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4

 

제 12 장

4

 

나무가 우거지고 다래넝쿨도 우거졌다. 밑엔 노루자리같은 미끄러운 풀도 깔렸다. 한뽐 앞을 헤쳐나가기가 숨가쁘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날쌔게 비탈을 춰오르고 곬을 빠지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끔 큰 화약보퉁이에 눌려 새빨갛게 된 목을 돌리며 뒤에 오는 청년들에게 빨리들 걸으라고 재촉하군하시였다. 청년들은 힘이 빠져 헐헐했다. 한짐씩 골박아진 화약도 무겁고 길이 험한데 오다가 적까지 만났다. 그래서 산속을 갈팡질팡 헤매느라고 힘을 다 뽑혔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매양 한결같은 걸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여기가 상고개 남쪽산줄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조바심이 나고 가슴이 뛰시였다. 상촌은 정말 어떻게 되였을가? 정말 죄다 불에 타버렸을가? 태봉에 잘못 전달되여 경식이가 그렇게 어려운 형편이 됐다고 하는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별생각이 다 나시였다.

상고개 산줄기를 넘어서니 해가 뉘엿뉘엿 산너머로 떨어졌다. 어제밤 떠난후 온 하루를 산을 헤매며 보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큰벌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달음박질하시였다. 얼른 살펴보니 다 가을해낸 땅이여서 그런지 큰벌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으시였다. 대문바위쪽 큰길에도 사람이 없다. 비탈에 선 나무우듬지들우로 대문바위안쪽도 들여다보이는데 그곳도 조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가슴이 떨려오시였다. 역시 상촌은 죄다 짓밟힌게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수그러져내려간 산등을 한참 달리다가 다시 가둑나무가 우거진 경사면을 치달아오르시였다. 어떻게도 빨리 내달리시는지 뒤따르는 청년들은 아직 산아래 있는 다래넝쿨속을 빠지느라고 두팔을 허우적이고있었다.

《성남동무, 길잡이동무가 어디로 내달리는지 단단히 보우. 또 잘못하다간 길을 잃겠소.》

《지금은 보이오. 빨리들 걷소.》

《이거 혼찌검이 나는군···》

화약을 진 청년들은 화살 날듯하는 길잡이를 따라나섰다가 정말 단단히 혼찌검들이 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개암골 앞산줄기에 다 오시였다. 여기 다달으니 상촌들판이 휑하니 내려다보인다. 벌써 첫눈에 무서운 변화가 안겨들었다. 들판엔 집도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화약보퉁이를 내려놓고 등성이끝으로 뛰여나가시였다. 노을이 물든 불그레한 들판이 좀더 자세히 내려다보이였다.

마을은 재더미로 변했다. 제일 큰 학교집자리에도 인민혁명정부와 공청지부 사무실자리에도 아니 온 마을에 거밋거밋한 재가 쌓였다. 그것이 마가을 저녁바람에 뿌옇게 날아일어났다. 신통히도 집은 한채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차고 다리가 와들와들 떨리시였다.

인제 자세히 보시니 대문바위를 조금 들어와 산기슭에 왜놈군대들의 풀색천막이 군데군데 들어앉아있다.

놈들은 마을을 다 불태워놓긴 했으나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선 천막을 치지 못했다. 위급하면 당장이라도 내뺄 잡도리같이 대문바위 산기슭에 둥지를 꾸려놓았다. 천막 있는데서 누런 군복입은 놈들이 왔다갔다했다.

어디선가 고아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안촌으로 건너가는 물가에 수십명되는 적의 대렬이 나타났다. 말도 여러필 되였다. 놈들은 재가 날리는 들판을 걸어서 대문바위쪽으로 나간다. 전투를 하다가 천막으로 돌아오는놈들인것 같다. 그렇다면 적아가 상촌을 가운데 두고 공방전을 벌리고있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화약보퉁이가 놓여있는곳으로 돌아오시였다. 눈앞이 캄캄해지시였다. 인젠 어떻게 해볼나위가 없이 된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런데 근거지에 있던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갔단말인가. 상촌중대와 반일자위대는 어디로 가고 혁명정부는 어디 있단말인가. 그리고 애들은 우리 애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단간방 오두막에서 살다가 그래도 제힘으로 제집을 짓고 더운 구들에서 자며 글도 배우고 세상같은 세상을 산다 했는데 그 불쌍한것들이 또 어디로 흩어져갔단말인가. 이번엔 어느 강가에 가서 울고 어느 산속에 들어가 찬땅에서 몸을 오그리고 자는가. 가슴이 찢어지시였다. 애들을 위해서 바친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련이어 떠오르신다. 그래도 그것이 보람있는 생활과 바뀌여졌으니 그렇게도 기쁘고 행복했는데 인젠 그 행복도 그 기쁨도 물거품이 되였단말인가. 상촌이 이렇게 빈 터전으로 될줄이야 뉘 알았는가. 그 숱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심전력으로 쌓아올린 생활이 이렇게도 불타버리다니··· 이 터지는 가슴을 어떻게 참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보퉁이곁에 오금을 꺾고 앉으시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얼굴의 땀을 씻고 또 씻으시였다. 피기를 잃은 새하얀 얼굴우에 애잔한 그늘조차 비껴들었다. 너무도 큰 충격이 온몸에서 모든걸 송두리채 앗아내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이제야 화약을 진 청년들이 웅성거리며 나타났다. 그들은 김정숙동지께 여기가 상촌벌이냐고 물었다.

《상촌벌이예요. 그런데 오고보니 정말···》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끝맺지 못하시였다. 인젠 이 청년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할지 막막하시였다. 화약 그대로가 무기로 될수 있다면 이길로 천막에 달려내려가 불을 들씌우고싶기도 하시였다.

《아니 동네가 전부 불탔구만. 그런데 저건 뭐야? 저게 왜놈들 천막 아니야?》

《옳구만··· 말들도 매여있구. 그리구 저것 보우. 놈들의 대렬이 축동으로 빠져나가구있소.》

청년들은 떠들며 화약짐을 내려놓고는 우르르 등성이끝으로 밀려나갔다. 그들도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근거지가 불리한 형편에 있다는걸 알고는 왔지만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되였을줄은 몰랐다. 화약이 떨어졌다고 해서 자기네들이 화약을 지고오긴 했는데 이까짓 화약이나 가지고야 저놈들을 어떻게 쓸어눕힐수 있을가 하는 생각들도 들었다. 그들이 내려다보는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적들이 모여들어 천막쪽으로 내려가고있다. 개암골 웃골짜기에서도 몇패 밀려나오고 강건너 개안촌쪽에서도 한부대 또 건너온다. 모두 전투를 하고 돌아오는게 틀림없다. 삽시에 천막 친 산기슭쪽은 우글우글하는 군대로 덮였다.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먼 골짜기에서 총소리가 울린다. 격전이 붙었는지 한참 콩볶듯 울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시였다. 총소리 나는데가 어딘지 인젠 그곳을 찾아갈밖엔 없었다. 그이께서도 등성이끝으로 다시 달려나가시였다. 누릿누릿 엷어가는 노을속에서 상촌들판이 아스라하게 바라다보이는데 그끝이 어딘지 거기서 총소리가 울리고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찌르며 솟아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서서 지켜보다가 얼마후에야 청년들과 함께 화약짐 있는데로 다시 돌아오시였다.

《그런데 인민혁명군은 어데 있는거요?》

한 청년이 김정숙동지께 물었다.

《산에 있겠지요. 아무렴···》

《산에요?》

《이 근방 산에 있을거야요. 놈들이 감히 마을에도 들어서지 못하지 않았어요. 저 총소리 나는쪽에 우리 군대가 있을거예요. 조금도 락심 말고 모두들 짐을 지고 떠나요.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한시바삐 중대를 찾아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보퉁이를 들어서 머리우에 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급하게 산등을 걸어나가시였다. 청년들은 기가 꺾였는지 말이 없었다. 그들도 짐을 지고 따라섰다. 어디서 초연냄새가 훅훅 날아온다. 개암골 골짜기안도 시꺼멓게 그슬렸다. 역시 병실들도 죄다 불타 없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를 사려무시였다. 눈에선 푸른 불이 펄펄 타시였다.

그이께서는 개암골뒤 릉선으로 올라가 한참 걸어나가시였다. 별안간 그게 정숙동무 아닌가고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쳐다보시니 사람들 십여명이 무얼 한짐씩 골박아지고 저편 산등성이로 넘어가다가 모두 이쪽을 돌아다보았다. 군복을 입은 인민혁명군대원들도 섞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을 보니 그만 울음이 터질것 같기도 하시였다. 누구인가 짐을 벗어던지더니 마구 달려내려왔다. 가까이 온것을 보시니 아이들 합숙을 지어주던 키가 작고 노란 수염이 다부룩한 목수였다.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그는 내려오자바람으로 김정숙동지의 머리우에서 보퉁이를 받아내리며 화약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 그렇다고 하시자 그는 좋아서 껑충껑충 뛰였다.

《내 글쎄 화약인줄 알았소. 동무가 태봉에 가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골박아 이고 지고들 오는걸 보니··· 좌우간 수고들 했습니다. 여기 좀 내려놓고 쉽시다. 저까짓것들을 무서워할건 없구···》

목수는 산너머를 턱짓하며 뒤에 온 청년들에게서도 화약짐을 벗겨내렸다.

《지금 화약이 오는가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참입니다. 인민혁명군이 왜놈의 군대를 매일 백놈씩은 때려잡는것 같은데 시체에서 떼오는 무기는 합쳐 얼마되지 못합니다. 저놈들이 우리 손에 무기를 넘기지 않자고 나가너부러만지면 달려들어 무기부터 떼내니까요. 그러니 쌈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선 탄약이 없어서 애를 태우지요. 중대장이나 회장이 이걸 보면 눈물을 짤겁니다.》

그는 다부룩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떠들었다. 그자신의 눈굽에서도 눈물이 번질거리는것 같다.

《그래 지금두 쌈을 하고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하다뿐이요. 매일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끌어들여다 답새기군하지요···》

목수는 근거지방어전투정형을 대충 이야기하였다. 상고개방어선에서 물러선 인민혁명군은 김봉석의 작전대로 적《토벌대》를 봉수골 골짜기에 유인하여 벼락을 들씌웠다.

적들은 그날밤 상촌마을로 물러나와 숙영하였는데 그런것을 김봉석이 밤중에 또 습격전을 들이대여 답새겼다. 놈들은 다시 혼비백산하여 대문바위어구까지 쫓겨나가고말았다. 그러나 《토벌대》놈들도 결사적이였다. 대문바위어구에서 더 전진은 못하였으나 그대신 그 자리에 진을 치고 눌러앉아서 날만 밝으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뚫고들어가기 위하여 발악적인 공격을 시도한다는것이였다.

《지금 이 산너머에선 법석들 끓고있소. 혁명군과 농군들이 쌈차비를 하노라고··· 우리도 지금 가을해서 감추어뒀던 량곡을 그리로 날라가는중이라우.》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수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맘이 좀 놓이시였다. 상촌이 살아있긴 살아있고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아깐 죄다 없어진것 같아 앞이 캄캄하기도 했었는데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목수는 화약이 도착한 일이 너무도 기뻐서 담배쌈지를 꺼내 청년들에게 한대씩 말라고 권하며 자기도 고불통에 한대 쑤셔담아서 붙이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을 데리고 목수를 따르시였다. 맞은편 산등성이로 춰오르니 목수와 함께 쌀을 지고가던 사람들이 모두 지쳐서 앉아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목수가 빨리들 일어나 짐을 지라고 하자 모두 일어나 짐바에 팔들을 끼였다.

《빨리들 갑시다. 인젠 화약이 왔소.》

목수가 사람들을 격려했다. 그는 마치 인제 이 화약이면 산등너머 적들을 문제없이 쓸어눕힐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쌀짐 진 사람들을 앞세우고 산을 또 하나 넘으시였다. 정말 그 산밑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쌀짐과 화약짐이 들어서자 여러명이 달려나와 받아내렸다. 그들은 태봉에서 온 화약짐이란 말을 듣더니 청년들에게 수고를 했다고 치하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낯을 알아보실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었다. 앞산머리에 핼쑥한 달이 떠올랐는데 그 달빛속에서 보시니 모두 얼굴들이 무섭게 치였다. 옷들도 입을걸 못입었다. 정말 농민들과 인민혁명군이 한덩어리가 되여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총을 닦기도 하고 무슨 쇠붙이를 두드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로획해온 군도를 무엇에 쓰려는지 돌에 걸터놓고 도끼로 쳤다. 한쪽에선 인민혁명군대원들 여럿이 모여앉아 숫돌에 단도를 갈았다. 그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농민들이 큰 구뎅이를 팠다. 아마 량곡을 날라다가 묻으려는것 같다. 구뎅이를 파는 이쪽엔 몇명의 부상자들이 누워있다.

그저 모두 묵묵히 움직였다. 부상자들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다. 누구의 가슴속에나 피가 엉켜붙은것 같다. 그래도 아까 그 목수가 신바람이 나서 쌀짐을 저편 웅뎅이곁으로 옮겨가며 나무숲속에 대고 쌀이 왔으니 빨리들 나와서 저녁을 지으라고 소리쳤다.

얼마 안있어 부녀회원들이 나타났다. 역시 김정숙동지께서 모르시는 아낙네들이였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두 아낙네는 지쳐서 간신히들 움직이며 돌가마에 밥지을 준비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을 걷고나서서 아낙네들을 도우시였다.

《부녀회원들이 모두 어디로 갔기에 아주머니 두분만 여기 나와 있어요?》

《죄다 여기저기 널렸지요. 지금 일이 한두가지라고 그러우? 그리구 싸움하는데도 여러군데니 거기 모두 흩어져 시중을 들지요.》

한 녀인이 설명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가지로 쌀을 이시였다. 아니 인다기보다 그저 빡빡 씻어서 함지에 담으시였다. 아직 채 능그워지지도 않은것 같은 수수쌀이였다. 그걸 바위돌로 고인 큰 가마에 안치고 불을 때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보시기엔 손바닥만한 아궁의 불로는 쌀을 다 익혀낼것 같지도 못했다.

《밥이 설지 않겠어요?》

《더러 설기두 한다우. 그러니 어떡하겠어요?》

녀인은 대꾸를 하며 한숨을 지었다. 모두 지칠대로 지친것 같다. 녀인들은 싸움을 이기고나서는 잠을 한번 실컷 자보겠다고들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이길수 있단말인가. 그이께서는 또 부리나케 그릇들을 걷어안고 샘물가로 가시였다. 그래도 샘물이 있어서 다행이였다. 놋그릇들이 뿌옇게 녹이 끼였다. 아무렇게나 딩굴려가지고 다녔을터이니 녹인들 안쓸었겠는가? 그이께서는 그릇들을 모래로 빡빡 문지르시였다. 싸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선밥을 대접하며 아무런 그릇에나 마구 담아서 대접하랴. 그들에게 한가닥 힘이라도 돼주게 그 무슨 일이든 할수 있는 정성을 다 바쳐서 하고싶으시였다. 지금 총을 닦고 쇠붙이를 두드리고 단도를 갈고 하는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도 무서운 각오를 한 사람들같았다. 이 싸움에 이미 목숨을 바치고 사는것 같은 숭엄한 얼굴들이다. 인제 그들에게 무슨 해줄 말이 필요하고 또 그들자신인들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그래서 저렇게들 관자노리가 날카롭게 서서 말없이 움직이고들만 있는게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발도 접시도 다 닦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흘러간 상촌의 생활이 또 절절하게 안겨드시였다. 간고하게 건설한 생활이긴 하였으나 그만큼 자유가 있고 참스럽고 보람이 있고 노래가 있는 생활이였다. 그 어느 하나에도 다 장군님의뜻이 미치고 그 뜻이 사람들을 움직여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용마루를 올린 생활이였다. 우리가 인제 그 생활을 잃어버리다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생활을 지켜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싸움에서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가지는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다 힘있게 일어나 앞날을 내다보아야 한다. 이 엄혹한 시련을 넘은 날의 저 멀리를 내다보아야 한다.

그릇을 가셔들고 가마 있는데로 오시니 벌써 밥이 다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 손으로 밥을 퍼내시였다. 큰 밥함지에도 퍼내고 놋바리들에도 퍼냈다. 그래도 밥이 선것 같지는 않았다.

《찬은 뭐가 있는지 어서 그릇들에 담으세요. 모두 얼마나 시장들하시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에게 독촉하시였다. 아낙네들은 풋김치를 두어사발 담아오고 접시들에 소금도 담아왔다.

얼마후에야 사람들이 모여와 풀밭에 우둑우둑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앞으로 밥그릇들을 날라가며 부상자들에겐 무얼 대접하느냐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한 아낙네가 좀 있다가 죽을 쑤어야겠다고 말했다.

《좀 있다가 쑬게 있어요? 제가 지금 쑬테니 아주머니들은 여기와 앉아서 저녁을 함께 드세요.》

《아니 동무가 함께 앉아서 들어야지, 태봉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목수가 펄쩍 뛰며 말했다.

《태봉에서 여기까지 왔어도 먹으면서 왔는데 무슨 배가 고프겠어요? 어서 아주머니들이 와서 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부녀회원들을 밀어보내고 자신은 쌀을 일어서 남비에 또 죽을 쑤시였다. 밥을 먹는 사람들은 김정숙동지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저녁끼니가 끝난뒤 김정숙동지께서는 태봉에서 온 청년들을 다시 인솔해가지고 강건너 병기창으로 떠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보퉁이를 이고 산들을 단숨에 넘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 아니하여 상촌들판에 들어서시였다. 달빛이 휑하니 밝았다. 가을을 해서 다 거두어들인 때라 적이 나타나면 어데 몸을 숨길만한곳도 없었다. 바람 한점 없이 온 들판이 조용했다. 어데서 뚝하는 인기척소리가 들렸다. 무슨 냄새인가? 아니 왜놈의 노린내가 훅 풍기는것 같기도 하였다.

《앉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따르는 청년들에게 속삭이시였다. 청년들이 밭고랑에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우에 이였던 화약보퉁이를 내려서 가슴에 붙안고앉아 한참 주위를 살펴보시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아무래도 자기가 착각한듯싶으시였다. 그러나 이어 착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시였다.

《나를 따라요. 일어서지 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청년들에게 속삭이시였다. 그리고는 화약보퉁이를 안은채 몸을 수그리며 앉은걸음을 하시였다. 뒤따르는 청년들도 앉은걸음을 해나갔다. 그들은 한시간나마 이 위험지대를 그렇게 뚫고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보퉁이를 안았는데도 어찌 날쌔게 움직여나가시는지 뒤에선 청년들이 따라내질 못했다. 청년들은 오금이 쑤시고 짐이 달리워 어깨가 젖혀지고 해서 땀들을 뻘뻘 흘리였다. 강가에 다달으니 모두들 온몸이 척척히 젖었다.

일행은 옷을 입은채 강으로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놈들이 혹시나 강 이쪽과 저쪽의 련락을 두절시키기 위해 강가에 파수라도 세우지 않았는가 해서 각별히 조심하며 물소리가 요란한 여울로 들어서시였다. 얼음같이 찬 물이 아래도리를 휘감으며 마구 딩굴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물이 차다는 생각은 없으시였다. 어떻게 하든 화약짐을 물판에 떨어뜨리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시였다. 돌에 강태가 앉아 쭐쭐 미끄러졌다. 딩구는 물이 얼굴에까지 뛰여오른다. 청년들은 서로 붙들고 건넸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용케도 물살을 헤가르며 혼자서 저쯤 앞에서 나가시였다. 물속의 둥근달 그림자가 눈부시게 일렁거리며 앞을 밝혀주었다.

강을 거의 건너갔을 때 저쪽 강가에서 불시에 총성이 울리며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김정숙동지께서 짐작하신것이 옳았다. 놈들은 정말 강가 여러곳에 파수를 세우고있었던것이다. 총소리는 한참 몰방으로 와드득거리며 물우의 공기를 찢어놓았다. 강가 자갈밭에서는 탄알 박히는 소리가 칙칙 울리였다.

강을 건너선 김정숙동지께서는 잽싸게 청년들을 이끌고 저편 버들숲 우거진 버덩으로 내뛰시였다. 골짜기쪽에서 흘러나오는 개울물을 끼고 바람처럼 달아나시였다. 언덕을 넘어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에야 발광하던 총소리가 멎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화약짐들을 내려놓고 잠간 숨을 돌리시였다. 모두 젖은 옷들을 비틀어짰다.

건너편 동구쪽에선 불빛이 왔다갔다했다. 아마 총소리에 놀라 천막속에 있던놈들도 모두 달려나온것 같다. 뭐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말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또 골짜기로 걸어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찬물에 몸은 얼었는데 이마에선 땀이 자꾸 흐르시였다. 몹시도 배가 고프시였다. 인제 시장기가 오는 모양이였다. 그렇지만 사흘이고 나흘이고 굶어서 견딜만한 강기가 있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른 청년들 못보게 손을 재게 놀려 치마끈을 죄여매시였다.

병기창 있는 골짜기에 다달으니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불이 번쩍번쩍 비쳐왔다. 그런데 병기창 앞버덩에서는 아낙네들이 웅성거리고 웬 장정이 나서서 산너머로 넘어가 자리를 정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산너머면 어떻고 여기문 어떻소.》

아낙네들은 어데 있다가 몰려왔는지 이고온 보따리들을 텅텅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벌써 오자바람으로 기진해서 누운 아낙네들도 많았다.

《글쎄 우리 병기창도 만들던 작탄이나 마저 만들곤 범골로 더 깊이 들어갈 작정이란말요. 지금 저놈들이 점점 더 집요하게 달려드는판인데 여기가 무슨 안전지대라고 자리를 정하겠소?》

《병기창을 옮기면 우리도 그리로 가지요.》

《아니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병기창까지 왜놈들 눈에 로출시켜놓을 작정이요? 깊숙이 들어갔다가 왜놈들을 다 때려눕힌담에 나오문 좀 좋소.》

한참 말시비가 벌어졌다. 그래도 아낙네들은 찰떡처럼 땅에 붙어앉아 일어서질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을 이끌고 들끓는 아낙네들속을 얼른 빠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병기창으로 곧장 올라가시였다. 불빛이 새나오는 거적문을 밀고 화약보퉁이를 인 머리부터 들이미시니 땀이 번지르르한 시뻘건 얼굴들이 모두 깜짝 놀라 쳐다본다.

《이게 뭐요?》

모루앞에 앉았던 병기창책임자 영택이가 불쑥 일어서며 묻는다.

《태봉에서 화약을 가지고 왔어요. 그새 얼마나 고생들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임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아니 이런!···》

영택이는 입을 쩍 벌리고 어쩔바를 몰라 쩔쩔매였다. 그도 김정숙동지를 알고있지만 언제 알은체할 경황도 없었다. 뒤를 이어 련속 청년들이 들이밀렸다. 한아름씩 되는 등짐을 지고 병기창안이 터져나가게 밀려들다가 종시 다 들어서지 못하고 더러는 밖에 멎어섰다.

병기창안에선 법석이 일어났다. 화약이 오던중 제일 많이 왔다. 이거면 작탄을 얼마나 만들지 모른다. 지금 싸움터에서는 작탄 작탄 하며 작탄의 요구가 불같은 때에 이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병기창일군들은 신명이 나서 등짐들을 받아내렸다. 그들은 그걸 들고 풍구가 놓여있는쪽 뒤문으로들 빠져나갔다. 화약고가 있는곳으로 가는것이였다.

영택이는 옷이 젖은 청년들을 불앞으로 다가들서라고 했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함빡 젖은 옷과 신들메를 한, 코가 째진 고무신을 보고는 저편에 있는 납을 녹이던 화로를 힝 들어다 앞에 놔주었다.

《고마와요.》

《누가 할 소릴···》

영택이는 눈을 슴벅거리며 불을 헤쳐놓는다.

병기창앞버덩의 아낙네들속에 앉아있던 분임이는 복녀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복녀동무, 인제 이리로 지나간게 정숙동무 안예요?》

《언제 그 동무가 지나갔어요?》

《방금 청년들 앞장에 서서 뭔가 한보퉁이 이고 병기창으로 올라갔어요.》

《난 청년들밖엔 못봤는데···》

역시 복녀는 보는것도 분임이만치 찬찬치 못했다.

《꼭 정숙동무같았어요. 얼른 지나치는 옆얼굴을 봤는데···》

《모르겠어. 정숙동무가 뭘하러 여기 나타나겠기에 그래요. 태봉지구에 나가서 사업하는 동무가···》

복녀는 지금 그런 소리를 들을 경황이 없었다. 근거지에 들어오듯마듯 이런 시련을 겪게 될줄은 몰랐다. 대걸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수 없다. 여기 들어와 얼마동안 치료를 받다가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반일자위대에 들어 쌈터로 나갔는데 그뒤의 소식은 통 알길이 없다. 적탄에 또 어떻게 되지나 않았는가 하는 불안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분임이는 어느새 찬 땅에 몸을 오그리고 누웠다. 기진해서 잠이 드는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죽느냐 사느냐 하며 쓰러져 울던 녀자가 용케도 란리를 이겨나가고있다. 복녀의 품에 기대누운 순옥이는 가끔 뭐라고 입속으로 종알거리며 자고있다. 그 불쌍한것이 더 반쪽이 되였다. 늘 귀엽게 생긴 작은 입으로 고통스럽건말건 매 안맞고 욕 안먹는 근거지가 좋다고 재잘거릴 때엔 눈물이 나서 볼수가 없었다. 복녀는 자는 순옥이를 다가끼고앉아 자기도 끄덕끄덕 졸았다.

그는 그러다가 앉은채 잠이 들었다. 순옥이의 머리우에 둥근 볼편을 붙이고 한참씩 코를 골다간 큰 머리빡이 디그르르 굴며 뚝 떨어지군했다. 그러면 그는 두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빙빙 돌아보았다. 그러다간 또 큰 눈망울에 눈가죽을 스르르 내리덮으며 순옥이의 머리우에 볼을 올려붙였다.

딴 아낙네들도 모두 쓰러졌다. 복녀처럼 앉아서 자는 아낙네들도 많다. 오늘 일이 고되겐 되였다. 정부에서 능산쪽 안전지대로 옮겨가란다는 지시가 있기에 모두들 강을 끼고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십여리나 올라갔을 때 어데 피난민들인지 강건너쪽으로 되밀려내려오며 대북동앞에 적들이 나타나 길이 막혔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바람에 이쪽에서도 도로 밀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산을 타고 개안촌뒤골로 향했다. 그런데 아낙네들은 내려오다가 산을 뒤지는 적을 만났다. 정황은 위급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산봉우리를 두셋씩 넘으며 따라오는 적들한테 바위를 내려굴리기도 했다. 그들은 겨우 봉변을 면하고 바로 병기창뒤 큰산너머에 모여들어 방금 저녁을 한숟갈씩 잦혀먹고 이리로 넘어왔다. 그들의 생각엔 차라리 튼튼한 남정들이 모여들어 일하는 병기창이라도 의지하고 사는게 나을것 같아서 넘어온것이였다.

지금 병기창에선 태봉에서 화약이 오고 또 끌끌한 청년들이 밀려드는바람에 오늘밤으로 아예 병기창을 범골오지로 옮겨가려고 서둘렀다. 놈들의 눈이 언제 여기 와닿을는지 모르는 형편인데 화약을 잔뜩 받아놓고 앉아서 뚝딱거리며 작탄을 만들수는 없는것이였다.

영택이는 병기창일군들과 방금 당도한 청년들에게 화약을 지워 범골로 떠나보내고는 병기창시설을 옮겨갈수 있도록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를 않았다. 풍구도 둘이나 있고 모루, 연장궤짝, 구석에 쌓여있는 쇠붙이만 해도 짐으로 꾸리려면 몇짐을 꾸릴지 알수 없었다. 무엇에 쓰려는것인지 혼자힘으로는 이겨낼수도 없을것 같은 철장대며 철판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감을 보니 무슨 사람으로 밤새 그 일을 다 해낼지 까마득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영택이를 도와 짐을 꾸리다가 얼른 아낙네들이 누워있는 버덩으로 달려내려오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아까 화약을 이고 올라올 때 떠드는 아낙네들을 보고 어떻게 이 엄혹한 때에 이런 비조직군중이 있을가 하는 생각도 하시였었다.

녀자들이기때문에 이렇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것이 몹시 분하시였다.

아낙네들속으로 오시니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 가위눌린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무둑해지고 목이 메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이께서는 급하게 아낙네들을 깨우시였다. 모두들 눈을 비비며 일어나앉았다.

《아주머니들, 제가 아주머니들한테 급하게 말씀을 좀 드릴게 있어요. 물론 아주머니들이 고생스럽기야 좀 고생스럽겠어요. 집을 잃고 산속에 들어와 적의 추격을 받으며 덮을것도 없이 찬땅에서 자고 자실것두 못자시구··· 그러나 전 지금 그런 말씀을 드리려는건 아니예요. 아주머니들이 이 어려운 때에 무엇을 생각하구 무슨 결심을 가지며 무슨 일을 해야겠는가 하는것을 말씀드리자고 하는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둑우둑 앉아있는 아낙네들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드시였다. 한쪽에선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하고 한손을 열손으로 가르지 못해서 빡빡 애를 쓰며 뛰기도 하는데 부녀자들이라고 이렇게 쫓겨만 다녀서야 되겠는가? 미처 조직의 손이 미치지 못한탓은 있겠지만 이들자신은 이런 때 왜 아무런 자각이 서지 못할가.

《아주머니들, 전 정말 분해서 저 상촌벌판을 내려다볼수 없어요. 저 벌판에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었댔어요? 왜놈들이 없는 자유세상에서 누구나 다 장군님 뜻으로 단합되여 장군님한테서 땅을 받고 학교도 세워놓고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게 다 어떻게 됐어요? 왜놈들이 쳐들어와 죄다 불지르지 않았어요. 그리고도 부족하여 우릴 잡아죽인다구 매일같이 산과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질 않아요? 우리가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우린 그저 치마를 두른 사람들이니까 강건너 불보듯하고 앉아있다가 인민혁명군이나 남정네들이 피를 흘리면서라도 놈들을 내몰아주면 그때엔 들고일어나 춤을 춰도 괜찮겠다, 이렇게만 생각할수 있겠어요? 치마를 두른 사람은 사람이 아니겠어요? 녀자는 녀자이기때문에 더 많이 싸워야 해요. 긴긴 세월 천대속에서 살아온 눈물과 한숨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갑절 더잘 싸워야 해요!》

모두 눈들이 둥그래져서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았다. 김정숙동지의 절절하신 호소와 함께 달빛받은 그이의 얼굴이 유난히 아름다운데 아낙네들은 정신을 빼앗겼다. 고무신 신으신 맨발이 좀 시릴가고 은근히 걱정하는 아낙네들도 있다.

《우린 일어나 도와야 해요. 누가 고달프지 않거나 잠자고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뭐 제 한몸 편안하기 위해서 산속으로 다니거나 기맥을 늘어뜨리고 자고있겠어요? 지금 피흘리며 싸우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아주머니네 남편들 아니면 아들들, 시동생들, 시형들 다 피줄이 이어진 육신 내 몸과 같은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들이 지금 행복스럽던 상촌을 지켜내자고 그렇게도 애를 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떤 땐 제 한목숨 내대구 적의 총끝에 몸을 들이밀기도 해요. 그들이 애타하는것, 그들이 부르짖는것을 우리가 몰라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이들의 어머니라, 이들의 안해라, 이들의 피줄이라 이르겠어요. 걱정스럽고 가슴이 타서도 이러고만 있겠어요? 이러고만 있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이야기를 하시였다. 지금 녀자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느냐, 싸움터에 나가서 밥을 지어줄수도 있고 더운물을 끓여다 대접할수도 있고 작탄운반, 돌운반, 이것도 다 녀자들이 할일 아니냐, 오늘밤엔 저 병기창을 범골로 옮겨야 할텐데 그 시설은 누가 다 옮기겠는가, 이 일을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한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이 있겠는가, 짐도 힘에 알맞게 꾸려 일텐데 산을 못넘을건 무어고 내를 못건늘건 무언가.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는 절절하시였다. 마디마디 사랑하는 심정으로, 뜨거운 입김으로 정성의 눈물을 담아서 호소하시였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이 치마끈을 죄여매며 일어섰다. 술렁거리며 들끓는 소리가 일어나기도 했다.

《언니!》

별안간 그 누가 김정숙동지의 아래도리에 와서 매달리며 부르짖었다. 얼른 돌아보시니 산당고개너머에서 떠나보낸 순옥이였다.

《아니 네가 여기 와있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순옥이를 꽉 붙안으시였다.

《언니, 난 정말 언니 말 들으니까 내가 잘못한게 생각나. 글쎄 전번날말이야, 이아래 골짜기에서 쌈하는데 총쏘던 아저씨들이 목마르니까 등성이를 뛰여넘어와 샘물을 꿀딱꿀딱 마시지 않아? 그래서 내가 물길어다드리자구 이쪽골짜기로 그릇 얻으러 나오다가 총알이 뿅하고 날아오는바람에 납작 엎드리지 않았어. 그리군 그저 그만뒀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순옥이의 살핏하게 여윈 볼을 두손으로 꼭 싸주시였다. 어린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올려다본다. 복녀와 분임이도 달려왔다.

《아이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복녀가 부르짖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을 또 꽉 붙안으시였다.

《언제 이리로 왔어요?》

복녀가 물었다.

《아까 저녁에 왔어요.》

《어쩜 정숙동문···》

복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량심에 충격을 받았는데 김정숙동지께서 아까 오셨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까 온 녀자가 이렇게 앞장에 나서서 뛰는데 자기는 이때까지 여기 와서 무얼 했는가. 그동안 병원에서 바쁜 일손을 돕기는 했지만 생사를 가르는 가장 어려운 초소에 자기를 세우지는 못했다. 인제야 정말 혁명이란 어떻게 하는걸 혁명이라 하는것인지를 알듯싶었다. 분임이는 말도 못하고 그저 눈굽만 훔치고있었다. 몸도 좀 나아진듯싶었다.

《분임아!》

《응?》

분임이는 련민의 정이 짙은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넌 아직두 울기만 하냐? 그래 떠나올 때보다 몸은 좀 어떠냐?》

《많이 나졌어. 오자 이어 병원에 들어가 치료두 받구 요새두 내내 약을 가지구 다니며 먹질 않니···》

분임이는 입술을 감빨며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애썼다. 어쨌든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마우시였다. 기나긴 설음을 벗어던지는 이 가냘픈 녀성이 그렇게 쉽사리야 제힘으로 일어서줄가. 아직도 더 많이 등을 밀어주고 더 많이 손목을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을가.

한참 우실거리며 준비들을 갖춘 아낙네들은 우- 병기창으로들 밀려올라간다. 복녀도 아낙네들속에 섞였다. 분임이며 순옥이도 중둥매끼를 죄여매며 떠날 준비를 했다.

《분임아, 넌 그런 몸으로 어디로 가겠다고 그러니?》

《난 왜 못가? 가서 힘에 맞을만한 임을 이면 될것 아니냐?》

《글쎄 넌 못간다. 얘 순옥이, 넌 또 왜 그러니? 너는 여기서 이 언니를 잘 보살펴야 한다. 이 언닌 지금 앓고있는 언니야.》

《이 언닌 앓지만 난 여기서 놀구싶지 않아, 언닌 시중 안들어줘두 돼.》

《왜 시중 안들어줘두 되겠니? 함께 있으면서 동무를 하는것도 시중이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을 겨우 달래놓고 재빨리 병기창으로 올라가시였다. 병기창엔 아낙네들이 밀려들었다. 병기창 책임자 영택이는 김정숙동지께서 아낙네들을 불러일으키신줄은 모르고 이게 별일은 별일이라고 떠들어올렸다.

《하, 이거 옛날 오서방네 집에서 밤자고 일어나니까 도깨비들이 초가지붕을 다 벗겨내리고 박서방네 기와를 벗겨다 이었다더니 어째 우리 병기창에도 대통운이 트는것 같다.》

《어이구, 이 아주버니 입심두 세다. 얼른 짐을 묶어요. 이건 뭘루 묶겠는지 매끼나 내놔요.》

법석들 끓었다. 아낙네들이 웽겅뎅겅 철판을 맞들어 내가기도 하고 파쇠를 거적에 싸서 묶기도 했다. 한쪽에선 벌써 연장궤짝들을 이고 범골을 향해 떠났다. 기운이 센 아낙네 둘은 무거운 풍구를 이고 목을 끄덕끄덕하며 병기창 마당으로 돌아나간다. 아낙네들속에는 어느틈에 와서 끼였는지 깨진 솥을 인 분임이와 한발만한 쇠장대를 멘 순옥이도 끼여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건너로 보낼 작탄이 몇상자 있다기에 아낙네들을 데리고 옆골짜기로 내려가시였다. 영택이는 돌굴속으로 기여들어가 끙하고는 작탄을 한상자씩 내밀었다. 내미는족족 아낙네들이 받아이였다. 복녀도 한상자 받아이였다. 그는 인제 진짜 혁명하는 싸움마당으로 나서는것 같아 가슴이 뛰였다. 상자를 다 들어내온 영택이는 개안촌 맞은편엔 무시로 놈들의 총알이 미치는곳이니 샘내앞으로 올라가 여울을 건느라고 했다.

《알겠어요. 모두들 저를 따라와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숲을 헤치며 올라가시였다. 아낙네들이 뒤를 따랐다. 얼마 안걸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걸음이 빨라지시였다. 등성이우에서 머리태를 드리우고 치마자락을 날리는 뒤모습이 얼른하더니 이어 사라져버렸다.

《기발이군. 초연속을 헤쳐나가는 기발이야!》

돌굴앞에 선 영택이는 중얼거리며 땀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