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제 2 장

4

 

어제밤 태봉거리 자위단을 습격하고 총 십여정을 로획한 중촌청년 다섯명은 김봉석의 지휘밑에 거리를 용케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서 적의 추격을 받게 되였다. 자위단과 경찰이 뒤에 꽉 덮인것 같았다. 총을 멘 청년들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나 놈들은 산을 샅샅이 수색하며 따라왔다. 김봉석은 로획한 총을 무사히 빼돌리기 위하여 청년들을 봉화재쪽으로 빼고 자기는 적을 달고 반대쪽산기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를 못가서 적탄에 맞았다. 어깨팍에 관통상을 입은 그는 피를 쏟으면서도 나무숲을 헤쳐나갔다. 처음 한동안은 적이 악악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어느 산봉우리우에 간신히 올라서보니 추격해오던 적들이 가뭇 조용해졌다. 김봉석은 권총을 들어 또 한방 갈기였다. 그러나 알이 다 나가서 총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바위돌을 몇개 들어일궈 내려굴렸다. 돌구르는 소리가 울컥거려도 적의 반응은 없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여기 있다.》

김봉석은 바위코숭이우에 올라서서 배심을 주며 몇번 고함을 질렀다. 그바람에 상처에선 피가 더욱 솟구쳐올랐다.

그는 산속을 자꾸 헤쳐나갔다.

그러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그것은 중촌으로 통하는 부암뒤산에서였다.

이날밤 부암마을 공청원들은 김봉석을 성재네 건넌방에 내려다 눕히고 중촌으로 련락간 사람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빼앗아온 무기가 무사히 운반되였는지 아니면 놈들과 접전을 하다가 다 희생되거나 잡히진 않았는지 모를 일이였다.

성재네 사이방에 모여앉아있는 청년들은 밖에서 발자욱소리가 나기만 기다렸다. 문에 포대기를 쳐놓은 건넌방에서 봉석이를 간호하던 경식이가 무거운 표정으로 사이방에 건너왔다. 경식의 표정을 보고 방안청년들은 더욱 침중해졌다.

《밖에 경비는 단단히 세웠소?》

경식이 물었다.

《경비도 세우고 풍산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게 놀도록 조직도 했으니까요.》

희섭이의 대답이였다.

《개우리를 단단히 신칙해보라고 이를걸 그랬소.》

개우리란 민가네 집을 말하는것이였다.

《거긴 소선대원들이 둘러쌌지요.》

사실 온 동네가 불시에 긴장되였다. 오늘저녁 김봉석이 마을에 내려온것과 함께 민가네 집엔 경찰이 또 여러놈 와서 묵고있다. 그래서 구석구석 경비가 박혀섰다. 야학방에선 일본말 배우는 흉내가 벌어지고 풍산집에선 바가지장단을 치는 되놀이가 벌어졌다.

공청에선 경찰놈들의 주의가 성재네 집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여러모로 애쓰며 일을 조직했다.

밤이 좀 들었을 때 중촌으로 련락을 갔던 공청원 영호가 땀을 철철 흘리며 들어섰다. 모두들 우실거리며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들였다.

《어째서 이렇게 늦었소?》

경식이 영호를 곁에 앉히고 조용히 물었다.

《거기 가보니 어데 떠나고싶어야 빨리 떠나지요.》

《떠나고싶지 않다니? 그래 습격조동무들은 무사히 갔습디까?》

《무사히 가다뿐입니까?》

《총은 다 가지고 갔어?》

희섭의 곁에 앉아있던 최정수가 시뻘건 얼굴로 끼여들며 물었다.

《다 가지고 가지 않구···》

《모두 몇자루야?》

최정수는 총을 로획했다는건 알고있지만 딱히 몇자룬지 몰라 그것부터 물었다.

《모두 열자룬데 일본놈들이 넘겨준 번쩍번쩍하는 새것입데다.》

최정수는 당장 숨이 차올라 그담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사실 그는 손에 총을 잡을 생각으로 등이 달아있다. 그래서 몇번 경식이에게 민가네 집에 경찰이 와서 자고있을 때 들이치자고 제기도 했었고 또 자기를 상촌으로 보내달라는 제기도 했다. 그러나 경식이는 모든 일을 신중히 해나가는 사람이라 그런 제기를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았다.

영호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 중촌뒤산 청바위굴안은 웅성웅성 끓는다는것이였다. 무장만해도 자위단에서 로획한것외에 여러자루 더 있는데 그걸 분해해서 닦느라고 법석하는가 하면 상촌으로 뽑혀올라갈 청년들이 모여들어 회의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쉴새없이 등사판에 삐라를 찍어내고있다는것이였다. 하긴 중촌은 공청구위원회가 있는 중심구역으로 월평시나 혹은 광산거리같은 로동자구역을 내놓고는 혁명의 맥박이 그중 실하게 깔린곳이였다. 이 근방 농촌은 다 이곳과 줄이 잇닿아있고 또 이곳을 통해 상촌과 련결이 지어졌다. 그러기에 경식이도 이 중촌 청바위굴에서 늘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은 알고있었다. 바로 김봉석이도 상촌에서 무장대를 꾸리고있는 조직의 핵심인데 이 중간지점에 와서 무장대원 뽑는 공작을 하였고 자위단습격전투도 여기서 조직했다가 이렇게 부상을 입었다.

경식이는 묵중하게 앉아서 영호의 말을 다 듣고나서야 이어 김봉석이 누워있는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김봉석은 바늘귀만한 등잔불그림자밑에서 눈이 달아 얼른 올려다보았다.

《왔습니까?》

《왔습니다.》

《그래 어떻게 됐답니까?》

《다 무사히 청바위굴에 도착했답니다.》

김봉석은 후유하고 단김을 내불었다. 그는 가슴팍에 올려놓은 굵은 손가락들을 다둑다둑 두드렸다. 눈엔 이슬이 번쩍거렸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어 상촌으로 들어가는 청년들도 떠날것 같답니다.그러면 무기도 무사히 상촌으로 운반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김봉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금시 이슬기가 있던 눈이 말쑥해져서 천장을 뚫을듯이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한참 생각했다. 경식이는 이 불같은 청년의 머리속에서 또 무슨 용감한 기지가 번뜩이지 않는가고 생각했다. 그는 참으로 사람이 자라는 일은 모를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렇게도 부끄럼 잘 타던 조그마한 소년이 어떻게 이처럼 성장할수 있을가. 김봉석은 본시 월평시에 있는 구두쟁이의 아들이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구두쟁이로 일하는것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학교를 함께 다니던 경식이는 여러번 그런 봉석이를 띠여보았다. 김봉석은 자기 아버지만 부끄러워한게 아니라 혼자 흑판앞에 불려나가든지 창가시간에 혼자 노래라도 부르라면 처녀애들처럼 얼굴이 붉어져 외면하군했다. 그런 김봉석이 인젠 이렇게 자랐다. 자기도 봉석이도 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거칠은 계급사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부대끼게 되고 혁명의 준엄한 물멀기에 닥달이 되였다. 경식이는 저도 모르게 가슴속이 찌르르해지는것을 느꼈다.

《경식동무, 아무래도 청바위굴에 사람을 또한번 보내야 하겠습니다.》

얼마후 김봉석이 말했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상촌에 통신을 보내야 할게 있습니다. 상촌으로 청년들이 떠나간다면 그편에 보내는것이 좋을것 같군요.》

《상촌에 보내는 통신이라면 중요한 통신일텐데 내가 갔다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봉석이는 이어 자기 베개밑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는 모로 돌아누워서 한참 꿍싯거리며 통신을 썼다.

《상촌에 당도하면 곧 혁명위원회를 찾으라고 이르십시오.》

《알겠습니다.》

경식이는 김봉석이 내밀어주는 통신쪽지를 품속에 깊숙이 간수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사이방으로 건너왔다. 그동안 희섭이며 성재를 비롯한 청년들은 다 나가고 영호와 최정수만이 앉아있었다. 둘이 무슨 쑥덕공론을 한것 같은데 경식이 들어서자 모두 아닌보살하고 담배들을 말았다. 최정수는 기가 오른 시뻘건 얼굴로 나팔만치 크게 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켜댄다. 손이 떨고있다.

《다들 어데로 나갔소?》

《희섭선생은 야학에 나가고 다른 동무들은 동네를 돌아보겠다고 나갔습니다.》

경식이의 묻는 말에 영호가 대답했다.

《그럼 동무들은 여기 한사람만 앉아서 바깥과 련락을 가지고 한사람은 건넌방에 건너가서 환자를 간호하도록 하시오. 지금 성재 어머니와 정숙동무가 꿀을 구해보겠다고 강건너마을로 건너갔는데 구해가지고 오면 그것두 환자에게 대접을 시키구···》

《경식동무, 우리 둘이는 오늘밤으로 중촌에 가야 하겠소. 그러니 이 자리에서 승인해주오.》

최정수가 얼굴빛이 광솔등걸같이 되여 앉아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동문서답을 했다.

《아니 중촌엔 무얼 하러 가겠소?》

《중촌에 가서 상촌으로 가는 청년들속에 끼워야겠소. 이제 이 동무 말을 들으니까 지난번에 뽑혀간 인식이, 홍일이, 동근이들은 벌써 상촌에 들어가 총을 메고 훈련을 받구있다우. 무엇때문에 난 보내주지 않소?》

《글쎄 동무, 그 다리를 가지고 어떻게 총을 메겠소?》

《왜 못메요? 이 다리가 어쨌단말이요?》

최정수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다리를 공차듯 내휘둘렀다. 그렇게만 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지 굽혔다폈다까지 하며 보라고 웨쳤다.

《내가 총을 잡을만하게 잡겠다는거지 잡지 못할걸 잡겠다고 하겠소? 별일 있어두 난 오늘밤으로 떠나야 하겠소.》

어떻게 기가 올랐는지 무슨 말을 더 했다간 싸움이라도 걸것 같은 기세였다.

《허허허, 그럼 갑시다. 정 희망이 그렇다면야 어떻게 막겠소. 총을 메고 싸우겠다는거야 백번 좋은 일이지 나쁠거야 있겠소. 그러나 영호동무는 오늘밤 떠나지 못하오. 동무는 아직 조직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영호는 일년감빛이 된 얼굴을 떨구고 앉아 말을 못했다. 그도 밸통은 있지만 조직규률을 어기거나 조직에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서있었다. 그러니 청바위굴이야기로 최정수를 동띄워놓고 그가 강경하게 문제를 들고일어나는 서풀에 싸여 자기도 어떻게 희망을 이루어볼가 했는데 그 기대는 무너지고말았다.

결국 최정수 하나만 좋게 만들었다.

최정수는 가슴이 쑥 열리는 대답을 듣고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면 그럴테지, 일본놈을 치겠다는데 못친다고 팔을 벌리고 막을거야 없지 않은가!

최정수는 복더위에 메밀밭이라도 갈고난듯 헐떡거리였다. 그러나 사실 최정수의 입대문제는 이미 공청에서 여러번 토의가 있었던 문제였다. 토의가 없었다면 최정수가 제아무리 밸을 쓴대도 선자리에서 그렇게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릴 경식이가 아니였다.

조직에서도 상촌으로 들여보내자고는 하면서도 그의 부상당한 다리가 걱정스러워 차일피일 미루어오던것인데 오늘저녁엔 본인이 하도 무섭게 내우기니 별수없이 승인을 한 셈이였다.

최정수는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당장 쪽지라도 써주면 혼자 떠나겠다고 나서는것이였다.

경식이는 하는수없이 봉석이에게 되들어가 최정수문제를 간단히 토론하고 다시 나왔다.

《정 그렇다면 나하구 같이 갑시다.》

《아니 내가 길을 모를가봐 둘씩 간단말이요? 쪽지만 써주오.》

《나도 갈 일이 있어서 가겠다는거요.》

《글쎄 그렇다면 몰라두···》

얼마후 경식이는 최정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휘두르거나 굽혔다폈다 할 때엔 그 다리로 벽돌담벽이라도 차넘길것 같았는데 역시 걸음을 걸을 때엔 절뚝거렸다.

고문을 받다가 부러진 종아리뼈는 이어졌는데 무슨 힘줄이 잘못됐는지 걸음을 옮길 때면 무릎마디가 켕겨서 바로 걷지 못하는것이였다.

《꽤 건너내겠소?》

개울의 징검다리앞에 서서 경식이는 최정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흥···》

최정수는 코방귀를 뀌였다. 아직도 말하는걸 보면 그런 다리를 가지고 꽤 총을 메냄직한가 하는 속셈으로 묻는것 같은데 그따위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배심이다.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떠난다는 말씀이나 올리고 떠나야 할것 아니요.》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요.》

둘이는 동네뒤 언덕을 넘어 산밑에 있는 제비둥지만한 오막살이로 갔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독립군을 하다가 물러앉은 피골이 상접한 그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앉는다.

그는 귀가 절벽이여서 경식이는 말로는 인사를 못하고 그저 허리만 굽혀보였다.

로인은 삿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했다.

최정수는 구석쪽에 놓여있는 개다리소반만한 책상앞으로 가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굵은 글씨로 뻑뻑 썼다.

 

아버지!

저는 전날에 말씀올린대로 총을 메러 갑니다. 아래방에서 자는 식구들한텐 알리지 않고 떠나겠습니다. 부디 조선이 독립되는 날까지 오래오래 앉아계십시오.

 

최정수는 종이장을 두손으로 받쳐 아버지에게 올렸다. 아버지는 수전이 난 손으로 종이장을 받으며 안경집에서 돋보기를 꺼내 썼다. 그는 한자한자 뜯어읽었다. 손을 와들와들 떨며 또 한번 읽었다. 얼마후에야 로인은 돋보기를 벗고 주름투성이의 우묵한 눈을 들었다. 그 무슨 감개가 무량한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다. 이어 주글주글한 두볼이 내려젖으며 번쩍거렸다. 새끼를 쳐서 하늘로 날려보내는것 같은 서운한 마음때문에 로쇠한 뼈짬에서 눈물을 짜올리는건 아니였다. 자기가 헤쳐온 그 잔혹하고 힘겨운 원쑤와의 싸움이 자식의 앞에 다시금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오장을 비틀어짜는것 같은 아픔이 있어서 우는것이였다.

《떠나라, 어서 떠나라. 내가 싸울 때에야 군사를 이끌어줄 영걸이 없어서 수백수천이 풍찬로숙을 하다가도 끝내는 만년에 이 몰골로 됐지만 인제 너희들 대에야 아무렴 그렇게 되겠니? 백두산정기를 받으신 젊으신 장군님께서 군사를 이끄신다니 삼천리땅에 독립만세가 터질 날이 있겠지, 어서 떠나거라!》

로인은 적삼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힘겨운 음성으로 정중히 말했다. 최정수는 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일어섰다. 밖에 나와선 뭐든지 자기 배짱대로 해내자고 울군불군하는 최정수였지만 아버지앞에선 공손하고 례의범절이 그럴듯했다.

최정수는 밖으로 나오다가 아버지가 이 며칠동안 삼아놓았다는 피곁신 한죽을 노끈에 꿰여 어깨에 걸메였다.

《그건 이리 보내오. 내가 메고 가겠소.》

경식이가 빼앗자 그는 잔말없이 내밀어주며 코물을 흡 삼키였다.

《우지 마오.》

《어쩐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고 가는것 같아서 자꾸 울어지우.》

최정수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며 허리에 찼던 수건을 뽑아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