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3

 

제 5 장

3

 

음전이가 떠나간 뒤 작식대원들은 음전이가 어데 갔는지를 몰라 수군수군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끓는걸 보고도 모르는척하시였다. 어떤 아낙네들은 김정숙동지를 보고 음전이가 어데 갔느냐고 묻기도 했다.

《아마 볼일이 있어서 어데 떠난것 같애요.》

《그래 근거지누나보고도 아무 소리가 없이 떠났어요?》

《글쎄 어데 좀 갔다와야겠다는 소리는 있었어요.》

《어이구 그럼 말도 똑똑히 하지 않구 떠나갔군. 어쩜 그렇게 야밤도주하듯했을가?》

아낙네들은 아무래도 모를 일이라고 쑥덕공론들을 벌렸다. 그런데 어느날엔 능수리토배기아낙네가 마을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리억겸이 자기를 붙들고 음전이가 어디 갔는지 알고있느냐고 묻더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모른다고 하니까 두눈이 거칠해서 《거 김정숙이는 아무 근심도 안하고있어?》하고 소리치더라는것이였다.

《아무래도 근거지누나를 주목하고 밸통을 쓰는것 같애요.》

《근거지누나한테 무슨 죄가 있게 밸통을 써?》

《그러게말이지···》

아낙네들은 더욱 수군거리며 끓었다.

그러면서 근심에 잠겨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음전이가 떠나간 며칠후였다. 작식대골짜기에는 지난해 가을 김정숙동지와 함께 능지영에 가있던 복녀가 나타났다.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보퉁이 하나를 든 큰 처녀가 뛰여드는 길로 김정숙동지를 부둥켜잡고 큰주먹으로 어깨를 마구 두드려댔다.

《어떻게 여길 찾아왔어요?》

《아이구, 정숙동무가 먼저 와있구만. 삼도만에서 또 상촌으로 갔다기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상촌에 가서는 또 얼마나 고생을 했을가?》

복녀는 또 김정숙동지의 어깨를 때렸다.

《내가 무슨 고생을 했겠어요. 복녀동무가 혼자 찾아오느라고 정말 고생했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의 잔등을 쓸어주며 말씀하시였다. 복녀와 함께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힌 고간에 밥을 나르던 능지영의 나날이 가슴뜨겁게 회상되시였다. 복녀는 한참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그러면서 또 부르짖었다.

《난 지난달 하순 능지영도 해산될것 같다고 하면서 조직에서 이리로 가라고 하기에 대흥진쪽을 빠지다가 죽을번했어요. 혼자 길을 잘못들어서 길섶에서도 자고 밀림속을 헤매며 울기도 했어요.》

복녀가 너무 설음이 터져 우는바람에 밥짓는 아낙네들도 모두 경황없이 일손을 놓고일어섰다. 상촌에서 온 장보배, 능수리의 본토배기아낙네는 눈물이 다 글썽해졌다. 을손에미는 혀로 떡떡 소리만 내였다. 복녀는 금실이를 붙잡고도 한참 설음을 쏟아놓았다.

《그 글쎄 정숙동무가 떠난 다음 나두 희섭선생이랑 같이 능지영에서 나쁜놈들과 싸웠어요. 그 선생이 주먹 휘두를 때 나두 주먹을 휘둘렀어요. 그 선생이 언니 얘기도 했어요.》

《뭐라구?》

금실이는 복녀를 부둥켜안고 서서 그가 남편의 이야기를 떼기 바쁘게 눈이 둥그래지며 물었다.

《뭐라겠어요? 어데 가서 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죠. 이렇게 잘 싸우고있는 언닐 글쎄···》

《그래 그 량반은 잘 있어?》

금실이는 얼굴이 새파래서 거듭 총알같은 소리로 묻는다.

《잘 있지 않구··· 그 글쎄 밤낮 주먹을 휘두르며 연설이라우···》

《연설하구두 붙잡히지 않았어?》

《붙잡히긴···》

금실이도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복녀를 우지 말라고 달래였다. 그는 복녀를 먹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밥가마를 부시였다. 복녀가 설음이 터져 우는것이야 어찌 됐던 그 설음속에서도 남편의 소식을 한마디 얻어들었으니 마음이 흡족했다. 당장 몸이 둥둥 나는것 같아졌다.

이날저녁 복녀는 흐느끼면서도 밥 한그릇을 다 먹었다. 절반 굶으며 뛰여돌아다녔노라는것이였다. 밥숟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 그 상촌중대의 2소대가 여기 와있어요?》

밥을 먹고 나앉은 복녀는 김정숙동지께 볼이 부은 소리로 물었다. 설음이 터지는것도 그 까닭인것 같은데 그래도 오자 인차 물을 말을 이제야 묻는다.

《와있어요. 천천히 만나보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무룩이 웃으며 대꾸해주시였다. 대걸이를 만나보라는 말이다.

《어디 보자구. 나보기 싫어서 거짓말하고는 전 살짝 빠져서 이리로 오구···》

《남듣는데서 그렇게 험구를 하지 말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를 달래시였다.

이날밤 복녀는 아낙네들속에서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붙잡고 잤다. 피곤에 몰려 두다리를 탕탕 차며 잤다.

복녀가 온뒤 작식대는 더욱 흥성댔다.

온 골짜기에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썩했다. 애기엄마는 인젠 애기를 아예 두껍바위밑에 앉혀놓고 뛰였다. 아이는 포대기로 또아리를 튼속에 앉아 아낙네들이 뜯어다주는 솔방울, 나리꽃, 가둑나무잎따위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았다. 아낙네들은 일을 하다간 연방 두껍바위앞으로 달려와서는 손바닥을 딱딱 쳐주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손이 너무 많은것 같아 더러는 떼여 검산으로 올라가 돌을 나르게도 하시였다. 금실이는 돌도 잘 날랐다. 펄펄 날았다. 을손에미와 경쟁이 붙었는데 둘이는 망돌 두개를 겹쳐놓은것 같은 큰돌을 이고도 서로 앞서겠다고 가파로운데를 힝하니 치달아올라선 전호로 달리군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맘이 흐뭇하시였다. 싸움속에서 녀성들의 전투대오가 억세게 태여나는것 같아 몹시도 기쁘시였다. 바로 이 힘을 이끌고나가며 이 힘속에서 총을 메고 혈전장으로 나갈 무장대오도 꾸려내야 한다. 그 싹을 가꾸어올려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 간곡하게 들려주시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울렁거리며 뛰기도 하시였다.

《꼭 녀성혁명화의 앞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녀성들이라고 총 한자루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총을 못들겠습니까? 총을 들고 싸우게도 만들고 조직을 꾸려가지고 적후에서 싸우게도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녀성이 다 들고일어나 싸움에 참가한다면 우리의 힘이 얼마나 커지고 강해지겠습니까? 꼭 이 문제를 명심해야겠습니다.》

우렁우렁하신 목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들리는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뜨거운 마음으로 장군님을 그리시였다. 눈엔 이슬이 맺히시였다.

어느날 밤이였다. 이날밤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삼도만의 감격을 눈앞에 그려보며 개울가에 앉아 도라지를 찢으시였다. 그런데 복녀가 곁으로 와서 저쪽 숲으로 가자고 했다.

《어째서 그래요?》

《할 말이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를 따라 개울가 숲속으로 올라가시였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무슨 일인데요?》

《사실은 희섭선생이 잘못됐어요. 오는길로 금실언니에게 이야기할수가 없어서 살아있는것처럼 말했는데 계속 모르고있게 할수야 없지 않아요?》

《아니 그놈들한테 잘못되였단말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차올라 되물으시였다.

《글쎄 저 김기도패들이 정숙동무가 삼도만으로 간 뒤 잡아가두질 않았겠어요. 불러다놓고 무슨 론쟁을 하다가 저의 졸개들을 시켜 묶었대요. 뭐 우경투항주의패라는 감투를 씌웠다나? 그런데 잡힌 이튿날 이어 끌어내다 총살하지 않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온몸이 사시나무떨리듯 하시였다. 대체로 짐작이 가시였다.

놈들의 귀에도 다홍왜회의의 소식이 들어갔을테니까 저들의 죄상을 증언할 인물을 없애느라고 부랴부랴 그런 짓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글쎄 숱한 사람과 함께 끌어내다 세우고 쏘아죽였는데 희섭선생은 총알에 맞아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내달아가서 총쥔놈의 배허벅을 차서 벼랑으로 내려굴렸다지 않아요. 그리고는 자기도 비틀비틀하며 벼랑으로 떨어져내리구··· 벼랑아래엔 강물이 흘러가는데 물이 깊대요. 그날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섭선생은 강물에 떨어져들어가서도 룡처럼 파도를 일구고 돌아가며 먼저 떨어져내려간놈의 대가리를 거머쥐고 이놈 이놈 소리를 질렀다지 않아요. 그래서 강물이 한참이나 솟구쳐오르다가 잠잠해졌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한복판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복녀의 소리에 대꾸도 못하고 자꾸 풀잎만 뜯어던지시였다. 두껍바위앞에서 장보배가 빨리 저녁끼니를 먹자고 소리친다.

작식대원들의 저녁끼니란 언제나 이튿날 아침끼니준비까지 다 해놓고나서야 먹기때문에 늘 밤중이 되였다.

《어떻게 할가? 아무때든 알아야 할 일인데 금실언니한테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직 말을 내지 마세요. 싸움이 한창인 때 그런 소식을 전하면 힘이 꺾이지 않겠어요.》

《그렇긴 해두···》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복녀도 따라 일어섰다.

우등불앞에선 작식대원들의 식사가 벌어졌다. 김이 풍기는 죽버주기에서 죽을 한사발씩 떠들고 앉아 훌훌 불며 먹었다. 그래도 송기를 약간 넣은 낟알죽이니 좋았다. 금실이는 남의 젖먹이어린애까지 제 무르팍우에 올려놓고 앉아 둥기둥기 얼려추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는 애입에 죽숟가락을 대주며 어서 먹으라고 목을 추면서 꿀꺽 소리를 내보이기도 했다.

《언니, 애는 날 줘요.》

복녀가 얼른 힘센 팔뚝으로 애를 빼앗아갔다. 제 눈섭우에 드리운 비극도 모르고 앉아 아이와 재롱을 부리는 금실이가 마음에 씌여서 그러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충 저녁을 끝내시였다. 그리고는 빈그릇을 한함지 담아들고 물가로 가서 부시였다. 고동하물가에서 차응도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타격이 크시였다. 차응도도 그랬지만 희섭이도 그 어데 그런 불행이 끼여들 틈바구니도 없는 억센 사람인데 불행이 끼여든것만 같으시였다. 리론에는 리론으로 완력에는 완력으로라는 철벽같은 심장으로 윽윽해왔는데 피를 흘리며 능지영 어느 낭떠러지기에서 굴러나 물속에서 룡트림을 하다가 잠잠해지고말았다니 통분한 일이였다. 얼른 가슴에 와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시였다. 지금도 부암 어디에서든 주먹을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고있을것 같기도 하고 상촌 어디에서든 군중을 모여세우고 적이 밀려드니 모두 떨쳐일어나라고 기염을 올리고있을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저 그 우렁우렁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살아서 날아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릇을 부시다말고 으승그린 검산등어리우로 비쳐오는 갈구랑달을 구슬픈 심정으로 바라보시였다.

이튿날엔 또 고동하 건너편의 적들이 공격을 가해왔다. 검산을 들었다놓는것 같은 총성과 포성이 울리였다. 비행기도 날아넘어왔다. 작식대에선 아침끼니는 그래도 새벽 일찌기 날라내가서 힘들지 않게 치르었는데 점심끼니는 매우 어려운 정황속에서 날라내가야 했다. 놈들의 공격이 좀 뜸해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한낮이 훨씬 기운 때에 주먹밥을 한임씩 해이고 전호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떠나고보니 오히려 더 공방전이 치렬해진 때 나선것 같았다. 검산등어리로 올라갈수록 총포소리가 더욱 요란했다. 비행기도 련속 릉선을 핥으며 날아넘어온다. 위협인지 접전구역인 여기에다도 폭탄을 던진다. 총소리도 비행기의 폭음도 근거지안에서 듣던 소리와는 달랐다. 여기선 그 모든 음향이 살을 찢는것 같았다. 그저 귀속이 내내 웅웅거리며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작식대원들을 이끌고 재빨리 검산 뒤쪽 비탈을 춰오르시였다. 초연냄새가 확확 풍겨왔다. 그이께서는 초조한 생각이 드시였다. 이럴줄 알았다면 벌써 점심을 날라가야 할걸 그랬다. 군사부장 리범진이 와서 전투가 좀 뜸해진 순간을 기다리라고 하기에 그 말을 듣고있다가 끼니때를 넘겼다.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시장들 할가?

《빨리들 걷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에 대고 소리치시였다.

《금실언니는 저쪽 골짜기를 살펴보며 걸어요. 난 이쪽을 살필테니까···》

《언제 살필새가 있어요. 여긴 우리 구역이기도 한데···》

《그래도 정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겠어요? 앞에 부닥치는 새 정황을 알아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따르는 금실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리고는 이쪽저쪽 골짜기들을 살피며 나는듯이 올라가셨다. 별안간 탄환스치는 소리가 났다. 얼른 내다보니 나무사이로 고동하의 푸른 물빛이 내려다보이고 그 이쪽 돌출부쪽에서 대원들 몇명이 전호에 엎드려 사격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걸음 뒤로 물러서며 모두들 웅뎅이로 떨어지라고 소리치시였다. 그리고는 자신께서도 웅뎅이쪽으로 떨어지시였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탄알이 련속 좌우에서 픽픽 소리를 내며 땅에 박혔다.

얼마후에야 모두 검산등어리우로 춰올라 돌출부쪽으로 내달아갔다. 돌출부 전호에 있던 리범진이 밥함지들을 내려놓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듣지 않고 작식대아낙네들에게 각 전호로 빨리들 뛰라고 이르시였다. 여기서 이 전호 저 전호로 흩어져가게 되여있었다.

《금실언니는 나하구 좀 힘든데로 가요.》

《그러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데리고 빠져나가기 힘든 오른편 물목쪽 전호로 향하시였다. 리범진이 그리로는 못간다고 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들은척 않고 금실이를 데리고 숲을 헤치며 걸어나가시였다. 리범진은 혀를 찼다. 당초에 말을 못할 녀자들이라는거다. 그는 대원들에게 물목쪽으로 가는 돌비탈로 놈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는가를 주목하라고 명령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구부러진 비탈길로 치달아오르시였다. 가슴속으로는 불같은 생각이 찌륵찌륵 흐르시였다. 하나의 녀성무장대오를 불길속에서 꾸려내자고 하는데 제먼저 불길속에 뛰여들지 않고 그 대오를 어떻게 꾸려낼수 있겠는가.

《언니 조심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에게 아픈 심정으로 타이르시였다. 심정이 아픈 그만치 바로 이 희섭이의 사랑하는 안해를 그 첫 대오에 세우고 어깨를 겯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시였다.

《념려말라구.》

《조금 나가선 석벽을 통과해야 해요.》

《나두 안다우.》

《언니 사람이란 굳세야 해요. 뜻밖에 타격이 가해져도 넘어지지 말아야 해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혁명을 하려면 그런걸 각오해야 한다는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을 철철 흘리시였다. 우거진 다래넝쿨밑으로 머리우에 인 밥함지를 이리저리 뽑아내며 빠져나가시였다. 새겨들으라고 던진 말이였으나 금실이는 그렇게 새겨듣는것 같지 못했다. 미리 마음을 단단히 다져두도록 해야겠다고 왼심을 쓰는 그이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와 함께 몸을 로출시키며 돌비탈로 들어서시였다. 웃물목 전호로 가려면 이 돌비탈을 꿰지르고 나가는 길밖엔 없었다. 새파란 돌이 알른알른했다. 발이 미끄러졌다.

《언니 조심해요. 고무신을 벗는게 좋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앞세우고 나가며 자신이 먼저 고무신을 벗으시였다.

《언니, 난 고무신을 벗어들었어요. 내가 밥함지를 붙들어줄게 언니도 어서 벗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의 밥함지 쥔 손에 고무신도 걷잡아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금실이의 밥함지를 붙들어주시였다.

《인제 얼른 한짝씩 벗어들어요. 옳지··· 또 한짝 마저··· 덤비질 마세요.》

《배라먹을것 고무신이라는게 작아서 이러질 않아!》

금실이는 온 얼굴에서 땀이 주륵주륵 미끄러져내리며 발뒤축에 붙어 벗겨지지 않는 고무신을 뒤손질로 벗겨냈다.

《애구 땀나라, 인제 날것 같다.》

금실이는 부르짖으며 맨발로 돌비탈 홈탁을 골라디디며 가분가분 달리였다. 다행히 강건너놈들의 사격이 멎은 순간이라 이 위험한델 무사히 내달아갈수 있었다.

바로 돌비탈끝 전호에 대걸이의 소대가 진을 치고있었다. 밥함지들이 날아들자 전호속에선 환성이 터져올랐다. 모두 달려나와 밥함지들을 받아내렸다.

《수고들 했습니다. 이 전호로 오자면 석벽에 들어서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벙어리 꿀먹은것 같은 순간을 용케 택했습니다.》

《점심이 늦어서 미안해요. 얼마나 시장들 하세요!》

《배가 고파야 밥이 꿀같이 달답니다.》

대원들이 이러며 와그르르 웃었다. 모두 흥성거렸다. 총을 겨누고 엎드려있는 대원들은 구성진 가락으로 《내 사랑 고동하야》를 불렀다. 그들은 앞에 흐르는 고동하물이 떼지어 밀려드는 적을 총 몇방 갈기면 집어삼켜준다고 이런 노래까지 지어서 불렀다. 부상자들도 여러명 났는데 그들도 신바람이 났다. 모두 피자박이 된 붕대를 동이고 전호바닥에 누워 시뻘건 눈으로 주위를 빙빙 돌아보며 강건너편에 적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보이질 않네.》

《빌어먹을놈들, 해가 기우는데 뭘하고있어? 천당문이 열렸을 때 더 날려보내야 할텐데···》

《벌써 천당호적엔 숱한놈들의 이름이 올랐을거야. 무슨 긴지로니 모모다로니 하고말야.》

모두 누워서도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전호웃턱으로 뛰여올라가 가둑잎을 뜯어내려오셨다. 그리고는 가둑잎에 주먹밥을 담아서 나르시였다. 언제 모여앉아서 먹을새가 없는것이였다. 밥덩이를 노나주자 대원들이 순식간에 게눈감추듯하고는 연방 바가지로 물을 퍼왔다. 이 전호엔 샘물이 곁에 있어서 좋았다. 정신이 쩡 드는 물을 샘물에서 퍼다가 그대로 꿀떡꿀떡 마시였다.

점심이 끝난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대장 대걸이를 보고 총을 한자루 달라고 하시였다.

《아니 총은 해서 어쩔려고? 쌈까지 해주게?···》

《금실언니가 총쏘는 법을 좀 배우겠다고 하기에···》

《에구머니나 내가 언제 총쏘는걸 배우겠댔어?》

《언니두 배워야 해요. 쌈을 돕는 우리가 총을 못쏴서야 되겠어요.》

금실이는 얼굴을 싸고 외면하며 자꾸 웃었다. 대걸이는 로획한 총이 디글거리는 속에서 보총 한자루를 들고왔다. 탄알도 가져왔다.

《자, 련습을 했다가 한바탕 내려갈겨보시오. 여기서 적을 쏴갈기는것이란 콩닦아먹는 재미와도 같소.》

《언니, 어서 돌아앉아 총을 잡아요. 상촌에선 돌을 굴려서도 적을 얼마나 잡았어요. 적을 돌로 잡고있겠어요? 총으로 쏘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금실이를 돌려앉히고 총대를 쥐여주시였다. 그리고는 장탄하는 법, 묘준하는 법을 가르쳐주시였다. 대원들이 시선을 집중하는바람에 금실이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러느라고 김정숙동지께서 가르쳐주시는 소리를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전호턱에 와서 좌지를 정하고 눈아래 흘러가는 고동하의 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묘준련습을 할 때에야 눈빛이 정색해졌다.

《언니, 총을 쏘자면 담이 커야 해요. 왜 이렇게 떠세요?》

《고동하물을 내려다보니 떨리지 않어. 시퍼런 원쑤같은게···》

《호호호. 고동하물이 무슨 원쑤같겠어요. 한번 숨을 깊이 들이그었다가 후휴 내부세요. 그리고 어깨를 차분히 낮추며 주먹을 꾹 쥐여보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붙안다싶이하고 이래라저래라 가르쳐주시였다. 금실이는 차츰 맘이 담차졌다. 한방 아주 쏘아보겠다고 들먹거렸다.

《쏴봐요. 저기 저 강건너에 물푸레나무같은게 하나 서있지 않아요? 그걸 묘준하고 쏘세요. 옳지 총신을 약간 낮추고 단단히 틀어잡으세요. 인제 방아쇠를 당겨요.》

총소리가 울리였다. 뒤에서 대원들이 박수를 쳤다. 부상자들도 머리를 들고 일어나며 하느님이 재채기한다고 떠들었다.

금실이는 그까짓 롱말은 들은척도 않고 또 한방 땅 하고 갈기였다. 파릿한 량미간으로 땀방울이 두르르 구른다. 인젠 정말 원쑤를 잡아낼것 같은 푸른 불이 곱게 반짝이기만 하던 눈망울에서 펑끗거렸다. 그러나 고동하로 원쑤가 나타나지 않아 종시 원쑤와의 접전은 못해보았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데리고 석양이 비쳐내리는 검산 돌출부쪽으로 올라오셨다. 저녁끼니때문에 세월없이 적을 기다리고있을수는 없는것이였다.

《언니, 우린 앞으로 총을 메고 싸워야 해요.》

《싸우잖구, 능지영으로 간 량반이 주장한게 그게 아니였게, 주먹에는 주먹으로 해내야 한다구···》

금실이는 함빡 행복에 젖어서 중얼댔다.

그런데 이날밤 작식대 골짜기에선 금실이로 하여 큰 소동이 일어났다. 복녀가 아낙네들한테 말한 희섭이에 대한 소식이 금실이의 귀에까지 굴러들어갔던것이다.

《아니 뭐래요? 우리 량반이 어떻게 됐대요?》

금실이는 귀뜀해주는 능수리토배기아낙네를 쳐다보며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어이구 아직 모르고있었담? 능지영에서 온 체네동무가 바깥량반이 그렇게 됐다고 일러주던데···》

금실이는 당장 와들와들 떨며 복녀가 있는데로 달려갔다. 복녀는 지금 두껍바위앞에서 아낙네들과 함께 찬감을 손질하고있었다.

《복녀동무, 나 좀 봐요.》

금실이는 복녀를 아낙네들 뒤로 불러냈다.

《언니 왜 그래요?》

복녀는 치마에 젖은 손을 씻으며 물었다.

《바루 말하라구, 우리 집주인이 어떻게 됐다구?》

벌써 금실이는 낯빛이 사색이 되였다.

복녀의 팔뚝을 부둥켜잡은 손이 와들와들 떨었다.

《언니, 무슨 소릴 들었어요?》

《들었어, 말을 바루 해달라구.》

그래도 복녀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못하고 자꾸 치마에 팔뚝만 씻었다.

《말 좀 바루 하라구.》

《언니! 맘을 단단히 가져요. 희섭선생은 김기도놈들 손에 그만 잘못됐어요. 난 언니가 놀랠것 같아서··· 아니 언니 왜 이래요?》

복녀는 말을 하다말고 숨가쁜 소리를 질렀다. 금실이는 벌써 입을 앙다물고 두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언제 붙안을새도 없이 통나무 넘어지듯 풀밭에 나가군드러졌다.

《언니! 금실언니!》

복녀가 주저앉으며 금실이를 붙안아일으켰다. 그러나 금실이는 벌써 전신이 꼿꼿해졌다. 아낙네들이 달려왔다. 아우성이 일어났다.

《금실언니, 금실언니.》

복녀는 나무통같아진 금실이를 흔들어대며 불렀다.

이럴 때 마을에 들어가셨던 김정숙동지께서 골짜기로 오시였다.

《아니 왜들 이래요?》

《글쎄 상촌동서가···》

아낙네들은 다들 금실이를 상촌동서라고 했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철렁해져서 아낙네들을 헤치고 들어서시였다.

《내가 입이 빨랐어. 그런데 그 소리를 전한건 누가 전했어요. 누가 전했어요?》

복녀는 풀밭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금실이한테 입방아를 찧은 능수리아낙네는 제가 그 소리를 했노라는 말도 못하고 저편으로 쫓겨가 앉아 사시나무떨듯 떨기만 했다. 떠는 아낙네에게 을손에미가 무슨 입방아냐고 눈총을 쏘며 주먹질까지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떠들지 말라고 타이르며 쓰러진 금실이를 품에 우쩍 안아올리시였다. 그러나 안아낼수도 없었다. 온몸이 쇠장대같이 굳어졌다. 품에 안자니 내뻗친 다리가 굽혀들지 않고 이리 철썩 저리 철썩 뒤채기만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간신히 머리만 받들어안으시였다.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금실이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가슴팍을 문대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달빛받은 새파란 이마를 자꾸 쓸어넘겨주시였다.

한 아낙네가 더운물을 한바가지 떠들고 달려왔다. 속이 훈훈해지게 더운물이라도 먹여보겠다는거다. 가슴을 문대던 을손에미는 입을 비집었다. 그러나 입술만 비집히지 앙다문 이발은 어째낼수가 없었다.

《거기 숟가락 가져오라구. 숟가락치가 아니곤 안되겠어.》

을손에미가 소리를 질렀다. 한 아낙네가 숟가락을 들고 달려왔다. 모두 혼맹이가 빠져 한가락이면 되겠는걸 네다섯가락 들고 달려왔다. 숟가락을 내미는 손도 숟가락을 받는 손도 죄다 와들와들 떨었다. 을손에미는 힘을 쓰며 이발을 비집었다.

《자, 어서 물을 좀 넣으라구.》

물바가지를 든 아낙네가 바가지를 가져다대고 기울였다.

《쯧쯧, 입에 들어가지 않고 흘림메.》

《물이나 먹여가지고 피여날것 같지 못해요. 아무래도 의사 있는데로 업어가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니 륙신이 이렇게 된걸 업어내긴들 하겠소.》

《참말이야요. 다리를 까둥겨야 업지요.》

아낙네들이 업어내지 못한다고 떠들었다. 그런데 이때 금실이는 코와 입으로 큰숨을 푸르르 내불었다.

《에구머니나 살았구나!》

을손에미가 제 무르팍을 치며 환성을 올렸다. 금실이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였다. 금실이를 지켜보는 아낙네들은 저들자신이 막혔던 숨이라도 터진듯 금실이와 함께 가쁜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였다.

《언니, 정신이 들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나 좀 일어나겠어.》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무르팍을 잡아당기며 일어나려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일궈주시였다.

《미안해요.》

일어나앉은 금실이는 제법 미안하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러더니 휘친거리며 일어서 풀밭으로 걸어갔다. 아낙네들이 달려가며 붙들었다.

《일없어요.》

《왜 일없겠수. 방금 숨이 넘어갔던 사람이··· 이것 보라지 손이 고드름같잖수.》

아낙네들은 량옆에서 손까지 쥐고 걸었다. 모두 휘청거리며 걷는 그가 불쌍해서 눈물들을 머금었다.

《어데로 가자고 이래요?》

《저기 가서 좀 눕겠어요.》

아낙네들은 그를 두껍바위앞에 자리를 해놓은데로 부축해가지고 와서 눕혔다.

김정숙동지께서 곁에 앉아 들여다보시며 일없느냐고 물으시였다. 금실이는 일없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빛은 새파랬다. 피기를 말끔히 가셔냈다. 이날밤엔 아낙네들이 또 그렇게 숨이 막힐가봐 그를 둘러싸고 앉아 밤을 새웠다. 요행 아무일없이 밤을 넘겼다.

그런데 그다음날 새벽에 또 작식대 골짜기엔 소동이 일어났다.

금실이가 아주 종적을 감추어버린것이다. 아낙네들은 새벽이슬에 치마를 적시며 달아난 금실이를 찾아서 온 산을 덮었다.

《금실언니이-》

《상촌동서어-》

아무리 뒤지며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영영 어디론가 가버린게 틀림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산마루턱우에 다리를 펴고앉아 한숨을 지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