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1

 

제 11 장

1

 

시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입을 짝 벌리고 길다란 혀를 날름거리는 살모사같다. 작고 올롱한 독기를 뿜는 눈이 무얼 찾느라고 저렇게도 이 구석 저 구석 쏘아볼가? 눈, 무서운 눈, 그 눈이 둘만 아니라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다. 아니 또 있다.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다. 눈이 온통 사방을 에워싼다. 린같은 빛이 번쩍거린다. 차츰 그 눈이 또 하나로 된다. 눈가장자리에 안경테 알같은것이 생긴다. 분명히 안경이다. 안경을 쓴 사내의 눈이다.

남편의 눈이다.

《에그머니!》

역시 소리는 나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죽었는가 살았는가? 분임이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방안엔 불이 켜져있다. 불빛이 누런것도 같고 붉은것도 같다. 무슨 불빛이 이럴가? 찬찬히 쳐다보니 문설주에 조그만 등반이 달리고 그우에 접시가 놓였는데 접시가위선에서 바늘귀만한 불꽃이 오졸오졸 떨고있다. 이게 뉘 집일가? 아무리 생각해야 자기가 어떻게 돼서 누구네 집에 와 누워있는지를 알수 없었다. 몸이 활각 더워나는것 같아 만져보니 전신에 땀이 흐른다. 무거운 이불이 덮여있고 머리맡으로도 무엇인가를 두텁게 둘러막아놓았다. 분임이는 이불귀를 젖혀놓으며 곁에 누가 있는가를 돌아보았다.

《인제 정신이 드나?》

웬 어머니가 곁에 앉아있다가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나를 모르겠나? 이 집은 샘골집이라네.》

《네? 내가 왜 샘골집에?》

《그래 목을 맸던 생각이 안나나?》

《··· ··· ···》

분임이는 두눈이 둥그래져서 어머니를 마주보았다. 차츰 뒤산속에서 저질렀던 일이 떠오르고 어느 순간엔가 정신이 아득해졌던 일도 생각난다.

《어머니, 제가 살았어요?》

《살잖구···》

《정말 제가 살았어요?》

《뒤산에서 목멘걸 풀구 이리로 업어왔다네.》

분임이는 당장 앞이 캄캄해지는것 같고 몸이 떨렸다. 어쩌자고 도로 살아났을가. 시집이 있는 이 세상에··· 난 인제 또 어떻게 살아가나? 죽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걸가. 빈혈이 와서 아뜩아뜩해졌지만 그래도 죽자는 생각 하나로 삶아낸 명주필을 이고 앞강에 빨려 나갔다가 한토막 끊어가지고 뒤산등성이까지 기여오르지 않았던가. 그렇게도 천신만고해서 찾아간 죽음의 길인데 누가 나를 이 지독한 세상에 도로 끌어왔는가. 사람이 죽자면 귀신이 잡아가야 한다더니 귀신이 안잡아가서 이렇게 됐는가. 누가 목맨걸 풀어주었다 해도 귀신의 조화가 아니고야 사람들이 그렇게 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달려들듯했을수 있었을가. 그땐 산속에 사람도 아무도 없었는데··· 그리고 목을 매달자 하늘땅이 아뜩해져서 정신을 잃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달려들 때까지도 숨이 붙어있었다는것은 이상한 일 아닌가? 결국 난 죽지도 못할 팔자란말인가!

분임이는 이불을 젖히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뼈란 뼈가 죄다 바스러진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 나 좀 들어줘요.》

《어째서 그러나?》

《어떻게 장 눠있겠어요? 일어나 가야죠.》

《가긴 어데로 가?》

《집으로 가야죠.》

《어이구 맙시사. 그래 집에 들어갔다가 진주기생한테 맞아죽자고 그러나? 애기는 지금 제몸이 어느 지경으로 돼있다는걸 몰라. 목을 매지 않고 가만 내버려두어두 오래 살지 못할만큼 돼있어.》

《어머니, 제가 뭐 그렇게 상했나요? 그리구 죽을 땐 죽더라도 살아있어가지구야 어떻게 제 집엘 안들어가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게. 못일어나네. 우리 며느리하구 누군지 애기를 잘 아는 처녀가 어디 급한 일로 간다면서 돌아올 때까지 애기를 각근히 보살펴달라고 했다네. 정 시집에 들어가고싶으면 그 사람들이 오는거나 보구 들어가게.》

녀인은 엄하게 타일렀다. 말을 들어보니 그래야 될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를 잘 아는 처녀란 대체 누구일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으나 짚이는 녀자가 없었다. 분임이는 머리맡에 둘러친것을 제껴놓아달라고 했다. 녀인은 두터운 요같은것을 제껴놓더니 다른 얇은 천을 가져다 가리워준다. 그리고는 함빡 젖은 분임이의 이마를 씻어주기까지 했다. 분임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런 어머니품에서 한평생을 살아보고도 싶었다. 부암을 떠나 월평시로 갔다는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 어머니가 지금 이렇게 말라가는 딸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을 두드리며 울겠는가. 아버지는 또 얼마나 땅을 치며 뉘우치겠는가. 지금 그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살고있는가, 결국은 민가네한테 죄다 빼앗기고 망해서 떠나는걸, 부암의 집이 쑥밭이 되여 떠나는걸, 아버지는 그래도 어떻게 하든 그 저당잡힌 땅을 도로 찾아가지고 부암땅에서 살아보겠다고 그렇게도 애를 쓰며 뛰였지. 어떤 때는 술을 마시고 가슴을 치기도 했었지··· 이 세상은 너무도 허무하지 않는가! 그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구할수 있는가? 언젠가 귀결에 들으니 시아버지 박대동은 인젠 월평거리에 내려가 다니려 해도 사돈 사는 꼴이 보기 부끄러워서 다닐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얼 어떻게 살기에 시아버지가 그런 소리를 하는것일가? 거지꼴을 하며 산다는 소리는 틀림없는데 무슨 벌이를 하며 어떻게 살기에 거지꼴을 하고 사는가? 한번 가보고싶었다. 무르팍에 엎어져 실컷실컷 울고라도싶었다. 자기가 이때까지 그 승냥이굴같은 집에서 이를 악물고 살자한것도 아버지, 어머니를 위하는 한줄기 마음이 있었기때문이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죽으려는 마음을 도사려먹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든 살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일생을 바치자는 결심이 굳어지기도 했었다. 그 아버지 그 어머니를 단 한번만이라도 볼수 없을가.

인제 시집에 들어가면 자기가 자기 목숨을 끊지 않는다 해도 맞아죽거나 찔리워 죽을건 뻔하다. 그 살모사같은 시어머니가 쩍하면 가랭이를 찢어죽인다고 식칼을 가지고 달려들지 않으면 방치를 가지고 때려죽인다고 달려들었는데 목을 매고 죽느니 어찌느니 하다가 살아들어간 며느리를 곱다고 가만히 내버려둘가. 하긴 내 한몸이야 죽자던 몸이니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그러나 인젠 기왕 목을 맸다가도 살아난 몸이니 그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서 두분의 딸로 태여나 딸값을 못하고 살아가노라는 서러운 이야기라도 하소연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분임이는 눈가로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목과 턱이 류달리 뻣뻣하고 아팠다. 턱이 자꾸만 우로 쳐들리는것 같다. 올가미를 목에 걸고 나무에서 떨어질 때와 같은 착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분임이는 인제야 자기가 어째서 다시 살아났는가를 알듯싶었다. 올가미줄을 뒤에서 당겨올려야 숨통을 죄였을터인데 턱을 추켜들며 당겨올렸으니 숨통을 제대로 조일수 없었을밖엔 없다. 결국 이래서 도로 살아나지 않았는가.

그는 몹시도 후회가 되였다. 바로 여기에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귀신의 장난이 있은것 같았다.

이렇게 속절없는 생각을 더듬고있던 분임이는 저도모르게 정신이 가물가물 멀어져갔다.

주인어머니는 잠이 드는 분임이의 곁에 앉아서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혀를 갈기였다. 망할년놈들이 그 흔한 낟알을 가지고 살면서도 어떻게 못먹게 만들었으면 사람이 이 꼴로 되였을가. 맘을 썩이는 일이란 오장을 잡아비트는것보다도 더 못견딜 일인데 허구 긴 날 이 불쌍한것이 그걸 어떻게 견디여냈을가. 그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닦아주며 한숨을 지었다.

이러는데 회의를 끝내신 김정숙동지께서 이 집 며느리와 배증녀를 데리고 부엌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어머니, 정신을 좀 차리지 못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올라서며 물으시였다.

《인제 정신을 좀 차렸댔다우. 그리구 일어나겠다고 몸을 좀 들어달라는걸 내가 못일어나게 막았지요. 그랬더니 아마 잠이 든가보우.》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자락을 휩싸며 분임이의 곁에 조용히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의 손목을 그러쥐며 잠든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시였다.

주인어머니가 정신을 차렸댔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살아있는 얼굴같은데라곤 없다. 보는 사람의 머리칼이 상깃해지리만큼 얼굴에 뼈만 남고 눈언저리엔 푸른 가락지가 돌았다. 그 곱던 얼굴이 어떻게 이 모양 되였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을 긁어내리는 아픈 정을 깨물며 참으시였다.

《그래 꿀물을 입에 더 떠넣지 않았어요?》

《꿀물도 적잖게 받아먹었다우. 그랬게 화색이 돌지···》

《네, 화색이 좀 도는것 같애요. 정말 다행이야요.》

배증녀가 주인어머니의 말을 받는다. 그래도 이들은 무얼 어떻게 보고 화색이 돈다 하는지 그렇게들 반가와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지만··· 글쎄 그놈의 범의 굴로 되들어가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 아니요?》

주인어머니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정숙동지께서 어머니를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글쎄 아까 정신이 들었을 때 일으켜달라고 하기에 어째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겠다고 하질 않소.》

그 소리에 한옆에서 듣고있던 배증녀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원 멍텅구리같은것이 어딜 또 들어간다구 그래?》

《성님도 안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녀자라는건 한번 시집을 가면···》

달망지게 생긴 이 집 며느리가 분임이의 머리맡에 앉아서 탄식처럼 한마디 했다. 그러다가 윽박질리웠다.

《아니 동서는 여태껏 회의를 하고 와앉았어도 그런 장님같은 소리를 하나?》

《아주머니, 그만두세요.》

배증녀가 윽박아주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 만류하시였다.

《분임아, 분임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나직하게 속삭이시였다.

분임이는 대답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번 불러보시였다.

그래도 역시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몸이 이렇게 됐으니 잠이라는게 그냥 죽음의 나라로 간것 같이 될수밖엔 없다.

《저, 아주머니들 인제 오면서 말씀하신델 지금 가보고 왔으면 좋을것 같애요. 부부간이 살고 남편이 조직에 든 집이라면 말을 들어줄것 같애요. 가서 사정을 좀 잘 얘기해줘요.》

《내 혼자 가지 둘씩 갈거야 있소?》

배증녀의 말이였다.

《아니예요. 두분이 가세요. 고개를 하나 넘어간다는데 어떻게 혼자 가겠어요. 어서 이 집 아주머니도 함께 갔다와주세요. 그리구 어머니는 인젠 밤두 깊었는데 어서 주무세요. 이 색시는 제가 간호를 해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을 꾸며나가는게 능숙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방금 배증녀들과 함께 오며 분임이를 박대동네 집 가까이 둘수 없으니 오늘밤중으로 다른데다 옮기자는 이야기를 하시였다.

그래서 배증녀가 생각해낸것이 고개너머로 옮겨가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였는데 거기에 당장 가보고 오라는것이였다. 다른 부녀회원들을 시켜서는 분임이가 앞강물에 빠져죽은것 같다는 소문은 퍼뜨리게 하시였지만 그래도 빨리 분임이를 박대동의 손이 닿지 않을데로 빼돌려놓아야 할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들이 나간뒤 부엌으로 내려가 아까 쒀놓았다는 미음을 가마안에 들여놓고 불을 때시였다. 덥혀두었다가 당장이라도 분임이가 깨여나면 먹여야 할것 같으시였다.

불을 다 때고 방안으로 올라서시니 주인어머니는 웃방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분임이를 시중하느라고 몹시 곤했던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분임이의 곁에 조용히 다가앉으시였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손목도 잡으시였다. 어쩐지 못견디게 아픈 정이 북받쳐오르시였다. 부암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얼마나 다정하던 동무였던가, 즐거운 정, 슬픈 정을 같이 나누며 산에 가도 함께 가고 들에 가도 함께 갔다. 둘의 발자욱이 그 그리운 땅에 몇억만개나 찍혀져있을가. 둘이는 지각이 들며 세상살이에 부대끼게 되면서부터는 생각도 많았다. 어떻게 사는것이 사람답게 사는거냐? 우리같은것은 무엇하러 세상에 태여났을가? 이 수수께끼는 그도 못풀고 나도 못풀었다. 이리하여 둘의 사이엔 웃음이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지지 않았던가. 그때부터 벌써 눈물로 누벼질것 같은 앞날을 예감도 했었다. 가마속의 흐느낌을 들을 때가 그 구슬픈 예감의 절정이였지. 그러나 차마 이렇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을가. l년이 되나마나한 사이에 그 꽃다운 모습을 죄다 빼앗아내고 피골이 상접한 그를 명주필로 목을 매달게 할줄이야 그 누가 알았을가. 불쌍한것아, 너는 왜 그렇게도 힘이 없었느냐. 죽음을 가지고야 그 무슨 보복이 되겠기에 죽으려 했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에 치밀어오르는 통분한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뼈마디밖에 짚이는것이 없는 분임이의 가는 팔을 주무르고 주무르시였다.

그런데 이때 분임이 스스로 눈을 떴다.

《분임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팔을 흔들며 부르시였다. 그 소리에 분임인 눈시울을 한껏 밀어올리며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마주 굽어보시였다. 김정숙동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아무 말 없이 분임이를 받들어일구시였다.

《네가 누구냐. 너 정숙이가 아니냐?》

분임이는 눈앞에 있는 얼굴이 꿈속에 있는것 같은지 두손으로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분임이의 여윈 얼굴을 어루만지셨다.

《분임아!》

《정숙아, 네가 어떻게 돼서 여길 왔니?》

《난 여길 못온다드냐? 너 보고싶어서 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울음이 북받쳐 말이 제대로 되지 않으시였다. 분임이 아까같아선 이발을 앙다물고 이 세상과 아주 인연을 끊자고 하는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 입에서 말이 나오고 사람을 부둥키니 신기하기도 하고 꿈같기도 하시였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종이 한갈피같은 간격을 놓고 다투고있는가.

《날 보면 어떻게 한다드냐? 내 신세는 이렇게 됐단다.》

《분임아, 얼마나 고생을 했니? 그래도 이 세상사람들은 너를 부자집으로 시집간다고 한평생 칠보단장에 싸여 호강하리라고 믿기도 했겠지. 그런데 네가 어째서 이렇게 됐어? 가슴이 아파서 볼수가 없구나.》

《이게 시집살이라고 하는것 아니냐? 녀자가 겪는 시집살이라는것··· 으으으.》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울었다.

《넌 왜 죽을 생각만 하니? 그놈의 집에서 뛰여나올 생각은 못하고···》

《뛰쳐나면 어데 가서 산다더냐? 나 살려줄 세상이 어디 있다더냐?》

《아무렴 너 하나 살릴 세상이 그렇게도 없겠니? 넌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지도 모르고 캄캄한 밤중 아니냐! 민충아! 이 민충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머리를 가슴에 다가붙이고 뒤머리를 쓸어주고 쓸어주고 하시였다.

《너 그래 여기 언제까지나 있니?》

분임이는 눈물젖은 얼굴을 들며 안타까이 물었다. 인젠 꿈같이 만난 정숙이가 어데 떠나기라도 할가봐 겁나하는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건 차츰 이야기하마. 그리구 인젠 그만 울자. 아주머니들이 이어 올거야.》

김정숙동지께서 분임이를 떠밀어올리며 달래시였다.

《얘 정숙아, 나두 살길이 있을가?》

《있잖구. 네가 무엇때문에 목을 매달아 죽는단말이냐? 넌 박대동네 담장밖 세상이 어떻게 돼가고있는지 알고있니?》

《난 몰라, 정말 몰라. 늘 갇혀 살기도 하지만 또 동네사람들 그 누가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준다더냐?》

분임이의 눈엔 눈물과 함께 절절한 애소가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얼굴을 다시 품에 끌어안으시였다. 이렇게도 가엾게 살 법이 어디 있을가. 조롱속에 갇힌 새도 밖을 내다볼수가 있지 않는가. 분임이 아버지는 무엇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그런 집에다 주었단말인가. 눈물속에 세월이 가고 세월이 가니 머리우에 흰서리 내리고 그렇게라도 살고나면 무슨 보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것일가.

《분임아, 어서 그치자. 자꾸만 울고있을 때가 아니야. 네가 울면 나두 눈물이 나지 않니? 인제 아주머니들이 집을 얻으면 오늘밤으로 당장 옮겨가야 한다. 인제부턴 너한테 시집살이가 아닌 다른 세상살이가 펼쳐진단다.》

《무슨 세상살이말이냐?》

《그건 지금 다 이야기할수 없단다.》

《그럼 시집을 떠나야 한단말이냐?》

《시집을 떠나잖구 그 무서운 승냥이굴로 도루 들어갈테냐?》

《난 그렇겐 못한다. 내가 어떻게 도망을 친단말이냐? 도망을 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무슨 변을 당할지 누가 안다더냐?》

《아이참, 너는 어째서 그렇게도 어리석으냐? 너의 아버지가 멍텅구리라면 몰라도 나같으면 도리여 며느리를 얼마나 구박했게 달아나게 만들었느냐고 벼락을 내리고말겠다.》

분임이는 대꾸를 못하고 입술을 악물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아래방에서 이러는바람에 웃방에서 자던 주인어머니도 잠이 깨였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질 않았다. 들으니 그처럼 참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그 무슨 부녀회를 지도한다는 공작원처녀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박대동네의 며느리와 가까운줄은 몰랐다. 서로 목을 껴안고 서럽게 우는걸 보니 제사 눈물이 나고 그 북받치는 울음에 간참하는것이 도리여 일이 아닌듯한 생각도 들었다. 둘이 한창 울고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눈물을 닦고 일어서시였다. 분임이도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부엌문으로 배증녀와 주인집 며느리가 들어섰다.

《수고했어요. 그래 어떻게 되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흔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집을 얻었다우. 마침 주인도 있구 안에서도 있더구만. 그래서 이야길 하니까 어서 데려오라고 하질 않아요.》

배증녀가 애기를 돌려끼고 젖을 물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럼 인제 곧 떠나야겠군요.》

《떠나야지. 그런데 걸을수가 있겠는지···》

그 소리에 분임이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올리며 흔연스럽게 시선을 돌리였다.

《어디게요?》

《산당고개너머라우.》

분임이의 묻는 소리에 배증녀가 대답했다.

《걷겠어요. 아까 꿀물을 먹었더니 힘이 좀 생기는것 같애요.》

《아니 어데로 떠나려거든 아까 쑤어놓은 미음이 있으니 먹구 떠나게.》

웃방에서 주인어머니가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니, 미음은 먹고프지 않아요. 지금 이 기운으로도 산당고개너머는 넉근히 걸을수 있어요.》

분임이는 얼굴빛이 파릿해서 대꾸했다. 인제야 그 무슨 새로운 결심이 생긴것 같았다.

《정말 미음을 좀 먹구 가자꾸나. 불을 때서 덥혀놓기까지 했는데···》

김정숙동지께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분임이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안야, 그저 떠나겠어.》

분임이는 무르팍을 짚고 제힘으로 부쩍 일어섰다.

그는 가는 허리가 휘청휘청하더니 급히 걸어가 벽에 태를 친다.

김정숙동지께서 달려가 붙드시였다.

《안야, 일없어. 이따금 어지럼증이 와서 그래. 나 비녀···》

분임이는 벽에 기대서서 머리를 만져보며 비녀를 찾았다. 주인집 며느리가 얼른 자리에 떨어져있는 비녀를 주어다가 손에 쥐여주었다. 비녀를 받아쥔 분임이는 잠간 눈을 감고 진정을 했다.

그러더니 이어 후들거리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넘겨 낭자를 틀고 비녀를 꽂았다. 그는 벽에서 몸을 떼며 비척이는 걸음으로 부엌쪽을 향해 걸었다. 배증녀가 부축을 했다. 웃방에 있던 주인어머니도 내려와 혀를 차며 분임이의 팔을 붙잡아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먼저 부엌으로 내려가서 분임이의 신을 찾으시였다. 얼마후에야 분임이는 밖으로 나섰다.

《정말 걸어낼것 같애?》

김정숙동지께서 한쪽팔을 붙잡고 걸어나가며 물으시였다. 분임이는 눈물을 씻으며 대꾸를 안했다.

《울긴 왜 울어?》

《그저 고마와서 눈물이 절로 나잖어.》

뒤따라오던 배증녀도 곁으로 다가와 다른 한팔을 붙잡고 걸었다. 분임이는 이 피눈물의 땅을 억센 힘에 맞들려나가듯 가분가분 걸어나갔다. 침침한 산속에선 부엉새가 구슬프게 부엉부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