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2

 

제 2 장

2

 

길녀는 이른아침을 먹고 밭에 나와서 벌써 김을 두참이나 잘 맸건만 별로 길지도 않은 밭이랑을 몇이랑 못맸다. 김이 때가 늦어서 호미끝이 안들게 풀이 절었다. 조그루밑에 절은 바랭이같은것은 호미를 가지고는 어떻게 할수가 없어서 손톱으로 뜯어내야 했다. 조가 풀속에서 부대끼다나니 어떤데는 황이 든것 같이 노랗게 되였다. 그런 조대들도 나이는 나이대로 먹어서 가시같이 빳빳했다. 그런것은 아무리 땀을 뽑으며 김을 매준대야 키를 솟구고 일어설것 같지 못했다. 그래도 재자리같이 거름기 짙은덴 이들이들한 조들이 벌써 앉은 사람의 키를 넘는다. 재도 많이 내느라고 했는데 그 재기운을 풀이란 풀이 온통 다 빨아올린것 같다. 남편이 있다면 밭김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벌써 보름도전에 두벌김까지 매주어서 온 밭의 조가 재자리조같이 자랐을는지 모른다.

길녀는 타박거리며 혼자 풀을 쥐여뜯자니 별 생각이 다 났다. 자기네 식구들같이 고정하고 맘씨가 고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게 되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 동네 저 동네 다 다녀봐도 그중 인심이 후하고 부지런한것이 자기네 식구들이다. 언젠가 민가마누라는 자기네를 도적놈의 심보니 흑심이 구재앉은 구들골같다느니 하고 갖은 악담을 퍼부었지만 그게 한마디나 당한 수작인가.

길녀는 이런 억울한 생각을 더듬자니 지나간 일들이 하나둘 생생히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시집올 때 주렴 달린 가마에 빈몸을 싣고 회령집문전에 들어섰다. 제 입은 옷이 변변치 못한것은 그만두고라도 시집켠 사람들에게 줄 옷 한가지도 없이 부끄러워서 어떻게 시집문을 들어서나 하는것이 가마안에 들어앉을 때의 심정이였다. 그래서 그렇게도 섧게 울며 시집의 잔치라는것이 제발 맹물 떠놓고 큰머리 얹는 조용한 잔치가 돼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서글픈 기대와는 달리 잔치가 왜 그리도 컸는지 모른다. 온 동네사람들의 정성과 도움으로 큰 잔치가 벌어졌다. 그걸 몰랐던 자기는 시집이라는것이 듣던바와는 달리 밥술이나 먹는 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낮엔 동네가 다 모여들었고 아낙네들은 밤에까지 좁은 방에서 야단법석을 했다. 색시옷이 너무 없어 서운하다는 말도 나왔고 시어머니 옷쯤이야 한가지 해와야지 하는 소리도 나왔다. 얼굴에 모닥불을 쓰는것 같았고 귀뿌리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이튿날아침에 들려준 시어머니의 말은 얼마나 고마왔던가.

《새아가, 얼굴에서 수심을 거두어라. 옷이야 벌어서 해입으면 되지 않겠니. 귀한건 재물이 아니라 사람의 맘씨란다. 난 너한테서 곧은 맘씨 하나밖엔 바라는것이 없다.》

그 소리에 눈물이 핑해져서 고개를 못들었다. 시집이 무섭게 가난한 집이라는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것은 그로부터 며칠 지난후였다.

자기가 시집을 와서 처음 한 일은 장을 담그는 일이였다. 어느날 시어머니와 둘이서 장 담글 차비를 하면서 벽에 매단 메주를 떼내리는데 동네의 한 아낙네가 들어오며 장을 담그다가 소금이 모자라서 왔노라고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잔말없이 소금을 한바가지 푹 퍼서 내밀어주었다. 그바람에 너무도 의아해서 시어머니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소금이 이고장에서 금만치나 귀한탓이였다기보다도 방금 메주를 떼내리면서 소금이 모자랄것 같다는 걱정을 한 시어머니였기때문이다.

《어쩌겠니. 장을 담그다가 왔다는데 우리가 못담가두 줘보내야지. 그렇지 않니?》

시어머니는 아낙네가 돌아가자 앞으로 세간을 떠맡길 며느리에게 사정이라도 하듯 말하였다. 시어머니는 그런 일이 한두번만 있지 않았다. 흔히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말들을 하지만 시집에 와서 지내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였다. 자기는 시집을 와서 시집식구들의 맘씨와 그 가풍에 물젖어가면서야 어째서 온 동네사람들이 《회령집》,《회령집》하면서 이 집과 그처럼 화목하게 지내자고 하는지를 알게 되였고 잔치날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들끓던 리유도 짐작이 갔다. 그것은 재물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이 집의 가풍, 가난속에서도 남을 먼저 도울줄 아는 두터운 인심과 의리를 어길줄 모르는 곧은 심정, 그것이 빚어내는 높은 인망때문이였다. 이 집 식구들가운데서도 맑고 깨끗하고 착한것은 시누이의 성품이였다. 이날이때까지 자기를 제일 생각해준것도 시누이였던것 같다. 언제나 자기가 힘든 일을 할세라 앞설겆이를 하고 나선다. 그러기에 그 힘든 방아간일도 자기가 도맡아 해나갔다. 시누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시집을 온 첫해 남편과 같이 콩밭을 매던 때 일이다. 둘이 한창 김을 매는데 아홉살 난 시누이는 자루가 없는 갈구랑호미를 얻어들고 김을 매겠다고 밭으로 나왔다. 남편이 호미질하는걸 한참 보더니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두 맬래.》

《들어가지 못할가!》

간이 떨어지게 큰소리를 지르는바람에 어쩌면 남편이 저렇게도 잔정이 없을가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잉그르르 달려오더니 동생의 손에서 호미를 빼앗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김을 매나갔다. 시누이는 입이 삐죽해서 한참 서있더니 오빠한테서 호미를 뺏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자기는 남편이 몹시 어려워 호미를 주라는 말을 건늬지 못했다. 시누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어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더니 바가지에 샘물을 찰찰 넘치게 퍼들고 나왔다.

《언니.》

시누이는 오빠에게 샘물을 갖다주라고 눈짓을 했다. 그래서 네가 갖다드려야 호미를 준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시누이는 무거운 바가지를 들고 조춤조춤 오빠한테로 걸어가더니 얼굴은 외로 돌린채 팔만 뻗치고 땀이 뚝뚝 떨어지는 오빠의 코앞에 바가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찬물이예요.》

시누이는 목을 꼬며 대꾸했다.

《호미 달라구 찬물 떠왔니?》

《내애···》

그바람에 오빠는 껄껄 웃으며 농사군의 자식은 하는수가 없다고 개탄하였다. 그때에야 남편이 잔정이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어린 손아귀에까지 호미를 쥐여주고싶지 않아 그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남편은 호미를 빼내주고 바가지를 받아서 샘물을 꿀꺽꿀꺽 들이키였다. 결국 이렇게 되여 김군 하나가 더 늘었다. 남편은 갈구랑호미에 자루도 해 맞춰주었다.

시누이는 그해 봄 내내 신명이 나서 김밭으로 따라다니였다. 그것이 시누이가 일손을 잡은 시초였던것 같다.

참으로 눈물이 나는 추억이였다. 그런데 이 성실하고 이악한 식구들이 어째서 이렇게도 째지게 가난히 살며 고생을 하는가?

길녀는 땀을 뚝뚝 떨구며 생각을 더듬었다. 조잎이 땀난 얼굴에 칼질을 해서 쓰리고 아렸다. 목과 팔목도 매운것에 절인듯 얼얼했다. 쇠뜨기와 메싹이 엉클어져 조대를 휘감았다. 김을 매자면 이런 풀이 제일 거치장스러웠다. 메싹은 뿌리만 찍어내던져도 죽을것이지만 찬찬한 길녀는 그렇게나 해가지고는 김을 맨것 같지 않아 조대를 배배꼬고 올라간 메싹을 다 풀어내리고야 흙투성이발을 움쑥 옮겨놓군했다.

《불볕이 내려지지는데 좀 쉬염쉬염 매게나.》

길녀가 밭머리로 거의 나갔을 때 시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얼굴을 들고보니 아이를 업은 시어머니가 분지나무 선 언덕앞으로 걸어올라오며 소리친다. 손엔 점심보자기도 들었다. 길녀는 엉거주춤 일어섰다가 도로 앉았다. 김을 얼마 매지도 못했는데 벌써 한낮이 됐는가싶었다. 시어머니는 늘 집안에서 이일 저일 신역을 치르다가도 점심때만 되면 아이를 업고 점심보자기를 들고 밭으로 나오군하였다. 지금도 길녀는 시어머니가 좀 고달프랴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서 나와서 애한테 젖도 빨리고 점심을 먹게나.》

《어머니, 거기 샘가에 앉아서 쉬셔요. 이걸 마자 매고 나갈게요.》

길녀는 부지런히 호미질을 했다. 그는 매던 이랑을 다 매고 다음번 맬 밭이랑머리까지 닦아놓았다. 그리고나서야 밭두둑우에 호미를 박아놓고 치마를 털며 일어섰다.

그사이 어머니는 가둑나무그늘밑에 점심보자기를 펴놓고 샘터에 내려가 찬물도 한사발 떠다놓았다.

《아직 점심이 이른것 같은데요.》

《이르긴 왜 일러? 가둑나무그늘을 보게나.》

길녀는 풀밭에 들어앉으며 애기를 받아안았다. 그는 방금 샘물에서 씻고 올라온 젖은 손으로 애기의 눈을 닦아주며 젖을 물렸다. 오늘은 보채지 않고 실컷 자고난것 같았다.

《여기 홍서방녀석이 올라오지 않았던가?》

《민가네 마름 말씀인가요?》

《그럼···》

《올라오지 않았는데요.》

《망할놈같으니라구. 그놈이 또 무슨 뒤를 캐고다니는것 같애. 집에 찾아와서 이 소리 저 소리 묻는걸 보니···》

《뭐라고 묻게요?》

《아이애비가 어데 가있는가고 묻는거지. 괜히 분분한 세월에 집을 떠나가 고생을 하는것 같은데 가있는곳을 알거든 집으로 돌아오라고 기별을 하라는거네. 그 괘씸한놈, 상판이 얼마나 좋으면 그런 수작을 하고 다니겠나? 데려다놓으면 당장 잡아갈줄 모를것 같아서 그런 수작을 하고다니는건가?》

길녀는 아무 대꾸가 없이 아이에게 젖을 빨렸다. 역시 측은한 정이 스민듯한 눈매로 꼴깍거리며 젖을 빠는 아이만 내려다보았다.

《만약 김매는데라도 올라와서 무슨 말을 하거든 아예 거답을 하지 말게.》

《제가 무슨 거답을 하겠나요.》

《거답을 하구싶어 하겠나? 저놈은 등치고 간빼내는놈인데 내인들 입에서 말 뽑아낼 재간이 없겠나? 그러기에 녀자란 말을 안하는게 첫수고 알고있는 일일수록 더욱 명치에 가둬두고 살아야 한다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말하였다. 사실 이것은 뜻이 있는 말이였다. 순박한 며느리가 놈의 간계와 위협을 이겨내도록 다잡아주자는것도 있지만 다른 중요한 암시도 있었다.

어머니는 며칠전 집 떠나간 아들의 여름옷을 빳빳이 풀이라도 해두자고 의농을 들추다가 무명중의적삼 한벌과 베중의적삼 한벌이 없어진걸 알게 되였다. 어머니는 속으로 꾹 짚이는데가 있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며느리는 광산거리장에 콩값이 눅다고 하면서 종자콩을 사러 간 일이 있다. 그때 무슨 보꾸레미를 끼고 사립문밖으로 나가는것을 보았는데 마음이 어질고 착한 며느리의 일이라 아무 의심도 없이 무슨 저런 보꾸레미를 끼고 나가는가고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게 인제와서 생각해보니 태봉시로 남편의 옷을 날라간게 분명했다.

(음, 저건 그래도 제 남편 가있는곳을 알고있구나.)

어머니는 눈물이 나게 고마왔다. 더욱 고맙고 등을 두드려주고싶은것은 그 비밀을 자기에게까지도 말하지 않는 그 일이였다. 며느리가 진짜 참사람이란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들었다. 어머니도 아들이 어데 가서 무슨 일을 하리라는것은 대충 짐작하기때문에 그 비밀이 아들의 일신상에 한정된 비밀만이 아니라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런 비밀이야 알 사람이나 알면 됐지 제 어민들 알아서 무슨 소용일가.

이래서 며느리를 푹 믿고 일체 아는태를 내지 않았는데 오늘 뜻밖에도 민가네 마름이 도마뱀같이 기여들어 독이 발린 수작을 비친것이였다.

어머니는 놈의 간사한 수작에 가슴이 뜨끔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까지도 내색을 안한 비밀을 홍가같은놈한테 말할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무슨 실수라도 있지 않을가싶어 아직 점심도 이른 때에 부랴부랴 점심보자기를 들고 밭으로 찾아나온것이였다.

《그저 녀자란 입을 조심해야 하느니라. 입 한번 잘못 놀리면 큰 실수를 저질러.》

길녀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늘 시어머니의 말끝엔 아무 말이 없는 길녀였다. 웬만한 시어머니같으면 그걸 도리여 답답스러워도 할테지만 어머니는 역시 천성이 그런 며느리를 이 순간에도 믿음직스럽게만 여기였다. 이때까지 며느리를 그저 어리무던하다고만 생각하며 동네에 나가서 무슨 부녀회를 하느니 글을 배우느니 하는 일조차도 걱정스런 일로만 여겼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될것 같았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점심을 먹는동안 밭에 들어가서 김을 매였다. 길녀는 김매는 시어머니를 눈물이 글썽해서 바라보았다. 목이 메여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자기가 말을 내지 않은 일을 어머니가 어떻게 그처럼 속속들이 알고있을가. 그걸 모르고야 입을 열지 말라고 그리도 당부를 할가. 남편이 있는데 옷을 날라갔대야 한번 만나보지도 못했다. 몇번 경식이의 심부름을 다니는 사이 남편이 가있다는 집을 알게 되여 여름살이옷 두벌을 갖다 놓았을뿐이다. 그러니 남편이 태봉거리에 있다니 그런줄로만 알았지 늘 피해다니는 신세인데 언제 어데로 또 자리를 옮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옷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도 알수 없다. 웬일인지 오늘은 류달리 남편이 보고싶기도 하다.

길녀는 점심을 절반도 못먹고 밥그릇뚜껑을 덮었다. 남편생각으로 목이 메기도 하려니와 오늘은 시장기도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길녀가 막 애기를 업고 일어서려 하는데 조밭 저편 언덕길로 우장을 멘 김군들이 열댓명 떠들며 넘어온다. 언덕너머 버덩에서 김을 매던 사람들이 큰골안쪽밭으로 넘어오는것 같다. 삿갓을 쓴 사람도 여럿이다.

《음, 이거 김이 되겐 지쇴구나, 빌어먹을··· 사람 사는 동네몰골이 아니로군.》

김군들은 길녀네 조밭을 들여다보며 법석 떠든다. 사람사는 동네몰골이 아니란 말은 동네사람들이 길녀네 김이 이렇게 되도록 돕지 못했다는 소리같다.

《어머니, 불볕에서 무슨 김을 매느라고 그러십니까? 어서 나오시지요.》

최정수란 청년이 밭머리에 와서 김매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자넨가? 불볕이라도 김이야 매야지. 우리 애엄마 혼자손으로 하려니까 밭이 이 꼴이 되여 부끄럽기가 짝이 없네.》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요? 우리가 미처 살피질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청년은 대패밥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며 징겅징겅 밭으로 걸어들어왔다. 민가네 고간을 들이친 사건이 있은 직후 경찰에 잡혀들어가 고문을 받다가 다리가 부러져 얼마전에 놓여나온 청년인데 아직 그게 채 낫지 않아서 걸음을 절뚝거렸다.

《쌍 개놈의 새끼, 보복을 하느라고 정숙동무를 끌어다가 연자방아를 돌리게 한단말이지.》

최정수는 밭가운데까지 들어와 김이 얼마나 지쇠였는가를 돌아보며 관자노리가 불거져 두덜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밭머리를 내다보며 김군들에게 소리쳤다.

《자, 오늘은 이 밭김부터 맵시다. 우리 밭은 이 밭에 대면 약과니까···》

《그건 좋네만 자네네 품을 이 밭에 도거리로 밀어넣을 필요야 있나? 이 밭품은 우리가 각자 다 자기 품으로 밀어넣구 자네네 밭김은 래일 다시 매줍세.》

삿갓을 쓴 구레나루가 최정수의 말을 이렇게 받았다. 그러자 모든 김군들이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찬성을 했다.

그바람에 밭머리에 서있는 길녀는 물론 김을 매던 어머니도 가슴이 뭉클해지였다. 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공연히 애기를 돌려끼고 다부룩한 머리를 쓸어주었다.

《이사람 정수, 자네는 자네네 품군을 데리고 왜 이 밭으로 왔나?》

《아주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인제 말했지만 우린 저 사람네 품군이 아닙니다. 이거 회계를 잘못하다간 저사람 낯내기를 하겠군.》

어머니의 말에 구레나루가 이렇게 받아서 김군들이 모두 소리내여 웃었다. 어머니도 함께 웃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눈귀로 눈물이 솟아나와서 얼른 치마자락을 눈으로 가져갔다.

얼마후 김군들은 밭을 한이랑씩 차지하고 늘어앉았다. 한번만 매나가도 길녀의 하루몫은 제껴낼것 같았다. 선길을 앉아나가는 장정은 호미를 병쟁기 쓰듯하며 멋지게 목청까지 뽑았다.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정든 고향땅에

리별주 한잔 부어놓고···

 

뒤에서 좋다- 소리가 일어났다. 선길은 김을 어찌 빨리 매는지 밭이랑에 들어앉듯마듯 벌써 저쯤 둥둥 떠나갔다. 다른 김군들은 그뒤에 기러기떼처럼 주르르 늘어앉았다. 삿갓과 삿갓이 붙어나가기도 했다. 모두들 흥이 나고 기운이 솟았다. 떠나온 고향생각, 무엇인가 아득하고 그리운 생각에 어제밤 태봉거리에서 자위단이 녹아났다는 생각이 겹쳐서 눈물이 나고 어깨죽지가 들썩거렸다. 상촌에서 조직되는 무장대성원들이 야밤중 태봉거리에 달려들어가 자위단을 움쩍 못하게 만들어놓고 무기란 무기를 죄다 빼앗아가지고 사라졌다는 소식이 이 부암에 빨리도 날아들었다. 정말로 힘이 나는 소식이였다. 총! 총은 얼마든지 있다. 월평거리에 왜놈의 군대가 물밀듯 밀려든단들 무서울게 무엇인가. 지금 상촌엔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공작원이 와서 무장부대를 조직하고있다. 거기로 청년들이 물밀듯 밀려들어가고 총이 모여들어간다.

 

저기 저너머 물안개 떴다

구름이 떴다

저 구름밑에 내 살곳 있나···

 

뒤에서 또 좋다-소리가 일어났다. 모두를 삿갓과 대패밥모자밑에서 땀을 철철 흘린다. 가라지대를 왜놈 모가지 따듯 툭툭 조겨선 꺾어눕힌다. 언제나 민가를 향해 밸이 뻗쳐있는 최정수는 밭고랑에서 큰 돌 하나를 뽑아들고 절뚝거리며 밭머리로 나왔다. 그는 그 돌을 비탈의 들깨밭으로 내리굴리며 목에 피줄이 일어서 돌아섰다. 들깨밭은 홍가네것이였다. 그는 홍가고 민가고 죄다 미친개 때려잡듯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목청을 뽑던 선길이 벌써 저편 밭머리에서 대패밥모자채양을 너펄너펄하며 돌아앉는다.

《받지 말고 곱싸려라!》

김군들이 소리를 질렀다. 남의 이랑을 매주지 말고 다시 딴 이랑을 잡아 돌아오라는 소리다. 아예 단참으로 이 밭김을 끝장 보려는것이였다. 길녀도 사람들속에 섞여앉아 바랭이를 쥐여뜯으며 나갔다. 그는 웃는 얼굴같기도 하고 우는 얼굴같기도 했다. 철철 흘러내리는게 땀방울인지 눈물인지도 알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