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4

 

제 6 장

4

 

고동하 건너편의 적들은 여러날동안 공격해오다가 이발이 들지 않아 그러는지 의연히 침묵을 지키였다. 무력을 증강해온다는 소문이 돌아갔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데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 무력을 빼돌린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어느 소문이고 종잡을수 없긴 했으나 어쨌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일이였다.

강호는 이런 정황속에서 구정부사업을 지도하며 검산의 혁명군무력도 재편성하며 방어진을 튼튼히 꾸려나갔다.

강호와 함께 온 무장인원들은 사실상 장군님 휘하에서 단련되고 훈련된 정치공작원들이였다. 그들은 강호가 근거지사업을 돕기 시작하자 모두 그를 도와 능숙하게들 활동했다. 그들에 의해서 불꽃튀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때까지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던 농민협회사업이 강화되였다. 구정부의 일군이 더러는 새롭게 등용되고 한기천이 식량부장을 겸한 부회장이 되였다. 검산에선 본시 있던 소대와 대걸이의 소대외에 적위대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소대가 또하나 조직되였다. 여기에 금년봄 파종투쟁과 기아를 극복하는 투쟁에서 단련된 공청핵심들이 십여명 들어갔다. 그래서 검산엔 한개 중대가 형성되고 중대장으로는 군사부장이였던 리범진이 제발되였다.

강호는 조직사업을 진행하며 적을 치는 문제, 군중을 동원하는 문제, 병기생산문제, 농작물을 보호하는 문제, 수많은 문제를 붙안고 내밀었다. 양기훈, 한기천을 비롯한 구정부일군들은 강호와 함께 온 공작원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뛰였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을 때 놈들의 돌발적인 공격이 또 시작되였다. 적들은 전술을 바꿔서 비행기로 검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예 방어진지를 죄다 녹여내고 강을 건너오자는 잡도리 같았다.

비행기 석대가 번갈아 날아들어선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했다. 검산의 숲은 짓이겨지기 시작했다. 숱한 나무들에 탄알이 들어가박혔다. 바위가 깨지고 돌부스레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큰 폭탄이 작렬하며 땅이 뒤집히고 나무가 군드러졌다. 무서운 폭음이 온 산을 공중 들었다놓군 했다. 놈들은 산을 두드려 발가벗겨놓고 지상부대를 들이밀려는것이 틀림없었다. 고동하 건너편 솔이 울창한 야산들엔 적이 꽉 덮여있었다. 야산과 야산사이로 진을 치고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말이 네굽을 안고 뛰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연기를 피워올리기도 하며 무슨 지랄인지 송림우로 일장기가 피뜩 나타나는 때도 있었다. 모든것이 심상치 않은 정황이였다. 강호는 큰 위기가 닥쳐드는것을 예감하며 군중심판에 회부하려던 리억겸, 조택구, 권일표를 구정부의 즉결심판으로 처단해없애게 했다. 그리고는 근거지안의 로약자들, 아이들, 결사적인 방어전을 도울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깊은 산중으로 들이몰았다. 명령이 내리기전에는 밤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집에 있는 모든것을 다 가지고 떠나라, 산속에서 여름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단속을 해가며 구정부간부들이 온 근거지안을 바쁘게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날 새벽 아낙네들을 데리고 구정부에 또 쌀을 가지러 갔다가 그만 놀라운 일에 부닥치시였다. 한기천이 있는 식량부장방에서 웬 녀인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한기천은 책상머리에 두어깨를 낮추고 앉아있고 그 앞에서 웬 아낙네가 제 무르팍을 빡빡 쥐여뜯으며 흐느껴울었다.

《날 왜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 함께 오면 못써서 혼자 왔어요? 글쎄 저 불쌍한것들을··· 제 아이, 남의 아이 다 잃어버리구··· 인제 어떻게 해요. 글쎄 어떻게 한단말요?》

《아니 이게 누구예요? 확실아주머니 아니예요?》

방안으로 들어선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둥그래져서 물으시였다. 몸부림치며 울던 확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소리에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며 벌떡 일어섰다.

《에구머니나 왔구나. 누나, 근거지누나!》

확실이는 김정숙동지의 품에 엎어지며 두손으로 목을 끌어안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확실이의 등허리에 손을 얹으며 다가안으시였다.

《언제 이렇게 왔어요? 숱한 고생을 했겠군요.》

《내가 무슨 고생이겠소. 이따위것이야 백번 죽어 없어진들 어때요? 어째서 이렇게 살아왔겠소. 인제 난 어떻게 해요. 내가 지은 죄를 어데 가서 속죄도 못하구··· 살아생전에 시꺼멓게 멍든 이 가슴을 도려내던지지도 못하구···》

확실이는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러세요.》

《그 이야길 어떻게 누나앞에서 하겠수···》

《무슨 이야기게 그래요? 어서 그치세요.》

《근거지누나, 날 죽여달라구··· 이 죄많은년이 글쎄 태봉시에서 인남이를 데리고 이리로 오다가 잃어버리지 않았소. 저놈들한테 붙잡히는 바람에 그 애는 길에서 잃어버리구 내 아이는 류치장에서 죽구···》

확실이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쳐들며 부르짖었다. 마주앉아있던 한기천은 자리에서 움쑥 일어나 부회장방으로 통한 문을 열고 나간다. 그는 그대로 타격이 커서 비틀걸음을 쳤다. 한기천이 부회장실로 들어서니 강호가 혼자 창가에 우뚝 서서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방금 확실이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비보를 들은 강호였다. 한기천은 들어선채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는 강호의 큰 가슴에 굽이치는 슬픔을 읽었다. 놈들에게 붙잡혀들어가 집게로 살을 꼬집히우고 송곳으로 찔리우고 갖가지 지독한 고문을 다 받고 나와서 장군님께와 아들한테 보내는 절절한 유언을 남기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그 어머니, 아무리 속이 철벽같은 사나이란들 강호가 어찌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지 않겠는가.

한기천은 제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도 강호가 받아안은 슬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 저리고 아팠다.

《정숙동무가 왔소?》

얼마후에야 강호가 돌아서며 물었다. 눈물흔적이 약간 비낀듯도 하고 안비낀듯도 했다. 역시 웅심깊은 사람이였다.

《네, 정숙동무가 왔습니다.》

《우지들 말라고 할걸 그랬소. 아주머니에게도··· 결사전을 앞둔 이때 눈물로 모대김을 해서야 되겠소? 지금 검산이 저렇게 불타지 않소?》

《우지 말라고 윽박질러놓기도 했습니다.》

《윽박지르길 왜 윽박지르겠소. 설음을 붙안고온 아주머니를 따뜻이 달래야 하지 않겠소?》

《달래기도 했습니다. 전 참 잃어버린 애들 생각보다도 어머님생각을 하니···》

《어머니 잃은 슬픔을 어떻게 다 말하겠소. 그러나 끝끝내 놈들을 이겨내고 나와서 돌아가셨다니 장하시다는 생각도 드오. 그 생각이 슬픔을 누릅니다. 빨리 아주머니에게 울음을 그치라고 하는것이 좋겠소. 그리고 어데 조용한곳으로 안내해서 푹 쉬도록 해야 할것 같소. 적의 추격을 받고 길을 백리나 에돌아 산을 넘어왔다니 얼마나 고생을 했겠소. 그 로독을 풀어야 하오.》

한기천은 강호의 흔연한 말소리밑에 깔려있는 슬픔이 느껴져 더욱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한기천의 방에선 확실이가 김정숙동지를 앉혀놓고 그의 두손을 감싸쥐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태봉시에서 있은 슬픈 이야기를 전했다.

정말 마디마디 가슴을 조이는 이야기였다.

 

태봉시할머니는 놈들에게 붙잡혀들어가 십여일동안이나 류치장에 갇혀서 온갖 지독한 고문을 다 당했다. 아들이 어데 있느냐? 아들이 언제 와서 무슨 이야길 하더냐? 인남이 애비는 어데 갔느냐? 지금 여기 조직책임자는 누구냐? 별걸 다 물으며 채찍으로 치고 집게로 꼬집고 송곳으로 찌르고 별짓을 다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놓여나왔다. 둘째봉 광굴에서 질통을 진다는 광부가 운신못하는 할머니를 집으로 업어내왔다. 놈들의 계략인즉 할머니를 아주 죽이진 말고 내놓아 미끼를 만들어놓고 뒤를 밟으려는것이였다.

하나 할머니는 너무도 상했다. 십여일동안의 무서운 고문에서 늙은 몸이 아주 멍들어 눈도 제대로 뜨질 못했다.

확실이며 동네 부녀회원들이 광부의 잔등에서 할머니를 받아내리며 울었다.

《울지들 말라구. 큰일을 돕자면 이런 일을 례사로 쳐야 해. 그런데 이녀석은 어데로 갔누?》

자리에 누운 할머니는 아낙네들을 달래며 인남이를 찾았다.

《놀러 나갔어요.》

《온, 그녀석은 할미생각을 안했나보지?》

《왜 안했겠어요. 매일 주머니에 돌을 넣어가지군 할머니 찾으러 간다구 경찰서앞으로 가군 했어요.》

《온, 놈들을 돌루 치겠다구?》

《그럼요.》

《쯧쯧···》

확실이와 부녀회원은 인남이를 찾으러 떠났다. 부녀회원은 강가로 내뛰고 확실이는 동네골목을 훑으며 돌아갔다.

《인남아! 인남아!》

아무리 불러야 어데서도 대답이 없다.

장난이 세찬 애는 할머니가 있을 때에도 어데 가서 노는지를 몰랐다. 그러기에 할머니는 늘 목이 쉬도록 인남이를 부르며 동네방네를 돌아쳤다.

지금 인남이는 조무래기들과 함께 가막골어구에서 놀았다. 큰애 둘이 느티나무가지에 올라가 앉아 다리를 드리우고 건덩건덩 하며 노래를 부르자 인남이도 나무로 기여올라가겠다고 한아름되는 나무밑둥을 끌어안고 우쩍우쩍 힘을 썼다. 그러나 아직 나무타는 재간을 못배운 인남이는 얼마쯤 올라가다간 배가죽을 나무에 긁히우며 주르르 미끄러져내리군 했다. 그는 배에 피가 내배는것도 세지 않고 또 달라붙었다. 정 안되니까 마지막엔 꼬마들이 달라붙어 그의 발바닥을 떠밀어주었다. 인남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통통한 발바닥을 나무에다 한뽐한뽐 올려붙였다.

이럴 때 확실이가 인남이를 부르며 뛰여갔다. 그러나 애들은 바글바글 끓느라고 듣지 못했다.

《얘 인남아! 할머니가 나왔다.》

《··· ··· ···》

《원 저런것들 봤나? 얘 인남아 !》

그제야 애들이 모두 얼굴을 돌리였다. 나무에 붙었던 인남이도 기겁해서 미끄러져내렸다.

《인남아, 넌 할머니가 나온줄도 모르구 그게 무슨 장난이야?》

《엉, 우리 할머니가 나왔어?》

인남이는 눈이 둥그래서 소리쳤다.

《할머니가 나왔단다. 널 빨리 데려오라고 해서 내가 이렇게 뛰여왔다.》

《정말야?》

《정말 아니구 어서 가자!》

인남이는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흘러내려간 바지를 춰입었다. 그러고는 량팔을 벌리고 내뛰였다. 딴 애들도 모두 함께 뛰였다.

집에 다달은 인남이는 쪽대문을 열어던지며 뛰여들어갔다. 정지방엔 벌써 이웃 아낙네들이 가뜩 모여와 앉았다.

인남이는 큰 눈망울을 데굴메굴 굴리며 어찌려는것인지 씨근덕거리기만 했다.

누워있는 할머니가 량팔을 벌리였다.

《할머니!》

그제야 인남이는 할머니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오냐, 이녀석!》

한참동안 애도 할머니도 말을 못하고 서로 붙든채 우들우들 떨기만 했다.

《할머니, 난 정말정말 할머니 보궆어 혼났다.》

인남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나두 네가 보구싶었지.》

할머니는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뒤통수를 쓸어주었다. 얼마나 보고싶었던걸 품에 안았는가. 가랑잎같이 마르고 오그라들었던 가슴이 당장 후더워지고 넓어지는것도 같다. 할머니는 피가 선 눈망울굽에 괴였던 맑은 눈물을 주르르 쏟았다.

확실이도 마을아낙네들도 모두 돌아앉아 눈물을 씻었다.

얼마후 인남이는 할머니의 가슴팍우에서 얼굴을 들었다. 삐죽삐죽 뻗친 속눈섭밖으로 또 눈물이 둘둘 굴러나온다. 인남이는 그 눈물을 이리저리 씻더니 부리나케 제 저고리주머니를 뒤진다.

《할머니, 당추새 줄가?》

《당추새가 뭐냐?》

《씨, 우리가 가막골어구에서 당추새 따먹었다. 할머니, 하나 먹어.》

그는 조골조골 마른 나무열매를 손바닥에 댓알 놓아 내민다.

《버려라, 그런건 못먹는다.》

《씨, 얼마나 맛이 있게···》

그는 제 먼저 입에 한알 넣고 쩝쩝 씹는다. 그립고그립던 할머니, 밤이면 꿈이 있고 꿈마다 나타나서는 머리를 쓸어주고 볼을 어루만져주고 하던 할머니, 그 할머니한테 무얼 갖다드렸으면 좋을가. 언젠가 본 오광주네 앞뜰의 배나무, 그 배나무엔 종바리만큼씩한 배가 가지마다 주렁졌댔다. 그런 배나무가 나한테 있다면 배를 이 방안에 하나가득 따다가 할머니한테 드릴수 있지 않을가. 나한테 왜 그런 배나무가 없는가.

《씨··· 내 이담에 할머니한테 배 따다준다. 이만큼씩 큰거···》

인남이는 두팔을 휘여안아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얼른 또 일어섰다. 씨근거리며 돌아가는것이 무슨 일을 낼것 같기도 했다. 홰대에 걸린 옷가지를 벗겨내려 구석에 끙끙 쑤셔박기도 하고 웃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어던지고 공을 냅다 차기도 했다.

《저 애가 무슨 복새를 저렇게 일구오?》

《내버려두. 기쁘다는것이 그렇게 갈개는것 같소.》

아낙네들 소리에 할머니는 눈물고인 눈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집에 나온 할머니는 그날밤부터 인사불성이 되여 앓았다. 놈들이 로쇠한 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이웃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미음을 쒀서 대접해도 마시질 못했다. 안먹어도 든든하고 옆구리에 왜놈의 칼이 박힌듯 결린다고 했다.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다리, 가슴팍 할것없이 상처에선 진물이 흘러내렸다. 집게에 물려 비틀렸던 자리는 잔등판에도 여러곳 있다. 그런 상처에서도 역시 진물이 흘렀다. 아낙네들이 잣진을 구해들인다, 고약을 구해들인다 해서 연송 갈아붙이며 치료를 해도 쉬 낫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란게 한이 있지. 무한한건 아니라우. 내가 그놈의 감옥소바닥에서 송장이 되여 초라한 륙신을 그놈들 눈깔에 보이지 않게 된것만도 다행인데 인제야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소. 다 내 사람들앞인데···》

《어머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해요. 이를 악물고라도 몸을 고치고 살며 원쑤를 갚아야지요.》

할머니의 소리에 확실이가 울며 말했다.

《내 아닌들 원쑤를 못갚겠게 그러우?》

《그래두 어머님손으로 더두말구 이 태봉시경찰놈들은 죄다 쓸어없애야지요.》

그 소리에 할머니는 역시 사내들같은 큰 목소리로 허허 웃었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할머니는 깜박 정신을 잃었다. 눈엔 흰자위가 덮이였다. 곁에서 자는 인남이는 그래도 할머니의 배우에 다리를 철썩 올려놓는다. 확실이는 그 다리를 조심히 들어내렸다. 얼마후에야 땀을 쭉 뽑은 할머니가 정신을 차렸다,

《어이구, 시원하다. 그놈의 오랑캐칼이 오장륙부를 안찌르는데가 없군. 옆구리에 떡 가로질러가지군 이따금씩 삥 돌아가며 여기 찌르고 저기 찌르고 한다니까···》

할머니의 말은 거의 제 정신이 없는 소리같기도 했다. 확실이는 이마우에 콩알처럼 내돋은 땀방울을 씻어드리였다. 가슴이 죄여 곁에서 그 정상을 볼수가 없다. 그렇게 꿋꿋하던 힘을 다 빼앗기고 인젠 정말 온 륙신이 훌 불어도 날아날것 같이 되였다.

《이보라구 고분엄마!》

할머니는 이불밖으로 손을 내밀어 확실이의 손목을 더듬어쥐였다.

《난 아무래도 못살아. 내가 이 지경되여 어찌 살아나기를 바랄수 있겠나? 난 지금 고분엄마한테라도 이 세상에 남기고싶은 마지막 말을 하고싶어.》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해요?》

《내 열여섯살에 시집을 와서 온갖 풍진을 다 겪으며 그래도 강호를 하나 낳아 길렀으니 이 세상에 왔던 보람도 있는것 같애. 그 사람이 지난해가을 장군님을 모시고 북만땅으로 쌈을 떠났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도 거기서 싸우는지 모르겠네.》

《그야 어련히 잘 싸우겠다구요.》

《그게 글쎄 얼마나 장한 일인가. 우리 삼천리땅에 아들을 장군님께 바친 에미가 많기야 하겠지만 난 그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훈훈해져···》

할머니의 주글주글한 량눈가로는 더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확실이는 수건으로 그 눈물을 닦아드렸다.

《내 오래오래 살면서 장군님을 한번 만나뵙고 또 강호도 만나서 장군님 받들고 잘 싸우라는 말을 하고싶었지만 인젠 그렇게 하긴 틀렸어. 하지만 앞으로 고분엄마야 장군님을 만나뵈올 날이 있고 우리 강호도 만날 날이 있을터이지. 남편을 따라다니며 혁명을 하노라면···》

할머니는 숨이 차서 말을 끊었다. 이마엔 자꾸 땀이 내돋는다. 내돋은 땀방울이 쭈룩쭈룩 미끄러지기도 했다. 흔연히 말은 하고있으나 오랑캐의 칼이 또 여기저기 우벼대는것 같은 아픔을 참는것인지도 모른다.

《만나거들랑, 강호를 만나거들랑 이 에미는 왜놈감옥에서 오랑캐들의 채찍도 이겨내고 칼침도 이겨내고··· 또 이것 보게. 손톱눈밑에다 이렇게 송곳을 박는것도 이겨내고 내 가슴깊이에 간직한 비밀을 고이 지켜냈다고 일러주게. 그리고 장군님께는 이 강호의 에미가 장군님의 만수를 빌며 큰절을 하고 떠나갔다고 말씀을 올려달라구.》

할머니는 정말 손톱눈들이 거밋거밋 죽은, 가죽과 뼈만 남은 손을 확실이의 무르팍우에 놓으며 애를 끊는 절절한 말소리로 부탁을 했다. 확실이는 무르팍우의 손을 쥐고 앉아 눈구석에 고이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말자고 애썼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부탁은 인남애비를 만나거들랑 그 사람한테도 강호에게 한것 같은 말을 전해주게. 그것두 내 자식이야. 그게 내 자식이니 이 이건 내 두벌 새끼구···》

할머니는 화들거리는 손으로 곁에서 자는 인남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목이 메여 말하였다.

《글쎄 이것이 내가 놓여나온 날 달려들어와 내 가슴에 엎어져 한참 울고나서 나더러 무슨 당추새를 먹으라고 나무열매를 내밀어주지 않았나. 그리구 이담엔 배두 따다주겠다면서··· 그게 어른들의 설분보다도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하네. 아마 이 할미앞에 높고 푸른 하늘이라도 통채로 안아다가 안기고싶었던게지.》

할머니는 눈물을 씻었다. 그리더니 아이의 머리를 자작자작 두드려주며 헙헙 소리를 냈다.

《내가 죽거들랑 이걸 고분에미가 술기막골로 가는길에 데리고가서 제 고모를 찾아주라구··· 내가 이것까지도 양해서 제 애비처럼 장군님 품으로 들여보내자고 했는데 인젠 그렇게 할수가 없어. 제 고모한테 가면 의례히 장군님 품으로 들어갈 재목이 되겠지.》

할머니는 자꾸 헙헙거린다. 륙신을 짓뭉개는 아픔보다도 아이와의 결별, 그 아픔이 더 큰것 같다. 꽉 다가안고 볼을 비비기도 하고 볼기짝을 두드려주기도 하던 그 애무, 남의 자식이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고 그저 내 피덩이만 같아 날에날마다 투실투실 자라가는것을 보던 그 기쁨, 그런데 그 모든것을 버리고 눈을 감을 생각을 하니 그게 그렇게도 애를 끊어 헙헙거리는지 모른다. 확실이도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손을 주무르고 할머니의 손을 주무르고 했다.

할머니는 정말 자신이 예언한대로 이틀을 못넘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눈도 곱게 감고 입가엔 굳어진 미소가 피여있었다. 사람들은 가랑잎같이 가벼운 시신을 들어 관에 넣었다.

《할머니! 할머니!》

인남이는 할머니를 부르며 울었다. 그는 처음엔 할머니가 죽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죽었다는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꼭 자는 얼굴같기도 해서 어느때든 다시 눈을 뜨리란 생각을 하고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눈물을 흘리는것도 괜히들 그런다고 여겨졌다. 그러다가 할머니를 관에 넣고 못을 박을 때 눈이 좀 둥그래졌다. 그러나 그때도 관에 박는 못이 쇠못이 아니고 홈을 판데다 나무못을 가로질러넣는바람에 이까짓게 다 뭐야, 인제 할머니가 눈만 뜨면 뚜껑을 훌 들어던질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가슴이 아주 철렁 무너져내리진 않았다. 그러다가 속이 뜨끔하게 놀란것은 사람들이 관을 메고 가막골로 갈 때였다.

《아저씨, 할머닐 메구 어데로 가?》

인남이는 상두군들에게 물었다.

《가막골에 묻으러 간다.》

《할머니를 왜 묻어?》

《이녀석, 죽은 사람을 묻지 않고 어쩔테냐?》

《묻는다는건 아주 없어진단 말 안야?》

《그럼···》

인남이는 그제야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할머니가 정말 어딘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곳으로 떠나가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영 그렇게 되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상두군들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따라갔다.

인남이는 관이 땅속에 들어가고 관우에 흙이 떨어져들어갈 때에야 온몸이 한 댓길 뛰여오르게 펄쩍 놀라며 상두군들에게 덤벼들었다.

《못파묻어. 우리 할머니 못파묻어.》

인남이는 흙이 떨어져들어가는 관우로 곤두박질해들어갔다.

그리고는 흙을 두손으로 마구 움켜 집어내던졌다. 한 장정이 달려들어가 대갈놀음하는 애를 닁큼 품에 안아들었다. 애는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며 장정의 머리 가슴팍 할것없이 마구 짓조겨댔다.

《우지 말아, 할머닌 죽었어.》

《안죽었어, 안죽었어, 우리 할머닌 안죽었어.》

장정은 인남이의 두팔목을 꽉 쥐고 서서 어서 묻으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눈물을 떨구며 관우에 흙을 마구 밀어넣었다.

《할머니, 할머니 나 두고 어데 가?!》

얼마후 인남이는 두드러져오른 무덤앞에 마주 배를 붙이고 엎어졌다. 그리고는 땅바닥을 마구 할퀴며 두다리를 물장구치듯 두드렸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의 무덤이 있는데서 댓걸음 저편엔 생당쑥 무성한 무덤이 하나 있다. 그 무덤밑에 류치장에서 숨을 거둔 인남이엄마의 유골이 누워있을줄이야 그 누가 알랴. 죽음이 허무하지 않다면 생당쑥 무덤이 움찍움찍 뻐개지고 거기서 솟아오른 엄마가 그 수더분한 얼굴에 슬픔과 미소를 함께 띠고 한걸음 한걸음 아들곁으로 다가와 목놓아 우는 아들을 얼싸안아주기라도 하지 않을가. 하지만 모든것은 쓸쓸하고 조용했다.

《할머니, 할머니, 내 할머니야 !》

인남이는 도로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엎어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두다리로 땅을 물장구치듯 두드리며 울었다···

 

《글쎄 이렇게 돼서 인남이를 데리고 이리로 떠났댔는데···》

확실이는 말을 못하고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말을 못하고 얼른 눈으로 적삼고름을 가져갔다.

《글쎄 돌아가신 할머니가 눈을 감겠어요. 그렇게 울며 부탁을 하던 어린애를 데리고 오다가···》

《울지 마세요. 혁명을 하는데 그 이상의 우여곡절인들 없겠어요? 우린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을 앞두고있지 않아요. 눈물이야 그 싸움에 무슨 보탬이 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달래시였다. 이러는데 강호가 있는 방으로 갔던 한기천이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정숙동무, 식량때문에 왔소?》

아까는 힘이 빠진것 같이 앉아있었던 한기천이 강호한테서 힘을 얻어가지고 나왔는지 서슬이 올라서 물었다.

《네, 쌀을 줘야겠어요. 작식대에 또 식량이 거의 떨어졌어요.》

《그럼 창고로 나갑시다.》

한기천이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번 더 확실이의 어깨를 다심히 쓸어주며 울지 말라고 달래시였다.

《난 안울겠어. 근거지누나두 울지 말라구···》

확실이는 눈에 눈물이 그득해서 김정숙동지의 옷섶을 매만졌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였다. 문을 나서는데 마침 강호가 회장실문을 열고 나오다가 우뚝 섰다.

《정숙동무!》

《강호동지!》

김정숙동지께서도 슬픔이 격해있던판이라 얼굴을 쳐들며 부르짖으시였다. 강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마주보았다. 둥근 얼굴에 관자노리가 갑자기 날카로와진것 같기도 했다.

《우지 마오.》

《울지 않습니다.》

《아이야 찾게 되겠지···》

《전 아이생각보다도 태봉시어머니의 일이 원통해서···》

《내가 눈을 감겨드리지 못한 일이 한스럽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깨무시였다.

《어서 가보우. 오늘은 혈전을 치러야 할것 같소.》

강호는 옆구리에 찬 싸창을 어루만지며 걸어나갔다. 전방으로 나가는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쓰라린 가슴을 다잡으며 창고쪽으로 돌아들어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