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제 4 장

2

 

태봉시에서 최광주를 들이치는 사건이 있은 뒤 농촌지역들엔 아침마다 삐라가 하얗게 뿌려지군 했다. 삐라만 아니라 바람벽, 대문짝, 큰나무같은덴 격문이 나붙기도 했다.

 

농민들이여, 단결하여 일어나라!

 

피압박대중이 단결하여 일어날 때 그 힘을 당할자는 이 세상에 없다. 태봉시의 경찰들과 광주놈을 굴복시킨것도 피압박대중의 단결된 힘이다.

최광주의 집은 포위속에 들고 경찰들과 광주는 로동대중의 요구조건앞에 무릎을 꿇었다.

 

태봉시의 투쟁소식을 알리고 농민들을 각성시키는 서리발같은 글이 격문에도 삐라에도 적혔다. 부암에도 삐라가 뿌려지고 격문이 나붙었다. 아침이면 마당가나 우물가, 길우에도 삐라가 하얗게 널리였다. 어느날 아침엔 민가네 대문짝에도 격문이 나붙었다. 민가마누라도 홍달수도 이쯤 되니 벌벌 떨지 않을수 없었다. 민가마누라는 정말 검고 칙칙한 그 무엇이 인젠 대문앞에까지 다가와서 다리를 분질러라, 목을 쳐라 함성을 올리는것만 같아 대낮에도 밖엘 나서지 못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중촌 부암지역엔 경찰들이 북나들듯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돌아쳤다. 놈들은 집들을 뒤지고 청년들을 두드려패는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삐라투쟁은 멈춰지지 않았다. 점점 더 그 살포구역이 확대되여갔다.

이런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마을 풍산집에서 희섭이가 부른다는 련락을 받으시였다. 풍산집으로 가시니 거기엔 희섭이와 성재가 앉아있고 희섭이의 처 금실이도 와 앉아있었다. 금실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볼이 부은것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정숙동무는 정신이 멀쩡해서 지금두 민가네 방아간으로 자꾸 나가오?》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으로 들어서시자마자 성재가 눈을 붉히며 하는 소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어정쩡해서 대꾸를 못하시였다.

《삐라가 뿌려지는것두 못보우? 맨나물만 무쳐먹구 무슨 힘으로 그래? 민가놈을 쳐죽이거나 그놈의 집에다 불을 지르진 못할망정 연자방아에 나가서 일을 해줘? 저 년놈들이 동무의 올케를 잡아가게 한것도 모르오? 도대체 지금 혁명이 어떻게 되고있는지 알고나 있소?》

본시 찬찬치 못한 성재는 요새 경찰의 칼에 찔리운 어머니가 죽는다 산다 하는바람에 원쑤에 대한 독한 증오심으로 더욱 밸머리가 세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혹독하게 꾸짖는바람에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시였다.

《그만하우. 오죽하면 방아간으로 나가겠소. 그런데 정숙동무, 다름아니라 동무한테 중요한 일을 맡길가 해서 불렀소.》

희섭이 정색하고 앉아서 말을 꺼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시였다.

《점심은 먹었소?》

《네···》

《그럼 지금 곧 떠나야겠소. 하촌에다 이걸 날라가야겠소.》

희섭이는 구석쪽에 있는 마대를 당기더니 그안에서 쌀자루같은것을 두개 꺼냈다.

《이 자루속엔 수수겨가 들어있고 겨속에 격문과 삐라묶음들이 들어있소. 이것이 오늘저녁으로 하촌에 가닿아야 하오. 그리구 당신은 어떻게 할테요? 갈골로 갈테요, 안갈테요?》

희섭이는 자기 안해를 돌아보며 물었다.

《갔다올테야요.》

금실이는 괜히 저고리고름을 매만지며 혀아래소리로 대꾸했다.

《아주머니, 갔다오십시오. 조직에서도 남자들이 가는것보다 녀자들이 가는게 나을것 같아서 말이 있은거니까 갔다오는게 좋겠어요.》

성재가 한마디 곁들었다.

《글쎄 전치근의 딸이 시집가는데 치마저고리 해주는게 더 중요하우, 혁명이 더 중요하우? 그까짓 부자놈의 집에 딸을 주고 혁명과는 등을 돌려대는 집에 바느질은 무슨 바느질이요? 당장 걷어치우오. 바느질재간두 혁명을 위해서 바쳐야 하오.》

《아이참, 난 색시 부모를 보고 해주는건 안야요. 돈과 봉건의 희생물로 되는 색시가 불쌍해서 해주는거지···》

《글쎄 그런 동정은 다 필요없다니까··· 치마저고리가 아니라 혁명을 해야 그런 사회악도 쓸어버린단말이요.》

금실이는 입을 감쳐물며 대꾸를 안했다. 사실 희섭이는 지금 학교물까지 먹은 안해가 혁명에 뛰여들어 한몫을 못한다고 불만이 컸다. 그래서 늘 안해더러 혁명을 생각하라고 윽윽하며 투쟁속에 끌어넣어 단련시키려고 애썼다.

《둘이 바쁜 걸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산을 타고 내려가다가 금페를 지나서 들길로 내려서는것이 좋겠습니다.》

성재가 삐라자루 둘을 내놓으며 말했다.

《조심을 해야 하오. 정작 경찰놈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잘 속여넘기고 지나쳐야 하오. 그리고 가닿으면 저물테니 오늘은 거기서 자구 래일아침 돌아오도록 하우.》

희섭이가 주의를 주었다. 그는 김정숙동지께 말하듯하지만 자기 안해에게 타이르는 심정이 더 앞섰다. 쟁개비 끓듯하는 성미니까 지금 부풀은 볼은 이어 가라앉겠지만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무슨 실수라도 저지를가봐 불안스러웠다.

희섭이는 갈골과 하촌에 가서 누구누구를 찾아가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어떻소, 정숙동무 해낼것 같소.》

지시를 다 주고나서 희섭이는 이렇게 물었다.

《하겠어요.》

《그담 당신은 어떻소? 자신이 있소?》

금실이는 딸기빛같은 얼굴을 떨구고 앉아 말이 없다.

《자신이 없으면 그만둬야지.》

《념려마세요.》

그제야 금실이도 얼굴을 들며 대답하였다.

얼마후 그들은 삐라를 받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쪽지도 몸에 간수해넣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곧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희섭선생의 심부름을 가는데 늦어지면 묵어오겠노라고 말씀하시였다.

《무슨 심부름이냐?》

《좀 급한 심부름이 있어요.》

《심부름을 시키면 갔다와야지! 민가네가 찾아오면 어데 좀 보냈다고 하마. 인제야 무서울게 있니? 너도 한껏 앙심을 먹고 시키는 일을 잘해라!》

어머니도 점점 더 달라져갔다. 들썽거리는 동네의 분위기속에서 어머니자신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세월이 아니라는것을 통절히 깨닫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애기를 잔등에 업으며 띠를 끙끙 죄여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앓고난 누런 얼굴이 눈에 띄울 정도로 경련을 했다.

해가 기울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와 함께 풍산집뒤 숲을 헤치며 올라가시였다. 한참 올라가시니 돌이 우죽뿌죽 내민 비탈이 나타났다. 한발 잘못 디디면 낭에 떨어질것 같은 위험한곳이였다.김정숙동지께서는 한손으로는 머리에 인 삐라자루를 붙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벼랑에 서있는 나무들을 잡아당기고 하면서 겨우 험한 비탈을 벗어나시였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백토가 내놓인 등성이우에 다박솔이 무데기무데기 서있다. 꼭 애들이 씨름을 하며 뛰놀기 좋을곳이였다. 산꼭대기우에 이런곳이 있다는것은 기이한 일이였다.

《정숙동무, 좀 쉬구 가요.》

금실이는 벌써 기분이 개운해져서 제 자루를 내려놓고는 김정숙동지의 자루도 얼른 받아내렸다. 김정숙동지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철철 흘렀다. 금실이의 얼굴은 새빨간데 김정숙동지의 얼굴은 핼쑥해보였다. 앓고난 뒤끝에 방아간에서 고역을 치르시다가 와서 그런지 모른다. 아직도 그이의 귀전에서는 뿌그극뿌그극 힘겹게 돌아가는 연자방아소리가 그대로 울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지옥같은 속을 벗어나 졸지에 홀가분해진듯한 기분이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올라오신 산이 이렇게 높은 산인줄은 모르시였다. 끝없는 공간이 눈아래 펼쳐져나갔다. 온통 재빛처럼 뿌옇다. 발밑에서부터 울멍줄멍 산마루들이 굽이쳐나갔는데 월평시로 가는 큰길이 산굽이를 에돌아 뻗어갔다. 금페, 갈골, 하촌지역은 두어번 활개짓을 하고 발만 구르면 뛰여내릴 가까운곳에 있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아이 시원해라! 어쩜 이렇게 좋은곳이 뒤곁에 붙어있는줄도 모르고 살았을가?》

금실이는 기분이 좋아서 땀을 씻으며 중얼댔다.

《언니도 여기 첨 올라와봐요?》

《그럼, 내야 그저 그 량반의 호통속에서 어데 한걸음을 나가봐요? 이건 밤낮 혁명혁명 한다니까··· 자기 혼자 혁명을 하는것 같이···》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역시 남편한테서 꾸중을 들은 일이 아직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언니, 그렇지만 선생님만치 무던한분이 있어요?》

《하긴 호통을 쳐도 뒤는 없어. 내가 그통에 쌈두 못하지 않아요.》

《쌈은 무슨 쌈을 하겠어요. 언니네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게요?》

《온 부러워할 집도 없는게지.》

그러나 발깃해진 금실이의 고운 얼굴은 웃고있었다. 그는 돈있는놈의 집으로 시집가게 되는 분임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그러면서 그까짓 전치근의 낯을 보아선 꼬물만치도 일을 도와주고싶은 생각이 없지만 불쌍한 분임이를 위해서 웃저고리 웃치마는 꼭 자기가 해주어야겠다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그 심정이 고마우셨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분임이를 구해낼수 없는 형편이라면 떠나는 분임이에게 옷이라도 한벌 지어주어야겠다는것이야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와 함께 또 삐라자루들을 이고 떠나시였다. 금실이는 걸으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에야 금페 뒤산줄기를 내려서 들길로 들어서시였다.

다행히 금페는 무사히 벗어나시였다. 금페에서 한 오리 내려가 갈골과 하촌이 갈라지는 길목에서 변장을 한 경찰같은놈들을 만나시였다. 그러나 그놈들도 탈없이 지나치셨다. 지나치고보니 경찰은 아닌것도 같으시였다.

갈림길에서 금실이와 헤여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혼자서 다시 큰길을 버리고 산골짜기로 들어서시였다. 물오리, 고로쇠따위 활엽수들이 울창한 산허리 오솔길을 걸으며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시였다. 인제 이 산등성이만 타고넘으면 하촌마을을 굽어보게 되신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지막한 산마루에 올라서시였다.

하촌벌이 한눈에 바라보이시였다. 앞에 강이 흐르고 강건너에는 꽤 넓은 벌판이 펼쳐져있는데 벌판너머 숲이 무성한 야산기슭에 큰 동네가 들어앉았다. 게딱지같이 다닥다닥 땅에 붙은 초가집들사이에 드문드문 기와집도 솟아있고 학교인듯싶은 기다란 양철집도 보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올라서신 산의 오른편 골짜기에서 감돌아나온 큰길이 강우에 놓인 다리를 건너 벌판을 지나 동네복판을 꿰지르고 뻗어갔다. 월평시로 통하는 길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리우를 한참 주시해보시였다.그이께서는 월평장으로 다니며 몇번 이 다리우에서 경찰놈들의 몸수색을 당해보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혹시 경찰놈들이 지켜서있지나 않는가 해서 자세히 살펴보시는것이였다. 다리우로는 달구지들이 몇채 굴러간다. 농민들이 여러명 이쪽으로 건너오기도 했다. 경찰은 지켜서있는것 같지 않았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산마루에서 내려오시였다. 다리목에 오시니 땅거미가 어둑어둑 기여들었다. 그이께서는 나는듯이 다리를 건느시였다. 경찰놈들이 지켜서있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다리를 건너서기가 어째서 그렇게 을씨년스러운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다리를 건느니 안도의 숨이 나오고 가슴이 후련해지시였다. 마을에 들어서시니 골목길들이 몹시 어두웠다. 그이께서는 한참 걸어들어가서야 리상준이란 사람네 집을 찾으시였다.

고수머리청년이 저녁을 먹다가 토방으로 나서며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저···》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안에 누구 딴사람이라도 있지 않는가싶어 부암에서 왔다는 소리를 이어 꺼내지 못하시였다.

《갈골동무가 아니요?》

《아니야요. 저 부암에서···》

《그럼 경식동무한테서?》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구태여 희섭이가 보냈다는 말을 안하시였다.

《어서 들어오우. 그건 뭐요?》

《저···》

《알만하우. 이리 보내우.》

리상준은 자루를 냉큼 받아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리상준을 따라들어가시였다. 부엌으로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깜짝 놀라시였다. 조그만 아래웃방에 애들까지 식구가 수십명은 되는것 같으시였다. 큰 둥글상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인듯한 녀인 둘이 마주앉아있는데 거기에 애들이 오구구 둘러앉았다. 그 웃목에 리상준이와 겸상을 해서 먹고있는듯싶은 그의 형같아보이는 얼굴 시꺼먼 사람이 또 한명 앉아있었다. 웃방엔 또 누가 있는지 그릇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중얼거리는 이야기소리까지 들렸다.

식구들이 모두 김정숙동지를 올라오라고 했다. 아래도리를 벗은 애들은 상준이가 들여다놓은 자루를 보겠다고 부엌으로 달려내려왔다. 그러는것을 상준이가 손짓을 하여 도로 올려쫓았다.

《어서 올라오라구. 우린 이렇게 끼니마다 죽나발이라우. 맛없는것이라도 올라와 한술 들라구.》

상준의 어머니가 자리를 내주며 한사코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안목에 앉아있는 며느리에게 눈기짓을 했다. 며느리가 누구를 주자고 내놓아두었던 죽그릇인지 골숨한 죽그릇을 하나 상우에 올려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득이 끌려올라가 죽숟가락을 드시였다. 애들은 기승을 부리며 제 그릇것을 다 퍼먹고는 어른들 그릇에 달라붙었다. 어른들 죽그릇이란 죽이 두어그릇 들 조그만 옹배기인데 옹배기속에서 죽을 떠가는 숟가락싸움이 일어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모습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그중에서 제일 어린것은 엉거주춤 일어섰는데 그래도 팔이 옹배기에 가닿지 못해 죽을 제대로 떠가지 못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자신의 죽그릇을 들어 어린것앞에 놓여있는, 말끔히 가셔낸 빈 그릇에 죽을 갈라주시였다.

《누나, 가만둬요. 걘 실컷 먹구두 그래요. 어서 잡숴요!》

누군가 옆에서 팔굽을 당기며 하는 소리다. 돌아보니 여라문살 되여보이는 큰애가 순박한 큰 눈을 슴벅거리며 말했다. 먼저 숟가락을 놓고 상에서 물러앉아있던 모양이다. 정말 의젓하고 기특하게도 생겼다. 가난이 이처럼 빨리 철들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일없어. 난 점심을 배불리 먹고 떠났더니 아직두···》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며 한숟갈 더 덜어놓으시는데 이번에는 주인어머니가 아예 죽그릇을 빼앗아놓으며 말하였다.

《그 애들은 실컷 먹구두 그런다우. 손님이 오니까 더 극성이지···》

김정숙동지께서는 할수없이 더 덜어주질 못하시였다.

《애기네두 이렇게 사나?》

주인어머니가 물었다.

《그럼요. 저희 집에두 식구가 많아요.》

《식구가 많은거야 뭬라나? 먹을것이 넉넉한 다음에야···》

《먹는것도 이렇게 먹지요뭐.》

식구들중에선 누구도 김정숙동지께서 어데서 왔으며 무엇하러 왔는가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상준이가 맞상을 한 자기 형인듯한 사람과 무어라고 혀아래소리를 하자 얼굴 시꺼먼 사람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녁이 끝나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희섭이가 써보낸 쪽지를 상준이에게 전달하시였다. 상준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쪽지를 읽었다. 읽고나서는 이어 등잔불에 태워버렸다. 식구들은 모두 못본척했다. 조무래기들도 훈련을 시켰는지 쪽지를 읽고 불사르는것만은 모두 모른척하였다. 아까 그 큰애가 주저주저하며 곁에 와앉아 다정히 김정숙동지의 손을 쥐였다.

《넌 이름이 뭐냐?》

《상식이예요.》

《어쩜 그렇게 어른스러우냐?》

《걘 우리 삼촌이예요.》

조무래기들이 홰를 타고앉은 병아리들같이 가지런히 앉아서 한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고 리상준이도 웃었다.

《정숙동무, 우린 갑시다. 여기선 잘 형편이 못되니 나를 따라가야겠소.》

아마 희섭선생이 삐라를 가지고 가는게 누구라는걸 쪽지에 적은것 같았다. 그러기에 상준이는 당장 김정숙동지의 이름을 부르며 어디로인가 가자고 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준을 따라나서시였다. 한참 걸어서 마을뒤 등성이를 넘으시였다. 삐라자루를 옆구리에 낀 상준이는 달음박질하듯 바삐 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가쁘게 따라가시였다.수림이 우거진 산밑에 우물정자로 지은 큰 초가집이 있는데 안채로 들어가시니 청년들이 대여섯명 모여있었다.

상준이가 김정숙동지를 부암에서 련락온 동무라고 소개하자 모두 일어서서 악수를 했다. 어떻게 다부지게들 쥐였다 놓는지 손을 매돌밑에 넣었다 꺼내는것 같으시였다. 다들 머리를 길러넘겼다. 말을 할 때마다 고개짓을 해넘기면 긴 머리들이 뒤로 철썩철썩 넘어가붙군하였다. 월평시가 가까와 그런지 모두들 도회지물에 닦이운것 같았다. 그들은 삐라자루를 보자 그게 무언가고 물었다.

《일이 마침 잘됐소. 흰눈이 왔소.》

《흰눈이? 야! 됐어됐어.》

모두 기세가 충천해서 끓었다. 여기선 삐라를 달리 부르는것 같았다.

《마침 동원령을 파탄시켜놓게 되였군.》

《참말이요. 래일아침 동민회의가 깨져나가게 됐소. 지금 구장네 집에 군부에서 두놈씩이나 나와있는데 그놈들 잔등판에도 흰눈을 댓장씩 붙여야겠소.》

청년들은 크게 웃어댔다. 사실 지금 월평시에 밀려든 왜놈군대는 무슨 군수품운반을 위해서 그러는지 요새 월평시주변농촌들에 사람과 달구지의 동원령을 내리며 야단을 쳤다. 하촌에서는 그것때문에 래일아침 학교마당에서 동민회의를 열기로 되여있었다.

리상준은 자루속에서 삐라와 격문을 꺼내놓았다. 모두들 한장씩 가져다가 읽었다. 중촌 청바위굴에서 투쟁을 조직하고있는 상급조직에선 벌써 이 지역에 동원령바람이 휩쓸고있다는걸 알고 그걸 꺾어눕히는데로 창끝을 돌리고있었다. 삐라도 격문도 모두 동원령을 반대해서 일어나라는 내용이였다.

 

왜놈군부의 동원령을 거부하라!

놈들은 우리 동포를 피바다 불바다에 몰아넣는다. 동원령에 응하는것은 놈들의 살륙과 학살을 돕는 일이다. 무엇때문에 자기 농사를 내버리고 놈들의 군수품을 실어나르겠는가! 응하지 말라! 일치단결해서 동원령을 거부하라!

 

청년들은 모두 가슴이 들먹거리며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이 뛰시였다. 바로 이런 삐라를 이고 여기 당도했다고 생각하니 무척 자랑스럽기도 하시였다.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밤으로 이 삐라를 집집마다 들여뜨리고 마을 요소요소와 학교마당에도 뿌려야 하겠소. 그리고 래일아침엔 우리 공청이 앞장에 서서 조직군중을 발동시켜 동민모임을 파탄시켜야겠소. 어떻소, 동무들 생각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렇게 사람좋아보이던 리상준이 어디 갔는가싶은 심정으로 상준의 준엄한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그러면서 자신께서도 그 어떤 뜨거운 충동과 의욕으로 온몸에 힘이 오르는것을 느끼시였다.

《해봅시다!》

《아무렴, 그까짓 동원령 하나 짓부시지 못하고야 공청원들이 있다구 말하겠소!》

청년들은 저마다 주먹을 부르쥐며 호응하여나섰다.

《인석동무,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풀을 좀 쑤도록 하오. 격문을 붙이려면 풀이 있어야 할테니까···내 오늘 룡신동에 가니까 어제밤 금페에 또 흰눈이 내렸다고 들썩들썩 끓습디다. 우리 하촌도 한번 들써덕 끓게 해봅시다.》

《복더위에 흰눈이 내리니까 끓을수밖에 더 있나요. 누가 흰눈이라고 불렀는지 그럴듯한데···》

인석이라고 불리운 청년이 이런 소리를 하면서 얼른 일어서더니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청년들 몇은 또 상준이한테서 다른 임무들을 맡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청년 한사람만이 남아서 삐라와 격문을 내용별로 갈라놓는 일을 하였다.

담배를 붙여문 상준이 잠시 가물거리는 등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인가 하더니 문득 김정숙동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동무 생각엔 어떻소. 이렇게 하면 동원령을 파탄시킬수 있을것 같소?》

스스로 제자신에게 다짐해보는 소린지 김정숙동지께 물어보는 소리인지 알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얼굴이 확 붉어지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기를 그 무슨 혁명가같이 여겨주는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도 드시였다.

《왜 대답이 없소? 아무래도 저 구장놈의 집에다 던지는 삐라엔 몇줄 더 적어서 던지는게 좋을것 같은데···》

《뭐라구요?》

《앞장에 나서서 뛰면 처단해 없앤다고말이요.》

《좋을것 같애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간신히 대꾸하시였다.

그이의 얼굴에선 여전히 수집음과 붉은 빛이 가셔지지 않으시였다.

밖으로 나갔던 청년 한명이 들어왔다. 계골이 어데인지 계골쪽의 동향을 알아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민회의에 나갈가 어쩔가 하며 동요하고있다는것이였다.

《그 개같은놈이 모여오지 않으면 이름을 적어서 죄다 군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돌아다녔다니까 두려워할수밖엔··· 음, 어떻게 하든지 저 개를 빨리 처단해 없애긴 없애야겠어.》

리상준이 구장을 처단해야겠다고 별렀다.

《기회를 노립시다.》

청년도 응수하며 구석에 서있는 검은보에 싼 기다란것을 발돋움하며 천반지를 바른 누런 천장속에 밀어넣는다. 천장속에선 울거덕울거덕 소리가 났다. 무엇인가 그런것이 많은 모양이다. 틀림없이 무기인것 같은데 총은 아니고 날창이나 곤봉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기서도 부암 못지 않은 무서운 싸움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참 정숙동문 어서 이 집 어머니곁에 내려가 쉬오. 피곤할텐데···》

얼마후 리상준이 말했다.

《저두 삐라를 뿌리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삐라야 우리가 어련히 뿌리겠기에 그러오.》

《그렇지만 어떻게 저라고 자고만 있겠어요.》

리상준은 무슨 뜻인지 껄껄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팔을 펴고 이들의 투쟁에 섭쓸리지 못하는것 같아 자꾸 더 얼굴이 붉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빠가 읽으시던 소책자에서 본 문구가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문제를 옳다고 인식만 해서는 안된다. 옳은 문제를 위해서 투쟁할줄 알아야 한다···

무슨 로동운동의 투쟁경험을 쓴것 같은 책인데 거기 이런 문구가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째 이 문구가 지금 자기를 채찍질하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시였다. 《문제》라는것을 《혁명》이라고 고쳐놓으면 혁명을 옳다고 인식만 해서는 안되고 그것을 위해 싸울줄 알아야 된다는 말인데 지금 자기에게 얼마나 적중한 말인가. 싸울줄 알아야 한다는것, 그게 혁명에서 그렇게도 중요한것인데 자기는 아직 그걸 모르고있다. 어떻게 해야 이 청년들처럼 싸울수 있을가. 왜 이렇게 수집어만 할가. 용기를 내고 의견도 말하고 하질 못할가. 그러니까 삐라자루를 이고왔으니 정지방에 내려가 자라는 말까지 하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준엄한 싸움판에서 줄곧 자기를 비쳐보며 은근히 어깨가 낮아지기도 하시였다.

밤이 퍽 깊어서였다. 청년들은 삐라와 격문을 노나가지고 떠났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풀그릇을 들고 리상준을 따라서시였다.

《잘 뛸수 있겠소?》

리상준이 걱정스러운듯 돌아보며 물었다.

《네, 뛸수 있어요.》

《신이 벗어지지 않을것 같소?》

《괜찮아요. 벗어지면 들구 뛰죠.》

《언제 들구 뛸새가 있나요. 미리 벗어지지 않도록 해야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발을 움쭉거려보시였다. 벗어질것 같지는 않으시였다.

《벗어지진 않겠어요.》

《그럼 됐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장 가슴이 두근거리시였다. 리상준은 초가집들이 닥지닥지 앉아있는 사이길을 빠져나갔다.

《자, 이 벽에 풀칠을 하오.》

리상준이 속삭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풀그릇속에 놓여있는 풀비를 들어 길가를 면하고있는 담벽에 문대시였다. 리상준은 주룩 소리를 내더니 격문을 한장 붙이고 앞섰다. 그는 지나가며 울타리안에 삐라도 집어던졌다. 두집 세집 쏜살같이 걸어나가며 삐라를 뿌리고 격문을 붙이고 하였다.김정숙동지께서는 잽싸게 비질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생소한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먼저 나가며 풀을 칠해야 할것 같아 앞서시였다. 저편에 굵은 나무가 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리로 달려가시였다. 차츰 맘도 달라지신다. 이때까지 느껴본일 없는 투지와 쾌감이 솟구치시였다.

《가만, 저게 구장놈의 집이요. 아직 불이 켜져있소. 그렇지만 갑시다.》

나무에 격문을 붙이고난 리상준이 이러며 재빨리 앞서 걸어갔다. 벽돌담장을 두른 기와집이 우중충하게 솟아있다. 대문이 어느쪽에 있는지 대문부터 가야 한다면서 리상준은 담장밑을 돌아나갔다. 정말 민가네 대문짝만한 큰 대문짝 둘이 저쯤 높은데 올려다뵈였다. 요행 닫겨져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돌을 살랑살랑 밟으며 올라가시였다.

《여러장 붙여야겠소. 대문짝 둘에 다 풀칠을 하오.》

또 리상준이 소곤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풀칠을 하시였다. 리상준은 격문을 넉장이나 붙였다. 바로 거기에 새로 써넣은, 처단해죽인다는 글줄들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준이를 따라 대돌아래로 바람같이 사라지셨다. 리상준은 담장밖으로 돌아나오며 삐라도 담장안에 여러장 집어던졌다. 안에선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앞마을쪽에서 개짖는 소리가 컹컹 들려왔다. 딴패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는지 알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 개짖는 소리도 멎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좀 잦아드시였다. 마을뒤로 돌아나오시니 시내물이 흘렀다. 물속에서 찬란한 별들이 흥떵흥떵 어깨춤을 추었다. 풀밭에선 풀벌레도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모든것이 신비롭고 새로와보이시였다. 투쟁이 이렇게 쾌감을 주고 기쁨을 줄줄은 모르시였다. 래일아침 군부에서 왔다는놈들과 구장놈이 초풍을 일으키고 마을사람들이 삐라와 격문을 읽으며 떠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뻐개지는것 같으시였다. 리상준은 시내가로 올라가다가 몇집 널려있는 초가집마당들에다 남은 삐라를 또 뿌려던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내물로 가서 풀그릇과 풀비를 씻어들고 리상준을 따르시였다. 눈앞이 활짝 넓어진것 같기도 하고 큰 산을 하나 넘은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이 몹시도 가벼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