알려주었다. 그러나 기송이는 그따위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나팔소리에만 황홀해져서 목을 빼든채 눈동자도 까딱 움직이지 않고 들었다. 참말 그렇게 잘 부는 나팔소리는 처음 듣는다. 그저 딴따 딴따가 아니고 얼마나 멋들어지게 잘 꺾어넘기는가. 도대체 무슨 곡일가.

기송인 아까 희떱게 뽐을 냈다가 너무도 된방망이에 얻어맞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도 앞으로 꼭 저런 나팔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가슴을 들먹거렸다.

나팔소리가 끝나자 이어 앞산등성이우로 군복을 입은 유격대원들이 줄을 지어 넘어왔다.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 알수 없다. 산등성이우로는 우뚝우뚝 자꾸 나타난다. 맨앞에선 댓발은 될것같은 넓이의 붉은 기폭이 바람에 펄펄 날린다. 기송이는 눈을 점점 더 크게 떴다.

《야 신난다.》

애들이 떠들었다. 정말 기송이도 신이 났다. 나팔소리도 나팔소리지만 이 골짜기에 군대가 이렇게 들끓을줄은 몰랐다. 여기 같다면 부암에 달려들었던 그런따위 왜놈군대가 다 무얼가. 그저 대바람에 쓸어눕히질 않겠는가. 식당앞으로 들어선 유격대원들은 붉은기를 앞세우고 걸음을 맞춰 행진했다. 기다란 싸창을 찬 유격대원이 왔다갔다하며 뭐라고 구령을 지른다.

《이게 정말 모두 우리 군댄가?》

《얘, 그건 무슨 병신같은 소리냐? 너 우리 군대가 여기만 있는줄 아니? 다른 골짜기에두 있어. 대문바위근방에두 병실이 있어.》

《야 정말···》

기송이는 가슴이 뻐근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알수가 없었다. 괜히 속눈섭밖으로 눈물이 삐여져나와 량볼우로 두르르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