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제 4 장

2

 

도마뱀꼬리만 한 등잔불이 어룽어룽 춤춘다. 그 불빛을 받아안은 녀인들의 얼굴은 모두 누르컴컴했다. 누구나 다 제 살빛이란 있는것 같지 않다. 이제는 음전이도 일어나앉았다.

김정숙동지와 금실이가 뛴 보람이 있어서 아직 부기가 채 내리진 않았으나 음전이의 얼굴은 뽀얗게 고와지기도 했다. 분임이, 국금이, 금실이 다 왔다. 큰방집 을손에미까지도 건너와서 모두 둘러앉아 도라지를 벗기며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임이에게 한번 말을 해주자주자하다가 오늘밤엔 아예 불러다놓고 가슴아픈 소리를 해주는것이였다.

《글쎄 어쩜 그럴수가 있어요? 아동단지도원을 맡았다면 그게 큰 혁명과업인데 잘해야 할것 아니예요. 그런데 애들을 가르치는 일도, 먹이는 일도, 입히는 일도 다 밀어놓고 저 혼자 고민에만 빠져있으니 아동단이 어떻게 되겠어요? 난 정말 분임동무의 저렇게 상한 모습을 놓고 앉아 말하기가 가슴아프기도 해요. 그러나 말을 안하게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까놓은 도라지를 찢으며 이야기해나가시였다. 분임이는 살핏해진 손으로 수그린 이마를 떠받들고 앉았다. 자꾸 한숨만 짓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모습이 가긍하긴 했지만 더는 눈물과 애정만 가지고 가르칠 때는 아니라는걸 느끼시였다.

《애들이 산에 올라가 독초를 뜯어먹고 죽을번한 일이 그저 량식이 없어서 그렇게 됐겠어요? 지도원한텐 아무 책임이 없겠어요? 난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느냐구 분임동무한테 물어두 보구 이 문제에 대한 분임동무의 심정이 어떤가 알아두 보자구 우리 녀자들끼리 모여앉자고 했어요. 같은 녀자들끼리니 녀자들 심정을 알아도 주겠기에···》

《그럼, 아낙의 심정을 아낙들이 모를가?》

을손에미는 건너오라는 말도 안했는데 건너와 앉아 혀로 떡소리를 내며 한마디 받는다. 음전이는 입을 다물고앉아 분임이를 흘끔흘끔 바라본다. 그도 도라지를 깠다. 오늘도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를 데리고 영동에 가서 도라지와 더덕이를 캐오시였다. 그래서 음전이네 집에도 적잖은 도라지를 가져오셨다. 모두 그걸 까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판은 하지만 아이들이 쓰러진걸 띠여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분노, 그런 감정대로는 말하지 않으시였다. 그 노엽던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긴 하지만 그 감정이 낯에 드러나고 말소리에 드러날가봐 저어하며 마디마디 너그럽고 따뜻한 정이 흘러넘치게 눈물의 호소를 하시였다.

《글쎄 아동단지도원이라면 애들의 어머니와 같아야 하지 않겠어요? 한아이한아이 강보에 싼 어린애 다루듯 사랑을 부어가며 길러내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 애들이 의지가지 없는 애들처럼 되여 헤메고 돌아다니다가 그런 사고를 저질렀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아요. 그날 아침에도 끼니는 끼니대로 했다는데 애들을 골고루 노나먹이지 않고 그저 달라는대로 퍼주다나니 먹는 애는 먹구 못먹는 애는 못먹었다지 않아요. 세상에 이런 어머니가 어데 있겠어요? 전 이 일은 정말 가슴아파서 참을수가 없어요. 아이들문제, 전 이것이 우리 혁명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에 가슴이 저려서 견딜수 없어요. 그 배가 홀쪽하고 눈알이 반짝이는것들한테 혁명의 미래, 우리가 꿈으로만 그려보는 찬란한 그것이 있다는걸 왜 모르세요? 그런데 그것들이 배가 등가죽에 붙어 나가서 독풀을 뜯어먹어도 모르고 내버려두다니···

어떻게 이럴수 있겠어요?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하겠어요? 이 미래가 없다면말이예요. 사람을 보면 삥 둘러싸고 서서 아저씨, 누나 하며 숱한 말을 담고 쳐다보는 그 눈물이 가랑가랑 맺힌 눈들이 없다면 무엇때문에 혁명을 하겠어요?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지 않아요? 제 살점, 제 피방울을 떼주고싶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도라지대가리를 비틀어 껍질을 벗기며 이야기하시였다. 정작 말을 꺼내고보니 된매가 되시였다. 말하는 자신께서도 파죽땀을 쥐여짜는것 같은 신역을 겪으시였다.

분임이는 흐느껴울었다. 구들바닥에 엎어질것 같은 자세이기도 했다.

《분임언니에 대해서 나두 한마디 해야 되겠어요. 뭣때문에 자꾸 울어요? 나보고도 울지 않았어요? 살아낼것 같으냐고 하면서···》

국금이가 물묻은 손으로 자분치를 쓸어넘기며 말을 꺼냈다. 그러는것을 곁에 앉은 금실이가 김정숙동지 못보게 팔굽질을 했다. 모두매를 들지 말라는거다. 굶고 지쳐서 버들가지같이 된걸 너무 아프게 때려서 어떻게 하겠느냐는거다.

《언닌 또 왜 이래요? 난 참 언니에 대해서도 말하고싶어요.》

《남의 치마에 물 떨어져. 왜 이렇게 물덤벙술덤벙 덤벼?》

금실이는 도라지를 쥔 국금이의 손을 도라지그릇에 욱여박으며 지청구를 했다.

《안예요. 금실언니한테 기어쿠 말 좀 하겠어요.》

《어서 말하라구···》

금실이는 새파래졌다.

《하겠어요. 언닌 어째서 한숨이 그렇게도 많아요? 그저 늘 봐야 호호 한숨을 짓구··· 오늘도 영동에 가서 도라지 캔 시간보다 한숨 쉰 시간이 더 많지 않아요? 장참 고동하를 내려다보며 이 강물이 능지영까지 흘러가고 사람이 풀잎을 타고 물로 떠내려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겐? 이런 소리를 하면서 한숨을 짓지 않았어요. 눈엔 눈물도 글썽하구··· 희섭아저씨 생각을 너무나 하지 말아요. 그렇게 하구 혁명을 어떻게 하겠어요?》

금실이는 공연히 팔굽질을 했다가 벼락을 맞았다.

《그만들 두라구요. 우리 분임동무 문제부터 마저 이야길 하자구···》

음전이가 한마디 참네를 했다. 분위기가 절로 회의처럼 돼버렸다.

국금이는 성이 나서 우둘우둘했다. 금실이도 금실이대로 낯빛이 새파래져서 도라지를 찢었다.

《좋아요. 분임언니이야길 마저 하겠어요. 글쎄 내가 전날 검산쪽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는데 분임언니가 개울에 빨래를 가지고 나가 앉아있지 않겠어요. 애들 옷가지같은데 빨래그릇을 내다놓고 빨진 않구 풀밭에 앉아 풀잎만 뜯어서 물에 던졌어요. 그래서 내가 한참 빨아줬어요. 그런데 분임언니는 빨래하는 저를 보고 뭐랬는지 아세요. 얘 국금아,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이란데가 있기는 있겠지?··· 글쎄 이러질 않아요. 얼른 쳐다보니 정말 산사람같지 않았어요. 내가 그래서 빨래방치로 옆구리를 찔러줄가 하다가 말았어요. 정신이 들라구··· 글쎄 이렇게 하구 무슨 혁명을 해요? 오늘밤엔 언니가 똑똑히 자기비판을 해야 돼요.》

그래도 공청물을 먹은게 달랐다. 뻑뻑 몰아세우며 자기비판을 하라는거다.

《어이구, 죽고싶으면 죽으라지 한입이라도 덜게···》

을손에미가 흘끔 분임이를 쳐다보며 입방아를 찧었다.

《아주머니, 말을 그렇게 너무 아프겐 하지 말아요. 무슨 죽고싶기야 하겠어요. 량식이 없으니 그렇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아프지 않게 뼈에 닿지 않게 흔들어깨워 바로 서도록 부추겨주고싶어 을손에미의 말을 막으시였다.

《거럼, 누가 죽고싶기야 할가, 정말 낟알이 없으니 그렇지. 쯧쯧, 저렇게 이쁜게···》

을손에미는 금방 죽고프면 죽으라지 하던게 이제는 또 이쁜게 죽는것이 아깝다고 혀를 갈기며 분임이를 쳐다본다. 혀 돌아가는대로 뱉어던지는 판이다. 분임이는 돌아앉아 벽을 어루쓸며 울었다. 가는 목, 가는 허리, 벽을 어루쓰는 여윈 손가락들을 쳐다볼수가 없다.

《인젠 분임동무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구요. 그저 살기가 어려워서 그랬는가 아니면 혁명이고 뭐고 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는가. 그 말을 한번 들어보자구요. 혁명을 진짜로 해보자는 강심을 먹은 녀자라면 그럴수가 있겠수?》

음전이가 다 깐 도라지그릇을 구석쪽에 돌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도 부증기때문에 숨이 차서 벽에 기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옆에 깔아놓은 자리에 그더러 누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음전이는 눕지 않았다. 혁명대오에서 문배 떨어지듯하는 분임이를 애타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서 좀 이야길 해요. 모두다 듣고싶어하지 않아요? 그리구 동무도 아픈것을 가슴속에 꽁꽁 다져넣어두고 혼자서 앓지만 말구 동무들앞에 다 털어놓으면 시원할게 안예요.》

《아, 어쩌문··· 난 어쩌문 좋아!···》

김정숙동지의 말끝에 분임이는 무중 얼굴을 돌리며 이렇게 웨치였다.

분임이는 말없이 건너다보는 김정숙동지의 애달픈 정 흐르는 얼굴을 잠시 마주 바라보더니 벽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헙헙 흐느껴울었다. 모두들 분임이를 쳐다보았다.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가 받아들이지도 않는걸 공연히 아픈 몸에 태를 먹게 만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시였다. 그런데 얼마후 분임이는 새파래진 얼굴을 돌리였다. 감차게 이발을 사려무는것 같았다.

《난 정말···》

분임이는 이어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또 한번 흐느끼였다.

《어지러우면 벽에 기대앉아요.》

김정숙동지께서 또 한마디 건늬시였다. 국금이가 그를 붙들어 벽에 기대게 했다.

《전 정말 오늘밤 다 털어놓겠어요. 음전아주머니랑 있는데서 다 털어놓구 이야기하겠어요. 전 본시 시집을 갔던 녀자예요. 돈에 팔려 악마구리같은 지주놈의 집에 시집을 가서 온갖 압제와 멸시를 받으며 종살이하다가 나중에는 아무래도 살수가 없어서 명주필에 목을 맸댔어요. 그랬는데 정숙동무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목맨 명주필을 풀어놓고는 제 악문 입을 비집고 꿀물을 떠넣어먹였어요.》

을손에미가 눈이 둥그래져서 또 혀로 떡 소리를 내였다. 분임이는 눈물을 씻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살려줘가지고는 저를 혁명의 길에까지 돌려세워주지 않았어요. 전 정말 정숙동무가 녀자는 녀자이기때문에 혁명임무가 더 무겁구 더 잘해야 한다고 그렇게도 타일러주던 말이 무슨 말인지를 깨달았어요. 아무렴 제가 그 말을 깨닫지 못했겠어요? 녀자는 자기 해방과 조국광복의 두가지 사명을 겹쳐가지고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는걸말이예요. 난 내가 녀자로서 너무나도 속박받아 피투성이가 된 몸이기때문에 녀성해방이란 말이 더 절절하게 들렸어요. 그랬기때문에 전 혁명을 해야 할 녀자로 되느라고 그 더러운놈의 집에 팔려가서 만난고초를 다 겪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댔어요. 그래서 전 결심을 든든히 가지구 상촌에서 혁명의 길로 나갈 신들메도 단단히 했댔어요. 그런데 또 공청에도 들여주구 아동단지도원 책임도 맡겨주니 행복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맘을 놓으시였다. 말하는것이 날도 서고 옳은 이야길 하자고 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분임이는 벽에 기대앉은채 또 눈물을 씻었다. 인젠 눈물도 아까처럼 흐르지 않고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전 이 술기막골에 와서도 얼마동안은 그런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댔어요. 그리고 또 한목숨 바쳐서 혁명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버리지 않았댔어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식량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굶고 온 술기막골에 굶주림이 덮어치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하는데 나는 겁이 더럭 났어요. 눈앞이 캄캄해졌댔어요.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인젠 나갈길도 들어갈길도 없고 오직 죽는길밖엔 없고나 하는 생각만 들었댔어요. 나 하나만 죽는다해도 모르겠는데 술기막골의 술한 사람이 다 죽고 아이들이 다 죽고 종당에는 이 술기막골바닥에 검은 흙밖에 남지 않겠고나 하는 생각을 하니 무섭고 몸서리가 쳐졌어요. 아무리 앞을 내다보자고 해도 그렇게밖엔 내다보이지 않는데 구정부사람들은 무슨 희망이 있기에 저렇게 뛰고 또 정숙동무는 무슨 앞날을 내다보기에 저렇게 뛰는가고 속으로 생각도 했댔어요. 그러노라니 제가 맡은 혁명과업이 어떻게 되였겠어요? 아동단이 어떻게 되고 애들 신세가 어떻게 되였겠어요? 아이들이 독초를 뜯어먹은 날 아침에도 송기에 나물을 섞어 무치고 정숙동무가 되골에서 얻어다준 들깨기름도 넣어 조반이 넉넉진 못했으나 애들을 노나 먹이겐 지었댔어요. 그러나 세상이 온통 먹장구름같은 생각만 들고 오늘 죽을지 래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서 애들에게 골고루 나누어먹일 생각은 없이 마구 퍼주고말았어요. 그래도 애들은 끼니를 먹으면서 어느 애가 놀러 나갔는데 그 애 먹을것이 없이 다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떠들지 않겠어요. 그러나 전 그런 소리를 여겨듣지도 않았어요. 그저 대충 퍼주고는 안구석자리에 몸을 내던지고 누웠어요. 그리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구··· 그러니 어느 애가 먹구 어느 애가 굶었는지 알기나 했겠어요. 글쎄 내가 이렇게 병든뒤엔 아동단모임이라는건 한번두 해본적이 없어요. 다 내던져버렸어요. 왜 이렇게 했겠어요. 이 죽일년이 혁명을 왜 이렇게 했겠어요. 혁명의 길에 들어선걸 기쁘게도 생각하구 신들메도 단단히 했댔는데 무슨 귀신이 붙어서 이런 죄를 지었겠어요?》

분임이는 파랗게 질린 얼굴을 쳐들며 부르짖었다. 자기자신에게 항변하는 뼈아픈 소리였다. 모두 그의 질린 얼굴에 눈을 주었다. 국금이도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분임이에게서 그런 힘을 처음 보는것 같으시였다. 얼른 쳐다보니 분임이는 눈망울을 두르르 굴리며 입술을 감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로 태여나는 분임이를 보는것 같기도 해서 가슴뭉클한 정이 굽이치시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됐겠어요? 저에겐 이렇게 될 조건이 있었어요. 전 정말 경난속에서 내가 혁명을 하지 않고는 안되겠고나 하는 뼈저린 결심을 못가지고 혁명에 나섰기때문에 이렇게 되였어요. 전 정숙동무와 손잡고 한동네에서 자라나긴 했지만 정숙동무같이 고생꾸러기는 아니예요. 먹을것 입을것 그닥 고생을 모르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응석을 부리며 자라났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동네 지주놈한테 속히워 집안이 다 망하긴 했지만···》

분임이는 말을 끊으며 또한번 입술을 감쳐물고 바르르 떨었다.

《그러니 내가 겪은 고생이란 무어겠어요. 그저 종살이같은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부모와 남편한테서 매맞고 욱박질리우고 칼부림당하고 그런것밖엔 더 없었어요. 그게 내가 겪은 고생의 전부예요. 어찌보면 모진 고생, 모진 학대를 다 겪었다 할수도 있겠지만 남이 다 겪는 가난의 설음, 가난의 피눈물이야 크게 못겪은것 아니겠어요. 그러다나니 내 뼈와 살속에 혁명을 하지 않고는 못살겠다는 결심이 얼마나 깊이 박혔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번 가슴이 쩡해지는것을 느끼시였다. 분임이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 자기 잘못을 뉘우칠줄은 모르시였다. 고맙고 기쁘시였다. 이런 분임이를 속깊이 들어가 타이르고 달래며 안아올려주지 못한 일이 후회도 되시였다. 국금이도 인젠 큰눈에 눈물이 그렁해서 분임이를 쳐다만 보았다. 그도 아까 괜히 아프게 때렸다고 뉘우쳐지기도 했다. 금실이만이 그저 다소곳하고 앉아 호 한숨을 지었다.

《이렇게 저는 혁명을 굳건하고 절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때문에 좀 형편이 어려워지자 물렁물렁 무너져서 맡은 과업을 다 쥐여내버리고 무서운 죄를 짓게 되였어요. 전 정말···》

분임이는 얼른 또 얼굴을 돌리며 울었다. 가늘어진 허리를 꼬며 몸부림치기도 했다.

《그만하면 됐어요. 인젠 울음을 그치세요.》

김정숙동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분임이는 무슨 말을 더 하자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분임동무, 인젠 그만두라구.》

음전이도 한마디 따뜻하게 말했다. 그도 낯빛이 아까와는 달랐다. 아깐 눈에 엄한 빛이 있었댔는데 어느새 그 눈이 우선우선해졌다. 분임이는 그제야 들먹이는 어깨를 잠재웠다. 그러면서 또 부르짖었다.

《전 이런년이야요. 그러니 무슨 혁명을 하겠어요. 저 같은게 무슨 사람이라고, 무슨 혁명할 녀성이라고 이렇게들 타일러주고 깨우쳐주고 하겠어요?》

분임이는 한참동안 흐느끼고나서야 눈물을 씻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서리를 맞은것 같은 모습이긴 했으나 낯빛도 인제는 퍽 가라앉았다.

《어이구, 심청이이야기 듣는것만치나 눈물이 나질 않누.》

을손에미는 또 혀를 쯧하고 찼다. 그는 음전이더러 힘들어한다고 곽지같은 손으로 붙안아 자리에 눕혔다. 어느 한때는 《민생단》의 안해라고 도끼눈질을 하고 지냈는데 이젠 눈에 집어넣고 다니고싶어한다. 그러기에 제집가마에 음식을 끓여가지고도 한숟갈 떠서 쩝 맛을 보고는 능지영동서 한그릇 주어야겠다고 음전이의것부터 먼저 한사발 푹 떠낸다. 결국 한마디 옳게 튕겨만 주면 이렇게 고운 맘씨가 비단결같이 주르르 펴지기도 하는 아낙네였다.

《전 오늘밤 가슴에 차게 맺힌 생각이 있어서 분임동무에게 아픈 말을 했어요. 지금 이 근거지안엔 녀성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구 녀성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눈을 뜨고 뭉치는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대중의 단결, 민족의 단결을 허무는 길로 나가는 사람이예요. 이런 사람이 있기에 분임동무도 그렇구 다들 정신을 차리자고 모여앉자고 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리억겸의 말이 정말 가슴에 맺혀있어서 낯빛조차도 파릿해지시였다.

《분임동무가 자기의 쓰라린 과거에 대해서 절절히 이야기했지만 혁명을 왜 못하겠어요? 부자집 며느리가 됐댔다고 못하겠어요? 밥술이나 먹는 집 태생이였기때문에 혁명을 못하겠어요? 제가 삼도만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웠을 때 장군님께서는 능지영 어떤 사람이 중농을 혁명대오에 접근시키면 계급진지가 물렁물렁해진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런 편협한 견해를 가지고 무슨 혁명을 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자신께선 벌써 중농도 혁명의 동력으로 간주하신지가 오래다고 말씀하시였어요. 중농뿐만아니라 그보다 더 부유한 계층까지라도 일제를 미워하는 량심적인 계층은 다 우리편으로 돼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서 팔을 벌리고 나서는 사람은 립장이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아주 재미없는 사람과 맞서있어요. 우리가 이런 사람의 좌경몽둥이에 맞아 꺼꾸러지겠어요? 우린 어떻게 하든지 장군님의 방침을 받들고 나가면서 이런 사람들의 그릇된 주장에 타격을 가해야 해요. 장군님께서는 우리 조선녀성들같이 불쌍한 녀성이 없다고 하시면서 녀성문제를 생각하실 때마다 가슴속으로 눈물이 흐르신다고 말씀하셨어요. 바로 이런 불쌍한 녀성들을 죄다 깨우치고 들어일궈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밀게 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이 말씀이 가슴속에 뜨겁게 맺혀있어서 언제나 우리 녀성들이 하루빨리 장군님의 가슴속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싸울수 있게 만들자는 안타까운 생각을 가지고 뛰고있어요. 분임동무에게도 그런 심정으로 대렬에서 락오자가 되지 말라고 오늘밤 못이 박힐 말을 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마에 맺히는 땀을 씻으시였다.

《우리는 장군님의 심려를 생각해서라도 주저앉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해요. 분임동무처럼 맡겨진 일을 그렇게 하진 말아야 해요. 일을 잘해놓고야 어떤 상대가 와서 뭐라고 하든 반박을 가할수 있지 않겠어요. 절대로 남의 시비를 듣게 일해선 안돼요. 녀자들이 무슨 혁명을 하겠느냐, 무엇때문에 이런 소리를 듣겠어요. 우리는 누구나 다 한사람한사람 근거지의 튼튼한 기둥이 되여서 끄떡없이 걸어나가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말 리억겸의 소리를 깔아뭉개며 더 단단히 한품에 끌어안아 짜고드는 심정으로 열렬히 이야기하시였다. 밤이 깊었다. 한쪽 이지러진 푸른 달이 설령우에 가서 올라앉았다. 무슨 새인지 밤새 한쌍이 삐삐 소리를 지르며 을손이네 지붕우로 날아넘어가고 날아넘어오고 했다.

모임을 끝낸 김정숙동지께서는 휘청거리는 분임이를 한팔로 부축하며 아동단합숙까지 걸으시였다.

《너무 맘쓰지 말어요. 나두 오늘밤 내내 가슴이 아팠어요. 이게 다 우리가 혁명을 잘하자는게 아니겠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다가끼고 걸으며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나두 다 알아요. 내가 정숙동무 맘속을 아무렴 모르겠어?》

《고마와. 동무가 그렇게 리해를 해주지 않고 내말을 노엽다고만 생각하면 내가 안타까와서 어떻게 살겠어요? 난 정말 우리 녀성들이 너도나도 다 꿋꿋이 싸워나가며 남한테서 업수임받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면 춤을 출것 같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밤 내내 참고있었던 그 괴로운 심정을 분임이에게 털어놓으니 가슴속이 한결 후련해지시였다.

《분임이, 우린 정말 부암에서 함께 자라나던 때를 잊지 말고 서로 맘이 변하지 말자구. 맘이 변하지 말자고 하는건 혁명을 잘하자는 말과도 같아.》

《정숙이, 고마와.》

분임이는 얼른 눈물을 씻었다. 고개길을 다 내려왔다. 밤새가 여기까지 따라오며 삐삐 정겨운 소리를 지른다. 달은 설령너머로 아주 기울어지고 고요하고 포근한 어둠이 내리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