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

 

제 5 장

2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낮이 지나서야 뒤마을에 들어가 애기에게 젖을 몇모금 얻어먹여가지고 나오시였다. 애기는 배속에 젖이 들어가자 잔등에 볼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시니 그래도 기송이가 시켜준대로 어느새 감자밭에 나가서 새알같은 감자를 한광주리 캐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머리를 떨구고 앉아 사금파리로 감자껍질을 벗기고있다. 그의 곁엔 새까맣게 끄슬리고 주둥이가 우그러든 나팔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건 웬 나팔이냐?》

기송이는 대답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감자를 깎는지 손등우에 눈물을 떨구고있다.

《기송아!》

그제야 기송이는 눈물이 괴여있는 두눈을 들었다.

《이건 웬 나팔이야?》

《인제 삼손이가 저네 집 재무지속에서 찾아냈다고 가져왔어.》

《아니 경찰이 뺏어갔다던 나팔이 집터에서 어떻게 나왔단말이냐.》

《삼손이 할머니가 고간속에다 감추어두구 그렇게 거짓말을 했대. 나팔을 불면 민가네가 공산당이라 고자질한다구···》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을 듣고보니 그랬을상싶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도 민가네가 나팔소리만 나면 공산당소리라고 펄펄 뛰는걸 여러번 띠여본 생각이 나시였다.

《한번 불어봤니?》

《소리가 안나···》

기송이는 팔소매를 들어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소리가 안나서 우니?》

《누난 참···》

《그럼?》

《나팔을 보니까 동무들 생각이 더 나서···》

그 소리를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을 칼로 긋는것 같으시였다. 원쑤들이 달려든 날 아침 그만치 산에 있으라고 단속해놓고 내려왔건만 아이들은 이어 따라내려와 덤비다가 여러명 총에 맞아죽었다. 한 아이는 불길속에 들어가 숯등걸같이 타버렸다. 그 애들의 죽음으로 하여 시체를 묻는 날 큰골에선 더욱 통곡이 터져올랐다.

《기송아, 인젠 아무것두 생각을 말자! 네가 그러면 나두 가슴이 아파 못견딘단다.》

《나두 아무 생각을 안할테야. 인젠 집지을 생각만 할테야.》

《그럼, 그래야 나두 맘이 든든해지지.》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마목어방으로 가서 재무지를 헤치기 시작하시였다. 그래도 어떻게 했는지 기송이가 재무지속에서 괭이와 호미를 찾아냈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루가 반이나 탄 괭이로 일을 시작하시였다.

재속에 있는 그릇들이라도 찾아내라고 하던 희섭의 말도 말이지만 우선 감자를 삶아먹으려 해도 솥이 있어야 하였다.

김정숙동지의 생각엔 솥은 못쓰게 되였을것 같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참 파헤치다가 도로 달려와 애기를 밤에 자던 자리에 눕혀놓고 재와 썩새를 끌어내시였다. 어째 허리가 휘청거려 힘을 쓸수가 없으시였다.

《누나, 이걸 가지고 파. 내가 괭이로 팔게.》

감자를 깎던 기송이가 호미를 들고 와서 말했다.

《감자는 다 깎았니?》

《껍질채 삶아먹지뭐.》

《참, 그래두 좋지. 그럼 어서 네가 호미로 파렴.》

《싫어, 난 얼굴에 재가 날아올라서 괭이로 팔테야.》

기송이는 누나를 그럴듯이 속였다. 감자를 깎다가 보니 괭이질하는 누나가 실버들가지같아보이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호미를 들고 달려온것이였다.

기송이는 종시 누나의 손에서 괭이를 빼앗아냈다. 그는 걸싸게 재를 긁어당겼다.

《얘 너무 덤비지 말어. 그러다가 솥이 깨지면 어찌겠니?》

《솥을 찾느라고 그러나?》

《그럼.》

한참 파헤치니 숯이 된 용마루대와 연목이 드러났다. 속이 채 타지 않은 연목이 나지면 둘이서 힘을 합쳐 뽑아냈다. 한참 역사를 하니 정지방구들이 드러났다. 구들돌이 여러장 뒤집혀져서 시꺼먼 고래속이 들여다뵈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호미질을 하다가 숟가락 하나를 얻어내시였다. 어머니의 숟가락이였다. 다른 숟가락보다 훨씬 무겁고 혀가 넓었다. 그래서 늘 누룽지같은것도 이 숟가락으로 긁어냈기때문에 혀끝 한쪽이 닳아 반달같이 되였다. 어머니는 이 숟가락으로 한뉘 자신이 밥을 자시기도 했고, 어린 기송이의 입에도, 이제는 다 자란 아들딸 오누이의 입에도 밥을 떠넣어먹이며 키워냈다. 얼마전까지는 인남이의 입에도 이 숟가락으로 밥알을 떠넣어주며 눈가장에 잔주름을 지으며 웃었다.

그런 순간이 아마 어머니의 뉘에서는 가장 즐거운 순간이였을는지 모른다. 이 모지랑숟가락으로 죽이라도 떠넣어줄것이 없을 때 목이 쉬도록 보채는 어린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가. 그때마다 어머니의 마음도 이 숟가락처럼 닳고 패웠을것이다. 불쌍한 어머니! 한뉘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키우느라고 애쓴 어머니! 인젠 자식들의 입에 밥알과 함께 사랑을 떠넣어주던 이 숟가락도 재무지속에 내버리고 영영 이 세상을 떠나가 버리고말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가슴을 찢는것 같은 생각에 목이 메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새까맣게 그슬린 숟가락을 얼른 기송이 못보게 괴춤에 찌르시였다.

얼마후에야 가마목이 나타났다. 재를 깡그리 끌어내고보니 들보가 떨어져내리며 부뚜막을 무너뜨리고 솥 한개는 박살을 냈다. 부엌쪽으로 기울어져 누워있는 들보도 반이나 타버렸다. 그래도 기송이는 깨진 큰 솥을 들어옮기겠다고 끙끙 힘을 썼다. 뺨으로 목덜미로 땀이 좔좔 흘러내린다.

《얘 기송아, 그건 내버려두자, 작은 솥이나 뽑아가지고 가서 감자를 삶아먹자!》

《그럼 이건 어떻게 할테야?》

《그건 천천히 들어내자!》

《집지을 때 들보를 괜히 큰걸로 했어.》

《들보가 커두 오랑캐들이 불만 안질렀다면 솥이 왜 깨졌겠니?》

《그건 나두 알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뚜막안목에 걸려있는 작은 솥을 뽑아들고 재와 썩새무지밖으로 나오시였다. 해는 벌써 이른 저녁때가 잘된것 같으시였다. 애기있는데로 오시니 인남이는 여전히 기를 버리고 자고있었다. 종이장같이 얄팍한 얼굴우에 해빛이 비쳐들었다. 손을 만져보시니 명주고름같이 나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괭이를 가져다가 나무단곁에 거꾸로 세우고 띠를 펼쳐서 걸어놓으시였다. 손바닥만한 그늘이 애기의 얼굴에서 해빛을 몰아내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당에 돌가마를 걸고 감자를 삶으시였다. 기송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무꼬챙이들을 모아왔다. 누나가 힘들어한다고 굵은 꼬챙이는 제 무르팍에 대고 분질러주기도 했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를 데리고 마당가운데 마주앉으시였다. 감자는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기에게 먹여보려고 가루가 터진것으로 감자 몇알을 따로 간수해두시였다. 기송이는 큰것을 누나앞에 밀어놓고 작은 감자알들만 들어다가 껍질을 벗겼다. 무서운 슬픔이 장난꾸러기를 어른으로 만든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불행속에서 너무나 일찌기 셈이 들어가는 동생이 기특하다기보다 도리여 가슴이 아파 견딜수 없으시였다.

《누나, 그 숟가락은 웬거야?》

《응, 아까··· 재무지속에서 얻어낸거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자신의 치마말기를 만져보시였다. 숟가락혀가 반이나 솟아나왔다. 그이께서는 숟가락을 뽑아서 얼른 옆으로 돌려놓으시였다.

《어머니 숟가락이구나!》

《그런것 같다. 어서 감자나 먹으렴.》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기송이는 대꾸가 없었다. 얼마 아니하여 그의 눈에 또 이슬이 그득해졌다. 그러나 그도 그걸 흘리지 않고 눈안에서 용케 삭여내며 감자를 씹었다.

이날밤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애기를 데리고 기송이와 함께 섶나무우에서 주무시였다. 인젠 잠자리가 그렇게 서먹서먹하지는 않으시였다. 페허우에서 헤쳐나가는 생활이 때가 오르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아직 밤이 깊기전인데 또 웬 낯모를 청년이 나타났다. 로동복을 입고 캡을 쓴 청년이였다. 그는 김정숙동지를 잠간 뜰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어둠속에 서서 요새 얼마나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어요. 그저···》

《동무가 고생하는건 다들 알구있소. 어제밤 희섭선생도 왔다갔지요?》

《네.》

《며칠만 더 참소. 곧 대책이 취해질테니까··· 어린애가 젖이 없어서 야단이로군···》

《괜찮아요. 어떻게 하든지 살려내겠어요.》

《살려내야지요. 살려내야 하구말구. 어쨌든 이런 때일수록 힘을 잃지 말아야 하오. 겁을 먹어서도 안되구···》

청년은 이런 소리를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몹시 바쁜 걸음을 하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둠속에서 청년의 얼굴도 미처 알아보질 못하시였다. 그저 목소리가 굵다는 인상만 받으시였다.

청년을 만나고 들어와 애기곁에 누운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제밤보다 더 가슴이 뻐근해지시였다. 조직이 우리들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하고있는가. 죄다 불타서 모든 생활이 끝장난것만 같은 괴괴한 암흑속에서도 억세게 살아 태동하는것, 모든 생활이 이처럼 깡그리 불타고 짓이겨졌기에 이 참혹한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다시금 두다리를 벋디디고 일어서기 위하여 모든것이 다 없어져도 그것만은 기어이 살아있어야 하고 또 언제나 살아있을 가장 귀중하고 가장 억센것, 그것이 바로 혁명조직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깊이깊이 파고드시였다. 기를 버리고 퍼더앉은 사람들에게 더운 피를 넣어주고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싸움에로 불러주는, 이제는 이 세상에서 의지할데란 그것 하나밖에 없는 귀중하고 고마운것, 그것이 바로 조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언지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시였다. 더욱더 힘을 가다듬고 일어서야 되겠다는 생각이 한가슴 가득 들어차시였다. 그이께서는 애기가 깨지 않게 다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시였다. 저편에 누워있는 기송이가 몸을 뒤채며 아아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잠꼬대에 애기가 눈을 뜰가봐 애기의 어깨를 살며시 눌러주시였다. 애기는 땅에 잦아들어버린것 같이 숨기가 느껴지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섶나무 깔아놓은 자리에서 소리나지 않게 일어나 어두운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마당가운데 앉아 래일아침에 삶아먹을 감자를 한참 깎으시였다. 인젠 사금파리가 아니라 아까 얻어낸 자신의 숟가락으로 감자를 깎으시였다. 놋그릇이며 사발도 여러개 얻어내시였다. 부엌드렁에 놓여있던 단지며 동이도 찾아내시였다. 그만만 해도 마당가운데는 살림살이 비슷한것이 생겨났다. 인젠 물을 길어다먹을 동이도 있고 밥을 담아먹을 그릇도 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를 다 깎은 뒤엔 놋그릇들을 모래로 닦기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내내 흥분이 잦아들지 않으시였다. 모든것이 도로 나타나고있다. 살림도 혁명도··· 아까 왔던 그 청년은 어데로 갔을가? 어데 비밀련락을 갔을가? 그런 일이 있다면 왜 나더러 갔다오라는 말을 못했을가. 앞으로 조직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정말 목숨을 내대고 꼭 해내서 어머니, 아버지의 원쑤를 갚아야 한다. 우리 기송이를, 우리 인남이를 이렇게 불쌍히 만든 그 왜놈들을 어찌 그냥 두겠는가.

《어머니, 저는 이를 갈며 싸우겠어요. 정말, 정말 싸우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혼자소리로 부르짖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밤을 꼬박 밝히시였다. 아침에 애기를 업고 띠를 졸라매고 나서니 어제보다 더 눈앞이 기우뚱거리며 돌아갔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감자 삶을 차비를 하시였다.

그런데 우물로 물을 길러 나갔던 기송이가 들어오며 마을로 웬 당나귀들과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했다.

《당나귄 무슨 당나귀냐?》

《모르겠어. 당나귀에 사람두 탔어. 민가네 집앞을 돌아서 동네복판으로 들어오지 않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슨 소린지 몰라 우물가로 나가보시였다. 한번 놀랐던 판이라 또 동네에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나 해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시였다.

우물가에 나와서 보시니 정말 페허가 된 마을 한판으로 당나귀 두필이 왈랑절랑 방울소리를 울리며 들어가고있다. 당나귀만이 아니라 울긋불긋한 가마도 메고 들어간다. 한 당나귀잔등엔 무언가 커다란 함지박같은것을 보에 싸서 실었고 다른 당나귀잔등엔 로인이 앉아서 큰 갓을 번들거리며 들어가고있다. 그뒤엔 낯선 사람들이 십여명이나 따라섰다. 일행은 여기저기 쌓여있는 썩새무지들을 에돌아 근검히 전치근네가 있는 산밑으로 들어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이게 박대동네 집에서 오는 사람들이란것을 깨달으시였다. 결국 분임이는 오늘 시집을 가는게 아닌가. 박대동이 저렇게 벼락치듯 서두르는판에 시집을 안가려고 한들 안갈수 있을가. 전날밤 분임이가 와서 울며 하소연할 때는 기왕 시집을 갈바에는 이 숨막히는 동네를 얼른 벗어나는게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사람 끌어갈 행렬이 달려드는걸 보니 무엇때문엔지 분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치밀어 견딜수 없으시였다. 아무리 잔치가 급하면 이렇게 동네가 깡그리 불타고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곳으로 왈랑절랑 방울소리를 울리며 가마를 메고 달려들어야 할가. 이것은 무슨 혼사같은것이 아니라 있는놈의 집에서 분임이네를 업신여기고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 새각시를 마구 덮쳐가자는것이 아닌가.

불쌍한 분임이, 분임이는 어머니, 아버지를 리별하고 정든 동네와 동무들도 다 두고 저런 무지한 인간들속에 혼자 들어가서 어떻게 살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가슴이 저리시였다. 인젠 정말 분임이는 있는놈의 집에 넘어가서 있는놈들의 편이 되는것이 아닌가. 저 다정하고 살뜰한 분임이가 우리와 원쑤가 되여 살다니? 아무리 울어봐도 결국은 저 가마를 타고 알수 없는 곡절이 기다리는 시꺼먼 문턱을 넘어서야 하지 않는가.

분임이의 푸념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같은게 이 세상에 무엇하러 태여났을가?》

그것은 마치 이 야속하고 억울한 세상에 보내는 눈물의 항변같이도 생각되시였다.

그래 분임이는 과연 무엇때문에 이 세상에 태여났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속으로 안타까이 부르짖으시였다. 그러고보니 이 세상 많은 아낙네들이 입버릇처럼 외우는 이 말의 깊은 뜻을 이제야 몸으로 깨달은듯한 느낌도 드시였다.

집으로 돌아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경황없이 솥에 감자를 안치고 불을 지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무래도 분임이가 떠나는걸 가봐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마지막 리별일지 모르는 동무를 어떻게 가보지도 않고 그저 보내랴.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를 삶아놓고는 벼락잔치가 벌어진 분임이네 집으로 가시였다.

집앞에 오시니 그래도 살아남은 조무래기들이 당나귀구경을 하느라고 모여들어 법석 끓었다. 기송이또래도 못되는 어린것들인데 온통 새까맣게 그슬려서 눈들만 반짝거렸다. 토방앞엔 분임이를 담아갈 가마가 벌써 주렴을 걷어올리고 기다리고있다.

《응, 왔니? 어서 들어가렴!》

분임이의 어머니가 부엌문으로 나오다가 김정숙동지를 띠여보고 말했다. 얼른 쳐다보시니 무슨 일인지 그도 눈이 젖어있었다.

정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침 분임이는 쪽도리를 쓰고 장옷을 입고 일어섰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새색시단장을 한 분임이의 얼굴빛은 새파랗게 보일만큼 새침했다. 쪽도리구슬이 찬빛을 뿜으며 떨었다. 김정숙동지의 잔등에 업힌 인남이가 쪽도리구슬이 희한해뵈는지 얼굴을 들며 손을 약간 내밀어보다가 만다. 김정숙동지와 마주선 분임이는 연지 바른 입술을 삐죽삐죽했다.

《울지 말어.》

달래는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도 떨리시였다.

《안울겠어, 운다고 내 신세가···》

분임이는 제 낯빛처럼 질린 목소리로 웨치며 장옷을 걸친 두어깨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는 무어라고 달랠 말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래웃방을 살펴보시였다. 어디에도 상가집처럼 무거운 얼굴들만 얼씬거린다. 그속에서 쉬-쉬- 돌아가는 말들 역시 울분을 담고있었다.

《신랑도 안오는놈의 잔치가 어디 있어.》

《공부하는 신랑을 오랄수 없다는거야. 이쪽을 업수이 보고 하는 수작이겠지.》

결국 박대동이는 신랑도 없이 색시만 데려가자고 가마를 보냈다는것이다. 말인즉 불시에 하는 례식이라 공부하러간 아들을 부를새가 없어서 그렇게 되였으니 섭섭히 여기지 말라고 전갈을 해왔다는거다. 그게 바로 색시편을 사돈취급 안하는 수작이다.

《잘 있어.》

분임이의 눈에선 종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화장을 시키던 아낙네들이 얼굴에 얼룩이 진다고 지청구를 했다. 분임이는 입술을 감빨며 문턱을 넘어서 가마속으로 들어갔다. 그를 부축하던 아낙네들이 분임이의 새 고무신과 빗첩을 가마속에 밀어넣어주었다. 하행군들이 우둑우둑 다가서더니 얼른 가마문을 닫고 주렴을 내려놓았다. 가마안에선 분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일어났다.

이러는데 웃방에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분임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요? 그래 사람의 낯짝을 들고 이런 례식을 할수가 있단말이요? 동네가 다 불타고 숱한 사람이 죽어 곡성이 진동하는 때에 가마를 메고 달려들어야 옳단말이요? 내가 지금 당장은 내집 형편보다 동네형편이 말이 아니니 그만두라고 그만치 일러보냈는데 기어코 울레줄레 달려들었으니 이게 무슨 망신이요. 난 그래도 박대동씨를 도덕을 아는분이라고 믿었소.》

《어 이건 길사에 무슨 목소리를 이리 높이시오. 동네사정은 동네사정이고 내 집 길사는 내 집 길사이지 동네사정을 걸어서 내 집 경사를 불평하실 일은 없을줄 아오.》

박대동의 사촌이란 로인이 전치근의 말을 엄하게 막아친다. 웃방에서 말다툼이 일어나게 되자 가마를 메고 갈 하행군들이 급히 웃방문앞으로 가서 당장 가마가 떠나야 되겠다고 알리였다. 그러나 그까짓 소리는 들은체 않고 전치근이 더 노기가 올라 부르짖는다.

《경사가 무슨 경사란말이요? 이것이 경사답게 되였소? 우선 동네형편이 이런데 례식을 한다는것도 그렇지만 신랑놈은 코도 내밀지 않고 신부 혼자서 쪽도리를 쓰고 례청에 들어서서 혼례를 하게 됐으니 이, 이건 무슨 해괴한짓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데 또 있다고 생각하시우?》

《매사는 생각하기에 달려있지요. 그렇게 해도 무방하고 좋다고 생각하면 좋을것이지 나쁠것이야 있겠소? 난 사둔님이 생각을 크게 하고 그런 사소한 일엔 대범하게 대하는것이 큰사람의 도리인줄 아오.》

둘이 목소리를 높여 시비를 캐고있는데 골목쪽에서 또 벼락치는것 같은 로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네 이놈 박대동이 좀 나서라. 부암이 왜놈의 불에 맞았다니 이 동네에 사람이 다 죽은줄 아느냐?》

최정수의 아버지였다. 본시 독립군을 하던 로인이라 기상이 범같기도 하려니와 귀까지 먹어서 여느 말도 천정이 울리게 소리를 치는 로인이였다. 그런 로인이 지금 온 동네가 울고불고하며 참변을 겪는 판에 박대동네가 신부를 메가겠다고 달려들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분노가 하늘에 치달았다. 아무리 무도하기로니 박대동이 그놈은 망국의 설음도 모르는놈이냐? 하긴 오랑캐의 개라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 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화승대 맛을 좀 보이나? 로인은 지팽이로 땅을 쾅쾅 울리며 고함을 질렀다. 로인의 뒤엔 동네사람들도 울레줄레 따라섰다.

《네 이놈 전치근이, 네놈도 여기 썩 나서라. 딸자식을 길러서 출가를 시키려면 온전히 시킬것이지 저, 저 오랑캐의 개가 된놈에게 딸을 주고 이 란리판에 신부행장을 꾸려야 옳단말이냐. 이놈 네 눈엔 동네의 참경이 뵈질 않느냐?》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에 방안에서 다투던 전치근이와 박대동의 사촌형도 눈이 둥그래졌다. 둘이는 역시 동네가 순탄치 않다는걸 알아차렸다. 전치근은 더 큰 망신을 당하는것 같아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박대동의 사촌형도 얼른 일어서더니 통영갓테를 문설주에 부딪치며 부랴부랴 웃방문으로 나왔다. 분임이의 아버지도 시뻘건 얼굴을 하고 허둥지둥 뒤따라나왔다.

가마속에 있는 분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행군들이 달려들어 가마를 멨다. 가마는 공중에 뜨며 기우뚱했다. 가마속에선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떠나는 가마를 따라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에게 울음을 그치라는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해주고싶었으나 가마를 멘 장정들이 어찌 번개처럼 달리는지 따라낼수가 없으시였다. 바람이 불고 재가 날렸다. 분임이네 집앞에서는 최로인의 벽력같은 소리가 그냥 들려나온다. 장정들은 그 소리에 질겁을 해서 흐느끼는 신부를 메고 페허우로 도망치듯 달렸다. 뒤를 따르는 당나귀 한필엔 싣고왔던 빈 떡함지들을 되싣고 다른 한필엔 역시 박대동의 사촌이 올라앉아 칠색갓을 기울기울하며 빨리들 걸으라고 호령을 했다. 그뒤에 분임이네 소달구지가 농 두짝을 싣고 따라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따라나가다가 또 현훈증이 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자리에 오래도록 서서 분임이의 가마를 바라보시였다. 다정한 동무를 도적맞히듯 떠나보내는 그이의 눈엔 눈물이 차오르는것이 아니라 가을날 호수같은 차거운 빛이 비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