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2

 

제 8 장

2

 

바로 곰골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있을 때 정말 적들이 적구의 인민들과 마소를 동원해가지고 무기와 군량을 나르며 내도산앞으로 밀려들었다.

놈들은 눈보라가 뽀얗게 쳐가는 내도산앞 야산지대로 물밀듯 들이닿았다. 들이닿자바람으로 연기를 피워올리며 버덩과 산가운데서 와글와글 끓어댔다. 되게 추운 모양이였다. 온 산야가 산불이나 난듯 연기가 여기서도 솟고 저기서도 솟았다.

쩡쩡 나무를 찍는 소리도 들린다. 가둑나무 들어선 산비탈에 불개미떼같이 달라붙어 큰 나무고 작은 나무고 마구 찍어넘긴다. 내도산앞에 넓은 버덩이 있는데 그 버덩엔 곰골사람들이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은 조짚무지 수수짚무지가 널려있다. 놈들은 그것도 죄다 헐어다 불을 질렀다. 그러는가 하면 천막을 치고 천막주위에 바람막이를 하느라고 둘러세우기도 했다.

놈들은 이내 내도산으로 접어들지는 않았다. 무슨 계획인지 강제동원해가지고온 인민들과 마소도 돌려보내지 않고 야산속에 전부 몰아넣었다.

온통 소동이였다. 고함질소리, 소영각소리, 말울음소리 그우에 눈보라까지 우륵우륵 소리를 내며 휩쓸어간다. 눈보라는 내내 내도산에서 풀풀 날려 일어나서는 공중에서 휘이 뒤탈려 룡트림을 하며 적진지로 날아가군 했다.

내도산에서도 긴장한 공기가 산을 휘감았다. 혁명군들은 이미 전호속에 들어가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산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또 기동할수 있는 독립군이란 독립군도 죄다 떨쳐나왔다.

정대환이며 장윤학은 저들이 파묻어두었던 화승대, 렵총따위들을 죄다 파내서 독립군들에게 한자루씩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저들도 기운이 펄펄해서 총을 들고 전호로 나왔다. 독립군들은 두 로인의 지휘밑에 굽이돌아간 고개길의 웃턱 전호에 엎드려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독립군들의 전호엔 정선일이도 나와 엎드렸다. 그는 할아버지가 파온 무기중에서 제일 좋은 보총을 한자루 골라 들고 나와서 전호의 맨 첫코숭이에 좌지를 정했다.

《네가 한번도 쏘아보지 못한 총을 쏘아내겠니?》

정대환이 걱정을 하며 손자의 곁으로 와서 탄알 재우는 방법, 겨냥하는 방법, 방아쇠 당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완고한 옹고집은 옹고집대로 있지만 한평생 싸우다가 결판을 짓지 못한 그 싸움이 바로 오늘에 있기나 한것 같은 흥분을 느끼는것이였다.

《할아버지 걱정마세요. 학문도 골속에 넣는데 이까짓 총쏘는게 뭐겠어요.》

《그 기백은 좋다. 허지만 싸움이란 기백 하나만으로는 안된다. 사격이 능해야 하느니라.》

정대환은 와들거리는 손으로 선일이의 잔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그는 전호를 골고루 돌아다니며 살폈다.

《사돈님은 선코를 지키시오. 이 뒤쪽은 내가 막아내리다.》

장윤학이 정대환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하리다.》

《난 말년에 운이 들것 같애서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소이다. 여적 죽지 않고있다가 이렇게 장군님군대의 말석에라도 끼이게 되니 실패한 한생의 때국을 벗기는것 같기도 하웨다.》

《그건 피차 같은 심정이요.》

두 로인은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수염을 내리쓸었다.

지금 내도산밑 병영들에서도 법석이 일어났다. 여기에서는 김정숙동지께서 새로 조직된 부녀회를 이끌어가지고 전선을 뒤받침할 준비를 벌리시였다. 부녀회란 조직해놓은것만으로는 안된다. 혁명을 잘하자고 조직해놓은 부녀회이고 왜놈 치는 싸움에 두어깨를 들이밀고나서자는 부녀회인데 부녀회원 하나하나가 다 이런 싸움속에서 쟁쟁 소리가 나게 다듬어져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런 정신으로 첫걸음마를 태우듯 부녀회를 싸움속으로 이끌어들이시였다.

전선을 뒤받침할 일이란 간단한 일도 아니였다. 엄동설한에 벌어지는 싸움이기도 하고 더구나 눈보라 사나운 산정에서 벌어지는 싸움이기도 하기때문에 그 뒤받침을 소홀히 해가지고는 안될 일이였다. 우선 하루 세끼 더운밥을 해서 고지로 날라올려가야 했고 전호들엔 더운 물동이가 내내 놓여있어야 하였다. 그리고 싸우는 사람들이 서로 번참을 해가면서라도 내려와 몸을 녹여야 할테니 병영들의 구들도 내내 뜨끈히 데워주어야 할 일이였다.

그런데 병영엔 우선 땔나무가 동이 났다. 산에 올라가 생나무를 찍어내려올수는 있겠지만 그걸 당장 장작을 패서 아궁에 집어넣어야 불이 붙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땔나무 변통부터 해야 되겠다고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부녀회원들이 자기들 집에서 섶나무를 몇단씩 이여내오도록 조직하시였다. 동네와 내도산밑 사이길에는 나무단을 인 부녀회원들이 늘어서서 뜀박질을 했다. 부녀회원들은 나무단만 이여내오지 않았다. 식기, 물동이, 함지, 버주기 온갖 기물을 한임씩 이고는 달음박질했다. 게다가 웃마을 부녀회원들은 그릇들에 쌀을 그득히 채워가지고 오기도 하고 김치, 된장 별걸 다 담아가지고 왔다. 임을 한임씩 이고 둥글둥글한 호박을 가슴에 붙안고 나오는 아낙네도 있다.

어쨌든 병영엔 당장 일이 번창해겼다. 부녀회장 심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밥가마들을 부시고 쌀을 일고 하였다.

그는 부녀회를 뭇던 날 밤 다짐한 소리가 있기도 해서 일이 그저 일같질 않고 한뉘 처음 남편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에 나선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그의 며느리 영애도 바람개비같이 날아돌아갔다.

영애는 시어머니가 끼니 준비하는걸 돕다가 이어 마당으로 나와서는 모아들인 섶나무를 여기저기 널어놓지 말고 크게 낟가리를 가리자고 했다. 그리고는 나무단을 닁큼닁큼 들어다가 줄을 지어 쌓았다. 몸은 호리호리한데 어데 그렇게 세찬 기운이 있고 날파람이 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나무단들을 제 키만큼 쌓아놓고는 그우에 올라서서 나무단을 올리라고 호추알같은 소리를 질렀다. 밑에 있는 아낙네들이 이쪽저쪽에서 나무단을 받들어 올렸다.

영애는 올라오는 나무단을 매끼만 걷잡아쥐면 힝 들어서 옮겨다 쌓군 했다.

《그렇게 높이 낟가리를 쌓아가지고 뽑아서 때기가 힘들지 않겠어?》

밑에서 국금이가 걱정을 했다.

《언니두 참, 그까짓게 뭘 힘들어요? 아무리 높아두 밑에서 두어단만 뽑아내면 그담엔 슬슬 무너져내린다오.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뽑기와 같죠뭐···》

《아이 어쩜···》

국금이는 방끗 웃으며 감탄했다. 생각도 빠르고 말도 잘했다. 영금이가 아니라 해도 자꾸만 영금이같은 생각이 든다. 둘이 언니내고 동생내자는 말은 했지만 국금이는 아직 제 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긴 숨겨두고있다. 그저 저혼자 저건 내 영금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는데 이젠 이 영금이가 혁명군에도 들어올 가망이 보이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은 술기막골뒤산에 아버지와 함께 누워있을 동생 영금이, 그 영금의 얼굴이 무시로 떠올라 영애의 얼굴과 겹쳐지면서 눈굽에 눈물을 자아냈다.

《얘 영금아, 나무단 받어.》

《호호호 언니두 참, 영금이가 뭐야요. 난 영애예요.》

나무단을 받들어올리던 국금이는 저도 모르게 착각이 와서 영금이를 불렀다가 그만 낯이 붉어졌다. 그래도 영애를 영금이라 한번 불러본것만도 기쁘고 행복했다. 어쨌든 병영에서 전투를 뒤받침할 준비는 이렇게 스며흐르는 눈물의 사연속에서도 벌어졌다.

한쪽에선 샘물이 얼어붙어 아낙네들이 괭이로 그걸 까기도 했다. 괭이로 까지 말고 불을 놓아 녹이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는가 하면 불을 놓아 녹여도 이 혹독한 추위에 인차 또 얼어붙고 말테니 물은 동네에걸 길어내다가 쓰자고도 했다. 그러더니 어떻게 했는지 샘물웅뎅이에다 불을 질렀다. 삼단같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불길이 펄펄 일었다.

바로 이렇게 들끓으며 준비를 다그치고난 이튿날아침이였다. 적들은 정말 새까맣게 진을 치고 고지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놈들이 어째서 군량과 무기를 싣고온 마소를 돌려보내지 않고 인민들을 산가운데 몰아넣고 고생시키는가 했더니 결국은 그들을 총알받이로 쓰자고 그랬다. 놈들은 숱한 사복한 인민들을 저들의 진두에다 세우고 올려밀었다. 인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지 산밑에서 더러는 총창으로 찌르고 패고 하였다. 산기슭나무에 비끄러매고 뭐라고 소리를 치다가 쏘아죽이기도 했다. 그것이 고지전호들에선 휑하니 내려다보이였다.

《저 악귀같은 놈들.》

전호에 엎드린 대원들은 치를 떨었다.

그저 생각같아선 당장 돌격해내려가 내도산으로 접근도 하기 전에 죄다 섬멸해치우고싶었다. 어쨌든 숱한 인민들을 앞세운 적진이 내도산고개길로 접어들었다. 내도산전호들에선 아직 까딱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아무래도 전투는 어렵게 되였다. 인민은 구하고 적은 사격해 잡아야 하겠으니 어려울수밖에 없는것이다.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피고있던 리범진중대장은 각 전호로 련락을 내띄웠다. 인민들을 구하는데 주의를 돌리고 그 다음에 적을 섬멸하라고 긴급명령을 내리는것이다. 하긴 이러한 명령은 내리지 않아도 혁명군들은 이미 다 그렇게 할것을 알고있지만 독립군전호에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 새삼스럽게 이런 명령을 주는것이였다.

그런데 더욱 일이 힘들게 된것은 놈들이 사민을 선두에만 세운것이 아니라 대렬 중간중간에도 세웠다. 무슨 짐인가를 한짐씩 골박아 지우기도 하고 또 어떤놈은 제가 질 군장을 사민들 잔등에 지우기도 했다. 전호마다 기관총을 여러대씩 배치해놓고 그것으로 휘두를 작정을 했는데 잘못 휘두르다간 사민도 쏘아눕힐 형편이 되였다. 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인민은 쏘지 않는다는걸 알고 이따위짓을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대원들은 이발을 단단히 악물고 적진이 구불구불 에돈 고개길을 다 기여올라오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렇게 내도산밑에서부터 산허리를 에돌아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적진을 길게 늘여 휘감아놓은 다음 각 전호들에서 갈범처럼 날아일어나 단숨에 토막을 쳐서 두드려잡자는 대담한 전술이였다.

드디여 산정에서 총성이 울리였다. 그러자 일시에 온 내도산이 불을 뿜어올렸다. 놈들은 처음엔 어느쪽에서 불이 날아오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 뛰였다. 적진은 일시에 수라장이 되였다.

비명과 아우성이 온 산을 뒤덮었다. 긴 적진이 뭉텅뭉텅 끊어져서 여기서도 한덩어리가 되여 내빼고 저기서도 한덩어리가 되여 내빼고 했다. 더러는 이쪽 전호들을 발견하고 총질을 하기도 하고 기습을 기도하며 비탈로 벌벌 기여올라오는놈들도 있었다.

그런놈들은 례외없이 작탄의 불길속에 나가너부러졌다.

사민들도 아우성을 치며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민들은 바위돌뒤에 숨어있어라!》

《낭밑에 숨어있어라! 우리 편으로 넘어오라!》

대원들의 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사민들이 더러는 비탈길로 기여올라와 전호속에 훌쩍훌쩍 뛰여들었다. 대걸이네 전호에는 수염이 기다란 로인 한분과 키가 작달막한 장정이 한사람 뛰여들어와 엎어지며 《사람살리우.》 하고 부르짖었다.

대원들이 그들을 끌어다가 전호바닥 불무지곁에 앉히였다.

《저 괘씸한 놈들이 군량을 실어다달라고 강제동원을 시키는바람에 소까지 끌고나서서 짐을 실어다줬는데 소는 어제밤 도끼로 때려서 잡아먹구 사람은 이렇게 총알받이로 내세웠습니다. 어이구, 저놈들을 다 때려잡을수 없습니까?》

장정과 로인은 땅바닥을 치며 통곡을 터뜨렀다. 대걸이가 원쑤를 갚을테니 울지 말라고 달래였다. 로인은 마고자며 저고리가 죄다 찢어지고 떨어져나갔다. 잔등의 붉은 살이 내놓였다. 혁명군들이 끼니를 날라온 함지의 보를 풀어서 잔등을 휘감아싸매주었다.

정대환이네가 있는 전호에서도 격전이 붙었다. 놈들은 이게 상투바우군대라고 얕보고 덤벼드는것 같았다. 숱한놈들이 총대를 거머쥐고 비탈로 벌벌 기여올랐다.

여기서도 작탄을 던지였다.

《쏴라! 한놈도 놓치지 말고 다 잡아라!》

정대환은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펄떡 일어섰다간 주저앉군 하였다. 그는 흥분이 극도에 달해서 두손이 와들거려 총도 못쏘았다. 어느새 목도리도 남바위도 다 벗어던졌다. 상투가 비뚜름히 제껴진 머리우엔 흰눈이 하얗게 덮이고 긴 수염이 눈보라에 쓸리며 펄펄 날았다.

《한생을 이런 방법으로 싸웠다면야 적을 다 잡았지··· 분한지고···》

정대환은 제 가슴을 쾅쾅 치기도 했다. 독립군들이 총을 메고 싸웠대야 이런 전법 이런 전술로 싸웠던가. 전호 하나 없이 그저 아무데서나 갈기고 내빼고 하는 싸움이 아니였던가. 이렇게 전호를 파놓고 적을 길게 늘여놓은 다음 한방의 총소리에 적진을 토막내고 내려갈기는 이런 일사불란한 전술로야 언제 한번 싸워본적이 있는가. 정대환은 왜놈 쓰러지는걸 보니 그저 자꾸 껑충껑충 뛰여오르고만싶었다. 저쪽에선 장윤학이도 그런 감동에 휩싸였다. 그는 정대환이처림 들먹대진 않고 침착히 엎드려 한놈 또 한놈 내려갈기며 노루고개전투때를 회상했다. 전호도 없이 숱한 독립군들이 웅뎅이에 숨어서도 쏘고 나무에 의지해서도 쏘고 했다. 장윤학은 바위돌뒤에 숨어서 쏘았다. 그때 악악 소리치며 싸우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것도 같다. 땀을 철철 흘리던 시뻘건 얼굴들이 눈에 선히 보인다. 그 불덩이같은 힘장사들, 그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고, 오늘의 이 통쾌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하고 원한의 피눈물을 뿌리며 어디로 갔는고, 그때 대오가 그냥 있다면 너도 나도 죄다 젊으신 장군님의 휘하에 들어 이렇게도 규모가 째이고 빈틈이 없는 전술로 적을 들부셔놓는 싸움을 한바탕씩 해보지 않을텐가!

장윤학의 눈에선 눈물이 번쩍거렸다. 그런 눈으로 적이 한놈 또 한놈 자꾸 비쳐들어왔다. 갈기면 나가군드러지군 했다.

산꼭대기 전호에선 녀대원들이 원쑤들에게 화력을 집중하며 사민들더러 빨리 뛰라고 소리쳐주었다. 병영에서 전투의 뒤받침할 일을 조직해놓고 올라오신 김정숙동지, 국금이, 복녀들이 이 전호에서 사격을 하는데 남대원이 한명 와서 기관총을 휘둘러주었다.

《언니들, 나두 쏠테야요.》

싸움이 한창인 때 별안간 전호로 영애가 달려들며 소리쳤다.

어데서 얻었는지 보총을 한자루 들고왔다.

《쏴봐요. 인젠 총 다룰줄 알죠?》

《알다뿐야요. 국금언니한테서 얼마나 배웠게···》

영애는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대꾸하며 그이의 곁에 가서 살짝 엎드렸다. 그는 엎드리자마자 땅하고 한방 쏘았다.

《애개 헛방이네.》

《침착하게 겨누고 쏴요.》

그는 또 한방 쏘았다. 이번엔 몸을 들썩하며 맞았다고 웨쳤다. 눈이 매눈같아서 대담도 했다. 장윤학의 딸이니 범같은 장윤학을 닮았을수도 있는것이였다. 녀대원들은 놈들이 올려미는 족족 갈기였다. 우글우글하는 무리가 나타나는 때엔 기관총이 따르륵하며 갈겨주었다.

《빨리 비켜요. 산너머로 내뛰여요.》

사민이 다 빠져 넘어간줄 알았는데 적진의 중간에서 또 올려미는바람에 녀대원들은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사민들이 내빼기 시작하자 뒤따르던놈들이 그들의 등뒤에 마구 불질을 했다. 비탈엔 사민들의 시체가 디글디글 널리기 시작했다.

《저 개놈들이 죄없는 사람을 마구 쏴죽이는구나.》

녀대원들이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그들은 맹렬히 사격을 퍼부었다. 술기막골방어전투에서 다지워 헛방 한방 갈기지 않았다. 영애도 제법 잘 쏘았다.

지금 이쪽 내도산밑 병영근방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총알받이로 밀려들어왔던 적구의 인민들이 한벌 덮여서 와글와글 끓었다. 그들은 인민혁명군이 총질을 귀신같이 해서 자기들이 살아났다고들 떠들었다. 어떻게 그처럼 오랑캐들만 딱딱 겨누어서 쓰러뜨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축지법을 쓰신다더니 축지법 쓰는 군대가 다르다고도 했다. 모두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이야길 주고받느라고 야단들이였다. 그들은 눈보라가 우우 밀려갈 때마다 잘한다고 환성을 올렸다. 눈보라가 자꾸 쳐야 살아남아 내뺀놈들이 죄다 산속에서 얼어죽고 만다는것이였다. 하긴 어제밤에도 놈들이 눈구뎅이에서 자다가 서로 따귀를 갈기며 모포 싸움질하는것을 보았다.

산꼭대기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였다. 적을 격퇴했다는 신호나팔이였다. 적구인민들도 와아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뛰였다.

초연에 끄슬린 녀대원들이 우르르 밀려내려왔다. 작식대일을 부녀회에 맡기긴 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전호에서 급히 내달려오는것이였다.

사람들은 선망의 눈으로들 바라보며 절까지 굽석굽석했다. 사지에서 구원해준 고마움은 백번을 절하여도 덜릴길 없었다.

《아니, 이게 누구냐?》

하동거리에서 온 전치근은 절을 하다 말고 눈가죽이 한뽐이나 벗겨져올라가며 소리를 질렀다.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두눈을 크게 뜨시고 털모자 쓴 수염투성이얼굴을 쳐다보기만 하시였다.

《네가 정숙이 아니냐?》

《그래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분임이아버지!》

그제야 김정숙동지께서도 웨치며 분임이아버지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리고는 전치근을 부둥켜잡고 이게 정말 분임이아버지인가 해서 고쳐 쳐다보시였다.

전치근이도 이게 정말 회령집딸인가 해서 팔을 부둥켜잡고 고쳐 쳐다보았다. 참말로 모르게 된 전치근이이고 모르게 된 회령집딸이였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얼마후에야 전치근이 굵은 눈물을 두르르 굴리며 부르짖었다.

《분임이아버지, 꿈은 무슨 꿈이겠어요?》

《그래 내가 듣기는 우리 분임이도 너와 함께 떠나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애는 어떻게 됐니?···》

《지금 여기엔 없구 딴데 가 잘 있어요. 인젠 분임이도 그전 분임이가 아니예요.》

《그럼 같은 유격대이냐?》

《그럼요···》

전치근은 와들와들 떨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분임이아버지는 얼마나 고생했게 그렇게 폭 늙으셨어요. 어머니며 분임이동생들은 다 편안해요?》

《편안하다뿐이냐?》

전치근은 눈물 훔친 두주먹을 자꾸 쥐였다 폈다 했다.

김정숙동지의 눈굽에도 이슬이 돌았다.

세상일이란 기이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분임이아버진 또 어떻게 되여 여기로 왔는가. 목놓아 우는 딸을 가마에 태워보내며 그래도 잔치를 잔치같이 못했다고만 피대를 세우고 그 통영갓 쓴 사돈을 몰아세우던 분임이아버지, 그 아버지가 오늘 이렇게 박대동네 집이 아닌 쌈터에서 총멘 딸을 만나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분임이가 애들을 데리고 쑥바치로만 안갔으면 틀림없이 만났을게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분임이아버지를 데리고 연기가 솟아오르는 병영으로 가시였다. 문을 여니 귀틀집안이 후끈했다.

《분임이아버지, 어서 이 방으로 들어가세요. 이야기는 밤에 천천히 하시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아버지더러 방안으로 들어가라고 잔등을 미시였다. 그리고는 딴 사람들도 방안으로들 들어가라고 안내를 하시였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밀려들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쪽 병영에도 사람을 들이고 저쪽 병영에도 사람을 들이시였다. 등을 밀어주며 손을 이끌어주며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타이르시였다. 후끈하게 불을 때놓은 병영들이 적구인민들을 더미로 맞아들인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총알받이가 덕받이로 되였다. 세상일이란 이렇게 정의로 가는 법 아닌가. 비운에 빠진 민족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다니며 그런 속에서 감격도 빚고 눈물도 빚는것 같다. 그러기에 이 동란속에서도 이렇게 뜻밖에 그리운 사람들과의 상봉이 있는것 아닌가.

적구인민들을 뜨끈한 병영속에 다 들어가게 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작식대실로 들어가시였다. 부녀회원들이 벌써 밥과 국을 다 끓이고 임을 꾸려놓았다.

《왜 이러고들 있어요. 국이 식겠는데 어서 쌈터로 올라가질 않구··· 어서들 이고 떠나요. 국동이는 우리 녀대원들이 이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에게 국동이를 들어 이우시였다. 복녀, 국금이들에게 한동이씩 이우자 영애도 발씬 웃으며 국동이밑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한동이 받아서 이였다. 저도 녀대원이라는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에게도 골고루 임을 이우시였다. 밥함지, 찬함지, 식기꾸레미, 물동이들··· 임이 많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한임 이고 문을 열고 나서시였다. 눈보라가 지동치듯 했다.

《조심들하세요. 발끝을 박아디디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과 부녀회원들을 이끌고 나가며 조심하라고 타이르시였다. 국동이, 물동이, 밥함지들에 눈보라가 좌르르 소리를 내며 휘뿌려지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