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제 1 장

2

 

야학방에는 벌써 사람들이 적잖게 모여들었다. 미닫이를 터놓은 웃방엔 남자들이 앉고 아래방엔 녀자들이 앉았다. 남자들 방엔 아직 몇사람 안나왔는데 녀자들 방엔 벌써 콩나물시루같이 박혀앉았다. 처녀들, 애기어머니들, 그런가 하면 갓 시집을 온 새색시들도 있다. 모두들 책을 펼쳐들고 앉아 쓰고 읽고 했다. 그러다간 서로 귀속말로 소곤거리며 입을 싸고 웃기도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안으로 들어서며 얼른 올케가 늘쌍 가앉는 뒤구석자리에 눈길을 보내시였다.그이의 짐작엔 올케가 아직 부녀회 회장네 집에 가있을줄로 아시였는데 어느새 벌써 나와앉아있었다. 여느날 밤이나 같이 맨 뒤구석에 다소곳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올케의 곁에 자리가 좀 남아있는것 같아 사람들 앉은 틈으로 발을 옮겨디디며 그리로 가시였다. 올케는 시누이를 보자 얼른 책에서 눈을 떼며 자리를 내주었다.

《분임인 안오우?》

올케가 물었다.

《난 먼저 나왔나 해서 그 애네 집엔 안들렸어요.》

《어째서 안오는지 모르겠군요. 어제밤에도 안나온것이···》

올케는 들은 소문이 있는지라 걱정을 했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와 가깝게 지내는 정다운 동무였다. 그런데 올케는 오늘 그 집에서 분임이를 출가시키기 위해서 야학방에도 못나가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임이 시집보내는 일을 무슨 좋다 나쁘다 할 아무 리유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째서 야학방으로 못나오게 할가싶었다. 모든 녀자들이 다 남자들같이 나라 찾는 일에 나선다고 이렇게 모여들어 공부를 하고있는데 시집을 가더라도 배워가지고 가면 더 좋을것 아닌가. 그 애를 무슨 하늘공중에라도 시집을 보내겠기에 글이 쓸모가 없으리란말인가. 속이 깊은 올케는 저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웃방에도 남자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어데서 무슨 모임을 하고 밀려오는지 얼굴이 구리빛같고 동가슴이 벌어진 청년들이 한꺼번에 십여명 들어섰다. 비밀모임은 언제나 딴 장소에서 그것도 이동해다니며 했다. 이 야학방만이 동네 한가운데서 드러내놓고 하는것인데 역시 이것도 매일밤 밖에 경비를 세우고야 했다. 왜놈들이 불의에 닥쳐들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왜놈의 정탐군인 민가네 마름 홍달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느날 밤엔 그놈이 야학방 구경을 온다고 하면서 기척도 없이 다가와 문을 열고 상고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침 걸리지 않을만한 책들을 펴놓고 앉아 공부를 했게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면 그날밤 당장 큰변을 당할번했다.

웃방에 청년들이 모여드는동안 아래방으로도 몇명의 녀자들이 또 들어와 신골박듯 들어앉았다. 키가 작고 얼굴이 납작한 길주집 며느리가 자리에 앉듯마듯 녀자들 귀에 대고 무슨 이야기를 소곤거려서 모두들 입을 쩍 벌리며 놀래였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우?》

야학생들중에서 나이를 제일 먹고 눈이 큰 풍산집며느리가 겁에 질린 표정을 하며 물었다.

《그저께 새벽에 달려들어 불을 지르구 사람을 죽이구 했대요. 그래서 갈미봉아래동네는 영 재무지가 되고말았대요.》

길주집며느리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돌아보며 말했다. 이 암팡지게 생긴 녀인은 어데서 듣고왔는지 백리밖에서 일본놈의 《토벌》이 있은 소식을 퍼뜨렸다.

《죽일놈들!》

《벼락을 칠놈들!》

아낙네들은 제가끔 한마디씩 던졌다. 어떤 아낙네는 혀를 끌끌 차며 긴 한숨을 짓기도 했다. 백리밖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인제 오십리밖으로 그런 일이 닥쳐들수도 있고 이십리밖, 십리밖, 그리고는 부암으로 닥쳐들수도 있다. 아니 그게 뭐 사다리당반을 올라가는 일이라고 차츰차츰 그렇게 닥쳐들겠는가. 래일 당장 부암에 달려들지 어찌 알겠는가.

녀자들은 이런 불안이 생겨나서 책을 들여다보는게 경황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올케와 함께 이 소리를 듣고는 은근히 한숨을 지으시였다.

《언니, 인남이를 내가 안을가요?》

《놔둬요. 젖을 좀 빨게···》

《무슨 젖이 나겠다구 자꾸 빨려요. 내가 안아서 재우겠어요.》

《놔두래두. 그게 안아준다고 자겠소?》

올케는 젖가슴을 감추고 앉아 아이에게 젖을 빨리며 열심히 공책우의 글을 들여다본다. 연필로 큼직큼직하게 쓴 글자들인데 어찌 서툴게 썼는지 김정숙동지로선 알아보시지 못할 글자가 더 많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책을 빼앗아가지고 글자들을 고쳐주시였다. 그러자 올케는 얼굴이 붉어지며 역시 애수가 스민듯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후 야학선생인 희섭이가 들어섰다. 머리를 길러넘긴 키가 큰 사람이였다. 아동단회의를 지도하느라고 늦어졌는지 모른다.

희섭이 들어서자마자 방안은 한소나기 지나간 들판처럼 조용해졌다. 쑥덕거리던 처녀들도 아낙네들도 입들을 곱게 다물고 앉아서 칠판쪽을 주시했다. 지금 풍산집며느리나 길주집며느리같은 축들은 어제밤 내준 숙제문제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있었다. 숙제문제란 《우리가 어째서 가난하게 사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하는것인데 이걸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속이 캄캄했다. 이런 문제를 내준것으로 보면 돈이 없어서 못산다든가, 흉년이 들어 못산다든가 또는 길주집며느리네 형편대로 말한다면 시동생 둘을 장가들이는 일로 민가네 빚을 덜컥 지고 못살게 되였다든가 하는 따위 대답을 받아내려고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웃방 청년들처럼 유산계급이 어떠니 무산계급이 어떠니 하는 식의 대답을 들으려고 이런 문제를 내준것 같은데 그걸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는지 알수가 없었다.

사실 이 야학방학생의 수준은 여러 층이였다. 녀자들이 있는 아래방에만 해도 이런 숙제에 당황해하는, 인제 겨우 까막눈을 뜬 층이 있는가 하면 로동독본이나 농민독본을 공부하는 층도 있다.

웃방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도 농민독본, 로동독본 층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대의》니 《로동계급의 진로》니 하는 책을 공부하는 청년들도 있고 《공산당선언》을 읽는 사람도 여러명 있었다.

희섭이는 이 복잡한 대상들과 매일밤 씨름을 하며 땀을 흘리였다.

《자 공부를 시작해봅시다. 오늘밤엔 병반부터 시작해봅시다.》

청년들이 묻는 술어를 한참 깨우쳐주고난 희섭이가 칠판앞에 일어서서 교탁을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학에선 갑, 을, 병으로 반을 짰는데 바로 병반이란것이 지금 안절부절못하는 아낙네들반이다.

《어제밤 내드린 숙제들을 생각해가지고 왔습니까?》

누구 하나 대답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서로들 곁눈질만 했다.

《뭐 힘들게 생각할것이 없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일어서서 대답하면 됩니다. 어디 풍산집아주머니가 한번 대답해보실가요?》

《어이구머니나. 세상에···》

풍산집며느리는 입이 딱 벌어지며 질겁을 했다. 가뜩이나 눈이 큰 아낙네가 입까지 함지박처럼 벌리며 죽는 시늉을 하는바람에 곁에서들 키득키득 웃었다. 그바람에 공책에 글을 쓰던 을반처녀들도 모두 얼굴을 들었다. 야학생구성이 층층이 되여서 어느 한 반에 웃을 일이라도 생기면 다들 껴들어 웃기 마련이였다. 병반아낙네들이 일어서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어서 한마디 대답해보십시오. 우리가 다들 가난하게 사는데 어째서 가난하게 사는지 그걸 알아야 할게 아닙니까?》

희섭이는 네다리를 해붙인 교탁을 씨룩씨룩 흔들어대며 또 한마디 일렀다. 기어코 풍산집며느리를 들어일구자는 속셈같다.

《어이구 선생님, 다른 사람을 지명합소. 그걸 척척 대답하문사 여기 나와 앉아있겠음둥. 하긴 우리 친정아버지 말을 들으면 사람이 산신령을 괴지 않으면 이래저래 재화가 들어 못산다군합디다만···》

풍산집며느리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사실 너무도 당황하고 궁한김에 저도 모르게 산신령소리가 입에서 튀여나오긴 했으나 말해놓고보니 잘못됐고나 하는 생각이 펄쩍 들었다. 어느날 밤엔가 희섭선생이 산신령이요 무슨 귀신이요 하는따위 미신을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일이 생각났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벌써 을반처녀들속에서 입을 싸고 웃는 패들이 있었다.

풍산집며느리는 얼굴이 홍당무같이 붉어졌다.

그러나 희섭이는 너그러운 웃음을 띤 얼굴로 또 넌지시 병반아주머니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산신령을 괴지 않으면 못산다? 그럼 풍산집아주머닌 그만큼 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들이 한번 대답해보실가요?》

풍산집며느리를 바라보며 웃던 아낙네들이 모두 몸을 움츠리며 머리를 숙였다.

《정보배아주머니,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뜻밖에도 정보배아주머니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성큼 일어섰다.

《전 산신령소리는 미신이라구 봐요. 산신령이란게 뭐 있나요? 괜히 사람들이 산에 대고 절을 하며 위하는거지.》

《그럼 어째서 못삽니까?》

《전 농사군이 못사는건 하늘탓이라구 봐요.》

《어이구 하늘탓이라는건 미신이 아님둥?》

풍산집며느리가 수그리고있던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큰눈을 두리번거리며 반박하였다.

《그게 무슨 미신인가요, 하늘에서 비를 주고 가물을 주고 해서 농사를 흉년두 들이구 풍년두 들이구 하는데 그게 무슨 미신인가요?》

《자 그럼 정보배아주머닌 하늘탓이구 그담 또 다른 아주머니들 말씀해보시지요?》

그 소리에 길주집며느리가 불쑥 일어섰다.

《전 우리 집이 못사는걸 보면···》

그는 말을 꺼내다가 얼른 움츠리고말았다.

《아주머니네가 못사는걸 보면 어떻단말입니까?》

《저···》

길주집며느리는 낯이 빨갛게 되며 말을 못했다. 시동생 둘을 장가들이노라고 못살게 됐다는 말을 해야 할텐데 웃방에서 코마루 둥실한 바로 그 시동생들이 아지미가 어떻게 대답하나 잔뜩 호기심이 담긴 눈들을 흡뜨고 내려다보는바람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저··· 식구가 많아서 못살아요.》

그 소리에 웃음소리가 터졌다. 길주집며느리도 낯이 새빨갛게 되여 도로 주저앉았다. 인젠 아래웃방 야학생들이 온통 자기들 공부는 밀어놓고 병반아낙네들한테 눈길을 집중했다.

《자, 또 말씀해보십시오. 오늘밤엔 골고루 다 말씀을 해보아야 합니다.》

희섭이도 끈덕지게 이끌고나갔다.

그는 중학공부도 한 사람인데 끈덕진데도 있지만 정열도 있었다. 이렇게 점잖고 부드럽다가도 무슨 론쟁이라도 할 때 보면 주먹을 휘두르며 말이 북받쳤다. 그러기에 희섭이 말하듯이 이 《부엌간주인》들도 희섭이의 이런 성격을 알기때문에 더 어려워들했다.

이번엔 애기를 안은 오복실이란 아주머니가 일어섰다. 그는 기미년 흉년이야기를 꺼냈다. 기미년에 흉년이 들어서 못살게 된것이 그담엔 내내 죽을 먹으며 사노라고 했다.

희섭이는 왜 이렇게 어둡고 답답할가고 속으로 개탄했다. 누구 하나 비슷한 소리를 외워내지 못한다. 어째서 못사는가를 정말 이렇게도 모를가. 사람으로 태여나서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갖은 학대와 멸시속에서 눈을 뜨고도 세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 나라 아낙네들의 아픈 모습이 그대로 여기에 있다. 안타깝고 괴로운 일이였다.

《저, 길녀아주머니, 한번 말씀해보십시오.》

희섭이는 또 지명을 했다. 길녀란 김정숙동지의 올케를 말하는것이였다. 길녀는 당장 얼굴이 붉어져서 자는 애기를 방바닥에 눕히고 주밋거리며 일어섰다. 앞에 앉은 아낙네들이 모두 뒤를 돌아다보았다.

(언니가 대답을 어떻게 해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져서 일어선 언니의 모습을 올려다보시였다. 길녀는 두손을 어떻게 건사할지 몰라하다가 치마앞자락우에 가져다 겹쳐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전 우리가 못사는건··· 왜놈들과 우리 마을 민태설이같은 지주놈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반아낙네들이 모두 눈들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그들자신이 인제야 옳게 걸고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였다, 어떤 아낙네는 자기네 머리가 맹꽁인 맹꽁이라고 후회도 했다. 길녀의 대답이 옳게 나오게 되자 웃방 청년들도 모두 내려다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희섭이는 아까와는 다르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야학생들은 이것이 길녀의 대답을 긍정하는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누구나 다 숨을 죽이고 앉아 길녀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길녀는 아래웃방의 눈길이 일시에 자기한테 쏠리는것을 보자 그만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다가 이런 대답을 하였다.

《그건 저 우리가 풋콩두 맘대로 못꺾어다먹구···》

방안에선 웃음이 터졌다.

《원 아무렴 우리가 풋콩 못먹어서 못살가? 그런 소리나 하라문 나두 얼마든지 대답할테야!》

누군가 이러며 한바탕 큰소리로 웃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나게 안타까우시였다. 올케가 못다한 대답을 자기가 일어서서 하고싶으시였다. 올케가 무슨 말을 잘못했게 저렇게들 웃을가. 풋콩이야기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왜 웃기부터 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웃방 청년들까지도 내려다보며 웃는바람에 더욱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희섭이는 김정숙동지의 표정에 주의가 갔다. 같은 병반은 아니지만 이 총명하고 기특한 처녀를 들어일궈 답답한 판국에 자기의 말을 대신하는, 정신이 쩡 드는 대답을 한번 들려주고싶었다.

《자, 그럼 우리 병반학생은 아니지만 정숙동무가 길녀아주머니의 대답이 미흡한 점을 몹시 안타까와하는것 같은데 그의 대답을 한번 들어보실가요?》

그러자 길주집며느리가 냉큼 받아들고 나서며 올케와 시누이가 힘을 합쳐서 토론하겠느냐고 항의해나섰다.

《전 그렇다면 웃방에 있는 시아우님들과 힘을 합쳐서 토론하겠어요. 우리 시아우님들은 척척박사들인데···》

그 소리에 또 방안에선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러지 말구 우리 정숙동무의 토론을 한번 들어봅시다. 올케대신에 시누이도 토론하구 형수대신에 시아우도 토론하구 그렇게 해서라도 오늘밤 이 문제를 들장냅시다. 자, 정숙동무, 한번 일어서서 토론해보우.》

《제가 뭐 토론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활딱 붉어져 고개를 수그리시였다.

그러는것을 풍산집며느리가 곁에서 또 부추겨세웠다.

《그래 참 을반에서 늘 일등을 하는데 병반 숙제문제를 대답 못하겠니? 그 좋은 총기에 한마디 의젓하게 해보렴.》

《아주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정숙동무는 말이 을반이지 갑반수준입니다. 한번 정신이 쩡 들게 대답해보우.》

희섭이가 또 맞장구를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낯이 확확 달아오르시였다. 아무래도 대답을 해야 할것 같으시였다. 하긴 올케가 못다하고 주저앉은 대답을 하고싶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고리앞섶을 매만지며 조심히 일어서시였다. 가난속에서 피여난 아름답고 정갈한 얼굴이 그 수집음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더욱 끄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침착히 서서 저고리고름을 매만지시였다. 모두들 무슨 말이 나오는가 해서 웃음을 띤 시선을 집중했다.

《전 여러 아주머니나 오빠들이 우리 언니의 대답을 듣고 어째서 웃는지 알수가 없어요. 우린 정말 풋콩때문에 가슴에 맺힌 이야기가 있어요. 작년에 우리 어머니가 몹시 앓으며 입맛이 없어 끼니를 못드시기에 우리 언니가 비지라도 좀 해드릴가 해서 큰골밭에 가서 풋콩을 꺾어왔어요. 그래서 그걸 까서 언니와 내가 마당에 앉아서 망에 갈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굽에 눈물이 맺히고 말소리가 떨리시였다. 인젠 언니를 훈수드는 감정이 아니라 그때 일이 분하고 목이 메이시였다.

《울지 말고 말을 해라!》

여기저기서 따뜻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우리가 한창 망질을 하는데 민가 마누라가 마당으로 들어서지 않았겠어요. 그날 마침 언니가 민가 아버지 제사를 차리는데 나가서 도와주기로 돼있었는데 어머니가 몹시 앓아서 못나갔어요.》

《그게 지난해 말복날 이야기로군.》

《네, 그래요.》

《그날에야 그 집에만 가서 그런 야료를 부렸나? 저의 대사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동네방네로 다 돌아다니며 그런 지랄을 했지비.》

《아주머니, 가만 계십시오. 우리 정숙동무의 이야기를 들읍시다.》

희섭이가 앞지르며 떠드는 풍산집며느리의 말을 막았다.

《그런데 민가 마누라가 풋콩대를 보더니 이게 웬거냐고 묻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언니가 사연을 말해줬지요. 그러자 도조도 안바친 밭에서 풋콩을 꺾어다먹어? 하구는 대뜸 망자루에다 발길질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마주일어섰어요. 그러자 민가 마누라는 야 왜 일어서느냐, 너의 에미가 비지를 먹을줄 아느냐? 그래 남이 조상을 위해서 제사를 받들겠다는데 그건 좀 나와 봐주지 않구 제 어미 먹이겠다구 비지를 만들어? 하구는 망함지 한귀를 힝 들어서 엎질러놓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콩물을 질벅질벅 밟고 돌아가며 언니더러 어서 나가자고 등을 밀쳐대지 않아요.》

《쌍 죽일년! 지난봄에 고간을 잘 들부셨다.》

웃방 청년들속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부르짖었다. 병반아낙네들이 인젠 점점 더 눈이 떠지는것 같았다. 이때까지 자기들이 한말을 죄다 무슨 롱지거리를 한것 같았고 정숙이가 진짜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글쎄, 풋콩을 왜 못꺾어다먹겠어요? 씨도 우리가 뿌리고 가꾸기도 우리가 가꿨는데 어째서 풋콩 한대 못꺾어다먹어요? 그리구 우리가 무엇때문에 민가네 제사 차리는데 나가서 도와줘야 하나요? 우린 민가네같은 부자놈들한테 죄다 뜯기워서 못살아요. 봄, 여름, 가을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흘리며 농사를 지어선 거의다 소작료로 바치지 않아요. 소작료뿐인가요? 땅세도 우리가 물구, 이렇게 농사한 곡식을 다 뺏어내고는 부자놈들은 무슨 선심이나 쓰는것 같이 돈과 낟알을 빚으로 주지 않아요. 우린 그래도 그걸 급한 대목에 주는거라구 감지덕지 가져다먹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를 점점 더 못살데로 이끌어가는것 아니겠어요. 높은 리자인데도 또 리자에 리자가 붙구. 그러니 가을에 가선 그것두 물고 소작료도 물구 그러니 우리가 북데기만 남은 마당에 퍼더버리고 앉아 울지 않겠어요. 저두 지금 민가네 집에서 가져다 쓴 빚에 리자가 붙구 또 리자에 리자가 붙구 해서 내내 민가네 방아간에 나가서 땀을 흘리며 일해주고있어요. 우리가 못사는건 바로 이래서 못산다고 보아요. 우리가 못사는데 하늘이나 산신령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리고 전 기미년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기미년흉년이 언제게 우리가 자꾸만 못살겠어요? 기미년 다음해엔 기미년 몫이 더 될만큼한 큰 풍년두 들었다는데 우리가 뭐 기미년 흉년때문에 못살겠어요?》

누구보다도 희섭이가 가슴이 시원했다. 답답하던 머리가 무척 가벼워지는것 같기도 했다. 역시 정숙동무는 출중하고 총명하다. 가난이 짊어지우는 그 고생속에서도 한자라도 더 배우지 못해 뻑뻑 애를 쓰며 틈이 나면 책을 들여다보더니 토론하는것이 벌써 다르다. 어쨌든 정숙동무는 이미 《부엌간주인》들과는 다른 참신한 시대를 대변하고 나오는 새로운 주인공인것이 틀림없다. 희섭이는 무척도 흐뭇했다.

《자 이렇게 합시다. 오늘밤엔 제가 결론을 안하겠습니다. 그대신 문제를 좀더 깊이 끝어가기 위해서 오늘밤 제기된 이야기를 가지고 숙제문제를 내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희섭이는 이런 말을 하며 칠판에다 숙제문제를 썼다.

《우리는 왜 풋콩 한대도 마음대로 꺾어다먹을수 없는가?》

병반아낙네들은 모두 정색해 앉아서 칠판의 글자들을 또박또박 베껴나갔다.

길녀는 아낙네들 뒤에서 눈굽을 훔치면서 글자를 썼다.

야학은 밤이 퍼그나 들어서 끝났다. 희섭이 혼자서 여러 반을 가르치려니 매일밤 이렇게 늦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처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시였다.

《얘, 오늘밤 네가 정말 토론을 잘했구나!》

처녀들이 김정숙동지를 둘러싸고 걸어가며 떠들었다.

《잘하긴 뭐··· 그저 사실대로 이야기했는데 괜히들···》

아까는 격해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래웃방 사람들이 가득한데서 연설한것이 몹시 부끄럽게도 느껴지시였다. 그렇지만 한편 속에 얹혔던것이 쑥 내려간듯 후련하기도 하시였다.

《그래두 알맹이를 쑥 뽑아서 뵈는것처럼 이야길 했으니까···》

《얘 그리구말야, 그 알맹이에다 눈물까지 끼얹으니까 병반두 죄다 감동하지 않아?》

처녀들이 까르르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방긋이 웃으시였다. 서로들 팔을 끼고 걸었다. 얼마나 유쾌한 밤인가, 하늘에 별들도 바글거리며 뛴다. 지지눌린 생활, 그 생활이 밤엔 이렇게도 생기를 얻는다. 어데서인가 흘러가는 도랑물소리도 시원히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