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4

 

제 8 장

4

 

내도산싸움은 련일 계속되였다. 놈들은 첫날전투에서 고개길 눈구뎅이에 숱한 송장을 뿌려던지고 내뺐으나 물러가지 않고 자꾸 줄금줄금 올려밀었다.

어떤 날엔 밤에도 기여올랐다. 놈들은 기관총과 수류탄, 보총으로 산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며 기여올랐다. 그런데 놈들은 고개길로 기여오르던 전술을 변경시켜 고개길 아래턱으로 산개진을 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새까맣게 기여올랐다. 그러기때문에 놈들의 병력이 어느 계선 어느 전호로 집중될지 도저히 예측할수 없었다.

온 내도산은 낮과 밤없이 팽창된 공기로 휘감겨있었다. 첫날 전투때에 비해서는 이쪽의 전투력량도 수없이 늘었다. 첫날전투에서 로획한 무기가 많아서 총알받이로 몰려왔던 적구인민들한테도 총을 비슷이 쏠줄 아는 사람들에겐 죄다 한자루씩 내주었다.

전치근이도 총을 한자루 얻어들고 녀대원들곁에 와앉아 앞을 쏘아보았다.

《분임아버지, 정말 총을 쏠수 있을것 같아요?》

《쏘다뿐이냐? 나두 적구에 살긴 하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 총을 손가락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는 말을 들었어. 지금 내 가슴이 그렇게 부글거리며 끓는다. 총을 안쏘군 못견딜만치··· 저 개놈들이 글쎄 재산이라군 그것 한마리밖에 없는 소를 잡아먹으면서 내 따귀를 몇번이나 쳤는지 아니? 어떤놈은 내 허리를 발길로 차기도 하고···》

전치근은 김정숙동지의 말끝에 이렇게 대꾸했다.

《됐어요. 분임이아버지, 원쑤를 갚자요. 자 그럼 여기 이렇게 앉으세요. 그리고 총대는 이렇게 내대고 겨누세요. 그담 방아쇠 당길 때는 숨을 죽이고 몸을 까딱 움직이지 말아야 해요.》

《응, 쏜 담엔 와뜰 놀라는거야 일없겠지?》

《호호호, 와뜰 놀라긴 왜 와뜰 놀라요.》

《그놈의 총소리란것이 만만칠 않더구나. 그래서 그러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나도록 웃으시였다. 어떻게 분임이의 아버지와 자기가 한전호속에 앉아 이런 말을 나누며 웃게 되였을가. 꿈같으면서도 꿈은 아니니 놀라운 일이다. 딸을 박대동네 집으로 시집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던 부암의 그 분임아버지, 그가 모진 세상을 한끝에서 한끝까지 다 돌고나서야 이렇게 눈을 뜨고 여기 와 총을 잡았단말인가. 그 기구한 운명을 걷고걸은 그, 그러나 종당에 와닿은 길이 이 길이였으니 좋긴들 얼마나 좋으며 기쁘긴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좌우간 오너라. 내 총질이 서툴긴 하지만 한방에 한 댓놈씩은 쏴넘길테다. 내가 이번 여기 와서 오랑캐놈들 송장더미를 보니 숨이 후 나오는구나. 기고만장해서 계림과 하동거리를 덮어치며 갈개던놈들의 송장더미를 보니말야··· 가만 있자, 내가 참 그 이야기를 안했군.》

전치근은 문득 생각키우는게 있는지 김정숙동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예요?》

《저, 저 희섭이의 처두 어데 유격대에 가있다가 하동거리에 와서 경찰놈들한테 붙들려 계림시 경찰에 들어갔댔단다.》

《아니 금실언니가 하동거리에 가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깜짝 놀라서 물으시였다.

《거기 가있단다. 남편을 찾아다녔다던가. 능지영에랑 어데랑 수태 돌아다니다가 지난 초가을에 왔는데 두어달가량 있다가 붙잡혀들어가 숱한 매를 맞고 얼마전에야 놓여나왔어.》

《그 언니가 거긴 어떻게 돼서 갔어요?》

《거기 제 언니의 시집이 있질 않니? 시집이란것도 다 망하구 제 언니 하나밖엔 남지 않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가슴이 후둑후둑 뛰시였다. 술기막골을 떠나면서도 어데가 없어진것만 같아 비통한 생각으로 눈물을 머금기도 했는데 정말 살아있다니 기쁨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그래 그놈들이 금실언니를 붙잡아다놓구 어떻게 했대요?》

《어떻게 했을테냐, 매를 치고 불에 지지고 주리를 틀고 별짓을 다했지. 그러다가 거의 죽게 되니까 내놓았는데 내놓고도 무슨 흉책인지 울바자밖에 또 울바자를 치고 지킨다고 하더라.》

《몸이 몹시 상했대요?》

《상하다뿐이냐? 볼 형편이 못됐다고 하더라. 난 못가보고 집사람이 갔다와서 이야길 하는데 몸이 채독같이 부어 제 언니가 밥을 한숟갈씩 떠먹여 연명시킨다고 하더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신음하는 금실이가 당장 눈앞에 날아와 누워있는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때문에 제발로 그 함정에 걸어들어가 그 무서운 일을 사서 당할가. 반죽음된걸 아직도 감시속에 넣고 신칙한다니 놈들이 알아낼걸 못알아내면 아주 죽이기가 힘들어 못죽일가.

《정숙동무, 무슨 소리예요? 금실언니가 어데 가 있다는 소리 안야요?》

저편에서 복녀가 무슨 소리를 알아듣고 얼굴을 들며 물었다.

《금실언니가 하동거리에 가있대요. 경찰에 잡혀들어가 매를 맞아서 죽게 됐다지 않아요.》

《어마나 저걸 어째? 하필 하동거리에 갈건 뭐람? 적이 득시글대는데···》

《그러게말이지···》

복녀도 한숨을 짓고 김정숙동지께서도 한숨을 지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고 이 녀성대오속에 그냥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오늘은 녀성들의 전투대오가 근엄하기도 했다.

국금이, 복녀, 영애 거기에 수월이도 총을 들고 나와 좌지를 하나 차지했다. 싸우지 못해 간청을 하더니 소원을 풀었다. 어려서 민며느리로 들어와 자랐다는 수월이, 지금 그보다 열두살이나 나이 더 먹었다는 그의 남편은 저쪽 부락사람들의 전호에서 총을 잡고 수월이는 이 전호에서 총을 잡았다. 그러니 영애네 부부처럼 수월이네도 부부가 다 총을 잡고 싸움판에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르르 엎드린 그 근엄한 대오를 바라보니 달아난 금실이생각이 더욱 가슴을 쓰라리게 하시였다. 저 악독한 놈들이 연약한 녀자에게 무슨 행패인들 안했을가. 비명인들 얼마나 질렀을텐가. 아, 그 비명소리··· 놈들이 묻는대로 수걱수걱 대주지 않았게 몸이 채독처럼 붓도록 때리고 지지고 주리를 틀고 했겠지. 그리고 내보내놓고도 울바자밖에 울바자를 치고 신칙하겠지, 묻는걸 안대주려니 목숨을 내던질 각오는 안했을텐가. 그 정상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아 참을수 없으시였다.

금실이를 어떻게 구해내올 방법은 없을가. 제 스스로 죽음의 함정으로 찾아들어갔으니 누가 알겠느냐고 내버려두어야 한단말인가. 멀리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니 내버려둔들 어떠랴 하겠는가. 지금쯤이야 혁명대오를 생각하며 얼마나 후회도 하고 울기도 하겠는가. 속으로 내 이름인들 안부를가. 국금이, 복녀의 이름인들 안부를가.

김정숙동지의 마음은 벌써 하동거리에 달려가고있었다.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금실이를 구원해낼수 있을것만 같으시였다. 빨리 이 싸움을 이겨야 한다. 이 싸움을 이기지 않고는 내도산을 빠져나갈수 없다. 그이께서는 이런 결심을 다지시며 눈보라 휩쓸어가는 먼 골짜기를 바라보시였다.

《허, 치근령감도 제법 총을 잡았다.》

저편쪽에서 오포수가 걸어오며 말했다.

《흥, 내가 불질을 하라면야 오포수만치야 못하겠소.》

전치근이도 희떠운 소리를 했다.

《그래 총을 더러 쏴보았게 소경 떡메자루 붙들듯하고 앉아있소? 어디 그 총 좀 봅시다.》

오포수는 전치근의 옆에 와 쭈그리고앉으며 총을 빼앗아다 보았다.

《음 총은 괜찮군. 그러나 저러나 담배나 한대 피우. 무슨놈의 적이 올려민다고 산비탈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있소? 망할놈의 새끼들, 내 오늘은 여기서 메돼지불로 한마당 쓸어눕히겠소.》

《어디 내기를 해볼가요?》

《해보자구···》

전치근이는 웃으며 총을 놓고 담배쌈지를 꺼냈다. 둘이는 하동거리에서 친숙해졌다. 부암을 떠난 전치근은 소장사, 려인숙, 구멍가게, 온돌쟁이 별짓을 다 하며 돌아다녔는데 하동거리에서 려인숙을 할 때 오포수가 거기에 주인을 정하고 드나들었다. 전치근이 지금은 려인숙을 안하고 소장사를 하고있는데 그래도 오포수는 하동거리에만 가면 전치근의 집을 찾아가군 했다. 이번에도 그 집에 가서 묵다가 왔다.

《여보, 치근령감, 거 하동거리에 돌아가거들랑 포목가게집뒤에 있는 갓쟁이령감을 좀 찾아가주오.》

《갓쟁이령감은 왜? 갓을 만들어쓰고 다니겠소?》

《내가 만들어쓰고 다니는게 아니라 저 벽창호령감한테 통영갓이라도 하나 사다가 선사를 해야겠소.》

《벽창호라니, 상투바우군대말이요?》

《그럼요···》

전치근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사실 오포수는 이번 하동거리에 가서 정탐을 안해가지고 왔다가 정대환이한테 호되게 경을 치렀다. 정대환은 내도산으로 오랑캐가 올려민다는 소문을 듣고는 당장 오포수를 자기네 사랑방으로 불러들였다.

《너 이놈, 하동거리에 가서 무얼 보고 왔느냐?》

《네? 무슨 말씀이온지?》》

《이놈, 그래 조국광복을 하겠다는놈이 조선의 얼이 있어서 뛰여다니느냐? 이놈 말 좀 해라!》

《글쎄 무슨 말씀인지. 이건 아닌밤중에 홍두깨가 아닙니까?》

《뭐 뭣이? 홍두깨라구? 내가 네놈 하동거리로 떠날 때에 이른 말이 있으렸다. 오랑캐놈들의 움직임을 렴탐해오라구··· 그런데 렴탐은 커녕 나한테 와서 하동거리에 기여든놈들은 뭐뭐 거기서 까딱 움직이지 않을놈들이라고 허튼 소릴 했지? 그런데 그놈들이 지금 이리로 기여드는건 웬일이냐?》

《그 그건 제가 잘못했소이다.》

오포수는 그제야 가슴이 뜨끔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혁명군은 여기 가만히 앉아서도 놈들의 동향을 다 꿰뚫어보고 내도산을 벌둥지같이 만들며 싸움준비를 했는데 이놈, 너는 하동거리에까지 갔다온놈이 그걸 모르고왔어? 너 이놈, 왜적들하구 짰지?》

《아니, 그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올시다.》

《뭐 뭣이 어째? 천부당만부당한 말이야? 에끼 이놈, 엉덩판이 깨지게 물볼기를 맞아봐라. 게 안방에 누가 있느냐? 가서 조세근이를 좀 오래라.》

정대환은 안방으로 난 출입문을 탕 열어던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벽장문을 드르르 열어제꼈다. 벽장속엔 물볼기 칠 물푸레를 단으로 묶어세워둔것이 있었다.

《이 이놈, 네 죄는 가벼운 죄가 아니다. 계률맛을 좀 보아라!》

하는 잡도리가 정말 물볼기를 쳐도 되게 칠것 같았다. 오포수는 겁이 나서 엉뎅이를 들썩하며 두손을 구들바닥에 짚고 정말 미련하고 우둔한것이 잘못했노라고 이마가 깨지게 절하며 빌었다. 다행히 안방엔 누구도 없어서 불러내오지 못했다. 그러니 물볼기는 면했다.

그러나 오포수는 범같이 으르렁대는 정대환의 앞에서 일어서 나올 때는 뭐가 뭔지 온통 뒤죽박죽이 된것 같고 다리가 꼬이고 비틀걸음이 나갔다. 혼뜨검이 난 날은 종일 머리를 동이고 누워서 앓았다. 오늘도 정대환이 무서워 그 전호로는 못가고 이리로 왔다.

결국 이 소문이 온 동네에 짜하게 퍼져 전치근이도 알고있었다.

《그래, 그 벽창호가 통영갓이나 사다 선물하면 속을 풀것 같소?》

전치근이 웃으면서 물었다.

《글쎄, 속을 풀도록 달래야지요. 갓테두 좀 널직하게 만들라고 하오.》

《아니 그건 뭐 삿갓을 쓰고다니는것 같게 말이요?》

둘이는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자, 그까짓 걱정은 말구 왜놈이나 쏩시다.》

전치근이 곰방대를 털어 마고자주머니에 찌르며 말했다.

《암 쏴야지, 적을 쏘라거나 짐승을 잡으라면야 내가 홍범도인들 못당해내겠소. 펄 날지요. 내 오늘은 여기 곰의 철, 메돼지철, 노루철 다 가지고 나왔소. 이놈들이 기여만 오르면 이 짐승불로 다 쓸어눕히려고···》

이러는데 정말 저쪽에서 적이 올라온다고 소리쳤다. 전치근이도 오포수도 얼른 자세를 바로잡으며 총들을 거머쥐였다. 벌써 총소리가 울리였다. 어느쪽에서 나는 총소리인지 알수 없다. 오포수가 내려다보니 정말 눈이 풍풍 빠지는 골짜구니 비탈로 적이 새까맣게 기여올랐다. 눈이 죄다 날려가고 마른 풀대들이 거슬거슬 일어선 등성이쪽에도 가뜩 붙어서 벌벌 기여올라오고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기관총의 엄호도 없이 전호를 향해 다가들고있다. 이쪽에서 와드득거리며 총소리가 터졌다.

《넨장놈의것, 돼지불이 아깝긴 한데···》

오포수는 메돼지철로 한방 냅다 갈겼다. 그는 눈에서 불길이 펄떡 일어섰다. 꼭 메돼지무리가 앞으로 다가드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또 한방 재웠다.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첫방엔 한놈이 넘어갔는데 두번째는 한놈을 뚫은 탄알이 뒤에놈을 또 뚫은것 같다. 두놈이 일시에 나가딩굴며 비탈로 내리굴었다. 전치근이도 제법 불질을 잘했다. 처음 걱정한것처럼 와뜰와뜰 놀라진 않고 한방씩 쏘고는 어깨만 흠칫하군 했다. 비탈엔 숱한놈들이 나딩굴었다. 기여올라오다가 등을 구부리고 쫓겨내려가는놈도 있다. 눈보라까지도 합세를 해서 놈들을 쳐갈긴다. 총에 맞고 눈보라에 둘둘 말린놈들이 이리 딩굴고 저리 딩군다. 저편쪽 전호에서도 산을 쪼개는것 같은 총성이 울리였다. 원쑤들의 악악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온다. 오늘은 녀대원들이 더욱 무섭게 싸웠다. 수월이도 총질을 제법 잘했다. 목이 쑥 뽑힌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있다간 한방씩 내갈기는데 두방에 한방은 맞는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혁명군에 들겠다고 하소연했는지 모른다.

《야 저게 어느놈이냐? 박순도 아니냐?》

별안간 이편쪽에서 전치근의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그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크게 뜨시였다. 박순도란 박대동의 아들을 말하는것이였다. 전치근은 첫날밤 병영에서 몸을 녹이며 박순도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대동이 신개동에서 혁명의 선풍때문에 못살고 떠나게 되자 서울에 올라가 어느 전문학교에 다니던 박대동의 아들 박순도가 학교를 그만두고 내려와 공산당복수를 하겠다고 미쳐날뛴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이를 갈며 경찰대에 기여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놈이 하동거리에 달려들어 인마를 동원시키노라고 집집을 뒤지며 전치근네 집에 달려들어선 소끌고 나서라고 전치근의 뺨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전치근은 그놈을 내도산에서 만나기만 하면 각을 떠던지겠다고 별렀다. 바로 그런 박순도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것이였다.

《얘 정숙아, 총 잘 쏘는 너희들이 갈겨라. 저 대갈에 개털모자도 없이 나타난놈이 박대동의 아들놈이다.》 전치근이 알려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을 내다보시였다. 정말 나무 한대없는 언덕우에 빡 춰올린 머리를 앞이마에 혼돌혼돌하며 웅뎅이아래를 향해 휙휙 손짓하는놈이 있다. 눈이 기민하게 돌고 동작도 날랬다. 놈의 손짓에 따라 웅뎅이쪽에서 숱한 개털모자가 우르르 올려밀었다. 벌써 중학을 다니며 인생이요, 철학이요 하고 떠벌이고 다니던 조달한놈인데 경찰대에 들어가서도 졸병구실은 안하는것 같았다.

《모두 저놈을 쏴요! 저 맨대머리가 분임일 못살게 군 박순도놈이예요!》

《아니 뭐 저놈이?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구나.》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복녀가 부르짖었다.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였다. 녀대원들이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개털모자들이 도로 낭아래로 꼴깍 숨어들어갔다. 머리 회뚝한 박순도는 간곳이 없었다.

녀대원들은 가슴이 화닥화닥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선 다시 겨누라고 소리치셨다. 저쪽에 앉은 전치근은 저놈 놓쳤다고 주먹으로 전호턱을 두드렸다.

《그게 무슨놈이게 그러우?》

전치근이 눈이 피빛이 되여 떠들기에 오포수가 돌아보며 물었다.

《원쑤지요.》

《원쑤야 다 원쑤지. 그놈만 원쑤겠소?》

《저, 저놈은 철천지원쑤요. 그저 가슴팍에다 철알을 열댓섬 박아넣어야 할텐데···》

전치근이 헐떡거리는바람에 오포수는 뜻을 몰라 허허 웃었다. 그런데 놈이 그담엔 어떻게 지휘를 하는지 낭밑에서 불질을 시작했다. 불이 세찼다. 복녀와 국금이는 돌격해내려가고싶어 온몸을 줄끔줄끔하며 땅을 박찰 자세를 취했다.

김정숙동지께서 일어서지 말라고 소리치시였다. 불질을 하다가 다시 언덕우로 기여오를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그러나 한참 불질을 하고난놈은 졸개들을 몰고 내뺐는지 언덕밑이 조용해졌다. 눈보라만 우룩우룩 소리를 내며 곤두박질치듯 날아간다. 모두 아쉬워 헐헐 했다. 전치근은 분해서 침을 텍텍 뱉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지그시 입술을 깨무시였다.

분임이와 관계된 부암의 사연, 신개동사연이 한꺼번에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몸부림치는 분임이가 보이기도 하고 목을 매단 분임이가 보이기도 하신다. 한 녀성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 그 머리 회뚝한 봉건의 화신, 일제와 야합한 세력의 화신, 그놈을 불에 날려보내지 못한 일이 치가 떨리게 분하시였다. 어쩌면 조선녀성들앞에 긴긴밤으로 드리운 장막을 찢어던지지 못한것 같은 아쉬운 생각도 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