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밥집의 저녁끼니때란 그 무슨 큰일이나 벌어진 집같이 떠들썩했다. 성냥갑만한 곽밥을 낮에 게눈감추듯하고나서 하루종일 굴속에서 고역을 치른 광부들이 50여명이나 밀려들어 밥재촉을 하며 들끓는판이다. 광부들의 방은 껍질도 벗기지 않은 이깔로 중간기둥들을 듬성듬성 세워놓은 기다란 방인데 거기에 식탁들을 잇대놓고 사람들이 량옆에 늘어앉았다. 부엌으로 통한 창구멍으로는 밥사발과 국사발이 올라왔다. 젊은 광부들이 그것을 연방 사람들앞으로 날라갔다. 그들은 복녀와 롱지거리를 하고싶어 끼니때면 그 일을 경쟁으로 해냈다. 복녀는 그들이 롱을 던지면 흥하고 코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주걱을 들어 동가슴을 쥐여박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저녁엔 복녀가 국그릇과 밥그릇을 올리면서도 일체 거들떠보질 않는다.

《왜 그렇게 설익은 개살구 먹은 상이야?》

《여기 좀 보라니까···》

《무슨 롱지거리가 그렇게 많아? 저 사람들 버릇을 좀 떼줘야 되겠어. 행실들이 방정치 못하단말야.》

이 밥집의 좌상인 상고머리를 한 남포군이 엄하게 책망을 했다. 그제야 청년들이 부엌에 대고 시시덕대지 못하고 조용히 밥그릇과 국그릇들을 날라왔다. 이 밥집에선 상고머리좌상의 말이라면 그뿐이였다. 결의형제를 무어 맏형으로 모신 탓도 있지만 원체 인품이 점잖고 대가 바른데다 손탁도 셌다. 그러기에 부엌에서 모서리로 꺾인 방에 같은 상고머리를 한 밥집의 주인이 있는데 이 참새굴레 씌워먹을 작자도 좌상한테 움쩍을 못했다. 오늘저녁엔 이 좌상 역시 부엌에 있는 복녀의 표정 비슷했다. 무슨 근심이 있는것 같기도 한 표정이였다. 아까 들어오다가 곁밥집의 서사가 있는 유리문 단 방에 들어가 무슨 소리를 수군수군 나누고 들어오더니 더욱 그런것 같았다.

《곧 터진대. 파업으로 들어간다는거야.》

《파업이 아니구 광주들을 족친다는 말도 있던데···》

갱안에서나 밥집으로 오고가면서 이런 소리들을 수군거리던 광부들은 유심히 좌상의 표정을 살피였다. 그들은 좌상의 표정이 이 일과 많이 관련이 있다고 느끼였다.

《든든히들 먹게. 그래야 힘을 쓸테니까··· 전표값을 개똥으로 만들고서야 우리 광부들이 어떻게 살텐가?》

좌상이 밥을 다 먹고 울렁울렁 양치질을 하고나서 한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생각엔 이어 곧 파업으로 넘어간다는데 미리 광부들속에 한마디씩이라도 깨우쳐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것이였다.

《좌상님, 그럼 전표값을 도루 올릴수도 있단말입니까?》

《있구말구. 그건 우리 맘대루야, 우리가 힘만 세면 뭐든지 해내. 그러니까 임자네들두 든든히···》

《쉿 좌상님···》

저쪽 식탁끝에 앉아 밥을 먹던 로동자가 좌상에게 눈짓을 했다. 좌상은 얼른 말을 움츠렸다. 모서리방의 상고머리가 로동자들과 무슨 계산을 까려는지 수판과 장부책을 들고 부엌을 거쳐 로동자들 방으로 들어선다. 광부들의 가슴은 쿵덩쿵덩 뛰였다. 좌상이 저쯤 이야기를 할 때엔 머지 않아 터지는게 틀림없다. 광주를 치든, 파업을 일구든··· 사실 지금 광산에선 일제와 로동자들사이에 건드리면 터질듯한 긴장상태가 조성되여있었다. 한번 습격을 맞고 무기를 빼앗긴 자위단과 경찰은 로동자들을 총칼로 위협하며 갱마다 밀정을 박아넣고 공산당을 발가내려고 미쳐돌아갔다. 로동군중은 극도의 울분에 휩싸여있었다. 이 울분을 더욱 부채질하는것은 일제에게 등을 댄 광주놈들이 거의다 《모작금점》으로 넘어가서 임금도 주지 않고 로동자들을 갱속으로 들여모는것이였다. 《모작금점》이란 금맥이 나타나야 임금을 준다는것인데 그통에 로동자들이 손에 받아쥐는 전표는 가랑잎같은것으로 돼버렸다. 금맥이 뵈지 않으면 두달이고 석달이고 회계를 보아주지 않으니 음식점이나 밥집은 전표를 3할 4할씩 제하려들고 5할이상을 제한대도 사겠다는놈이 없었다. 그래서 광부들은 모이기만 하면 광주놈들을 쳐죽여야 한다고 떠들었다.

바로 수판과 장부책을 가지고 광부들방으로 건너온 상고머리 밥집주인도 전표값 깎자는 수작을 하려고 건너왔다. 방안에선 한참동안 전표값이야기가 벌어졌다. 밥집주인은 이런 가랑잎같은걸 받고 밥장사하는건 칼 박고 뜀뛰기하는 놀음과 같다면서 전표값을 더 푹 떨구겠다고 떠들어올렸다.

부엌에 있는 복녀는 은근히 울화가 치밀어 그릇을 부시였다.

그는 부엌에서 빠질 틈을 찾지 못해서 가슴이 죄였다.

대걸이는 물초롱을 내려놓고는 아무 핑게를 대서라도 이어 떠나라고 했는데 모서리방 상고머리의 마누라가 샘물터걸음이 왜 그렇게 뜬가고 포악을 쓰며 나서는바람에 그 악담을 겪느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저 그러다가 광부들이 밀려드는바람에 저녁끼니속에 빠져버렸다.

《그릇소리를 작작 내지 못할테냐?》

상고머리 마누라는 또 부엌을 내려다보며 독을 쓴다. 복녀는 들은체를 안했다. 숟가락을 부셔서 찬장에 놓는다는것이 더욱 소리가 났다.

《조년이 내 소리에 역기가 나서 저러는거냐?》

《역기는 무슨 역기겠어요? 그럼 놋숟가락 놓는데 소리가 안나구 뭐가 나겠어요?》

《야 요년, 무슨 대답질이 그렇게 드세냐? 월선이가 고분고분치 않아서 내쫓았다고 하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인제 알겠구나.》

복녀와 함께 일하는 식모들은 못들은척하며 저 할 일들만 했다. 얼굴이 약간 얽은 식모가 구정물버치를 들고 지나가며 팔굽으로 복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대답질을 말라는것이였다. 복녀는 참았다.늘 이들이 그렇게 눌러놓아서 참는 때가 많았다. 조약돌을 피하면 수마석이 앞을 막는다고 상고머리 마누라는 민가첩 찜쪄먹게 잔소리를 하고 감때가 세였다. 새빨갛게 연지 찍은 입술에 담배까지 꼬나물고 문턱앞에 나앉아선 부엌일을 신칙하며 오금을 못펴게 잔소리를 했다. 복녀는 늘 그 새빨간 주둥아리를 인두로 지져주고싶은 충동이 치솟군했다.

밤이 퍽 들어서야 복녀는 겨우 몸을 뺐다. 그는 골목길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며 저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쉬였다. 벌써 강건너에 갔다왔어야 할텐데 인제야 떠나는 일이 대걸이한테도 미안했지만 그보다도 잡혀갔다는 길녀아주머니한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강물이 검고 칙칙하게 흘러간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세멘트다리로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다. 뚜걱뚜걱 구두소리가 나며 칼을 찬 경찰이 마주 걸어온다. 복녀는 몸이 오싹했다. 놈이 뺨을 치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랴. 그런데 경찰인줄 안 검은 그림자는 경찰이 아니고 웬 사복을 입은 장정이였다. 곁으로 지나가는걸 보니 구두를 신은것도 아니고 짚세기를 신고 털썩털썩 걷는다. 복녀는 은근히 호 하고 또 한숨을 쉬였다.

다리를 건너온 복녀는 큰길로 나가다가 골목길로 들어서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 초가집사이를 한참 누비며 걸었다. 널바자가 있는 집앞으로 오니 벌써 조그만 널쪽대문이 잠겨져있었다. 복녀는 일껏 찾아왔는데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돌아설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그는 잠간 생각하다가 널쪽대문을 똑똑 두드렸다. 불이 켜있지 않은 방안인데 이어 부엌문소리가 나더니 누가 나왔다. 어머니였다.

《누가 왔소?》

《어머니, 저야요.》

《저라니?》

《저··· 복녀야요.》

《아니, 이 밤에 네가 어떻게 돼서 왔니?》

어머니는 총총히 걸어나와 대문을 벗기였다. 복녀는 얼른 마당으로 들어서며 대문을 도로 닫았다.

《무슨 련락이 있니?》

어머니는 어둠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야요, 저···》

복녀는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숨을 돌려가며 이야기를 하렴.》

《저 김기준동지네 아주머니가, 저번때 옷보퉁이를 가져온 아주머니가 경찰에 붙잡혔어요. 오늘 태봉경찰서로 끌려왔어요.》

《그래서 이 밤에 뛰여왔니?》

《네···》

《벌써 소식이 왔다.》

어머니는 흔연히 대답했다.

《그런걸 대걸동지는 모르시는가 해서···》

《모르긴 어째서 모르겠니?》

복녀는 어쩜 소식이 그렇게도 빨리 왔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고수머리좌상이 태봉거리안에 무슨 혁명의 줄이 쫙 깔려있다는 말을 하는걸 얼핏 들은 일이 있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였다.

《그래, 요새두 밥집 일이 그렇게 고되냐?》

《예, 고돼두 괜찮아요.》

《아무쪼록 련락을 잘해라! 그리구 비밀두 잘 지키구. 이 일엔 비밀이 사람의 염통과 같단다.》

어머니는 어둠속에서 복녀의 잔등을 쓸어주며 소곤소곤 말했다.

복녀는 어머니의 말이 고마와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늘 오는 때마다 손을 쓸어보고 머리를 쓸어보고 하는 어머니였다. 오늘밤엔 슬픈 기별을 받고 아무 경황이 없겠는데도 여전히 다정스러운 이야길 해준다.

《밤이 깊었는데 어서 가거라!》

《예···》

복녀는 조심히 쪽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는 또 골목을 누비며 바삐 걸었다. 그는 맘이 좋지 않았다. 조용한 어머니의 가슴속에 눈물짓는 어머니가 또 있을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큰 혁명가인 아들을 타지방에 보내놓고 사는 어머니, 꿋꿋이 혁명을 돕고있는 어머니, 그렇지만 복녀는 어쩐지 어머니가 불쌍한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들이 얼마나 보고싶으며 근심인들 없을가! 그는 큰길에 나서서야 걸음을 좀 늦추며 슬금슬금 걸었다.

복녀를 보내고난 어머니는 달이 가리워진 뿌잇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눈물을 씻었다. 그는 얼마후에야 정지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웃방에선 파업문제때문에 이야기가 계속되고있다. 김기준동지가 각 구의 책임자들을 불러다놓고 밤새 토론을 벌리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 말이 일리는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뒤를 재다간 아무 투쟁도 못하고 〈모작금점〉바람에 광부들 신세만 녹을줄 압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로동자들의 불같은 기세를 방관만 하고있어서야 무슨 혁명조직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이번엔 도화선에 불을 달아야 합니다.》

늘 모임이 있기만 하면 윽윽하는 동발막의 서사 한기천이 누구의 의견을 반박하는지 흥분해서 말했다. 그 말이 벙글써하게 열린 새문사이로 죄다 들려내려온다.

《그러기에 내 말은 방관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파업을 일궈도 뒤받침을 할수 있는 힘을 마련하고 일궈야 실속있는 투쟁으로 될수 있다는겁니다. 그래서 지금 무장부대가 꾸려지고있는데 그 힘을 우리 투쟁에 안받침시키자는것입니다.》

아마 한기천이의 반박을 받는 사람인듯 역시 열이 올라서 웨치다싶이 말했다.

《어떻게말이요?》

김기준동지가 다그쳐물었다.

《파업투쟁이란 국내투쟁의 허다한 경험만 보아도 그렇고 어디서나 들고일어서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실패를 면치 못하는것이 보편적현상입니다. 그것은 중요하게 일제의 무력탄압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내 의견은 무장부대를 우리의 곁에 끌어다놓고 경찰의 힘을 눌러가며 해보자는것입니다.》

그 말에 김기준동지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허허, 동무는 지금 아예 근본적인 싸움을 해보자는 생각인것 같습니다. 그건 안될 일입니다. 무장부대가 아직 그렇게 준비도 못됐고 또 그렇게 해선 안됩니다. 우린 우리의 힘으로 이 투쟁을 일구고 그것을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국내파업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물론 일제의 무력탄압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령도세력이 없었다는 점도 보아야 할것입니다. 많이는 분산적으로 일어났다가 각개격파를 당했다는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조직하는 파업투쟁은 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혁명투쟁의 한 고리로서 진행되는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이번 조직하는 파업은 단번에 이곳 경찰이나 무슨 일제의 군대를 꺼꾸러뜨리자는 투쟁이 아니고 놈들에게 타격을 가하며 우리 로동군중을 한번 단련시키고 각성시키자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 각성되고 단련된 힘으로 근거지의 투쟁을 철저히 돕고 또 로동계급자체의 투쟁을 세련시켜나가자는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광주들의 〈모작금점〉이나 페지하도록 만들면 다 되는것으로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모작금점〉을 반대하는 투쟁은 앞으로 더욱더 큰 싸움을 겪기 위해서 힘을 기르는 초보적인 투쟁입니다. 울분에 차있는 로동자들을 한번 불에 넣어서 달구어 벼려내자는것입니다. 심한 경우엔 류혈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로동계급은 이 과정에 자랄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파업을 하겠다고 들고일어나는 로동자들의 제의를 지지하는것입니다.》

어머니는 벙글써하게 열린 새문틈새로 웃방을 올려다보았다.

등잔불앞에 둘러앉아있는 사람 넷이 온통 땀투성이다.

어머니는 괜히 저녁때 불을 많이 땠다고 후회했다. 웃방이 랭돌인것 같아 오늘저녁엔 벼겨를 두삼태기나 밀어넣어 태웠다. 그래서 구들이 뜨끈한데 방문엔 또 불이 내비친다고 바람 한점 못들게 두터운 이불까지 드리워놓았다. 그러니 방안이 한증속같이 더울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웃방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들으며 인남이 애비가 겉으론 저렇게 빈틈이 없어보이지만 지금 속이야 편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저녁을 먹을 때 혁명구역 제2구의 조직책임자라는 사람이 와서 안해가 체포되여왔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금시 얼굴빛이 질리는듯싶었다. 그러나 이어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밥상을 물리고 일어섰다. 도대체 자기 입으로 아무 말이 없으니 이 뜻밖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수는 없으나 마음속에 아무 파동이 없을리는 없는것이였다. 어머니가 생각을 해도 안해가 우락부락하거나 얼굴을 번뜻이 쳐들고 할 말을 활이야 살이야 내쏠줄 아는 녀자라면 인남 애비의 아픔이 좀 낫지 않을가싶었다.

어머니는 옷보퉁이를 들고왔던 그 어질고 순박하던 아낙네를 잊을수가 없었다. 그날 어머니는 옷보퉁이를 받아놓고는 그 녀자를 내 자식같은 아픈 정으로 상대를 했다. 방안에 깊이 들어와 앉으라고 해도 조심스럽게 문앞에 쪼그리고앉아서 겨우 묻는말이나 대답했다. 남편의 옷을 가지고 와서도 남편이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안부 한마디 변변히 묻질 못했다. 내내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서 묻는 말을 대답하다간 얼굴을 돌리며 저고리고름을 들어 눈물을 씻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아련하던 정상이 가슴을 아프게 긁는다.

어머니는 자기가 이처럼 가슴이 아픈데 사람을 잃은 당자야 얼마나 가슴이 쓰릴가싶었다. 그 어진 안해에 대한 련민의 정이 가슴에 사무치기에 그때에도 인남 애비는 안해가 가져온 옷을 앞에 받아놓고 한참 말없이 앉아있었다. 재삼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자 그늘이 짙은 얼굴을 들며 《차츰 갈아입지요.》 하고 한마디 했을뿐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날밤 오래 잠들지 못하는것 같았다.

이런 남편이고 그렇게 순박한 안해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밤 내내 인남 애비의 낯빛과 동정에 맘이 씌였다.

파업문제를 놓고 웃방에선 이야기가 오래 계속되였다. 어떤 땐 인남 애비가 구들바닥을 울리며 력설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첫닭이 울 때가 되여서야 모두들 흩어졌다. 사람들을 보내고난 인남 애비는 어데로 가려는지 모자를 눌러쓰고 나섰다.

《이 밤중에 어데로 또 가려나?》

어머니가 물었다.

《고갱에 좀 올라갔다오겠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조심을 하게.》

어머니는 다심히 일렀다. 꺼멓게 응혈이 졌을것 같은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쓸어주고싶기도 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뒤모습이 어쩜 떠나간 아들 강호와 그리도 비슷할가싶었다. 아니 뒤모습만 그렇지 않다. 말하는것 행동하는것 모두가 강호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진중하다. 그래서 강호가 하던 큰일을 지금 그가 맡아가지고 저렇게 밤잠을 자지 않고 뛰게 됐는지 모른다.

사실 어머니의 아들 강호는 김일성장군님의 영향밑에서 자라난 혁명가였다. 그는 장군님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참담한 생활이 광부들의 목을 죄는 이 이끼낀 거리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조직을 묶는 투쟁을 벌리였다. 김기준동지가 그와 손을 잡은것도 바로 그무렵이였다. 광산거리엔 혁명의 선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짓밟히고 억눌려 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던 로동군중속에 맑스-레닌주의가 전파되고 이갱저갱에서 투쟁의 진리를 깨달아가는 광부들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강호는 완강한 힘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갔다. 련달아 투쟁이 일어나고 거리엔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가 날을 번지지 않고 뿌려졌다. 그래서 태봉시는 이 아근에서 혁명의 중심지구로 변했다. 바로 강호는 이 사업을 김기준동지에게 인계하고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간것이였다.

김기준동지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널쪽문을 나서선 늘 하는 버릇대로 손을 널쪽문우로 넘겨보내여 고리를 걸었다. 그것이 그 무슨 어머니의 신상을 보호하는것으로 되련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떠나야 마음이 놓이였다.

첫째봉앞 고굴로 올라가니 고갱뒤 숲속에 수십명 청년들이 모여와 웅성거리고있었다. 김기준동지는 얼마전에도 십여명의 청년들을 근거지로 떠나보냈는데 또 이렇게 끌끌한 청년 수십명을 골라 근거지로 들여보내는것이였다. 그리고 폭약과 깡도 적잖은걸 뽑아내서 오늘밤 떠나는 청년들에게 지워보내도록 준비를 하였다.

김기준동지가 숲속에 들어서자 팔모갱의 남포군인 조덕하가 나서서 떠날 준비가 다 됐다고 했다.

《화약을 내다가 짐을 만들었소?》

화약을 빼내오는족족 다 고굴속에 숨겨두었었다. 이 모든 준비를 혁명조직의 핵심인 조덕하가 다 맡아서 해냈다.

《다 내다 묶었지요. 그런데 2구의 학선동무가 좀더 빼내올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군요. 민가네 개업잔치에 덕대들이 죄다 밀려가서 화약뿐아니라 깡도 좀더 빼낼수 있을것 같다고 했는데···》

《빼내온 화약이야 어데로 가겠소? 다음번에 또 보내도록 하지요. 인젠 빨리 떠나야 하겠소. 날이 밝기전에 중촌 앞벌을 지나서 산을 타야 하겠소.》

김기준동지는 청년들이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수고들했습니다.》

그는 어둠속에서 일일이 돌아가며 악수를 하였다. 오늘 뽑혀서 근거지로 들어가는 청년들은 대개가 개인갱의 쥐구멍같은 굴속으로 벌벌 기여다니며 버럭을 져내던 청년들이다. 그들이 인제 그 저주로운 생활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고 동경과 희망의 큰길에 나서는것이였다. 김기준동지는 그들의 보짐을 일일이 만져보기도 하였다. 화약과 깡을 싸놓은 보퉁이들을 들어도 보았다. 지내 무거운것을 지고 먼길을 급하게 걸어낼수 있을가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김기준동지는 청년들에게 가는 로정과 가면서 주의할 점들에 대해서 한참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상촌에 가닿는 즉시로 혁명위원회 회장 차응도에게 전하라고 통신도 맡기였다.

조덕하는 청년들에게 모두 짐들을 걸머지웠다. 그는 제일 키가 작아보이는 청년에게 보짐을 지우다가 무언가를 보짐속에서 뽑아내여 풀밭에 던지며 혀를 끌끌 갈기였다.

《그게 무업니까?》

《허허허, 이 사람은 제 막내동생이요. 모리모도관방에서 정심부름을 했댔는데 보짐에다 정을 찔러가지구 왔군요. 혹시 상촌에 가서 총이 모자라면 칼이라도 만들어 차고다니겠다고···》

조덕하는 껄껄 웃었다.

《총이 없겠소. 내버리고 가벼운 짐으로 빨리 걷도록 하오.》

김기준동지는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었다.

얼마후 청년들의 대렬은 숲을 헤치며 걸어나갔다. 조덕하가 동발막너머까지 배웅하겠다고 따라올라갔다. 김기준동지는 청년들이 숲속으로 올라가는것을 한참 서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리고는 고갱의 굴앞으로 걸어내려왔다. 숲이 우거졌다. 나무가지끝에서 큰별 하나가 껌벅껌벅 빛을 흘리며 내려다본다. 이슬기어린 큰 눈방울같아도 보이였다. 그는 불시에 가슴이 뭉클해왔다. 밤새 긴장해있긴 했으나 그 아프고 쓰라린 생각을 잊은것은 아니였다. 다치면 터질것 같은 슬픔이 줄곧 밑에 깔려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안해, 그 어질고 순박한 안해, 그러면서도 남편이 하는 큰일이라면 그렇게도 받들며 돕지 못해 혼자 속을 태우던 안해, 자기가 떠난 뒤엔 글도 많이 배우고, 련락도 잘한다는 기별이 있기도 했었다. 그런 안해가 왜놈들의 포악한 손아귀에 덮치웠다. 이것은 분명 나를 사로잡기 위해서 하는짓일것이다. 저 불쌍한 안해를 구출해낼 방법이 없을가? 고생속을 헤쳐온 가련한것이 이 밤부터는 그 차디찬 류치장바닥에 오그리고 앉아서 눈을 슴벅이며 밤새 울것이다. 불과 지척인 저기, 저기서 밤새 울것이다.

어둠속을 걷는 김기준동지는 량볼이 척척하게 젖어내리였다. 그는 그것을 씻지도 못하고 돌을 걷어차면서 걸었다. 삐라를 찍는 다른 고갱속으로 간다는것이 길을 잘못들어 한참 걷다가 얼마후에야 다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