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아침해가 떠올랐으나 아직은 땅에 와닿는 해발이 선명치 못하다. 뽀얀 운기가 대지에 처져흐른다. 풀숲도 길도 그 운기에 짓눌려있다. 풀잎에 맺힌 구슬뀀같은 이슬방울들도 아직은 빛을 못내고 간혹 가다 풀대와 풀대사이에 늘여놓은 거미줄들도 무겁게 늘어져있다. 다만 운기우의 들메나무 웃가지들만이 반짝이는 아침해빛을 받았는데 거기서 뭇새들이 해빛으로 목욕을 감으며 소란스럽게 지저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올케를 방아간으로 내보내고 분임이와 함께 산나물을 이고 월평장으로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흰적삼에 검정치마를 입으셨다. 김정숙동지의 나물광주리가 더 크다. 그이께서는 한낮이 되기전에 월평시에 가닿으려고 걸음을 재촉하시였다. 월평시는 태봉거리보다 가깝기도 하거니와 나물값도 비싸다. 그래서 나물 팔러는 월평으로 다녔다.

들메나무 서있는 동구를 벗어나서 한참 걸으니 들판이 나지고 운기도 씻은듯 개였다. 말쑥한 공기속에서 아침해빛이 눈이 시도록 반짝이였다. 풀밭이란 풀밭은 온통 진주무데기처럼 령롱했다. 들꽃도 이슬을 함빡 물고 생기를 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에 보이는것이 죄다 정답고 기쁨을 주는것 같으시였다. 가끔 장에 다니기는 하지만 오늘같이 기분이 좋은 날은 처음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치마끈에 옭맨 돈을 만져보시였다. 지난해 가을 터밭에 심은 고추와 마늘이 잘되여 그걸 몇번 월평장에 내다가 파시였다. 그때마다 한잎 두잎 떼서 모아둔 돈에다 금년봄 또 몇번 도라지를 팔러 다니면서 몇잎씩 떼서 합치시였다.

올케도 어머니도 모르게 어머니의 치마감을 사려고 벼르고벼르시는 돈이였다.

오늘은 나물 한광주리값을 보태면 치마 한감값이 넉근히 될듯도싶으시였다.

숙수치마 한감, 그 좋지도 못한 값눅은 치마 한감, 그걸 산다는 일이 이렇게 기쁨을 주는것인가.

《분임아, 넌 오늘 갑사댕기 사려니?》

《그만두겠어, 갑사댕긴 해서 뭘하니? 난 오늘 자혜당약국에 좀 들리겠어.》

《약국엔 뭘하러?》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도진것 같애. 요샌 음식을 얼마 못한단다.》

분임이는 갸름한 흰 얼굴에 수심이 그득해서 대꾸한다.

《너 그럼 요새 어머니가 앓아서 야학엘 못나왔니?》

《어머니두 앓구 달리 또 그럴만한 사정두 생겼단다.》

그는 눈물이라도 굴러떨어질것 같은 표정이다.

《무슨 사정이게?》

《차츰 얘기하자꾸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담엔 묻지 않으시였다. 어째 분임이에게 그 무슨 근심이 있는것 같기도 했으나 그것을 캐묻고싶지 않으시였다. 사람이란 저 혼자 속썩이는 일이 많고도 많은데 아무리 동무사이란들 그걸 깡그리 물어선 무엇하랴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와 함께 끄뎅이풀이 길게 자란 들길을 한참 걸으시였다. 이름 모를 들꽃이 길가에 수없이 피였다. 노랑나비, 흰나비가 분주히 날았다.

월평시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한낮이 다 되였다. 거리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붐비고 몹시 무더웠다. 초가집들과 함석집들, 동기와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늘어앉아있는 좁은 거리는 사람들로 툭 터질 지경이였다. 장작이나 섶나무를 팔러오는 사람들, 짚신, 싸리비, 빨래방치, 피곁으로 드린 바줄따위를 한짐씩 지고나오는 사람들, 산나물이나 파 같은 푸성귀를 한광주리씩 이고나오는 아낙네들, 그저 온통 촌사람들의 천지다. 그 붐비는속을 한참 걸어서야 큰거리로 들어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좁은 거리를 빠지고나시니 적삼잔등이 땀에 푹 젖었다. 큰 거리도 역시 사람이 붐비는건 매한가지였다. 큰거리에는 일본놈의 군대가 와서 들어박혀있다는 건물이 거리 저쪽으로 내려가며 우중충하니 서있다. 빙 둘러친 담장우에는 가시철조망이 있고 여기저기 네귀에는 포대가 서있다. 한쪽옆엔 온 거리를 손금보듯 굽어볼수 있는 높은 망루가 솟아있는데 그속에서 총을 멘놈들이 어슬렁거리고있다. 이 건물들 저편으로는 거리보다도 더 넓은 지역안에 무슨 건물인지 또 웅기중기 들어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이걸 일본군대가 주둔하면서 신축한 병영들이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와 함께 을씨년스러운 망루를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사람들속에 섞여 바삐 걸으시였다.

《좀 비켜라!》

등뒤에서 웬사람이 꿱 소리를 지른다. 뒤를 돌아볼새도 없이 누군가가 김정숙동지를 옆으로 활 밀어버리며 앞선다. 손에 흰 장갑을 끼고 구두뒤굽에 칼자루를 절그덕거리는 경찰놈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하마트면 나물광주리를 떨어뜨릴번하다가 다행히 몸을 바로잡아세우시였다. 가슴이 후둑거려서 걸을수가 없으시였다.

놈이 지나간 뒤 얼마 안있어 거리로는 일본병정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군마들이 나물광주리에 먼지를 들씌우며 뛰여간다. 군마가 지나간 뒤로는 보병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밀려들었다. 일조에 거리빛이 누렇게 변했다. 군화소리가 거리바닥을 들었다놓는다. 어데서 오는지 철갑모밑의 얼굴들이 온통 땀투성이다. 일매지게 벽돌빛같은 얼굴들이다. 얼굴마다에 희뿌연 눈알들이 번쩍거리긴 하나 어쩐지 사람의 떼같지 않다. 몇백명이나 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들이밀리는통에 장군들은 모두 거리옆으로 쫓겨나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분임이와 함께 땀내가 풍기는 사람들속으로 밀려들어가 오도가도 못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요새 월평거리에 일본군대가 기수없이 밀려들었다고 하던 대걸이의 말이 생각나시였다. 이놈들이 이제 무슨짓을 하자고 이러는것일가. 정말 조선사람 사는 동네를 다 불지르고 사람을 다 죽이자고 하는것은 아닐가. 어쩐지 벽돌가마에서 괄게 구워낸것 같은 이 움직이는 괴물의 떼가 이 근방에서도 무슨짓을 할것 같아 몸이 떨리시였다.

《이놈들이 왜 이렇게 밀려들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곁에서 수군거리며 묻기에 얼른 돌아보시였다.

곁에 땀이 번지르르한 얼굴들이 성쌓듯 에워싸고 서서 괴물의 떼를 바라보고있는데 누가 그런 말을 묻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로인장은 짐작을 못하십니까? 저놈들도 급해서 그런답니다.》

한 젊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처음 묻는 사람이 작은 키를 솟구고 서서 남의 어깨너머로 거리를 내다보는 흰 구레나룻의 로인이라는걸 아시였다.

《무슨 일이 있게 그렇게 급하겠소.》

《로인장께선 아직 무슨 말씀을 못들었습니까?》

《못들었지.》

《얼마전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광복할 군대를 일으키셨답니다.》

《안도땅 이야기말이요? 그 소식은 나두 들었지요.》

《그래서 지금 장군님의 수하 장수들이 각처에 널려 군대를 뭇고있답니다. 이놈들이 그걸 진압해보겠다는 수작이지요.》

《음, 이 근방에서도 장군님의 군대가 일어선다는 말이 있더군. 알만하이. 무슨 말인지 장군님의 병법은 천지조화를 겸하셨다고 하는 말도 있더군. 장군님께서 한번 소리치시면 왜놈의 수천수만의 군대가 일조에 벼락맞은 삭정귀나무로도 되고 퍼석돌로도 된다고 하더군.》

《그것뿐이겠습니까? 축지법으로 한순간에 몇천리씩 땅을 주름잡기도 하신답니다.》

《쉿···》

누구인가 말을 막는바람에 가뭇 조용해졌다.

《야, 오늘은 날이 되게도 쪄내는군.》

《그러게말요. 삼복더위가 왔다가 울며 돌아서겠소.》

사람들은 법석 딴소리를 떠들었다. 어쩐지 모두 힘이 생기는 모양이였다. 괜히 좁은 자리에서 뒤설레며 서로들 팔을 뽑아 땀을 씻는다, 수건을 고쳐 동인다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이 뛰시였다. 그이께서도 김일성장군님의 군대가 생겨났다는 말을 들으셨고 또 백두산하늘에 장수별이 나떴다는 이야기도 들으시였다. 정말 김일성장군님께선 어떤분이시기에 그렇게 천지조화를 겸한 병법을 쓰실가. 그럼 거리가 시누렇게 행진하는 이깐놈의 왜놈군대도 한순간에 없애버릴수 있지 않을가. 그런 장군님군대가 이 근방에도 생겨난다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 한참 가슴이 두근거리는 생각을 좇고계시는사이 병정의 떼는 다 지나갔다. 놈들이 지나간 거리우엔 먼지가 시누렇게 떠올랐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 먼지투성이의 거리로 밀려나갔다. 모두들 숨을 후 내쉬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나물전에 오시니 거기도 사람이 외여설수 없게 배겨서서 들끓었다. 숱한 촌아낙네들이 푸성귀를 이고와서 전을 폈는데 오늘은 무슨 고약을 파는 약장사까지 끼여들어 들가방을 열어놓고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 해 이고오신 나물과 분임이의 나물은 요행 나물광주리를 내려놓기 바쁘게 팔리였다. 그이께서는 기분이 거뜬하셨다.

《오늘은 운수가 좋구나얘.》

《그러게말이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소리에 대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를 쳐다보며 방긋이 웃으셨다. 그이의 맑은 웃음새는 단아한 얼굴에 청초한 기품을 엿보게 하였다. 분임이의 웃음새도 고왔다.

《넌 뭘 사려니?》

분임이가 김정숙동지께 물었다.

《난 저기 좀 가서 볼일이 있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어머니의 치마감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시였다. 또 돈이 모자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없지도 않은데 무슨 자랑처럼 그런 소리를 꺼내랴싶으시였다.

《너 그럼 볼일 보고 자혜당약국앞으로 오겠니?》

《그러자꾸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사태속에서 분임이와 갈라지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랴부랴 난전이 펼쳐져있는쪽으로 발길을 옮기시였다. 난전엔 화려한 꽃무늬의 울긋불긋한 비단천들이 수없이 쌓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광목, 무명, 목세루 같은 천들이 놓여있는곳에 눈을 팔며 숙수보다 튼튼하고 물색이 있는 목세루를 한감 끊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시였다. 녀인들 한패가 앞에 막아서서 웅성거리더니 양단을 끊어가지고 물러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것저것 값을 물어보시였다. 역시 제일 눅은것이 숙수였다. 숙수 다섯자값을 계산해보니 값을 물고도 백통전 한잎이 남을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안도의 숨을 호 내쉬시였다. 인젠 어머니한테 치마를 해드릴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눈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숙수 다섯자를 끊어서 난전주인이 내밀어주는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싸시였다. 그리고는 그걸 광주리안에 담아 이고 난전을 나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속을 겨우 빠져서 자혜당약국앞으로 오시였다. 분임이는 벌써 약 열첩을 지어가지고 나와 맞은편 잡화가게 그늘밑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약을 벌써 지었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을 씻으며 처마그늘밑으로 들어서시였다.

《지었단다. 넌 뭘 샀니? 광주리안에 신문지꾸레미는 뭐냐?》

《뭘 한가지 샀단다.》

《뭘 샀니? 어디 보자꾸나.》

분임이는 얼른 광주리안의것을 꺼내서 펼쳤다.

《아니 넌 큰장을 보았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웃기만 하시였다.

《이걸 가지고 뭘하려니?》

《그걸루 치마를 하면 어떨가?》

《치마? 치마를 하려면 왜 이런 흰색을 샀니? 네겐 맞지 않아.》

《아니야. 내가 뭐 치마를 해입겠니? 어머니 치마감이지···》

《어머니 치마감? 어머니의 치마감이야 이런게 좋지, 그래 돈은 어머니가 주더냐?》

《아니야. 내가 조금씩 모아뒀던걸루···》

《어마나···》

분임이는 두눈이 커져서 한참동안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얼마후에야 치마감을 도로 신문지에 싸며 기가 꺾인듯한 소리로 말을 잇는다.

《넌 어쩜 그런 의젓한 생각을 다 하니?》

그는 자기가 사려했던 갑사댕기생각이 나서 얼굴이 홍당무같이 붉어졌다. 정숙이는 돈을 모아가지고 어머니의 치마감 살 생각을 했는데 자기는 자기 머리에 드릴 갑사댕기 살 생각밖엔 할줄을 몰랐다. 그는 공연히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다. 정숙이한테 비기면 자기는 얼마나 사람구실을 못하는 인간인가? 정숙이는 너무나도 아득히 높아보인다. 자기는 땅우에 있고 정숙이는 하늘우에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구실 못하는걸 어머니, 아버지는 왜 또 박대동네 집에다 시집을 보내자고 할가? 지지리 못나게 살고살다가 죽으라는것일가.

《아니 너 왜 우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적삼고름을 들어 눈물을 찍는 분임이를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그저···》

《그저 왜 울어?》

《내 저기 가다가 얘기해줄게···》

《무슨 얘기게?》

분임이는 대답을 안하고 처마밑에서 내려섰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따라 내려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와 함께 들끓는 거리로 걸어가시였다. 돼지전옆을 지나려니 귀청을 여비는것 같은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온다. 삿자리로 그늘을 만든 떡가게, 팥죽가게, 지짐가게 같은것들도 즐비하게 늘어앉았다.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노라고 가게앞마다 덮어쳤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데리고 들어가 팔죽이라도 한그릇씩 사먹고 갈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쩐지 그것도 다 정숙이만 못한 생각같았다. 정숙이는 장에 왔다가도 그냥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서 무어든 조금씩 준비해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요기를 하고 돌아가군한다. 오늘도 광주리안에 무언가 조그만 꾸레미가 들어있다. 결국 이렇게 아끼고 아껴서 큰장을 보는 정숙이인데 아무리 점심을 사먹자고 하는 일이라도 정숙이만 못한 자기 몰골을 또 뵈여주는 일로 되지 않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와 더불어 나는듯이 거리를 벗어나시였다. 초여름인데 불같은 볕이 내리쬐여 풀과 나무잎새가 휘늘어졌다. 백양나무잎들도 바실거리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쁘고 행복하셨다. 벼르고벼르던 어머니의 치마감을 사고나니 별생각이 다 나시였다. 앞으로는 꼭 올케의 치마감도 끊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기송이의 옷감을 사야 하겠다는 생각도 드시였다. 아니 어째서 그것뿐일가. 인남이의 색동옷, 오빠의 옷감도 끊어야 할것 아닌가. 그 누구의 옷이든 죄다 자기의 힘으로 한벌씩 마련해주고싶으시였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다 자기가 마련해준 새옷들을 입고 한집안에 모여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아 그런 날이 있을가. 우리가 혁명을 해서 이기고 나라가 광복되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가. 왜놈들이 다 없어지고 조선이 독립돼서 우리 집 식구가 두만강 나루배를 타고 건너가 그립던 회령땅 옛 집터에 새집을 짓고··· 아 그때에야 눈물도 걱정도 없이 온 집안이 꽃밭처럼 되고 웃음소리가 차넘치지 않을가. 부디 그런 날이 있어주려마. 내 그런 날을 위해서야 무얼 아끼고 무얼 고달프다 생각하랴. 김정숙동지께서는 꿈이 부풀어 즐겁고 눈물이 나셨다.

한참 걷고나니 김정숙동지의 얼굴도 분임이의 얼굴도 새빨갛게 익었다. 적삼들은 비지땀으로 함빡 젖었다.

그들은 해빛이 좀 설피게 된 때 걸으려고 길옆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떡갈나무숲속에서 내물이 흘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와 함께 내물가 풀밭에 앉아서 땀을 들이셨다.

그이께서는 광주리속에 있는 조그만 꾸레미를 꺼내서 펼치시였다. 도라지를 섞은 주먹밥이 몇덩이 들어있었다.

《분임아, 하나씩 먹구 가자.》

《난 먹고싶지 않아.》

《먹고싶지 않아도 네가 먹어야 나도 하나 먹을게 아니냐?》

분임이는 마지못해 밥 한덩이를 받아들었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 앉아서 밥을 먹었다.

《넌 왜 얼굴에 수심이 그득해서 그러니?》

김정숙동지께서도 맘이 좋지 않아 분임이를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난 오늘 너를 거울삼아 나를 비쳐봤단다.》

《그건 무슨 소리냐?》

《난 어쩜 이것저것 죄다 너만 못하고 이렇게 불쌍하게 된다니?》

《뭐가 불쌍하게 된다는거냐?》

《그럴 일이 있단다.》

분임이는 눈물이 쏟아져내려 밥덩이 하나를 채 못먹고 도로 놓았다. 그통에 김정숙동지께서도 밥을 도로 놓으시였다. 분임이는 한참 치마끈으로 눈물을 씻었다. 그는 얼마후에야 자기가 부득이 덕산동 박대동네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울며 설분하는 분임이의 이야기를 한참 들으시였다.

《그래 덕산동 박대동네란게 어떤 집이라더냐?》

《큰 부자집이라지 않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참 말이 없으시였다. 그러다가 얼마후에야 분임이에게 다시 물으시였다.

《그런데 언제 그렇게 갑자기 혼사를 정했다더냐?》

《동네에서 알면 재미없다고 집안에서 말을 안냈지뭐. 조혼반대다 봉건반대다 하고 떠드는 세월이니까···》

《그게 뭐 조혼반대다 봉건반대다만 할 일이냐? 어떻게 민가네 집같은데 시집을 가? 돈 많은 집이란게야 다 민가네 집같지 않겠니?》

《그건 그래두 난 정말 시집을 안가겐 못됐단다. 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 땅이란 땅은 죄다 민가네한테 저당잡히질 않았니?》

《땅이 민가네한테 저당잡혔다는것 하구 네가 시집을 가는것 하구야 무슨 상관이 있니?》

분임이는 그담엔 대꾸를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를 팔아 민가네 빚을 갚겠다는 소리는 안했지만 어쨌든 박대동네같은 부자와 혼반을 지내고 그 덕으로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는건 사실이다. 그러게 아버지, 어머니는 혼사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늘 민가네 빚이야기를 덧짐치며 움찍 아무 소리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분임이는 김정숙동지께 그 소리를 해놓고보니 자기가 마치 팔려간다는 소리나 해놓은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공연한 소리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를 박대동네한테 시집을 보내고 사돈집 덕을 좀 보겠다고 하는 일은 팔아먹는 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이냐?》

《무얼 어떻게 할테냐? 나한테 다른 길이 있겠니?》

《그래도 네 맘에 가고싶어야 가지 가고싶지 않은거야 어떻게 가겠니?》

《가고싶지 않다고 어떻게 안갈수 있니? 목을 매서 죽기라도 한다면 몰라두, 하긴 하루에도 열두번씩 그런 생각이 들군해···》

《끔찍한 소리두 하는구나!》

《그렇지만 죽지도 못할 사정 아니냐. 내가 죽은 다음 나를 낳아 길러준 내 아버지, 어머니와 그리고 숱한 어린 동생들이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여 나앉을 생각을 하문···》

분임이는 눈물을 쏟으며 흐느껴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눈굽이 찡하게 저려드시였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너만 가고싶지 않다면 집을 뛰쳐나 도망이라도 칠노릇이지 무엇때문에 억지로 시집가겠느냐고 잡아흔들며 웨치고싶은 심정이였는데 분임이의 하소연을 듣고보니 말문이 막히시였다.

《정숙아, 그러니 난 어떡하문 좋냐, 응?》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의 무릎을 잡고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쳐다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글썽해서 마주바라보실뿐이였다.

시집을 안가면 집안이 망한단다. 제말마따나 사람이 되고 자식된 도리로서 어떻게 자기를 낳고 길러준 아버지, 어머니와 한피줄을 타고난 어린 동생들이 졸지에 한데 나앉아 거지신세가 되는것을 모른다고 할수 있을가.

그렇다고 시집을 가라는 말도 차마 입밖에 낼수 없는 일이다. 맘에도 없는 시집, 코가 어디 박혔는지 본 일도 없는 사내에게 더군다나 부자놈의 집에 시집을 가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오죽하면 하루에 열두번씩이나 목매죽을 생각을 했을가···

그러니 정말 불쌍한 분임이는 인제 시집을 안갈수도 갈수도 없고 살수도 죽을수도 없지 않은가!

《아, 나같은게 뭣하러 세상에 태여났을가!···》

무심하게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분임이는 한탄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말을 못하시였다. 대답을 못해주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자기가 한마디라도 힘이 될 소리만 튕겨주면 분임이는 불행한 한생을 걷지 않을것 같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시였다. 하늘은 가없이 푸르렀으나 가슴은 숨막히게 죄여드시였다.

《아, 나같은게 뭣하러 세상에 태여났을가!》

분임이의 이 눈물겨운 애소에 무슨 대답을 주어야 하는가! 김정숙동지로서는 난생처음 너무도 엄숙하고 심각한 문제에 부닥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