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1

 

제 12 장

1

 

나팔소리가 울린다. 다급한 신호나팔소리가 밤공기를 째며 퍼져나간다. 상촌일대엔 어둠과 물안개가 꽉 차있다. 개안마을근방엔 늦가을 물안개가 산허리까지 기여올라가 구름처럼 덮였다. 나팔을 그렇게 불어대도 온 동네는 아직 조용했다. 기송이는 높은 나무가지에 발을 벋디디고 서서 나팔을 이리 돌리며 불고 저리 돌리며 불었다.

나팔소리가 좀더 컸으면 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동네고 산이고 온통 들었다놓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가싶었다. 상고개가 위험하기에 희섭선생과 회장아저씨가 큰벌쪽에서 급하게 걸어들어오며 동네어구에서 망을 보는 자기에게 나팔을 불라는게 아닐가. 그것도 급한 비상신호나팔을 반복해서 불라는게 아닌가.

정말 상고개쪽이 터져서 적이 큰벌로 넘어오는것일가? 요새 상고개너머에 적의 대병력이 집결한다는 소문이 줄곧 돌았다. 그리고 상고개쪽에서 매일과 같이 큰 싸움이 벌어지고있다는 소문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정황이 급해서 아직 날이 샐 때도 멀었는데 온 동네사람들이 깨나도록 나팔을 불라고 할줄은 몰랐다.

《얘, 기송아!》

밑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송이는 나팔을 입술에서 떼며 아찔한 나무꼭대기우에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무밑이 캄캄해서 어느 앤지 알수 없다.

《너 누가 나팔을 불라던? 아직 밤중인데···》

마을가운데서 망보던 아동단원들이다. 몇명이나 달려왔는지 밤중에 무슨 나팔이냐고 밑에서 법석 끓는다.

《불라고 해서 부는거야. 너희들은 왜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구 이리로 모여왔니?》

《네가 나팔을 부니까 모여왔지?》

철이의 대답소리가 들린다.

《빨리 자기 초소로 갓!》

기송이가 소리치자 애들은 그담엔 대꾸를 못하고 슬금슬금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기송이는 또 나팔을 추켜들어 입술에 붙이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팔을 불었다.

얼마후에야 어둠속에서 온 동네가 발끈 뒤집혔다. 집집마다 자는 애들을 깨우며 적이 온다는 신호나팔소리같다고 떠들었다.

바로 이런 때 상고개쪽에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응도와 희섭이들이 상고개에 나가서 알고 들어온 정보가 정확했다. 놈들은 지금 유격근거지에 대한 발악적인 전면공세를 취하고있었다. 특히 놈들은 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왕청근거지보위의 요충지대인 여기 상촌근거지를 아예 이번 공세에서 결단을 낼 잡도리로 전례없는 총공세를 들이대자고 했다.

그래서 놈들은 월평, 태봉 지구에 남아있던 저들의 군대, 경찰 무력은 말할것도 없고 국경건너에 주둔하던 일부 무력까지 깡그리 긁어모아 본래 있던 부대들과 힘을 합쳐서 오늘아침 일시에 상고개를 치고 넘어오려는것이였다. 어제 공방전에서 사로잡은 장교 두놈의 입에서 그 비밀이 새여나왔다. 바로 놈들의 그 대공격이 지금 시작되는것이였다.

상고개쪽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 동네의 여기저기에서는 샘내, 북동으로 피난을 가란다고 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혁명정부에서 비상회의를 한 사람들이 뛰여다니며 알리는것이였다. 정부는 강건너 개안마을 뒤골과 개암골 산줄기를 타고올라가 북동, 샘내 같은 동네들이 있는 골짜기를 피난처로 정했다. 그래서 강 이쪽은 북동, 샘내로 가고 강 저쪽은 개안말 뒤골로 빠져서 봉수동으로 피난해가라는것이였다. 이런 지시가 전해지자 근거지안은 더욱 끓어번졌다. 집집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량식도 물건도 그냥 두고 갈수는 없었다. 피난을 가랄 때에야 이곳으로 왜놈이 들어올수 있다는 소린데 어떻게 량식을 두거나 물건을 두고 갈수 있겠는가. 량식은 더더구나 그렇다. 그놈들의 아가리에 매운재를 처넣으면 처넣었지 어찌 량식을 두고 간단말인가. 물 한방울도 두고 가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인젠 서슬이 올라서 펄펄 뛰였다. 량식을 퍼내다가 달구지에 싣는 집들이 많다. 량식이 그렇게 많은것도 아니여서 달구지 하나에 다섯 여섯집 량식을 실었다. 차응도회장이 짐 싣는데로 와서 지휘를 하며 돌아갔다. 희섭이, 리진구들도 떨쳐나서 량식자루를 메내온다, 이불보퉁이를 들어내온다 하며 법석을 했다.

《이게 간단한 싸움이 아니니까 산에 가서 자리를 잡고 인민혁명군에 더운밥이나 해서 나르시오. 그렇다고 걱정할건 없구.》

차응도회장은 아낙네들한테 아이를 업혀주고 띠도 졸라매주며 타일렀다.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낮게 가라앉은 물안개가 밀리기 시작하며 집과 길이 드러나고 언덕들이 드러났다. 길우에는 사람들과 짐수레들이 줄을 지어 떠난다. 어데서 강아지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마 집짐승까지도 죄다 안고 떠나는것 같았다. 달구지들은 짐을 집채처럼 싣고 삐걱거리며 굴러간다. 한 늙은이가 지팽이를 분주히 휘두르며 걸어가다가 총소리가 울리는 상고개쪽을 향해 서서 웨친다.

《이 개같은놈들아! 천하에 더러운 이 짐승같은놈들아! 네놈들의 대가리우에 마른벼락이 안내릴줄 아느냐!》

사람들이 로인을 부축하며 어서 가자고 했다.

어디서인가 꽝하는 폭음이 울리였다. 이건 상고개쪽에서 나는 폭음이 아니라 바로 마을근방에서 울리는 폭음이였다.

사처에서 이게 무어가 터지느냐고 놀란 소리들을 질렀다. 또 한번 그런 폭음이 울리였다. 그러더니 연거퍼 여기저기서 꽝꽝 터지고있다. 그제야 사람들은 상고개너머에서 놈들이 포를 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모두 술렁거리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누구인가 겁을 먹지 말고 개암골 뒤골짜기로 곧장 올라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놈들의 박격포탄은 점점 더 세차게 날아왔다. 행길옆에서도 터지고 밭고랑에서도 터지고 했다. 사처에서 폭음과 함께 흙이 뒤집혀 일어나군하였다. 학교쪽으로 올라가는 길옆에 있던 초가집 한채가 박격포탄에 훌 날려 일어났다. 벽토와 재목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와르르 떨어져내렸다.

무서운 시련이 별안간에 닥쳐들었다. 압제의 뿌리를 뽑아던지고 자유와 환희속에서 건설한 생활이 살을 갉아내고 가슴을 찢어내는것 같은 아픔속에서 파괴당하고있다. 모두들 분노에 치를 떨며 걸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아동단합숙에서도 소동이 일어났다. 여기서도 짐을 꾸리는 일이 벌어졌는데 새벽교대로 나가 망을 본 애들이 늦게 들어와서 시간이 늦어졌다.

짐이라야 별것은 없었다. 언제나 메고나설수 있게 제가 자는 머리맡에 비상용배낭을 한개씩 걸어놓아두는것이 있는데 거기에 공부하던 공책 몇권과 입던 옷가지들을 꿍져넣으면 되였다. 그런데 리상녀와 금실이가 배가 불룩한 마대자루를 맞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자, 어서들 와서 한몫씩 받아가거라. 제 먹을건데 제가 가지고 가야지 이 란시에 언제 혁명정부에 가서 달구지를 내라겠니?》

《그럼요. 인젠 모두 힘이 장수같은데 그 힘을 뒀다 어디다 쓰겠어요? 나두 서너말 이겠어요.》

애들이 못지고 가겠다고 뒤를 낼가봐 리상녀와 금실이가 눈을 끔벅이며 하는 말이였다. 어제 혁명정부에서 타온 아이들의 열흘분 식량이였다.

《어머니, 념려 말아요. 그까짓걸 못져요? 헹···》

태국이가 꽤 무거워보이는 배낭을 닁큼 들어보면서 한마디 뽐냈다.

《정말야, 난 상기두 이만큼 더 질수 있어!》

역시 꼬마동이 태호도 배낭을 진 두어깨를 으쓱하며 한마디 했다. 둘이 아직 꼬마이긴 하지만 개안촌앞 강가에서 이리로 몰려올 때에 비기면 어방없이 컸다. 키들도 크거니와 볼편도 넙죽해졌다. 저마끔 흰소리를 하며 줄레줄레 배낭아구리를 젖혀들고 상녀에게로 다가왔다. 상녀와 금실이가 퍼주는 쌀을 받은 애들은 배낭을 토방에 내다놓고 졌다벗었다하며 법석을 했다. 철이의 짐이 제일 컸다. 그는 배낭우에 어린 꼬마들이 덮을 이불 한채까지도 겹쳐 졌는데 짐이 엉뎅이로 처져내려가 멜띠를 열번도 더 죄였다늘궜다했다.

애들은 박격포소리가 꽝하고 울렸을 때엔 모두들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이거 뭐야?》

《대포다.》

《어데 와 맞았니?》

모두 집앞으로 달려나가 여기저기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동네에선 사람들이 북적 끓는데 도대체 대포알이 어데 와 떨어졌는지 알길이 없다. 이어 또 꽝하는 폭음이 울리였다. 그제야 애들이 저기다 저기다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흙이 뒤집혀일어나는것을 못본 애들은 연방 어딘가고 물으며 발뒤축을 들었다. 그담엔 폭음이 련속 울리였다. 그제야 모두 포탄 떨어지는것을 딱히 제눈으로들 보았다. 포탄은 저기 큰벌에서 들어오는 마을어구에서 불기둥을 일으키며 터지고있었다.

《야, 오늘은 한바탕 해보겠다.》

《체, 네가 뭐 해볼테냐?》

《왜 못해봐? 그까짓 왜놈을 못당해?》

《까불지 말어!》

애들은 지금 반장인 기송이가 들어오지 않아서 포탄이 튀는 마을을 근심스럽게 내려다보고있었다. 새벽에 망보러 나갔던 애들의 말을 들으면 나팔을 불고난 기송이는 희섭선생이 와서 뭐라고 하자 이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는것이다. 어떤 애들은 개안마을에 건너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기송이가 안왔니?》

짐을 다 꾸리고난 금실이와 리상녀가 토방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금실이는 꼬물만치도 겁나하는것 같지 않은데 리상녀는 포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뒤부터는 사시나무떨듯하였다.

《아직 안았어요.》

《그런데 얘가 망을 보다가 어데로 뛰였게 아직 안온단말이냐? 저렇게 대포를 쏴대는데 어데 가있담?》

리상녀가 지청구를 하며 어쩔바를 몰라 또 부엌으로 달려들어간다. 금실이도 따라들어갔다. 부엌세간이 엉망으로 되였다. 가마 하나를 뽑아 그속에 그릇들을 집어넣고 큰 보자기로 쌌다. 금실이가 그것을 성큼 안아들고 구들우에 올라선다.

《아니 건 놔두라구, 방안에 있는 쌀짐만 해두 무거울텐데···》

리상녀가 만류하였다.

《일없어요. 쌀자루는 이우에 척 얹으면 이고 뜀박질이라도 하겠어요.》

구들에 올라간 금실이는 가마를 싼 보자기를 끄르고 쌀이 좀 남은 마대자루를 그우에 덧짊었다. 그러니 보끈이 모자랐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다시 뛰여내려가 나무단매끼를 풀어이어서 졸라맸다. 짐덩어리가 덩실하게 커보였다.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끙소리를 지르며 짐을 한번 들어보기까지 했다. 소중하게 끌고 다니던 제 보짐 생각이 나서 얼른 손을 디밀어 보퉁이안을 만져보기도 했다. 양은쟁개비 끓듯해도 일은 잘해냈다. 그러게 김정숙동지께서 태봉으로 내려가신뒤엔 상촌부녀회 일도 보고 합숙아이들 교양도 하는데 맘만 내키면 몸을 아끼지 않고 뛰였다. 오늘아침에도 벌써 부녀회 회장네 집에 갔다와서 짐꾸리는 일을 시작했다.

또 꽝하는 폭음소리가 울리였다. 어디 멀지 않은곳에 떨어졌는지 방바닥이 움씰 흔들린다.

여기저기서 포알 터지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모두 불안스럽게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무한한 물은

산곡간의 적은 물이 회합함이요

 

마당이 우렁우렁 울리였다.

《응, 저녀석들이 제법 구실을 한다!》

리상녀가 애들을 내다보며 표정이 밝아져서 말했다.

《어머니, 인젠 빨리 떠나야 하지 않겠어요. 포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는데···》

금실이는 임을 안고 일어서며 말하였다.

《떠나야지. 그런데 이 기송이녀석은 왜 안올가? 그녀석이 와야 떠나지?》

《글쎄말예요. 그럼 어머닌 애들과 먼저 떠나세요. 내가 알아보고 뒤따를게요.》

이러는데 밖에서 나팔소리가 울리며 애들이 기송이 온다고 소리를 질렀다. 리상녀와 금실이는 꾸려놓은 짐들을 안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정말 기송이가 개미진같이 늘어선 애들을 앞세우고 학교쪽길로 걸어올라오며 나팔을 분다. 아까같이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 나팔소리가 아니였다. 마디가 길고 꺾어넘기는 가락이 기운을 돋구기도 했다.

《저건 무슨 애들이냐?》

리상녀가 애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와요.》

《온 저런, 장한녀석같으니라구!》

애들이 줄을 지어 들어온다. 합숙마당에 있는 애들은 더욱 신이 나서 노래를 합창했다.

애 하나가 앞에 서서 박자를 맞춰 팔을 휘두르며 마주오는 애들을 내다본다. 저편에서는 기송이가 나팔을 이쪽저쪽 돌리며 더 구성지게 마디를 꺾어넘긴다.

합숙근방은 노래소리, 나팔소리로 들썩들썩 했다.

 

우리들의 적은 지식 발달하기는

천신만고 지난후에 능히 하리라

 

와아- 아이들이 합숙마당으로 밀려들어왔다. 대렬이 흩어져 합숙마당에 있던 애들과 한덩어리가 되였다. 강 이쪽 아이들뿐만아니라 강 저쪽 개안촌, 개웃마을 아이들도 많았다. 학교 학생이란 학생은 죄다 모아가지고 몰고온것 같다. 그 애들도 모두 책과 쌀이 든 배낭이나 보퉁이들을 졌다. 새로 온 아이들까지 합쳐서 노래가 시작되였다. 노래소리는 하늘을 흔들듯이 우렁차졌다. 기송이는 토방으로 뛰여올라가 나팔주둥이를 높이 쳐들고 노래곡조에 맞추어 나팔을 불었다. 그바람에 노래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또 어디선가 꽝하는 폭음소리가 울리였다. 집이 드르르 울리고 서까래밑에 바른 흙이 떨어져내렸다. 포탄은 아까보다 분명 더 가까운데서 터진것 같다.

그러나 마당에 꽉 들어선 애들의 노래소리는 기송이의 나팔소리와 함께 점점 더 높아지고있었다. 나팔을 부는 기송이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검은 눈섭에 코마루가 둥실한것이 사나이답게도 생겼다.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생각이 나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은 태봉에 가서 무슨 일을 맡아안고 뛰는지··· 여기서 눈물과 사랑으로 길러낸 아이들이 이렇게 포탄도 무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는줄 알기나 하고있을가. 리상녀도 김정숙동지의 생각을 하는지 노래부르는 애들을 내려다보며 두눈을 슴벅거리고있었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나서야 애들은 출발하였다.

아침해발이 퍼지는 개암골 웃골짜기로 줄을 지어 들어가는 애들이 또 혁명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