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1

 

제 13 장

1

 

겨울철에 접어들자 상촌의 산골짜기들에선 련일 치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오늘은 불시에 샘내 앞골짜기에서 무서운 싸움이 붙었다. 봉수골에서 된매를 맞고 물러선놈들이 매일같이 발광적인 공세를 들이대다가 오늘은 여기저기 후방깊이 찔러보는 대담한 시도를 해왔다. 샘내 앞골짜기가 전투장으로 변하는바람에 샘내에선 소동이 일어났다. 얼굴이 새까맣게 끄슬은 피난민들이 보퉁이를 이고지고 자리를 떴다. 피난민들뿐만아니라 여기 본시 있던 주민들도 짐을 꾸려 이고지고 떠났다. 인민혁명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빨리 능산뒤골로 피하라고 소리쳤다.

《능산뒤골이면 십리가 넘지 않소. 그쪽으로는 적이 기여들어가지 않았소.》

《대북동에 기여든놈들은 벌써 반이나 녹았다우. 박촌근방에 가선 산으로 붙으란말요.》

인민혁명정부에선 될수록 사람들을 멀리로 피하게 하려는것이였다.

리상녀와 금실이도 한아름씩 되게 짐을 꾸려 이고 길을 나섰다.

그들은 어데를 가든 놈들이 이곳에 인차 달려들지만 않는다면 몇번이고 되짚어 돌아와서 짐을 날라갈 료량을 하며 제일 소중한 량식부터 꾸려 이고 나섰다. 그밖의것은 그전 벌목하는 인부들이 살았다는 새를 둘러친 초막안에 보이지 않게 파묻어두었다.

《어머니, 임을 이고 갈것 같애요?》

《이구 가잖구. 고뿔을 좀 앓았다구 임을 못일가? 임진란때 녀자들은 왜놈 죽이자고 식칼을 품고 다녔다는데 이게 무슨 몰골인가. 이 란중에 고뿔이라니···》

리상녀는 한아름 되는 임을 이고 목을 끈덕거리며 걸었다. 그러나 그는 몇걸음 걷지 않아서 코피가 주르르 쏟아져내려 한손을 내밀며 솜을 찾았다.

《봐요. 어떻게 임을 이고 가겠다고 그래요. 어서 내려놔요.》

《글쎄 아무거나 좀 달라구. 피를 막구 가게.》

《가만 좀 계셔요.》

금실이는 얼른 임을 내려놓고 도로 초막으로 달려들어갔다. 그제야 어머니도 끙하고 머리우에 이였던 임을 도로 길바닥에 내려놓았다.

《망할놈의 고뿔···》

리상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길옆에 웅크리고앉아 코피를 쏟았다. 그는 여러날 시름시름 앓다가 어제밤엔 두눈이 새빨갛게 달아서 헛소리를 질렀다. 입술이 가랑잎처럼 말라들었는데 밤새 그 입으로 누구를 욕하는지 이놈저놈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간 뼈가 녹는것 같은 가느다란 소리로 앓음소리를 하며 《성재야아, 성재야아.》 하고 다정히 부르기도 했다. 그통에 합숙애들도 한잠 못잤다. 그 어린것들도 어머니와 싱갱이를 하며 시뚝댈 때 같아선 어머니가 앓건말건 큰 걱정이 없어할것 같았는데 정작 어머니가 앓으며 헛소리를 치니까 모두 근심이 되는지 머리맡에 우둑우둑 모여앉아 밤을 새웠다. 지금 그 애들이라도 있으면 어머니를 부축해가지고 갈텐데 조반을 먹자 죄다 싸움터로 내빼서 금실이 혼자 욕을 보게 되였다.

얼마후에야 금실이는 초막에서 솜을 얻어들고 뛰여나왔다.

《아이구 맙시사. 저놈들 잡아가는 귀신은 없는고? 옛날엔 쇠잡아먹는 불가사리란것이 있었다는데 왜놈 잡아먹는 불가사리라도 났으면 좀 졸가.》

어머니는 산등성이너머를 흘겨보며 왜놈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코앞을 닦고 코구멍에 솜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또 끙 소리를 내며 무거운 임을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고달픔을 못이겨 잠간 스쳐지나간것 같은 고뿔인데 귀밑이 설핏해지고 짐에 눌린 목이 휘청거리기도 한다.

오늘도 기송이는 날이 밝자 개암골뒤전방싸움터에 나가서 애들과 함께 전투원들에게 돌을 날라다주었다. 그러다가 싸움이 끝나는바람에 애들을 데리고 밀림속으로 내뺐다.

《체, 이거 봉수골에서 쌈하듯 한번 못해보나?》

《그러게말야. 그날엔 놈들의 시체가 골짜기안에 그득해지도록 답새겨댔는데··· 쌈은 김봉석중대장아저씨가 젤이야.》

애들은 오늘 싸움이 성차지 않아 삼태기안같이 생긴 홈타기에 모여서서 떠들었다. 태호, 태국이, 홍갑이 같은 꼬마들도 돌을 나르느라고 온통 흙투성이가 됐다.

이 꼬마들도 봉수골싸움이야기만 나면 가슴이 들먹거렸다. 그날저녁때 애들은 산뒤턱에 모여서서 결사전가를 불렀다. 온산에 노래소리가 들썽들썽 울렸다. 전투원들은 힘이 나서 총을 쏘고 작탄을 던졌다. 어둑어둑해서 돌격나팔이 울릴 때엔 기송이도 나팔을 들고 바위등으로 뛰여올라갔다. 그리고는 쌍나팔로 돌격신호를 맞춰주었다. 이날 김봉석은 애들이 잘 싸웠다고 꼬마들을 둥둥 안아들고 뒤통수를 쓸어주기도 했다.

지금 애들은 그날과 같이 들썽거리는 싸움을 못겪어 은근히 몸이 근질거렸다.

《어데서 총소리 나는데 없니?》

기송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애들에게 물었다. 그도 오늘 일이 성차지 않아 싸움터를 찾는것이였다. 애들은 대답이 없이 정말 어데서고 총소리가 나지 않는가 해서 귀를 기울였다. 어데서도 총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아깐 다른 골짜기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왔는데 인젠 죄다 잠잠해졌다. 기송이는 큰 숨을 씩 내쉬며 눈이 한벌 깔린 새초밭에 들어앉았다. 다른 애들도 모두 새초밭에 앉았다.

《한번 또 죽신하게 싸워봤으면 좋겠네!》

《그러게말야. 하긴 오늘두 여러놈 잡긴 했지.》

《그까짓 그렇게나 잡아가지고야 언제 저놈들을 다 잡아내? 저 놈들을 다 잡아내구야 우리가 또 학교를 짓구 공부하지.》

기송이는 애들의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후두두해진다. 이 싸움이 정말 어떻게 기울어지고있는지 기송이로서는 가량할수가 없었다. 인민혁명군이 상고개에서 밀린건 적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대들어와서 밀렸다고도 했고 또 다른 말로는 놈들을 봉수골에 이끌어들여다 잡으려고 밀렸다고도 했다. 그것이 어느 말이 정확한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인민혁명군이 상촌에 기여든놈들을 죄다 잡아야 할것은 뻔한 일이였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보아야 봉수골에서 한번 두드려잡고는 그담엔 크게 때려눕히는 싸움을 벌리지 못한다. 왜놈군대는 동구밖 산기슭에다 천막을 치고 들어앉아있다. 어떤 때 릉선우에서 내려다보면 온 산기슭에 적이 우글거리며 돌아간다. 사태가 이러니 어린 마음에도 저절로 생각이 깊어진다. 장차 이 싸움은 어떻게 되고 상촌은 어떻게 된단말인가? 이건 너무도 엄청난 큰 문제같다. 상촌을 잃어버리는가 도로 찾는가 바로 이런 죽고사는 문제를 안고 지금 시간이 지나가고있는것 같다. 이 상촌이란 어떤 땅인가? 더도 말구 나에게 무엇을 준곳인가! 누나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정말 목말랐던 맑은 해빛과 기쁨을 실컷 받아안고 뛸수 있었다. 처음으로 행복한 우리 세상, 사랑 깊은 우리 세상에 살아보지 않았는가! 사람마다 다같이 장군님을 우러러받들고 어느 한가지라도 일하는것, 생각하는것이 장군님 뜻이 아닌것이 없고 장군님 뜻으로 하여 온 상촌이 한집안같이 꾸려지고 바로 그속에 친형제같은 뜨거운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나는 이 꿈만 같은 새세상에서 내 몸에 와닿는 그 숱한 사랑의 손길이 짓눌렸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고 키를 자라게 하고 힘이 세지게 하는줄도 모르고 자라났다. 나만 그런가. 아동단아이들이 다들 그렇고 이 애들이 모두 그렇다. 장군님께서 꾸려주신 상촌이 아니라면 그 누가 불에 끄슬려 굴러온 불쌍한 아이들에게 꿀물같은 사랑을 그처럼 퍼줄수 있겠는가!

아, 장군님 꾸려주신 이 한집안! 그저 아무 셈판도 없이 사랑의 바다물에 풍덩 들어가 즐겁게 물장구를 치며 살아온것 같은 흘러간 나날!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무엇이였다는 의미도 알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인제 그 귀중한것이 어떻게 될것인가? 이 큰 사랑의 집이 아주 무너져버리고만단말인가. 그 기쁘고 다정한것,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것, 누나와 상녀어머니가 있고 금실아주머니와 아이들이 있고 차응도회장, 희섭선생이 있고 학교가 있고 아동단이 있는 이 하나로 뭉쳐진 사랑의 큰 집이 영영 다시 여기에 일어설수 없단말인가? 기송이는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두눈을 슴뻑거리였다. 아이들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내가 우니뭐···》

기송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씻으며 안운다고 했다.

《나팔 불고싶어 그러니?》

태호가 살뜰하게 곁에 와앉아 나팔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흥···》

기송이는 코소리를 했다.

《나 좀 불어볼가?》

《왜놈들 다 쫓아낸 담에 배워주마!》

기송이는 태호를 옆구리에 꽉 다가끼며 웃었다. 상촌이 온통 한집안이라면 태호두 내 동생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기송이는 코허리가 찡해진다.

인민혁명군대원들은 어데로 가서 집결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산등성이론 바람만 휘휘 불어넘어온다. 류달리 봄바람같은 부드럽고 향긋한 바람이다. 어데서 그 누가 불타는 이 땅에 이런 바람을 보내줄가. 아이들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 바람소리가 울리는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얘 저게 무슨 연기냐? 저것 봐라. 나무새로 막 날아넘어오는구나.》

한 애가 웨치며 일어서는바람에 애들이 모두 따라 일어섰다. 정말 산등성이너머 하늘엔 연기가 뽀얗게 찼다. 나무숲사이로도 휙휙 밀려넘어오며 내내를 풍기였다. 이게 어데서 나는 연기일가, 집이란 집은 죄다 불살라버렸는데 무얼 또 불사르기에 저렇게 연기가 공중을 물들였을가? 아무래도 놈들이 산에다 불을 지르는게 분명했다. 산에 인민혁명군이 있으니까 그럼직도 했다.

《빨리 가서 끄자! 틀림없이 산불이야.》

기송이가 웨치며 먼저 등성이우로 올리뛰였다. 애들이 뒤를 따랐다. 산등성이우에 올라서니 어데도 불붙는 산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는 울멍줄멍 산발이 굽이쳐나간 먼 골짜기에서 솟아오른다.

《샘내구나. 샘내골짜기가 타는구나!》

기송이가 또 먼저 부르짖었다. 그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분명 샘내였다. 저놈들이 피난민들이 있는 후방에 기여들었구나! 거기 사람들은 다 어찌고 불을 질렀을가. 그의 머리속에 먼저 떠오른것은 앓아서 누워있는 상녀어머니였다. 그 새를 둘러친 초막에 불을 질렀다면 불길이 일시에 초막을 휘둘러감았을텐데 앓는 어머니가 언제 빠져나올 겨를이나 있었을가? 기송이는 애들을 데리고 산비탈을 또 춰올랐다. 아주 릉선우에 올라서니 샘내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라는것이 더욱 확증되였다. 애들은 릉선을 타고 곧장 내달렸다.

샘내앞 릉선우에 다달으니 지금 동네가 한창 불타고있었다. 산밑으로 돌아나가며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 초가들이 온통 불속에 들어 연기와 불길이 붙안고 돌아갔다. 짚낟가리, 나무낟가리에도 불이 달렸다. 불길은 동네뒤 비탈로도 펄펄 기여올라갔다. 벌써 아이들이 살던 초막은 다 타버렸다. 이글이글한 불더미가에서 재가 날려일어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불을 지른 원쑤도 보이지 않는다. 빈 동네에서 불은 제멋대로 타고있었다. 애들은 방금 샘내 앞골짜기에 기여들었던놈들이 인민혁명군한테 된통 얻어맞고는 이리로 달려넘어와 불을 지른줄은 몰랐다. 놈들은 샘내에 불을 지르고는 자취를 감춘 인민혁명군을 찾아 산을 수색하며 북동쪽으로 넘어갔다.

애들은 동네로 달려내려가지도 못하고 산릉선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어머니랑 금실아지미랑 모두 어떻게 됐을가?》

재더미가 된 초막자리를 굽어보고 섰던 기송이가 두눈을 번쩍거리며 물었다. 딴 애들도 정말 어머니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러는데 북동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쌈 붙었다.》

애들이 일시에 고개를 쳐들며 웨쳤다. 기송이는 애들을 데리고 산릉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내달렸다. 여긴 릉선이 숙었다솟았다 하며 가파로운데가 많았다. 애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우거진 나무숲을 헤치며 뛰였다.

북동뒤 산릉선에 다달은 애들은 너무도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에 안겨드는바람에 깜짝 놀라며 걸음들을 멈췄다. 북동도 온통 불길속에 들었다. 시꺼먼 연기가 앞이 보이지 않게 물컥물컥 솟아오른다. 연기는 산릉선으로 치달아오르며 내내를 풍기였다. 불길속에선 무엇이 튀는지 탕탕 소리가 울리며 불찌가 하늘로 솟구친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는다. 능산쪽으로 난 큰길우엔 아낙네들이 꽉 덮였는데 놈들이 전호좌우에 막아서서 뭐라고 왝왝 고함을 질러댄다. 결국 샘내와 북동에서 능산쪽으로 가던 피난민들이 걸려든것이였다. 사람을 쏘는 총소린지 연방 땅땅 소리가 들린다. 불붙는 동네길에도 사람들이 얼찐얼찐 보인다. 연기속으로 적들이 뜀박질하는것도 보인다.

《저놈들이 사람을 다 죽이자는것 안야?》

애들은 부르쥔 주먹을 떨며 웨쳤다.

《얘, 저기 큰길에 우리 어머니도 뵌다.》

바위돌우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던 꼬마동이 태호가 소리쳤다.

《어디말이냐?》

애들이 우르르 꼬마동이곁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연기가 막혀서 뵈지 않는다. 인제 정말 봤어. 한아름 되는 보퉁이를 이구 금실아지미두 있었어···》

기송이는 치가 떨렸다. 어머니랑 금실아지미랑 저 숱한 사람들이 인제 무슨 변을 당할지 알수가 없다. 저놈들이 아낙네들을 길바닥에 모아세우고 어떻게 할참으로 저러는가. 그는 머리칼이 쭈삣 일어섰다. 틀림없이 길바닥이 피바다로 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등을 굽히고 뻗어나간 돌출부쪽으로 기여나갔다. 거기 나가니 연기가 좀 엷어지며 골짜기바닥의 큰길이 휑하니 내려다보인다. 아낙네들이 와글와글 끓는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울음소리도 들린다. 동네가 타는 골짜기바닥의 불길속에서도 희생이 있은것 같다. 놈들이 총탁으로 아낙네들을 두드려패며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기송이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잠간 서서 지켜보았다. 당장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이 안났다. 그러다가 기송이는 번개같은 생각이 떠올라 뒤따라온 애들을 모두 산너머로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나팔을 들어올려 입술에 댔다. 가슴이 뛰고 피가 용솟음쳤다. 저 사람들을 살려내야 한다. 저 숱한 어머니들, 누나들, 아주머니들, 동생들이 지금 적의 총구앞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걸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어야 한단말인가! 다 같은 우리 상촌의 한집안식구가 아닌가! 김일성장군님께서 꾸려주신 근거지안에서 서로 돕고 웃으며 힘을 모아 어려운 혁명을 해나가던 우리 식구들이 아닌가! 혁명을 하고 나라를 찾은 담에는 근거지 같은 자유세상을 삼천리땅에 만들어놓고 천년만년 옛말을 하며 살아보자고 서로 손잡고 꿈을 말하던 마을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꿈 많고 사랑 많은 우리네 식구들을 피바다에 잠가넣다니! 기송이는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나팔을 북동골짜기에 내대고 몸을 빙빙 돌리며 류창하게 냅다 불었다. 산이 흔들리는것 같고 공중의 흰구름도 덩실덩실 률동을 하는것 같다.

뒤따라온 애들도 기송이가 무얼 어떻게 하려고 나팔을 분다는걸 깨닫고 웅성거리며 끓었다. 애들의 눈에도 불꽃이 일고 가슴이 뛰놀았다. 그들은 적들이 나팔소리를 듣고 산으로 기여올라올텐데 무얼로 때려잡을가고 떠들었다. 총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도 있고 돌을 굴리자는 아이도 있었다.

《얘, 너희들은 산너머로 넘어가라!》

기송이는 검은 눈섭을 구핏하며 성을 냈다. 애들은 그제야 모두 다람쥐처럼 발발 기여 기송이의 뒤 언덕밑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모두들 나무줄기새로 눈들을 빠끔히 내밀고 돌출부에 선 기송이의 장수같은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린 돌을 들어다 굴릴 차비를 할가?》

《여긴 나무가 많아서 틀렸어.》

《야, 정말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팔을 불던 기송이는 돌출부에서 달려내려가더니 밀림속으로 빠져 저편 등성이쪽으로 기여올라간다. 동무들이 피하지 않으니까 제가 먼저 피하는것이다. 얼마뒤엔 산등성이너머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였다. 제일 겁이 없는 태호가 목을 빼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적은 어데로 갔는지 다 없어졌다. 피난민들만 와글거리며 능산쪽 산굽이길로 내빼기도 하고 길건너 산으로 하얗게 기여오르기도 했다. 별안간 산밑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귀를 째는것 같은 소리가 산을 들었다놓는다. 아이들은 그제야 적이 다 밀려오르는줄 알고 재빨리 산릉선으로 기여올라갔다.

그래도 어떤 애들은 그저 올라가질 않았다. 두셋이 대들어 다리를 벋디디고 땅에 박힌 바위들을 들어일궈선 내리굴리고 뛰였다. 정말 나무들때문에 돌이 바람을 내서 굴지 못하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치며 술주정하듯 왔다갔다했다.

《헹, 이딴놈의 산···》

태호는 두눈이 새빨개서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을 밉상스럽게 바라보며 두덜거렸다.

나팔소리와 총소리가 한데 어울러져 온 산을 뒤흔들어놓는다. 류창한 나팔소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가며 서쪽 릉선으로 에돌아간다. 사람들을 더 멀리멀리 피해가서 숨으라고 시간을 끄는것이였다. 놈들은 꼭 샘내 앞골짜기에서 싸우던 인민혁명군과 맞붙은줄 알고 기를 쓰며 나팔소리를 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급하게 피해가던 피난민들은 그게 인민혁명군의 나팔소리가 아니고 기송이의 나팔소리라는것을 알았다. 모두들 걸음을 멈췄다. 그 누구도 발이 저려서 뛸수가 없었다. 저 어린것은 숱한 사람을 살리려고 나팔소리로 적을 유인해가는데 제 한목숨 살겠다고 천방지축 아우성치며 뛰겠는가!

아낙네들도 늙은이들도 모두 나팔소리에 가슴이 죄였다. 산허리에도 길우에도 사람들이 짐들을 내려놓고 하얗게 모여섰다.

앙상하게 헐벗은 숲속으로 적이 달리는것도 보이고 이따금 나팔을 쳐들고 불어대는 기송이의 모습도 보이였다. 사람들은 나팔소리가 끊어지면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웅성거렸다. 북동앞 길바닥에 서있는 리상녀는 온몸을 떨었다. 그는 이따금 또아리 쥔 손으로 무르팍을 두드리며 왜 나팔소리가 나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군했다. 그러다가 또 나팔소리가 나야 어이구 살았구나 하고 숨을 내불었다. 금실이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떨었다.

사람들은 기송이가 흰구름밑에서 나팔을 분다고 웨쳤다. 정말 기송이는 아스라한 흰구름밑, 서쪽 봉우리끝에 거인같이 나타나 나팔을 불었다. 그러더니 또 이어 몸을 숨겼다. 나팔소리는 남쪽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나가며 울리였다. 적은 혼란에 빠져 온 산을 갈팡질팡 뛰였다.

나팔소리는 여기서 울리고 저기서 울리고 한다. 총소리가 잇달아 여러방 울리였다. 그러자 류창하게 울리던 나팔소리는 불시에 동강이 나듯 문뜩 멎어버렸다.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또 웅성거렸다. 인젠 기송이가 아주 피했다는 사람도 있고 적탄에 부상을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발을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기송이는 릉선우의 나무도 없는 눈우에 붉은 락조를 받아안고 누웠다. 온몸이 점점 까마득하게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가위선이 연하게 불타는 구름장들이 자꾸만 이마우로 흘러가는데 어떤 땐 그것이 한결 더 낮추 내려와 볼과 눈언저리를 살뜰히 어루만져주는것 같기도 했다. 기송이는 그걸 만져보고싶은 재롱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손도 아무것도 움직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저 모든것이 아득아득 멀어지고 깜박깜박 졸리기도 했다.

이러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 기송이를 부르며 뛰여들었다.

《얘 기송아, 너 총 맞지 않았니?》

《총은 무슨 총이냐?》

《그런데 뭣때문에 눠있느냐?》

《그저 힘들어 그런단다.》

아이들은 기송이의 소리가 심상치 않아 얼른 곁으로들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피냐?》

태국이와 홍갑이가 흰눈을 적신 피를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그제야 기송이가 총에 맞았다는걸 알고 눈이 둥그래서 뛰였다. 정말 곁에 놓여있는 나팔에도 피가 묻었다.

《얘 기송아, 너 어딜 맞았니, 보자!》

《관둬, 맥이 없다.》

《얘, 맥이 없으면 피 나오는걸 막지 않겠니?》

애들은 기송이의 토목양복 앞섶을 제끼며 상처를 찾았다. 태호, 태국, 홍갑이 세 꼬마는 피가 나오는데 쑥을 두드려붙이면 피가 멎는다는 소리는 어데서 들었는지 쑥을 찾아 온 산을 여기저기 뛰였다.

기송이의 몸에서 상처를 띠여본 애들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었다.

《울지 말어, 난 졸려서 그래. 너희들 사람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봤니? 우리 어머니랑?》

《보잖구. 죄다 피했어. 우리 어머니두 어데든 피했을거야.》

《너희들 정말 똑똑히 봤니?》

《그 그럼···》

기송이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에 활짝 피빛이 올랐다가 다시 서서히 창백해져갔다. 쑥을 뜯으러 갔던 꼬마들은 빈손으로 뛰여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산등에 무슨 쑥이 있고 또 지금 철이 어느때게 쑥이 있으랴. 꼬마 셋은 기송이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와앉아 기송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가슴들엔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살틀하고 따뜻한것이 목을 메게 오고갔다. 태호와 태국이는 입을 비쭉비쭉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기송이의 눈에도 이슬이 괴였다.

이러는데 비탈에서 와싹와싹 소리가 나더니 금실이가 뛰여올라왔다. 그는 기송이를 찾느라고 온 산을 어떻게 헤맸는지 얼굴이 땀에 떴다.

《기송아! 너 이게 웬일이냐?》

금실이는 아이들을 헤치고 들어서며 웨쳤다. 기송이는 대꾸가 없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금실이를 쳐다만 보았다.

《기송아, 너 어디 맞았어?》

《나 맥없어서 그래요.》

《맥없다는게 뭐냐? 네가 어딜 맞았게 이렇게 됐니?》

금실이는 붙안아일으키지도 못하고 펄펄 뛰다가 저편 언덕앞으로 도로 달려나간다. 그는 언덕아래에 대고 기송이가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거기가 어디냐고 밑에서 아우성이 일어난다.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밀려올라와 산에 덮이였다. 그들은 방금 기송이의 나팔소리를 듣고 나타난 인민혁명군이 적을 족치며 유인해가는것을 보고 왔다.

《여기야요. 릉선우예요. 기송이가 급해요! 빨리들 올라와요!》

얼마 안있어 사람들이 밀려올라왔다. 앞을 막아서는 나무가지를 잡아헤치며 모두들 숨이 차게 달려올라왔다. 리상녀어머니는 낭자가 풀어져내리고 관지뼈가 솟은 누런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사람들은 뒤를 대여 자꾸 올라왔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달려들며 끓는걸 보니 당장 그 무슨 슬픈 일이 곁묻어일어날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두 겁이 났다. 그들은 아낙네들 사태에 밀려 한쪽옆에 나가 우둑우둑 섰다. 태호는 피묻은 나팔을 가슴에 붙안고 온몸을 사시나무떨듯하며 아이들곁에 섰다.

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탔다. 고기비늘같은 구름장들도 죄다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피빛같은 하늘로 무슨 새인지 이름모를 외로운 새 한마리가 팔딱팔딱 깃을 치며 날고있다. 그게 어린 동심들에 더 돌을 던지는것 같은 충격을 주어 아이들은 모두 팔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꺽꺽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