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3

 

제 5 장

3

 

원쑤의 《토벌》이 있은지 나흘이 지나갔다. 애기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갔다. 그동안 동네의 애기어머니들이 한모금 두모금 먹여주어서 어떤 땐 조그만 배가 제법 불룩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젠 어느 집에 가서도 젖을 얻어먹이지 못해서 쉰목소리로 꺽꺽 보채다간 두눈이 사르르 감겨지군한다. 인젠 동네의 애기어머니들을 찾아갈 맥도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토벌》을 맞고 제 아이에게 먹일 젖도 없어서 고생하는데 찾아갔대야 그들의 맘만 편안치 못하게 만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다 못해서 오늘은 송하동에 가볼 생각을 하시였다. 젖이 남아서 매일 한바리씩 짜서 내버린다니 그 버리는것이야 달라면 안줄가. 젖이 한바리라면 어딘가.

《얘 기송아, 오늘 너두 송하동으로 같이 가자.》

《송하동엔 왜?》

《송하동에 젖이 흔한 아주머니가 있단다. 가서 인남이에게 젖을 좀 얻어먹여가지구 오자.》

《송하동이면 사슴골 담 동네지?》

《그래.》

《나두 지난 봄에 오복이랑 송하동에 가봤어. 크다만 강이 있어.》

《그게 월평시로 흘러가는 강이란다.》

아침내내 나팔을 두드리고 닦고 하며 튀튀 소리를 내보기도 하던 기송이는 신바람이 나서 떠날 차비를 했다. 그는 우물로 달려가서 세수도 하고 목과 가슴팍도 문지르고 들어왔다. 그러나 아무리 닥달질을 해보아야 새까맣게 어지러워진 옷은 어찌 할수가 없었다. 남의 동네에 저런 옷을 입힌 동생을 어떻게 데리고 가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도모르게 한숨을 지으시였다. 하기는 자신의 옷도 말이 아니였다. 재를 뒤집어써서 까맣게 된 적삼에다 어머니의 상처에 동여매느라고 아래단을 찢은 치마를 걸쳤는데 짚세기마저 다 꿰져서 발가락이 내놓이시였다. 그걸 신고는 송하동까지 갔다와낼것 같지도 못하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을 다지고 동생의 등을 떠미시였다. 옷이 아무렴 어떤가. 그 동네에서도 《토벌》을 맞아 이렇게 된걸 다 알아줄것 아닌가. 이쯤 생각하니 오히려 더 힘이 생기는것 같으시였다. 사실 그이께서는 처음부터 기송이를 데리고 가려는 생각은 없었으나 어제보다도 더 눈앞이 어질어질 돌아서 혹시 도중에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데리고 가시려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데리고 마을앞으로 나오시였다. 초가을바람이 설렁거리며 불어왔다. 사람 사는 세상에야 그 무슨 일이 있든 시절은 시절대로 오는가싶다. 조밭들이 모두 누런 기운을 띠여갔다. 띠염띠염 감자밭들이 있는데 역시 《토벌》을 겪은 새까만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감자를 캐고있다.

길옆에서 감자를 캐던 아낙네들이 어데로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송하동으로 젖 얻어먹이러 간다고 하자 모두들 놀라며 송하동이 어디게 그리로 가느냐고 했다.

《송하동이 뭘 그렇게 먼가요? 잠간 다녀올건데요.》

《어이구 기막혀라. 저 어린걸 어떻게 살려내누···》

아낙네들은 모두들 한숨을 쉬였다. 부암을 떠나간다고 하던 사람들도 적잖게 감자밭에 와서 감자를 캤다. 어떤 밭머리엔 달구지도 와있었다. 역시 다 익은 곡식에 발목이 잡혀 그 어데 멀리로는 갈수가 없었던것 같다. 부암근방의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초막을 치고 먹을걸 캐가는것인지도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와 함께 고개길을 넘어 가까스로 사슴골을 지나시였다. 감자란 맥을 못쓰는 낟알이 분명했다. 아침에 떠날 때 같아서는 하루종일 든든할것 같았는데 송하동앞 큰 강가에 이르시자 벌써 초기가 오며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송하동집들은 강건너 질펀하게 퍼진 버덩에 앉아있었다. 기와집도 몇집 있는데 여기는 《토벌》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풍지대같았다. 마을앞 강가엔 버들이 우거져있고 거기서 애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반두를 들고 뛰여다니고있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리를 건느시였다. 동네에 들어서 집을 물으시니 최두갑이넨 마을뒤 밋미스름히 올라간 언덕우에 있었다,

언덕우에 올라서시니 마당이 넓은 덩그런 기와집이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섬찍한 생각이 드시였다. 드높은 추녀와 한쪽은 닫긴채 있는 큰 대문짝들을 보시니 어쩐지 민가네 그것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정말 이런 집에서야 짜내버리는 젖인들 남한테 주자고 할가.

《누나, 왜 들어가지 않아?》

김정숙동지께서 마당가운데서 머밋머밋하시자 기송이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물었다.

《괜히 온것 같구나.》

《어째서?》

《이런 집에서 젖을 먹여주겠니?》

《정말이야, 민가네 집 같애.》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서서 망설이시였다. 이윽해서야 그이께서는 아무래도 온 걸음이니 들어가보자는 생각으로 조츰조츰 대문앞 대돌을 디디며 올라가시였다. 기송이도 따라올라갔다. 대문안으로 들어서시니 얼굴이 뾰조름한 아낙네가 방금 가마에서 익혀낸듯한 명주를 널었다. 안채 처마로부터 사랑채 처마로 빨래줄이 여러줄 늘여져있는데 줄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명주가 드리워있다.

《이게 뭐냐?》

오누이가 마당으로 들어서듯마듯 명주를 널던 아낙네가 질겁을 하며 소리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더 들어갈래야 명주때문에 들어갈수도 없으시였다.

《저···》

《저가 뭐냐? 어데서 온것들이야? 젖은 명주에 무엇이 묻겠다!》

《우린 부암에서 왔어요. 이 집에서 애기어머니의 젖이 남는다고 하기에 이 애한테 젖을 한모금 얻어먹이려고 왔어요.》

《젖? 아이구 기차라. 그게 어떤 젖이라구 그 애한테 먹여? 어서 나가지 못하겠니? 명주에 다가서지 말고 어서 나가라.》

나이는 쉰가까이 됐을것 같은 녀편넨데 기름 바른 머리로 낭자를 틀고 치마를 찰찰 끌며 포악을 썼다. 이러는데 안채의 허리문이 열리며 며느리인듯한 녀자가 토방우로 나섰다. 정말 물병같은 큰 젖통을 한손으로 누르며 마당에 선 아낙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네 젖을 얻어먹이겠다고 왔다는구나. 젖이 한강수처럼 흐른들 저런 앨 끼고앉아 젖을 물리겠니?》

《아이참, 별 꼬락서니를 다보네.》

토방에 나섰던 며느리는 이렇게 종알대며 김정숙동지를 흘겨보더니 힝하니 도로 문을 열고 들어가버린다. 잠간 눈에 비쳤을뿐인데 무섭게 짜고 매웠다.

《어서 나가거라. 명주 더럽히겠다.》

아낙네는 명주가 담겼던 대야를 들어올리더니 대야굽에 있는 비누물을 뿌려던졌다. 물이 오누이의 몸에까지 뛰여왔다. 애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기송이를 이끄시였다. 그러나 기송이는 끌리지 않았다. 명주에 흙이라도 뿌려던질 생각인지 독이 오른 눈으로 땅바닥을 빙빙 돌아보며 다리를 벋디디였다.

《얘 가자, 그렇게 하는게 이기는게 아니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두눈에 비수같은 빛이 펄펄 끓었지만 애써 분기를 억누르며 동생을 달래시였다.

대문밖으로 끌려나온 기송이는 펄펄 성이 나서 누나의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비틀어 뽑으며 누나를 확 밀어내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기를 업은채 비틀거리시였다. 기송이는 흐느껴울었다.

《우지 말아, 이런 집으로 젖을 얻어먹이러 오는게 잘못이였지.》

김정숙동지께서는 흐느끼는 동생의 뒤통수를 쓸어주며 달래시였다. 그이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이시였다.

《누나, 난 이따위 기와집들을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그래 이를 악물고라도 원쑤를 갚자.》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데리고 언덕길을 내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는 애기를 겨드랑밑으로 돌려끼시였다. 애의 머리에도 물이 뿌려졌다,

눈에도 비누물이 들어갔는지 빠끔히 뜨다가는 이어 도로 감으며 꺽꺽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띠끝으로 아이의 머리도 씻어주고 얼굴도 씻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인제야 새로운 설음이 북받쳐오르시였다. 젖이 무어게 여기까지 걸어와서 이런 천대를 받는단말인가. 올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며 울것이다. 정말 올케는 그 무시무시한 경찰서에서 죽었는가, 살았는가, 왜놈들은 생사람을 잡아다가 주리를 틀고 기와집을 쓰고 사는놈들은 사람들을 이렇게 구박한다. 왜놈과 지주, 자본가는 다 같은 원쑤라고 늘 일러오는 말이 오늘은 새삼스럽게 뼈에 마치도록 느껴지시였다. 이 저주로운 원쑤들을 어떻게 해야 다 없애버릴수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이 사회의 진저리나고 소름끼치는 속판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들여다보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송하동 큰물가에 앉아서 점심보자기를 풀어놓고 감자를 테서 애기의 입에 밀어넣어주시였다. 그러나 애기는 그걸 먹지 못했다. 비누물이 들어갔던 눈을 빠끔히 뜨고 감자는 밀어넣어준대로 입에 물고만 있다. 넘길 힘도 내뱉을 힘도 없는것 같다. 혀로 딱딱 소리를 내주시자 개풀린 눈에 실낱같은 웃음이 살짝 비끼다가 만다.

《기송아, 가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씻으며 애기를 업으시였다. 이 원한의 강가는 백골이 되여도 잊혀지지 않을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오시였다. 어려워도 역시 부암의 인심이 인심이였다. 뒤마을 애기어머니와 순이 엄마는 송하동으로 젖 얻어먹이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해종일 걱정들을 하다가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오시자 이어 달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번갈아 인남이를 안고 젖을 물리는 이 고마운 아낙네들 못보게 돌아앉아 자꾸 눈물을 씻으시였다. 뒤마을 애기엄마는 불은 젖을 다 빨리지 못했다고 빈병에 짜넣어주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섶나무자리에 애기를 끼고 누우시였다. 배가 부르니 어린것은 쌔근쌔근 숨을 고르롭게 쉬며 잠이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을 뻗쳐 애기 저쪽에 누워있는 기송이도 만져보시였다. 총이 꽛꽛하게 센 더부룩한 머리, 그 머리를 쓸어주어도 기척이 없다. 불볕속을 걸어가 그렇게도 모진 천대를 받고 돌아왔으니 몸이 노그라질밖엔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나른해지시고 다리가 쑤셨다. 또 현훈증이 오는지 눈앞에서 별찌같은것이 춤을 추고 하늘이 휘우뚱 돌아간다. 귀에서는 웅웅소리가 났다. 그이께서는 잠시후에야 안정이 와서 은하수를 올려다보며 느닷없이 이 별 저 별 큰별을 좇으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별이란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것인가. 별은 어찌하여 밤마다 한자리에 나타나서 조그만것이 저렇게도 아름다운 빛을 뿌릴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별을 좇다가 눈을 감으시였다.

불현듯 어머니가 멀리에 보이시였다.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옷고름을 바람에 날리며 큰 함지에 무언가를 이고 걸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중을 나가시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다리가 옮겨지지 않으신다. 그이께서는 손을 휘저으며 안타까이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이 걸어오기만 한다. 풀이 파랗게 자란 들판으로··· 그러나 걸어오긴 오는데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타는 소리로 어머니를 또 부르시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뜨시였다. 여전히 하늘엔 은하수가 드높게 비껴있다. 별이 아까보다 더 많아진것 같았다. 큰별뒤에 그윽히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얼마든지 있다. 없는가 하고 보면 가까스로 나타나는 애기별들이 꿈속처럼 하나씩 또 하나씩 나타나 반짝이군한다.

어머니는 어데로 가셨을가. 저렇게 아득히 먼 별나라로 가셨을가. 아니면 아직도 우리들을 두고 떠나기가 서러워 구슬프게 울며 부암마을을 헤매돌고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는 애기를 꼭 끼여안으시였다. 오늘밤엔 배가 부르니 한마디 키정대지도 않고 잘 잔다. 기송이는 낮에 최두갑이네 집에서처럼 누나에게 팔목이라도 잡혔는지 놔라놔라 하며 연거퍼 잠꼬대를 했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잠이 드시였다. 세 목숨이 어지러운 꿈나라를 헤매며 혼곤히 자고있을 때 페허앞 수수밭머리로는 검은 그림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수수밭머리길을 돌아 집터앞에 이른 검은 그림자는 우뚝 서버렸다. 김정숙동지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빠였다.

지금 김기준동지는 한무지 재더미로 변해버린 집과 그 참혹한 정경속에 담겨져있는 그보다 몇갑절 더 참혹한 비극앞에 질려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혁명을 생각하고 집을 떠나갈 때엔 이렇게 된 집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것은 물론 준엄한 계급투쟁이니 어쩔수 없는 비극은 비극이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어진 얼굴이 저 재무지에 묻히고 살뜰히 제 등을 쓸어주던 어머니의 손이 마지막순간에 마당의 굳은 땅을 후비였을 일을 생각하니 치가 떨리고 가슴이 찢기였다. 김기준동지는 조용히 집주위를 돌아보았다. 뒤울안쪽으로 돌아가다가 대가리가 들려있는 대들보를 손으로 어루만져도 보았다. 그것도 반이나 타버려 손끝에서 숯이 부실부실 떨어져내렸다. 대들보의 다른쪽 대가리가 기울어져있는 부엌을 여겨보기도 했다. 집터를 한참 돌아보고나서야 어린 식구들이 자고있는 부엌의 벽체앞으로 갔다. 옹송그리고 누워있는 동생들과 어린 자식을 보니 갈비뼈가 우적우적 물러나는것 같기도 했다.

《얘야 정숙아, 내가 왔다!》

김기준동지는 오금을 꺽고 들어앉으며 조용히 불렀다. 그러나 누이동생은 아주 손길을 늘어뜨리고 기척이 없었다.

《정숙아, 오빠가 왔어···》

김기준동지는 누이동생의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제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뜨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혼몽한 정신에서 깨여나 누가 머리맡에 왔다는걸 의식하면서 얼른 일어나앉으시였다.

《얘 정숙아!》

《누구예요?》

《오빠가 왔다! 그새 얼마나 고생을 했니?》

《아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몸을 부르르 떠시였다. 자신께서 꿈을 꾸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정말 오빠가 왔단말인가! 지금 어둠속에 앉아있는게 오빠란말인가!

크나큰 불행을 혼자 이겨내며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빠가 어떻게 이 밤중에 이렇게도 불쑥 나타났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를 부르시였다. 그러나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네가 얼마나 고생을 했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대신 오빠의 두팔을 꽉 부둥켜안으셨다. 그제야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오빠 오빠! 왜 인제야 오셨어요?》

그이께서는 오빠의 품에 엎어지며 어린애같이 우시였다.

온갖 쓰리고 아픈 생각이 불시에 산같은 슬픔을 빚어올리며 눈물바다에 내동댕이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그의 팔소매를 잡아흔들며 흐느끼시였다.

《우지 말아!》

오빠는 갈린 목소리로 타이르며 큰손으로 누이동생의 잔등을 쓸어주었다. 잔등을 쓸어주는 손이 떨리며 다시 머리로 옮아간다.

《어서 울음을 그쳐라. 우린 지금 이렇게 울 때가 아니다. 사람이 강해지자면 눈물을 깨물어먹구 살줄 알아야 한다.》

《오빠, 오빤 우리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들고 오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부르짖으시였다.

《나도 기다릴줄 알았다. 이 오빠가 너무 불효했다.》

김기준동지는 어둠속에서 누이동생의 얼굴을 다시한번 자신의 넓은 가슴팍에 꽉 붙안았다.

얼마후에야 김기준동지는 어둠속에서 아들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콩잎같은 포대기속에 들어있는 그 작디작은 머리, 보드라운 머리칼, 《아빠 난 살아있어.》 하고 알리는것 같은 가냘픈 온기, 김기준동지는 목이 메여올랐다. 이 순간만은 그도 눈물을 깨물어 없앨수 없었다. 어머니와 안해의 희생이 빚어내는 무서운 아픔만이 아니라 이 수난의 시대를 헤염쳐가는 민족의 불행이 아울러 가슴을 찢었다. 그는 어둠속에서 눈물을 주르르 쏟았다.

그의 손은 다시 기송이의 머리로 옮겨갔다. 굳잠이 든줄 알았던 기송이가 자기의 머리에 쓸리는 손을 붙잡았다.

《누구야?》

《나다. 기송아, 형이 왔다!》

기송이는 형의 목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

《잘 있었니?》

《형님! 정말 형님이야?》

《그럼 형님 아니구···》

그러자 기송이는 대꾸가 없이 형을 뚫어지게 본다. 어둠속에서 형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잠자코 손등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우지 말아, 기송이두 이젠 다 컸는데··· 우지 말아!》

《형님, 아지미 잡혀간것 알아?》

《알구있다.》

그래도 기송이는 사내자식이 되여서 그런지 목을 꺽꺽거리며 울진 않았다. 그저 눈물을 손등으로 씻고 팔소매로 씻고 하면서 가끔 그립고그립던 형에게 볼부은것 같은 소리를 던지군한다.

《자, 인젠 이렇게 하자.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이야기는 더 할새가 없다. 정숙이와 기송이는 오늘밤으로 이곳을 떠나 상촌쪽으로 올라가라. 인남이는 내가 업구 갈테니까···》

오빠의 말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깜짝 놀라시였다. 기송이를 데리고 상촌으로 올라가라는 말은 별로 놀라운 소리가 아니였으나 오빠가 인남이를 업고가겠다는 말은 너무도 뜻밖의 소리였다. 그이께서는 잠간 말씀을 못하고 어둠속에 앉아있는 오빠를 쳐다보시였다.

《정세가 점점 더 험악해진다. 처음엔 이 자리에다 집간이나 꾸리고 너희들은 그냥 여기 있도록 하자고 했는데 형편이 그렇게 할수 없게 됐다. 그래서 내가 전날밤 이곳 조직을 통해서 사람을 보내기도 했고 오늘밤엔 너희들을 아예 떠나보내자고 찾아왔다.》

《그러니 인남이를 오빠가 어떻게 업구가요?》

《인남이 걱정은 말아라! 네가 그걸 업구 다니며 젖을 얻어먹이느라고 고생해서야 되겠니? 내가 애기를 기를 어머니 한분을 모시고있으니 념려할게 없다.》

《아니, 어머닌 무슨 어머니예요. 난 인남이를 남에게 줄수 없어요. 올케가 나오면 뭐라고 하겠어요.》

《글쎄 그렇게 하자. 어서들 차비를 해라!》

어데서 불시에 총소리가 들려왔다. 기관총소리였다.

《이게 무슨 총소리냐?》

김기준동지는 불쑥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총소리에 가슴이 후둑거리며 뛰시였다. 기관총소리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린다.

뭐라고 고함치는 일본놈 말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놈들이 또 달려들었구나. 너희들은 안개더기쪽으로 피해라.》

김기준동지는 얼른 뒤로 손을 가져가더니 이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이께서도 얼른 울음을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기다리던 오빠가 돌아왔으나 미처 회포를 풀어볼 사이도 없이 또 일이 벌어진다. 무엇이 어떻게 되자고 이러는것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치가 떨리시였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수가 없으시였다.

오빠가 나간지 얼마 안되여 건너마을에서 불길이 솟았다. 그 불빛이 마당에까지 어룽어룽 비쳐왔다. 건너마을이 새로 녹아나는 모양이였다. 총소리가 콩볶듯 울리고 사람들의 아우성이 일어났다. 이어 몇집 안남은 부암마을변두리쪽에서도 불길이 솟아올랐다. 지난번 《토벌》에 불타지 않은 집들을 찾아돌아가며 죄다 불을 지르는것 같다. 지척에서 또 총소리가 울리며 째는듯한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허둥지둥 애기를 업으시였다. 정말 오빠의 말과 같이 형편이 점점 더 험악해지는것이 분명했다. 놈들이 지난번같이 낮에도 달려들지 않고 밤에 달려드는걸 보면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죽이려고 하는것 같다.

《기송아, 이 젖병을 들어라. 그리고 저쪽 구석에 있는 기저귀를 이리 보내라.》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이끌고 마당앞으로 나서시였다. 기송이는 어느새 나팔도 찾아들었다.

어머니의 숨결이 배여있는 마당을 떠나가시려니 불시에 또 가슴이 저려와서 우뚝 발길을 멈추시였다. 과연 이 마당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가. 이 인정 후더운 《회령집》의 눈물겨운 마당을 영영 하직하는것이나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막막한 눈길로 흩날리는 재무지를 바라보시였다. 기송이도 옛집의 시꺼먼 페허를 더듬어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팔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데리고 수수밭머리로 나서시였다.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바로 그 참극을 겪던 날 듣던 아우성소리다.

바삐 뛰라고 부르짖는 소리, 아이를 부르는 소리, 울음소리···

연기가 앞으로 밀려왔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손을 잡고 무작정 앞으로 내뛰시였다. 뒤에서 총소리가 났다. 총알이 피유- 하고 앙칼진 소리를 낸다. 이어 따르륵 하고 몰방으로 쏘아대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우로 시뻘건 탄도가 수없이 그어졌다. 잔등에 업힌 애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기를 돌려끼고 엎디여 기여나가시였다. 얼마쯤 기다가 얼굴을 쳐들고보시니 불빛속으로 시꺼먼놈들이 우글거리며 달려왔다. 그이께서는 재빨리 수수밭속으로 떨어지시였다. 그리고는 수수대를 헤가르며 뛰시였다. 놈들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총을 쏘는지 총알이 앞뒤에서 수수대를 짓조겨 눕힌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기송이와 함께 위험한 고비를 벗어나시였다. 수수밭이 끝나자 떡갈나무가 들어선 산기슭이였다. 한참 춰오르니 바로 안개더기근방의 새밭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야 올데를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시였다.

그런데 무엇이 와싹거리며 앞으로 급하게 다가오고있다.

《누나, 총멘 사람들이야.》

기송이가 먼저 알아보고 숨을 헐떡거리며 속삭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총멘 사람들이라니 왜놈들이 이 산등에까지 기여오르지 않았는가 해서 가슴이 철렁하시였다. 그런데 앞에 나타난것은 금단이 오빠 영호였다. 그뒤에 다른 낯모를 청년 몇사람이 따라섰는데 그들도 다 장총을 메였다.

《금단이 오빠!》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와 환성을 지르시였다.

《아니 어데로 가오?》

《왜놈들이 달려드는바람에 피했어요.》

《그래 오빠는 못만났댔소?》

《만났어요. 오빠는 총소리를 듣고 동네로 나가면서 우리를 이리로 가라고 했어요.》

《그럼 빨리 피하오! 개새끼들···》

영호는 두덜거리며 새밭을 헤치고 나갔다. 낯모를 청년들도 급히 그뒤를 따랐다. 어데 있다가 오는지 한바탕 싸워볼 잡도리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데리고 새숲을 헤치며 안개더기등성이로 올라가시였다. 불붙는 마을이 한눈에 안겨드시였다. 다 타버린줄 알았는데 무엇이 또 그렇게 타는지 마을이 온통 불바다였다. 건너마을에선 산더미같은 불길이 곳곳에 일어서서 불찌를 날린다. 기관총소리는 계속 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는 애기를 달래시며 새가 우거진 등성이우로 걸어나가시였다.

《누나, 형님이 일없을가?》

《오빠가 무슨 일이 있겠니? 아무렴 오빠가 뭐···》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렴 오빠가 뭐 총알에 맞겠느냐고 말하려다가 너무도 끔찍한 소리같아서 그만두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빠에 대해선 늘 맘이 든든하셨다. 왜놈들이 기관총 아니라 별걸 다 쏜다 해도 오빠만은 다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오빠는 그렇게 큰 바위산같아보이시였다. 아까 만났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으시였다.

차츰 총소리는 잦아들었다. 불길만 충천하고 사람들의 아우성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큰 행길쪽에서 웩웩 떠들어대는 왜놈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일을 다 저질러놓고 내빼는것인지도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숲에 숨어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시였다. 또 한바탕 일을 겪고나니 첫 《토벌》을 맞던 때 일은 먼 옛날에 있은 일같기도 하시였다.

오빠는 날이 푸름푸름 밝아올 때 안개더기우로 나타났다.

《너희들이 용케 빠졌구나. 개같은놈들···》

《오빠, 금단이 오빠랑 보았어요?》

《영호말이냐? 만나보았다.》

오빠는 땀을 씻으며 대답하였다. 인제야 희붐해가는 새벽빛속에서 오빠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두리두리한 얼굴에 턱수염이 시꺼멓고 짧게 깎은 이마우의 머리가 헝클어져 날렸다. 로동복잔등이 푹 젖어있었다.

《참, 동네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됐어요?》

《큰골쪽으로 다 빠졌다. 놈들의 총질에 좀 상하기두 했지만···》

오빠는 단김을 내뿜으며 또 땀을 씻는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여러놈 쏴죽이긴 했는데 원체 그놈들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통에 한꺼번에 다 어쩔수가 없었구나. 어쨌든 이렇게 된바엔 너희들은 이 길로 떠나라. 이 등성이로 좀 더 올라가면 큰골쪽이 보일테니까 그리로 빠져라. 큰골쪽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그길로 사슴골 뒤령을 넘어서 상촌쪽으로 올라갈것이다. 그 사람들을 따라가거라. 그리구 상촌에 들어가거든 우선 혁명위원회 회장 차응도동지를 만나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안하시였다.

《애기는 이리 보내라.》

《오빠, 애기는 제가 업구 가겠어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 넌 홀가분한 몸으로 들어가서 조직에서 시키는 일을 잘해야 한다. 기송이두 그렇구··· 너흰 이런 참혹한 일을 겪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배우는것두 없니?》

《··· ··· ···》

《인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각오가 생기질 않니? 정숙아!》

《각오가 생겨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의 엄한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시였다.

《각오가 생겨야지. 애기를 기르는 일이 너희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야. 중요한 일은 혁명을 잘하는 일이다. 애기를 이리 보내라.》

《오빠!》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의 무서울만큼 굳어진 얼굴을 눈물이 글썽해서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저도 이를 악물고 혁명을 하겠어요! 그리구 오빠의 말대로 이 끔찍한 일을 하나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어요. 어머니도 원쑤를 잊지 말라고 유언을 했어요! 하지만 인남이는 내가 데리고 가게 해주세요. 언니가 나오면 인남이를 찾겠는데 내가 어떻게 인남이를 버리고 언니를 만나요? 언니를 생각해서라도 인남이를 우리와 함께 가게 해주세요!》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는 마침내 울음으로 변하고마시였다.

애기를 받아안으려고 내뻗쳤던 오빠의 팔은 졸지에 사시나무 떨듯하였다. 동생의 소리가 가긍하고도 불쌍했다. 사태가 어떻게 된줄도 모르고 동생은 그래도 그렇게 올케를 간절히 기다리고있다. 그러나 올케는 이미 죽었다. 죽어도 장하게 죽었다. 그 견딜수 없는 모진 고문이 정신과 육체를 갈갈이 찢으며 남편의 거처를 대라고 죄고 비틀었으나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고 마지막엔 원쑤들의 얼굴에 피를 뿌려던지고 절명했다. 그의 장한 최후를 생각하면 그저 안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 그런 숭엄한 얼굴이 눈앞에 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자기는 그저 슬프지만 않았다. 슬픔뒤에 있는, 머리가 수그러지는 감정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이 애들이야 당장 그런 감정으로 제 슬픔을 눌러낼수 있을가, 지금 서로 헤여지는 설음의 짐이 무거운 어린 넋들에게 더 가혹한 짐을 지워 발을 옮겨디디지 못하게나 하지 않을가.

김기준동지는 한참동안 땀을 씻으며 망설이였다. 그저 희붐히 밝아오던 하늘이 다시금 막막하게 흐려지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언젠가는 알려주어야 할 일이란 생각을 하며 말을 꺼냈다.

《정숙아!》

《··· ··· ···》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그 무슨 불안한 예감을 느끼며 오빠를 바라보시였다.

《정숙이도 기송이도 잘 새겨들어라. 혁명이란 준엄한것이다. 저 악독한 원쑤들을 쳐이기기 위해선 슬픔이 아무리 커도 울어서는 안된다.》

오빠의 말은 묵중한 바위가 가슴에 와 실리는것처럼 무겁게 느껴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을 들이그으며 말없이 듣고만 계시였다.

《너의 올케는 죽었다.》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스라쳐 놀라며 오빠를 쳐다보시였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인남이에게는 이제는 엄마가 없다. 왜놈들이 나를 찾자고 갖은 고문을 들이댄끝에 종시 죽여버리고말았다. 그렇지만 너의 올케는 비밀을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고 장하게 죽었다···》

오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큰 충격때문에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무너지듯 새초밭에 주저앉아버리시였다. 기송이도 얼른 돌아서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오빠- 그놈들을 어떻게 해요! 우리 언니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죽이기까지 한단말이예요. 우리 언니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렇게 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새초밭을 두드리며 소리내여 우시였다.

인남이도 키정거리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주저앉아 우시는바람에 다리가 끼이는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남이의 우는 소리를 듣자 비틀거리며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돌려끼시였다. 새벽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인남이 머리우에 김정숙동지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눈물을 떨리는 손으로 자꾸 훔쳐내시였으나 동이로 퍼붓듯 쏟아져내리기만 하였다.

인남이에게는 이젠 영영 엄마가 없다. 그렇게 사랑 깊던 올케는 이 귀여운 애기를 이렇게 내버려둔채 어떻게 눈을 감을수 있었을가···

《정숙아, 이제는 우지 말아라. 어디 가서 올케가 죽었다는 말도 하지 말아라.》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냥 인남이의 머리우에 눈물을 쏟으며 오빠의 말을 듣고계시였다.

《사람마다 큰 슬픔을 디디고 일어서서 싸우고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자라나야 한다. 어서 아이를 이리 보내라.》

《오빠, 그럼 기어코···》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떨며 오빠를 바라보시였다.

《네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니? 하지만 참아야 한다. 너는 고모노릇을 잘하는것보다 원쑤를 갚는 일이 더 중하다! 네 올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거든 원쑤갚을 생각을 해라!》

《···》

《인남이를 길러주겠다는 고마운 어머니가 한분 계신다. 그러니 걱정을 말고···》

오빠는 뒤로 다가와서 애기를 받아안으려고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띠를 푸시였다. 오빠에게 인남이를 넘겨주니 허리를 한동강 잃은것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입술을 사려물며 오빠의 품에 안긴 애기를 바라보시였다. 애기는 영문을 몰라 두눈을 두릿두릿 굴리며 이쪽저쪽 쳐다보았다.

《인남아-》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의 가슴에 안긴 인남이를 도로 그러안으며 목메여 부르시였다.

그러자 기송이도 달려와 와락 덮치듯 인남이를 그러안았다. 인남이도 비죽비죽 입술을 이그러뜨렸다.

《그만해라.》

김기준동지는 엄하게 오누이를 타일렀다.

《인남아! 불쌍한 우리 인남아-》

오빠에게 어쩔수 없이 애기를 넘겨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금 풀밭에 쓰러져서 하염없이 우시였다.

어쩌면 사람사는 세상이 이리도 모질가, 저 어린것이 엄마를 잃은후에 제 살붙이들마저 다 떨어져 외로이 어데로 간단말인가.

《어서 그쳐라. 내가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해둘 말이 있다. 기송이도 이리 오너라.》

어딘가 엄숙하게 울리는 오빠의 목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옷고름을 눈굽으로 가져가며 천천히 고개를 드시였다. 기송이도 눈물을 씻으며 누나의 곁으로 왔다.

《우리는 다 어머니를 잃었다. 나도 정숙이도, 기송이도 그 고생속에서 우리 세 남매를 품에 안아 길러준 어머니를 우리는 다시 못보게 되였다! 우리만 그러냐? 인남이도 제 에미를 잃었지! 그렇지만 우리는 잃어버린 어머니의 품보다 더 크고 따뜻한 품이 있다는걸 알아야 한다!》

오빠는 잠시 말을 끊었다. 무엇인가 엄숙하지만 않고 억센 힘이 오빠의 목소리에서 울려오는것 같기도 했다.

《우리들에겐 김일성장군님의 품이 있다! 우리 삼형제를, 아니 인남이까지도 어머니이상으로 보살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장군님의 품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모든 조선사람이 다 그러하듯이 나자신도 비극을 겪긴 하지만 이렇게 힘이 왕성해서 뛰여다니고있질 않니. 우리가 인제 집이 없어 못살거나 어머니의 품이 없어 못살겠니? 왜놈들한테 짓밟히우고 학대받는 모든 조선사람들이 장군님을 우러러모시고 그 품속에 들어 조국광복의 날을 내다보며 싸우고있는데 우리가 그 은혜로운 품밖에 놓여있겠니? 너희들을 상촌으로 가라고 하는것도 상촌이란 바로 장군님께서 꾸려주신 유격근거지이기때문이다. 그 근거지는 장군님의 큰 사랑의 품이야! 너희가 이때까지 살아온 회령집과는 다른 사랑의 집이고 혁명의 집이야. 인제 너희들이 의지하고 살곳이란 이 혁명의 큰집밖엔 없어. 하긴 왜 의지하고만 살겠느냐? 거기 들어가면 그 품속에서 혁명을 배우고 누구보다도 뛰여난 혁명가가 되여야지. 그래야 장군님께서도 기뻐하실게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젠 슬픔이라기보다 무언지 모를 감동이 북받쳐오르시였다.

(김일성장군님!)

이 슬픔의 한바다우에 해님처럼 솟아오르신 김일성장군님의 이름, 전설처럼 많이도 들어온 장군님의 이름이시였다! 인젠 그 이름이 정말 사랑깊던 어머니와 회령집을 대신해서 포근히 자기들 주위에 와서 둘러싸신다니 자꾸만 목이 메이시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니?》

《아 알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쳐들며 간신히 대답하시였다. 오빠는 얼른 다가와 오누이의 잔등을 쓸어주며 우지 말고 어서 떠나라고 달래였다.

얼마후 애기를 품에 안고 한손에 젖병을 든 오빠가 먼저 잡관목숲속으로 걸어내려갔다. 마을에서 밀려온 연기가 잡관목숲우로도 흐르고있다. 무슨 새인지 벌써 잠을 깬 새들이 나무가지들사이로 비껴든 서광에 깃을 번쩍이며 푸드득 날아올랐다. 오빠의 거인같은 뒤모습이 나무들사이로 얼씬얼씬하더니 이어 사라져버리고말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삼키며 기송이와 서로 손을 붙잡고 산마루우에 서계시였다.

이제는 눈물도 다 흘렀는지 파릿한 얼굴에 얼룩만 남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악물고 막막한 비애의 바다를 넘어 저멀리 해빛 솟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어쩐지 이 리별이 그저 불쌍한 조카와 헤여지는 리별만이 아니라 무언가 더 큰 다른 의미에서의 리별도 겪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서서히 떠오르시였다. 이때까지의 자기, 인정 두터운 회령집 울타리속에서 뛰놀던 자기, 어머니와 동생과 애기와 올케, 그속에서 빚어내는 슬픔을 붙안고 헤염치던 그 연약한 눈물의 생활은 영영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인젠 이 눈물의 언덕우에서 큰 날개를 펼치고 슬픔과 고통이 길러준, 오직 한마음 혁명을 해보겠다는 강한 의욕을 지니고 장군님 품으로 떠나간다! 서러운 리별이긴 했으나 한걸음 더 성숙해진 자신을 체험하는것 같은 리별이기도 하시였다.

《기송아, 인젠 가자! 인남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만나볼수 있을게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금 솟구치려는 눈물을 억지로 씹어삼키며 동생을 이끄시였다. 기송이도 소매로 눈물을 뻑 씻으며 순순히 돌아섰다. 그이께서는 기송이의 손을 쥐고 새밭을 헤치며 걸어나가시였다. 새벽바람이 불고 큰골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쪽엔 벌써 붉은 해발이 비쳐온다. 싸리숲이 바람에 이리 휘고 저리 휘고 하면서 해빛을 안고 설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