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광산거리는 세멘트다리가 놓여있는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으로 갈라져있다. 저쪽 자위단이 틀고앉아있는 거리는 쥐굴같은 갱들이 수없이 뚫어져있는 첫째봉앞에 펼쳐져있는데 여기엔 광부들이 살았다. 왜놈들은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 이 거리를 두더지구역이라고 불렀다. 다리 이쪽 거리가 월평시같은 거리의 외모를 갖추고 거기에 무슨 관공소며 광산사무실따위의 유리문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늘어앉아있다. 바로 육중한 벽돌담벽을 둘러치고 담장등어리에 유리쪼각을 칼날같이 박아세운 경찰서도 여기에 있었다.

이 광산거리를 태봉시라고 부르는 리유는 첫째봉, 둘째봉, 태봉, 세개 봉우리를 쑤시여 금을 캐먹는데 그중에서 제일 큰 태봉이 바로 큰거리뒤로 올라가며 붙어앉아있기때문이였다.

거리로는 쩍하면 30여리나 떨어져있는 월평시에서 마차나 자전거가 굴러들어오군했다. 어떤 때는 일제침략군의 기마병들이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거리로 달려들기도 했다. 놈들은 마지막 갱이 있는 둘째봉밑까지 말을 달려올라갔다간 자갈 문 말이 아가리를 하늘로 쳐들고 껑충거릴 정도로 급하게 돌려세워가지고 도로 달려내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세멘트다리를 건너 첫째봉산밑 거리로 먼지를 일구며 내달리군하였다. 아직은 이 거리에 수비대병력을 배치하지 못했기때문에 안심이 안되여 시위라도 하느라고 이따위짓을 벌리는지 모른다.

오늘도 다섯놈이나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오늘 달려든놈들은 거리옆 게딱지같은 집들의 이영을 걷어찰만큼 말을 미친듯이 뛰웠다.

《지랄을 하는군. 지랄병엔 그저 목침이 약인데···》

사람들은 저저마다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민태설은 가슴이 후련했다. 그는 월평시에 있을 때엔 그런 일이 하도 흔해서 그랬는지 말이 뛰는것쯤 보아서는 그렇게 신명이 나는줄 몰랐는데 여기 온 뒤엔 이따금 달려들군하는 기마병들이 온몸에 힘을 우쩍우쩍 올려주었다. 단꺼번에 몇백만원 졸부가 될 꿈을 안고 노다지를 캐보자고 판을 차렸는데 뒤를 받쳐줄 일본무력이 이렇게 하늘에 닿는 기세로 칼을 번쩍이며 문앞을 뜀박질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더구나 민태설이 보기에도 여기 로동군중이란 어딘가 무시무시해뵈기도 하고 그속에 공산당이 있다는 말도 있고 또 얼마전엔 자위단이 벼락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공연히 허욕에 들떠서 죽을데로 기여들어온것이나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은데 말이 뛰는걸 보면 그런 우려가 훌 날아가버렸다.

어쨌든 민가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그는 어제저녁때 경찰이 떼를 지어 부암으로 몰려들어갔다는것도 알고있다. 사실은 전날 홍달수가 와서 아무래도 마을에 큰 공산당이 기여든것 같다고 하기에 어제 경찰서장을 만나러 갔던김에 그 소리를 했더니 경찰은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기동을 개시했다. 민태설은 공산당이라니 틀림없이 기준이가 제집 근방에 기여든줄만 알았다.

(이, 이놈이 나를 대청마루에 메때리구 그 무지랭이들을 부추겨 내 집 고간을 털어가게 했으렸다.)

민태설은 속으로 윽윽 벼르며 연방 경찰서앞쪽으로 난 큰길을 내다보았다. 혹시 김기준이 끌려오지 않는가 해서 살피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 경찰서장이 그 길에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살펴보는중이였다. 큰길엔 버들이 늘어져있고 그 버들 저쪽은 잘 뵈지 않는다. 민가는 가끔 발돋움을 하며 버드나무에 가리워진 굽인돌이 저쪽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 민가네는 금광개업잔치를 차리느라고 안팎간이 법석 끓는다. 사랑채엔 경찰서장을 비롯한 손님들의 자리를 만들고 안채에선 지지고 볶는 기름냄새가 해종일 코를 찔렀다.

《아니 이 마부녀석은 어딜 갔어? 인젠 나리께서 나올 시각이 됐는데 일을 하다가 저렇게 널어놓구 어딜 갔어? 대걸이!》

대청으로 나오던 민가의 첩이 대걸이를 부르며 법석한다. 그도 오금에 바람이 일었다.

《아까 마구간 짓는데로 나간것 같애요.》

부엌에서 대꾸하는 소리가 들린다.

《급살을 맞을것, 마구간을 꾸려두 하던 일이나 거두고 나가서 꾸리면 어때? 마구간에 뭐 제 할애빌 모실텐가? 얘, 너 이리 나와서 저것 좀 거두어라!》

첩은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부엌에서 행주치마를 두른 부엌데기애가 나왔다. 열두어살 먹은 처녀애인데 구박속에 살아 그런지 얼굴빛이 노랗고 머리태가 달롱했다. 첩은 그 애를 마당으로 내려몰았다.

《고기를 굽는데 손이 더럽혀지면 어째요?》

부엌데기 순옥이는 기름묻은 손을 펴보이며 첩을 흘겨보았다.

《야 요년아, 더러워지면 또 씻으려무나. 무슨 걱정이냐?》

첩은 순옥이를 쥐여박았다. 순옥이는 할수없이 마당으로 내려가 우선 장작단부터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단이 커서 잘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걸 못들어?》

《에구, 이제 들어요.》

《드는게 왜 그 꼴이냐? 이런 땐 복녀가 생각나는구나. 고분고분치 않다고 내보내긴 했어도 소같이 힘은 잘 썼다.》

《그럼 밥집에서 도루 오라구 하죠뭐···》

《조 주둥아리질 볼가, 굴러다니며 주둥아리만 여물었다니까···》

순옥인 어리고 체통은 작아도 속대는 여문것 같았다.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장작단이며 도끼를 들어옮기고는 뜰을 쓸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뭐 이 집 아니면 일해주구 밥 세끼 얻어먹을데가 없을가고 혀아래로 종알거렸다. 그래서 그는 조그만 가슴에 이 박정한 세상에 대한 앙심이 돌같이 옹쳐있는것이였다.

민가의 첩은 순옥이가 마당을 쓰는것을 한참 서서 지켜보더니 대청으로 들어서는 령감한테로 달려가서 목을 흔들며 뭐라고 아양을 떨었다.

《얘얘, 그 벼짚단은 부엌구석에 처박아라. 벼짚은 뭘하러 들여다놓고 저렇게 흘렸나?》

민가는 첩의 아양은 못들은척하고 마당을 내려다보며 웨쳤다. 첩은 입을 비쭉하고 돌아서더니 또 몸을 흔들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 기생퇴물은 요새 셈평이 와짝 피여 첫사랑이나 속삭이는 때처럼 노염도 절로 들고 아양도 절로 났다. 그는 이때까지 민가의 첩으로 살긴 했지만 크게 사내 덕보는것도 없이 이 거리에서 조그만 술집을 펴고 살았다. 그런데 요새 민가가 월평에서 이리로 옮겨오는통에 신세가 아주 달라졌다. 그는 민가를 구슬려 망해서 떠나는 어느 광주의 큰 집 한채를 먼저 사게 했다. 그게 바로 이 으리으리한 집이다. 30여간이나 된다는 큰 집인데 대청도 민가네 부암집 대청과는 달리 무늬를 돋쳐 마루를 깔고 사랑방도 부암집 사랑방보다 더 크고 넓었다. 민가의 첩은 노다지굴이야 어떻게 되였든 사내가 태봉에 발을 들여놓듯마듯 이런 궁궐같은 집을 사서 안겨주니 등을 두드려주고싶었다. 그는 요새 신바람이 나서 순옥이며 대걸이에게 악다구니질을 해가며 집손질을 했다.

경찰서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퇴근할 때 들려주십사고 초청을 했는데 반공일날 퇴근이 이렇게 늦어질수가 있을가? 민가는 어째 일이 튀는것 같아 겁이 났다. 민가의 하는 본때란 무슨 일을 해도 왜놈을 섬기는 일을 첫째 일로 삼았다. 이 태봉에 와서 금광을 하는데 경찰이 나와서 노다지를 캐줄리는 없지만 그래도 왜놈의 권세를 끼는 일이 제집 담장과 바람벽을 튼튼히 만드는 일과도 같다고 믿고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갱 두개를 손에 넣기도 했으니 오늘 개업잔치겸 새집에 경찰서장을 초빙한것이였다. 그는 경찰서장만 초빙한것이 아니라 두 《관방》의 일본인 우두머리들과 개인광주 몇사람도 함께 청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아직 한사람 나타나지 않는다.

민가가 안절부절 못해서 서성거리고있는데 기다리는 경찰서장은 오지 않고 풍이 낡고 꿰져서 펄럭거리는 마차 한대가 민가네 마당으로 굴러들어왔다. 마차에선 생주두루마기에 파나마모를 쓴 덕산동 박대동이 내렸다. 풍안엔 학생모를 쓰고 도수안경을 낀 그의 아들도 앉아있는데 아들은 내리지 않았다.

《어 이 댁이 민태설씨 댁이 분명합니까?》

몸집이 큰 박대동은 퇴마루밑에 단장을 짚고 서서 사랑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거 박대동씨 아닙니까? 오래간만입니다.》

민태설은 마루앞으로 나서며 대꾸를 했다. 그는 오늘 일이 더럽겐 되여간다고 속으로 개탄했다.생뚱같이 박대동인 왜 찾아드는가. 천하에 독하고 무서운놈! 같은 돈냥이나 가지고 사는 사이긴 하지만 박대동이와는 언제 술 한잔 나눈 일이 없고 간친한 이야기 한마디 주고받은 일이 없다.

《내 잠간 민태설씨를 뵈올려고 과차에 들렸습니다. 들어가도 관계치 않겠습니까?》

《어, 어서 들어오십시오.》

일은 점점 더 우습게 되여간다. 곧 손님이 오니 가라고 잡아떼야 할텐데 그럴수가 없었다.

박대동은 몸이 육중해서 대돌을 올라오는데 절반은 단장의 힘을 빌어야 했다. 단장을 꾹 눌러짚으며 끙 소리를 내고야 대돌을 하나씩 올라선다. 그는 파나마모를 벗어 훌렁훌렁 부채질을 하며 민태설이 먼저 방안으로 발을 넘겨놓았다. 민태설은 퇴마루에 앉아 대충 용건을 묻고 돌려보내기라도 할가 했는데 박대동이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는바람에 부득이 따라들어갔다.

《음, 이건 집이 괜치 않은걸 샀소이다. 이게 본시 박동숙이 있던 집이였지요?》

《네, 박광주가 있던 집입니다.》

민태설은 건숭 대꾸했다. 그는 박대동이 올방자를 틀고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딴소리를 묻는걸 보니 얼른 떠날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귀밑으로 피줄이 일어섰다. 그저 볼따귀를 쥐여박아 훌 내던지고싶기도 했다. 박대동은 민태설이 담배도 권하지 않으니까 제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서 천천히 붙여문다.

《그래 박령감, 무슨 일로 왔습니까?》

민태설이 기다리다 못해 분이 터지는것 같은 소리로 먼저 물었다. 박대동이도 묻는 소리가 어째 공손치 않다고 보았는지 담배를 빨다가 흘깃 건너다보았다. 그리더니 한참후에야 말을 꺼냈다.

《어험, 다른게 아니올시다. 내 오늘 월평에 갔다가 부암에 사는 전치근씨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전치근으로 말하면 인젠 나와 사돈간 되는 사이입니다.》

《네, 혼사를 지냈다는 이야긴 들었습니다.》

민태설은 어서 말하라고 보채듯 받아쳤다. 그는 그러면서도 연송 밖을 내다보았다. 인제라도 당장 경찰서장이 달려들면 이 망짝처럼 펄쩍 들어앉아있는놈을 어찌나 하는 근심이 들었다. 그의 첩도 대청쪽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박대동이 못보게 어서 몰아 보내라고 주먹질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즉 민태설씨가 전치근이의 토지를 모두 저당잡히구 빚을 준게 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이지요.》

《그래서 전치근이가 나더러 사정을 좀 전달해달라는겁니다. 아무래도 금년엔 형편이 꿀려서 명년에 청산하겠으니 그쯤 아시고 일을 선처해주시기 바란다고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들렸는데 그렇게 좀 해주시오. 물론 민태설씨가 지금 금광을 산다 어쩐다 하는데 사정을 듣지 않아도 돈이 급할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선심을 가지고 채무자의 사정을 보아주려 한다면 그게 안되겠습니까? 나도 그 가긍한 사정이야기를 듣고 쾌히 그렇게 여쭈어보겠노라고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사실 박대동은 오늘 월평에서 전치근을 만나 그의 딱한 사정이야기를 들으며 인젠 자기의 뒤를 사돈이 좀 보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전치근의 속맘도 읽었다. 말하자면 빚 물 돈이라도 좀 보태여주었으면 하는 눈치같아 박대동은 뜨끔 놀랐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민가더러 돈을 좀 천천히 받도록 눌러놓으려고 들린것이였다.

민가는 박대동의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 토지는 이미 처분이 되였습니다.》

《아니 처분이 되다니? 딴 사람한테 방매를 했단말이요?》

박대동은 두눈을 흡뜨며 민가를 쳐다보았다.

《네, 토지는 이미 딴 사람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나도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루차 다니며 독촉두 하고 백방으로 일을 좋게 하자고 애를 썼지만 손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하는수가 없었습니다.》

《그, 그래 딴 사람한테 영원방매를 했단말이요?》

《그 너절한 땅을 영원방매하지 않고 저당받구 돈줄 시러베아들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나같은 시라소니니까 전씨의 사정에 동정을 금할수가 없어서 돈값 절반두 못되는 땅을 저당받구 돈을 주었던거지요.》

《아니 돈값 절반이 못되다니 그 무슨 소리요? 그리고 영원방매를 한다면 땅임자와 의논두 있어야 할게 아니요?》

《땅임자는 누가 땅임자요. 땅문서를 손에 쥔 사람이 땅임자지 전치근이 땅임자란말입니까?》

《그래 땅값이 빚을 계산하고 한푼도 남지 않았단말이요?》

《아니 이 령감, 뭘 이렇게 깐깐스럽게 야단이시오. 어서 돌아가 전치근이더러 그런 수작은 비치지 말라고 이르시오. 땅은 벌써 제 삼자의 손에 넘어갔다고··· 사돈이고 뭐고 그런 송사를 들고 다니다간 매맞기가 첩경이리다.》

민태설은 얼굴빛이 붉어져 일어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박대동을 몰아보낼 계제도 됐거니와 또 전치근의 땅처분문제란 빚을 받고도 그 곱절이나 되는 돈을 떼먹은 조간도 있기때문에 앉아서 시비를 캐다간 뒤가 드러날것도 같아서 들고일어서며 목소리를 높이는것이였다.

《아, 그래 빚이 얼만데 땅 나흘갈이를 다 팔아먹었어?》

《다 팔아먹든 말든 덕산동 박대동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요. 어서 일어서 나가우.》

《에끼 이 도적놈! 이 날도적놈! 난 빚을 놔먹어두 그렇게 아주 강적을 처먹지는 않는다. 이놈,이 날도적놈! 그, 그래, 네놈이 월평시 경찰서장 혼다가 하는 토지개발에도 남의 발등을 짓밟고 끼여들어갔지? 이 도적놈, 천하 돈을 네놈 혼자 다 긁어가질테냐?》

《흥,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정말 장사말가운데 혼사말이로군. 이놈! 토지개발에 드는데 내가 무슨 박가의 발등을 밟을테냐?》

《뭐가 어쩌구 어째? 발등을 밟았게 내 오늘 혼다를 만났는데 민태설이가 주를 많이 들어 당신이나 들 주권이 없다고 대가리를 흔들지 이놈, 이 강도같은놈, 이, 이놈.》

토지개발에 한몫 든다고 하는것은 월평시 경찰서장을 중심으로 몇명이 돈을 합쳐 월평시 앞벌을 개간하고 이민을 끌어들여 농장을 꾸리자는것인데 이게 리익이 대단할것 같아 박대동이도 여기 들어보자고 월평시로 몇번 오르내렸다. 그런데 말을 들어줄듯싶던 혼다가 오늘은 딱 잘라 거절하면서 이때까지 말도 없던 민가이야기를 꺼냈다. 민태설이까지 들이니 인젠 자금조성이 다 됐다고 하며 또 민가가 많은 자금을 둘러댔다는 소리도 했다. 그래서 대뜸 민가에 대한 분노가 촉발되였다. 그러나 박대동은 오늘 이 문제에 대해선 그까짓 돈 가지면 어데 가서 무슨 장사를 못해먹겠게 싸우겠느냐고 말을 안하려 했는데 전치근의 토지문제를 놓고 이야기가 튀는바람에 토지개발에 대한 소리도 터쳐놓았다.

박대동은 구들을 두드리며 도적놈, 강도놈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민가도 훌쩍훌쩍 뛰였다.둘다 점점 피줄이 동해올랐다. 민가는 박대동을 몰아내라고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민가의 첩이 뛰여들어와 박대동의 팔뚝을 꼬집으며 마구 내끌었다. 그제야 마차의 풍안에 앉아서 책을 읽던 박대동의 아들이 닁큼 뛰여내렸다.

《달려들지 마슈, 지저분한놈과 맞다들어야 리속이 없습넨다.》

마차부가 마부대우에 돌아앉아 담배를 피우며 박대동의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박대동의 아들은 대돌에 구두징소리를 내면서 달려올라갔다.

《아버지, 가십시다. 무엇때문에 여기 들렸어요. 이걸 놓시오. 옷을 이렇게 비틀어놓으면 됩니까?》

그는 민가첩의 가슴을 떠밀며 준절히 타일렀다.

박대동은 민가의 뒤통수라도 지르밟고 떠나야 속이 후련할텐데 그걸 못해서 얼른 퇴마루로 발을 넘겨디디지 않는다.

《이, 이놈, 날 도리여 괄세를 해? 내 네놈의 목줄띠를 뽑아놓고 가도 시원칠 않겠다.》

박대동은 문설주를 떠밀며 소리를 질렀다. 민가가 생각하는바와 같이 박대동이 독하고 무섭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둘을 발가벗겨 내세운다면 박대동이 민가를 하루아침에 녹여내서 없앨수 있을것 같았다.

박대동의 아들은 민가첩과 함께 겨우 박대동을 퇴마루로 끌어냈다. 박대동은 단장을 짚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대돌을 내려왔다. 민가첩한테 어떻게 꼬집혔는지 생주두루마기가 여기저기 이발로 물어흔들어놓은 자리같이 되였다. 아들은 아버지를 마차에 떠밀어올렸다. 박대동은 아까는 이놈 저놈 소리도 질렀는데 점점 더 분기가 올라서 인젠 소리도 못지르고 그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후들후들 떨기만 했다.

《어히이구 배라먹을것, 별 미친 령감쟁이를 다 보지 않나? 하마트면 큰 제상을 칠번했어. 서장님이 안나왔기에 다행이지···》

민가의 첩은 떠나는 마차를 보고 침을 뱉으며 종알거렸다. 그는 사랑방에 깔아놓았던 풍석을 들어내다가 두드려 털며 법석을 했다. 민태설이도 이제야 숨결이 좀 잦아들어서 기를 펴고 어험어험 기침을 했다. 그러나 기분은 역시 좋지 않았다. 어쩐지 상사구렝이한테 물린것 같았다. 전치근의 땅을 처분하고 먹은 공돈을 아무래도 새겨낼것 같지 못했다. 그걸 도로 토해놓느라면 망신이 또한 이만저만 아닐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무엇때문에 남의 일에 나서서 뛰며 그런 망신을 당합니까?》

박대동의 아들은 마차가 세멘트다리를 건늘 때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기회에 자기 생각을 좀더 알아듣도록 말해주고싶은 충동을 느낀것이다.

《지금 남을 동정할 시대입니까? 부암의 전치근이란분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사돈을 정했지 누가 거기에 장가를 갔습니까?》

《이놈의 새낀 또 무슨 수작이냐? 이 주리를 틀어놓을놈의 새끼···》

박대동은 범같이 으르며 곁에 놓여있는 단장을 거머쥐였다. 그바람에 그의 아들은 말을 꺼내다가 그만두었다. 성이 난걸 보니 당장 마차고 사람이고 다 들부셔놓을것 같았다. 서울 가서 뺨 맞고 시골 와서 행패라더니 그 꼴이 될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이런 완고덩이아버지를 가지고있는 자기가 도리여 불쌍한 존재같이만 여겨졌다. 지금 중학은 다니지만 인생이요, 철학이요 하면서 떠들고 다니는 그의 눈으로 볼 때엔 아버지는 한낱 우습강스런 화상에 불과하였다. 앉으면 공자가 어떻다, 로자가 어떻다, 지어는 리백이 어떻다 하는것도 우습강스러운 일이고 돈 돈 하며 돈 몇푼때문에 용마루가 부러져내리게 소리를 치는것도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런 아버지가 자기에게 안해를 골라주다니? 그래 고르고 골라서 구해냈다는것이 부암 전치근의 딸이란말인가. 그 촌구석의 거름냄새 나는 녀자한테 장가를 들란말인가? 뭐 부암 전치근의 몇대 조부가 리왕조의 내직에도 있었다구? 기가 막힌 일이지, 그런 족보가 나한데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박대동의 아들은 들썽대는 마차우에 앉아 공중으로 둥둥 떠가는 삭도바가지를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경찰서장이나 《관방》우두머리 왜놈들은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때에야 민태설네 집에 모여들었다. 경찰서장 아다찌는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왜놈치고는 제법 멀끔하게 생긴놈이였다. 민태설은 뜰에 내려와 그를 옹위해가지고 사랑퇴마루로 올라가며 안에 대고 대야에 물 떠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다찌가 장화를 벗고 마루우에 걸터앉아 혹시 손발이라도 씻자고 하지 않을가 해서였다.

민가의 첩이 놋대야에 물을 떠들고 몸을 흔들며 달려나왔다. 그러나 아다찌는 본체 않고 칼을 절컥거리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관방》우두머리들이 모두 일어서며 서장을 맞았다.

《어떻소? 금이 잘 나오는가?》

아다찌는 칼을 떼서 구석에 세우더니 그우에 모자를 걸어놓고 앉으며 물었다.

《뭐 시원치를 않습니다.》

수염이 더부룩하고 키가 아다찌의 가슴팍에나 올가말가한자가 대꾸했다.

《시원치 않으면 되는가? 제국이 손을 댄 갱에서야 송아지같은 노다지가 뛰여나와야지 엉?》

《헤헤헤···》

《관방》의 우두머리들이 웃자 아다찌도 껄껄거리며 웃었다. 아다찌의 곁에 앉은 민가는 어험어험 하며 제법 도고한 자세로 앉아서 웃었다. 그는 아다찌와 첫 흥정을 하는 자리에서 인사는 인사대로 차려야 하겠지만 첨부터 꿀린 자세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얼마후 사랑방으로는 음식이 들어왔다. 민가의 첩이 가뜩 차려올린 소반을 들고 치마를 끌며 대청마루우를 뛰다싶이했다.

민가가 산 두개 갱의 덕대들도 왔다. 그들은 갱에서 곧추 왔기때문에 각반 친 다리에 지하족을 신고 딱따구리단장을 짚고있었다. 둘이 다 사랑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을 거쳐 대청쪽으로 안내되였다.

《안녕하슈?》

앞서 걸어들어온 사팔뜨기덕대가 마루우를 뜀박질하는 민가첩에게 알은체를 했다.

《음 자네들인가? 어서 이 안방으로들 들어가게. 얘 순옥아, 게 안방에도 한상 채려라.》

사팔뜨기덕대는 뒤따르는 동료에게 한쪽눈을 째끗하며 웃어보였다. 세상에 기괴하고 망측한 일이 이런 일이란 눈짓이다. 이때까지 민가첩한테 술 사먹으러 다닐 때에는 그의 손목을 쥐고 간다노자소리도 불러보았는데 인제 와선 대뜸 자네들이란 하대가 나온다. 광주와 덕대가 구별이 있고 그 층계가 까마득하다는것을 민가의 첩이 이렇게 로골적으로 선포하고 나설줄은 몰랐다. 덕대들은 아니꼽고 요글요글한데가 없지 않았으나 역시 새 주인을 섬겨야 하겠으니 하는수가 없었다.

《얘, 너 여기는 사랑방에 차려내간것보다 더 잘 차려올려와야 한다. 우리가 저 사람들보다 진짜 광주야, 알겠니?》

사이방으로 들어간 사팔뜨기는 정지방에 있는 순옥이에게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순옥이는 그까짓 말을 들은체 않고 빈 사발들을 안아들고 힝 부엌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민가네 집 안팎간이 떠들썩하게 들끓을 때 대걸이는 민가네 집에서 훨씬 떨어진 외진곳에 가서 마구간을 꾸리노라고 땀을 뻘뻘 흘리였다. 민가는 마차우에 앉아 호강은 하고다니지만 냄새가 난다고 집근처엔 마구간을 못짓게 했다. 그래서 산밑에다 짓는데 흙이기는 물을 길어들이려 해도 강물이 곱이나 멀고 비탈길이여서 대걸이 솜씨에도 황소숨을 톺아야 했다.

그는 아침에 장작을 패고 나와선 벽에 흙을 발랐다. 하루종일 흙칼질을 하고나니 어깨가 물러나는것 같고 등가죽이 씌였다. 땀이 얼마나 흘렀는지 몸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엥이 모르겠다. 천천히 하자꾸나. 이걸 다 지어놓으면 민가가 놀라구 할테냐.》

대걸이는 혼자 두덜거리며 아직 해가 적잖게 남아있을 때 흙칼을 집어던졌다. 그는 연장을 대충 모아놓고 손발을 씻으러 강으로 내려갔다. 강으로 내려가자면 큰거리를 거쳐야 했다.

해빛이 설핏해진 큰거리로는 간데라를 허리에 지른 광부들이 태봉갱쪽에서 밀려내려왔다. 낮대거리가 파한 모양이였다. 모두들 돌가루와 흙을 들써서 눈들만 반짝거렸다. 뭐라고들 왁짝 떠들어대기도 했다. 한대포씩 하고 가자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리 량쪽엔 음식점, 술집이 가득 늘어앉아있다.바지를 걷어붙인 대걸이는 흙발로 징겅징겅 거리를 걸어가다가 그만 너무도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닥쳐드는바람에 얼른 걸음을 멈추었다. 경찰들 대여섯놈이 십여명의 청년들을 묶어가지고 세멘트다리를 건너와 큰거리로 들어선다. 청년들뿐만이 아니였다. 녀자도 한명 있었다. 그런데 대걸이는 그 녀자가 길녀라는걸 알고는 저도모르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을번했다. 그는 포장이 펄럭거리는 국수집 문앞에 서서 묶인 사람들이 지나가는걸 지켜보았다. 광부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 보았다.

길녀는 얼굴이 창백했다. 치마가 흘러내려가 발끝에 밟히였다. 그는 그저 다소곳하고 걸었다. 발에 신은 짚세기는 다 꿰져서 끊어진 신총이 더러는 발등우로 곤두일어섰다. 한쪽 신은 아예 바닥도 없는것 같았다. 뒤따르는놈이 뭐라고 꽥 소리를 치자 길녀는 눈을 들다가 말았다.

대걸이는 길녀를 지켜보느라고 다른 피투성이 된 청년들은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공산당이라고 잡아오는 모양이군.》

《그런 모양이요. 때려죽일놈들··· 내인이 불쌍해서 못보겠소.》

묶인 사람들이 지나가자 광부들이 수군거렸다.

대걸이는 국수집앞에 한참 못박힌듯 서있다가 얼마후에야 급히 강물로 내려왔다. 그는 경황없이 손발을 씻고는 민가네 집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급히 조직에 보고를 해야 할 일이였다. 아니 조직이라기보다 길녀의 남편인 김기준동지에게 소식을 전해야 할것이였다.

대걸이는 월평에서 이 거리로 오르내리며 이곳에 통신이나 련락을 전하는 줄을 둘 가지고있었다.하나는 둘째봉개인갱에서 발파공을 하는 한상도와 련결된 줄이고 하나는 민가의 첩네 부엌데기였던 복녀를 통해 직접 김기준동지와 련결된 줄이였다. 그러니 이번 일은 어느모로 보나 복녀를 빨리 강건너로 띄워야 할 일이였다.

대걸이 민가네 집에 오니 안팎간이 떠들썩했다. 사랑방에서도 안방에서도 취담이 벌어지고 웃음소리가 높았다. 사랑방에선 장 간드러지게 웃는 민가첩의 웃음소리가 들려나왔다. 안방 덕대들은 수가 불었다. 민태설의 개업잔치에 한밥 먹겠다고 여러 갱의 덕대들이 모여들었다. 꼭뒤에 쇠를 붙인 딱따구리단장이 대청마루우에 얼기설기 군드러져있는데 몇개나 되는지 알수 없었다.

부엌에선 순옥이가 혼자 고기를 구워내느라고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첩과 둘이 종일 구워서 차려놓았는데 그걸 언제 다 먹어대고는 안팎간에 고기들여오라는 소리가 뻗닿게 일어난다.

대걸이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물초롱 두개를 들고나왔다. 그것을 물지게 멜대의 좌우고리에 달아지고는 씽하니 대문을 나섰다. 샘물로 가다가 복녀를 만날 작정이였다. 대걸이는 한참 뒤거리로 걸어들어갔다. 가다가 밥집부엌을 들여다보니 복녀는 없었다. 뜬김이 서린 부엌안에서 복녀와 함께 일하는 식모가 무얼 끓이는지 땀을 뚝뚝 떨구며 주걱으로 큰 가마를 휘젓고있다. 복녀가 어데 갔는가고 물어보니 샘터에 물길러 갔다는것이였다.

《마침 잘됐군.》

대걸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이 거리에선 물이 발라서 멀리 떨어져있는 산기슭의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그러기에 대걸이는 여기 오는 날부터 물지게를 만들어지고 샘물을 길어들여야 했다. 그래서 이 샘터에서 늘 복녀를 만나기도 했었다.

대걸이는 바삐 걸었다. 샘터에 거의 가니 복녀는 벌써 물지게를 지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샘터앞 비탈로 내려왔다.

《거기 좀 서라구.》

《어마나···》

《어서 물초롱을 좀 내려놓으라구.》

《왜요?》

《급하게 이야기할게 있소···》

복녀는 물초롱들을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멜대의 고리들을 벗기였다. 아직 물지게에 익숙치 않아 그런지 온통 아래도리가 젖었다. 어떻게 했는지 앞으로 넘겨놓은 굵은 머리태에서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복녀동무, 빨리 련락을 좀 가야겠소.》

《무슨 련락인데요?》

《방금 거리에서 띠여봤는데 길녀아주머니가 경찰한데 붙잡혀왔소. 청년들두 십여명 잡혀오구···이 소식을 빨리 김기준동지한테 알려야겠소. 이 물초롱을 갖다 쏟구는 무슨 핑게를 해서라도 강건너에 갔다오라구···》

《아니 길녀아주머니가 누구야요?》

《기준동지의 안해를 몰라?》

《어마나···》

복녀는 놀라서 젖은 손을 후들후들 떨었다. 김기준동지의 안해라면 너무도 잘 아는 녀자이다. 부암에서 김기준동지에게로 오는 쪽지를 한번 가져온 일도 있고 옷보퉁이를 가져왔기에 데리고 가서 집을 대준 일도 있다. 그 불쌍한 녀자가 잡히다니? 복녀가 보기에도 길녀는 말이 없는 너무도 순하고 어진 녀자 같았다.

《갔다오겠어요. 륙실할놈들이 그런 아주머니를 붙잡아다 어떻게 할셈인가? 그런데 김기준동지가 아무래도 거긴 없는것 같애요. 난 그 집에서 아직 김기준동지란분을 한번도 본일이 없어요.》

《글쎄 그런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니까··· 그저 그 집 어머님을 보구 말을 전하기만 하면 되오.》

사실 김기준동지가 거기 있는지는 대걸이자신도 모른다. 부암의 공청책임자 경식이로부터 어떤 련락이든 이곳 조직을 지도하던 강호란 사람네 집을 통하기만 하면 김기준동지에게로 가닿는다는 말을 들었을뿐이였다.

《빨리 내려가보오.》

《네.》

복녀는 대답을 해놓고도 일어설념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첫째봉쪽에서 넘어오는 삭도바가지들을 쳐다보며 풀을 쥐여뜯었다. 대걸이는 얼른 샘물가로 가서 물을 펐다.

대걸이가 물지게를 지고 돌아서서야 복녀도 일어섰다. 잠시후 둘이는 물지게를 삐걱거리면서 비탈길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