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파종을 해넣은 뒤 어느날 아동단합숙에서는 뜻밖에 가슴저린 일이 벌어졌다. 철이와 홍갑이가 산에 올라가 무슨 독초를 뜯어먹고 와서 죽는다 산다 소동을 일으켰다.

애 둘이 달려들며 밸 끊어진다고 홀짝홀짝 뛰는바람에 리상녀와 분임이는 이게 웬일이냐고 붙안고 돌아갔다.

《너 뭘 먹었어?》

《풀 뜯어먹었어요.》

《어떻게 생긴 풀이냐?》

《이렇게 넙적하게 생긴 풀이야요. 아이구 밸이야, 아구 밸이야···》

《이녀석들이 바구지풀을 뜯어먹은 모양이구나. 이 나팔 좀 벗어라, 배가 고픈 녀석이 이건 어째서 메고 다니며 이 야단이냐?》

리상녀는 철이의 목에서 나팔을 벗겨 구석쪽에 절라당 던졌다. 그리고는 철이를 붙안고 앉아 배를 문지르고 가슴을 문지르고 했다. 여윈 몸을 문질러주기도 가슴이 아팠다. 분임이도 홍갑이를 붙안고 앉아 문질렀다. 그러나 애들은 앉아서 견디질 못하고 벌떡벌떡 일어서군 했다.

《온 설상가상도 이런 설상가상이 있을가? 이녀석들은 왜 이렇게 문앞에 가뜩 막아섰니? 빨리 가서 의사를 좀 오라지 못하겠니?》

리상녀가 문앞에 죄여선 애들에게 소리쳤다. 주글주글 우무러든 눈확속에 눈물이 그득 피였다. 애들이 주먹을 쥐고 의사한테로 뛰였다. 분임이는 낯빛이 새파랗게 되여 와들와들 떨었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자기의 죄라는것이 너무도 크게 드러나 보였다. 오늘아침에도 애들이 먹을걸 끓이긴 끓였다. 그러나 누가 먹고 누가 안먹었는지도 모르게 그저 자라는대로 퍼주다가 말았다. 리상녀조차도 큰벌에 와있는 상촌사람들한테 낟알 남은게 있으면 좀 더 달래야겠다고 떠나가서 애들 아침 먹이는 신역을 분임이 혼자서 했다. 끼니를 얻어먹지 못하고 두덜대는 애들이 여러명 되였다.

《흥, 아동단지도원이란게 인젠 아침모임두 안해···》

《아침모임만 안하니? 저녁모임은 언제 해봤니? 아동단합숙식구가 몇명인지 알기나 한다더냐?》

《참, 그것두 모르게 아침끼니두 퍼먹이는 애들만 퍼먹이구 더러는 안먹이지.》

분임이에 대한 애들의 불평이 쏟아져나왔다. 독초를 뜯어먹은 애들도 구정부마당에 놀러 갔다와서 조반을 못얻어먹었다. 그래서 둘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산으로 올라갔다. 빈 창자에 풀이라도 뜯어먹으면 나을가 해서 뜯어먹은것이 독이 있는 풀을 뜯어먹었다.

의사가 달려왔다. 그는 잔말 없이 애들을 붙잡으라 하고는 둘다 손끝 발끝에 침을 놓았다. 몸부림하는 애들을 눕히고 종이장같이 얇은 배가죽을 올려쓸고 내려쓸고 하더니 배꼽밑에도 동침을 두대씩 놓았다. 두 애는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음, 고함이 벽력같은걸 보니 죽지는 않겠다. 자 인젠 일어나서 이걸 조금씩 먹어라.》

의사는 진찰가방에서 유지에 싼 아편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조금씩 떼서 먹였다.

《선생님, 별일이 없을것 같소?》

《좀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참 막막한 일입니다. 애들 배가죽이 저지경 됐으니 숨이 붙어있다는것도 용한 일이지요.》

의사는 리상녀의 말끝에 수염을 내려쓸며 통탄했다. 그는 웃말에 또 급한 환자가 있다고 부랴부랴 일어서 떠나갔다. 의사가 간 뒤 얼마 안있어 딴 애들이 홍갑이와 철이가 죽는다고 소리쳤다. 죽는게 아니라 아편에 취해서 잠이 드는것이였다.

분임이는 애들을 방바닥에 바로잡아 눕혔다.

《얘, 내가 참고 참아왔지만 오늘은 너한테 말을 좀 해야겠다.》

분임이는 리상녀의 소리에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무슨 말이예요?》

《아동단이란게 어째서 이 몰골로 돼가니? 상촌에선 안그렇던 아동단이 여기 와선 왜 이렇게 돼가?》

리상녀의 기상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 먹을게 없어서 애들이 이렇게 되는걸 전들 어떻게 하겠어요?》

《얘얘, 그럼 혁명을 먹을게 있어서만 하고 먹을게 없으면 안한다더냐? 그래 지금 아동단이 잘 안되는게 네 생각엔 먹을게 없어서만 안되는것 같으냐?》

노기가 오른 리상녀는 비자루를 들고 구들을 쓰는 손이 후들거렸다.

《그럼 지금 아동단에 먹을것 없는 일이 큰일이 아니구 무슨 또 다른 큰일이 있겠어요?》

《얘 다른 큰일이 없다구? 내 보기에 넌 요즘 아동단일에 손맥이 떠진것 같다. 오늘아침 끼니를 해먹이는것도 그게 뭐냐? 내가 웃마을에서 내려오니까 저 석근이와 만호두 조반을 못얻어먹었다구 쥘쥘 울면서 하소하더구나. 그리고 딴 애들두 못얻어먹구 배가 고파서 풀 뜯어먹으러 산에 올라갔다고 하더구나. 글쎄 먹을게 아주 없으면 없어서 못먹인다고 하겠지만 왜 해놓은 조반도 골고루 노나먹이지 못하니? 오늘아침에도 그만하면 끼니감이 푼푼했어. 그래서 나두 맘을 놓고 큰벌로 올라갔댔다. 그런걸 그렇게 되는대로 퍼주다니? 네가 정숙이 상촌에서 아동단을 맡았을 때처럼 지금 애를 쓰고있어? 그때두 먹을것 고생을 했어. 그렇지만 정숙이는 그 고생속에서도 애들 힘을 모아가지고 집까지 짓지 않았니? 너두 좀 애를 쓰고 뛰여보려무나. 그래도 아동단지도원이라는게 애들 신칙도 하고 제때제때 모임두 가지구 아마 그러라고 아동단지도원을 냈겠지? 그런데 왜 다 집어던지고 숨어앉아서 눈물만 짜니?》

《어머니, 제가 뭐 숨어앉아서 눈물만 짜는게 있어요?》

둘이 이러는바람에 애들은 죄다 피해나갔다. 그들도 경황이 없었다. 합숙이 어수선해지니 어데 가서 부접을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몰려나온 애들은 아래모퉁이 앵두나무밑에 와서 무리를 지어 앉았다. 모두 눈물들이 글썽해졌다.

《내가 말이 난김에 할 말을 다 한다만 네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만 짜니. 나두 네 생각하는 일을 나쁘다곤 보지 않는다. 앞이 구만리같은 네가 한번 제길을 갔다가 새를 뗐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서야 살겠니? 그렇지만 네가 지금 이판에 앉아서···》

리상녀는 그답지 않게 망설이며 분임이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예요?》

분임이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쳐들며 물었다. 여윈 손으로 제 치마주름을 꽉 거머쥐고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이게 네 가슴을 허비는 얘긴줄 잘 안다만 분임아, 우리끼리니 터놓고 얘기하자꾸나. 리범진군사부장이 내 듣는데서도 널 불쌍한 동무라고 두번이나 말하더구나. 너두 군사부장 보는 눈찌가 벌써부터 다르고··· 난 그걸 탓하자는게 아니야. 아니 속으로 은근히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래 네가 요새 매일 아래회춤에 숨어서서 검산쪽을 내다보며 한숨만 폴폴 쉬여서야 되겠느냐, 응?》

《어머니,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아니라면 좋다만 어쨌든 내 생각 같애선 네가 이러구있는걸 그 사람이 안다면 그 사람두 널 바로 보겠느냐?···》

《어머니, 건 너무해요. 아무렴 내가···》

분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엎어져 울었다.

리상녀는 무겁게 일어서 토방으로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치마끈을 죄여맸다. 그도 주글주글한 낯가죽이 젖어내렸다.

지청구를 해주긴 했으나 분임이도 불쌍하고 애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낟알이 다 어데 가 있는가 낟알이 없으니 지청구도 나가고 합숙애들신세가 이 모양 되지 않는가. 하늘에 해가 떴으니 낮인가, 왜 이렇게 칠칠야밤같은가. 리상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넘기며 뜰로 내려섰다.

이러는데 구정부의 리억겸이 지나가다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애들이 잘못됐다구요?》

《잘못되긴 왜 잘못돼요. 독초를 뜯어먹고 온걸 방금 의사가 와서 침도 놓고 약두 멕여서 잠들여놓고 갔다우.》

리상녀는 구정부간부가 무어랄가봐 송구해하며 대꾸했다. 리억겸은 관자노리가 두드러져 방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우는 분임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귀밑이 풀떡풀떡 뛰고 피줄이 돋아올랐다. 눈엔 독기가 있었다.

《괘씸한것···》

리억겸은 누구를 욕하는것인지 한마디 내뱉고는 돌아서 걸어나간다. 리상녀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나가는 리억겸을 지켜보았다. 아동단몰골이 이 모양 됐으니 구정부간부들인들 왜 저러지 않으랴. 리상녀조차도 야속스러운 생각이 들어 아래모퉁이에 숨어서서 한숨을 지었다.

리억겸은 마을앞으로 나가다가 마침 무엇인가 한임 이고 걸어들어오는 김정숙동지를 만났다. 그의 귀밑에 돋은 피줄은 더 버쩍 굵어졌다.

《그건 뭐요?》

《나물과 더덕이예요.》

《그건 어데서 그렇게 캤소?》

《오늘 영동엘 갔댔어요.》

영동이란 능수리에서 20여리 떨어져있는 야산지대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 국금이와 함께 거기 가서 요행 사람이 안다닌 더덕밭과 나물 많은데를 만나서 한임씩 뜯고 캐여가지고 오시였다.

《동무, 그걸 내려놓고 여기 좀 앉읍시다.》

리억겸이 이러며 먼저 풀밭에 앉았다. 어째 벌써 말소리에 독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씨앗을 못나누어먹게 만든것때문에 이런다는 생각을 하며 임을 내려놓고 풀밭에 앉으시였다.

《내가 벌써 동무에게 이야길 해주자 했는데 여태 못해주었소.》

《무슨 이야기예요?》

《그런데 동무는 똑똑한 동무가 왜 그렇게 주위가 너저분한가말이요?》

《주위가 너저분하다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갑자기 무슨 소린지를 몰라 눈이 커져서 그를 쳐다보시였다. 리억겸은 안경우의 이마가 댕댕했다.

《내 회장과도 이야길 했지만 그 능지영에서 온 녀자는 무엇때문에 찾아다니며 옆구리에 끼고 도우 응? 그런 녀자들과 오자바람으로 얽혀서 끼고돌며 없는 쌀을 구해들여 밥을 해먹인다, 죽을 쒀먹인다 하니 어쩐 일이요? 그담 또 저 아동단합숙에 있는 부자집 며느리는 무엇때문에 여기까지 달고와서 아동단을 저지경으로 만드오? 지금 아동단합숙에선 애 둘이 독초를 뜯어먹고 와서 나가 너부러졌소. 그 녀자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통곡하구··· 그래 이런 녀자들 가지고 혁명을 하겠다는거요? 이건 무슨 우경이요? 난 동무를 위해서 경고하는거요. 혁명이란 계급투쟁이란말이요.》

《나두 계급투쟁이란걸 알아요. 아는 그만치 손을 잡을 사람, 잡지 못할 사람을 구별할줄도 알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쌀쌀한 표정으로 대답하시였다. 이게 정말 모를 사람인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오해를 하지 마오. 난 동무를 위해서 말하는거요. 동무야 기본계급으로서 정말 샘물속에서 뽑아올린것 같은 혁명가가 아니요. 그런데 주위에 이렇게 너절부레한 녀자들이 붙어있어서 되겠느냐말이요? 그건 동무의 깨끗한 신분에 그늘을 비끼는거요. 도대체 녀성들을 가지고 무슨 혁명을 하겠다는거요?》

《왜, 그렇게 녀성들을 숙보세요?》

《동무, 그럼 이 근거지의 난관을 녀성들힘으로 헤쳐나갈수 있단말이요? 응? 그리고 내 한가지 더 말할것은 근거지사업에 대해서 너무 옷자락을 넓게 펼치지 말기를 바라오.》

《그건 또 무슨 말이예요?》

《요새두 한기천동무에 대해 험구를 한놈이 어느놈인가고 몹시 신경을 쓰고있는것 같은데 그건 벌써 우리가 주목을 돌린놈이 있소. 이놈 저놈 점을 찍고 알아보느라고 하다간 우리 일을 튀게 만들수도 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낯빛이 파릿해서 듣고만 있으시였다. 리억겸은 자기 말을 명심해 들어두라고 한참 력설했다. 얼마후에야 그는 훌 일어서 걸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풀밭에 잠간 앉아계시였다. 리억겸의 말이 억울하기가 짝이 없으시였다. 너저분한 녀자들을 끼고돌지 말라는 소리도 그렇고 근거지사업에 너무 참견말라는 소리도 그렇고 무엇인가 자기를 되게 걸고드는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한편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더 버쩍 머리를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시였다.

한참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풀밭에서 일어서시였다. 리억겸의 걸고드는 말에 개의할 필요가 없이 제 신념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랴부랴 아동단합숙으로 들어오시였다. 애들이 독초를 먹고 너부러졌다니 그게 정말인가. 리억겸이 혀 돌아가는대로 뱉어 던진 소리는 아닌가. 몹시도 초조하고 불안하시였다.

아동단합숙에 들어오니 아직도 방안에선 분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였다. 리상녀가 얼른 나와서 나물임을 받아내리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영동에 가서 더덕이와 나물을 뜯어왔어요. 그런데 애들이 독초를 먹고 누워있다는게 사실이예요?》

《사실 아니구. 그 소식을 벌써 듣고왔구나!》

리상녀는 얼른 외면하며 눈가장에 손을 가져갔다.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으로 들어가시니 울던 분임이는 정지방으로 쫓겨내려갔다. 정말 애 둘이 다리를 뻗고 그린듯이 누워있었다.

《누나, 그 애들이 산에 올라가 독초를 뜯어먹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와서 약을 먹였어요.》

문앞에 와 선 애들이 알려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철이곁에 앉으시였다. 두눈을 실날같이 뜨고있긴 했으나 곁에 사람이 온걸 아는것 같지도 않다. 팔다리를 만져보시니 나른했다.

《얘, 철아.》

《누나!》

그래도 혀아래소리로 누나를 부른다.

《너 어디가 아파서 그러니?》

그담엔 대답을 못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홍갑이를 들여다보시였다. 홍갑이는 더 처참한 몰골이다. 그는 눈을 감고 아주 잠에 떨어졌다. 입술에 귀를 가져다대니 가느다란 숨기가 귀에 와닿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 둘과 내던진 나팔을 보니 당장 눈물이 쏟아질것도 같으시였다. 아무런들 아동단합숙에서 이런 가슴쓰린 일이 벌어질수 있을가. 격한것이 치밀어오르시였다. 먹을게 없으니 이러질 않겠느냐는 생각따위로는 그 격정을 눌러낼수가 없으시였다. 아이들을 보살필 책임자가 기맥을 풀고 앉아 제 설음으로 옷고름을 쥐여뜯고있으니 애들의 신세가 이렇게밖에 달리 될수가 있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쓰러진 애들의 팔을 바로잡아 놓아주고 되는대로 던져진 나팔도 벽에 걸었다. 이제는 나팔을 채다가 불어보겠다는 애도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낯빛이 날카로와져서 정지방으로 내려가시였다. 마침 뒤울안으로 달려나갔던 분임이가 눈물을 씻으며 들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시였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의 낯빛을 보고 바르르 초불처럼 떨었다.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물러서시였다.

분임이는 얼른 부엌으로 내려가 물동이를 끼고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밖으로 나오시였다. 애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에워쌌다. 합숙생활에 고생과 시름이 덮치니 애들은 김정숙동지께서 나타나시기만 하면 이렇게 눈물 그렁한 눈들로 몰려와 에워싸군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마당가 장독대로 걸어가 엎어놓은 빈 독을 바로잡아세우시였다. 교지기네가 쓰다가 내버리고 간것인데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독을 가져다놓고 래일부터는 도라지고 더덕이고 기껏 캐들여다가 울궈낼 생각을 하시였다. 애들합숙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보니 몇십리밖, 아니 몇백리밖에 가서라도 애들 먹일걸 자꾸자꾸 뜯어들이고 캐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아지시였다. 독을 굴리는 김정숙동지의 손은 떨리시였다.

《누나, 우물가로 가져가나요?》

애들이 달려들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굴릴테야요.》

모두 터지고 할퀴인, 성한데 없는 누나의 손을 밀어내며 저들이 굴리겠다고 떠든다.

《누난 나물 캐느라고 힘들었는데 관둬요.》

《정말야. 나물캐기가 얼마나 힘들게···》

모두 누나 걱정하느라고 야단들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독을 굴리시였다. ···어쩌면 지난날 사연이 곁묻어일어나게 일이 그렇게 벌어지는가. 쓰러진 애들 둘과 나팔··· 보는 때마다 가슴을 뭉클 잡아흔드는 나팔, 인젠 나팔이자 곧 기송이인 그 나팔··· 그리고 기송이와 한짝이던 철이, 홍갑이···

불시에 상촌합숙마당에서 애들을 모여앉히고 그 셋에 대한 첫 비판회의를 하던 때 일이 머리속에 떠오르신다. 셋이 다 합숙 짓는데 구들돌을 모아들이라고 했는데 그건 모아들이지 않고 상고개에 총쏘는 구경을 나갔다고 비판회의를 열었다. 애들이 들고일어나 비판을 하자 기송이는 성이 나서 씩씩하고 철이는 헹 코방귀를 뀌며 발가락을 비틀고 홍갑이는 낯이 새빨개서 혀를 날름거리며 연방 흘러내려간 바지괴춤을 춰올리고 했다.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시였다. 바로 이렇게 애들 셋은 대공을 날을 저들의 부추리를 세게 만드는 첫 비판회를 겪었다. 그날밤 또 기송이와 철이는 부엌구석에 서로 등을 붙이고 누워 몸을 또아리틀듯하고 저녁을 안먹는다고 버티였다. 그런걸 들어일궈가지고 밥숟갈을 대감 진지상 괴이듯하며 흘겨보는 눈찌에 웃음도 보내면서 저녁을 먹여내시였다. 그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날 밤, 이렇게 길러낸 아이들인데 그 셋중에서 기송이는 제 사랑하는 나팔을 철이에게 넘겨주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러니 나팔이자 곧 기송이기도 한 그것, 그것이 있으니 둘이자 곧 셋이기도 한 그 애들이다. 아니 그 애들뿐일가, 상촌에서 기른 애들을 죄다 그렇게 보아서 나쁠게 있을가, 자신의 조그만 사랑의 날개밑에 오구구 모여들어 갖은 고생을 다하며 오금이 뜬 이 애들의 집단을 죄다 한피줄의 생체, 한덩어리된 넋이라고 보아서 그 무슨 잘못될게 있을가. 그런데 그 애들을 어째서 저렇게 만들었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물가에 독을 눕혀놓고 안팎을 다 가셔내시였다. 독이 커서 꼬마 하나는 독속으로 기여들어가 짚수세기로 문대주기도 했다.

얼마후에야 그 독을 바로잡아세우고 거기에 또 물을 가뜩 길어 부으시였다.

그러고나서야 합숙을 떠나시였다. 애들이 집뒤까지 우르르 따라나왔다. 누나의 손도 쥐고 걷고 팔소매도 쥐고 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집뒤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한아이 한아이 지켜보며 배가 고프냐고 물으시였다,

《일없어요. 배가 고플게 뭐야요.》

《왜 이렇게 허리띠를 죄여매지 못해요? 배가 홀쪽해서 자꾸 흘러내려가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애 하나의 허리띠를 고쳐매주시였다. 딴 애들도 모두 허리띠를 고쳐매느라고 법석했다.

《어서 들어들가요.》

《누나!》

애들이 목소리를 합쳐서 부른다. 눈물이 가랑가랑한 눈들이 김정숙동지의 심장에 와닿는것 같은 애소를 퍼부으며 한사코 쳐다본다.

《우린 상촌에서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노래도 부르고 행진도 하구말이예요.》

《그리구 나무총 만들어 메고라도 순찰을 돌았으면 좋겠어요.》

눈물 맺힌 눈들에 드러나는 이 숱한 애소와 열망, 그것은 애들의 정상이기도 하고 시련을 겪는 온 술기막골생활의 축도가 눈앞에 와서 흐느끼며 부르짖는것이기도 했다.

《어서들 들어가요. 이제 지도원누나가 아동단생활을 잘하게 해줄거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달래며 등을 미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집을 향해 걸으시였다. 몹시도 노곤해지시였다. 몸도 지쳤지만 정신적타격이 더 크시였다. 온 근거지가 한걸음 한걸음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가는것 같으시였다.

집에 돌아오니 국금이형제가 뜯어온 나물을 삶느라고 부엌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이 형제도 무슨 큰 시름이 있는것같은 얼굴을 하고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서시는건 본척도 안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형제는 왜 또 이럴가 하고 가슴이 철렁해지는 생각이 드시였다. 귀마다 들고일어나니 정말 이 시름을 어떻게 감당해낼가싶으시였다.

《나물을 누구누구네 집에 가져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국금이에게 물으시였다.

《금산집과 옥평집 그리고 음전아주머니한테도 좀 가져갔어요.》

《옥평집엔 도라지를 좀 내놓고 올걸 그랬군요.》

국금이는 그담엔 대꾸가 없었다. 옆얼굴을 쳐다보니 시퍼렇게 동해올랐다.

《영금이, 넌 어디가 아프냐?》

《아니···》

영금이도 쌀쌀하게 대답했다. 코가 더 오똑해지고 내려간 속눈섭이 빳빳하게 뻗쳐있다. 옹쳐문 조그만 입도 무언가 단단히 무장을 하고있는것 같다. 형제가 싸움을 했을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야 싸울 일이란 있을것 같지 않으시였다. 어제저녁 일이 생각나기도 하시였다. 어제저녁 셋이 둘러앉아 끼니를 먹는데 영금이가 김정숙동지의 곁으로 살뜰히 다가앉으며 언니하고 불렀다.

《왜 그러니? 어서 먹으렴.》

《언니는 끼니를 들 때마다 꼭 눈굽이 젖지 않아?》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예민한 영금이는 불빛에 번쩍이는 눈빛을 젖은것으로 본것 같았다.

《까닭 없이 눈굽은 왜 젖겠니?》

《어쩌겠어요. 산 사람들은 산 사람들 안야요? 죽은 사람들 생각하고 자꾸만 눈물을 흘렸대야 그 사람들이 살아나겠어요?》

《너두 인제야 철든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오기전엔 둘이 노방 눈물바다를 만들고 누워서 아버지만 생각하고있던게···》

《애개, 내가 언제 눈물바다를 만들어? 난 정말 조꼼밖엔 안울었어. 난 조꼼만 울고나면 맘이 가뜬해지니까나··· 그렇지만 우리 언닌···》

《까불지 말구 어서 먹지 못하겠니?》

국금이가 눈총을 주며 쏘아붙였다. 영금이는 그제야 입을 다물고 김정숙동지의 곁으로 더 바싹 다가앉으며 언니에게 마주 눈총을 쏘았다. 그는 까불긴 해도 언니앞에선 움쩍을 못했다. 그러기에 김정숙동지께서 온 뒤엔 훈수가 생겨서 그이의 귀에 대고 제 언니의 흉을 보기가 일쑤였다.

《글쎄 공청에서 어느날 회의했는데 공청구위가 지명을 해도 저렇게 커다란것이 토론을 못했다지 않어. 언니, 저것 보라구. 입술이 저렇게 두터우니까나 말할줄두 모르지. 헹, 맹추라니까···》

이렇게 속삭이며 흉을 보기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 넌 공청회의같은데 내세우면 토론을 쩡쩡 잘해낼테냐고 물어보시였다.

《잘하잖구, 토론이란 말하는건데 말을 못해? 난 소선대 사격훈련에서도 우 맞았어.》

하지만 제 언니라면 생각이 끔찍한 영금이기도 했다. 그러게 언니를 그렇게 흉보다가도 언니가 무슨 힘든 일이라도 하면 밀어제끼고 들어서서 제가 다 해냈다.

어제저녁에도 끼니가 끝나자 어느새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내려서더니 혼자 끼니뒤설겆이를 다했다.

《또 그렇게 하구 팔때기 꼬부라든다고 안하겠니?》

제 언니가 아무래도 동생이 뾰로통해있는것 같아서 그러는지 한마디 롱을 던졌다.

그러자 영금이는 대꾸가 없이 웨깍데깍 바가지를 뒤집어엎으며 가마를 부셨다. 그바람에 국금이도 웃고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였다. 어쨌든 이런 따뜻한 풍파속에서 해종일 뛰여다니던 피곤이 다 풀리시였다. 그런데 오늘저녁엔 무슨 일이 있어서 형제가 이런 표정들을 하고 사람의 가슴을 이리도 무겁게 만드는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고달프다는 생각도 드시였다. 그들은 어석버석한 분위기속에서 저녁을 대충 끝냈다.

《언니!》

저녁이 끝나자 낯빛이 새파란 영금이는 어느 언니를 부르는지 언니를 부른다.

《언니라니? 누구를 부르는거냐?》

국금이는 부엌에서 돌아가며 말이 없고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정숙언니말이야요. 언닌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요?》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다니 그건 무슨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쭝해지시였다. 이 애도 그 소리를 얻어들었구나. 원쑤가 퍼뜨린 그 허황한 뜬소문을··· 그 소문이 옳다거니 옳지 않다거니 하며 형제간 싸움이라도 벌어졌는가.

《난 오늘아침 들은 소리가 있어요. 그 소리를 딱히 믿진 않아도 분하고 분해서 가슴이 터져요. 그런데 우리 언니는 덮어놓고 아니라면서 한기천아저씨의 옷을 빨아주지 않아요. 내가 재물 밭아놓은걸 몽땅 없애면서···》

《얘, 너 입을 다물지 못하겠니? 무슨 황당한 수작이냐?》

《왜 황당한 수작이야? 난 들었어, 들었어.》

부엌을 내려다보며 웨치는 영금이의 눈에선 푸른 불이 일었다.

《얘, 요 계집애, 너 혼찌검이 좀 나보겠니?》

부엌에 있던 국금이가 힝 달려올라왔다. 그는 동생을 마구 쥐여 흔들어댔다.

《이러질 말아요. 나두 영금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이러는지를 알아요.》

《그런 허튼 소리를 들었으면 들었겠지. 그래 한기천아저씨가 우리 아버지를 어쨌다는거냐? 요 계집애, 요 계집애!》

《글쎄 그만두라는데두···》

김정숙동지께서는 겨우 국금이를 떠밀어내셨다. 영금이는 대굴대굴 굴러가며 울었다. 어린아이 울듯 마구 엉엉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얘 영금아!》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를 붙안아일으키며 달래시였다. 그래도 무슨 소리를 죄다 까밝히지 않는걸 보면 속이 얼마나 웅심깊은가. 이 애를 철딱서니없는 애라고만 어떻게 꾸짖으랴. 그리고 그 불같이 일어나는 분기가 직방 식량부장에게로 날아가지 못하고 손쉬운 제 언니한테 트집을 댄다는것은 또 얼마나 어리고 주눅잡힌 행동인가.

《영금이, 그쳐라! 어서 그쳐!》

《놔요. 놔요.》

《놓긴 왜 놔?》

그러자 영금이는 화닥닥 뿌리치며 일어섰다.

《아버지!》

그는 부르짖으며 벽에 가서 태를 쳤다. 너무도 졸지에 가슴을 무너뜨리는 소리같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따라 일어서질 못하시였다. 부엌으로 내려간 국금이도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영금이는 벽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여러번 불렀다. 그러더니 이어 주먹을 쥐고 밖으로 내뺐다. 어데로 내빼는지 우당탕퉁탕하는 발자욱소리가 들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얼른 일어서 밖으로 나오시였다. 아무리 성이 올랐다 하더라도 한기천이한테 가서 부닥치리라고는 믿지 않았으나 그래도 무슨 일이고 저지를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가만히 내버려둘수가 없으시였다.

밖에 나오니 구름릉 저편으로 달이 떠올랐다. 은그릇같은 둥근달이였다. 능수리일대는 얇디얇은 면사에 가리운것 같기도 했다. 그런속으로 영금이는 바람개비같이 달린다. 벌써 우물가 저편 비탈진곳으로 달려올라가는것이 보이시였다.

《아니 저 애가 어데로 가는거야?》

김정숙동지께서는 황황히 소리치며 줄달음을 놓으시였다. 무엇때문에 무인지경 산속으로 뛰여올라가는지 영문을 알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신개동 산가운데서 분임이가 목을 매고 늘어졌던 일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꼭 그런 일이라도 저질러지는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영금이는 등성이 하나를 넘었다. 등성이를 넘은 영금이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뛰였다. 악문 입에선 울음소리가 새나왔다. 그는 한참 달려서 산비탈에 이르자 동실한 무덤앞에 풀썩 엎어졌다. 아버지의 무덤이였다.

《아버지!》

그는 목이 메여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고는 두손으로 흙을 빡빡 긁어당겼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서는 무덤을 두팔로 얼싸 끌어안았다.

《아버지! 깨나요. 글쎄 깨나서 말 좀 해줘요. 정말 저 식량부장아저씨가 아버지의 몸에 칼을 댔어요 어쨌어요? 저두 그 아저씨가 그랬으리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말이 돌지 않아요? 아버지, 말씀해요. 그게 정말이예요? 아버지! 왜 말이 없어요? 사람이 죽어서도 혼이란게 있다는데 아버진 혼두 없어요?》

영금이는 무덤을 두드리며 울었다. 잔디에 볼을 비비기도 했다. 묘뜰아래 숲속엔 김정숙동지께서 숨어앉아서 우시였다.

달을 향해 앉아서 창백한 량볼우에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군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