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5

 

제 8 장

5

 

전투가 한바탕 끝났을 때 점심밥이 올라왔다.

전호로 두명의 부녀회원이 밥함지를 이고 들어섰다. 아낙네들은 눈들만 빠끔히 내놓고는 누가 누군지 모를만큼 수건으로 꾸둥치였다. 손에도 토시와 수갑을 끼였다. 한 아낙네는 수갑이 없는지 버선목속에 손을 집어넣고 밥함지를 붙들고 올라왔다.

총질하던 녀대원들이 달려가 밥함지들을 받아내렸다.

《물동이는 올라오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밥함지보를 펼쳐보시며 아낙네들에게 물으시였다.

《오늘은 소대장들이 물을 가지고 올라오지 말래서 그만두었어요. 어제 동이를 둘이나 깨먹었는데 밥 자시고 양치질은 눈을 쥐여 자시면 된다구 해서···》

《어떻게 양치질을 눈으로 하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추운날 속을 데울만한 더운물이 있어야 하잖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가볍게 한마디 해주시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몹시 언짢으시였다. 소대장들은 부녀회원들이 힘들어한다고 그런 말을 했겠지만 부녀회원들이야 어째서 이 추운 전호속에서 덜덜 떨며 총질하는 사람들 생각을 못할가. 싸움하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뿐만아니고 늙은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동이를 깨먹을가봐 더운물을 이여올리지 못하다니··· 밥은 아침에 시켜준대로 주먹밥을 해가지고 왔다. 마르고 굳어질걸 걱정하셨더니 밥덩이에 참기름도 번지르르하게 묻혀가지고 왔다. 하지만 물이 켜울텐데 어떻게 눈을 쥐여먹게 한단말인가. 눈을 쥐여먹는다 한들 그 찬눈을 배가 시리도록 쥐여먹을수야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땅우에서 함부로 날아치는 눈이 깨끗한 눈이긴들 하랴.

김정숙동지께서는 더운물을 이여오지 않은 일로 못내 가슴이 내려가지 않으시였다.

다행히 적의 준동이 좀 멎어서 점심을 그 순간에 치르었다. 검산전투때 식사를 하듯 모두 전호턱에 붙어앉아 비탈을 쏘아보며 주먹밥들을 먹었다. 젊은 사람들은 밥 몇덩이씩 굽혀대고는 눈도 한입씩 밀어넣고 잘 녹여먹었다.

오후엔 눈보라가 더욱 세차게 일었다.

세찬 눈보라와 함께 적들도 눈코뜰새없이 뒤를 대여 올려밀었다. 놈들은 기관총을 다 동원해가지고 올라오며 휘둘러댔다. 화력이 만만치를 않았다. 시체가 더미를 이루는데도 자꾸 올려밀었다. 온 산이 발끈 뒤집히는것 같았다. 마을사람들의 전호에선 로인들이 앉아서 일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해소병으로 쿨럭쿨럭하는 로인들이 혹한과 가렬한 싸움을 이겨내지 못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소리를 듣고는 참을수가 없으시였다.

《복녀동무, 내가 병영에 내려갔다오겠어요. 소대장동무가 오면 급히 볼일이 있어서 내려갔다고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에게 이르시고는 얼른 전호를 빠져나오시였다. 로인들이 앉아서 일어서지 못한다는 말을 어떻게 듣고만 있겠는가. 숱한 부녀회원들이 있으면서 동이를 깨먹을가봐 더운물 한방울 날라올리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가슴에 메여오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구 달리시였다. 산등성이로 올라서니 눈보라가 사람을 밀쳐넘긴다. 그러거나말거나 그이께서는 릉선을 타고 한창 달리시였다. 얼마후에야 비탈로 내려붙으시였다. 비탈엔 바람이 더욱 거세였다. 회초리로 치는것 같은 바람이 아릉아릉소리를 내며 눈보라를 휘몰아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번 깊은 눈구뎅이에 빠졌다 솟아오르기도 하시였다.

작식대 병영에 오시니 부녀회원들이 법석 끓었다. 무얼 가는지 한쪽에선 망질을 하고 다른 한쪽에선 절구질도 했다. 아낙네 여럿은 방바닥에 앉아 생무우를 채치고 채친 생무우에 고추가루를 시뻘겋게 버무리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들어가자바람으로 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더운물이 있는가 해서였다. 더운물이 있긴 했으나 끓어번지진 않았다. 그이께서는 아낙네들에게 불을 더 때라고 이르시며 끓는 물 담아가지고 갈 그릇을 찾으시였다.

《무얼 찾아요?》

심씨가 물었다

《더운물을 좀 퍼올려가야겠어요.》

《아니 눈보라가 지동치듯하는데 어떻게 더운물을 나르겠소? 그러지 않아도 그릇 깨먹는다고 그만두라고 했다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이 없으시였다. 역시 자신께서 부녀회를 이끈다곤 하면서도 건공 떠서 뛴것 같이만 생각되시였다. 사람들을 이끈다고 하는것이야 무슨 힘내기를 하며 잡아당기는것과 같은것일가.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들의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그들 스스로가 머리를 쓰며 어떤 경우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가. 그래야 녀성의 힘, 부녀회의 사업이란게 혁명에 용을 쓰며 일어설게 아닌가. 그릇을 찾으니 다행히 웃말에서 간장을 넣어 내려온, 양철로 만든 둥그런 통이 하나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그걸 들어다가 마개를 뽑고 딴 그릇에 간장을 콸콸 쏟으시였다. 그리고는 두세번 물을 넣어 왈랑왈랑 가셔내시였다. 심씨도 딴 아낙네들도 모두 눈이 둥그래서 쳐다만보았다. 그들도 어째 미안하다는 생각이 눈을 떴다. 자기들이 일을 잘했다면 전호에서 싸우던 김정숙동지께서 달려내려와 이러랴싶었다.

얼마후 가마의 물이 뒤번져오르며 펄펄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물을 통에 퍼넣으시였다. 어떻게 끓는지 물을 퍼넣으니 통이 뜨거워 손을 댈수가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통마개를 단단히 막고 또 통을 감쌀 천이 없는가 해서 주위를 살펴보시였다.

《었소, 이걸 둘러감아요.》

심씨가 얼른 제 행주치마를 벗어주었다.

《그것 하나 가지고 되겠어요. 제것도 둘러감아요.》

불때던 아낙네도 제 행주치마를 벗어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행주치마 둘을 통에 둘러감으시였다. 그리고는 끈을 얻어 단단히 동여매기까지 하시였다. 물통이 갓난애기를 포대기에 싸놓은것만치나 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걸 붙안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눈보라가 윙윙 짐승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그런 가위에 지금 전투도 한창 불꽃을 날리는것 같다. 온 내도산이 총소리로 들썽들썽했다. 무엇이 산을 가르는것 같은 소리도 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더욱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더운물을 식히지 않으려고 군복단추를 벗기고 저고리앞자락속에 물통을 밀어넣으며 뛰시였다.

그런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뛰다가 길을 헛갈려 어덴가 산중턱에서 허공 떨어져내리시였다.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아, 이를 어쩌나?》

그이께서는 소리를 지르며 물통을 더 단단히 부둥켜안으시였다. 그러나 어쩔수 없게 디굴디굴 구르시였다. 물통마개가 빠져 더운물이 쏟아지는지 가슴이 뜨끈하셨다. 그래서 굴면서도 얼른 물통을 더듬어 벙글써해진 마개를 꽉 들어맞추시였다. 그리고도 몇고패 더 구르시였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더 아찔한 곳에 떨어지셨다. 깊은 눈속에 파묻혔고나 하는 생각이 얼른 지나가신다. 움쩍움쩍 힘을 써보았으나 움직여지지 않으시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무엇이 더 온몸우에 와서 짓눌러놓는다. 눈이 무너져내려 자기를 몇겹으로 덮으며 짓누르는지 모른다. 그이께서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눈을 헤치시였다. 그러나 팔이 잘 놀려지지 않고 몸이 꽛꽛하게 굳어져갔다. 내가 어떻게 되는거야, 내 몸우에 눈산이 덮이는것 아니야? 그이께서는 무서운 환상에 사로잡히시였다. 아뜩아뜩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돌이키기 위해 자신의 살을 꼬집으시였다. 몇번이고 꼬집으시였다. 그러면서 산을 떠밀고 일어나듯 우쩍 힘을 써보기도 하시였다. 그러다간 또 정신이 아뜩해져서 몸부림을 치시였다.

작식대병영에 있는 심씨는 충격이 커서 잠간 부엌바닥에 앉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별말 없이 더운물통을 안고나가긴 했으나 부녀회를 꾸짖어도 보통 꾸짖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아낙네들이 가뜩 모여와있으면서 어떻게 싸우는 동무가 내려와서 더운물을 퍼가지고 올라가게 했을가. 내가 부녀회장을 얼마나 잘못했으면 일이 이렇게 되였을가, 소대장들이야 부녀회원들 수고한다고 더운물을 올려오지 말라고 했을테지, 그 눈보라치는 산꼭대기에서 정말 더운물이 필요없어서 올려오지 말라고 했을가.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지 않았는가. 아니 이거야 뭐 모르고 알고 할것이 있는가. 남처럼 열가지 백가지 다 생각하며 그 모든걸 자기의 치마폭에 걷어안고 뛰자는 열성이 없어서 그랬던것 아닌가.

심씨는 치마끈을 죄여매며 일어섰다.

《모두들 딴일은 거두고 더운물을 한그릇씩 퍼들고 올라가자구요. 물 한통 올려간것이야 한전호의 사람들이나 대접할게 아니요.》

《참 우리가 소대장들 말만 들은것 같아요. 얼마나 더운물 소리가 나왔으면 싸우던 사람이 내려와서 물을 퍼가지고 올라가겠어요.》

심씨의 말에 딴 아낙네가 대꾸했다. 모두들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동이는 커서 이고 올라가다가 또 실수를 할테니 김치나 짠지 담긴 작은 단지들을 들어내자고 했다. 간장 담은 되병들도 몇개 간장을 딴 그릇에 쏟았다. 단지와 되병들에 끓는물을 퍼담으며 한편으로는 저들의 행주치마를 벗어서 동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야 절절 끓는물 그대로 한사발씩 대접할수 있겠지.》

《그럼요. 우린 궁리가 뽐가웃밖엔 안된다니까. 벌써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아낙네들은 떠들며 단지를 이고 나섰다. 되병 든 아낙네들은 역시 김정숙동지처럼 되병을 덧저고리 앞섶안에 감추어안고 뜀박질을 했다. 심씨가 선코에 서고 아낙네들이 진을 치고 뒤따랐다. 눈보라는 여전히 극성을 부렸다. 우우 우르륵우르륵 우위우위 별소리를 다 냈다. 싸락눈이 뺨을 갈기고 눈망울을 갈기고 했다.

《아니, 이게 누구의 신이요?》

앞서 걸어가던 심씨가 검은 녀자고무신 한짝을 쳐들며 소리쳤다.

《그게 정숙누나의 신이구만··· 지하족이 다 꿰져서 오늘아침엔 그 고무신을 신고 동여매고 싸움터로 나갔댔어요.》

《옳아요》

숱한 아낙네들이 고무신짝을 쳐다보며 김정숙동지의 신짝이라고 떠들었다.

《그런데 이게 별일 아니요? 사람은 없구 신짝만 있으니···》

《사람이야 벌써 전호로 올라갔겠지?》

《신을 내버리고 올라가요?》

《그럼 사람이 어떻게 됐을가?》

아낙네들은 모두 눈이 커졌다.

《정숙누나!》

《정숙동무!》

아낙네들은 저마끔 입에 손나팔을 해대고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눈보라가 어떻게 지동치듯하는지 앞을 분간해볼수가 없었다.

《가만있으라구, 벼랑우에 신짝이 벗겨져있을 때엔 벼랑밑으로 굴러났는지 모르겠소. 저 아래 웅뎅이 눈을 헤쳐보자구···》

그래도 심씨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아낙네들이 물그릇들을 모여놓고 덧저고리를 벗어서 씌워놓은 다음 벼랑아래 눈구뎅이로 뛰여내려갔다. 어떤 아낙네는 뛰다가 데굴데굴 굴러나기도 했다. 심씨가 마구 덤비다간 눈속에 아주 빠져들어간다고 소리쳤다.

《그럼요, 아주 빠졌다간 죽어요. 여긴 눈이 열길도 더 쌓였어요. 이게 깊은 골짜기인데 눈높이가 좌우 산마루와 가지런하지 않아요.》

심씨의 소리에 아낙네들이 떠들었다. 모두 눈을 파헤쳐나갔다. 울먹거리며 파헤치는 아낙네도 있다. 아무렴 이 눈구뎅이에 파묻혀있을가. 여기 파묻혀있다면 어떻게 살아있기를 바라겠는가. 무서운 생각이 덮어치기도 했다. 담이 약한 아낙네는 눈을 파헤치는 손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마구 휘저어대기도 했다.

《저기 사람이 있다!》

별안간 한 아낙네가 소리를 질렀다.

모두 놀라서 얼굴을 쳐들었다. 정말 저쪽 굵은 참나무가 서있는 앞에서 눈구뎅이 눈이 움쑥움쑥 갈라지며 사람이 솟아오르고있다. 처음엔 머리가 올려솟더니 차츰 어깨박죽이 드러났다. 온통 눈을 뒤집어썼다.

《정숙동무!》

《정숙누나!》

아낙네들이 아우성을 치며 달려갔다. 달려가던 아낙네 하나가 또 깊은 눈구뎅이속으로 밀려들어가며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딴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빠져들어간 아낙네한테 긴 막대기를 내밀었다. 아낙네가 막대기를 붙잡자 여럿이 소리를 지르며 잡아당겨올렸다.

얼마후에야 그들은 김정숙동지에게로 달려가 눈구뎅이로 마구 뛰여들었다. 그들은 몸을 솟구시는 김정숙동지를 눈구뎅이밖으로 밀쳐넘겼다. 주위에서 정숙누나를 붙들지 말라고 소리쳤다.

《나를 놔주세요. 혼자 올라갈수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도 아낙네들에게 타이르시였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여 후유 긴숨을 내쉬며 한쪽다리를 뽑으시였다. 물통도 안은채 있다. 군모가 비뚤어지고 군모와 가슴팍에 눈이 하얗게 덮였다. 아낙네들이 모두 돌아서서 울었다. 심씨는 자기의 치마자락을 두드려대며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설분했다.

《글쎄 내가 무슨 부녀회 회장이람? 나같은걸 부녀회장 내놨으니 쌈하는 사람들이 물을 퍼올려가느라고 그 고생을 하다가 이렇게 됐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겨우 다리를 뽑고 일어서시였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잡으시며 거인같이 비척비척 걸어나오시였다.

《인젠 그 물통을 우리한테 줘요.》

아낙네들이 손을 내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만 끄덕이시였다.

《어쩜···》

심씨는 김정숙동지의 양말만 신으신 한쪽발에 고무신을 신기였다. 그는 신을 신기며 울었다. 아낙네 하나가 또 물통을 달라고 김정숙동지의 품에 손을 들이밀었다. 품이 뜨끈했다.

그 찬 눈구뎅이속에 파묻혀있으면서도 더운물을 식히지 않기 위해 물통을 붙안고 온몸을 또아리틀듯하고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물도 식히지 않고 몸도 얼지 않으셨는가싶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물통을 넘겨주지 않고 산비탈을 춰오르시였다.

인젠 전투가 멎은것 같다. 온 내도산이 고요했다. 산을 휘감아치는 눈보라소리만이 우룩우룩했다.

《더운물들을 퍼들고 왔어요?》

《그럼···》

김정숙동지의 묻는 말에 아낙네들이 눈물을 씻으며 대답했다.

《잘 하셨어요. 어서 올라들가자요.》

김정숙동지께서도 약간 이슬이 비낀 눈구석을 손가락끝으로 닦으며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부녀회원들은 눈보라를 헤치며 각 전호들로 뜀박질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독립군로인들의 전호로 달리시였다. 앉아서 일어서지 못하는 로인들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마을사람들 전호에 들어서니 정말 로인 셋이 해종일 오금을 꺾고앉아 총질을 하다가 아래도리가 굳어져 일어서질 못했다. 그래서 모두 달려들어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법석을 했다. 로인 셋중에는 정대환이도 섞여있었다.

사람들은 김정숙동지께서 붙안고 올라온게 뭐냐고 물었다. 더운물이라고 하자 와아 환성이 터져올랐다. 더운물이 들어가 몸이 훈훈해지면 오금을 펼지도 모른다는거다. 사람들은 물통 있는데로 달려왔다. 돌려감은 행주밑으로 손을 넣어보고는 《엑 뜨거》 하고 소리쳤다.

《용킨 용쿤. 이 혹한에 물을 식히지 않고 달려왔군.》

《자 빨리들 <장생불로주>를 한사발씩 대접해봅시다. 이것만 대접하면야 오금을 쭉 펴겠지.》

사람들이 달려가 사발을 들고 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개를 뽑고 김이 물물 나는 물을 쏟으시였다. 모두 한그릇씩 받아들고 로인들곁으로 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한사발 들고 정대환이 있는데로 가시였다. 정대환은 상투가 비뚜름해서 전호바닥 짚을 깔아놓은 우에 앉아있었다. 정선일이며 다른 독립군들이 그의 굳어진 다리를 주무르느라고 야단이였다.

《할아버지, 더운물이예요. 한모금 마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더운물사발을 내밀며 말씀하시였다.

정대환은 와들와들 수전이 일어난 손으로 더운물사발을 받았다. 그리더니 새까맣게 탄 입술을 사발가위선에 붙이고 한참동안 꿀꺽꿀꺽 다 마셨다.

《나, 나 한사발 더 줄수 있겠나?》

로인은 숨이 찬 소리로 중얼거리며 빈 사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사발을 받아들고 일어서시였다. 가슴이 아프시였다. 오금이 굳어진것도 굳어진것이지만 얼마나 목이 탔으면 물을 또 한사발 더 달라고 할가. 저런 로인들더러 눈을 쥐여먹으며 싸우라고 내버려두다니, 이 무슨 죄스러운짓을 하고있었단말인가.

물을 또 한사발 떠들고가니 로인은 그 물 한사발을 다 들이마셨다.

《어어 인제 훈훈해진다.》

저편에선 벌써 더운물 마신 로인들이 오금을 편다고 소리를 질렀다.

《옳지. 옳지, 쭉 펴십시오. 무릎마디에서 뿌쩍뿌쩍 소리가 나게··· 정말 더운물이 피줄을 부풀게 만드는것 같군.》

《인젠 걸음을 떼봐요··· 옳지, 옳지. 넨장 광대 줄타듯하시는군···》

모두들 웃음을 터뜨린다. 정대환이도 짚을 깐 자리우에 앉은채 아래도리에 우쩍우쩍 힘을 써보았다. 모두들 달려들어 넙적다리 장딴지 할것없이 온통 주무르고 잡아당기고 했다.

《편다, 편다! 옳지 폈다. 인젠 까둥겨요.》

여기서도 소리를 질렀다. 정대환은 다리를 폈다 까둥겼다 했다. 독립군들이 인젠 일어서보라고 했다. 그의 손자 정선일이가 벗어던진 남바위를 가져다 씌우고 겨드랑밑으로 손을 넣어 할아버지를 들어일궜다. 정대환은 큰 독수리가 날개 펼치듯 팔을 펼치고 외따로 섰다.

주위에서도 넘어질가봐 팔을 벌리고서서 걸음을 떼보라고 소리쳤다. 정대환은 와들와들하는 다리를 한발자국 내짚었다. 주위사람들이 《장생불로주》가 용을 쓴다고 떠들어올렸다.

《내, 내 총 어쨌니?》

전호바닥을 몇발자욱 떼보고난 정대환은 벽력같은 소리로 총부터 찾았다. 손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총을 가져다 쥐여주었다.

불시에 온 내도산에 총소리가 일어났다. 산을 깡그리 요정내자고 하는 놈들의 최후돌격이라도 있는지 이 전호 저 전호에서 죄다 불을 뿜어올렸다. 마을사람들 전호앞으로도 《토벌대》가 새까맣게 기여올랐다.

《저 저놈들 잡아라!》

정대환의 산을 무너뜨리는것 같은 소리가 일어났다. 그는 굳어졌던 다리로 땅을 탕탕 굴러치기도 했다. 맹렬한 불줄기가 뻗쳐나갔다. 전호앞으로 기여오르던놈들이 삼대쓰러지듯했다. 저편쪽 전호에선 창격전으로 넘어간것 같았다. 으악으악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총창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정말 《장생불로주》가 온 전호에 활기를 불어넣은것 같았다.

전호마다에서 갈기는 기관총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거기에 또 눈보라까지 겹쳐들었다.

우위우위 우르륵우르륵 룡트림하는 눈보라가 적진으로 날아가선 놈들의 우글우글하는 대갈박과 등어리를 회파람소리가 나게 갈겨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