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3

 

제 11 장

3

 

가을이 깊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 덕산동지역으로 오신후 벌써 적잖은 시일이 흘러갔다. 동네마다 변화가 일어났다. 30여명의 대렬로 늘어난 덕산동부녀회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게 되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신개동과 옥촌의 부녀회조직도 건너다니며 지도하시였다. 어느 동네나 다 사정은 비슷하였다.《정수분자》만 골라들인다는 그 좁은 문으로 들어오자고 애쓰다가 밀려난 녀인들이 많았고 부녀회에 뭉친 녀인이란 불과 몇명씩들밖엔 안되였다. 그렇기때문에 부녀회에 들지 못한 광범한 부녀자들속에서 부녀회에 대한 불평불만이 부풀어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의 좁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부녀회에 들수 있는 부녀자들은 준비정도에 따라 영향을 주고 훈련을 시키면서 받아들이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녀회를 그저 뭉쳐놓지만 않으시였다.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 밀고나가시였다. 어느 동네고 상촌처럼 매일밤 한장소에 모여앉을수는 없어서 부녀회원들의 글공부를 네댓씩 모여앉아 하게도 만들었고 혹은 두셋씩 모이게도 만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밤마다 마을과 동네의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일깨워주는 일에 침식을 잃으시였다. 글을 처음 배우는 아낙네들에게는 밤새워 책을 매주고 겉가위에 이름을 써주기도 하시였다.

《세상에, 이게 내 이름이요? 처음 제 이름과 인사를 하는구만···》

책을 받아들고 앉아 이런 소리를 하며 웃는 녀인들이 많았다. 어떤 녀인은 제 이름을 들여다보며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했다. 캄캄한 밤중에 인제 겨우 눈을 빠끔히 뜨고 제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들여다본다고나 할가.

한편 김정숙동지께서는 덕산동 배증녀, 옥촌부녀회책임자, 신개동부녀회책임자 셋을 따로 모아놓고 교양주기도 하시였다. 조직이 잘되려면 책임자들이 잘해야 된다. 책임자들이 잘못하면 일껀 녀자들을 뭉쳐놓았다 해도 뭉치지 못한것이나 다름없다. 야학도 책임자들이 틀어쥐고나가야 하고 부녀회원 한사람한사람을 다 틀어쥐고나가며 배워주고 이끌어줘야 한다. 그리고 책임자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놓고 멀리 앞을 내다볼줄도 알고 하나를 놓고 둘셋을 생각할줄도 알아야 한다.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는 마디마디 옳았다. 부녀회책임자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김정숙동지가 점점 더 큰 산같이 올려다뵈였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부녀회책임자들부터 앞이 환해지고 물계가 터서 군중을 묶는 일에 새로운 바람을 일궜다. 동네마다 부녀자들 생활에 생기가 일어났다. 덕산동, 옥촌, 신개마을들에선 김정숙동지를 《우리 공작원》이라고도 불렀고 혹은 《왕청공작원》이라고도 불렀다. 누구나 다 김정숙동지를 장군님께서 계시는 왕청에서 온줄만 알았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김정숙동지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네 집에 가서 하루밤 묵으라고 손을 이끌군했다.

《인제 가죠뭐. 허구 많은 날 찾아가 뵐 날이 없겠어요?》

그리고는 한밤중에도 주저없이 길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거나 덕산동으로 돌아오군하시였다.

한번은 김정숙동지께서 옥촌 어느 집에선가 부녀회원들과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지고 헤여져 떠나시려는데 주인집어머니가 붙잡다못해 혀를 차며 말하였다.

《왕청공작원은 정말 보통녀자가 아닐세. 그렇게도 무서워하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산속도 들판도 혼자서 다니니말이야. 그러다가 왜놈이나 호랑이를 만나면 어쩌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면서 대답하시였다.

《어머니, 무섭기는 무엇이 무섭겠어요. 남자들이 다니는 길을 녀자라고 못다니겠어요?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누가 우리 나라를 찾아주고 우리 녀자들을 해방시켜주겠어요?》

(어이구, 어쩜 그릇이 이렇게 클가! 그 인끔에 그릇이 이렇게 큰 녀자야 세상에 하나지 둘이 있을가!)

주인어머니는 자기와 키가 가지런한 김정숙동지의 잔등을 쓸어내리며 감탄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언제나 수집게 웃으시였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할 때면 눈에 딴 사람같은 빛이 나타나 숙성하고 어른스러워뵈지만 보통때는 언제나 수집음과 애티가 숨겨지지 않으시였다. 이 모습이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을 만나려고 신개동 비밀장소로 향하시였다.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부녀회조직들을 대담히 확대해나가고있긴 하지만 늘 한기천이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는 일이 맘에 걸리시였다. 그래서 그동안에도 몇번 비밀장소로 찾아가보시였는데 한기천은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밀장소엔 늘 대걸이가 혼자 누워있다가 동요를 말고 장군님 말씀대로 밀고나가라고 부추겨주었다.

그런데 오늘도 비밀장소엔 한기천이 없었다. 대걸이가 혼자 일어나앉아서 어깨를 들었다놓았다 하며 상처를 매만져보고있었다. 아마 상처가 좀 나은가 어떤가를 시험해보고있는것 같았다.

《어서 들어오우.》

《상처가 좀 나아요?》

《인젠 좀 괜찮은듯하오.》

《복녀동무는 어데로 갔게 통 뵈지 않아요?》

《내가 태봉시에 좀 갔다오랬소. 그런데 정숙동무는 얼마전에 박대동네 집에 민가가 왔다갔다는 말을 들었소?》

《들었어요.》

《무슨 일로 왔다갔는지 모르겠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덕산동부녀회원들이 이야길 하는데 그저 마차를 타고 달려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다나봐요.》

《개자식···》

대걸이는 한마디 이러고는 한팔로 겨드랑의 약을 갈아붙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곁에 들어앉으며 대걸이의 손에 있는 약을 받아드시였다.

《팔을 좀 더 드세요.》

대걸이는 팔을 쳐들었다. 아직도 상처가 끔찍스러워보이였다. 헤쩍 갈라진 살이 벌거우리했다.

《아무래도 저놈이 우리가 여기 있는걸 아는지 모르겠소. 분명히 그걸 알고 왔다간것 같소.》

《무슨 그때문에 왔겠어요? 그놈이 우리들이 여기 와있는걸 알리도 없지 않아요?》

《정숙동문 셈판이 없소. 그래 그놈들은 여기다 줄을 안늘이고있는줄 아우? 그 줄이 정숙동무의 뒤를 따라다니고있을지도 모르오. 그런 각성이 무딘 소리를 하다간 일 만나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빌어먹을··· 그놈이 이 지역에 나타났을 때 해치워야 하는걸 그랬어.》

《대걸동무도 한기천동지만치나 급하군요.》

그 소리엔 대걸이가 대꾸를 못했다. 얼마뒤에야 그는 그놈의 집에서 개돼지같이 구박을 받던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난다고 저마끔 나서서 제 원쑤 갚을 생각만 해서야 되겠어요? 혁명이라는 큰 투쟁을 먼저 생각해야죠.》

《허허, 그건 나두 아오. 해보는 소리지.》

상처를 다 싸매주시자 대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걸음을 떼보았다. 다리를 옮길 때마다 어데가 켕기는지 이마를 찡그리군했다.

《한기천동지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그 사람 탐문은 왜 자꾸 하오? 맘놓고 동무 생각대루 내밀고나가우. 그도 요즘 한풀 꺾인것 같소.》

《그렇지만 내 맘대로만 해서야 되겠어요? 혁명을 한두명 힘으로 하겠기에 그런 말을 하세요? 다같이 손잡구 지혜를 합치구 힘을 합쳐야 혁명을 해내지 않겠어요.》

《허허허, 그 말두 옳소. 그러나 옳은 립장에 서줘야말이지.》

《그러게 만나서 차근차근히 제 의견도 말씀을 드리고 제가 잘못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자는거예요. 그래야 서로 속이 풀리구 단결이 될것 아니예요?》

둘이 한창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토방에서 무엇을 내려놓는것 같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문을 열고 내다보시였다. 복녀가 무엇인가 보퉁이를 내려놓고 땀을 씻었다.

《어마나, 정숙동무가 와있었구만!》

《복녀동무, 수고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나가서 보퉁이들을 안아 방안에 들여다놓으시였다.

《오, 순옥이가 왔구나!》

대걸이가 문설주를 짚고 내다보며 환성을 올렸다. 민가네 집에서 함께 고생해오던 부엌데기 고아를 잊을수가 없어서 그 애를 빼내오라고 복녀를 보냈던것인데 용케 빼내가지고 돌아왔다. 순옥이는 얼굴을 싸고 서서 울었다. 복녀가 우는 순옥이더러 방안으로 들어가라고 잔등을 떠밀었다. 순옥이는 조그만 고무신을 발끝에서 벗어던지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대걸오빠!》

《응, 잘 왔다. 나는 네가 못빠져나오는가보아 근심을 하고있었단다.》

대걸이는 큰 눈을 슴벅거리며 순옥이를 붙안았다. 순옥이는 대걸이의 품에서 어린애같이 마구 울었다.

《자 인젠 그만 울고 여기 이 언니한테두 인사를 해야지. 이 언니두 너처럼 부암 민가네 연자방아간에서 숱한 고생을 했단다.》

얼마후 대걸이가 순옥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순옥이는 눈물을 닦으며 얼른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고생속에서 피지 못해 그런지 얼굴도 대추알처럼 작아뵈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손을 내밀어 순옥이의 손목을 잡아당기시였다. 조그만 소녀애를 보니 자신의 어린시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민가네 집에서 구박을 받던 불쌍한 사람들이 죄다 빠져나와 한자리에 모였을가 하는 뭉클한 생각도 드시였다.

《그래 너 아버지, 어머니는 있니?》

《아··· 아무도 없어요.》

순옥이는 눈물을 떨구며 머리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어째 눈물이 글썽해지시였다. 이러는데 몸집이 큰 주인아낙네가 새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이구, 불쌍한것이 빠져나왔구만···》

그도 복녀가 순옥이를 데리러 간것을 알고있는것이였다.

《아주머니까지 걱정을 하시더니 왔습니다.》

대걸이의 말이였다.

《쯧쯧, 세상에 희한한 일도 다 있지. 그러니 민가네 집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 여기 다 빠져나왔군요.》

《허허허, 인젠 진짜로 편이 갈라지는것이지요.》

대걸이는 껄껄 웃었다.

복녀는 경식이가 보낸 쪽지를 대걸이에게 전하고는 보퉁이를 풀어서 옷가지를 조사해보느라고 법석했다. 밥집에 남아있는 식모들한테 사람을 보내서 입던 헌옷들을 죄다 싸내오라고 했는데 자기 옷이 다 들어있기나 한지 알수 없는것이였다. 태봉에선 짬이 없어서 풀어보지도 못했다. 복녀가 보퉁이 헤치는걸 보더니 울던 순옥이도 방바닥에 들어앉으며 제 보퉁이를 풀었다. 그도 밤중에 련락을 받고 홰대에 걸린 제 옷들을 손더듬으로 벗겨 꿍져가지고 나왔는데 다 가지고 왔는지 알수 없었다.

《에그머니나!》

한참 보퉁이를 뒤지던 순옥이는 민가첩의 모시적삼이 나오는바람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냐?》

대걸이가 물었다.

《월선이 모시적삼이야요.》

《월선이가 누구냐?》

《대걸오빠두, 월선이 몰라요? 한집안에 살면서 민가첩 이름두 몰라요?》

《응 참, 이름이 월선이였지.》

《드러운것 퉤···》

순옥이는 적삼에다 침을 뱉어 꾸겨서 내던졌다. 주인아낙네가 그 무슨 끔찍스런 물건을 들듯 두손가락끝으로 적삼을 들어서 훌 부엌쪽에 집어던진다.

《너 그 드러운것 하는 말 관둬···》

그래도 복녀가 순옥이를 타일렀다.

《어째서요?》

《그따위 소린 분바르고 사는 월선이 같은년들이 하는 쌍소리야. 혁명하는데 와선 그런 소리 하면 안돼···》

《호호호, 그럼 혁명하는데선 말두 다르나뭐.》

《다르잖구···》

《대걸오빠, 그래요?》

《그렇단다.》

《그럼 말도 고쳐 배워야겠네.》

순옥이의 약삭바른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긁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밖으로 나오시였다. 무언지 모르게 이 세상이 하나하나 변해가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민가네 집 종살이군들이 어떻게 이처럼 한꺼번에 빠져나와 한곳에 모여서 혁명이니 새세상이니 하는 꿈으로 흥분할수 있게 됐을가, 이게 바로 이 세상이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 아니고 무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쁘기도 하고 가슴이 부풀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곧장 한기천의 집을 향해 걸으시였다. 아무래도 집에까지라도 가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한기천의 집은 아지트앞 언덕너머에 있었다. 어느 농가집 헛간 두간을 얻어 제손으로 벽도 바르고 구들도 놓고 해서 집이라고 꾸리고 살았다.

김정숙동지께서 한기천네 마당안으로 들어서시니 웃방 헛간문앞에 배만치 큰 고무신 한컬레가 놓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게 바로 한기천의 고무신이라는것을 아시였다. 어떻게 쏘다녔는지 고무신 한짝은 바닥이 죄다 닳고 옆이 헤쩍 갈라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쨌든 오늘은 만나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토방으로 올라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시였다.

《계셔요?》

《··· ··· ···》

《안계시나요?》

《누구요?》

방안에서 한기천이 반문했다.

《저예요. 정숙이예요.》

《들어오우.》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서시였다. 방안이 캄캄했다. 그런 가위에 좁기까지 해서 그 무슨 굴속에 들어선것 같기도 하시였다. 한기천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시뻘겋게 달은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동인걸 보니 탈이라도 난 모양이였다.

《어디가 편치 않아 그러세요?》

《탈이 나서 좀 누워있소. 어서 앉소.》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를 휩싸며 방 웃목에 들어앉으시였다.

아직은 한기천이 어떤 감정으로 자기를 맞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한기천은 베개우에 도로 머리를 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츰 어둠이 눈에 익어 모든것이 똑똑히 보이시였다. 방안은 눈물이 날만큼 허전해뵈였다. 아무것도 없다. 난쟁이책상이 하나 방구석에 놓여있고 안쪽 시렁우엔 무슨 책꾸레미들이 대여섯개 쌓여있었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화로로 쓰는 옹배기가 하나 놓여있는데 거기에 약탕관을 들여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 이렇게 살면서도 정열이 북받쳐 뛰는구나 하는 가슴뜨거운 생각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래 요새 일이 잘되오?》

한기천은 남의 말 하듯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대꾸를 안하시고 화로에 불이 없어 약탕관에서 김이 떠오르지 않는가 해서 화로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손으로 재를 만져보시니 싸늘했다.

《불이 없어서 약을 달이지 못하세요?》

《이따가 달여먹을 작정이요. 그래 신개말과 옥촌 부녀회도 늘궜다구?》

《네···》

한기천은 그러고나선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큰 공책을 펴들고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지금 두통이 올라 골속에서 지끈지끈 방망이질을 하지만 깨알같은 글자를 열심히 들여다보고있다.

《저, 전 책임자동지한테 좀 자세히 말씀드릴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무슨 말이요?》

한기천은 공책을 내리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관지뼈가 솟고 두눈에 피줄이 엉켰다.

《다른게 아니구 전 우선 제가 여기 와서 일을 하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것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어요.》

한기천은 말없이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김정숙동지의 반뜻하게 탄 가리마를 바라보았다.

《저는 책임자동지를 도와 일을 잘하라는 조직의 지시를 받고왔는데 좀 의견이 상치되였다고 해서 늘 가까이 다니며 의논도 안하구 그저 제 생각대로 부녀회원들과 협의를 하고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부녀회가 지금 잘못 꾸려지고있다군 생각하지 않지만 책임자동지와 저 사이에 무슨 틈이 있는것 같이 된것이야 잘못된 일이 아니겠어요. 책임자동지는 혁명사업두 오래 하신 선배가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자주 찾아다니며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속담이 있는것처럼 매사를 묻고 협의해가며 해야 할것이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일을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정숙동무!》

한기천이 불시에 큰 목소리로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끊으며 조심스럽게 한기천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한기천은 시뻘건 얼굴로 회파람소리가 나게 일어나앉았다.

《정숙동무, 인젠 그만하우. 말인즉 그 그렇게 할 이야기가 아니요. 동무는 동무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난 동무한테서 큰걸 배운 사람이요. 큰걸말이요. 장군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나서기만 하면 그 누구를 불문하고 큰 힘을 가지고 혁명을 내밀수 있다는 진리를 동무한테서 배웠소. 바로 동무한테서 그걸 실물로 보았단 말이요. 내가 동무한테 무슨 감정이 있었다면 그건 시비곡절을 캘 가치도 없는 더러운것이구 중요하고 큰것은 내가 동무한테서 배운 진리란말이요. 그래서 나두 이렇게 장군님 말씀을 공부하고있소. 뒤늦었지만 동무를 따라가려구말요. 응?》

한기천은 공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더니 또 말을 이었다.

《절대로 나때문에 의기소침해지거나 조심스러워하거나 해선 안되우. 나같은게 무엇이요? 신심을 가지구 나가야 하우. 그러나 나두 인젠 힘을 합치겠소. 둘이 손잡구 나가면서 장군님 말씀을 놓고 공청은 물론 각 조직을 다 검토하며 방향을 바로잡아나갑시다.》

《고마와요. 책임자동지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동문 여기 와서 일도 잘했거니와 아무 잘못도 없소. 도리여 나를 가르쳤소. 아무리 머리가 비뚤어진놈이기로 그걸 몰라서야 무슨 혁명가이겠소. 난 사실 여태껏 쥐꼬리만한, 맑스주의랄수도 없는 리론을 웨치고 다니며 분별없이 뛰였소. 글쎄 이걸 보우. 나두 공청확대회의에서 하신 장군님 말씀을 전달받았소. 그런데 그 말씀이 적힌 이 공책을 여직껏 비밀문건상자속에만 넣어두구 공부를 안했단말이요. 그러니 좌경관문주의로 떨어져 혁명에 해독을 줄밖엔 더 있겠소. 참 가슴아픈 일이요.》

《전 책임자동지가 자신에 대해서만 자꾸 말씀하시니까 뭐라고 이야기할수 없어요.》

《고맙소. 정숙동무, 어쨌든 고마와···》

한기천은 흐뭇해서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이러는데 그의 안해 확실이가 새문을 열고 죽상을 들고 올라왔다.

《에그머니나, 정숙동무가 왔군요.》

《네,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어제저녁 태봉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이렇게 자리에 눕질 않았어요. 쯧쯧 건강한 때 찾아와야 이야기를 나누지.》

확실이는 죽상을 방바닥에 놓으며 김정숙동지께 은근히 눈짓을 하였다. 그는 둘사이에 무슨 말다툼이라도 있는가해서 남편을 건드리지 말라고 신호를 하는것이였다. 확실이는 신개동부녀회원들중에서도 제일 열성분자였다. 그는 늘 김정숙동지께 오빠가 자기 남편과 함께 동발막에서 회의도 하고 자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김정숙동지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끝까지 지지해나섰다. 그는 김정숙동지와 자기 남편사이에 부녀회확장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이 있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어서 한술 잡숴요.》

《놔두오.》

《놔두길 왜 놔둬요? 하루종일 굶어가지고 죽두 한술 안들면 어떻게 병이 나아요? 어서 식기전에 잡숴요.》

《저리 내려가지 못하겠소?》

남편이 꿱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자시라는데 그렇게 역증을 내는걸 보니 자시지 말랬으면 사람 치겠소. 정숙동무, 얼른 내려와요.》

확실이는 또 김정숙동지께 눈짓을 하며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정숙동무두 내려가 죽이나 한그릇 하구 가오. 혁명이 승리한 담에 오면 떡이라도 쳐서 대접을 하겠지만 지금은 한창 혁명중이 되여서 죽밖엔 없소.》

《온, 별말씀을, 저야 뭐 집에 가서 먹죠. 어서 잡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죽상을 한기천의 앞에 당겨놓으시였다. 개다리소반우엔 수수죽 한그릇과 간장 한알잔이 놓여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이였다. 두눈이 골속에 들어간 한기천이 이렇게 먹고야 그 큰 육신을 들고 언제 일어날가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 숟가락을 드는걸 보고야 정지방으로 내려오시였다.

《아이구, 뭘 그렇게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하우. 가뜩이나 골이 친다고 야단을 하는데··· 뒤는 없어가지구두 수틀린 사람과는 단단히 해내고야 견딘다우.》

《온 아주머니두, 뭘 그러겠어요. 아주 무던한분인데···》

확실이가 소곤거리는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무룩이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어이구 무던이 뭐요? 한벼락이라구들 한다우. 그저 펄떡하고 일어서서 제 주장을 세울 때엔 목에 칼이 들어오는것도 세지 않는다니까··· 그러게 내가 시집을 온 이듬해 사회운동을 하다가 잡혀들어가 경찰서안에서 깔고앉았던 걸상으로 경찰놈의 정수리를 넘겨치고 저두 골이 깨지도록 얻어맞았다우. 그러게 지금도 그 어혈로 마가을이 다가오는 이맘때가 되면 아이구 골이야 하고는 눕는다우. 어제밤에도 밤새 골 쏜다고 야단을 쳤지요. 내 남편은 이런 사람이라우. 사람이야 좋지만 성질이 벼락치듯하는게 탈이지요. 그까짓 의논은 무슨 의논이요? 부녀회일이야 우리끼리 밀고나가면 되는거지. 가만히 내버려둬도 인제 팔을 부르걷고나서서 우리 일을 한몫 도울 때가 있다니까···》

확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붙잡고 앉아서 한참 속삭였다.

《아주머니, 인젠 화해가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또 웃으시였다.

《저것 보라지, 그렇다니까. 뒤는 없는게 그런다니까··· 어서 죽이나 자시자구.》

이날 저녁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네 집에서 끼니까지 함께 치르고야 그의 집을 나서시였다.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지시였다. 확실이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지만 한기천이 간단치 않은 사람인건 사실이였다. 어쩐지 바로 그런 사람이 똑바로 서기만 하면 혁명에서 그 어떤 무서운 불구멍을 막아낼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오다가 신개동부녀회 회장네 집에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장에게 지금 한기천동지가 몸져누워서 앓고있으니 부녀회원들 집에서 닭알이라도 한알씩 모아다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죽그릇과 간장 한알잔 본것이 명치에 맺혀서 그렇게라도 하고 떠나야 맘이 편안해질듯싶으시였다.

신개동을 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는듯이 다리를 건너 배증녀네 집에도 못들리고 분임이가 있는 산당고개너머로 향하시였다. 그동안 이틀이나 가보지 못했더니 낮에 분임이가 만나고싶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에게 상촌으로 보내준다는 소리를 했으니 한시바삐 그리로 떠나게 해달라고 그러는거라고 생각하시였다.

고개길엔 벌써 단풍이 거멓게 멍이 들었다. 투쟁속에서 가을도 가는새 없이 지나가고있었다. 부암에서 살 때 같으면 지금 한창 버섯을 딸 때이다. 지금 그 산엔 누가 오를가? 온 부암이 인가 하나 없는 쑥밭이 되였다니 그 산에 올라 버섯 뜯을 사람이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연히 깊은 가슴속 상처를 긁는것 같은 아픈 생각이 드시였다.

고개를 넘어와 분임이가 있는 집 근방에 오시니 산골짜기에서 물소리가 소란히 울리고 황혼이 깃드는속에서 갈가마귀떼가 날았다. 마가을빛은 이 골짜기에 더욱 짙게 실린것 같다.

《정숙아, 왜 그렇게 걸음이 뜨냐?》

조그만 오두막을 찾아들어가시니 토방에 나앉아있던 분임이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일어서며 반색을 한다. 얼굴빛이 새하얗다. 이곳에 와있으면서 더욱 피기를 잃어가는것 같기도 했다.

《왜 밖에 나왔니?》

《골물소리가 하두 좋아서···》

《집엔 누가 없냐?》

《모두 고개너머로 내려갔는데 아직 안오는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등잔불을 켜니 분임이의 누워있던 자리가 그냥 있다.

《누워있으려무나. 어지럽다면서 왜 자꾸 일어나니?》

《정숙아, 난 아무래도 생각을 고쳐야 할것 같잖니?》

분임이는 묻는 말엔 대꾸가 없이 딴 말을 꺼낸다.

《무슨 생각말이냐?》

《글쎄 네 말이 죄다 옳긴 옳지만 내가 저 불쌍한 아버지에게 화를 안겨놓으면서야 어떻게 시집을 떠나가겠니?》

《그건 또 무슨 새삼스런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낯빛이 달라지며 분임이를 마주보시였다. 상촌으로 가고싶어하는것으로만 알고 오시였는데 그동안 다르게 또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정숙아, 글쎄 그저께 우리 아버지가 박대동네 집엘 왔댔단다. 딸이 물에 빠져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데 저년놈들이 인젠 며느리가 물에 빠져죽은것이 아니라 공산당이 빼갔다고 펄펄 뛰며 아버지한테 달려들었다질 않니? 박대동이가 이놈 저놈 소리를 지르며 네놈은 네 딸 빼간 공산당을 알것이니 당장 사람을 내놓게 하라고 아버지를 괄세했다는거야. 난 그놈이 우리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구박했으면 물에 빠져죽게 했느냐고 들고일어날가봐 먼저 팔을 빼는것인줄은 알아.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그냥 내버려두고 그저 내 좋다고만 떠나갈수 있니?》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낯빛이 점점 더 파랗게 질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죽더라도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야 할것 안야? 도루 들어가면 나는 들어가는길로 그년놈들한테 맞아죽겠지.》

《그런데도 도루 들어가?》

《내가 죽으면 우리 아버지는 아무 성화도 안받을게 안야? 그 독한 박대동이 성화를 안받고 여생이라도 편안히 살것 안야? 난 어제 밤새 네눈박이 큰 독같은 박대동이가 우리 아버지를 가로타고앉아 목을 짓누르는 꿈을 꾸었단다. 그 꿈을 꾸고나니 온통 멱을 감고난것 같이 땀에 뜨질 않았겠니?》

《그래서 도루 들어가겠다는거냐?》

《그럼 어쩌니? 그까짓 사람이 한번 났다가 언제든 죽기야 죽질 않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못하고 입술을 가늘게 떠시였다.

《얘, 정숙아, 넌 정말 내가 시집으로 들어가는걸 좋다고 찬성해주질 않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말씀을 안하시였다. 인젠 눈에서 노기가 끓으시였다.

《얘, 너 왜 그러니 응?》

분임이는 두려운듯 김정숙동지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호된 소리로 부르짖으시였다.

《이 못난이야? 얼빠진 못난이야, 내 가슴이 터지는구나!》

그 소리에 분임이는 갑자기 흐느껴울며 김정숙동지께로 몸을 왈칵 실었다. 가늘어진 팔이 김정숙동지의 어깨우로 넘어와 울음소리와 함께 떨었다. 분임이의 몸을 받아안고 서신 김정숙동지의 눈굽에 이슬이 돌았다.

(넌 무엇때문에 내 맘을 이리도 괴롭히느냐? 네가 죽으면 아버지가 편안해진다고? 그래서 죽는것이 그렇게도 기껍다고? 녀자가 이렇게도 순한 양이 돼야 한단말이냐! 수수백년 눈물과 학대에 파묻혀 너같이 살아간 녀자의 길을 네가 또 기어이 그렇게 걸어야만 기껍겠단말이냐? 분하구나! 분하구나! 너는 왜 솟구쳐일어나 네 신세를 그렇게 만든 그 원쑤에게 돌을 던질 생각은 못하느냐? 어째서 네 손에 쟁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생각은 못하느냐?)

김정숙동지께서는 터지는 가슴을 붙안고 어쩌지도 못하고 서계시였다.

《너 어째서 그러니?》

《··· ··· ···》

《어째서 암말두 없이 서있느냐? 응?》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흔들리는대로 말씀이 없으시다.

《넌 내 맘을 그렇게두 몰라주냐?》

분을 터뜨릴것 같으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을 꺼내시였다.

《넌 여기로 시집오기전 월평장에 갔다오다가 나보구 뭐랬니? 네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 세상에 뭘하러 태여났는가고 했지? 그때 난 그 대답을 못해주었어. 그때 내가 한마디만 옳은 대답을 해주었어도 오늘 네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지도 몰라. 난 두고두고 그 일을 뉘우치고있어.》

《얘, 네가 무슨 뉘우칠 일이냐. 내가 민충이였지.》

분임이는 또 김정숙동지를 와락 흔들었다.

《난 네가 이렇게 된 오늘에 와서야 너한테 그 대답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어. 바로 넌 사람답게 살자고 이 세상에 태여난거라고말야. 그래 넌 사람구실하는게 싫어서 그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겠다는거냐? 도루 들어가 그 갈범같은 년놈들한테 얻어맞아 죽겠다는거냐? 넌 왜 너두 하나의 사람이란걸 알지 못하니? 발을 벋디디고 일어서서 너를 해치려는놈한테 칼을 집어던질 생각을 못하느냐말야? 그게 안타깝구나!》

《정숙아, 난 그러게 민충이야.》

《민충인 무슨 민충이냐. 얘, 난 그 소리가 밉구나. 왜 낯을 못들어? 사람다운 낯을 못들어! 남보다 더 높이 쳐들고 살아보자꾸나.》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어린애처럼 도리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꽉 붙안으시였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에 볼을 비비며 눈물을 주르르 쏟으시였다.

이날밤엔 창문에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곁에 누워 그의 손목을 꼭 쥐고 밤을 새우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튿날에도 그이께서는 말씀이 없으시였다. 얼굴우엔 가느다란 찬기운이 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겻이나 무슨 글인가를 쓰시였다. 늘 괴춤에 찔러가지고 다니는 공책을 꺼내놓고 앉아 무언가를 쓰고 또 쓰시였다.

《분임아, 내 잠간 고개너머말에 다녀오겠다.》

저녁때가 거의 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보고 말씀하시였다.

《응, 다녀와.》

분임이는 흘끔 김정숙동지의 낯빛을 살피며 대답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산당고개쪽을 향하여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떠나간 뒤 분임이는 굴뚝모퉁이에 숨어서서 한참동안 산당고개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무엇때문에 정숙인 저 고생을 할가. 동무가 좋다는 말은 있어도 이렇게도 신세가 불쌍히 된 자기를 울며 꾸짖으며 구해주자고 애를 쓰니 내가 백골이 된들 그 우정을 잊을수 있을가.

《어서 들어가자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면서 서있담.》

주인아낙네가 지키고 서있었던듯 뒤로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께서 벌써 주인아낙네한테 무얼 일러놓고 갔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아낙네를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날밤 분임이는 또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여전히 박대동이와의 싸움인데 오늘밤엔 아버지가 쇠스랑으로 박대동의 뒤통수를 찍었다.

분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누가 곁에서 흔들고있었다.

《왜 그렇게 숨이 차하니? 이런 땀 보게.》

김정숙동지께서 얼굴의 땀을 훔쳐주며 말씀하시였다.

《인제 왔니?》

《그래, 너 빨리 일어나 떠날 차비를 해라. 인차 달구지가 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손을 내밀어 분임이를 들어일구시였다. 주인아낙네도 언제 깨여났는지 곁에 와서 들려일어나는 분임이의 머리를 쳐들어주었다.

《관둬요. 내 힘으로도 일어나겠는걸뭐···》

《아버지문제는 내가 태봉시조직에 기별을 해서 박대동이 건드리지 못하게 처리했어. 어서 저고리를 입자. 머리도 쪽지구··· 버선은 여기 한컬레 얻어가지구 왔다.》

《어데로 가는거냐?》

《상촌으로 가지. 우리 세상으로!》

분임이는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넘겨 낭자를 틀었다. 홑적삼바람인 분임이에게 주인아낙네가 저고리를 가져다주며 팔을 꿰라고 했다. 분임이가 팔을 꿰자 그는 속으로 밀려올라간 적삼소매를 끄당겨 내려놓아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버선이 작아서 잘 들어가지 않게 되자 분임이를 끌어안고 앉아서 잡아당기시였다. 뿌등뿌등 소리가 나도록 당겨도 들어가지 않는다.

《발이 아프다얘. 벌써 무슨 버선을 신을테냐?》

《밤바람이 찬데 어떻게 맨발로 가겠니. 아주머니, 가위 좀 줘요. 뒤목을 아주 테놔야겠어요.》

《그럼, 달구지우에 앉아가는것인데 뒤목을 테논들 벗겨질라구.》

주인아낙네가 가위를 가지고 와서 버선뒤목을 뜯어놓았다. 그제야 발뒤축이 훌렁 목너머로 넘어섰다.

한창 이러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배증녀가 땀을 흘리며 들어섰다. 몹시 바쁜 걸음을 한 모양이였다.

《달구지를 데려왔다우.》

《수고했어요.》

배증녀의 말에 김정숙동지께서 대꾸하시였다. 배증녀는 땀을 씻으며 분임이를 가엾게 바라보았다.

《쯧쯧, 드디여 좋은 세상으로 떠나가니 우리도 맘을 놓겠소.》

마당앞으로는 달구지 한대가 굴러왔다. 복녀가 소고삐를 잡고 달구지우엔 대걸이가 올라앉아있었다. 그리고 달구지뒤엔 순옥이도 따라섰다. 바로 분임이는 그들과 함께 상촌으로 가게 된것이였다. 태봉조직은 대걸이를 상촌근거지에 후송하기로 결정하였다. 후송책임을 복녀에게 맡기고 그편에 민가네 집에서 빠져나온 순옥이도 따라보내기로 하였다. 바로 어제 대걸이 받아읽은 쪽지가 그런 지시를 적은 쪽지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를 보내서 상촌으로 가게 된 대걸이, 복녀들의 달구지를 이리로 이끌고 오게 하신것이였다.

모두들 주위에 둘러서서 김정숙동지께서 분임이의 머리를 빗질해주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몸이 말라가니 머리도 윤기가 없었다. 윤기가 없을뿐만아니라 이마우의 앞머리는 목을 맬 때 더러 끊어지기도 해서 것부수수하게 일어섰다. 주인아낙네는 손바닥에 물을 발라 일어선 앞머리를 잠재워주었다.

얼마후 마당으로 나와 달구지에 오르는 분임이는 울음이 터졌다. 김정숙동지께서 우지 말라고 달래시였다. 배증녀가 달구지의 자리를 고쳐보아주었다.

순옥이는 달구지우로 올라가 분임이의 곁에 사뿐히 들어앉으며 그의 한손을 꼭 잡아주었다.

대걸이도 울지 말라고 달래였다.

《이랴!》

복녀가 굵은 목소리로 소를 몰았다.

분임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 저주로운 세상에서 맞고 채우고 찢기우고 악담으로 멍이 든 불행한 사람들의 무리가 그 굴욕과 참을수 없는 압제를 벗어나서 새세상으로 떠나간다. 길고긴 밤의 장막이 걷히며 그들의 앞길엔 눈부신 새날의 빛이 뿌려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와 함께 달구지를 따라 멀리까지 걸어나가시였다. 달빛이 부서지는 시내물이 나타났다. 달구지는 그 물을 왈칵덜칵 건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물목에 서서 들판으로 굴러가는 달구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달구지가 사라진 뒤에도 떠날줄 모르시였다.

배증녀가 더욱 생각이 많은 얼굴로 들판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얼른 눈물을 씻었다. 무엇인가 큰일을 하나 해낸듯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인젠 자기자신이 자기의 운명이나 어떤 다른 하나의 운명에 눈물을 뿌리는 녀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큰 운명과 씨름을 하고있는것 같은 뭉클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젠 돌아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서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배증녀는 또 한참 멀리 간 달구지소리를 듣다가야 돌아섰다. 구름속으로 들어갔던 달이 빛을 뿌리며 휘영청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