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작식대에서 이런 소동이 있은 다음날밤 구정부에선 전방지원사업을 토론하는 간부회의가 열렸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오라는 련락을 받고 바삐 구정부로 들어가시니 벌써 회의가 시작되였다. 적의 공세가 더욱 치렬해지는 조건에서 전방에 농민들을 더 동원시키는 문제, 적위대를 전부 전투에 인입시키는 문제, 작탄운반조를 공청핵심들로 강화하는 문제, 작식대가 좀더 전투원들의 식사를 풍족하게 보장하는 문제, 많은 문제를 내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구정부간부들이 다 모이고 전방에 붙박혀있던 리범진군사부장도 들어와 앉았다. 모두 호된 고비를 넘기느라고 얼굴들이 컴컴했다. 양기훈, 한기천이들은 가끔 휘유 큰숨을 내불었다.

작식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사람들은 전투원들이 식사를 간단히 하면서도 속이 든든한걸 내다먹여야 한다고 떠들었다. 어떤 사람은 아낙네들을 더 붙여서 국을 끓여 내가도록 하자고 했다.

그러자 양기훈이 지금 어느판에 국동이를 이고다니며 더구나 전투원들이 총알 날아오는 전호속에 앉아서 국을 먹겠느냐고 나무랐다. 토지부장도 그까짓 국을 먹여야 성가시기나 했지 무슨 맥을 쓰겠느냐고 하는바람에 헛헛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회의가 거의 끝나갈무렵 양기훈의 책상모서리에 독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던 리억겸이 오늘밤 오래간만에 간부들이 모여앉은 기회에 아예 김정숙동무의 문제를 좀 토론해보자고 했다. 뜻밖의 소리에 모두 리억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정숙동무의 문제라는것은 무어요?》

양기훈이 물었다.

《내가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방금 작식대를 강화하자는 토론도 있었지만 난 이 김정숙동무에게 작식대책임을 지워가지곤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식대뿐만아니라 공청사업도 그렇고 모든 사업에서 다 그렇습니다. 지금 작식대에선 녀인들이 련방 내빼고있습니다. 모두 이 동무가 끼고돌던 녀성들입니다. 내가 이미 이 동무를 보고 그런 녀성들 문제에 대해서 말도 해주었습니다. 계급적으로 믿을수 없는 녀자들이나 끼고돌지 말라고··· 그런데 이 동무는 자기도 낄 사람, 못낄 사람을 아노라고 나를 반박하더니 내가 이야기해준뒤에 이 녀자들과 더 짜고들자는 회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였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이 와짝 솟아오르시였다. 모두 심각한 소리가 터져나오는바람에 리억겸의 얼굴을 주시했다.

《능지영에서 온 녀자가 야밤도주를 했는데 어제밤엔 또 한 녀자가 도망쳤습니다. 둘이 다 <민생단>으로 몰려죽은 사람들의 녀편네들입니다. 이 녀자들이 모두 어데로 갔겠습니까? 남편이 <민생단>이였다면 왜놈의 품으로 달아날밖에 더 있습니까? 결국 자료란 자료는 다 쥐고 적진으로 달아났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꽉 굳어지는것 같으시였다. 억울하고 분해도 말할수가 없으시였다. 숨어서 독을 쓰던자가 이제는 정면으로 접어드는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사실을 드러낼수 없으니 더욱 안타까우시였다.

《이게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도 이 동무는 뭐 뭐 자기도 계급투쟁을 알고 낄 사람 못낄 사람을 안다구 호언을 하고··· 동무, 도대체 혁명을 어떻게 만들려는거요? 다 무너뜨려 없애구 빈터만 남게 만들자는거요? 그리구 이 동무 주위에 또 그런 녀성이 있습니다. 저 아동단지도원을 하는 분임이라는 녀자도 상촌에서 이곳으로 끌고온 녀자인데 큰 부자집며느리입니다. 이 녀자는 벌써 사상적으로 태를 먹어서 떠나온 시집생각만 하며 울고있습니다. 아동단지도원이라는것이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 애들이 산을 헤매다가 독초를 뜯어먹고 죽는다 산다 하는 소동까지 일구게 만들며 아동단을 아주 망치고있습니다. 이렇게 주위가 너저분합니다.

결국 김정숙동무는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동무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동무를 빨리 근거지의 일체 사업에서 떼구 저 저 아동단지도원도 떼야 한다구 봅니다. 계급진지란것은 념두에도 없이 신통히도 믿을수 없는 녀성들만 자기 주위에 묶어세우고 근거지의 자료가 적들편에 날아가게 만드는 동무에게 공청사업을 어떻게 맡기고 작식대일을 어떻게 맡기겠습니까. 떼야 합니다···》

리억겸의 소리에 이때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한기천이 시뻘건 얼굴을 쳐들며 뗀다는건 무슨 말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분격해서 말을 시작했다.

《난 지금 부회장동무의 말을 들으니 이상한 생각이 드는게 있소. 그래 음전이나 금실이가 뛴 문제를 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이것을 온전히 취급해서 보아야 할게 아니요? 그런데 덮어놓고 김정숙동무한테 모든 책임을 넘겨씌우며 떼자는 소리부터 들고나오니 도대체 부회장동무의 진의도가 어디에 있소? 문제를 똑똑히 보자는거요, 아니면 김정숙동무를 떼자는거요? 그래 김정숙동무를 떼고 이 근거지가 겪는 시련을 부회장동무 혼자 감당할텐가. 정숙동무가 이 근거지에 와서 이미 해놓은 일들만 해도 그렇소. 숱한 군중을 살려내느라고 뛰였지, 파종대를 도와 땅을 팠지, 노나먹겠다는 씨앗도 못노나먹게 만들고 땅에 심어넣어서 곡식이 우거지게 했지. 정숙동무만치 애쓴 동무가 우리 근거지에 누가 있소? 그래 부회장동무는 씨앗 노나먹겠다고 하다가 그걸 못노나먹은 감정이 있어서 정숙동무를 그렇게 걸구들어 떼자구 하오? 정숙동무는 못떼오. 하늘이 두쪽 반나도 못떼오!》

《동무는 무엇때문에 눈이 시뻘개서 소리치는가? 그러지 않아도 동무가 저 동무와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알고있소.》

리억겸은 한기천의 입을 틀어막기 위하여 자기 손아귀에 무슨 자료라도 든든히 걷어쥐고있는듯이 날카롭게 쏘아보며 다시 목청을 돋구어 소리쳤다.

《우리가 이런데서 절대로 동요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근거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치렬합니다. 이런판에 한가하게 말씨름을 할 사이도 없지만 일체 흐리터분한 요소들은 일단 제거해버리고 봐야 합니다. 전투판에서 흐리터분한것을 그냥 두었다가는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가져온단말이요. 과오가 명백한데 왜 못뗀단말인가? 한일은 한일이고 과오는 과오란말이요. 과오도 실책으로 인한 과오가 아니라 남의 충고도 듣지 않고 의식적으로 저지른 과오란말이요.》

리억겸은 날카로운 코마루가 시뻘개지고 안경속의 눈이 둥그래져서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이때까지 볼수 없었던 독하고 잔학한 빛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의식적이긴 무슨 의식적이란말이요. 그럼 정숙동무가 자료를 안겨주어서 뛰라했단말이요?》

한기천이도 두주먹을 불끈 쥐고일어서며 웨쳤다. 그도 만만치 않게 리억겸을 위압했다.

《충고를 주고 나중에는 이런저런 녀자라는것까지 알려주었는데 그래도 관계를 끊지 않은게 의식적이 아니면 뭐가 의식적인가?》

리억겸은 책상을 두드렸다.

《이건 무슨 본때들이요!》

뜻밖에도 양기훈이 소리를 질렀다. 일상 아련하기만 해서 어려운 일을 감당해나가기 아름차하던 그 체소한 몸에서 그런 벼락치는것 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올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서로 피대를 돋구던 리억겸이와 한기천이도 입을 다물었다.

《무슨 문제를 토의하겠으면 원칙이 있게 말들을 해야지, 목숨을 내대고 근거지를 사수하자는 이 마당에서 회의를 이렇게밖에 못하겠소? 첫마디부터 떼자느니 어쩌느니 하는것은 무슨 당치 않은 소린가?》

양기훈은 소리는 벼락같이 쳤지만 젊지 않은 몸에 너무 흥분한 탓인지 몇마디 못하고 숨을 헐썩거리였다.

《내 발언에서 과격한 점이 있었다면 그건 내가 너무 분해서 그러는것입니다. 이제 회장동무가 말씀한바와 같이 우리가 이 근거지를 지키기 위해 피를 얼마나 흘렸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싸움이 벌어지고있는 뒤에서 <민생단>의 녀편네가 근거지에서 들고 뛰는데 그 녀편네에게 잘 가라고 신까지 신겨보내는 사람이 있으니 이게 분하지 않단말입니까?》

리억겸은 잠시 쭝해 앉아있더니 다시 표표한 기상으로 일어나 이렇게 소리치며 제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회의장은 웅성거렸다.

양기훈이도 놀라서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아니 그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요?》

리억겸이는 자기 말이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대답을 끌었다.

이때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일어서시였다. 음전이가 돌아올 때까지 될수록 충돌을 피하자고 하였지만 리억겸이가 또다시 사람들문제를 들고나오니 음전이가 바로 목적지에 가닿기나 하였는지 또 금실이가 어떻게 되였는지 몰라 초조하고 안타까운 심정에 휩싸여있던 김정숙동지로서는 이 문제가 번져 어려운 시련을 겪는 근거지인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앉아있을수가 없으시였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음전아주머니와 신을 바꾸어신은것은 저입니다.》

회의장은 또다시 웅성거리였다. 리억겸의 문제제기도 어마어마했지만 김정숙동지의 말씀 또한 너무나 뜻밖이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저는 제 신이 그 아주머니 신보다 나은것 같아서 바꾸어주었습니다. 부회장동무는 그 아주머니가 신이 헐어서 내빼지 못하고있다가 마침 제가 신을 바꾸어주니까 근거지에서 내뺀것처럼 말하는데 어떻게 그럴수야 있겠습니까? 저는 물론 음전동무나 금실동무, 또 아까 말이 난 분임동무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자 회의참가자들의 얼굴엔 걱정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고 리억겸이는 그러면 그렇겠지 하는 표정으로 틀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제가 잘못한것은 그 동무들을 너무 끼고돌았다거나 신을 바꾸어주었다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을 따뜻이 돌보고 깨우쳐서 한사람이라도 더 혁명의 품에 품어주라고 간곡히 가르쳐주시던 장군님의 말씀을 제가 아직 실속있게 받들지 못한 그것입니다. 사실 그 아주머니들이나 분임동무가 얼마나 쓰린 가슴을 안고 괴로와하는지 저는 그것을 깊이 리해하고 그 동무들과의 사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녀자들이 왜 가슴이 쓰리고 괴로와하는가? 그것이 혁명에 대해서 반감을 품었다는 소리가 아니고 뭐요?》

리억겸이 자기의 생각이 빗나간것을 깨닫자 다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들은체도 않고 조용히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생각들해보십시오. 그래 남편을 잃은 녀성들이 어떻게 괴로와하지 않을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그들을 의심하고 따돌린다면 누가 이 근거지에 정을 붙일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같은 녀성의 몸으로서 그들의 심정을 제일 잘 리해할수 있고 도와주어야 할 처지에 있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저는 금실동무가 없어졌을 때 장군님의 말씀을 생각했어요. 장군님께서 이 술기막골로 혁명군중을 떠나보내시면서 혹시 도중에 고생이라도 할가봐 몸소 전투를 조직하시여 식량을 해결하여주시고 그들을 따뜻이 돌봐야 한다고 일부러 많은 일군들을 파견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을 호위할 한개 소대의 유격대까지 보내주시지 않았어요. 그러나 저는 여기 와서 파종이 바쁘다, 전투가 바쁘다 하면서 돌아가기만 했지 괴로와하는 사람들을 돌볼 생각을 못했어요.》

김정숙동지의 말씀은 너무나 절절하여 이 일에 자기는 별로 관계가 없는것처럼 생각하고 앉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가슴이 찔리여 고개를 떨구었다.

회의의 분위기가 자기에게 불리해진다는것을 느낀 리억겸은 악을 쓰기 시작하였다.

《동무, 수를 피우지 말고 사실을 말하란말이요, 사실을!》

《정 사실을 말하라면 말합시다. 제 생각엔 그래요. 여기 근거지에서 혹시 정을 붙이지 못하거나 동요를 일으키게 만드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고픔이나 원쑤들의 <토벌>때문이 아니라 제꺽하면 사람을 의심하고 따돌리자는 사람들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김정숙동지의 말씀은 여전히 조용하시였다. 그러나 리억겸은 그이의 그 맑고 서늘한 눈길에 질리여 허둥거렸다.

《그래 <민생단>의 녀편네가 적들의 품으로 뛰였는데 그걸 미리 경각성있게 대하는것이 잘못이란말이요?》

《부회장동무, 그 아주머니들이 적들의 품으로 뛰였다는것은 아무 근거도 없지 않아요? 그리고 부회장동무가 의심하는게 어디 그 사람들뿐입니까? 오늘 회의에서 제가 문제로 된것은 문제랄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부회장동무가 또 누구를 의심할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아니 이 동무가? 그래 동무가 여기서 책임이 없단말인가?》

리억겸은 벌떡 일어나서 책상을 쾅쾅 두들겼다.

《부회장동무, 당신이 오늘저녁에 별안간 이 문제를 들고나온 의도가 무어요? 그게나 똑똑히 밝히오.》

한기천이가 김정숙동지의 말씀을 듣고보니 자기에 대해 돌아가던 뒤소리생각이 나서 격분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동무는 왜 중뿔나게 자꾸 들고일어나서 비호를 하는가? 동무도 뒤가 켕기는데가 있는게 아니요?》

리억겸이와 한기천이가 피대를 돋구기 시작하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리없이 앉으시였다. 가뜩이나 지친 몸에 충격이 심하여 오랜 시간 몸을 가누고 서있기가 힘드시였다.

《모두 앉지들 못하겠소!》

마침내 양기훈이 다시 호령을 했다.

《부회장동무는 감정에 흐르고있소.》

양기훈은 엄한 얼굴을 하며 리억겸을 쏘아보았다.

《아, 무슨 그런 말씀을···》

《잠자코 듣소. 일을 신중히 연구해보지도 않고 사람을 일에서 뗀다 어쩐다 하는것부터가 그렇소. 일군이라는게 말을 해도 짐작을 해서 해야 되우.

식량부장동무가 말했지만 정숙동무는 우리 근거지에 와서 밤잠을 자지 않고 뛰였소. 근거지를 위해서 해놓은 일이 크오. 일체 그런 말은 거두는게 좋겠소.》

그러나 리억겸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더니 혁명에선 그렇게 사정을 보는식으로 해서는 안되며 과오가 있는 한에는 문제를 세우고 규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과오를 보아선 일체의 사업에서 뗄뿐만아니라 우에 문제를 제기해서 다른 지역으로 조동시켜야 한다고까지 력설했다.

《그만하라는데두···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줄 알아야지.》

양기훈이 또 소리쳤다. 한기천은 비수같은 눈길로 리억겸의 시뻘건 얼굴을 쏘아보았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떨리는 가슴을 붙안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정신적타격이 너무도 크시였다. 작식대에 걸어나갈 기맥도 없고 어데 가서 조용히 누웠으면싶은 생각도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발길 가는대로 걸어 국금이네 집으로 오시였다. 그저 땅이 풍덩풍덩 꺼져들어가는것만 같으시였다.

국금이네 집 어둑컴컴한 뜨락으로 들어서시여 문을 잡아당겨보니 문이란 문은 죄다 걸려있었다. 웃방문에 쇠가 잠겨있었다. 영금이는 소선대에 경비를 나가고 국금이는 공청원들속에 섞여 전방에 나가있으니 집이 비여있을밖에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처마그늘이 어두운 토방우에 걸터앉으시였다.

그 어떤 바람사나운 낭벼랑에 나앉은것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회의는 그럭저럭 지나갔으나 리억겸이 그러고 주저앉아버릴 위인이 아니였다. 이제 또 어느 컴컴한 구석에서 흉계를 꾸밀것인가. 리억겸이 근거지를 틀어쥐고 어떻게 해보자는 그 검은 배속이 이제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고볼 때 더욱 근거지와 근거지사람들을 지켜야 되겠다는 결의가 굳어지는 한편 몹시 초조해지기도 하시였다. 능지영으로 간 음전이가 이 시각이라도 훌 날아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가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차거운 밤기운이 엄습해와서 몸을 옹송그리고 앉으시였다. 작식대에 내버리고온 겹저고리생각도 나시였다. 그저 급히 오란다니 적삼 하나만 달롱하게 입은채 오시였다.

토방우에 앉아있으려니 몸이 떨리기도 하려니와 온 뼈마디가 시리기도 하시였다.

이렇게 정신이 복잡하니 몸도 그 낌새를 아는가. 앉아있기가 힘들만큼 오한이 나고 몸살이 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쑤시는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팔을 주무르기도 하시였다.

《토방에 앉은게 누구야?》

거의 새벽녘이 되였을 때 사립문밖에서 영금이의 호추알같은 소리가 났다.

《영금아, 내다.》

《내가 누구야?》

《언니를 모르겠니?》

《어마나···》

그제야 영금이는 퉁탕거리며 달려들어왔다.

《언니, 왜 여기 와 앉아있어요? 난 누가 앉아있는가 해서 울바자구멍으로 엿보았어요.》

영금이는 두팔을 붙잡고 흔들어댄다.

몸이 떨리던판에 영금이의 체온이 와닿는것만으로도 후끈해지는것 같으시였다.

《그런데 언니, 여긴 어떻게 왔어요? 작식대는 안하구···》

《몸이 아파서 지나가는 길에 좀 쉬자구···》

《애개,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

영금이는 제꺽 제 손바닥을 언니의 이마에 대본다. 그러더니 불처럼 뜨겁다고 웨치면서 달려가 자물쇠를 열었다.

《언니, 어서 들어가요. 이 맹꽁이가 경비 끝내고 곧장 집으로 오겠는걸··· 언니가 앓는줄도 모르고···》

영금이는 언니의 허리를 휘여안아 닁큼 들다싶이해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부리나케 방가운데 포대기를 폈다.

《언니, 여기 눠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앓아요? 어서 눠요.》

영금이는 떠들며 달려들어 언니를 눕히기까지 한다.

《너의 언닌 들어오지 않니?》

《언닌 요새 장창 전방에서 밤을 새요···》

영금이는 구들이 차다고 부엌으로 내려가 불을 때느라고 또 한참 수선을 떤다.

아무것도 모르고 언니가 아파한다고만 뛰는 영금이가 고맙고 가슴아프기도 하시였다. 세상일이 저렇게 영금이 맘속같이 깨끗하고 정갈하고 말쑥했으면 얼마나 좋을가.

영금이는 반디불만한 등잔불을 찬장우에 켜놓고 부엌에서 무얼 하는지 달그락거리며 돌아간다. 또 그 아버지를 생각하는 군노래까지 부른다. 새벽에 들어와서도 눈을 안붙이고 무얼 어쩌자고 저리도 가벼이 뛰는가. 그 나쁜놈 조택구의 수작질에 속을 옹쳐 물고 사람을 애먹이던 일도 다 옛말같이 된것 같다. 세상에 그런 원쑤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얼마후 영금이는 벌써 조반을 다 지어놓고 인제 꼭 한시간만 자겠노라고 하면서 김정숙동지의 곁에 올라와 착 붙어 눕는다. 그리고는 한손바닥을 열이 오른 김정숙동지의 이마우에 살짝 붙이고 이어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영금이의 단발머리를 쓸어주시였다.

잠들지 못하는 그이의 머리에는 줄곧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이 드시였다. 리억겸이 저놈은 무슨놈인가. 리억겸의 얼굴이 눈앞에 시커멓게 떠올랐다. 눈을 좀 붙이자고 하면 무엇이 꽉 누르는것 같은 착각도 드신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영금이가 마을로 나간 뒤 국금이가 들어섰다.

《언니!》

그는 김정숙동지의 두손목을 붙잡으며 말도 없이 울었다.

《왜 울어요?》

《언닌 무슨 일을 잘못했게 비판을 받았어요? 난 인제 들어오다가 들은 말이 있어요.》

《누가 그래요?》

《누군 누구겠어요. 벌써 동네가 짜 하는데···》

《우지 말아요.》

그래도 국금이는 김정숙동지의 두손목을 꽉꽉 쥐였다놓았다 하며 볼우로 눈물을 흘리였다.

회의를 같이 한 사람이 많으니 소문이 퍼질수는 있겠지만 이게 리억겸이 퍼뜨리는 소문은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몸이 떨리고 가슴이 조이시였다. 점점 더 자신을 옴짝 못하게 가두어놓는 칙칙한 담벽이 좁혀들어오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한참 울고난 국금이는 훌쩍 밖으로 나갔다. 밥을 먹으러 들어왔을텐데 밥은 생각도 없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던 국금이는 이어 안마당으로 도로 들어왔다. 뒤따라 작식대의 을손에미와 장보배가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모두 숨이 차게 달려온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머리를 들고 일어나앉으시였다. 장보배와 을손에미는 눈이 커져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근거지누나, 이게 어찌 된 일이요? 구정부 부회장이 뭐라고 했다는게 사실은 사실이요?》

을손에미가 김정숙동지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벌써 작식대에까지 무슨 소문이 퍼져나간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대답을 안하시자 그는 울었다. 장보배도 울고 국금이도 울었다. 너무 덮어쳐서 울음을 터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더욱 무어라고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공연히 가슴아픈 정이 솟아올라 자신께서도 눈물이 글썽해져서 내다보시였다.

밖에 있는 녀자들 셋은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더욱 흐느껴울었다. 일에서 뗀다 어쩐다는 말까지 나왔다니 아무러면 근거지누나한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는가, 듣는 사람들이 더 분하였다.

땀과 눈물로 씨름하며 이렇게 몸살이 나도록 애쓰던 그 수고를 몰라보다니. 깊은 리치는 그만두고 사람의 도리를 가지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그런데 근거지누나는 그런 억울한 말을 듣고도 외딴집 방안에 홀로 누워있다. 살핏하게 축이 가고 입술에 물집이 엉켜붙은 그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웃음짓는 그 정상은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험한 생활속에서 다지워진 아낙네들의 가슴도 뭉클하니 젖어들었다.

《근거지누나, 그까짓 수작을 개차반으로 여기라구.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우린 근거지누나를 근거지의 어머니같이 알우. 장맛이야 첨에 한번 묻혀보면 알지. 사람을 그렇게도 모를가? 근거지누나 일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그래 근거지누나만치 근거지일을 놓고 안타깝게 눈물을 쥐여짜며 뛰였답디까? 굶는 사람들 붙안고 앉아 죽숟갈 떠넣어주며 살아나라는 소리 한마디 했답디까? 한끼 못먹어도 근거지 농사 잘 짓자고 씨앗 타가는 아낙네들 붙들고 앉아 하소연 한마디 했답디까?》

《어이구, 하소연은커녕 제가 목대를 뻗치고 씨앗 갖다먹어버리라고 퍼주지나 말았어두···》

을손에미의 말을 장보배가 튕겨주었다.

《퍼준 죄는 퍼준 죄대로 이야기하자구. 그 죄만 있게? 아낙네는 혁명 못한다고 얕본 죄는 어떻거구. 그리고 제가 조택구같은 원쑤놈을 잡아내기나 했답데?》

《흥, 잡아내기는커녕 잡아가둔걸 도루 내놓자고나 말았어두···》

장보배가 또 북을 쳤다.

《그런데 근거지누나를 무엇때문에 비판해요? 우리 심정을 그렇게도 알아주고 설음많은 아낙네일수록 더 따뜻한 정으로 품에 다가끼고 한걸음을 걸어도 같이 걷자하는 근거지누나를···

이 말방납질 드세차던년도 근거지누나가 사람을 만들어주었어. 남 다 가재미눈으로 보는 능지영동서도 품에 안아 일어나게 만들구 눈물바다에 빠져있던 이 집 귀염둥이 형제도 오자바람으로 들어일궈냈어. 내 생각엔 이렇게 하는게 나라찾는 일이라구··· 제발로 걸어가는것들이야 한마디 꿱 소리나 쳐주면 걸어가겠지만 병들어 제발로 못걸어가는것들을 하나하나 안아일궈 걷게 해서 큰 힘덩어리에 보태면 그게 다 우리 겨레를 들어일구는거구 나라찾는 일이라구···》

국금이가 을손에미의 잔등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었다. 헤덤비며 정말 말방납질 드세차던 아낙네가 어쩜 이렇게도 제 맘속을 콕콕 찌르는 소리를 다 해줄가고 고마와 잔등에 볼을 문대며 우는것이다.

을손에미도 국금이를 돌려끼고 머리를 쓸어주며 함께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속을 알아주는 아낙네들의 말을 들으니 눈에 고이는 눈물을 막을길이 없으시였다.

《아주머니들, 정말 고마와요. 그런데 회의에서 이야기된걸 자꾸 말하면 안돼요. 회의에서 다 이야기될것은 됐으니 걱정들말아요. 그리구 작식대일이 바쁘겠는데 제 걱정은 말고 나가들 보세요.》

《우리도 근거지사람들인데 왜 말을 못하겠수. 이 근거지가 리억겸이의 호령질때문에 뻗쳐낸답디까? 사실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랬다고 그래 근거지누나가 없어보우. 이 근거지가 무엇이 되나···》

을손에미와 장보배가 목소리를 합쳐서 웨쳤다. 장보배가 더 얼굴이 새파래서 총알같은 소리를 했다,

《이제는 됐어요, 그만들하세요. 나도 인차 뒤따라 나갈테니 어서 가보세요. 찬감이 동났겠는데 빨리 무엇이든 변통하도록 해야겠어요. 되골 오산집에 된장이 좀 있다고 했는데 거기 누가 갔다와야 할것 같애요. 작식대에 근심이 없는게 제 마음이 편안해지는것이예요. 여긴 무엇때문에 찾아들왔어요. 우리에겐 하늘에서 해가 비치듯 위대하신 장군님의 밝은 빛발이 가슴속에 비치고있어요.》

《언니!》

국금이가 눈물 흐르는 얼굴을 쳐들며 웨치였다.

언니의 얼굴에 어린 도고한 빛과 숭엄한 기상이 제 가슴에 힘을 주어 기쁘고 기쁘다는것이였다. 을손에미와 장보배도 그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들이 후우 열렸다.

모두들 눈물을 씻으며 밀려나갔다. 장보배는 인제 작식대에 와서 흥야라 붕야라 하는놈이 있으면 펄펄 끓는 물로 미역을 감기겠다고 벼르면서 나갔다. 그가 만만치 않다는것도 처음 드러나는것 같았다. 국금이도 그들과 함께 밀려나갔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도 머리를 쓰다듬어넘기며 일어서시였다. 앓아도 작식대에 나가서 앓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같아지시였다. 밖으로 나온 김정숙동지께서는 홑적삼바람으로 휘청거려지는 몸을 가누며 달음박질하듯 걸으시였다. 작식대골짜기에 들어서시니 끼니를 끓이던 아낙네들이 와 달려와서 둘러쌌다.

복녀는 제가 와서 입빠른 소리를 해서 금실이가 달아나고 금실이 달아난 뒤소리를 죄도 없는 정숙동무가 듣는다고 자기 무르팍을 두드리며 울었다.

모두 기운이 펄펄해서 치마자락을 휘두르며 돌아갔다. 밥을 해안치고 불을 때고 비탈에서 나무를 안아 내려오고 성수가 나서 뛰였다. 장보배는 큰버치를 이고 개울가로 비살치듯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