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3

 

제 13 장

3

 

이튿날엔 유인전에 시달린놈들이 움직이지 않아 상촌골짜기들에선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다. 다만 온 산과 들이 비애속에 잠기고 어린 영웅의 추도식이 진행되는 산정에서 조총소리가 몇방 울리였을뿐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을 땅속에 묻으면서도 울지 않으시였다. 그저 내내 얼굴이 파릿하고 단정하시였다. 무엇때문에 자꾸만 눈물을 흘리겠는가. 인젠 기송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일이 명백하고 명백한데 눈물이 무슨 소용인가. 이때까지 자기가 헤쳐온 그 모든 쓰라린 생활이 어느것 하나 눈물과 울음을 동반하지 않은것이 있었는가. 어머니를 잃었을 때도 그렇고 올케를 잃었을 때도 그렇고 부암의 참담한 생활과 어린 조카애로 하여 빚어진 그 가지가지의 고통스럽던 일에서도 쏟은 눈물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그 눈물이 갚아준 소득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것을 헤치고 넘은 생활이 가르쳐준 귀중한것이란 악독한 원쑤와 싸우려는 사람은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을것이 아니라 그 눈물을 가슴에 한동이씩 채우고 싸워야 한다는 진리이다.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는다는것은 아직 혁명을 조금 알고 눈물을 많이 아는 때 일이다. 동생의 희생에 대한 쓰라린 고통을 눈물만으로 씻어낼수 없는것이라면 무엇때문에 눈물을 흘리고만 있겠는가. 오빠도 언젠가 눈물을 깨물어먹고 살줄 알아야 한다고 했지. 더구나 어린 동생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가르쳐주고 간 그 놀라운 정신을 모른다면 내가 그 무슨 그의 누이라 하겠는가. 나는 태봉에서 상촌이 적의 발밑에 짓밟히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모든 소중한것을 바칠 때가 왔다고 흥분도 했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지. 그런데 내가 그 굳은 결심을 다하기도전에 어리디어린 동생이 먼저 그 숱한 사람을 살려내며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 인제 피기 시작하는 그 꽃봉오리를 혁명에 바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가 울기만 해? 눈물만 짜? 혁명을 하겠다는 내가 눈물과만 몸부림을 쳐?···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얼굴빛이 엄숙해지시고 울던 눈에 서슬이 비껴갔다.

나는 인제 내가 고통받은것, 설음당한것, 이 가슴쓰라린것, 그이상 아니 그것의 백배천배로 원쑤를 갚아야 한다!

이 상촌의 산발과 골짜기마다 아니 저기 삼천리강산에 뿌려진 사랑하는 겨레들의 붉은 피를 천만배로 더하여 원쑤의 가슴팍에서 퍼내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 온 마음이 높은 산정으로 비약하는것 같은 흥분조차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저녁때 산우에서 기송이를 부르며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샘내골짜기로 내려오시였다. 어머니와 금실이는 벌써 먼저 내려와 불탄 초막자리에서 가마를 찾아내여 걸고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서 죽 쑬 준비를 했다. 그래도 채 타지 않은 수수쌀이 얼마쯤 남아있었다. 금실이는 그걸 샘도랑으로 가지고 나가서 얼음을 까고 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려오는길로 재무지속에서 파내놓은 식기들을 들고나가서 씻으시였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아이들도 아무 말 없이 비탈에 늘어앉아 별이 나뜨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밤이 들기 시작한 때에야 아이들은 대수간 지은 초막의 솔광불앞에서 숟가락을 걸쳐놓은 죽사발들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그러나 어느 아이고 눈물을 뚝뚝 떨구며 죽을 먹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와 어머니 그리고 금실이도 목이 메여 소태처럼 쓴 입에 죽을 두어숟가락씩 떠넣다가 말았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곁에서 밤을 새우다가 얼른 일어나시였다.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였다. 싸움이 한창인 때인데 싸움터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 도와야 한다. 가슴속 비애를 짓뭉개며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원쑤를 갚을게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 싸움터로 나가겠다고 하시자 금실이도 따라일어섰다. 오히려 금실이 편에서 또 눈물을 씻었다. 그는 해종일 울어서 두눈이 우둥우둥 붓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와 함께 샘내앞 산마루로 올라서시였다. 역시 어제밤같이 푸른 달빛이 산을 적시였다. 망망한 눈세계가 펼쳐졌다. 어제밤엔 모든게 오열하는것 같았는데 오늘밤엔 눈아래산줄기들도 힘을 쓰며 구핏구핏 등을 일으키는것 같았다.

《언니, 저게 무슨 불빛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에서 걸어가시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며 부르짖으시였다. 멀리 아스라하게 산줄기들이 등을 일으킨 계선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고있다. 남쪽에서도 타고 북쪽에서도 탄다.

《글쎄 무슨 불일가?》

《언니, 남쪽은 태봉쪽 아니예요?》

《태봉쪽? 옳아, 분명 태봉이야. 그리구 북쪽은 월평같애.》

《무슨 불일가? 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후두두 떨리시였다. 태봉과 월평! 저게 무슨 불일가? 태봉과 월평하늘이라면 저건 분명히 거리가 타는 불빛이 아닐가? 어째서 거리가 탈가? 그저께 저녁 최진동지가 태봉으로 왔댔지. 경식이는 최진동지의 쪽지를 받고는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서 급히 나갔지. 그 일과 저 불빛이 무슨 상관이 있는건 아닐가? 혹시 최진동지가 장군님께서 보내신 부대를 데리고와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김정숙동지께서는 온몸이 공중에 불쑥 솟았다내리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왜 그렇게 놀래요?》

《아, 아니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산등마루우로 걸어나가시였다. 저 불빛이 무슨 불빛인지 어떻게 알아낼수 없을가? 그 누가 아는 사람이 없을가? 싸움터에서도 모르고들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걷잡을수 없는 흥분때문에 내내 가슴이 쿵쿵 뛰시였다.

앞에서 와싹와싹 소리가 났다. 사람이 달려오고있다. 인민혁명군대원이였다.

《어데로들 가우?》

혁명군대원은 숨이 차서 헉헉하며 물었다.

《저 봉수골쪽으로 가요.》

김정숙동지께서 대답하시였다.

《봉수골이고 뭐고··· 하 이런, 모르고들 있구만. 지금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부대가 월평과 태봉을 족치고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전투원들을 전부 개암골 뒤산등으로 집결시키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빨리들 가보오, 난 지금 개안촌으로 갑니다.》

혁명군대원은 나무숲을 헤치며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뛰시였다. 이 무슨 일일가! 슬픔과 환희가 이렇게 뒤섞일줄이야!

《정숙동무, 왜 이렇게 몸을 떨어요?···》

《안···안떨어요. 이렇게 앞이 열리는걸···》

금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부축하며 산릉선을 결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깨물며 떨지 않으려고 애쓰시였다. 터질것 같은 감격의 오열, 그러는가 하면 다시 살아오르는 터질것 같은 비애, 그것때문에 떨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자꾸만 떨려지시는것이였다.

개암골 뒤산등엔 벌써 사람들이 덮였다.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 반일자위대원들, 농민들과 아낙네들, 어느새 전투원들은 거의 모여왔다. 그들은 태봉과 월평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했다. 무얼 어찌려는것인지 비살치듯 뛰여다니는 사람도 있고 여기저기 모여서 뭐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불빛은 점점 더 시뻘겋게 광채를 띠여왔다. 사람들은 원쑤들이 죄다 녹는다고 환성을 질렀다. 누구의 눈앞에나 불바다가 된 태봉과 월평거리가 떠올랐다. 날랜 대원들이 질풍같이 달려들어 여기 치고 저기 치고 한다. 원쑤들의 둥지란 둥지는 죄다 불속에 들어 놈들이 악악 비명을 지른다. 총알에 맞는놈, 불에 타는놈, 뛰다가 거꾸러지는놈, 두손을 들고 벌벌 떠는놈, 온통 수라장이다.

원쑤들의 머리우에 징벌의 불벼락이 내렸다. 거리엔 인민들이 하얗게 밀려나온다. 만세를 부른다. 만세! 감격의 만세소리! 울음섞인 만세소리!

아, 장군님, 장군님! 김일성장군님의 이 은혜를 무슨 말로 다 헤아릴수 있으리까! 원쑤에게 죽고 쫓기우며 갈곳이 어데인가고 호곡하는 불쌍한 인민을 이끌어 근거지를 꾸려주시고 땅을 주시고 행복을 주신 장군님! 우리의 장군님께서 오늘은 또 짓밟히고 불에 타는 상촌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저렇게 적의 뒤통수에 불을 질러주시였다. 망국의 설음을 안고 피바다에 잠겼던 온 민족이 지금 장군님 품에 들어 장군님께 모든 운명을 의탁하고 뜨거운 눈물로 장군님을 우러르는데 어느 하가에 이 상촌의 한 지역을 위해서 그렇게도 심려하시고 태봉과 월평을 치게 무장부대까지 파견해주셨단말인가! 사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차응도, 희섭이들도 눈물을 훔치며 불빛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시꺼먼 김봉석은 저편에서 소대장들에게 무슨 지시를 주는것 같다. 벌써 어떤 작전계획이 짜진것 같았다. 작탄상자가 날라져오고 로획한 군도따위들도 여러자루씩 메고 와서는 철썩철썩 내려놓는다. 여기저기서 복수전으로 넘어간다, 총반격으로 넘어간다 하는 소리들로 수군수군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휘청거리며 떨리던 몸을 다잡아내시였다. 차츰 눈에서 불이 이글거리기 시작하시였다. 복수전으로 넘어간다니 가슴에 불길이 타번져오르신다.

《동무는 왜 여기 나왔소? 무슨 걸어다닐 힘이 있소?》

최정수가 지나가다가 묻는다. 오늘 추도식을 할 때 릉선우로 달려올라와 그렇게도 슬피 울던 최정수였다.

《저도 싸우겠어요.》

《무슨 힘으로 싸우겠소?》

《원쑤들이 가슴에 못을 박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전 지금···》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심장이 뛴다거나 가슴이 터진다는 소리는 구구히 하고싶지도 않으시였다. 최정수도 아무 말을 못하고 저편으로 걸어갔다.

얼마후 산릉선에선 복수전을 다짐한 대렬이 급하게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달이 구름속에 들고 어둠이 짓누른 산릉선으로 눈보라가 휘휘 불어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확 온몸이 달았다.

삽시에 대문바위고지와 상고개엔 은밀히 사람들이 덮였다. 놈들이 지금 후방타격을 받고있으니 퇴각할것이 틀림없다고 타산한것이였다.

그래서 이 퇴각로에서 한놈도 놓치지 말고 죄다 쓸어없애려는 계획이였다.

대문바위에서도 상고개에서도 놈들이 달려들 때 굴려던진 돌을 메올리는 역사가 벌어졌다. 탄약이 부족하니 돌로라도 싸움을 든든히 준비하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 바위돌들을 메고 이고 비탈을 춰올랐다.

김봉석은 대문바위고지에서 전투준비를 시켜놓고는 한달음으로 큰벌을 횡단해서 상고개로 나갔다. 그는 날개 돋친 범과 같았다. 오늘밤 와닿는 장군님의 구원의 손길에 목이 메기도 하거니와 그이의 천재적인 전술에 눈이 번쩍 열리기도 하고 무겁디무거웠던 가슴이 훌 가벼워지는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전술이 어디 또 있을가. 앞으로 내달아오는 적을 뒤로 돌아가 때려서 앞을 무너뜨리는 전술! 이것이야말로 유격전의 우월성을 집중적으로 구현한 전술이 아닌가! 때리고 피하고 피하고 때리다가 뒤로 돌아가 찌르는, 원쑤가 눈이 휘 돌아 넘어지게 만드는 이 만능당의 전술들을 우리 장군님 아니시고야 그 누가 생각해낼수 있으랴! 김봉석은 광활한 무적천지에 장검을 비껴들고 나서서 종횡무진 달리고있는듯한 기분이였다.

그는 개울물을 씽 건너뛰였다. 상고개숲으로 올라가니 인민혁명군대원들과 농민들이 고개앞 비탈로 가서 피묻은 돌들을 메고 이쪽 산비탈로 뜀박질을 했다. 적이 달려들 때 돌을 얼마나 굴렸는지 고개앞 비탈밑엔 온통 돌성이 쌓아져있었다. 그걸 지금 죄다 메여올리는 판이였다. 부녀회원들도 많다. 금실이도 있고 아니 어제 동생을 잃은 김정숙동지께서도 섞여계시였다. 김봉석은 질끔 놀랐다. 어쩐지 김정숙동지를 보니 이 싸움판에 시퍼런 불꽃이 섞인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온 전투장이 그때문에 더 활기를 띠고 엄숙해지는것 같기도 했다.

역시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의 앞장에 서시였다. 무거운 돌을 이고 비탈로 날아올라오신다. 어디에 저런 힘이 남아있었을가. 어제 동생을 묻은 묘뜰에선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 걷던 저 처녀가···

김봉석은 돌낟가리가 쌓여나가는 잘루목의 고개우로 올라왔다. 차응도며 희섭이들이 돌을 굴리기 좋게 힝힝 들어서 쌓아놓았다. 그들의 눈에선 린같은 불빛이 번쩍거렸다.

별안간 비탈밑에서 쉿쉿하는 신호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얼른 돌무지옆에 숨었다.

조용해진 잘루목고개로는 중촌쪽에서 올라오는 왜놈기마병 둘의 말대가리가 하늘에 닿게 박차를 가하며 뛰여넘어왔다. 무슨 급보를 가지고 오는놈들이 틀림없다. 무언가 급한 변동이 있을게 틀림없어보인다. 상고개도 대문바위도 점점 더 공기가 팽팽해졌다.

김봉석은 희섭이와 함께 웅뎅이속에 들어가 담배를 한대씩 말아서 피웠다.

《정숙동무가 나와서 돌을 나르는군요.》

《복수전에서 물러서려구 하겠소? 이를 갈겠지요.》

김봉석의 말에 희섭이 대꾸했다. 그담엔 둘이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가슴들이 몹시 아팠다. 그들의 머리우로 달빛을 가리우는 구름그림자가 몇번 지나갔다.

모든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정말 놈들은 동이 푸름푸름 터올 때 급하게 퇴각을 시작했다. 웩웩 고아대는 소리, 말뛰는 소리, 무엇인가 왈칵덜칵 바퀴구는 소리가 소란히 울리며 대문바위쪽으로 새까맣게 밀려나온다. 그러나 대문바위매복진은 기척이 없이 놈들이 빠져나가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김봉석은 외통으로 빠지는 적이기때문에 한 절반 상고개쪽에서 갈길놈들을 세넘긴 뒤에 갈기라고 대문바위매복진에 지시를 주었다. 하긴 그래야 량쪽에서 몫을 갈라가지고 때려잡을수 있는것이다.

대문바위를 넘어서는놈들은 더욱 들끓었다. 무거운 짐을 진놈들이 우글우글 밀려나가고 말탄놈들이 대렬옆으로 붙어서서 칼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마차는 무엇때문에 끌고왔댔는지 풍이 한 절반 찢어진것이 곤두박히며 굴러나갔다.

드디여 총성이 울렸다. 적의 정수리우에 벼락이 떨어졌다. 작탄이 터지고 돌이 굴러내려갔다. 뜻밖의 벼락에 대문바위를 빠진 놈들은 큰벌쪽으로 급하게 내달리고 아직 채 빠지지 못한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로 천막을 쳤던 산기슭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러나 놈들도 인젠 대문바위를 넘어서야 살줄 알았다. 벌써 월평과 태봉을 갈긴 공산군의 포위진이 여기까지 좁혀들어왔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놈들은 포위진 뚫을 결사전을 각오하고 다시 밀려나왔다.

대문바위우에선 연송 벼락이 내려가 안겼다. 한아름씩 되는 돌이 굴러내려가선 밀며 뚜지며 빠지려는놈들을 한꺼번에 네다섯씩 쓸어눕혔다. 작탄도 무데기가 진 적의 정수리우에서 쾅 하고는 불꽃을 날렸다.

상고개에서도 놈들을 짓모는 전투가 붙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놈들이 그저 고개를 뚫고 나가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다. 대문바위쪽이 무방비상태가 아니라는것을 안 놈들은 큰벌을 통과하면서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상고개로 밀려올라왔다. 그래서 결국은 치렬한 공방전이 붙었다. 탄환이 비발치듯 교차되였다. 아래에서도 우에서도 쾅쾅 소리가 나며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놈들은 잘루목홈타기로 밀려들었다. 이 홈타기에서 놈들은 첫 타격을 받고 우르르 되밀려나갔다. 이때까지 근거지안에서 유인전술로 적을 때려잡긴 했으나 이런 유리한 지리적정황은 가져본적이 없었다. 놈들이 내빼려면 이 홈타기를 뚫어야지 다른곳으로는 빠질데가 없었다. 놈들은 한참동안 그 좁은 홈타기를 들고날고하였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안됐는지 매복조가 진을 편 비탈로 새까맣게 기여올랐다. 돌이 굴러내려가고 작탄이 날아가 터졌다. 김봉석은 족쳐라 족쳐라 하며 웨쳐댔다. 그는 권총을 거머쥐고 연방 쏘아댔다. 희섭이는 벌써 탄알을 다 쏘았다.

아마도 여라문놈은 잡은것 같았다. 그는 바위돌을 들고 우쩍 일어섰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적의 무데기를 찾았다. 저편쪽으로 한무데기 기여오르고 밑에서도 여러놈이 뒤따라 기여올라오고있다.

희섭이는 바위돌을 든채 비척비척 걸었다. 땅바닥에 움푹움푹 발자욱이 났다.

《이 원쑤놈들!》

돌을 내려굴린 희섭이는 몸을 후들거리며 부르짖었다. 바위돌은 굴러내려가며 시꺼먼 무데기를 휩쓸었다. 여기저기 너부러져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비틀비틀 일어섰다가 도로 꼬꾸라지는놈도 있다.

비탈에서 전투가 붙은 사이 아래홈타기로는 놈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탈의 놈들을 제물로 바치고 전 살겠다는 수작이였다. 장교놈들이 말을 두드려몰았다. 우글우글하는 보병놈들은 서로 먼저 빠지겠다고 저희들끼리 욕설을 퍼부으며 총대로 두드려패기도 했다. 용케 굴려가지고 나온 마차는 이 홈타기에 와서 뒤집어엎었다. 마차를 끌던 말 두필이 흐앙거리며 하나는 큰 벌쪽으로 들이뛰고 다른 하나는 고개너머로 내뛰고하였다. 혼란과 란투로 홈타기안이 발칵 뒤집혔다.

이렇게 되자 비탈로 기여오르던놈들도 기세가 꺾여 쫓겨내려가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덮였던놈들이 어찌 바삐 내빼는지 마구 돌굴듯 굴러내려갔다.

이 순간이였다. 사람들은 비탈앞으로 치마자락을 날리며 휙 지나가시는 총쥔 김정숙동지를 보았다. 부녀회원들과 함께 큰벌쪽기슭, 매복진지에서 돌을 굴렸는데 언제 적의 총을 빼앗았는지 총을 들고 바람처럼 내달리신다. 사람들은 정말 푸른 불꽃을 본듯 가슴들이 뜨끔하게 울렸다. 전투는 바로 이 갸륵하고 아름답고 애절한 주인공을 불타는 품에 안고 진행된다.

사람들의 복수심은 하늘을 찔렀다.

김봉석이 성큼 뛰여일어섰다. 그는 돌격구령을 치며 앞으로 내달리였다. 그의 손에선 총창이 번쩍거렸다. 차응도도 희섭이도 총창을 비껴들고 비호같이 따랐다. 산이 무너지는것 같은 함성이 일어나며 사람들은 노도처럼 비탈을 내리굴렀다. 적을 홈타기에 몰아넣고 무서운 창격전이 벌어졌다. 분노가 일순간에 불바다처럼 쏟아졌다. 총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갈기고 그저 여기저기서 퍽퍽 소리가 울렸다.

농민들은 큰 말장으로도 때려넘기고 돌로도 넘겨쳤다. 홈타기에 몰려들어간놈들은 여기저기서 짐승소리같은 비명을 지르며 피가 질퍽한 눈우에 얼기설기 쓰러져 넘어갔다. 희섭이는 두놈인가를 찔러넘기고나서는 만만치 않게 접어드는놈의 저항을 받았다. 하마트면 놈한테 총대를 빼앗길번도 하고 휘둘리워 넘어질번도 했다. 그러나 그는 용케 자기를 지탱하면서 총탁으로 무종아리를 까서 넘겨뜨렸다. 그리고는 배우에 올라타고 놈의 가슴팍에 총창을 콱 들이박았다. 놈은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번질거리는 시누런 눈망울이 곤두서서 열손가락으로 땅바닥을 할퀴였다.

희섭이는 총창을 뽑아 또한번 콱 들이찔렀다. 놈은 그제야 우뚤 충동하더니 눈이 게발린 손을 스르르 늘어뜨린다. 놈을 족치고 일어서니 홈타기 저쪽너머에서 함성이 터져오른다. 뒤이어 인민혁명군대원들이 만세를 부르며 넘어온다. 피묻은 총창을 거머쥔 김정숙동지께서도 언덕우에 나타나시였다. 피빛이 오른 얼굴이 진하게 붉으시였다. 아마 한놈도 놓치지 말자는 욕심이 있어서 홈타기너머로 달려가 빠지는놈들을 쏘아눕히신것 같다.

온 산에 만세소리가 덮였다. 대문바위쪽에서도 만세소리가 들려온다. 희섭이며 차응도들은 눈물이 핑그르르해져서 소리는 못지르고 두손들만 버쩍 쳐들어올렸다.

해가 떴다.

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부드러운 해빛이 피어린 땅을 찬란히 물들였다. 큰벌은 봄이 돌아온 대지와도 같이 김을 물물 날리였다. 별안간, 너무도 별안간에 온 땅에 목말랐던 사랑이 차넘치는것 같기도 했다.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이 로획한 무기들을 메고 지고 떠들썩 끓으며 큰벌로 향해 내려온다. 맨앞에선 농민들이 수건을 벗어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해가 활짝 퍼진 한낮, 새가 지저귀는 기송이의 무덤앞에는 피묻은 총을 어깨우에 멘 김정숙동지께서 나타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흙내가 풍기는 무덤을 잠간 지켜보다가 총대를 내려 묘앞에 놓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으시였다.

《기송아, 내가 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묘를 다심히 어루만지며 살아있는 동생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속삭이시였다.

《넌 왜 좀 더 못살았니? 좀만 더 살았어도 어제밤 태봉과 월평에 타오른 불빛을 보고나 갔지. 늘 장군님을 보고싶다고 했는데 장군님께서 지피신 불빛이라도 눈에 담고 갔더면 얼마나 좋았을테냐? 네가 있었더면 얼마나 멋있게 승리의 나팔을 불었겠느냐!》

격앙되였던 전투장의 감정이 인젠 차분히 가라앉아서 기송이를 옆에 끼고 속삭이는듯한 심정이기도 하시였다.

《기송아, 난 인젠 이 총을 내 손에서 놓지 않으련다. 네 원쑤를 갚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굳은 결심을 다지고있는지 아니? 넌 죽으면서 나한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것도 배워주구 혁명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도 배워주었지···》

숲으로는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가고 하얀 눈꽃이 하르르 날린다.

《기송아! 너를 영원히 잊지 않으마. 기쁘고 섧은 날, 언제고 너를 생각하며 이 총을 튼튼히 잡고 사나운 싸움의 길로 달리고 달리마. 나는 인제 내 목숨이 내것만 아니고 어린 네 목숨도 받아지녔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찌 네가 가졌던 그 모든 절절한 희망을 잊을수 있겠니. 혁명의 시련은 중첩하지만 우리들에게 승리가 올 날이 그렇게 멀기야 하겠니. 그처럼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장군님의 령도를 받아나가는 혁명인데 그런 날이 빨리 오지 않겠니. 나는 내 가슴에 언제나 살아서 사무쳐있는 너를 붙안고 그 감격의 날로 기어코 가련다. 그런 앞날을 바라보기에 이 무서운 슬픔속에서도 이렇게 힘이 솟질 않니. 기송아! 내 사랑하는 기송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디마디 절절한 심정으로 땅밑에 누워있는 동생과 이야길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묘뜰에서 일어서시였다. 여전히 가느다란 바람이 불고 어데서인가 구구구하는 처량한 메비둘기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묘주위를 몇번 더 도시였다. 그리고나서야 릉선쪽으로 걸어나오시였다.

인젠 모든것이 슬퍼만 보이지 않고 진정 장엄한 혁명전의 대렬속에 깊이 발을 들여놓는것 같은 엄숙한 느낌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문득 장군님께서 지금의 자기도 멀리에서 보시고계시리라는 생각이 가슴에 뭉클 안겨드시였다.

《아, 장군님! 그리운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왕청쪽이라고 생각되는 흰구름 여러 송이 피여있는 하늘을 향해 나직이 부르짖으시였다.

《장군님! 전 정말 인제야 혁명의 큰뜻을 안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피의 시련속에서 고쳐 태여나 철석같은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어요. 전 이 심정을 장군님께 멀리서 보고드려요!》

그이께서는 크나큰 슬픔에 울고 고이고 고인 눈물에 씻기운 순결한 마음의 금선을 울리며 한없는 흠모의 정에 넘쳐 조용한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였다.

가로비껴내리는 해빛속에서 그이의 얼굴은 무척도 아름답고 숭엄하고 부드러워보였다. 그 황홀한 얼굴로 인제야 두줄기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제 1 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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