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1

 

제 9 장

1

 

하동거리와 계림시일대엔 내도산에서 살아남은놈들이 내려밀렸다. 대오도 못짓고 뿔뿔이 흩어져 밀려들고있다.

어느놈이고 사람몰골 같은놈이란 하나 없다. 모두 푸릿푸릿 언독이 오르고 눈빛들도 청청치 못했다.

그런가위에 륙신이 성한놈도 한놈 없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으면 골이 깨지고 팔을 잃어버린놈, 얼굴에 화상을 입은놈, 별의별놈들이 온통 붕대투성이가 되여 지팽이에 실려 걸어들어오기도 하고 들것에 맞들려 들어오기도 한다.

호리구찌부대, 경찰대, 위만군, 자위단놈들이 마구 뒤섞여서 어느것이 어느것인지 가려볼수도 없다. 다같이 한모양으로 된 놈들이 서로 섞여 밀려들어온다. 하동거리에서 계림시쪽으로 건너오는 다리로는 패잔병들의 무리가 뻗닿게 뒤를 대여 건너민다.

끔찍스럽게 된놈들이 다리우에 서있는 수비대보초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개자식, 팔자가 늘어졌구나, 다리나 지키고서서···》

《이거 왜 이래?》

《임마, 너 내도산에서 공산군 내려올가봐 여기 버티고 서있어? 지금 만주전토가 녹아나구있는데 다리가 뭐야···》

《말 조심하라구.》

《어렵쇼···》

놈들은 보초의 둥실한 코를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도 했다. 그저 탕탕 몸부림을 치는것이였다. 징징 울며 건너오는놈도 있다. 통솔할놈도 없어서 굴레벗은 말처럼 발광하는판이였다.

사실 놈들은 내도산에서 내려오면서 저희들끼리 때려죽이기도 했다. 성이 독같이 오른 자기네 상관이 칼부림을 하자 이게 다 망가진판에 어따 대고 군규타령이냐고 우르르 달려들어 때려죽였다. 그리고는 모자와 칼을 집어내던졌다. 상관만 때려죽인게 아니라 졸개들끼리도 싸움이 붙어 여러놈 죽었다. 그것도 대체로 모포를 제가 덮고 자겠다거나 옷을 벗겨 입겠다는 너절한 싸움질이였다. 패잔병들이 한창 다리를 건느는데 다리 저편으로 밤빛말 한필이 뒤따라 들어온다. 말잔등엔 누런 만또를 입고 붕대감은 머리우에 군모를 올려놓은 호리구찌가 앉아서 건덩건덩 흔들리며 들어오고있다. 숱한 놈들이 뒤따랐다. 뭐라고 벼락치는것 같은 소리도 일어났다. 그제야 다리를 건느던놈들이 비실비실 란간으로들 비켜섰다.

《여, 호리가 천당에 갔다더니 살긴 살았네그려.》

《천당에 갈번했댔지. 지휘를 해올라가다가 내도산 낭밑에 굴러나 두시간이상 숨기가 없었댔다네. 그래서 죽은줄 알고 돌려놓았댔는데 입이 푸르르 떨며 숨을 내불더라질 않나.》

란간에 비켜선놈들은 수군수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호리구찌의 말이 지나갔다. 말잔등에 앉은 호리구찌는 독이 오른 눈으로 패잔병들을 흘겨보았다. 짝 바라진 나비수염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놈도 호되게 욕은 본것 같다. 머리는 낭으로 떨어질 때 터졌는지 붕대도 손두께같이 두텁게 감았다. 그 붕대때문에 군모는 쓰고오는게 아니라 머리우에 이고 왔다. 아주 벗어내던질수가 없어서 그렇게 하고 오는 모양이였다. 만또자락도 한쪽은 다 타버렸다. 그 타버린곳으로 장화다리와 군도가 내려드리워 서로 짓쫗으며 절컥절컥 소리를 내였다.

《야 이자식들, 비켜서라!》

호위하고 들어오는 졸개가 앞을 내다보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앞엔 다리를 제대로 못쓰는놈들 몇이 서로 어깨를 겨루고 늘어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앞에 들것도 한채 맞들려가고있다.

고함소리에 놀란놈들이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개자식들, 빨리 비켜서지들 못해?》

호위병 하나가 또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모두 비실비실 란간으로 비켜나갔다. 한놈은 비키다가 엎어져서 벌벌 기였다. 들것도 비키였다. 비켜선 들것우에선 비명이 일어났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들것채를 탕탕 친다. 호리구찌의 말은 뚜걱거리며 얼른 지나쳤다. 호리구찌는 여전히 시꺼먼 얼굴로 흘겨보며 지나갔다. 그러나 그의 청청치 못한 눈은 이어 더 뿌옇게 흐려오며 눈굽에 눈물이 괴였다. 그는 말에게 박차를 가했다. 말이 재게 굴러쳤다. 자기의 주접이 드는 감정에 따귀를 후려치며 눈에 서슬을 올리는것이였다.

계림시거리에선 소동이 일어났다. 패잔병놈들이 이 골목 저 골목 흩어져 돌아다니며 사람을 치기도 하고 길바닥에 들어앉아 붕대를 고쳐감으며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아주 중상을 입은놈들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놈들은 모두 거리 한쪽 공지에 눕혀놓았는데 무슨 돼지전이라도 편것 같다. 소리를 지르다가 죽는놈도 있다. 그런놈은 숨이 떨어지기 바쁘게 무슨 마대짝 같은데 넣어 어데로 옮겨가는지 제꺽제꺽 메여내간다. 정신이 아주 돈놈도 있다. 그런놈은 거리바닥에서 오장이 째지는것 같은 소리로 돌격구령을 지르기도 했다.

《잘 녹아났다. 더럽겐 망했다.》

《제따위들이 혁명군을 당해내나?》

거리사람들은 수군수군 끓었다. 기운이 나서 씽씽 걸어다니기도 했다. 모두들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도산에 와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슴들이 들먹거리기도 했다. 여기 들어오는길로 내도산으로 적정자료를 날려보낸 한기천은 거리에 덮어쳤던 왜적을 제 몽둥이로 다 두드려잡은것 같기도 해서 두어깨가 으쓱거려졌다. 그는 지금 싸전을 펴기 위해 달구지군과 함께 싱글벙글 웃으며 정거장에서 황조미를 실어들이느라고 법석했다.

《허, 가게를 펴자 쌀이 와닿았습니다.》

《암, 제꺽제꺽 해얍죠. 돈냥이나 붙잡을 결심을 하고 이 거리에 왔는뎁쇼.》

한기천은 거리사람들이 건늬는 소리에 대꾸하며 껄껄 웃었다. 그는 이 거리에 오자부터 어느 남도사투리까지 썼다. 옷도 좋은 외투를 사입고 외투깃엔 수달피털까지 댔다. 어제까진 개화장을 짚기도 했댔는데 그건 익숙지 않아서 집어내던졌다.

《응, 인젠 다 됐네. 어서 부리우게.》

가게앞에 온 한기천은 젊은 달구지군에게 이르고 빨리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쌀 받아놓을 자리를 만들려는것이였다.

조직의 지시로 집 한채를 사고 부리나케 싸전을 시작했는데 처음 쌀이 들어오는판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서툴기 짝이 없었다. 그전에 구멍가게를 하던 집인데 방이 코구멍만해서 량곡 받아쌓을 자리조차 없다.

《가만있자, 이쪽벽앞으로 주르르 쌓게, 그렇게 쌓아야 방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막히질 않고··· 옳지 옳지.》

한기천은 가분가분 외투자락을 날리고 돌아가며 달구지군에게 일렀다.

《주인님은 가게를 펴면서 왜 혼자 오셨습니까?》

《인제 식구가 오지, 강을 건느기가 힘들어 지체되는가볼세.》

《아, 국내에서 오시는군요. 참 애 하나는 데리고왔더군요.》

《그건 내 형의 자식일세. 제 애비 에미가 일찍 작고해서 내가 데리고다니며 기르질 않나.》

한기천은 달구지군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쌀포대를 받아서 쌓았다. 쌀포대를 다 들여다 쌓으니 가게안이 그들먹해지는것 같아서 괜찮았다. 인젠 조직이 소개해놓은 곳에서 뻗닿게 쌀이 들어올 모양인데 그걸 다 어데다 쌓아놓을가 하는 근심도 생겼다.

한기천은 이번엔 달구지군을 정거장으로 혼자 내보내고 저는 가게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조그만 책상앞에 앉아서 수판을 디꺽거리며 놓았다. 방금 정거장에서 쌀값을 물고 들어왔는데 그 계산을 바로 했는가 해서 다시 수판을 튕겨보는것이였다.

《맞어!》

한기천은 수판을 들어흔들며 일어섰다.

그는 살림방으로 들어가 외투틀 벗어 걸었다. 살림방 역시 코구멍만 한 방 두간인데 아침에 장작을 지펴넣었더니 두방이 다 뜨끈했다. 어째 조그맣긴 해도 이렇게 판을 차려놓고보니 쑥바치로 간 안해생각이 부쩍 치솟기도 했다. 처음 계획이 국내공작을 떠나가게 되여있어서 안해를 쑥바치로 보냈댔는데 그뒤 조직의 지시가 달라져 이리로 왔다. 그러니 부득이 홀아비살림을 해나갈수밖에 없게 되였다. 그는 헤여지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던 안해가 쑥바치에 가서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아픈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한기천은 맘이 흥성거려 다시 가게방으로 나왔다. 자기가 만경창파같은 이 도시를 타고 놀기 위해 지금 닻을 올린다는것도 흥분을 억제할수 없는 일이지만 리범진중대가 그렇게 큰 적을 때려눕혔으니 껑충껑충 뛰고만싶었다. 이곳에 도착하는길로 여기 조직원 몇을 움직여 내도산으로 적정자료를 띄우긴 했으나 일이 어떻게 된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이 지내기도 했었다.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데서 바람소리만 요란히 울려와도 닁큼 일어나 거리바닥으로 달려나가군 했다. 그런데 그 대적을 아예 판이 나게 두드려잡았다. 올라갈 때 놈들 수효를 보면 아주 깡그리 잡아낸게 틀림없었다.

《아저씨!》

한기천이 코노래를 부르며 어제 사온 앉은뱅이 저울을 바로잡아 놓고있는데 애 하나가 한기천을 부르며 싸전으로 달려들어왔다.

《오냐, 잘 놀다가 왔니?》

《흥, 잘 놀게 뭐야? 오랑캐군대가 득시글거리며 여기 가도 꿱 소리치고 저기 가도 꿱 소리치지 않아. 그래서 우리가말야, 저 새장구치는 술집뒤에 숨어서 돌 던졌다.》

《이놈, 돌을 던지다가 붙잡히면 어찌려고 그래?》

《피, 붙잡히나? 냅다 뛰는데뭐···》

한기천은 껄껄 웃었다. 그는 애를 닁큼 안아들며 무서운 눈을 하고 《이놈》 소리를 질렀다. 애는 한기천의 입을 주먹으로 때리며 까닥까닥 웃었다. 세상에는 기이하고 기이한 일도 있는것 같다. 이 어린것이 김정숙동지를 그렇게도 울리고있는 인남이일줄이야! 확실이가 길바닥에서 잃어버리고 술기막골에 와서 제 옷자락을 바락바락 쥐여뜯으며 울던 그 인남이일줄이야.

한기천은 이 계림시로 오다가 월평을 에도는 큰길가에서 애 하나를 만났다.

《아저씨! 나 말 좀 물어볼테야.》

조그만것이 령롱한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마구 딩군것 같은 옷주제에 그래도 비단조끼를 입었다. 태봉시할머니가 너무 귀여워 외씨같이 박아 지어입힌 조끼였다.

《무슨 말이냐? 이놈!》

《술기막골이 어디메나?》

《술기막골? 술기막골은 왜 묻느냐?》

《거기 우리 고모가 있어.》

《뭐 고모?》

고모라는 소리에 한기천은 가슴이 후두두해졌다. 당장 김정숙동지가 생각키웠다.

《우리 고모가 땅땅 총두 쏜다···》

《너 이놈, 저리 좀 가자.》

한기천은 애를 잡아끌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길바닥에서 무슨 말을 자세히 물을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래서 좀 떨어진 산기슭 숲속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애는 한기천을 왜놈인줄 알고 겁이 나서 내빼자고 했다.

《이놈 못간다.》

한기천은 대갈놀음하는 애를 품에 우쩍 안아들고 산기슭으로 걸어갔다. 애는 종주먹으로 한기천의 얼굴을 갈겨대며 왜놈이 사람 죽인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한기천의 마고자를 바락바락 쥐여뜯고 턱과 가슴팍에도 마구 주먹질을 했다.

한기천은 간신히 안아들고 산기슭으로 갔다. 내뺄것 같아 내려놓으면서도 애의 한쪽 발목을 거머쥐였다.

《이놈, 가긴 어데로 간다고 야단이냐?》

《놔요, 놔요.》

애는 눈물범벅이 되여 울며 붙잡히지 않은 다리로 한기천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그바람에 한기천은 그 발목도 거머쥐였다.

《이놈, 인제야 뛰겠다는 소리를 못하지?》

애는 눈구뎅이에 나가군드러져서 그담엔 눈을 마구 쥐여뿌렸다.

《얘, 인남아, 네 이름이 인남이지?》

한기천은 눈덩이로 얻어맞으면서 애에게 물었다. 애는 제 이름을 부르는바람에 두손에 눈덩이를 그러쥔채 두눈이 커져서 쏘아보았다.

《이놈, 네가 고분이엄마하구 술기막골로 함께 가다가 고분이엄마를 잃어버렸지?》

《헹,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다 알지, 내가 고분이애비다.》

《한벼락이나요?》

그 소리에 한기천은 큰소리로 웃었다,

《이놈, 한벼락이란 소리는 누가 하더냐?》

《고분이엄마가 날 데리구 술기막골로 가며 말했어.》

《그렇단다. 내가 한벼락이다. 어서 일어서라.》

한기천은 애를 들어일궜다. 그리고는 눈 들어간 배가 아직도 풀떡풀떡 뛰는 어린것을 꽉 다가안으며 애의 볼편에 자기의 볼편을 문질렀다.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네 고모를 찾아줄테다. 술기막골엔 지금 고모가 없다.》

한기천은 눈물을 질끔거리며 말했다.

《정말?》

《이놈, 정말 아니면 내가 거짓말 할테냐?》

《그럼 손가락을 걸어.》

어린것은 제 손가락을 꼬부려 내댄다.

한기천은 허허 웃으며 애의 손가락에 자기의 손가락을 걸었다.

틀림없이 고모는 술기막골에 없으며 자기가 인제 고모를 찾아준다는 약속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데리고온 인남이였다.

《아저씨, 나 언제 고모한테 보내줄테야?》

인남이는 한기천의 어깨에 매달리며 물었다.

《이놈, 그런 말을 자꾸 물으면 못써. 왜놈들이 그 소리 들으면 당장 너도 잡아가고 나도 잡아간다. 그러게 꿈쩍 묻지 말고있다가 내가 보내줄 때 가야 한다.》

한기천은 인남이의 뒤통수를 쓸어주며 단속했다.

《이거 다 우리 쌀인가?》

《그럼.》

《이야!》

인남이는 환성을 지르며 쌓아놓은 쌀포대우로 벌벌 기여올라갔다. 어데서 무슨 장난질을 했는지 바지엉덩판에 흙이 한말이나 묻었다. 인젠 남색비단조끼도 거의 다 판이 났다.

인남이는 쌀포대우에 납작 엎드려 한기천에게 대고 땅땅 총쏘는 흉내를 내였다.

저편 구석에서 빈 마대를 힝힝 들어 쌓던 한기천이도 제 손가락을 아이한테 겨누며 따르륵하고 경기 쏘는 흉내를 내주었다. 인남이는 그게 좋아 쌀포대우에서 배를 들썩거리며 웃어댔다. 애는 또 가게를 뛰여나왔다. 그는 애들의 이름을 부르며 거리바닥으로 뛰였다.

거리의 공기는 불시에 긴장해졌다. 호리구찌가 대렬수습을 위한 엄명을 내린것이였다. 거리를 갈팡질팡하던 패잔병들이 언덕우에 있는 수비대병영마당으로 몰려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여러놈이 칼을 빼들고 거리를 돌아치며 모두 모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수비대병영마당으로는 보기 끔찍한놈들이 자꾸 몰려들어갔다. 그런데 가시철조망 친 정문앞에는 지금 박순도가 서서 경찰대는 렬을 지어서 들어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우두머리가 다 죽고 박순도가 우두머리로 나선것 같았다. 놈은 전투마당에선 안경을 안썼댔는데 지금은 위엄을 보이느라고 그러는지 뾰족한 전투모밑에 동그란 안경까지 끼고 서서 왜말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다 죽다가 남은 수십명되는 경찰대놈들이 박순도앞에 늘어섰다.

《바로섯!》

박순도는 독한 눈을 하고 자기를 향해 바로서라고 소리쳤다. 대갈 터지고 다리부러진놈들이 간신히 몸을 가누며 바로섰다.

《앞으롯!》

박순도는 흰수갑 낀 손을 들어 까닥까닥 대렬을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며 뒤걸음쳤다.

《정신차렷!》

절뚝거리는놈들이 헛눈을 팔자 고함을 지른다. 비루먹게 된 대렬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규률있게 마당안으로 들어갔다.

《토벌대》, 경찰대, 위만군이 다 늘어서자 앞에서 도끼눈으로 쏘아보던 호리구찌가 서서히 군도를 절컥거리며 단우에 올라섰다. 타버린 만또자락이 바람에 펄러덕거렸다.

《듣거라!》

호리구찌는 비통한 심정을 눌러내느라고 한참이나 후에야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내도산전투에서 이루 말할수 없는 타격은 받았다마는···》

호리구찌는 또 말을 끊었다. 눈을 슴벅거리기도 했다.

《허지만··· 우리가 제국남아로서 군충을 다하는 길이 막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친 속단이다. 제국남아는 열두번 갱신해서 분골쇄신하는것만이 페하의 적자로서 충절을 다하는 길이다. 칼을 보아라앗!···》

별안간 호리구찌는 군도를 뽑아올리며 미치광이 발작처럼 고함을 질렀다. 입귀가 푸들푸들 뛰였다.

마당에 모여선놈들이 모두 시퍼런 칼날을 올려다보았다.

가시철조망밖엔 애들이 가뜩 모여서 구경하다가 칼 보라는 소리에 질끔 놀라서 냅다 뛰였다.

《이야, 호리구찌 땅땅 <토벌대> 땅땅.》

애들은 거리로 내뛰며 소리쳤다. 모두 강으로 향했다. 인남이가 앞장섰다.

《너 인제 그 칼 우리 고모가 뺏어낸다.》

《뭐 고모?》

《그럼, 우리 고모가 쎄다. 총두 땅땅 잘 쏜다.》

《피···》

《피가 뭐야?》

애들은 싱갱이를 하며 뛰였다. 강으로 온 애들은 얼음판우에서 한참 뛰며 미끄럼질을 했다. 두주먹을 쥐고 냅다 뛰다간 우뚝 버티고 선다. 그러면 한 댓발씩 미끄러져나갔다. 큰애 하나가 미끄럼을 치다가 넘어져 딩굴었다.

거기에 또 두 아이가 덮어치며 함께 딩굴었다. 짝장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인남이도 까닥까닥 웃어댔다.

《자, 또 가자. 호리구찌 죽이자!》

인남이가 또 소리를 지르며 저쪽 강가로 냅다 뛰였다. 하동거리로 가는것이였다. 하동거리는 강을 건너서도 눈덮인 버덩을 한참이나 뛰여 백양나무들이 주르르 늘어선 언덕을 넘어서야 했다.

애들은 여기서도 장난을 치며 뛰였다. 어느 애고 달구지나 마차가 다니는 큰길로는 뛰지 않고 눈이 펑펑 빠지는 곳으로 뛰며 고함을 지른다.

《호리구찌 땅땅.》

《경찰대 땅땅.》

얼마후에야 애들은 백양나무 늘어선 축동을 넘어섰다. 하동거리가 펼쳐졌다. 흙지붕, 초가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다. 계림시에 비하면 어방없이 작기도 하고 퇴락한 낡은 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도 계림시 같은 문물이 들이밀리고있다. 몇군데 유리문이 번쩍거리는 집들도 보인다.

애들이 하동거리로 들어서자 하동거리 조무래기들도 뛰여나왔다. 나무로 깎은 총을 든 애들도 있고 기다란 꼬챙이끝에 붉은 헝겊을 매단 기발 같은걸 들고나오는 애도 있다. 계림시 애들과 또 한바탕 군사놀이를 벌릴참으로 내달아오는것이였다. 요새는 내내 호리구찌부대 쏴죽이고 찔러죽이는 놀음을 벌린다.

《이야 말파리 온다.》

앞장에 서서 거리를 달려가는 인남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였다. 정말 잡화가게앞으로 이마에 붉은 수술을 단 말 한필이 뛰여내려온다.

고통받는 금실이를 빼내가려고 숨이 차게 달려오는 오포수의 말파리였다.

말파리우엔 김정숙동지께서 앉아계시였다.

《막아라, 말파리 막아라!》

애들이 떠들었다. 인남이가 두팔을 쩍 벌리고 말을 막아서며 못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통에 바지괴춤이 흘러내려가고 배꼽까지 내놓였다.

《이놈의 자식들, 비키지 못할가?》

말파리우에서 오포수가 목을 빼들며 고함쳤다.

《못가요, 못가요.》

애들이 목소리를 합쳐 짝장그르르 끓었다. 털끝에 땀이 번질거리는 말이 흐앙거리며 멎어섰다.

《이놈의 새끼들!》

오포수가 채찍을 휘두르며 마부대우에서 뛰여내렸다. 그바람에 애들은 우야 소리를 치며 말을 비켜 달아났다.

골목으로도 뛰고 말곁을 스쳐 거리로 내뛰기도 했다.

《원, 조마구같은놈들이 말도 무서워하질 않는단말야.》

오포수는 두덜거리며 마부대우에 도로 올라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에 막아서는 애 하나를 보고 번쩍 두눈을 흡떴다가 서서히 눈길을 깔으시였다.

어데서 본 애 같기도 한데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말파리는 또 덜렁덜렁 달리였다. 순간이 운명을 희롱하는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