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1

 

제 8 장

1

 

중대는 한겨울에 병영을 지었다. 온 중대가 달라붙어 내도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내려다 톱질을 해서 산밑에 귀틀집을 세웠다. 목수들 찜쪄먹게 톱질, 자귀질을 하고 나무에 언을 내서 벽체를 쌓았다. 구들돌을 모아들이고 구들곬도 팠다.

그들의 일솜씨가 어찌도 빠르고 신통했던지 온 동네사람들이 혀를 찼다. 며칠이 안되여 내도산밑엔 새를 덮은 귀틀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았다.

귀틀집이 거의 되여갈무렵엔 또 사령부로부터 긴급명령이 내려 내도산에 전호를 굴설하게 되였다. 사령부의 긴급명령이란 바로 놈들의 호리구찌《토벌대》가 불원간 내도산쪽으로 밀려들어갈것 같으니 준비를 하고있다가 갈겨없애라는것이였다. 이 호리구찌《토벌대》는 지난여름 술기막골을 들이쳤던 놈들의 잔당들과 지난해 겨울 북만에서 녹아난 마쯔다사단의 오른팔 역할을 담당하던 놈들을 두루 긁어모은것들이였다.

사령부의 명령이 온 며칠뒤에는 또 계림시로 지하공작을 들어간 한기천으로부터 급보가 날아왔다. 바로 계림시와 하동거리 일대에 호리구찌부대가 밀려들어왔는데 역시 불일간 경찰대, 위만군을 휘동한 대무력이 내도산계선으로 밀고들어갈것 같다고 했다. 한기천은 놈들의 《토벌대》, 경찰대, 위만군, 자위단 력량이 대략 얼마나 된다는것까지도 밝혔다. 바로 이래서 중대는 병영을 짓자마자 눈보라속에서 부리나케 전호굴설작업을 벌리였다. 내도산고지 하나만 지켜내면 놈들이 어디로도 기여들데가 없었다. 내도산에 오르면 역시 드넓은 야산지대가 한눈에 안겨들었다. 뽀얗게 쳐가는 눈보라만 멎으면 굽이굽이 얼어붙은 강물도 보이고 야산지대의 길도 드러나고 길에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도 드러나 보였다. 전호굴설은 내도산고개길로 들어서는 첫어구에 크게 한곳, 그리고는 고개길을 따라 올라오며 내리쏘기 좋게 여기저기 굴설해놓으면 되였다. 그다음 제2선으로 내도산꼭대기 고개길옆으로 높은 벼랑턱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개 소대 력량이 은페해있을 긴 전호를 굴설했다.

단 며칠사이 온 내도산을 벌둥지같이 만들어놓았다. 벌써 내도산 고개길은 차단되고 무엇이 얼씬만해도 《섯!》 하는 벼락같은 소리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방어진지로 처음으로 걸려든것이 곰골로 돌아오던 오포수의 말파리였다. 오포수는 그동안 내도산일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지도 못하고 들어서다가 고개길어구에서 와뜰 놀라며 말파리를 세웠다.

《어데서 뭘하러 오는 사람이요?》

길섶에서 뛰쳐나온 보초가 오포수의 행장을 수상쩍게 훑어보며 따지고들었다.

오포수는 대답을 못하고 겁질린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전호에 있던 대원들이 달려내려왔다.

《나 나는 곰골 사는 백성이올시다.》

《뭐 곰골? 처음 보는데··· 하여튼 데려가오.》

대원 하나가 오포수를 앞세우고 등성이너머 대걸소대장이 있는데로 갔다.

딴 대원들은 말파리를 둘러싸고 떠들었다.

《쟈, 이건 뭐야? 세간살이 물건이 다 있네, 광목, 고무신, 양은남비, 성냥, 거울 별게 다 있어.》

《황아장수 같애 보이기는 하는데 뭔지 똑똑치 않구만.》

《가만 덤비지들 말라구. 인제 소대장동무가 무슨 지시를 내리지 않으리.》

모두 술렁거렸다. 이러는데 대걸소대장이 오포수를 앞세우고 등성이로 넘어왔다.

오포수는 싱긋벙긋 웃었다.

대원들은 비탈로 내려오는 소대장과 오포수를 의아쩍게 바라보았다.

《이거 참, 안됐습니다. 내도산이 경계망으로 뒤덮이는바람에 길을 지체시켰습니다.》

《아니 지체가 무슨 지체겠습니까? 인젠 올데를 다 왔는데요.》

오포수는 대걸이에게 허리까지 굽석해보이였다.

《빨리 넘어가보십시오. 동네에서 오포수령감 돌아오지 않는다고 눈이 감도록 기다리고들있었습니다.》

대걸이의 소리를 듣고야 대원들이 모두 비실비실 물러섰다. 그들도 동네사람들이 물건 사러 간 오포수를 기다리며 떠드는 소리를 들었던것이다.

《허참, 하필이면 왜 오포수의 말파리가 오다가 걸려?》

대원들은 두덜거렸다.

오포수는 말파리우에 올라앉아 속이 탁 터진 시원한 심정으로 채찍을 후렸다.

《이랴 쩌쩌···》

어쨌든 이렇게 해서 내도산일대는 개미 한마리 기여들수 없는 요새로 되였다.

이러한 때 동네에서는 어느날 밤 부녀회를 뭇는 회의가 바로 정대환네 집에서 열렸다. 김정숙동지의 이악한 투쟁이 오늘 드디여 조직을 뭇는데까지 이르게 하였다.

지금 정대환네 집에는 아낙네들과 동네사람들의 사태가 났다.

안채 아래웃방에 바로 부녀회를 무을 아낙네들이 가뜩 들어앉았다. 담보가 큰 리범진은 오늘밤 모임을 통해서 완고덩이 독립군로인들도 교양해내려고 맨 맞웃방엔 로인들을 가뜩 청해다 앉혔다. 그는 아직 속이 드티지 않은 정대환이까지도 앞세워가지고 들어왔다. 요행 웃마을에서 내려온 사돈, 영애의 친정아버지가 함께 들어가보자고 해서 이마에 피줄이 돋은 정대환은 어쩔수 없이 안채로 들어왔다. 하긴 그도 요새 동네분위기, 집안분위기에 몰리기도 하고 또 어느날엔가는 제 손자와의 싸움에서 한풀 꺾이기도 했었다. 손자가 상투를 잘라던진 일이 화단이 되여 정대환이 장 울기가 올라 독을 쓰자 정선일은 분을 터뜨리며 할아버지에게 뜨끔한 말을 들여댔다.

《할아버지, 제 상투 깎은 일이 정 분하시다면 머리를 도로 길러가지고 상투를 틀겠어요. 그렇지만 할아버진 지금 동네에서 뭐라고들 수군거리는지 알아야 해요. 독립군때 패싸움하던 근성이 있어서 혁명군들이 하겠다는 일을 못하게 막는다고 들끓어요. 글쎄 동네에 서있는 행정체계라는게 뭐야요? 설사 행정체계가 있다 한들 혁명군들이 장군님을 받드는 새 질서를 세우겠다고 하는데 그걸 막아요?》

《이놈 뭐, 뭐가 어째? 행정체계가 어쨌단말이야? 동네를 유지해나가는 행정체계가 없단말이냐. 리수와 구장이면 그게 행정체계지 응?》

《그게 있은들 어떻단말이야요. 그걸 깨버리고 더 으뜸가는 새 질서를 세우고 동네를 꾸리겠다는데 그게 나쁠게 있어요? 그걸 막아나서는 옹고집이 패싸움의 근성이라는거야요.》

《이 이놈, 패싸움의 근성이 뭐야?》

정대환이 장죽으로 후려치자고 했다. 그러나 손자는 훌 일어서 나가버렸다. 손자를 놓쳐버린 정대환은 씽 일어섰다. 두눈망울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러나 역시 패싸움의 근성이란 페부를 찌르는것 같이 정통을 찌른 아픈 말임엔 틀림없었다. 자기 세력이 무너질가봐 피대를 돋구는것이 그런 근성이 아니랄수가 없다. 정대환은 한생 그것때문에 망하고말았는데 바로 그 정통을 두드려맞은것 같아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바로 이런 일이 있어서 속판이 그대로 살아있긴 했으나 기는 꺾였다. 기가 꺾이지 않았다면 손자나 며느리가 아무리 들고일어나 제집에서 모임을 하겠다 해도 못하게 막았을것이고 또 리범진이나 사돈한테 들려서 이 방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것이다.

어쨌든 오늘밤 독립군로인들까지 기동하는바람에 온 동네사람들이 다 부녀회 뭇는 구경을 한다고 정대환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지금 바깥채엔 동네사람들이 가득찼다.

리범진은 맞웃방 로인들속에 틀고 앉아서 담배도 권하며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그는 우선 독립군들이 여기 와서 살 자리를 잘 잡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땅이 비옥해서 곡식이 잘되니 좋구, 산으로 둘러싸여 화목이 흔하니 좋구, 게다가 곰, 범, 노루, 오소리, 너구리가 많아 사냥을 잘해서 피물을 얻으니 좋구. 허허허, 이렇게 좋은 고장이 어데 있겠습니까?》

리범진은 천장이 떠나가게 웃으며 무르팍을 치기도 했다. 로인들도 헛헛거리며 웃었다. 사랑채에서도 들끓는다. 아니 사랑채 두간은 물론 사랑채와 안채사이의 대청에까지도 사람들이 가뜩 들어앉았다.

정선일은 깎은 머리에 그래도 관은 쓰고 신바람이 나서 사랑채와 안채에 남포등 손질을 해서 걸고 대청에도 기름등잔을 두개나 만들어내다 켜놓았다. 그리고는 장작낟가리에서 장작을 뽑아들여 사랑채 부엌아궁과 안채 부엌아궁에 가뜩 지피고 불이 떨어지는 족족 화로에 담아서는 여기저기 사람들 모여앉은데로 날라가군 했다. 화로가 모자라 질그릇, 놋대야에도 불을 퍼담아 날랐다.

《이사람, 딴 그릇에 담지, 놋대야에야 어떻게 불을 퍼담나?》

《원 어머니두, 그까짓 놋대야가 뭘 그렇게 아까와서 그래요? 불을 퍼담았다가도 기와가루로 한번 문질러던지면 번쩍번쩍해질텐데···》

정선일은 어머니의 말도 이렇게 막아쳤다. 심씨는 그저 웃었다. 그도 인젠 눈을 활짝 떴다. 김정숙동지께서 난관을 헤쳐나가며 그처럼 진심으로 애쓰시는 과정에 심씨는 아주 달라져 팔을 걷고나섰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은 오늘밤 모임도 자기네 집에서 하며 안팎간 로인들을 받들기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자고 김정숙동지께 청을 드렸던것이다. 어쨌든 심씨와 정선일은 저들이 더 안팎간 늙은이들에 대한 걱정을 했다.

아직 정대환이 비슷한 오씨는 지금 불도 안땐 랭랭한 건넌방에 건너가 앉아 혼자 담배를 피웠다. 그도 사세부득해서 집을 내맡겨 모임을 가지겐 했지만 그 일때문에 더 심사가 비틀어지기도 했다. 글쎄 어쩜 이렇게 온 집안에 번개불이 날아들어 휘젓듯할수가 있을가싶었다. 법도가 있던 집안의 가풍이 깨져도 지지리 깨져나가는듯싶었다.

《할머니, 왜 이렇게 찬 구들에 건너와계셔요? 어서 일어서 정지방으로 나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할머니한테로 건너와 조글조글한 손을 붙잡으며 타이르시였다.

《어서 나가서 부녀회나 뭇게. 그 비좁은데 나가앉아서 담배질이나 맘대로 하겠나?》

《온 할머니두··· 담배를 왜 못피우시겠어요. 담배대 내낼 틈이 없겠어요. 할머니가 여기 계셔가지군 아주머니들이 회를 못무어요. 모두 할머니를 찬구들에 건너보냈다고 수군수군하지들 않아요. 할머니, 제 말을 좀 들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오씨의 곁에 다가앉으시며 소곤소곤 이야길 하시였다.

《전 할머니가 어째서 이러는가를 알고있어요. 할머닌 지금 녀자가 회는 무엇이고 혁명군은 또 무슨 혁명군이냐고 그래서 그러시지요. 녀자들 하는 일을 업수이보시고 그러시지요. 쌈도 못할 무지랭이들이 머리를 들고일어나 부산을 피워 엄엄한 가풍이 다 깨져나간다고말이예요.》

《내가 무슨 그렇게 생각하겠냐?》

말은 흔연했다. 인젠 속에 있는 옹고집대로 활이야 살이야 내쏘아야 자기의 낯밖에 깎일게 없다는것을 알기도 하는것이였다.

《할머니, 저것 보세요. 저 숱한 아주머니들이 다 나라 찾는 일에 무슨 일이든 한몫 해보겠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모여오지 않았어요. 모여와두 어디 딴집에 모여왔어요?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믿고 이 집에 모여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도 지금 맞웃방에 들어와 앉아 사돈님이랑 같이 이야길 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이렇게 왼방에 와 앉아계시면 어떻게 해요? 그리구 전 할머니가 너무도 낯빛을 풀지 않으시기에 영애에게도 혁명군 가는걸 그만두라 하고 또 사랑방에서 글읽는 손자에게도 혁명군에 가지 말라고 타일렀어요. 그러니까 할머니의 손자는 두주먹을 쥐고 울었어요. 혁명군에 못가면 열두살때 피를 문 가슴을 언제 열어보겠느냐고 하면서말이예요. 군자금을 모연해가지고 아버지를 따라 떠났댔는데 두만강가에서 아버지가 왜놈들한테 붙잡혀 각이 들리는 참경을 보았다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제 아들의 원혼이 두만강 찬물우에서 슬피 우는 소리도 못듣고있으니 그게 무슨 할머니냐고 하면서 가슴을 치지 않아요? 그래서 저두 한참 울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손자의 아버지라면 할머니의 아들이 아니겠어요. 아들의 피맺힌 원한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모두 그 원쑤를 갚자고 들고일어나는 일인데 가풍은 무어고 남자와 녀자를 구별해선 무얼하겠어요. 할머니,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는 말없이 담배만 빠금빠금 빨았다.

《할머니, 어서 건너가시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두손을 잡아흔드시였다. 그제야 오씨는 재털이에 대통을 털며 오장륙부가 타는것 같은 한숨을 내쉬였다. 두어깨가 부들부들 낮아지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오씨를 일으켜세워가지고 정지방으로 건너오시였다.

지금 정지방에선 무우추렴이 한창 벌어졌다. 심씨와 영애가 무우구뎅이에 나가서 무우를 두 함지나 파들여왔다. 그래서 정지방뿐만아니라 새방, 맞웃방으로도 날라올려가고 대청과 사랑방으로도 내갔다. 사람들은 그저 이 집에 와야 손이 크다고들 떠들며 한개씩 들어다가 깎았다. 정신이 쩡 드는 무우를 와짝와짝 잘들 깨물었다.

맞웃방에선 리범진이 로인들한테 무우를 권했다. 기왕 리수할아버지네가 한턱 내는것인데 한개 깎지 않고 내려보내서야 대접하는 집에서 섭섭해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제손으로 무우를 깎았다. 깎은 무우를 집기 좋게 여러쪽으로 내기도 했다.

《모두 치아가 든든한것 같은데 어서들 드십시오.》

로인들이 한쪽씩 들어갔다. 리범진이도 한쪽 들어다 깨물며 어 시원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대환이와 영애의 친정아버지 장윤학은 무우를 들어가지 않고 담배만 빨았다.

《리수할아버지도 한개 드시오. 그리고 웃말 장윤학할아버지도 시원한걸 한개 들어보시오.》

리범진은 두 로인앞에 무우그릇을 내밀며 어서 들라고 권했다. 정대환이도 그렇지만 장윤학이도 무슨 독립군단체의 두령이였다는데 위엄이 있게 생겼다. 목이 쑥 뽑히고 장미꼬리가 치들린 길다란 얼굴에 코마루도 길게 내려붙고 입도 컸다. 그래도 그는 수염이 정대환이만치는 길지 못했다.

요행 정대환이 먼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채 타지 않은 담배대를 놓았다.

《어흠, 자꾸 권하는데 한개씩 듭시다. 사돈님께 밤참대접이 소흘하긴 합니다만···》

정대환이 무우를 집으며 장윤학이에게도 권했다.

리범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장윤학이도 담배대를 놓고 무우를 한개 들어갔다. 두 로인 다 이발이 대그루 같아서 썩둑 베여물고는 와짝와짝 깨물어냈다.

《노루고개싸움을 겪고 무우먹던 생각이 나는군.》

장윤학이 무우를 깨물며 한마디 했다.

《독립군싸움이 그때 제일상상봉에 올랐으렸다. 우리도 적잖은 희생을 내긴 했지만···》

두 로인은 무우를 베여물며 옛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숙동무, 이젠 회의를 시작하지 않겠소?》

얼마후 리범진이 새방에 앉아있는 김점숙동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옷매무새를 바로잡으시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사이방과 맞웃방어간의 남포불앞에 서시였다.

여기저기서 조용히들 하라고 소리쳤다. 떠들던 정지방 아낙네들이 가뭇 조용해져서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러 어르신네들과 아주머니들, 낮에 일들을 하시다가 이렇게 모여와주시니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전 여러분들에게 긴 말씀을 올리지 않겠어요. 우리 선전원동무들이 동네에 나가서 부녀회를 어째서 내와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너무도 많이 말씀드렸다고 믿기때문에 그 설명을 길겐 하지 않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새방과 맞웃방에 빼곡 들어앉아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사랑방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뻗닿게 날아들어왔다. 화로를 두개나 내다주었는데 대청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춥다고 사랑방으로 밀려들어가 사랑방은 아예 신골박듯 사람이 꽉 찼다. 지금 여기선 오포수가 하동거리이야기를 하느라고 법석했다.

어디를 치려는 놈들인지 계림시와 하동거리엔 오랑캐군대가 꽉 덮였다는것이였다. 그는 이게 바로 내도산으로 기여들놈들이란걸 모르고 왔다.

《계림시엔 지금 모여든것만 해도 몇천명이 되는지 모른다오. 그런데 자꾸 더 모여드는판이요. 국경계선에서 밀려든다는 소리도 있구 북만쪽에서 내밀린다는 소리도 있구 어쨌든 싸움을 한바탕씩 겪은것 같은 놈들이 왝왝 소리를 치며 계림과 하동거리를 싸다니는데 장관이요. 모두 개털모자를 썼는데 살이란 얼어서 시퍼렇고 그저 곰의 불이 있으면 한방에 열댓놈씩 쏴갈기겠는데 불이 있어야지.》

《넨장, 군대가 그렇게 덮였는데 정탐두 똑똑히 못해가지고 온단말요? 그놈들이 어델 치겠는지 알아야 할것 안야?》

《정탐이 다 뭔가? 잘못하다간 물건두 못해오구 피물값만 날려 보내겠는데···》

《인제 벽창호할아버지한텐 주리를 틀리웠습넨다. 갈 때 이르기도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왔다고 윽윽 벼른답디다.》

《그런 소린 하지두 말라구. 이번에도 갓모를 하나 좋은걸 사다 드리니까 볼이 오그라져 웃기만 하데.》

방안에선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며 연설이 시작됐다고 끓지들 말라고 했다.

《뭐 연설? 누가 연설을 하우?》

사람들이 물었다.

《혁명군 녀대원이 연설을 하오.》

《그럼 대청에 나가앉아서 들어볼가?》

《눈보라가 들이쳐서 나가앉아있질 못하겠소.》

《제길 눈보라두···》

사람들은 두덜거렸다.

이러는동안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는 적잖게 진행되였다. 물을 뿌린것 같은 조용한 방한가운데 서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이 곰골에 와서 얼마나 큰 신세를 지고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였다.

자신께서 이 곰골에 와서 받은 가슴쓰라린 인상은 곰골사람들 거의가 피를 뿌리며 싸운 독립군 할아버지, 아버지들이라는데 있다고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맞웃방에 앉아있는 로인들쪽을 향하여 절절하게 호소하시였다.

《독립군을 하시던 할아버지, 아버지들, 생각해보세요. 다행히 이 내도산밑에 곰골이라는 동네를 이루고 살만한 땅이 있었으니말이지 숱한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피에 물든 무기를 들고 통곡을 터뜨리며 어데로 가실번했어요? 여러 할아버지 아버지들의 얼굴에는 지금 곰골에 발을 붙이고 사는 안정감도 떠돌고 또 우리 혁명군을 맞은 기쁨도 떠돌지만 우리 젊은 혁명군들은 그 밝은 얼굴뒤에 쌓이고쌓인 할아버지, 아버지들의 절통한 피눈물의 과거를 읽고있어요. 우리들을 보고 기뻐하시는것이 그저 기뻐만 하시는것이 아니라 뉘우침이 절반 섞이기도 하고 설음이 절반 섞이기도 했다는것을 알고있어요. 그렇기때문에 우리 혁명군들도 그저 반갑기만 한것이 아니라 가슴이 쓰리고 아프기도 하고 두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해요.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못다한 싸움이라면 아들과 딸과 손자들이 대를 이어 가면서라도 그 싸움을 해서 이겨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또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처럼 피묻은 무장을 놓고 그 어떤 다른 곰골에 가서 눈물과 탄식속에서 농사나 짓는 사람들로 되겠어요?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될수 없어요. 아무러면 우리가 그런 가슴쓰라린 일을 반복하자고 총을 들고 일어섰겠어요? 저도 저의 할아버지가 봉건통치배들과 싸우고 또 삼천리강산에 기여드는 외래침략자놈들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는걸 알구있어요. 할아버지만 그렇게 싸운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싸우셨어요. 독립군으로 총을 들고 싸우시다가 싸움이 뜻대로 되지 않아 긴 탄식속에 이 세상을 떠나가셨어요. 유언 한마디 못남기시고 그저 두만강 시원한 물을 한모금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만 남기시고··· 그렇기때문에 저는 이 곰골에 와서 남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보는것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있는, 마지막 남은 생애를 쓸쓸히 보내고있는 저의 할아버지와 저의 아버지를 보고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때문에 이 곰골에 온 저의 가슴은 늘 무겁고 서럽기도 하고 몸부림칠만치 안타까운 생각에 젖어있기도 해요. 어떻게 하면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들이 이 아들, 이 딸들을 튼튼히 믿고 설사 한많은 이 세상을 하직한다 하더라도 그 고생자욱 많은 거칠은 얼굴우에 웃음을 담고 가시게 하겠느냐고 그런 생각이 간절히도 들군 해요.》

웃방 로인들, 사이방과 정지방 아낙네들 그 누구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그 웨치지도 않는 조용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밑바닥을 통절히도 흔들었다. 더구나 웃방의 로인들은 저들의 한많은 생애를 돌아보고 돌아보며 목이 메는 생각들에 젖었다. 누구보다도 장윤학이 넓은 두루마기소매를 들어올려 젖은 눈앞을 주군주군 눌렀다. 사실 그도 혁명군이 이 곰골에 와서 무슨 조직을 내온다 어쩐다 하며 뛰는걸 기특히 보지도 않았고 또 저들의 사그라지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 용을 쓰는 그 무슨 세력에 저해를 가해오는것 같은 느낌도 가지고있었는데 그런 느낌이 너무도 잘못되였다는 뉘우침이 가슴을 무섭게 긁었다. 혁명군들의 진심이 이렇게 절절하다면 그 절절한 진심으로 하겠다는 일을 무엇때문에 언짢아하겠는가? 그는 연설이 주는 감동을 새기느라고 성긴 턱수염을 자꾸 쓸어내렸다. 그저 정대환이만이 댕댕한 이마살을 풀지 않고 장죽을 물고앉아 뻗닿게 연기를 피워올린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아주머니들! 우리는 이렇게 절절하고도 아픈 심정이 있기때문에 이 곰골에 와서는 곰골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을 위하여 할머니, 어머니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좋은 일을 하고 갈가고 생각하고있어요. 우린 이 곰골을 하루빨리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나아가는 환한 지역으로 만들고싶어요. 그것이 우리 혁명군들의 간절하고도 간절한 마음이예요. 그래서 오늘밤 이 추운데 여러분들을 오시라고 해서 부녀회를 조직하자고 하는것이예요. 이 곰골이 환한 지역으로 되여서 모든 사람이 다 떨쳐일어나는데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은 떨쳐일어나지 않고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겠어요? 아주머니들, 어머니들도 모두 한몫 메고나서서 앉으나서나 자나깨나 남편과 같이, 자식들과 같이 조국광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싸워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마에 내돋는 땀기를 저고리고름으로 가벼이 닦으며 여전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시였다.

오늘밤엔 검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어 얼굴빛이 더 희고 우아해보이시였다.

바로 이때 사랑방엔 구장 조세근이 와서 래일밤엔 농민협회를 조직하겠는데 다들 또 이 집에 모이라고 법석을 했다.

《오늘밤엔 부녀회를 조직하는거니까 안채에서 하고 래일밤 농민협회조직은 바깥사랑채에서 해야겠소.》

《아니 남녀평등이라는데 그건 또 왜 녀자는 안채고 남자는 바깥채요?》

《쟈, 이건, 인제 눈들을 빠끔히 떴군. 그래 아무리 남녀평등이란들 사내가 정지방에서 살구 아낙네가 담배대 물고 웃방에서 살테야?》

조세근이 화를 내는바람에 모두 폭소를 했다. 사실 조세근은 혁명군들이 동네의 행정체계를 깨먹는다고 정대환에게 들락날락하며 고자질하다가 요새는 혁명군편으로 넘어선 열성분자로 되였다.

그는 동네분위기가 온통 혁명일색으로 되는데 눈이 둥그래져서 태도를 휘딱 고치였다. 정대환의 주추돌을 믿다간 아무래도 골이 깨져나갈것 같은 생각이 든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요사이엔 정대환을 찾아다니며 혁명군들이 내오겠다는 조직이 동네의 행정체계에 머리칼 한오리만한 저해도 주지 않을것이라고 거꾸로 된 해설을 들이댔다. 정대환은 볼이 부어 도끼눈으로 흘겨보며 당장 목침을 집어던지고싶은 충동을 눌렀다. 제밑에 두고 일을 시켜온놈의 인끔이 드러나뵈여 은근히 긴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렇게 변한 조세근이였다. 조세근이 한창 떠들고있는데 안방에서 박수소리가 요란히 울리였다.

《자, 아낙네들이 박수까지 친다···》

《박수만 치겠소, 연설까지 한답디다.》

《아니 연설은 어느 아낙네가 한다나?》

《다들 한마디씩 한답니다.》

《그건 모를 소리야. 제까짓것들이 뭘 알아야 연설을 하지, 연설이라는게 까마귀처럼 까욱까욱 외마디소리를 하는것도 아닌데···》

또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사랑방에서 이런 웃음판이 터졌을 때 정말 안방에선 벌써 부녀회 역원 선거가 끝나고 부녀회 회장이 된 정대환의 며느리 심씨가 연설을 하러 나섰다. 그는 구리가락지 낀 길죽한 손을 치마말기에 붙이고서서 아낙네들을 내려다보며 일 잘해나가자고 호소를 했다.

아낙네들은 모두 벙긋벙긋 웃으며 부녀회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지방 아낙네들도 닭이 홰타듯 모두 새문턱앞으로 주르르 나앉아 올려다보았다. 더러는 홰타듯한 아낙네들 머리우로 일어서서 올려다보기도 했다.

《전 이렇게 맞웃방에 시아버님도 계시고 또 웃말 사돈님도 내려와계신데 버릇없이 일어서서 입을 여는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또 례의가 아닌것도 같애 말이 나오다간 뚝 문질러지기도 합네다.》

《어이구, 문질러지긴 찰떡이라고 문질러지겠슴?》

정지방에서 입심센 아낙네가 한마디 입방아를 찧었다.

《그렇지만 지금 혁명군들이 와서 선전을 하는걸 보면 남자나 녀자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딸이나 또 시아버지, 며느리 할것없이 다 나라 찾는 일군이 되여 싸워야 한다고 하지 않습네까? 그러기때문에 전 치마두른 녀자이긴 하지만 시아버님이나 사돈님께서 다 좋게 생각해주실줄 알고 일어섰습네다.》

《좋습니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리범진이 기쁨이 만면해서 제꺽 넓은 손바닥을 들어 박수를 울리였다. 아낙네들도 모두 박수를 쳤다.

《여보게들 좀 비키게.》

정지방문턱에 홰타듯한 아낙네들을 밀어제끼며 그의 시어머니 오씨가 얼굴을 올려밀었다. 그는 며느리를 잠간 쳐다보았다. 건넌방에서 뒤흔들린 충격이 인제야 설음으로 되여 목이 메게 치밀어오르는것이였다.

《어서 말을 해라. 두만강가에서 피를 뿌린 선일애비의 원혼을 생각하며 어떻게 싸우겠다는 소리를 해라!》

심씨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말을 끊고 떨리는 손으로 치마주름만 주물렀다.

《어서 말을 하래두···》

《어머니!》

오씨와 심씨는 서로 쳐다보며 울었다.

《내, 내가 망녕된 생각을 했다. 우리 선일이 어데 있니? 그 애가 열두살때 당한 참변을 이야기하며 그렇게도 목이 메여 울었다는걸···》

오씨의 눈에서도 심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좔좔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맞웃방에 앉아있는 정대환은 까딱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독립군을 할 때의 서리바람이 그대로 풍기는듯한 얼굴에 붉어진 관자노리가 더욱 댕댕해보였다. 장윤학이만이 괜히 기침을 깇으며 구들바닥에 놓인 담배쌈지를 끌어갔다.

《어서 계속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 눈물을 씻는 심씨를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심씨는 한참 서서 울었다. 딴 아낙네들도 모두 눈물을 씻었다. 부녀회를 조직하는 의의가 이렇게도 아프게 눈물을 가지고 이야기될줄은 몰랐다.

《전 어머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돌아간 남편을 잊겠습니까? 사무친 원한을 잊겠습니까? 남편의 뜻을 이어나가며 남편의 원쑤를 갚는 심정으로 부녀회일을 잘하겠습네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선전할줄도 모르고 또 부녀회원들을 이끌고 나가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제부터라도 혁명군어른들한테서, 그 누이들한테서도 성심성의를 다해 배우고 무얼 차근차근히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잘해보겠습네다. 그러니 부녀회원성님들, 동서들도 한맘 한뜻이 되여 서로 도우며 쉬운 일, 힘든 일 가리지 말고 잘해나가주길 바랍네다. 정말 우리 부엌데기 녀자들이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받들고 나서서 나라 찾는 일을 한다는게 얼마나 영광스럽습네까? 그 생각을 하면 전 그저 하늘에 올라선것만 같습네다. 장군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부녀회일을 잘해나가겠습네다.》

심씨는 맞웃방을 향해 가리마 방정히 탄 낭자머리를 수그리며 절을 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가슴저리는 말씀입니다.》

리범진이 또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아낙네들도 뒤따라 박수를 쳤다. 새문턱을 붙잡고 앉았던 오씨는 치마폭을 들어서 한참 눈물을 이리저리 씻었다. 맞웃방의 독립군로인들도 눈물이 그렁해 앉아서 담배들을 빨았다.

심씨의 이야기가 끝난 뒤엔 부녀회 선전책임자로 뽑힌 수월이란 녀자가 일어서서 제법 녀성해방과 조국광복을 위해서 부녀회사업을 한몫 메고 해내겠노라고 했다. 어느 독립군의 집에 민며느리로 들어와 자랐다는 녀자인데 김정숙동지께 부녀회사업보다 총을 메게 해달라는 간청도 해왔던 녀자였다.

밖에선 바람이 지동치듯 불었다. 눈보라가 삼간방 문을 좌르르 들이갈기군 했다. 그러나 방안은 후끈후끈 더웠다. 사람들의 맘속마다 새로 태여나는것이 있어서 더욱 후끈거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