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

 

제 7 장

3

 

온 동네가 떠들썩 끓었다. 혁명군들이 죄다 달라붙어 동네사람들이 빠끔히 뚫어놓다가 만것 같은 눈을 깡그리 쳐내기 시작했다. 집근방의 눈을 죄다 멀리로 밀어냈다. 길도 큰길 작은길 없이 온통 달구지들이 엇갈리게 넓게 쳤다. 낟가리의 눈을 밀어내리는가 하면 나무들의 눈도 털었다. 소동이 일어나는 통에 먹을것 찾아 내려왔던 메새들도 우르르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했다.

정대환네 집에서도 눈을 쳐내느라고 법석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중대에 회의가 있어 나가시고 복녀, 국금이가 정대환의 손자며느리 영애를 데리고 안마당 바깥마당 눈을 다 쳐냈다. 기운이 센 복녀는 오늘아침 넓은 널판장 하나를 얻어 자루를 해대고 그것으로 바깥마당의 눈을 쳤다. 한번 떠던지면 눈이 한함지씩은 담겨나갔다. 국금이는 영애와 함께 안마당의 눈을 들것으로 담아냈다.

《혁명군언니, 난 혁명군언니가 나보다 한살 더 먹었다니 언니라구 부를테야요.》

영애는 들것에 눈을 퍼담으며 말했다.

《어서 그래요. 난 동생처럼 알테니까···》

국금이는 가슴이 찌릇해서 얼른 대답했다. 저도 형내고 동생내고싶었는데 어쩜 이렇게 제먼저 언니라고 부르며 가슴팍에 안겨들가.

《그런데 혁명군언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동생은 시집가고 언니는 아직 체네니 어째?》

《그거야 무어라니. 언니는 혁명군 다니노라고 시집못간셈 치지···》

《호호호···》

영애는 바스라지게 웃었다. 둘이는 들것을 들고 달음박질 하듯 했다. 영애는 정말 색시티라곤 하나 없고 처녀같이 얘록얘록한데 기운은 세찼다.

《언니, 나두말야요 혁명군에 들어서 총메고싶은데 어째요?》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러나 시집에서 군대에 들어가라고 하겠어요? 그게 이발이나 들겠게?》

《애개 무슨 이발이 못들게 있어요? 남편과만 마음이 맞으면야···》

《그러니 남편과 맘이 맞을순 있겠어? 관 쓰고 앉아서 글읽는 사람과···》

《언니!》

영애는 눈을 퍼담다 말고 발씬 웃으며 목소리를 낮춰서 부른다. 그러더니 소곤소곤 일러준다.

《우리 남편은 벌써 맘이 동떴어요. 받아주기만 하면 혁명군에 들어가겠다는거예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 들어가면 난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뭐래요?》

《새서방 각시가 함께 들어가겠느냐고 꽥 소리치지 않아요. 혁명군엔 정말 부부간이 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왜 없겠어? 얼마든지 있지. 그래 시집은 언제 왔게?》

《지난 가을에 왔어요. 저 웃말에서···》

《친정이 웃말이야?》

《웃말 독립군 좌상이 우리 아버지예요.》

《그럼 부부가 중대에 한번 제기해봐요. 혁명군에 받아달라고···》

《그럼 될가요?》

영애는 반색해서 물었다.

《되잖구, 무슨 안될 일이야?》

《그 키가 들썩하게 큰분이 중대장인가요?》

《키큰분이 여럿인데 어느분이게?》

《얼굴이 길쭉하고 팔뚝같은 총을 찬분말이예요.》

《그건 소대장을 말하는것 안야, 중대장동지는 얼굴이 두리두리하고 키가 커···》

영애는 힝힝 가래질을 했다. 당장 불같은 꿈이나 이루어진듯 다부지게 들것에 눈덩이를 딩굴려 넘긴다.

오늘 정대환은 기분이 좋아서 애들한테 글을 한참 가르치고는 동네로 나와 휘 돌아다녔다. 그는 혁명군들이 눈치는걸 보고는 과시 장군님 군대답다고 음음 소리를 질렀다. 혁명군들은 벌써 이 관쓴 로인이 리수라는걸 알고 지나다니며 굽석굽석 절까지 했다.

《음, 수고들 하네.》

정대환은 흡족해서 긴 수염을 내리쓸며 걸었다. 그는 동네사람들을 만나면 혁명군을 잘 대접하라고 타일렀다.

《잘 대접하다뿐이겠습니까? 옛날에 독립군들이야 언제 백성들 집에 들어서 백성들 일을 제일처럼 도와준적이 있습니까?》

《글쎄 독립군 이야긴 말구···》

독립군 잘못했다는 말엔 역시 피대를 돋구었다. 그는 집집에 들려서 구들을 짚어보기도 했다. 혁명군들 자는 방이 따뜻한가를 알아보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집에 들려선 구들이 랭돌이라고 노기가 올라 소리를 질렀다.

《리수님, 지난밤엔 구들이 뜨거웠댔습니다.》

주인이 허리가 부러지게 절을 하며 말했다.

《지난밤 뜨거웠던 구들이 얼음장같애? 이래서 장군님의 군대가 귀틀집을 따루 짓겠다는 소리를 했어. 내가 독립군을 할 때도 구들 차거운놈의 집이 제일 괘씸스러웠어···》

《네네, 오늘밤엔 장작을 둬서너아궁 지피겠습니다.》

《장작도 지피구 화로에 불두 떨어지지 않게 떠다놓고···》

《네네, 알겠소이다.》

정대환은 어힘어험 기침을 하면서 돌아서 걸었다.

며칠이 지나갔다.

혁명군이 왔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정대환이 혁명군으로 하여 귀밑에 피대가 일어서는 일이 닥쳐들줄이야···

중대의 간부회의에서는 동네의 혁명화문제와 군중조직을 내오는 문제가 토의되였다. 동네는 웅성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웃동네 아래동네 할것 없이 새로운 바람이 일어났다. 농민들을 모여앉히고 해설이 벌어지는가 하면 아낙네들을 모여앉히고도 해설이 벌어졌다. 사실 이 곰골의 특징이란 낡은 봉건관계의 이끼가 찌들게 보존되여있고 무슨 조직이란 하나도 나온것이 없으며 학교도 세워지질 못했다. 여기에서는 낡은 세상의 모든 체제와 관습이 리수인 정대환의 권위에 의하여 그대로 완강히 지탱되고있었다. 이 시대의 혁명적풍조가 스며들어왔다면 그것은 오직 김일성장군님께서 여기 번쩍 저기 번쩍하시며 왜적들을 전멸하신다는 통쾌한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기분속에서 살아가는 그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곳에 혁명의 보습날을 둘러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매일밤 동네에 나가서 사시였다. 웃말에 올라가서도 아낙네들을 모여앉히고 이야기를 하고 아래말 아낙네들도 모여앉히고 이야길 하시였다. 곰골이라고 아낙네들이 부엌데기로만 썩고있어야 하겠느냐, 벌써 다른덴 다 부녀회가 나와서 아낙네들이 한덩어리로 뭉쳐 남정네들 못지않게 조국광복하는 일에 나서서 싸운다, 곰골에 있는 사람수효를 계산해보자, 남정네들은 수효가 몇명이고 아낙네들 수효는 몇명이냐, 남정네가 백명이면 아낙네 수효도 백명 아니겠느냐, 그런데 모두 합쳐 이백명 사람이 백명만 맥을 쓰고 백명은 부엌구석에서 끼니나 끓여서야 무슨 힘으로 조국광복을 해내겠느냐, 아낙네들도 다같이 이목구비를 가졌는데 남정네같이 못싸울게 무어냐, 모르는것은 배우고 아는것은 서로 가르쳐주어서 누구나 다 눈을 뜨고 나서서 한맘한뜻이 되여 싸운다면 십년후에 올 조국광복이 1년후에도 올수 있지 않겠느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이 가슴깊이 새겨듣도록 절절히 이야기하시였다.

어느날 밤엔 오씨의 며느리 심씨를 앞세우고 웃마을로 떠나시였다. 심씨는 수더분하기도 하고 또 말하는것이 아주 봉건으로 쪄든 녀자는 아닌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면서 심씨더러 부녀회 내오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였다.

《내와야지요. 장군님께서 가르치시는 일이라는데 나쁠게 있겠어요?》

《그래도 회를 내오는게 어째서 좋다는걸 똑똑히 알구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저 들어야 된다는 생각으로만 들어서야 무슨 부녀회에 든 값이 있겠어요?》

《하기야 어째서 부녀회를 조직한다는걸 알고 들어야 눈을 뜨는거지요. 녀자들 눈뜨라고 조직하는 회인데···》

《그럼요. 눈을 떠야 무슨 일이든 한몫 할수가 있지 않겠어요.》

역시 이발이 들지 않는것 같은 태도는 아니였다. 저녁을 먹고나서 영애더러 웃말에 친정이 있다기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했댔는데 며느리를 제껴놓고 심씨 제가 함께 가겠다고 나섰으니 의아쩍게도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말하는걸보니 부녀회조직을 성심성의로 돕자고 나서는것이 분명한것 같아서 맘이 놓이기도 하시였다.

하기야 봉건이 쪄든 가정이긴 하지만 왜놈을 쳐죽이자고 총을 들고 일어섰던 독립군의 가정이기도 하고 또 장군님을 받드는 성의가 큰 집안이기도 한데 무엇때문에 부녀회조직을 반대하랴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숫부드러운 아낙네를 부녀회조직의 앞장에 내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시였다. 그를 앞장에 내세운다면 정대환네 같은 층층시하에서 먼저 눈을 뜨고 나선다는 점도 좋지만 사랑방 정대환을 각성시키는 일에선 또 얼마나 좋으랴싶으시였다.

어쨌든 이렇게 부녀회를 조직하기 위해 분주히 나다니시는 어느날 저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마을에 나갔다가 돌아오시는데 정대환이 문을 열고 내다보며 좀 들어오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슨 일인가 해서 사랑방으로 들어가시였다.

《그 그래 무슨 아낙네들 회를 뭇는다구?》

정대환은 김정숙동지를 앞에 앉혀놓고 볼이 부은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아무 대꾸를 안하시였다. 그새 무슨 큰 말이 없이 있었으니 들고일어나 반대는 안하는가부다 생각했는데 그런것이 아닌것 같으시였다. 첫날저녁 찾아들어와 인사를 했을 때 녀자군대라고 돋보기테우로 눈이 커져서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아낙네들을 가지고 회가 무슨 회인가? 뭐뭐 아낙네들 회 말고 그담 또 무슨 회라구?》

부녀회문제만 가지고 시비를 거는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곰골에선 그런게 다 필요가 없네. 우리가 독립군을 할 때에도 무슨 단체, 무슨 회 해가지구 숱한 조직을 묶었댔지. 두만강을 건너와서도 수십수백개를 묶었댔네. 그런데 그게 종당에는 패를 길러가지구 패싸움을 하게 됐단말일세.》

《할아버지, 그건 서로 권력을 쥐겠다는 잘못된 싸움이였어요. 그런 단체와 지금 혁명군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달라요.》

곁에서 책을 읽던 손자가 참견을 들었다. 그러자 정대환은 무슨 참견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도 패싸움을 하라고 가르치진 않았네. 그랬는데 단체도 숱한 단체가 나오구 단체에 묶인놈들도 오합지졸이 다 묶이니까 종당에는 합쳤다 흩어졌다 하는 놀음이 일어나고 깨지고 마사지는 놀음도 일어났지. 난 그래서 무슨 단체라느니 조직이라느니 하면 이에서 신물이 나네. 우리가 조직을 안묶은들 어떤가? 우리 민족이 누구나 다 인젠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령수로 높이 모시고있는데··· 이 근본정신이 튼튼한데 조직은 무슨 조직인가? 벌써 조선민족은 자기 령수를 모신 정신으로 한덩어리가 됐단말일세. 독립군 때로 말하면 령수가 없었으니까 이 단체 저 단체가 생겨나기도 했고 또 분쟁도 일어났던것이지. 그러나 오늘은 백두산에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에 달러. 그런데 이건 단체를 내오다못해 뭐뭐 부녀자들의 회까지 내와?》

《할아버지, 부녀들의 회를 내와서 나쁠것이 있겠어요? 부녀자들의 힘도 동원시키면 동원시키는 그만치 조국광복을 하는 싸움에 보탬이 되지 않겠어요?》

김정숙동지깨서는 다소곳하고 앉아 이야길 꺼내시였다. 그러자 정대환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보탬이 무슨 보탬인가? 아낙네들의 힘 가지고 조국광복을 한단말인가? 옛날 임진란때에 기생들이 더러 왜놈의 목을 벴다니까 그 소리에 동떠서 아낙네들의 회를 뭇거나 총을 들겠다고 하나? 안되네. 우리 곰골에선 아낙네들 회두 못뭇고 다른 아무 회도 뭇지 못하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슨 말을 더해야 이발이 들지 않을것 같아 조심히 일어서 밖으로 나오시였다. 암초에 부딪쳐도 보통암초에 부딪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저 좀 보아요.》

안채로 향해 들어가는데 사랑방부엌에서 불을 때던 영애가 아궁앞에서 얼굴을 쳐들며 불렀다.

《여기 내려와요.》

영애는 안채쪽을 얼른 눈짓해보며 아궁앞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내려서시자 영애는 쌔근쌔근하며 김정숙동지의 귀에 대고 부르짖었다.

《정숙언니, 저 안채두 좀 무너뜨려줘요. 이 집은 사랑방과 안채를 같이 무너뜨려야 해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무너뜨리긴 무얼 무너뜨려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해서 량미간에 땀방울이 돋은 영애를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봉건말이예요. 이 집에 사랑방에만 봉건이 있는줄 알아요? 정지방 우리 시할머니, 시어머니두 아낙네들이 돼서 관만 못썼지 다 같은 봉건이예요. 그걸 무너뜨려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왜 웃어요?》

《봉건이란게 뭐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산골에서 자란 색시가 봉건이란걸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고 떠드는가 해서 물으시였다.

《봉건이란게 뭐 다른거겠어요? 혁명군이 무슨 조직 내오겠다는것두 반대하고 그런게 다 케케묵은 봉건아니겠어요. 글쎄 내가 시할머니, 시어머니 앞에서 남편이 혁명군에 들겠다고 하는데 나도 웃방 언니들처럼 혁명군에 들어가야 할것 같다고 이야길 했다가 혼찌검이 났어요. 방금 시할머니가 장죽을 들고 때리자고 들지 않아요.》

《시어머니도 반대를 해요?》

《그럼요. 그래서 전날밤 내가 정숙언니와 함께 웃말로 가겠다는것도 못가게 하고 시어머니가 나서서 함께 가지 않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긴숨을 내쉬시였다. 그리고 보면 심씨가 부녀회조직에 성의를 가지고 나선다고 본것도 잘못 본것이 아닌가싶으시였다.

《내가 뭐 남편이 혁명군에 간담에야 이 집엘 어떻게 있어요? 봉건이 앞채 뒤채에 버티고 앉아서 행실머리가 돼먹었다 안돼먹었다 시비질을 할텐데··· 그리구 내가 뭐 혁명군에 가겠다는게 그저 동떠서만 혁명군에 가겠다는줄 알아요? 나두 진짜 딴속이 있어서 그래요.》

《무슨 딴속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면서 물으시였다.

《우리 아버지가 늙마에 나를 보았는데 내가 태여났을 때 아버지는 닷새동안이나 굶으셨대요. 딸을 낳았다고말이예요. 아들을 낳았으면 아버지의 총대를 물려주어서 아버지가 못다한 싸움을 하게라도 할텐데 이런 랑패가 있느냐고 했대요. 내 그래서 딸이라도 아버지처럼 총대를 들어보자구 해요. 그럼 우리 아버지도 좋아할게 안야요.》

영애는 나무를 와짝와짝 꺾어서 부엌아궁에 밀어넣었다. 그런 옥문 생각이 있어서 더욱 부아가 치민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람개비같아뵈여도 만만치 않은 녀자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너무 그렇게 덤비질 말아요. 물론 혁명군으로 가겠다는건 좋은 일이예요. 그렇지만 정 갈 형편이 못돼서 못가는 경우엔 시집살이를 착실히 해야 해요. 혁명군 못간다고 시집살이도 다 집어던지는 그런 녀자는 혁명군에서 받지부터 않아요. 그리고 또 혁명군에 가겠다는 그런 좋은 일을 가지고 집안어른들 눈밖에 나도록 행동해서야 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앉아서 타이르시였다. 얼굴이 새빨개서 말을 총알쏘듯하는걸 보니 무슨 될 일도 안되게 만들것 같아 걱정스러우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안채로 들어가시였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시니 정지방에 돋보기를 건 오씨가 혼자 앉아 무슨 바느질을 하고있었다. 한바탕 혼찌검을 내놓고 그래도 이어 일손을 잡은것 같다. 정말 온 집안에 썰렁하니 찬바람이 차있다.

《할머니, 뭘 그렇게 기우세요. 기울게 있으면 눈밝은 우리들한테 말씀하시지··· 이리 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지방으로 올라가 오씨의 곁에 들어앉으며 바늘을 빼앗으려 하시였다.

《놔두게나.》

어째 바늘대 쥔 손이 사시나무 떨듯했다.

《글쎄 이리 주세요. 어서 담배나 피우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늘을 빼앗아쥐고 오씨가 계속 봉화불 올리듯하는 담배그릇과 장죽을 돌려놓아주시였다.

《할머니, 왜 자꾸 그렇게 미안히 생각하세요. 우리가 다 며느리같고 딸같지 않겠어요···》

오씨는 그제야 아무말없이 돋보기를 벗고 담배그릇과 장죽을 끌어당겨갔다.

영애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웨깍데깍하며 가마뚜껑을 열었다. 부아가 돋아 사랑부엌에 나가서 불을 때며 아직 저녁차비를 안했던 모양이다.

김정숙동지께선 이 풍파를 어떻게 잠재우는가 하는 불안스런 생각도 드시였다.

바느질감이란 손자가 무슨 일을 할 때 입는것 같기도 한 마고자인데 헐고 꿰진데가 많았다. 덧깁고 덧깁고 한것을 또 천을 대고 덧기웠다. 궁색한 살림은 아니면서도 살림을 깐지게 하는 정말 법도가 있는 집안이란걸 이 마고자 하나를 보고도 알수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고자자락을 무르팍에 올려놓고 잽싸게 바늘을 놀리시였다.

《바느질은 언제 그렇게 배웠나?》

오씨가 담배를 피며 곁눈질로 보더니 물었다. 그 소리에 부엌에서 가마를 부시는 영애가 올려다보며 입을 삐죽한다. 아직도 밸이 동해서 얼굴이 새빨갛다.

《할머니, 저두 어릴 때부터 이때까지 녀자들 하는 일을 다해오는데 바느질을 못하겠어요?》

《그래 혁명군에도 바느질감이 더러 있나?》

《더러만 있겠어요. 이 군복도 다 우리들 손으로 지어입지 않았어요. 혁명군이란게 뭐 딴거겠어요. 식솔 많은 큰집과 같지요. 큰 집에 녀자들 할 일이 많듯 바느질감인들 좀 많겠어요?》

오씨는 은근히 긴숨을 내쉬였다.

《할머니, 오늘저녁엔 무채밥을 하겠어요.》

별안간 부엌에서 영애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린다. 은방울 같아서 빨리도 분기가 내리고 맘이 개운해지는것 같다. 아니 김정숙동지의 따뜻한 말소리가 인제야 가슴깊이에 가닿아 자기가 정말 이렇게 벋나가다간 혁명군에 갈것도 못가질 않을가 하는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모른다.

《무채밥을 하려무나. 난 이발이 약해서 그런지 그게 문문해서 좋더구나!》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 생각을 해서 그래요.》

영애는 또 한마디 상냥히 대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풍파가 잦아드는것 같아 자신의 마음조차 가벼워지고 훈훈해지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생각인즉 언제나 진심이 통하지 않는덴 없다는 주장이였다. 그래서 녀대원들에게도 성의를 다해서 이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라고 이르시였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번 영애를 불러 공손하고 따뜻하게 시할머니, 시어머니 공대도 잘하고 일도 그전날 몇갑절 더 잘하라고 타이르시였다.

어느날 저녁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랑부엌에 때놓은 이글이글한 불을 한화로 담아들고 사랑방으로 들어가시였다.

《할아버지, 구들이 차지 않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화로를 정대환의 앞에 갖다놓고 구들을 짚어보며 물으시였다.

《괜찮으이···》

정대환은 여전히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이 사그라지지 않게 불돌을 꽁꽁 눌러놓으며 늙은이들은 손발이 차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정대환은 괜히 기침을 깇었다.

《그 그래 고향은 어딘가?》

정대환은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한마디 물었다.

《회령이예요.》

《회령?》

《네, 어려서 두만강을 건넜어요.》

《엄친은 뭘하구?》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님처럼 독립군을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음···》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스레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나가시자 정대환은 김정숙동지께서 들여다놓으신 화로를 흘겨보며 한참 으험으험 기침을 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웃으면서 치는 만만치 않은 대상들한테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귀밑으로 더 피대가 뻗쳐올랐다. 대자나 되는 부르르한 흰수염이 와들거리며 가슴을 쓸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