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5

 

제 6 장

5

 

쌀을 타이고 작식대로 돌아오는 김정숙동지께서는 경황없이 걸으시였다. 온 땅이 풍덩풍덩 빠져들어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저 온 세상 이 구석 저 구석에 불행이 배겨앉아있다가 어느 한 불행이 자취를 감출만하면 여기 내가 또 있소 하고 가슴쓰린 일이 머리를 쳐드는것 같으시였다. 이 일은 아이의 일이 되여서 그런지 더욱 가슴이 쓰리시였다.

작식대로 돌아오시니 아낙네들이 벌써 전방에 끼니를 내가고 와서 모여앉아 조반을 먹고있었다. 밥을 먹던 복녀가 빨리 와서 아침끼니를 같이 하자고 소리친다. 그는 어데서 얻어입었는지 군복저고리까지 껴입고 앉아서 걷어올린 팔뚝으로 주먹밥을 닁큼닁큼 들어다 먹었다.

어느날인가 인젠 복녀동무도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고 한마디 일러주자 전방으로 들고 날고 하더니 오늘은 아예 싸우러 나갈 준비를 한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얼 입에 넣고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끼니를 건너뛸수가 없어 아낙네들속에 끼여앉으시였다. 자신께서도 오늘부터는 전호에 나가 붙박여있으면서 싸울 생각을 하였는데 싸우자면 억지로라도 낟알을 입에 넣어야 하셨다. 그러나 낟알 절반 풀 절반인 줴기밥이 입속에서 씹히고 씹히면서 목으로 넘어가질 않으시였다. 그저 억지로 두덩이, 세덩이 씹어서 넘기시였다.

점점 더 인남이의 생각이 목이 메게 밀려올라왔다. 어린것이 어느 길가에서 헤매고있을가. 잃어버리긴 어데쯤에서 잃어버렸단말인가. 글쎄 그 어린것이 그렇게도 끝끝내 사람의 가슴을 비틀어놓을줄이야 뉘 알았을가. 부암에서 사람을 몹시도 울리던것이 태봉시할머니의 품에 가 안겼으니 그래도 제 분복이 있어서 그렇게도 들면 날세라, 불면 꺼질세라 하는 사랑속에 안겨서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좋아도 했는데 이건 별안간에 무슨 서리발인가. 인젠 만경창파와 같은 이 세상 어느 구석에 가서 그애를 찾는단 말인가. 이 동란이 벌어진 세상에 어디 가서 누굴보고 그 애가 어데 있는가를 물어보기라도 한단말인가. 아까 강호가 《아이야 찾게 되겠지.》하던 말이야 내 가슴을 달래느라고 한 말일테지. 어데 가서 그 집어던진 조약돌같이 된 아이를 찾아낸단 말인가. 잠은 어데서 자고 밥은 어데 가서 얻어먹을가. 홀쭉한 배를 그러쥐고 어느 길가에 달팽이같이 옹크리고 누워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잃어버린 할머니를 찾고 이 고모를 부르지 않을테란 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으로 넘어오는 울음을 밥과 함께 눌러서 삼키시였다. 안그러는척하며 눈가장으로 얼른 손을 가져가기도 하시였다.

《오늘도 낮엔 주먹밥을 해내가도록 하는게 좋겠어요. 속에 둘 감이 없으면 그냥 된장이라도 조금씩 묻혀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제 슬픔을 눌러내며 아낙네들에게 이르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참이라우. 전방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음식을 만들어내다 달랬다우.》

한 아낙네가 대꾸했다.

《그리구 땀들을 많이 흘린것 같은데 물이 없는 2소대, 3소대진지에 물도 많이 길어내가야겠어요.》

《물은 벌써 큰벌 아주버니들이 물지게로 나르기 시작했다우, 에그, 이게 저놈들이 뭘 던지게 땅이 이렇게 흔들리누?》

말하던 아낙네는 질끔 놀라서 소리친다. 놈들이 싸움터에서 무얼 던지는지 꽈르릉 소리가 나며 검산일대가 드르르 떨었다.

김정숙동지께선 조반을 대충 끝내고 복녀를 데리시고 산비탈로 걸어나가시였다. 전방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 정말 복녀는 총잡고 싸우겠다는 결심이 단단했다.

《대걸소대장을 만났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으면서 물으시였다.

《흥···》

《총을 달래봤어요?》

《총두 없다지 않아요.》

《총이 왜 없겠어요?》

《사람을 속이구 씩뚝대구 내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둘줄 알아요?》

복녀는 볼이 부어서 우둘우둘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반가운 소리를 못들은것 같았다.

지금 검산전방에선 무서운 격전이 붙었다. 놈들이 산개진을 치고 고동하를 건느려고 연방 강물로 밀려들어왔다. 강건너가 온통 누렇다. 야산속에 숨어있던 적의 력량이 총 출동된것 같다. 그러나 놈들은 강물속으로 덤벼들었다간 이쪽의 맹렬한 사격에 부딪쳐 도로 저편 강가로 밀려나가군 했다. 이쪽에선 강건너에 있는 놈들은 사격하지 않았다. 물에 달려들어 거의 강중심에 다가왔을 때에야 소낙비 퍼붓듯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벌써 몇번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놈들은 비행기로 그만치 두드려놨으니 방어력량이 거의다 소멸됐으리라 타산하고 덤벼드는것 같았다. 하긴 지금 강건너에서 건너다보면 검산은 온통 결단이 난것 같이도 보이였다. 처처에 수림이 시누렇게 타고 입을 헝 벌린 숱한 폭탄자욱들이 벌둥지구멍 같았다. 어떤덴 돌사태가 나서 쫙 내려밀기도 했다. 그런곳엔 아름드리 거목이 나가군드러지고 그게 군드러지면서 숱한 작은 나무들을 깔아눕히기도 했다. 어쨌든 검산은 무섭게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투성이속에서 사람이 죄다 녹아났으리라고 믿는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데 사람은 살아있다. 살아있을뿐만아니라 더 펄펄하고 굳세졌다. 사격하는 전술도 그렇고 온 산의 전호위치도 여기저기 바뀌여져 유격대력량이 더욱 꽉 덮인것 같았다.

몇번 도강을 시도하던놈들은 잠시 물러나 야산송림속으로 도로 밀려들어갔다. 뭐라고 웩덱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뻗닿게 검산으로 날아건너온다. 기마병들이 분주스럽게 뛰였다. 밀려들어갔던 놈들이 연방 딴 송림속으로 우르르 밀려가기도 한다. 공격전술을 바꿔가지고 나오려는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선 전호마다 유격대원들이 박혀앉아 강건너를 주시했다. 비행기의 폭격속에서 대원들의 모습도 모두 험해졌다. 초연에 끄슬리고 먼지가 들씌워져 얼굴들이 죄다 검은 무쇠빛이다. 그런 얼굴들에서 세찬 눈빛만 린같이 번쩍거렸다.

리범진은 이 전호에서 저 전호로 왔다갔다하며 이게 최후결판을 짓는 전투라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지금 검산너머 근거지안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고 다 비워놓았다.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가에 따라 근거지가 적의 구두발밑으로 들어갈수도 있고 안들어갈수도 있다. 근기지안에 우거지기 시작한 곡식을 생각하라. 갈 길이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서 적을 섬멸해치워야 한다. 리범진은 주먹을 흔들며 한치도 물러설 자리가 없다고 윽윽 했다.

소대장들이 정 사태가 불리할 경우엔 적을 비워놓은 근거지골안에 끌어들여다놓고 답새기자고 했다.

《안되오. 여기서 무찔러버려야 하오. 이 검산에 적의 시체더미를 쌓아놓아야 하오. 여기서말이요. 근거지안엔 심장을 아프게 하는 곡식이 있소. 거의 먹게 된 감자와 밀보리가 있소.》

리범진은 분노를 일으키며 소대장들의 의견을 막아쳤다.

이러한 지휘성원들의 철벽같은 결심에 의하여 온 대원들이 불덩어리가 되였다. 누구나 다 죽으면 죽었지 물러서지 않을 결심들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를 데리고 대걸이가 지휘하는 제2소대의 전호로 오시였다. 이 소대도 전호위치가 바뀌여 웃물목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수고들 했소. 뭐 여럿이 나온다더니 둘이만 나왔소?》

《인제 국금동무가 나올거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걸이의 묻는 말에 대답하시였다. 대걸이는 총 있는데로 가서 총 두자루를 들고왔다. 그는 엄한 눈길로 복녀를 흘끔흘끔 보기도 했다.

사실 대걸이는 복녀가 처음 전호에 나타났을 때 수많은 대원들앞에서 망신을 당할번도 했다. 복녀는 상촌에서 나를 왜 능지영으로 몰아보냈느냐고 검으락푸르락 대들었다. 능지영에 가서 눈이 가매지도록 기다리던 그 분기가 터졌다.

《그땐 그렇게 되였소.》

《그렇게 될걸 나보군 왜 소대가 능지영으로 간다고 했나말예요?》

《맨 첨 계획은 그렇게 됐댔지.》

《말 말아요. 내가 미워서 나를 쫓아보내기 위해 그렇게 한줄 내가 모를줄 알구··· 말하란말요. 보기 싫으면 지금도 보기 싫다구 해요.》

《흥···》

《흥이 다 뭐 말라죽은거야요. 빨리 말하라구. 싫으면 싫다구···》

《흥···》

《또 흥이야? 또 흥이야?》

대걸이는 소대원들이 보는것 같아 얼른 피했다. 복녀는 전호끝 호젓한곳에 숨어앉아서 전호벽을 마구 두드려대며 한참 울었다.

바로 이런 일이 있었기때문에 대걸이는 복녀가 전방으로 나타나기만 하면 마주서기를 꺼려하며 피해다녔다.

대걸이가 가져온 총 두자루는 모두 새 총이였다. 왜놈들이 총을 타가지고 와서 몇방씩 쏴보지도 못하고 빼앗긴것 같았다. 총신과 총탁이 거울같이 번쩍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 복녀와 함께 총에 장탄을 하시는데 전호뒤 분지나무숲 있는데로 국금이형제가 퉁탕거리며 달려내려왔다. 그들도 모두 총을 한자루씩 들었다.

《아니 영금인 왜 데리고 나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흡뜨고 물으시였다.

어제밤 국금이를 만나서 최후결전이 다가오는것 같기도 하니 이젠 공청원들 전호에 가서 돌나르는 일은 그만두고 총을 들고 싸우자 했다. 그런데 동생까지도 데리고 나왔다.

《그 애가 발을 탕탕 굴러치며 따라서지 않아요. 저도 아버지의 원쑤를 갚는다고.》

《언니, 나는 왜 총을 못쏠줄 알아요?》

영금이가 두눈을 똑바로 뜨고 김정숙동지에게 말했다.

《아니다. 우리 영금이가 총을 왜 못쏠테냐?》

그제야 영금이는 발씬 웃으며 물러서더니 그담엔 제 총 자랑을 했다.

《언니, 내 총 봐요. 글쎄 리범진중대장동지가 특별히 나한텐 번쩍번쩍하는 새 총을 주지 않아요, 녀성부대의 꼬마라고 뒤통수까지 쓸어주며···》

《얘 관둬, 총이나 좋으면 뭘하니?》

국금이가 눈을 흘기며 꾸짖었다.

《흥 언닌 말 말어, 나도 왜놈을 언니만큼은 쏠테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다가가 영금이의 어깨를 한팔로 끌어안으시였다. 리범진이 말했다는 소리가 가슴을 흔드시였다. 녀성부대의 꼬마! 그렇다, 새로 태여나는 녀성무장대의 꼬마가 아니냐, 얼마나 좋은 말이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를 둥둥 안아들고 돌아가고싶기도 하시였다.

아, 요영구회의의 결정··· 인제 유격전의 불길이 광활한 지역으로 퍼져나가 여기서도 타오르고 저기서도 타오를 때 우리네 녀성들도 호랑이같이 날아돌아가며 한몫 해야 할것 아닌가!

모두 전호턱에 자리를 정했다. 넷이 주르르 엎디여 앞을 쏘아보며 총을 겨누니 근엄하기도 했다.

《언니, 난말야요, 우리 언니가 한놈 쏠 사이에 다섯놈은 쏠테야요.》

김정숙동지의 옆에 엎드린 영금이가 자기 한쪽옆에 엎드린 제 언니를 할기죽 흘겨보며 말했다.

《왜 다섯놈만 쏠테냐?》

《호호호,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쏘나뭐···》

《얘, 총 겨누고 앉아서 까불지 말어.》

국금이가 또 제 동생을 지청구했다.

《오늘 윈쑤가 움찍 못하고 이 검산에서 녹아나겐 됐다. 차형님네 억지군이 다 나와서 총을 잡았으니말야.》

대걸이가 와서 영금이의 총 겨눈 자세를 바로잡아주며 한마디 했다.

《흥, 소대장이란게 명령은 내리지 못하고 체네들과 롱담을 하네.》

《네가 무슨 체네야?》

《애개, 내가 체네 아니면 뭐예요?》

대걸이는 큰 주먹으로 영금이의 귀통수를 한개 박아주었다. 그리고는 걸어가다가 국금이 다음에 사격태세를 취하고있는 복녀의 뒤에 우뚝 섰다.

《피곤하지 않소?》

복녀는 얼굴이 시뻘개서 대꾸를 안했다.

《조심하라구.》

대걸이는 또 걱실걱실 걸어갔다.

《언니!》

영금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또 울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동하를 내려다보며 왜 그러느냐고 물으시였다.

《난말야요. 리억겸이, 조택구 같은놈들을 쏴죽인뒤엔 숨이 후 나와요. 맘이 그저 하늘로 둥둥 나는것 같아요.》

《나는것 같잖구. 그렇지만 원쑤가 어디 그놈들뿐이라더냐, 더 큰 원쑤는 지금 저 강건너에 진을 치고있는놈들이란다.》

《나두 그건 알아요. 그렇지만 원쑤가 처음부터 원쑤라는 표딱지를 붙이고 우리한테 총을 겨누고 나선다면 좋아요. 그러나 이건 꼬리 아홉개 가진 여우처럼 변신을 하고있으면서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더 밉죠뭐··· 난 인젠 정말 혁명을 잘할테야요. 언니가 이때까지 사람이 되라고, 혁명가가 되라고 타일러주군 하던게 정말 고마와요. 야 정말 조국이 광복되면 얼마나 좋을가. 그땐 내가 뭐해야 좋을가. 난 그때에도 어깨우에 총메구 녀자군대가 돼서 삼천리강산을 지킬테야. 진달래꽃 많이 핀다는 삼천리강산을 지킬테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귀엽게 속삭이는 영금이를 얼른 돌아보시였다. 땀이 함빡 내돋은 얼굴이 마주보며 또 발씬 웃는다.

《귀우에 덮인 머리를 모자속에 밀어넣으렴.》

어데서 전투모를 얻어썼는데 단발머리가 온통 귀우에 송낙처럼 내려덮였다. 영금이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고쳐쓰다듬어넘겼다. 그리고나서 다시 모자를 썼다.

《언니 어때요? 혁명군 같애요?》

《응, 같구나. 인젠 적을 살펴라.》

누가 시작했는지 저음으로 부르는 혁명가의 합창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슴 붙는 불로 낡은 사회 태우고

팔다리에 흘린 피로 새 력사를 써놓자

 

국금이형제도 복녀도 숯불같은 눈으로 앞을 쏘아보며 노래를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노래에 목소리를 합치시였다. 점점 더 목소리들이 높아져갔다. 지심을 울리는것 같은 웅글은 목소리가 전호속을 누비며 우렁우렁 울려간다.

 

결사전을 하려고 우리 오늘 일어나

몸과 마음 단련하여 혁명군이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한껏 밝아져 가셨다. 아니 숭엄해지기도 하고 경건해지기도 하시였다. 무언지 모를 장엄한 세계로 한발한발 걸어나가며 깊이깊이 상처받은 심장을 맑은 샘물로 가셔내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장엄하게 동터오는 새세상의 붉은 빛

원쑤들은 넋을 잃고 가을풀잎 되리라

 

총신을 틀어쥔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두눈에 맑은 이슬이 글썽해지시였다. 온 심정이 웅심깊이 달아오르는 그런 충격속에서 빚어지는 눈물이시였다.

작식대아낙네들이 일러준대로 주먹밥을 해서 전호로 날라내왔다. 적은 그때껏 아무 기동을 안했다. 유쾌한 끼니가 벌어졌다. 모두 헛헛 웃어대며 주먹밥들을 들어갔다. 속이 없으면 된장이라도 묻혀내오라고 했는데 어데서 났는지 고사리속을 두고 빚은 주먹밥이였다. 대원들은 큰 밥덩이를 한입 아니면 두입으로 굽혀댔다. 그렇게 서너개씩 굽혀대고는 연방 랭수통이 있는데로 달려갔다. 벌써 큰벌 농민이 물초롱지게를 삐걱거리며 두번이나 왔다갔는데 그 물은 거의다 바닥을 냈다. 동이바닥 긁는 소리가 났다.

《자, 또 온다.》

정말 또 큰벌농민이 왔다.

《허허, 오늘 아저씨가 생명수를 대느라고 수고하는군요.》

《거 배집들이 큽니다.》

《그야 들어가자 나오니깐요.》

그 소리에 모두들 폭소를 했다. 농민은 또 얼음같이 찬물을 동이 둘에 좌르르 쏟아부었다. 대원들은 동이전에 남실거리는 물을 연방 한바가지씩 퍼갔다.

바로 치렬한 전투는 이러고난 오후에 있었다. 피와 생명으로 결판짓는 전투였다. 놈들의 력량이 불시에 불었다. 그새 어데 있던 부대가 내달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증원부대가 기여든것 같았다. 어쨌든 고동하물목으로 새까맣게 밀려들어왔다. 물판도 강건너 기슭도 온통 우글우글하는 적으로 덮였다. 기마부대도 한부대 물판으로 내달아왔다. 모두 악악 소리를 질러대며 호기를 부리였다. 검산에서 일제사격이 퍼부어졌다. 놈들도 사격이 맹렬했다. 물판에서도 쏘고 저편 강기슭에서도 쏘았다. 온 산야 온 하늘이 발끈 뒤집히고있다. 숱한놈들이 수장되여 들어갔다. 강물이 팥죽가마 끓듯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히!》

《헛방을 쏘지 말아! 탄알은 생명이다.》

검산의 지휘성원들은 연방 경고를 했다. 강호가 2소대 전호로 왔다. 그도 권총으로 내려갈겼다.

《소대장동무, 기마부대가 이쪽을 노리고있는것 같은데 일없겠소?》

《말이 뛰여들 골짜기엔 지금 병기창에서 만들어내는 작탄이 자꾸 나오고있습니다.》

강호의 묻는 말에 대걸이는 사격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대답했다. 대걸이도 강호도 땀에 떴다.

3소대가 있는 물가에선 기마병이 뛰여올랐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물빛이 번지르르한 말들이 이쪽 강가에 뛰여올랐다. 총소리가 세차게 울렸다. 맨 첫말이 잔등우의놈을 훌 뿌려던졌다. 놈은 물가로 날아가 철썩 너부러졌다. 뒤에 말은 놓치고 또 세번째 말이 흐앙하고 대가리를 솟구더니 이어 앞다리를 끌며 나가 딩굴었다. 말우에 앉았던놈이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놈도 어데를 맞았는지 다리를 꼬며 말곁에 태를 쳤다. 말들을 다 잡아낼수는 없었다. 숱한 말들이 적들의 시체를 뛰여넘으며 산기슭을 에돌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젠 침착해지질 않으시였다. 눈에서 불이 일었다.

《언니 저놈들 봐요.》

곁에서 영금이가 소리쳤다. 정말 앞으로 철갑모 쓴놈들이 우글우글 올려밀었다. 만만치 않게 기를 쓰며 기여오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려갈기라고 소리치며 쏘고 또 쏘시였다. 영금이도 잘 쏘았다. 죽어나가 넘어지는 놈을 하나 둘 세기도 했다.

헛방일 때는 외수없이 애개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맹꽁이하고 자기를 욕했다. 그러던 영금이가 별안간 《애고 언니이-》 하는 소리를 지르며 전호턱에서 철썩 떨어져내린다.

《얘, 영금아.》

《언니, 난 맞았어.》

영금이는 두눈이 동그래서 부르짖는다.

어데를 맞았는지 벌써 옷이 피자박되고 입으로도 가느다랗게 피가 흘러나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를 추켜안으며 대원들을 부르시였다. 저편 좌지에서 사격하던 국금이가 달려왔다. 그러나 이때 김정숙동지의 품에 안겼던 영금이는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놔요 놔요, 나두 쏘겠어요. 저 쇠벙거지들 올라오는걸 죄다 쏘겠어요.》

영금이는 김정숙동지의 팔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입에서 피가 뿜겨지기도 했다.

《얘, 중상을 입고 네가 무슨 소리냐?》

《중상이 다 뭐야요. 나 총 줘요. 쇠벙거지들 쏘겠어요. 원쑤를 쏘겠어요.》

영금이는 몸을 뒤틀며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피투성이 된 영금이를 놓아주시였다. 영금이는 총대를 쥐고 구핏구핏 기였다. 피를 뿌리며 자기 좌지에 다달았다.

그는 마구 내려갈겼다.

《네까짓 쇠벙거지들이··· 내가 원쑤들한테 질줄 아니?··· 애고 언니이!》

총을 쏘며 을러메던 영금이는 또 비명을 지르며 디그르르 굴렀다. 아주 인사불성이 되였다.

《네가 어쩐 일이냐?》

국금이가 동생의 팔목을 잡아흔들었다. 그러나 영금이는 동그란 눈에 흰자위가 덮이고 파르르 떠는 입술밖으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남대원이 한명 달려왔다.

《어떻게 됐소?》

《어서 등을 돌려대세요.》

대원이 등을 돌려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를 안아올리며 국금이더러 이 애 팔을 좀 펴주라고 소리치셨다. 국금이는 건덩거리는 두팔을 펴서 남대원의 목너머로 넘겨놓았다. 대원은 급하게 달려갔다. 영금이의 팔다리는 벌써 제가끔 흔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으시였다. 그저 가슴이 후두두 떨리시였다.

《빨리 자기 자리로 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 좌지로 와서 국금이에게 제 자리로 가라고 고함치셨다. 그러나 국금이는 깜빡 자기 자리가 어데였든지 생각나지 앉았다. 그저 공간이 뿌예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렬한 순간이 온통 굳어지고만것 같다. 누가 달려와 잔등을 밀었다. 국금이는 겨우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정말 순간이 무서운 변화를 낳고있다. 그새 벌써 적들은 새까맣게 이쪽 강안으로 올라붙었다. 다 쏴죽여 물에 처박은것 같았는데 웬놈들이 그렇게도 많이 기여올랐는지 모를 일이였다. 고동하물줄기처럼 기다랗게 산개진을 친놈들이 산기슭을 향해 달려들었다. 벌써 웃쪽은 전호에 접근한것 같다. 작탄터지는 소리가 요란히 울리고 바위돌들이 굴러내려가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맹렬한 사격을 퍼부으셨다. 열놈도 더 쏘아넘기시였다. 또 한놈 눈에 들어왔다. 량손을 게발같이 벌리고 비탈의 풀대를 휘여잡아당기며 기여올라온다. 총은 어떻게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자 놈은 벌떡 일어섰다. 입에서 악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더니 이어 팔싹 고꾸라져 디굴디굴 굴러내려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탈에 붙은 놈들을 또 그렇게 십여명 갈겨서 너부러뜨리시였다. 그런데 놈들은 벌써 아래쪽 물목의 방어선을 돌파했다. 숱한놈들이 최종방어선인 제1소대진지의 화력을 뒤집어쓰며 수림속으로 기여올라가고있다. 련속 불기둥이 솟는다. 기관총이 맹렬히 울부짖는다. 불과 불이 안고 딩구는 처절한 싸움이였다. 이 진지엔 지금 강호가 나타나서 전투를 지휘했다. 지휘를 하면서 직접 기관총을 휘둘러댔다.

숱한 적병들이 기관총의 불줄기에 휩쓸려 넘어간다.

이때 제2소대의 전호에선 슬픔을 전하는 절통한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차영금이 희생되였다. 복수전으로 넘어가자!》

대걸이가 무쇠빛 얼굴에 눈물방울을 둘둘 굴리며 고함을 질렀다. 아니 대걸의 전호뿐만아니라 온 전선의 전호에서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올랐다.

《차응도의 어린 딸이 적탄에 맞았다! 천백배로 복수하자!》

고함소리는 여기서도 터지고 저기서도 터졌다. 리범진이 품에 안았던 영금이가 숨지자 가슴을 두드리고 일어나 각 전호에 불을 지르는것이였다. 결국 영금이의 원혼이 날아돌아가며 호추알같은 소리로 웨치는것과도 같다 할가!···

《쏴요 쏴요. 쇠벙거지들을 쏴요. 내 가슴을 뚫은 복수를 해줘요!》

전투원들은 영금이의 이런 피의 절규를 마음속으로 들었다. 온 전호가 불덩어리되여 일어났다. 확확 타번지며 원쑤들의 무리를 재가루로 만들었다. 함성이 터지고 총창 부딪치는 소리, 지끈지끈 원쑤를 때려잡는 소리도 일어났다. 대걸이의 전호에선 국금이가 기절을 해 굴러나고 그것이 주는 아픔도 덧짐을 쳤다. 모두 눈빛이 무서웠다. 쏴라, 갈겨라 하는 소리가 산을 들었다놓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의 몸을 쇠물이 끓는 도가니속에 잠근것 같기도 하시였다. 모든것이 다 터져나왔다. 영금이를 잃은 분노만이 아니였다. 이때까지 참고 참아온 그 모든 분노, 가슴을 두드리고 땅을 치던 그 비극의 소용돌이속에서 그것도 수없이 반복된 그 설음, 그 고통속에서 맺히고맺힌 피눈물의 분노가 다 터져나왔다. 전호로 달려드는놈들은 얼마나 쏴죽이고 얼마나 찔러죽였는지 모른다. 전호주위가 썰렁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전호턱우로 달려올라가시였다. 복녀가 저편 비탈에서 적 한놈을 총창으로 찔러서 요정내고있다. 몸집 큰 그가 어떻게 날랜지 날아돌아가는것 같았다. 총창으로 동가슴과 배허벅을 찌르더니 총대로 마구 두드려팼다. 종시 철갑모쓴놈을 비탈에 딩굴려놓았다. 그자신도 어디를 찔린것 같았다.

《복녀동무!》

그러나 그는 듣지 못하고 그길로 마구 미끄럼을 치며 비탈아래로 떨어져내려간다. 비탈아래에 또 격전이 붙은것 같다. 한편 살아남은 놈들은 물가로 내뛰느라고 변이 났다. 그걸 또 탄알이 날아가며 갈겨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도로 전호로 뛰여내리시였다. 전호엔 원쑤의 시체가 가뜩 널렸다. 국금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국금이!》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다가가 국금이를 붙안으시였다.

《언니!···》

《우지 말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후들거리는 팔로 그를 휘여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온 산에 승리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혁명군들이 서로 붙안고 춤을 췄다. 목소리를 합쳐 혁명가를 부르기도 했다. 발을 굴러치며 달리는 대원도 있다. 피가 내를 이룬 격전으로 얻어진 승리가 장하기도 하고 거창하기도 했다.

온 산, 산비탈, 골짜기 할것없이 적의 시체가 널렸다. 철갑모들이 딩굴고 일장기가 찢겨져 나무가지에서 너덜거렸다. 기마병들이 달려들었던 골짜기엔 말의 시체, 적병의 시체가 뒤범벅이 되였다.

펑 뚫어진 말배때기에선 검붉은 내장이 흘러나오고 벌써 불개미들의 역사가 벌어졌다. 불개미들은 적들의 시체에도 달라붙었다.

온 산은 여전히 웅웅 소리를 내며 떨었다. 불타는 태양이 비쳐내리는 검산비탈에는 우리의 희생자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다. 거기에 영금이도 입을 곱게 다물고 조용히 누워있다. 영금이의 곁엔 공청의 조직책과 영금이또래 소선대원이 또 한명 누워있다. 채 감지 않은 눈들엔 미소가 비낀듯도 하고 뽀얗게 안개가 낀듯도 하다. 모두 열다섯, 열다섯명이 영원한 침묵속에 들어있다.

슬픔이 굽이치는 산비탈로는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울지 않았다. 국금이도 김정숙동지와 복녀에게 이끌려 비탈로 왔다. 그도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다. 그는 다만 살아생전에 그런바가 없는 그 놀라운 정숙과 숭엄한 빛을 띤 동생의 얼굴을 한없는 비애와 경건한 감정에 싸여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후에야 그는 비척이는 걸음으로 고동하가 보이는 산비탈로 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 이끌고 복녀가 뒤에서 부축했다.

《언니!》

국금이가 김정숙동지를 불렀다. 그는 이제야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껴 울었다. 복녀도 돌아서 울었다.

《우지들 말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달래시였다. 그러나 그이의 눈에서도 심장을 비틀어짜내는것 같은 눈물이 속눈섭을 적시며 흘러내리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