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태봉시에서 돌아온 김정숙동지께서는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서 앓으시였다.

최광주네 집을 들이치던 군중이 달아오른 눈에 그대로 떠오르고 유리문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시였다. 복녀와 함께 경찰놈의 주먹에 떠밀리우며 올케를 부르기도 하시였다. 그러는가 하면 밤중에 달려온 들판과 무시무시한 산기슭도 떠오르시였다. 곡식밭도 무섭고 길도 흰 뱀이 구불거리며 기여나가는것 같이 보이시였다. 그저 내내 눈앞에는 환각이 덮치고 몸엔 땀이 함빡 내솟군하시였다.

이틀이 지나서야 열이 좀 내리고 머리와 귀속이 조용해지셨다. 그래도 어머니가 그새 앓는 몸으로 머리를 들고일어나 딸의 시중을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야 몸이 좀 개운해져서 일어나시였다. 동이를 끼고 우물가에 나가시니 분임이가 우물가에 와앉아 갓 캐온듯한 도라지를 씻고있었다. 가물이 심해서 자기네 앞우물은 말랐다는것이였다.

《참 어떠냐? 앓는다는 소리를 듣고도 와보질 못했구나.》

《그저 몸살을 좀 했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의 말에 대꾸하시였다. 요새 와서는 그이께서도 무거운 시름을 안고있는지라 역시 시름에 눌려있는 분임이를 만나기만 하면 눈굽부터 찡해지신다.

《어머닌 어떠냐?》

《어머니도 차츰 나아간단다. 그래 시집갈 차비가 다 돼가니?》

《차비는 무슨 차비겠니? 그저 어머니가 뛰여다니며 혼자 애쓰지.》

분임이의 쌍까풀이 진 눈굽에 벌써 눈물이 그렁하였다. 그 곱던 살결도 까실까실해졌다.

《그런데 잔치는 언제게 그렇게 서둔다니?》

《날을 정하기나 한걸 그런다더냐. 그저 저쪽에서 금년가을로 하자는 말만 있었다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서두르질 않니.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 억울하고 캄캄해만 지는지 모르겠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대꾸 없이 물을 길어올리시였다.

《너의 언니는 언제 나오게 될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더냐?》

분임이가 묻는 소리였다.

《아는 사람이 없잖구.》

《태봉시에 가선 누구를 만났댔니?》

《아무도 못만났어. 광부들이 광주놈의 집을 둘러싸고 싸우는것만 종일 보다가 왔지.》

《아니 광부들이 광주놈의 집을 둘러싸?》

《그럼··· 어마어마한 쌈이 있었단다.》

《그건 무슨 싸움이게?》

《부자놈을 반대하는 싸움이지···》

분임이는 은근히 한숨을 지었다. 세상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들썩들썩하는것 같은데 자기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일같이도 느껴졌다. 무슨 싸움이 있다면 제발 자기 일을 활딱 뒤집어놓는 그런 싸움이라도 있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지금 동네에서는 자기더러 팔려간다고 떠들썩하는데 어느날 밤엔 부녀회장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혼사를 파의하라고 권고도 했다.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여서 땅을 다 빼앗기고 굶어죽게 됐는데 딸이라도 밥술이나 먹는 집에 시집을 보내는 일이 무슨 잘못이냐고 웨쳤다. 부녀회장은 그담엔 말을 못하고 돌아갔다. 그뒤에 희섭선생도 한번 다녀갔으나 아버지의 맘을 움직여내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되여 자기의 혼사문제는 더욱 동네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게 되고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이 자기의 가슴에 불을 더 일구느라고 쓸데없이 달려다니며 참견을 든다고 노발대발했다. 이러는속에서 분임이는 자기가 박대동네 집으로 시집을 가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더 옭맺혀지긴 했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 세상이 벌컥 뒤집히는 그 무슨 큰 변이라도 터진다면 그 사품에서 빠져나갈 길이 열리지나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분임이는 인제 자기넨 민가네가 저당잡았던 땅을 죄다 팔아먹어서 못살게 되였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그 말속엔 자기는 집안도 이렇게 망하게 되여 할수없이 시집을 갈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담겨져있는것 같았다.

《정숙아, 이걸로 앓는 어머니한테 도라지채나 해드려라.》

분임이는 우물가 돌우에 도라지를 둬줌 놓고 광주리를 들고일어선다.

《그건 뭘 그러냐?》

《어서 어머니한테 해드려.》

분임이는 젖은 광주리를 이고 걸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도 자기도 이젠 이렇게 자기들로는 어떻게 할수 없는 슬픔을 붙안고 분임인 분임이대로 가고 자기는 자기대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느낌도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정말 이것이 소꿉질 어린시절부터 그처럼 다정하게 지내온 분임이와 자기와의 영리별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쓰리고 아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일 마음이 무겁고 괴로우시였다. 아직 몸이 가뜬치 않긴 했으나 그래도 일손을 잡아야 하겠으니 산에 가서 나물 한바구니를 뜯어오시였다. 그리고는 앓는 어머니에게 감자라도 몇알 삶아드릴가 해서 애기를 업고 감자밭으로 나가시였다. 감자숲이 아직도 청청했다. 호미로 몇북 파헤쳐보시니 그래도 닭알같은것이 몇알씩 달려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창 자라는것을 캐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한북에서 큰것으로 한알씩만 뜯어내고는 도로 정성스럽게 묻으시였다. 이러는데 홍달수가 밭머리로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거기 나와서 무얼 해? 아직 감자가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감자를 캐?》

김정숙동지께서는 호미를 놓고 얼른 일어서시였다. 홍가는 밭고랑으로 징겅징겅 걸어들어왔다.

《금년엔 감자를 캐먹는것도 도조를 바친 담에야 캐먹어. 너희가 심었다구 그저 아무때고 맘대로 캐먹을줄 아느냐? 그리고 방아간엔 왜 안나오느냐? 빨리 나가자! 오늘은 마님앞에 가자!》

홍가는 곁에 다가와 웨쳤다. 애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홍가를 잠간 쏘아보다가 우는 애기를 앞으로 돌려끼며 머리를 쓸어주시였다. 그러나 애기는 홍가가 무서운지 품에 파고들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빨리 나가자, 오늘은 네가 마님앞에 가서 이야기를 좀 해라. 어째서 방아간으로 나오지 않는지··· 그래 빚진 죄인이란 말을 못들었니? 남의 빚을 졌으면 빚값만치 일을 해줘야지 벋대고 안나오면 될줄 아느냐? 네가 속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보자!》

하는 수작이 오늘은 무슨 일을 낼듯싶기도 했다. 속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보자고 하는 소리는 자기가 퍼준 쌀을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는 앙심을 터뜨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사실 홍가는 태봉시 경찰놈들에게 김정숙동지까지도 끌어가라고 찔러넣긴 했었는데 그놈들도 홍가의 게저분한 됨됨을 저울질하면서 그의 말을 좇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이나 홍가를 쏘아보다가 감자밭에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는 애기를 겨드랑밑으로 돌려낀채 홍가앞에 서서 걸으시였다. 얼굴이 무섭게 새침해지시였다. 불과 지척인 태봉시에서는 광부들이 들고일어나 못된놈을 들이치는데 여기선 아직도 이런놈이 뜨끔해하는 기색도 없이 사람구박하는 일을 여반장으로 해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가슴이 떨리시였다.

《재삼 말하지만 금년엔 감자를 너희 마음대로 못캐먹어. 이 감자밭에도 민주사네 도조가 붙어있어. 인제 민주사가 감자로 도조를 바치라면 감자로 바쳐야 하는게고 감자대신에 조나 수수를 바치라 하면 조나 수수로 도조를 바쳐야 하는거야. 그런데 아직 조나 수수를 바칠지 감자를 바칠지 민주사가 확언을 안했는데 감자밭에다 호미질을 해? 이런 일은 법에다 걸면 도적놈으로 잡혀.》

홍가는 수작을 늘어놓으며 으험으험 기침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대꾸를 안하시였다. 대꾸할나위도 없는 수작이였다. 민가네는 이때까지 감자를 도조로 받아먹은 일은 없었다. 이건 분명 그 무슨 도적심사를 가진 꿍꿍이가 있거나 사람을 마구 억누르기 위해서 하는 수작일것이다.

애기는 자꾸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김정숙동지의 적삼 앞자락에 문지르며 박박 쥐여뜯었다. 인젠 무서워서 우는게 아니라 젖을 달라고 보채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올케의 생각이 번개불처럼 떠오르시였다.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으시였다. 올케가 지금은 어떻게 하고있을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살아있다면 이 애기를 보고싶어 어떻게 견딜가.

김정숙동지께서 민가네 마당에 들어서시니 두눈이 움푹 들어간 분임이의 아버지가 퇴마루끝에 와앉아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골을 동인 민가의 처는 문턱너머 방안에 앉아서 전치근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악을 썼다.

《그래 우리가 도적놈이야? 저당잡았던 땅을 처분했는데 우리가 도적놈이야? 기한전에 돈을 못물면 채권자가 저당잡은 땅은 이렇게도 할수 있고 저렇게도 할수 있어. 그래서 땅을 저당잡아, 임자네가 땅문서 건사하기 힘들어한다구 우리가 땅문서를 맡았던건 아니야.》

분임이의 아버지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관자노리가 칼등같고 깊은 눈확속에서 불빛같은 눈동자만 번쩍거린다. 그는 요새 민가가 땅을 처분했다는걸 알고는 술을 폭음하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전치근은 순순히 땅을 빼앗길 잡도리를 안했다. 등에 날이 난 민가가 땅을 어떻게 팔아먹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받아먹은 땅값이 고작 빚값정도에 머무를리는 없는것이다. 적어도 빚값 배는 더 받아먹었을것이 틀림이 없다. 이 사실을 발가놓고 제놈을 법에 건다면 아무리 흑백을 전도하는 법일지라도 민가를 두둔해나서지는 못할것이다. 그때엔 민가 제놈이 도적놈으로 잡혔지 별수가 없을것이였다.

전치근은 요새 내내 이렇게 벼르며 은근히 들고일어날 방법을 생각했다. 한편 태봉시에 있는 민태설이도 바로 이런 사태가 일어날가봐 뒤가 켕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치근을 움찍 못하게 다잡아누르라고 자기 마누라에게 기별을 보내왔다. 그래서 민가처는 이렇게 오늘아침 전치근을 불러다놓고 이모저모로 쥐여박는것이였다.

《응? 왜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 그래 내 말이 옳은가 그른가? 우리는 임자네 전지를 전지대로 돌려주려고 어느날까지 빚을 물라는 기한도 정해서 기별하고 임자 용심쓰는것만 바라구 있었어. 그래 기한이 다 됐는데 임자가 이 민씨네를 찾아와서 여차여차하다는 말이나 한마디 했는가? 어쩜 남의 돈 쓰고도 배통이 그렇게 든든할가? 우리도 할수가 없어서 임자네 토지를 팔았어. 금광 사느라고 돈에 기갈이 나서··· 그래 우리가 도적놈이야? 술 처먹구 허튼수작이 웬 허튼수작이야. 말좀 하라구, 무슨 배알로 그런 소리를 하는가?》

민가처는 문턱너머 마루바닥을 탕탕 때렸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의 잔등에 업혀있는 애기도 울음을 딱 그치였다. 인남이는 방안에 앉아있는 민가마누라를 두릿두릿 눈을 굴리며 바라보았다. 애기의 눈에도 군턱이 처지고 볼따구니 둥근 아낙네가 마루를 두드리며 기광을 부리는것이 이상해보이는 모양이였다. 악을 쓰던 민가마누라의 눈이 얼른 어린것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당장 경풍이 인듯 눈덕이 푸들거렸다.

《비켜서지 못하겠니? 넌 왜 마루앞에 와서 마주서있는거냐?》

민가처의 독살스런 소리가 떨어지자 홍달수는 얼른 김정숙동지를 부엌문앞으로 이끌었다.

《말 좀 하라구. 왜 찍소리가 없어? 그래 어쩌자고 우리를 도적놈이요 뭐요 하고 돌아다니는거야?임자 속판에 뭐가 있는지 좀 들어보자구.》

분임이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는 고불통대를 마루끝에 소리가 나게 털었다. 그러더니 움쑥 일어섰다.

《도적놈이 발이 저리긴 저린 모양이요. 내 밸속을 엿보지 못해 애쓰는걸 보니··· 그렇지만 민가가 내 전지를 팔아먹고 순순히 새겨내진 못할거야.》

분임이 아버지는 한마디 뱉어던지고는 얼른 토방을 내려섰다.

《뭐 뭣이 어째, 야 이 도적놈아.》

민가처는 벌떡 일어서며 마루우에 한발 내짚는다. 그러더니 게걸음을 치듯 달려나와서 마루아래로 떨어진다. 대문쪽으로 걸어나가는 전치근을 따라잡으려는것을 홍가가 달려와 붙들었다.

《가만 내버려두슈.》

《저놈을 내버려둬? 야 이놈, 우리가 도적놈이야? 뭐 우리가 네놈 전지를 팔아먹고 순순히 새겨내질 못해? 야 이놈, 섰거라.》

《공산당의 부축을 받은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림이나 있습니까? 땅을 팔아먹고 못새겨내다니요? 법이 무언지나 알고 그따위 수작을 합니까?》

《그러게 통분해서 못참겠어. 야 이놈, 내가 그저 저놈을···》

민가처는 맨발로 훌쩍훌쩍 뛰였다. 치마가 처져내려 땅바닥에 휩쓸리며 짓밟혔다. 두눈이 곤두서서 말리는 홍가를 따귀라도 칠것 같았다.

홍가는 민가처의 큰 몸집을 겨우 붙들어 퇴마루우로 받들어올렸다. 민가처는 쿵 소리를 내며 마루우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기가 뻗쳐 갈개는지 숨이 차서 목구멍에서 껄떡껄떡 소리가 났다. 그는 골이 지끈거려서 동여맸던 머리의 헝겊오리도 훌 벗어던졌다.

《저놈이 뭐 땅 팔아먹구 새겨내질 못한다구? 땅 팔아 빚 받았는데 우리가 잘못한게 뭐야? 이놈,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수작이야?》

《참으십시오. 참지 않으면 마님 몸에나 해로웠지 별수가 없습니다.》

홍가는 마당에 떨어진 민가마누라의 흰고무신짝을 주어올리며 달래였다. 그래도 민가처는 분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자신도 어쩐지 뒤가 켕겨지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땅을 팔아먹고 전치근을 움쩍 못하게 눌러놓으라고 기별을 보내왔을 때에는 틀림없이 땅값을 빚값 몇갑절 더 받아낸것 같은데 그게 무사할것 같지 못해 참을수가 없었다. 그저 힘이 있으면 당장 뒤쫓아가서 아예 숨주머니를 없애버렸으면 어떤 후환도 없을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왔다.

《그래 공산당이 뒤에서 부축을 달아?》

민가처는 턱을 저으며 홍가에게 물었다.

《그럼요. 틀림없이 공산당이 추기는겁니다.》

《아니 공산당 그놈들은 무슨 힘으로 법을 당해내겠기에 부추긴단말인가? 저놈들이 뭐 대포나 비행기라도 가지고있단말인가?》

《알거지무지랭이들이 붉은 주먹 하나로 해낸다는거죠. 작년 가을 고간을 들이치는걸 못보았습니까? 그리구 요새 태봉시에서 최광주댁을 들이쳤다는 소리를 못들었습니까? 마지막엔 죄다 법의 올가미에 들긴 하겠지만 일시 뚝심으로라도 들고일어나면···》

《그게 다 공산당이 그런짓을 한단말인가?》

《허허허, 그럼 신선당이 그러는줄 압니까?》

홍가는 이 두부함지가 실성을 하지 않았으면 새삼스럽게 이런 소리를 할가싶어 중대문쪽을 내다보는 민가처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눈동자가 바로돌지 않거나 흰자위가 덮이거나 한것 같지는 않았다.

민가처는 후휴 큰숨을 내뿜었다. 속에서 오장륙부가 불타는것 같았다. 지금 홍가는 민가처가 실성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해도 민가처는 민가처다운 의문과 고통이 있어서 그런 해괴한 질문을 하는것이였다. 그의 생각엔 아무래도 공산당이라는게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자기네를 못견디게 구는것이면 이것도저것도 다 공산당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람의 조화속같지 않았다. 세상에 천벌을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자기네가 지금 천벌을 맞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무엇인가 검고 칙칙한 산같은것이 세상을 꽉 채워오며 다리를 분질러라, 목을 쳐라, 가슴을 찔러라 하고 죄여들고있는것만 같았다. 밤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는 식은땀을 쭉 흘렸다. 지금도 그런 환각이 눈앞에 얼른얼른했다.

《저 애를 불러왔습니다.》

《뭐라구?》

홍가의 말에 민가의 마누라는 얼른 피가 선 눈을 돌리며 반문했다. 그제야 그는 부엌문앞에 서계시는 김정숙동지께 시선이 미쳤다. 민가처의 눈엔 이어 독기가 갈마들었다.

《야, 넌 왜 연자방아간으로 나오라는데 나오질 않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안하고 돌려낀 아이의 머리를 매만지시였다.

《무슨 소리를 듣느냐?》

《네···》

《왜 방아간으로 나오질 않아?》

《언니가 잡혀가구 손이 모자라서···》

《너의 올케는 공산당이 돼서 잡혀갔는데 손이 모자라는 소리는 왜 하니? 공산당은 왜 했다더냐?오늘 당장 빚갚아라! 방아간에 안나오려거든 오늘 당장 빚갚아내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민가처를 쳐다보시였다. 민가처의 푸들거리는 낯가죽은 점점 더 상추잎같이 새파래지고있다.

《아니 쳐다보면 어쩔셈이냐? 오늘 빚을 갚을테냐? 어쩔테냐?》

《가을까지만 참아줘요.》

《무어가 어째? 가을은 무슨 가을이냐? 아니 그래 가을에 가선 무슨 수가 생길것 같으냐? 인제 농사를 손두 없는 너의 집에 내맡겨둘줄 아느냐? 금년엔 우리가 일군을 사서 부치겠어. 너의 집에서 부치던 밭농사는 우리 농사야.》

《우리가 씨붙임을 하고 김을 맸는데 왜 일군을 사서 부쳐요? 그럼 그 밭을 뺏겠다는말이예요?》

《뺏는게 아니구 도루 찾는거란다. 말을 바로 알아들어라.》

곁에서 홍가가 튕겨주었다.

《그래두 그 땅에 서있는 곡식이야 우리것두 한몫 있잖아요?》

《얘, 너 그렇게 회계를 따질줄 알면 네 오래비가 남의 고간은 왜 들이쳤는지 그걸 좀 말해봐라.》

인젠 홍가가 가로맡아가지고 나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홍가의 소리는 못들은척하시였다.

《어서 말해봐라. 네가 회계를 따지듯하면 네 오래비가 남의 집 고간을 어떻게 쳐부셔, 응?》

홍가가 이렇게 따지고들자 민가처는 한참 되알지게 김정숙동지를 쏘아보기만 한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그렇게 악담질만 해가지고는 리속이 없을상싶은지 기가 뻗치기 시작하는 홍가를 눌러놓는다.

《그만 내버려두우. 그까짓 소리를 해야 눈 한번 깜박할줄 알아? 어쨌든 네가 연자방아에 나오면 우리가 그 조밭을 다치지 않고있다가 가을에 가서 도조만 받을테야. 허니까 네가 그 밭곡식을 먹으려거든 오늘부터라도 당장 방아간에 나와야 해. 알아듣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대답을 안하시였다. 아무리 생각해야 올케가 없는 형편에서 자기가 민가네 방아간에만 나와있을수 없게 되였다. 아직 김을 다 매지 못한 밭도 있다. 그런가위에 산나물이라도 장만해들여야 하고 어린애시중도 들어야 한다. 어머니라도 건강하다면 모르겠는데 어머니도 앓고있다. 사정이 이러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앞일이 막막하시였다.

《왜 말이 없느냐?》

홍가가 곁에서 다그쳐물었다.

《어서 말을 못할가?》

민가처가 또 포악을 쓸것 같은 기세였다.

《나오겠어요.》

다짐을 받아낸 민가마누라는 그제야 마루전에서 일어서며 한마디 더 조지였다.

《그저 순순히 나와서 일을 해라. 그러지 않다가는 농사지은 밭에서 곡식 한알 못얻어먹어. 이 민씨네가 인심이 좋으니 그렇지 너의 집에 땅을 주어 농사를 지어먹게 할테냐?》

《마님 말씀이 옳습니다. 농사를 지어먹게 하다니요. 벌써 올봄에 땅을 떼고도 남았지요.》

홍가가 또 맞장구를 쳤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중대문을 넘어서시였다. 방아간으로 다시 나오겠노라는 다짐은 두었으나 어쩐지 그전처럼 민가처나 홍달수의 구박이 무서운 생각은 없으시였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 그 무슨 변화가 생겨서 저따위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들을 쓸어버릴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의 눈앞에는 태봉거리에서 최광주의 집을 둘러싸고 아우성치던 어마어마한 사람사태가 떠오르시였다.

민가네 바깥대문을 나서시니 해빛이 눈부시게 밝았다. 아직 풀잎에 이슬이 마르지 않았다. 개울가 풀밭이 구슬을 깐듯 령롱했다.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씨름을 하며 놀았다. 기송이는 어디 갔는지 아이들속엔 보이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밭으로 도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감자 세알이 담긴 다래끼와 호미를 거두어가지고 밭머리로 걸어나오시였다. 인제야 눈물이 쏟아져내리시였다. 제힘으로 밭을 갈고 씨앗을 묻고 김을 맨 곡식인데 무엇때문에 이 곡식을 마음대로 캐다먹을수 없는가? 이 세상엔 언제부터 이런 억울한 법이 생겼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밭머리에 서서 한참 우시였다. 감자를 몇북이라도 더 뚜져가지고 들어갈가 하다가 그만두시였다. 어머니가 감자를 못잡수면말았지 제 곡식을 가지고 남의것을 도적질 하듯하며 캐가지고 들어가고싶진 않으시였다.

이튿날아침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득이 연자방아간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반을 끝내고는 이어 기송이에게 아이를 업혀 밖으로 내보내시였다.

《어머니, 오늘은 제가 연자방아간에 나가요. 솥안에 밥과 된장찌개를 들여놓았으니 이따가 잡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동이고 일어나앉아 웃방에서 다듬이질을 하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니는 그동안 앓으면서도 올케의 헌 의복을 죄다 빨았다. 그걸 오늘아침엔 풀을 먹여가지고 다듬이질까지 하였다.

《나가봐라. 그년놈들과 엇서나가 무슨 화를 입겠는지 누가 아니? 참구 살아보자! 그러느라면 음지가 양지될 날두 있구···》

어머니는 말을 채 끝맺지 않았다. 얼른 쳐다보시니 두눈에 눈물이 괴여있었다. 또 잡혀간 며느리의 생각이 가슴을 훑는 모양이였다.

《인남이는 암죽을 몇숟갈 먹여서 내보냈어요. 낮엔 무산집에 좀 가보랬어요.》

《무산집며느리인들 무슨 젖이 그렇게 흔하겠니?》

어머니는 종시 주름이 패인 량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태봉시에 다녀온 뒤에는 무슨 불길한 예감이라도 느끼는지 어머니는 눈물이 잦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적삼고름으로 눈물을 찍으며 문을 열고 나서시였다.

연자방아간으로 나오시니 여느때같이 방아간바닥에 벌써 조마대가 쌓여있다. 년놈들이 김정숙동지를 방아간에 든든히 붙들어 맬 차비를 하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곡식을 퍼넣고 당나귀를 끌어다가 연자멍에를 메우시였다. 그런데 고삐를 채고 끌어도 당나귀는 끄떡을 않고 서있다.

《끼랴, 어서 가. 왜 끌지 않는거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를 달래듯 달래도 보고 고삐로 때려도 보시였다. 짜증을 내며 손바닥으로 두드리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당나귀는 눈곱이 낀 큰 눈을 껌벅거리며 망두석처럼 서있다. 하긴 뼈에 가죽부대를 씌운것 같은 짐승이 어데 힘이 있어서 방아를 돌리겠는가. 그러니 인젠 짐승의 힘을 빌 형편도 못되시였다. 죽을 고역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할밖엔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나귀를 풀어 도로 외양간으로 끌어가시였다. 그러시고는 연자에 달린 멍에채를 안고 힘을 쓰기 시작하시였다. 육중한것이 우직우직 소리를 내며 드티였다. 드티던것이 멎어설것 같으시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발끝에 힘을 주시였다. 어째서 이렇게 더 무거워졌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그동안 앓기도 했으려니와 어제 하루는 끼니를 설치고 오늘아침엔 또 나물 한줴기로 끼니를 굼때고 나오시였다. 아마도 그런탓인것 같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이것을 못돌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힘을 모아 멍에를 떠미시였다. 망돌은 간신히 돌아갔다. 이어 땀발이 서고 눈앞이 어질어질해지시였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정신을 잃고 넘어질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악을 쓰며 멍에채를 밀고 돌아가시였다. 다리가 팽팽해지셨다. 등골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적삼은 당장 한소나기 맞은것 같이 되였다. 그이께서는 이따금 눈굽으로 흘러드는 땀을 훔치시였다. 짠물에 눈구석이 쓰려서 견딜수가 없으시였다.

곁에 누가 서있는것이 언뜻 보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민가마누라가 아닌가 하는 선뜩한 생각이 드시였다. 그런데 민가마누라는 아니고 아이를 업은 기송이였다.

《아니 너 어째서 여기 왔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을 마주보며 물으시였다. 핼쑥한 김정숙동지의 얼굴에선 땀빛이 번들거리시였다. 기송이는 대답이 없이 누나의 웃음을 띤것 같은, 아니 울기라도 하는것 같은 처참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귀를 이그러뜨리는것 같은 표정을 했다.

《여긴 왜 들어왔니? 애가 울지 않으면 동무들한테 가서 놀려무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지금 자기의 처참한 모양을 동생에게도 보이는것이 싫으시였다. 고역을 겪더라도 그저 혼자서만, 식구들이 안보는데서 혼자서만 이 고역을 겪고싶으시였다. 그러나 기송이는 여전히 그린듯이 서있다.

《얘 기송아, 어서 나가래두···》

《힝···》

그냥 코소리만 같지 않다. 울먹거리는 소리가 섞인것 같다. 기송이는 이어 빈 마대짝우에 애기를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누나의 곁으로 다가와 어깨짓으로 누나를 내밀치였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멍에채를 놓아버리며 뒤로 비틀걸음을 치시였다.

《얘, 이건 어째 이러니?》

《관둬, 내가 돌려.》

기송이는 멍에채를 붙안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연자방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송이는 입을 앙다물며 두다리를 벋디디였다.

그제야 뿌드득 이갈리는 소리가 나며 멍에채가 드티기 시작했다. 한걸음 또 한걸음 동안을 두고 기송이는 다리를 옮겨디뎠다. 힘을 쓰노라고 얼굴을 무섭게 이그러뜨렸다. 어린것이 얼마나 아픈 정이 있기에 이렇게 제가 대들어 해내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동생의 곁으로 다가가 이번엔 자신께서 동생을 옆으로 밀어내시였다.

《그만둬라!》

《아니야, 내가 할테야.》

《그럼 함께 돌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멍에채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동생과 함께 힘을 쓰니 한결 수월하시였다. 기송이는 얼른 팔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치였다.

《기송아!》

김정숙동지께서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시였다. 그러나 기송인 대답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앙다물고 뿌둥뿌둥 멍에채만 내민다.

《기송아!》

《왜 그래?》

아직도 밸이 삭지 않았다. 누나에게야 무슨 성낼 일이 있을가. 누나를 호되게 부려먹는 민가, 아니 그것보다도 더 큰 저주할 세상에 대한 앙심이 있어서 그러는것 같기도 하다.

《제발 좀 그만두렴.》

《··· ··· ···》

《애기 젖은 좀 얻어먹였니?》

《아직은 배불러서 울잖아.》

《그럼 이따가 무산집에 가봐라!》

《그 집 아지민 밭에 나갔어.》

《너 벌써 그 집엘 갔댔니?》

《아까 나가는걸 봤어.》

《그럼 순이 엄마한테 가봐라.》

《··· ··· ···》

《순이 엄마는 오늘 집에 있을지 몰라. 집에서 베를 매겠다고 했으니까.》

《가보겠어.》

기송이는 여전히 볼부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첨보다는 밸이 무척 수그러든것 같다. 둘이 돌리니 방아는 도는새 없이 돌았다. 애기도 마대를 깔아놓은우에 앉아서 털썩털썩 궁둥춤을 추었다.

《기송아, 노래나 부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린 동생의 마음을 한껏 밝게 해주고싶으시였다. 그래서 그가 이 컴컴한 연자방아간도 누나의 눈물겨운 모습도 다 잊어버리게 하고싶으시였다.

《노래는 무슨 노래말야?》

《네가 잘 부르는 〈계급전가〉있잖니?》

《씨···》

기송이는 목을 꼬며 아닌보살을 한다.

《혀아래로 가만가만 불러보자, 민가마누라 못듣게말야.》

 

나오라 계급전은 시작되였다

철모르는 아이까지 모두 나오라

 

기송이도 따라불렀다. 오누이는 은근한 목소리로 합창했다. 깊고깊은 땅가죽밑에서 힘을 키우듯 누구도 못듣게 은근히 불렀다.

 

늙은이도 손목 잡고 막대 짚고서

판가리싸움에로 뛰여나오라

 

김정숙동지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시였다. 이렇게도 사랑스런 동생이 어데 있을가. 너한테 무얼 주어야 내 마음이 기쁘겠니? 이 세상 어디 가야 너를 비단으로 싸주고 배곯지 않게 밥을 주겠니? 혁명을 한 뒤엔 그런 세상이 온다는데 그 밝은 날이 언제 오려나? 아 어서 빨리 오려마. 내 동생, 내 기송이를 한시바삐 그런 날, 그런 세상에 안아다놓고 실컷실컷 날개를 치라고 등을 밀어주게··· 멍에채가 눈물에 젖는다. 너무도 큰 애정과 너무도 큰 슬픔이 가슴을 뻐갠다.

 

공장문을 깨뜨리고 한데 뭉치여

자본가의 황금탑을 부시여내자

 

기송이는 팥죽땀이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팥죽땀을 흘리시였다. 그만치 하루일감이 순식간에 적어져갔다. 은근한 노래소리는 땀과 눈물속에 계속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