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1

 

제 7 장

1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는새 없이 갔다. 초겨울이 되자부터 술기막골일대엔 눈이 내렸다. 오늘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하늘과 땅이 뽀얗고 산과 들판도 눈속에 들어 지척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몇번 눈이 내리긴 했으나 이렇게 지독히 내린적은 없었다. 이번엔 아예 몇길 퍼부을것 같기도 했다.

리범진중대 대원들은 두텁게 얼어붙은 고동하를 바삐 건넜다. 뒤에는 수많은 아동단원들이 따라섰다. 숱한 사람들이 고동하강가에까지 따라나와 떠나는 중대와 아동단원들더러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양기훈, 한기천 그외의 구정부 부장들 그리고 근거지안 사람들이 다 따라나와 배웅했다. 모두 억척같은 맘으로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았다. 혁명을 넓게 내다보며 인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싸워야 한다는걸 알기에 모두 범같아지기도 한것이였다.

지난 여름 큰 싸움이 있은 뒤 강호는 요영구회의방침을 집행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짜고들면서 적구조직들과 련계밑에 사람들을 수십세대씩 적구로 내보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술기막골농사를 다 걷어들인 뒤에 중대는 명령에 따라 이동하되 중대이동이 끝난다음 남아있는 혁명군중이 적구로 내려가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면서 그때 이미 양기훈, 한기천, 음전이들은 적구의 어디 어디로 숨어들어가 공작하라고 지역을 찍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새 중대더러 시급히 내두산계선으로 진출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이 전달되여왔다. 그래서 중대가 부랴부랴 이동을 시작한것이였다.

《어서 들어가오. 적구로 내려갈 때 농사지은 곡식을 한알도 허실없이 잘 가지고 내려가도록 하오.》

《여부가 있소. 벌써 절반은 뽑아내려가지 않았소. 우리가 적구로 내려가면 적정자료가 비발치듯 날아갈거요.》

강 이쪽저쪽에서 소리친다. 보내는 사람들 역시 공세로 넘어간다는 소리다. 지금처럼 앉아서 막아내는 싸움은 안한다는것이였다.

《여, 이녀석들, 꼬마둥이들도 잘 가거라. 상녀어머니, 잘 가시오. 조국이 광복되는 날 다시 만납시다.》

구정부 부장들 소리가 또 날아건너온다. 애들 뒤를 따라 걷던 리상녀가 돌아서며 말을 받는다.

《념려들 말라구. 쑥바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면 애들 련락을 띄울지 몰라.》

《련락을 띄우다니? 우리가 어데로 가게 련락을 띄워요? 헛허허, 아무튼 여생을 편안히 사시오.》

《잘살다마다, 임자들이나 투쟁을 잘하라구···》

리상녀는 굵은 지팽이를 내짚으며 돌아섰다. 젊은 사람들 이상으로 억세긴 해도 역시 아픈 정은 가슴을 훑는다. 구정부가 이미 애들 있을데를 가서 돌아보고 와서 안전한 곳이라고 보내긴 하지만 여기서 정든 사람들을 다 리별하고 산설고 물설은 생소한 곳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니 늙마에 엄마품이라도 떨어지는것 같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눈은 자꾸 퍼붓는다. 인젠 강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휘유 바람이 몰아오며 눈발을 날리기도 한다. 함박눈이 도글도글해져서 뺨을 얼얼히 갈긴다. 중대장 리범진은 뒤에서 빨리들 걸으라고 소리친다. 중대의 긴 대렬은 야산기슭을 돌았다. 지난 여름 적이 수없이 출몰하던 송림 우거진 야산이였다. 아니 여름뿐만아니였다. 그 큰 방어전투가 있은 뒤에도 놈들은 무시로 밀려들었다. 그래선 검산 뚫을 공세를 취해보다가 달아나군 하던 은페지였다. 중대는 적의 피자욱을 밟으며 산기슭을 돌아나갔다.

쑥바치로 가는 애들도 신바람이 났다. 철이가 나팔을 불었다. 그는 중대가 걸어갈 앞에 대고도 불고 떠나온 강건너에 대고도 불었다.

《신난다. 쑥바치고 뭐고 중대와 아주 같이 갔으면 좋겠네···》

《중대와 같이 가면 학교엘 다니니?》

《쑥바치엔 뭐 학교가 있대나?》

《있잖구··· 술기막골학교선생도 공작나갔다가 쑥바치로 또 온다구 했어.》

애들이 떠들었다. 중대의 녀대원들이 모두 애들과 함께 걸었다. 얼마 안가서 서로 갈라져야 할 아쉬움이 있어서 그러는지 모른다. 김정숙동지곁에는 숱한 애들이 붙어서 걸었다.

《누나, 누난 언제 쑥바치에 와요?》

《인제 곧 가지.》

《내두산에서 쑥바치는 몇리나 돼요?》

《거리는 멀어요. 그렇지만 멀다고 못가겠어요?》

애들은 누나의 손을 붙잡고 걸으며 떠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맘이 몹시 무거우셨다. 애들과 갈라질 일때문에도 그렇거니와 피를 뿌린 술기막골, 검산, 고동하를 떠나려니 잊혀지지 않는 생각이 많고 무언지 모르게 서운한 생각도 겹치고겹치신다. 근거지해산방침에 따라 광활한 지대로 나가는 걸음이니말이지 그렇지 않고 그저 떠나는 걸음이라면 그 정든 사람들과 울며불며 헤여졌을지도 모르신다. 인제 어데 가선들 그 숱한 얼굴이 머리속에서 지워질가. 농사가 우거져 두해는 실히 먹을 곡식이 나왔게말이지 술기막골땅에서 그런 곡식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을 어떻게 적구로 들어가라고 여기 남겨두고 갈수 있을가. 모두 식량을 어떻게 적구로 가지고 들어가겠느냐고 하자 적구에서 공작해들여다 먹으며 농사도 지었는데 지어논 제 곡식을 가지고 들어가지야 못하겠느냐고 저마끔 기운들이 나서 그건 념려들 말라고 했다. 하기야 적구에서 남의걸 구해다 먹는것보다 제걸 적구로 가지고 들어가는게 낫기야 낫겠지, 곡식이 있으니 더 힘이 나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적구에 들어가서도 공작을 못할 사람은 술기막골에 남으라고도 했다. 그러나 죄다 싸움마당으로 나가는데 그 누가 이 오지에 남아서 농사나 지어먹겠느냐고도 했고 또 눈깔 먼 놈들이 근거지가 그대로 남아있는가 해서 무시로 접어들기도 할텐데 그 성화를 어떻게 받자고 여기 남아서 살겠느냐고 했다. 군중의 기세가 이러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두어깨가 가벼워지기도 하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도 없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 중중첩첩한 근심을 붙안으시고 동무는 상촌으로 내려가서 이동하는 군중을 고생이 없게 잘 보위해주오 하시던 그 첫 과업을 이마만치라도 해놓고 자신께서도 인젠 부대와 함께 총을 메고 광활한 지역으로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슴 그득히 일한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시였다. 이랬거나저랬거나 술기막골에서 살려낸 군중이 상촌사람들뿐만도 아니고 능수리, 큰벌, 되골이 터지게 밀려들었던 군중을 다 살려내서 적구로 내보내기도 했고 또 내보낼 대책을 세워놓고 떠나기도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중대는 종일 눈이 퍼붓는 산속을 걸어나갔다. 야산지대여서 산등성이 하나를 넘으면 또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눈이 오금까지 펑펑 빠져들어갔다. 남대원들은 헛헛 웃어대며 신바람들이 났다.

오택진을 비롯한 공청원들도 십여명 정식 입대를 했는데 그들도 신이 나서 걸었다. 오택진은 힘이 드세서 눈구뎅이길을 헤치고 나가며 내내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는 어디서 띠여보았는지 코맹맹이 왜놈 흉내를 해종일 내면서 걸었다. 큰 코구멍 둘을 젖은 손으로 비틀어쥐고 맹맹소리를 내는데 주위의 대원들은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다. 오택진은 혁명군이 되여 더욱 제 본연의 사람됨이 나타나는것 같기도 하다. 명랑하고 유쾌하고 그러다가도 욱하면 주먹을 그러쥐고 어떤 어려운 일에도 힘차게 달라붙는 통이 큰 사나이로 변했다.

해종일 눈은 그치지 않는다.

저녁때가 거의 되여 높은 산꼭대기에 오르니 그저 온 산야가 자욱했다. 눈발이 휘휘 소리를 내며 날아내렸다. 어떤 땐 세찬 바람에 눈발이 룡트림을 하며 날아내리기도 했다.

대원들은 눈구뎅이에 짐들을 내려놓고 앉아 한참 쉬였다. 인젠 검산도 뵈지 않는다. 벌써 몇백리밖에 훌 날아온것 같기도 하다.

모두 술기막골쪽을 향해 앉아 뽀얀 눈발을 바라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느닷없이 술기막골에 와서 잃어버리고 가는 금실이의 생각이 가슴을 괴롭히며 떠오르시였다. 금실이는 어데 갔을가, 희섭이가 생전에 그렇게도 혁명가를 만들어내겠다고 윽윽하던 금실이는 대오를 버리고 지금은 어데 가있을가. 여름에 큰 싸움이 끝나서 인편으로 다리를 놓아 능지영에 갔는가도 알아보았는데 그곳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 심심산골에서 빈손으로 뛰쳐나 어데로 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새삼스럽게 불길한 생각이 버쩍 머리를 쳐들었다. 그 언니가 자살을 기도하고 내뺀것은 아닐가. 정말 양은쟁개비같이 달고 식고하는 그 가볍고 급한 성미에 그런 치떨리는 결심을 품고 몸을 사린건 아닐가. 틀림없이 어느 산속에 가서 목을 맨것도 같고 그렇지 않으면 고동하 어느 깊은 소에 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떨어져내린것도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떨리시였다. 술기막골에 그런 비극이 저질러져있는걸 이때까지 생각을 못하고있다가 떠나는 이 시각에 와서야 그 생각이 머리속에 미친듯싶으시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어요?》

음전이가 곁에 와앉으며 물었다.

《아주머니, 금실언니가 죽진 않았을가요?》

《별안간에 그 동서 생각은 왜 또 하우? 혁명이 싫다고 달아난 녀자를 오늘 또 별안간에···》

《술기막골을 떠나려니 생각나지 않아요.》

《죽긴 왜 죽었겠수. 리억겸이 나를 놓고 시비질하는 눈치를 보고 저두 그렇게 될가봐 달아났겠지. <민생단>녀편네라는 딱지가 붙게 되니까···》

음전이의 말이 비슷한 말이기도 했다. 정말 죽지만 말고 살아있어도 좋을것 같았다. 제발 살아다오. 대오를 떠나갔어도 혁명을 생각하며, 혁명을 그리워하면서라도 살아다오···

《그런 지꿎은 생각은 그만두오. 정숙동무는 인정이 너무 많아···》

《인정이 많지 않으면 어떻게 잊겠어요?》

《잊어야지. 혁명이 싫다고 간 녀자라면 칼로 벤듯이 잊어야지···》

음전이는 무섭게 철저했다. 피멍이 든 가슴에 점점 더 칼날이 서가는것 같기도 했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음전이, 분임이들과 함께 애들의 눈이 들어간 신발을 터시였다. 모두 삼과 피결을 섞어 삼은 신들을 신겨가지고 떠났는데 그게 물을 먹으니 버쩍 죄여들어 애들은 발이 아프다고 징징 우는 소리들을 했다. 정말 버선을 벗기고보니 불은 발이 시뻘겋고 발가락들이 이르르했다. 어떤 애는 벌써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런 발바닥에 당장은 성냥딱총을 놓을수도 없고 해서 배낭을 뒤져 솜을 꺼내 붙이고 버선을 도로 신기시였다.

《아이구 발이야, 아이구 발이야.》

솜을 붙이고 버선을 신기니 더 발이 조인다고 떠들어댔다.

《에끼 이녀석들, 아직 대문앞인데 벌써 발이 아프다고 우는소리를 해? 이런놈들이 앞으로 혁명군이 될수 있을가?》

리범진이 와서 들여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체 어림도 없네.》

그래도 모두 입은 살아서 중대장을 흘겨보며 대꾸했다.

《이놈들, 뭐가 어림없어?》

《글쎄 봐요. 중대아저씨들이 다 뭔가··· 우리도 총메고 땅땅 쏠 때가 있어요.》

리범진은 껄껄 웃었다. 모두 달라붙어 애들의 졸아든 신을 늘구기 시작했다. 삼과 피결이 물을 먹으니 질리긴 되게 질렸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늘어나질 않는다. 신이란게 온통 뭉그러져 돌덩이같이 되였다. 녀대원들은 눈속에서 돌들을 얻어내가지고 신을 두드리기도 했다. 두드리니 바닥이 좀 누글누글해졌다. 그담엔 졸아든 신총을 늘구었다. 리범진이 어떻게 했는지 발에 헐렁헐렁하게 만들었다.

《중대장아저씨, 내 신두 그렇게 해줘요.》

《허, 이놈들 봐라.》

리범진은 싱긋벙긋 웃으며 또 한컬레 그렇게 늘구어주었다.

얼마후 행군은 다시 시작되였다. 애들은 신을 늘구어 신더니 법석 들끓으며 가분가분하게들 걸었다. 어느쯤에 가서 쑥바치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지 중대는 그저 뽀얀 눈발속으로 걸어나가기만 했다. 빨리 야산지대를 벗어나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하긴 이 야산지대는 지금 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였다. 상촌에서 술기막골로 이동할 때 통과한 야산지대와 흡사했다. 국경지대에서 꿰지르고 들어와 뻗어간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로는 매일 말이 뛰기도 하고 어떤 땐 자동차가 씽씽 달리기도 한다는것이였다.

《여길 무사히 통과해야 하오. 여기가 위험한 곳이요. 쑥바치도 여기만 통과하면 엿먹기로 갈수가 있소.》

리범진이 대렬중간에서 걸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중대는 어느 야산속에서 불도 못피우고 가지고 오던 주먹밥으로 새벽끼니를 굼땠다. 그리고는 행군을 계속했다. 위험한 야산지대를 밤에 돌파하려는것이였다. 눈은 계속 내리고있다. 눈빛으로 어둡진 않았으나 어데가 어덴지 분간이 안간다. 높고 낮은데를 알아낼수가 없어서 어떤데선 깊은 웅뎅이로 두셋이 함께 굴러들어가기도 했다. 눈이 오금을 지나쳐서 인젠 밭은 다리로선 헤쳐나갈수도 없었다.

녀대원들은 모두 애들을 이끌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말이 없다. 싸르륵 싸르륵 눈이 휘갈기는 소리뿐이다.

《얘, 누나들 손 붙잡지 말고 외따루 서서 걸어···》

그래도 애들이 서로 어른스럽게 타이른다.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지.》

《보이지 않긴 뭐가 안보여? 눈빛이 훤한데···》

그러나 애들은 그러면서도 녀대원들의 손을 놓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량손에 애들을 이끌고 걸으시였다.

《배가 고프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따뜻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아니···》

《발바닥이 아프지 않아요?》

《그까짓 발바닥이 아플게 뭐야요. 이것봐요. 탕탕 굴러쳐도 일없어요.》

애들은 눈구뎅이속에서 발을 굴러보이기도 했다. 역시 그들은 누나를 안심시켜야 한다는건 알고있었다. 중대는 적들이 출몰한다는 지역을 새벽녘에야 넘어섰다. 그러나 야산지대는 아직도 질펀히 누워나갔다. 그 질펀한 지대를 다 통과하지 못하고 날이 밝았다. 애들과 중대가 갈라져야 하고 그리고 음전이와도 갈라져야 할 지점에 왔다.

모두 어느 산밑에서 짐들을 내려놓았다. 눈발이 좀 약해졌다. 여전히 불을 못피운다고 명령이 내렸다. 중대장, 소대장들이 대원들속으로 돌아다니며 지치진 않았는가, 발은 얼지 않았는가 하며 물었다. 그러더니 모두 우르르 애들 있는데로 왔다. 녀대원들이 지금 한창 애들에게 밥을 먹이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 아이의 발바닥에 성냥딱총을 놓아주셨다. 아이는 《엣 뜨거 엣 뜨거》 하며 발길질을 했다.

《정숙동무 비키오. 내가 놓겠소. 딱총을 한방이나 놓아가지군 안되오.》

본시 술기막골토배기인 리용수라는 소대장이 들어앉으며 김정숙동지를 밀어냈다. 리용수는 갈개는 발목을 거머쥐고 앉아 대걸이더러 불을 켜대라고 했다.

《가만 있소. 화약을 몇가치 더 뜯어놔야겠소. 어떻게 장난을 세차게 했는지 발바닥가죽이 말가죽보다도 더 두껍소. 뜸보가 작아가지고야 두꺼운 가죽을 테내겠소?》

《안돼, 안돼···》

《이놈의 자식 안돼긴 뭐가 안돼?》

대걸이는 정말 화약을 대여섯가치 뜯어놓고 불을 켜댔다. 발바닥에서 확하는 소리가 나고 애는 아구 소리를 지르며 리용수의 동가슴을 냅다 찼다. 웃음이 터졌다.

《이래야 쑥바치로 간다. 그담 또 이쪽 발에두 놔야지.》

《아니 이 갈개는 발에도 한방 더 놔야 하겠소. 당콩알이 또 하나 있소.》

대걸이의 말에 리용수는 이렇게 대꾸하며 이번엔 애의 다리를 정갱이밑으로 밀어넣고 발목을 단단히 거머쥐였다. 애는 엉엉 울며 그담엔 최곰보를 나쁜 령감쟁이라고 욕질했다. 최곰보가 삼신만 안삼아주었어도 저들의 발이 물집투성이가 안됐겠는걸 그랬다는것이였다. 다른 한쪽에선 리범진이 또 애들의 발을 일일이 검사해보다가 당콩알이 있다고 하면서 녀대원들더러 발목을 붙들라고 했다. 복녀가 닁큼 들어앉아 붙들었다.

《모엿!》

성냥딱총을 다 놓을만하자 분임이가 나서서 구령을 질렀다. 애들이 모두 우르르 일어섰다.

《짐들을 지고 모엿!》

분임이는 다시한번 소리쳤다. 애들이 모두 짐을 지고 분임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녀석 빨리빨리 져라. 또 비판을 받지 말구···》

리상녀가 성냥딱총을 맞고 눈물씻는 애의 엉덩판을 갈기며 짐을 지웠다. 애들은 삽시에 분임이의 앞에 모여섰다.

《빨리 눈물을 씻어요. 동무들은 규률과 질서가 없어요. 술기막골을 떠나자부터 그곳에서 생활하던 규률과 질서를 다 집어던지고 되는대로 행동하는것 같아요. 우리가 쑥바치로 가는건 놀러 가거나 아동단을 그만두러 가는건 아니야요. 아동단을 더 잘하고 빨리빨리 배워가지고 훈련도 잘해서 혁명을 하자고 쑥바치로 가는거예요. 그러기때문에 술기막골에서 쑥바치로 가는 길은 훈련을 쌓아가는 길이예요··· 정숙동무, 됐어요. 이젠 제힘으로 하게 내버려두세요.》

분임이도 이젠 달라졌다. 그는 애들의 배낭끈을 고쳐매주고있는 김정숙동지더러 그러지 말라는것이다.

분임이의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어쩐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날이 서가는것 같은 분임이가 고맙고 기쁘시였다.

《인제부터는 규률이 있게 걸어가야 해요. 발이 아파도 참구 추우면 추울수록 힘을 내서 걷구···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애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뒤로 돌앗!》

애들이 중대대원들쪽으로 돌아섰다. 리범진이 앞에서 벙글벙글 웃는다. 분임이는 또 애들에게 구령을 질러서 경례를 붙이게 했다. 쑥바치로 떠나간다는 하직인사인것이다. 애절한 눈물따위는 흘릴 새가 없게 다그쳐대는것이였다.

애들은 눈이 내리는 산기슭을 돌아나갔다. 확실이가 량식을 한임 잔뜩 이고 앞장에 섰다. 그는 구정부사람들과 함께 쑥바치를 다녀와서 길을 알았다. 분임이와 리상녀는 뒤에 따랐다. 그들도 보에 싼것을 한임씩 이였다. 리상녀는 기다란 지팽이를 활활 내짚으며 걸어나갔다. 중대의 대원들이 잘들 가라고 소리쳤다. 리범진이도 두눈을 슴벅슴벅하며 소리쳤다.

《어서 중대도 떠나라구.》

리상녀가 긴 지팽이를 들어 휘저으며 소리쳤다. 리범진은 껄껄 웃었다.

《정숙아, 넌 어데 가서든 인남이를 찾아라. 그리고 능지영아에미도 애를 꼭 찾으라구.》

《찾겠어요, 아주머니 잘 가라구요.》

음전이가 눈물을 씻으며 대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눈에 눈물이 어려 언덕우에 한참 서서 바라보시였다.

분임이, 리상녀들이 애들을 데리고 떠나가긴 했으나 무언지 모르게 아직 부추리 연한 어린 새들을 대공으로 날려보내는것 같은 생각이 없지 않으시였다. 상촌에서 술기막골로 이끌고 와서 눈물과 함께 씨름해온 어린것들··· 그러나 인젠 나는 나대로 중대의 식솔이 되고 너희는 너희대로 날아가는게 아니냐. 서운하다면 서운하기도 하고 보람있다면 얼마나 보람있기도 한 일이냐. 철이가 또 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리가 이쪽저쪽의 심란한 마음들을 가셔내주었다. 음전이도 부랴부랴 국경계선의 공작지로 떠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북으로 가고 음전이는 남으로 가야 하는것이였다.

음전이는 제가 이고지고 오던 물건들을 국금이, 복녀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저는 조그만 보짐 하나만 들고 일어섰다.

《정숙동무, 가서 잘 싸우라구. 또 만날 날이 있겠지.》

《있잖구요, 아주머니도 가서 잘 싸워요. 그리구 젖가슴에서 떨어진 어린애를 꼭 찾으세요.》

《그러겠어. 정숙동무도 조카애를 찾으라구.》

음전이는 김정숙동지의 두손을 꽉 잡아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그이의 손길을 아쉽게 놓고 석별의 자욱을 찍으며 생눈길로 들어섰다.

온 중대가 언덕우에 서서 아스라한 설경우로 떠나가는 음전이를 바래였다. 치마를 걷어올려 동이고 보짐 하나를 인 음전이는 깊은 눈속을 헤쳐나가다간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이쪽에서도 손을 흔들며 어서 가라고 소리쳐주었다.

얼마후에야 중대는 행군을 시작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국금이, 복녀를 데리시고 대렬을 따라 눈깊은 산비탈을 헤쳐나가시였다. 자욱히 들어선 이깔나무들에선 눈이 활활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