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2

 

제 13 장

2

 

기송이는 하늘을 날고있다. 꽃구름이 아름답게 깔린 하늘이였다. 흰구름, 붉은 구름, 외꽃같이 노란 구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구름이 날고날아도 끝이 없다. 붉은 구름을 꿰지르고 나가면 흰구름의 꽃밭이 펼쳐지고 흰구름을 꿰지르고 나가면 노란 구름의 꽃밭이 펼쳐졌다. 그는 구름속을 날아나가다간 꽃수술 달린 나팔을 입에 대고 불었다. 나팔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맑고 부드러운가 하면 힘차기도 했다. 그 황홀한 소리가 구름을 헤치고 누비며 멀리멀리로 퍼져간다.

그런데 누가 부른다. 아득한 구름아래서 누나가 부르는것 같다. 또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다. 아, 그리운 누나! 기송이는 구름우에서 뚝 떨어져내렸다. 탕 소리가 나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민가네 방아간이였다. 여윈 당나귀가 있고 연자의 매돌이 있고 멍에채와 곡식마대들이 쌓여있다. 얼굴이 까맣게 된 누나가 땀을 철철 흘리며 당나귀를 몬다. 당나귀는 발을 떼지 않았다. 누나는 회초리로 당나귀를 때린다. 그래도 당나귀는 발을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누나는 부득이 당나귀를 풀어내가고 제힘으로 멍에를 밀었다. 그제야 멍에가 조금씩 드틴다. 기송이도 달라붙었다. 빠그극빠그극하는 연자방아소리, 누나의 가쁜 숨소리, 기송이자신의 헉헉하는 숨소리.

《기송아, 기송아!》

누가 부른다. 방아간이 아니고 어데 딴곳이다. 아니 방아간은 가뭇 없어져버렸다.

《기송아, 기송아!》

또 누가 부른다. 기송이는 눈을 가까스로 떴다. 이마우에 둥그런 불빛이 있다. 그런데 어쩐지 뜨겁진 않고 눈덕우에 딱 붙어 짓누르는것만 같다. 그는 얼마후에야 그것이 공중에 떠있는 달이란것을 알았다. 달 저쪽으로는 무엇인가 깜빡깜빡 숨었다나타났다하는것들도 있다. 그건 별이였다. 달과 별! 아, 나는 지금 어데 와 누워있는가!

《기송아, 기송아!》

누가 또 이름을 부른다. 기송이는 서서히 곁을 돌아보았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우뚝우뚝 앉아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했다. 크고 주글주글한 얼굴이 눈언저리에서 자기를 지켜보고있다. 큰 눈망울엔 물기가 번쩍거렸다. 누굴가? 아무래도 생각이 안났다. 자꾸 가물가물 어두워지는것만 같았다.

《기송아, 인제 정신이 드니?》

《누나!》

기송인 묻는 말엔 대답지 않고 누나를 불렀다.

《오냐, 누나가 인제 온다.》

《누나! 누나!》

기송이는 거듭 두마디를 또 불렀다. 숨이 찼다. 꼭 누나가 저쪽에서 달려오는것만 같다. 그러나 오진 않았다. 기송이는 또 두눈을 사르르 감았다.

기송이 옆에 서있던 사람들은 후휴 단김을 내불며 물러섰다. 상녀어머니와 금실이, 차응도회장과 희섭이 그리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만이 기송이옆에 앉은채 달빛이 흐르는 새파란 얼굴을 들여다보고있다. 기송이는 얼굴도 작아지고 몸도 훨씬 작아졌다. 아무리 피가 빠진들 어떻게 이처럼 졸지에 조그맣게 변할수 있을가.

서둘러 지은 어설핀 초막안에 기송이를 조심스럽게 옮겨눕히였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저 굳어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다. 리상녀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기송이의 몸에 덮은 포대기를 당겨 올려놓아주고 머리맡에 막아놓은 하불도 끄당겨 바람을 가리워주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찬바람이 겨드랑밑으로 기여든다. 어데고 집이 죄다 불탔으니 이 세상에서 마지막밤을 보내게 되는지도 모르는 기송이에게 찬바람을 막고 온기를 보태줄 따뜻한 구들한간이 없다.

달빛 푸른 산등엔 사람들이 가득 모여앉았다. 기송이로 하여 피해를 모면한 사람들도 많이 왔지만 여기저기 싸움터에 있던 사람들도 초막밖의 나무밑에들 와앉아서 밤을 새웠다.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 사람의 생명을 맘대로 구해낼수 없는 일이 몹시도 안타까왔다. 저 어린 소년이 이렇게 숱한 사람을 살려놓고는 저혼자 저렇게 괴로와하며 누나를 부르고있다.

용감한 소년을 다시 살려낼수 없을가? 적을 이끌고 숲을 번개처럼 돌아가던 소년, 산마루우에 장수같이 나타나 나팔을 불던 소년, 그 기송이를 다시금 이 세상에 오래오래 살게 할수는 없을가!

모두 달빛이 차있는 먼 공간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스라하게 퍼져나간 눈아래, 상촌, 중촌, 멀리 부암일대까지도 바라보이는 망망한 산야는 엷은 운기와 달빛에 싸여 너무도 숙연히 너무도 무심히 누워만 있다.

아이들도 모두 저편에 말없이 앉아있다. 은근히 훌쩍거리며 우는 애들도 있다. 태호, 태국이, 홍갑이 세 꼬마는 외따로 한쪽에 몰려가 우두커니 앉아있다. 어떻게 그처럼 씩씩하던 기송이가 죽을수 있단말인가. 죽음이란게 무어란말인가. 인제 정말 기송이가 죽는다면 그 검은 눈섭을 구핏하며 씩 웃군하던 얼굴은 영영 못보게 된단말인가. 그 웃음소리, 그 말소리가 죄다 허공중천에 없어져버리고만단말인가.

세 꼬마는 분하고 서러운 생각을 누르며 망망한 눈아래만 바라본다. 모두들 갑자기 몇살씩 더 먹은것 같아졌다. 차응도와 희섭이는 괴로움을 누르느라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했다. 차응도는 아이들속에 와선 춥지 않느냐고 옷을 만져보고 잔등을 쓸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피난민들속으로 가서는 찬 땅에서라도 가랑잎을 깔고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모든것이 다 가슴을 저며내는것 같은 아픔을 주는것이였다. 희섭이는 어데나 탕탕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었다. 자기 교탁앞에 앉아 진리를 배우던 소년 하나를 잃는다는 비애만이 아니였다. 그의 영웅적소행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을 치고 그렇기때문에 그를 잃는다는 일이 그렇게도 슬프고 안타깝고 분했다.

《희섭동무, 내 좀 내려가보겠소. 아무래도 리진구동무가 정숙동무를 찾아내지 못하는것 같소. 아까 3소대에 왔다가 화약을 가지고 강을 건너갔다는데 어데가 찾으며 헤매는지 모르겠소.》

차응도가 이러며 산릉선으로 걸어나간다. 그는 초조했다. 기송이는 가망이 없는것이 명백하다. 그것도 점점 더 시간이 좁혀든다. 안타깝게 누나를 찾는 소리, 그 마지막 소원을 못풀어주어서야 말이 되는가.

차응도는 산릉선을 급하게 걸었다. 그는 아무래도 병기창에 가보아야 할것 같아 샘내앞 여울을 건느려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강가에 다달으니 마침 녀자들이 무엇인가 한임씩 이고 여울을 건너온다. 여기는 개안촌앞보다 여울이 급해서 기슭에는 칼날같은 얼음이 붙어있고 가운데는 물살이 사납게 소용돌고있어서 여간해서는 건느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녀인들은 힘차게들 건너왔다. 폭포처럼 딩구는 차거운 물이 포말을 일으켰다.

《서로 붙잡은걸 놓지 말아요.》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다. 차응도는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맞바로 만났다는 생각도 들고 화약을 갖다두고는 무얼 또 저렇게 이악스럽게 이고 건너오며 아낙네들을 부축하며 이끄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봉지구에 가서 일을 잘한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싸움이 벌어진 근거지에 돌아오자마자 또 저렇게 앞장서서 해낸다. 저런 열정이 어디서 생길가? 기특하고 고마왔다.

차응도는 물로 첨벙대고 들어가며 조심히들 건너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녀인들은 물소리때문에 그 누구도 차응도의 소리를 못듣는것 같다.

얼마후 작탄상자를 인 녀인들이 물에 치마폭을 적시며 강가에 이르렀다.

《회장동지!》

김정숙동지께서 먼저 차응도를 알아보고 웨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앞서서 물을 차며 내달아오시였다.

《수고를 했소, 수고를 했단말요.》

차응도는 눈굽이 뜨거워지는 격한 감정을 누르며 김정숙동지의 머리우에서 작탄상자를 받아안고 강가로 나왔다. 그는 그걸 놓고는 물가로 나오는 딴 녀인들의 작탄상자도 냉큼냉큼 받아서 내렸다. 물살이 세차서 작탄상자들도 모두 젖었다.

《동무가 왔다는 소리는 내 들었소.》

《그새 안녕하셨어요?》

《나야 잘 있구말구. 그래 리진구동무를 못만났소?》

《못만났어요. 모두들 숨을 좀 돌리세요. 그리고 젖은 치마자락두 좀 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응도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아낙네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상촌을 떠날 때보다 더 숙성해지고 말소리도 커진듯싶었다. 아낙네들은 모두 중둥매끼들을 풀고 치마폭들을 비틀어짰다. 물이 뛰여올라 저고리며 머리까지도 젖었다. 어떤 아낙네는 낭자를 고쳐틀며 강물에 대고 욕질도 했다. 모두 추워서 이발을 떡떡 쪼았다. 이러는데 리진구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봉수골과 개암골쪽을 돌아 인제야 강을 건너가보자고 달려온것이였다. 그도 아낙네들과 작탄상자를 보더니 입을 벌리며 놀랐다.

《벌써 이렇게 일을 해내는줄은 모르고···》

리진구는 김정숙동지의 젖은 손을 잡아흔들었다.

《일이 마침 잘됐소. 인젠 진구동무가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봉수골 집결처로 가구 김정숙동무는 나와 함께 가야겠소.》

차응도가 이러며 김정숙동지를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를 비틀어짜다가 차응도의 곁으로 오시였다.

《동무는 나하고 산릉선으로 같이 가자구.》

《어느 산릉선에요?》

《글쎄 나를 따라오우.》

차응도는 김정숙동지를 데리고 떠났다.

샘내어구로 들어가는 차응도는 아무래도 산릉선의 비극을 알려주어 미리 마음을 다잡도록 하는게 나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숙동무!》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쩍어 달빛 받은 차응도의 옆얼굴을 쳐다보시였다. 어쩐지 엄숙해보이는것 같은 얼굴이였다.

《내 미리 말하지만 혁명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시련앞에서도 자기를 다잡을줄 알아야 되오.》

《무슨 시련말예요?》

《오늘 기송이는 나팔로 적을 유인하고 숱한 사람을 살려냈는데··· 지금 그 애는··· 위독하오···》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며 차응도를 고쳐 쳐다보시였다.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하오.》

《회장동지, 그게 정말이예요?》

《가슴이 아프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힘이 꺾여 허리를 휘청거리며 한발 물러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비탈진 둔덕에 녹아들듯 오금을 꺾으며 조심히 들어앉으시였다. 숨이 꽉 막혀 어쩔바를 모르고 한참이나 앉아있으시였다. 무섭고 막막한것이 눈앞으로 검은 바다물처럼 밀려든다. 기송이가 위독하다니? 그게 죽는다는 말 아닌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꿋꿋이 살아오며 인젠 가슴이 넓어지고 뼈가 굵어진 그 씩씩한 기송이가 죽다니? 어찌 꿈엔들 그런 생각을 가질수 있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를 사려무시였다. 기송이는 절대로 잘못될수 없다고 혼자 안깐힘을 쓰시였다.

차응도회장이 와서 손을 잡아일으켰다.

《회장동지! 그 애가 아직 숨이 진건 아니지요?》

《지금 누나를 몹시 찾고있소. 어서 일어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응도에게 끌려 일어서시였다. 사려무는 신념이 굳어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숨이 졌대도 기송이의 죽음은 인정할수도 없고 받아들일수도 없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절박한 가슴속에다 어떻게 하든 기송이에겐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그 굵은 신념의 기둥을 튼튼히 세워보려고 안타깝게 애를 쓰시였다. 그래도 그게 힘을 만들어주어 급기야는 차응도가 아무렇지도 않은 기송이를 놓고 공연히 그러는것 같은 생각도 하며 산비탈을 춰오르시였다.

산등우엔 점점 더 침통한 기운이 짙어갔다. 누구 한사람 말이 없다. 조용한 속에서 나무가지끝에 부는 바람소리만 윙윙 울린다. 이런 때 차응도가 김정숙동지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게 누구냐? 정숙이가 아니냐?》

리상녀가 웨치며 달려나왔다. 그바람에 산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애들은 김정숙동지라는 소리에 가슴에 바위돌이라도 떨어지는것 같은 쿵하는 충격을 받는다. 누나가 왔다는 일이 반갑다기보다 겁이 더럭 나기도 했다. 누나가 인제 기송이를 보면 어찌될가. 깜짝 기절이라도 해서 쓰러지지 않을가. 사랑하는 동생을 어느놈이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펄펄 뛰며 어데로 내닫지나 않을가. 애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울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쓰러지지도 펄펄 뛰지도 않고 기송이가 누워있는데로 걸어가시였다. 도리여 리상녀어머니와 금실이, 그밖에 다른 사람들이 눈물을 씻기도 하며 넘어질것 같은 걸음으로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의 곁에 가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동생의 손을 잡으시였다. 누나의 눈에 비친 동생의 얼굴은 꼭 돈잎만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떨리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런 내색이 없이 동생의 이쪽저쪽 손을 다 쥐여보시였다. 그리고는 어데 부상을 입었는가고 다시 온몸을 더듬어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이름을 부르시였다.

《얘, 기송아, 내가 왔다. 누나가 왔다!》

그러나 기송이는 눈을 뜨지 않는다. 언제 울었는지 량눈귀엔 눈물 흘린 흔적이 달빛에 번들거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번 더 불러보시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리상녀가 나앉으며 기송이를 와락 흔들었다.

《얘 기송아, 누나가 왔구나! 그렇게도 오매불망 찾던 누나가 왔구나. 눈 좀 떠라! 네가 지금 숨이 있느냐 없느냐?》

그제야 기송이는 실눈을 빠끔히 떴다.

《기송아! 내가 왔어. 너 누나를 모르겠니?》

기송이는 누나를 바라보긴 했으나 눈까풀이 그이상은 열리지 못하고 약간 내비친 몽롱한 눈망울이 줄곧 한점을 바라보고있다. 보는것인지 못보는것인지도 알수 없다. 어머니가 또 기송이를 소리쳐 불렀다. 금실이도 불렀다.

《얘, 기송아, 눈 좀 더 뜨지 못하겠니? 내가 왔대두, 날 모르냐? 내가 누나야!》

김정숙동지께서도 주위사람들이 깜짝 놀라도록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동생을 흔드시였다. 그제야 기송이의 얇은 눈까풀이 훌 벗겨져올라가며 몽롱한 기운을 벗어던진 눈망울이 커다랗게 드러났다. 물기가 번질거리는 그 눈망울이 한참이나 누나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기송아!》

《누나!》

이날 이때까지 들어본 일 없는 너무도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기송아! 너 왜 이렇게 됐니?》

《누나, 나 이제 장군님 만났어!》

기송이는 묻는 소리는 대답지 않고 딴 이야기를 했다. 기송이의 입에서 장군님 소리가 나오는바람에 주위사람들이 모두 눈들이 커져서 기송이를 들여다보았다.

《그건 무슨 소리냐? 네가 언제 장군님을 만나뵈여?》

《아니야 정말··· 우리 학교 꽃밭에 오시지 않았어. 내가 가꾼 꽃밭에말야···》

기송이는 두눈망울이 이글거리며 숨을 급하게 몰아쉬였다.

《장군님께선 꽃밭을 잘 가꿨다고 하시지 않아··· 그리고··· 내 나팔 보시더니 작다고 하시며 인제 큰 나팔을 보내주신다지 않아. 이만치 큰걸···》

기송이는 얼른 나팔의 크기를 가늠해보이려고 두손을 움찍하다가 말았다. 손을 들어올릴 힘이 없는것이였다.

《누나, 장군님 보내주신 나팔이 오면 뒀다 날 줘···》

《응, 뒀다 주고말고···》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떨구며 대답하시였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씻었다. 얼마나 오매불망 장군님 생각을 했으면 그런 소리를 할가? 봄내 여름내 장군님께서 오신다고 학교마당에 꽃밭을 가꾸더니 그 꽃밭가에서 장군님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가슴 허비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있지 않는가! 꽃밭소리에 애들이 더욱 꺽꺽거리며 울었다.

잠시 힘을 고르던 기송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 나 죽나?》

《너 무슨 소리 그런 소릴 하니?》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는것 같애.》

《기송아!···》

그담엔 말을 못했다. 또 눈까풀이 사르르 내려감는다. 아주 감아버리자 눈구석에 괴였던 보리알만한 눈물이 눈가장으로 드르르 굴렀다.

기송이는 갑자기 숨을 몰아쉰다. 의사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뒤로 물러앉았다.

《선생님, 얘가··· 얘가 왜 이래요!···》

의사는 김정숙동지의 질겁하신 소리에 대꾸를 못하고 큰숨을 내쉬였다. 기송이는 벌써 숨이 졌다.

《얘 기송아, 기송아! 이게 원일이냐? 네가 왜 이렇게 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이 너무도 청천벽력같아서 숨이 진 동생을 마구 흔들며 웨치시였다. 죽지 않는다고, 죽을수 없다고 믿고믿은 신념도 결국은 부질없고 속절없는 하나의 기원이였다. 엄연한 사실은 너무도 무정하게 이렇게 되고야말았다.

《기송아! 기송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목이 꽉 막히시였다. 부르짖기는 하나 말이 되지 않으시였다. 하긴 소리내서 부른들 무엇하랴! 빈 공간에나 그 소리가 울려갔지 기송이가 인제 대답할리 있는가! 그래 이 애가 이 세상에서 영영 갔단말인가! 그 잊을수 없는것이 죄다 죄다 없어졌단말인가! 가슴에 불을 퍼붓는것 같은 생각이 겹치고 겹치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진 동생을 와락 품에 안아올리시였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를 사려물고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시였다. 리상녀와 금실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몸을 떨었다. 초막밖의 사람들도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애들은 모두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태호, 태국이 같은 꼬마들은 아주 퍼더버리고 앉아 흙을 마구 파내던졌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의 흐느낌소리도 일어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품에 안은 동생의 얼굴에 볼과 입술을 문지르며 헙헙하는 소리만 내시였다. 차응도가 다가가 김정숙동지의 품에서 기송이를 받아안았다. 그도 잠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며 눈을 뚝 부릅뜨고 기송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가슴속 비분을 용케 눌러내며 어린 시신을 누웠던 자리에 가져다 조심히 도로 눕히였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송아! 가석하지만 하는수가 없구나! 내 머리 희슥희슥한놈이 네 령전에서 모자를 벗으려니 떳떳치도 못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차응도의 굵은 목소리가 슬픔이 굽이치는 산정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무엇인가 승화된 숭엄한 분위기가 넓은 산마루우를 소리없이 덮는다. 조국광복의 성전에 쓰러진 어린 영웅의 흩어진 숨결만이 온 산천에 서리서리 휘감기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눈물이 어려 소년의 마지막 뜨거운 숨결을 볼에 감촉하였다.

《너는 소년영웅으로서 우리들의 가슴속에 잊을수 없는것을 남기고 갔다. 그 누가 네 기특한 소행을··· 어린 네 몸을 바쳐 수없는 사람을 구원한 그 훌륭한 소행을 잊을수 있겠느냐? 너는 우리에게 가르친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속으로 통곡하면서도 많은것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아, 혁명을 위하여 꽃보라처럼 날려간 너의 그 장한 넋을 무슨 말로 달래일수 있단말이냐!···》

밤이 깊어지자 어느덧 부슬부슬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차응도는 불에 그슬린, 졸지에 희여진 머리를 어지러이 날리며 차츰 목이 메여 음성을 떨었다.

사람들은 차응도의 아픈 말을 다 들어내지 못하고 초막밖을 나섰다. 희섭이는 넘어질것 같은 걸음으로 산릉선을 걸어나갔다. 그는 앞에 와닿는 나무가지를 와짝와짝 잡아당겨 꺾으며 몸부림치듯 숲을 헤쳐나갔다.

하늘은 자욱히 흐려 나어린 영웅의 넋을 어루만지듯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사람들은 눈속에 서서 차츰 숫눈으로 덮어가는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