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

 

제 3 장

3

 

되골로 올라온 김정숙동지께서는 누워있는 집들을 몇집 돌아다니며 끼니를 끓여준다 칡뿌리를 두드려준다 하고는 서둘러 앞벌로 나오시였다.

땅파는 일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고싶으시였다. 한기천은 다 걷어안고 나가며 애를 태우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 이것도 저것도 다 군중을 살려내는 일인데 애간장을 태우지 않을수가 없는것이였다.

앞벌로 나오니 농민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공청파종대가 땅을 파일구다가 모두 지쳐서 밭머리에 쓰러져있었다.

여기선 몸집이 큰 공청조직책이 파종대 대장이 되여 땅을 파는데 그도 풀밭에 나가넘어졌다. 숨이 있는지 없는지 모두 조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그들은 땅을 파는게 아니라 이 막막한 땅에 마지막 피자욱을 찍다가 넘어진것 같기도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이 집어내던진 괭이를 들고 혼자 땅을 파기 시작하시였다. 누워있는 사람들이 깰가봐 저쯤 멀리 가서 파시였다. 돌이 많은 밭이여서 자가닥거리며 돌소리가 났다. 돌소리를 안내려고 괭이를 높이 들지 않고 땅에 힘주어 박아서 잡아당기시였다. 몸이 휘청거리며 돌아가시였다. 눈앞이 아뜩아뜩해지며 자신께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몸을 놀리는것 같으시였다.

공청원들이 모두 일어났다. 다들 김정숙동지께서 땅파는데로 왔다.

《이리 주시오. 지금 책임자동무는 말이 아닙니다.》

조직책이 괭이를 빼앗으며 말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도리여 동무들 몸이 걱정스러워요. 왜 좀더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눈을 붙여도 깊은 잠을 들수가 없습니다. 땅이 무너지면서 그저 자꾸 쾅쾅 소리를 냅니다.》

《배가 고프니까 어지러워져서 그러겠지요.》

《참 송기떡이라도 한번 실컷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직책은 괭이끝으로 큰돌을 하나 부쩍 파일구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송기떡소리가 가슴에 몹시 마치시였다. 본시 식구가 많은 집 맏아들인 그는 오구구한 동생들을 먹여살리느라고 저는 늘 굶어지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그 큰 체대에 얼마나 배가 고프면 송기떡소리를 할가싶으시였다.

그래도 공청원들은 억세게 땅을 팠다. 한창 땅을 파는데 벌판 저쪽 바닥길로 웬 농민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를 질렀다.

《씨앗이 왔어, 종곡이 왔어.》

농민은 청년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고함쳤다.

《뭐요?》

《씨앗이 왔어, 씨앗말야.》

이번엔 농민이 수건을 벗어서 휘저었다. 청년들은 모두 펄쩍 주저앉을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속에서 그 무슨 산같은것이 휘뚝 뒤노는것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씨앗이 오다니,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씨앗이 오다니. 그게 거짓말은 아닐가. 저 농민이 실성을 해서 지르는 소리는 아닐가. 아무렴 실성을 해서야 어찌 그런 소리를 지를가. 인젠 돌아올 때도 되였지. 리범진군사부장도 적구로 소대를 찾아 나갔다니까 한짐씩 골박아지고 돌아올 때도 되였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순간에 별생각이 다 떠오르시였다. 그저 모든 시름이 일시에 얼음 풀리듯 풀리는것도 같으시였다.

농민은 벌써 동네로 사라졌다. 동네가 온통 떠들썩한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능수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말 가슴이 활짝 열려지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이제는 온 술기막골농민들과 공청원들이 허기진 창자를 틀어쥐고 땀을 흘리며 파일군 땅을 묵이지 않게 되였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비탈길로 내려가다가 돌아서며 조직책을 불렀다. 조직책이 괭이질을 하다가 얼굴을 들었다.

《힘들어두 오늘밤 능수리로 좀 내려오세요. 공청회의를 해야겠어요. 씨앗이 왔다면 파종문제를 좀 토론해야겠어요.》

《내려가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돌아서 걸으시였다. 지친 몸에 흥분까지 겹쳐서 그런지 눈앞이 빙빙 도는것 같으시였다. 앞으로 엎어질것 같기도 하고 모로 쓰러질것 같기도 하시였다. 눈앞에선 수없는 나비가 날았다.

《이렇게 해가지고 내가 능수리에 가낼가? 빨리 가서 우선 씨앗이 얼마나 왔는가를 알아보아야겠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혀아래소리로 간절히 속삭이시였다. 겨우 큰벌을 지나 능수리에 거의 갔는데 음전이가 있는 집 큰간방 아낙네 을손에미가 길옆 산비탈로 뛰여내려오며 소리쳤다.

《근거지누나, 게 좀 섰으라구.》

되골에선 김정숙동지를 지도원누나라고 부르는데 능수리에선 상촌에서처럼 근거지누나라고들 불렀다.

상촌에서 부르던 이름이 누구의 입을 통해 퍼졌는지 모른다.

을손에미는 도랑물을 철버덕거리며 건너왔다. 무얼 하다가 오는지 낫가락도 손에 들었다.

《무슨 일이 있게 그렇게 급한 걸음을 하세요?》

《글쎄 예 좀 앉수.》

곁에 온 을손에미는 김정숙동지의 손을 잡아끌며 풀밭에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을손에미의 곁에 앉으시였다.

《내가 누굴 보고 이런 이야길 하겠수. 난 정말 상촌애기를 근거지누나가 아니라 근거지의 어머니처럼 생각한다우.》

을손에미는 김정숙동지께서 음전이한테 자주 다닌다고 낯은 찡그렸지만 동네사람들을 위해서 뛰는것을 보고는 그의 마음씨와 인품에 홀딱 반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근거지누나가 아니라 근거지의 어머니라는거다.

《글쎄 무슨 이야기예요?》

《아이구 참 기차라!》

《··· ··· ···》

《저, 저 한베락이가 차회장을 죽였다우. 칼로 찔러죽이는걸 본 사람이 있다우.》

《아니 누가 그런 말을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색해서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다들 그러지···》

《본 사람은 누구래요?》

《누군 누구겠소. 틀림없이 봤다는데··· 그리구 본 사람이 있기에 말이 났지, 나두 이야기가 비슷하다구 생각한다우. 아니 저 한베락이 아니고야 누가 그런 끔찍한짓을 해내겠수.》

김정숙동지께서는 기가 막히고 어이없어 웃으시였다.

아무리 세차다한들 어떻게 이런 말을 가지고 달려다니며 남을 도끼질하듯 팰수가 있을가. 게다가 어데 가서 얻어듣기도 잘 얻어듣는다. 음전의 남편을 왜놈의 밀정이라고 한것도 어느 누구가 떠벌이는 소리를 듣고 하는 소릴텐데 정작 따지고 물으면 누구라는 말은 없고 그저 사람들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다고만 했다.

《난 정말 한베락이라면 이에서 신물이 나오. 글쎄 저 혼자 근거지일을 다 하기에 밤낮 웩덱 소리치며 사람을 몰아대? 식량을 내준들 제 식량을 내주게 눈이 세모가 져서 칼침박듯 쏘아보며 탈아쥐고간 자루를 휙 집어던지군할가?》

《그런 일을 여러번 당했어요?》

《쌀 달라고 가면 번번이 그러지 않겠수. 주먹으로 책상을 땅땅 두드려대며···》

《그래 식량부장이 차회장을 해쳤다는 소리는 누구한테서 들었어요?》

《들었수. 들어두 똑똑한 사람한테서 들었다니까···》

《글쎄 그게 누구예요? 그걸 알아야 일을 바로잡을수 있지 않겠어요. 그저 아주머니가 떠도는 소문처럼 알려주어서야 내가 어떻게 문제를 세우겠어요?》

《이보라구 근거지누나.》

을손에미는 얼른 주위를 돌아보더니 두터운 입술을 김정숙동지의 귀에 가져다붙인다. 그리고는 숨을 씩씩거리며 말했다.

《저 큰벌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다우··· 글쎄 그 사람이 송기 벗기러간 나를 붙잡고 앉아 자기가 똑똑한 사람한테서 들었노라고 하면서 한베락이가 차회장을 죽였다지 않겠수. 어이구 기차라···》

《큰벌에 잘 아는 사람이요?》

《거럼···》

《이름은 뭐야요?》

《오동근이라우.》

《오동근···》

김정숙동지께서는 속으로 되뇌이시였다.

《저걸 들짱내라구. 한베락이를 들짱내지 않고는 근거지사람들이 앞으로 낟알두 못타다먹어···》

을손에미는 훌 일어섰다. 치마앞폭을 걷어지르고 중둥매끼를 새끼로 동여매였다. 걷어지른 치마앞폭에 벗겨넣은 송기가 몇오리 있었다. 송기를 벗기다가 달려내려온 모양이였다. 그는 낫자락 쥔 손을 싱싱 휘저으며 풀밭을 걸어갔다. 제 말을 단단히 알아들으라고 기를 올리며 달아나는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두어깨를 낮추고 앉아 생각에 잠기시였다.

점점 더 심장이 떨려오기도 하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일어서 걸으시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있다. 누런 락조에 물든 숲이 저녁바람에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여 설레인다.

구정부마당엔 아낙네들이 하얗게 모여들었다. 곡식이 왔다는 소문이 퍼져 능수리에서 움직일수 있는 녀인들은 거의다 모여온것 같았다. 상촌에서 온 아낙네들도 여럿이 왔다. 김정숙동지께서 돌아다니며 끼니를 끓여주기도 하고 지어는 받들어 일궈앉히고 숟가락으로 죽을 퍼먹여준 녀인들도 어떻게 왔는지 거의 왔다.

모두 빈 자루들을 탈아쥐고 와서 마당가에 가뜩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서늘해지시였다. 씨앗이 왔다는데 빈 자루를 탈아쥔 아낙네들을 이렇게 모아다놓고 어찌려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덮쳐드시였다. 아낙네들이 오라고 해서 왔는가, 저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는가.

김정숙동지께서 마당으로 들어서시자 아낙네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모두 근거지누나를 부르며 울먹울먹해서 쳐다보았다.

《세상에, 얼마나 고생함매?》

《제가 무슨 고생이겠어요. 아주머니들이 고생을 하며 어떻게 견디여내세요? 백산집아주머니두 나왔구만요. 어떻게 걸으셨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허치럭거리며 일어서는 한 녀인을 부둥켜안으시였다. 녀인은 품에 안기며 울었다.

《우지 마세요. 오늘은 제가 되골로 올라갔기때문에 한번 들리지 못했어요. 끼니를 끓여 자셨어요?》

《먹잖구···》

녀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헙 소리를 내였다. 눈물 그렁한 얼굴들이 김정숙동지의 주위를 둘러쌌다. 다들 혀로 쯧쯧 소리를 내였다.

《글쎄 우리야 제 목숨 하나나 살자고 뛰지만 상촌애기야 숱한 근거지식솔을 다 살려내자고 뛰니 고생이 여북하겠소. 쯧쯧, 그 보름달같던 얼굴이 까져서 몰라보게 되였수.》

모두 다가들어 김정숙동지의 손을 만져보고 팔을 만져보고 법석을 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가, 이 아낙네들은 그 누구도 다 부드러운 정, 깨끗한 마음씨로 저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뛰는 김정숙동지를 근거지의 누나라기보다 정말 근거지의 어머니라고 부르고싶은 심정들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당가운데 있는, 방금 가져다 쌓아놓은것 같은 곡식마대들을 한참 바라보시였다. 마대만 있는게 아니라 올망졸망한 자루들도 있다. 물에 젖은 마대도 많았다. 아마 고동하를 건느다가 마대를 적셨는지 모른다.

구정부사무실에서는 들썩 떠드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사무실로 발길을 옮기시였다. 또 빈혈이 와서 눈앞이 핑그르르 도시였다. 그이께서는 잠간 섰다가 간신히 걸음을 옮겨디디며 회장실 문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신발이 가뜩 놓여있었다.

《들어가두 일없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히 문을 두드리며 물으시였다.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인가가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았다. 정부일군이란 일군은 죄다 모여앉은것 같다. 누가 또 김정숙동지더러 앉으라고 했다. 리억겸이 자기가 앉아있는 걸상다리를 삐걱거리며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억겸이 앉아있는 걸상등받이를 붙들며 조심히 구들에 앉으시였다.

독한 담배연기가 방안에 가득차있다.

모두 기가 오른 얼굴을 하고 앉아서 담배들을 피웠다.

《일언이페지하고 빨리 나가서 여라문포대 테서 나누어주어 보냅시다.》

《부회장동무, 그러면 우리 정부란것이 씨앗 들어온걸 범의 차반으로 나누어먹이고 농사는 망쳐도 일없다 하고 앉아있겠단말이요?》

리억겸의 말을 한기천이 반박한다. 한기천은 그래도 낯빛이 핑핑해 앉아있다. 얼마나 다투었는지 벌써 눈물이 솟았다. 양기훈은 얼굴이 새까맣게 되여 말을 못했다.

《난 절대로 씨앗을 나누어주어 사람들 입에 넣으라는 소리를 못하겠소. 그게 소대가 적구에 나가서 어떻게 구해들여보낸 곡식이요? 그걸 우리가 여기 앉아서 마구 나누어먹는단말이요? 그래 저걸 나누어주면 저것 가지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다 들어일으켜냄즉 하오?》

한기천은 구들바닥을 두드렸다.

《아니 여보, 그럼 다 들어일굴수 없다구 죽어가는 사람 놔두고 식량을 땅속에 묻는단말이요? 량심있는가? 당신이 무슨 일이고 그런식으로 밸을 세우니까 지금 밖에선 끔찍한 소문도 돌구있단말이요 응? 나두 인젠 정부에 앉아있기가 얼굴이 뜨끈뜨끈해서 못견디겠소. 서로 저희끼리 찔러죽일내기를 한다고 입 가진 사람은 다 말한단말이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잖소? 그건 장사말가운데 혼사말 아니요?》

양기훈이 리억겸을 나무랐다. 좌중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낯빛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리억겸은 볼을 떨며 말을 계속했다.

《회장동지, 왜 쓸데없는 말이겠습니까? 내가 말이 난김에 말을 좀 해야겠습니다. 저 동무가 지금 이 신성한 혁명정권을 무얼로 만들고있습니까? 우리가 그 풍문을 솔곳이 믿어서 이런 말을 하는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걸고들만한 약점을 가지고있기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겁니다. 정부에 루를 미치게 작풍상 약점이 없는가 응?》

《그 약점이 무어요? 약점이 있어서 원쑤가 걸고든다? 약점이 없으면 원쑤가 걸고들지 않겠는데··· 빌어먹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한기천이 소리를 질렀다.

《군중이 그렇게 말한단말이요, 비슷한 소리라고···》

《뭐, 뭐 비슷한 소리?···》

《왜 비슷한 소리가 안야?》

《당신도 비슷한 소리요?》

한기천은 주먹을 쥐며 불쑥 일어섰다.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것같기도 하고 훌쭉한 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도 했다. 리억겸은 흥 코웃음을 쳤다.

《왜 코웃음이요?》

《식량부장동무, 흥분하지 말고 나가서 좀 쉬오.》

양기훈이 한기천을 달래였다. 그는 식량부장이 종일 몸부림치며 고민했다는걸 아는것이다.

《보자, 어느놈의 입에서 그런 수작이 나왔는가를 알아낼 날이 있겠지···》

한기천은 도로 자리에 주저앉으려고 했다. 그런걸 양기훈이 어서 나가서 쉬라고 잔등을 밀었다. 한기천은 비척비척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시였다. 그 질린 얼굴우에 돋아나는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군 하시였다.

《군중이야 살려내야지, 이 술기막골바닥을 무인지경 만들어놓고야 무슨 혁명을 하겠소.》

누가 한마디 뱉는다.

《아니 땅에다 씨앗 묻자는건 군중을 살려내자는 일 아니요?》

《씨앗을 묻어가지구 살려내길 언제 살려내? 당장 다 죽어가는데···》

《좌우간 한되박씩 나눠주어서 보내게 하우. 식량부장동무가 말하는것도 일리는 있지만 각박한 형편에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소. 씨앗이라도 좀 떼서 먹이는수밖에 더 있소. 어서들 나가 퍼주어보내오. 퍼주어보내되 홉으로 되여서 나누오. 능수리 사람들만 노나먹일게 아니구 큰벌, 되골 사람들한테도 좀씩 올려보내야 할테니까···》

양기훈이 그제야 이렇게 말하며 땀을 씻었다. 리억겸은 목이 시뻘개서 안경을 벗어 닦았다. 사람들이 우실거리며 일어섰다.

모두 문을 열고 나갔다. 리억겸이 먼저 나가며 한되박씩 퍼줄테니 가지고들 가라고 소리쳤다.

《어이구, 이마갓 널직한 부회장이 그저 하정을 알아준다니까···》

아낙네들이 떠들어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굳어진듯 그냥 앉아계시였다. 머리를 휘둘리운듯한 심정이시였다.

《정숙동무도 나가서 한되박 달래가지고 가오. 동무의 축간 모습을 보고 더욱 씨앗을 묻겠다는 주장을 세우지 못했소. 상촌에서 여기로 온뒤엔 장참 굶어지내는게 아니요?》

양기훈이 자기 자리에 앉은채 땀을 씻으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없이 멀끄러미 그를 쳐다보시였다.

《파종문제는 이제 식량도 들어올테니까 그때 겉곡이 들어오면 그걸로 파묻을 료량을 해야겠소. 십상 수수같은게 좀 들어올수 있으니까···》

양기훈이도 후유 큰숨을 내쉬였다.

그래도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이 없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무겁게 일어나 양기훈의 방에서 나오시였다.

밖에선 리억겸이 아낙네들더러 줄을 지어서라고 고함을 지른다. 덮어치지 말고 한사람한사람 량식을 받아가라는거다. 병기창에서 일하는 작달막한 조택구가 신이 나서 씨앗마대를 연방 토방우로 메여날라왔다. 수수마대나 조마대를 고르느라고 마당에 있는 씨앗더미는 온통 헤쳐놓았다. 무슨 씨앗이 들었는지 자름자름한 자루들이 여기저기 딩굴고 어떤 자루는 터져 낟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동이 벌어진 마당을 지나나오시였다. 일이 이렇게 안타깝고 분하고 서러울줄은 몰랐다. 리억겸은 이발이 들지 않을 사람일것 같으니 모르지만 양기훈의 소매깃을 붙잡고라도 이러지 말라고 당부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이제 능수리, 큰벌, 되골, 넓으나 넓은 땅을 다 어떻게 하는가. 기를 쓰고 쪼아엎은 땅이 보송보송 말라가는데 저 땅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오시다가 버드나무밑에 맥을 놓고 앉으시였다. 팔소매를 들어 눈물을 씻으시였다. 웬일인지 자꾸 심약해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아니 거기 앉아서 어째 움매?》

아낙네들이 벌써 량식을 타들고 밀려나오다가 버드나무밑에 이르러 눈들이 둥그래서 물었다.

《어서들 가세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상촌애기한텐 식량을 안주겠다고 합데?》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다. 아낙네들은 모두 둘러서서 눈물을 훔치시는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았다.

《아주머니들 좀 앉으세요. 난 가슴이 아파서 그래요.》

《가슴이? 속앓이를 함매?》

아낙네 하나는 눈이 더 커져서 김정숙동지의 앞에 주저앉는다. 다른 아낙네들도 모두 둘러앉으며 속이 치밀면 문대야 한다고 떠들었다. 뒤를 이어 아낙네들이 밀려나왔다. 그들스스로가 이까짓 닭의 모이나 할만큼 타갈바에는 파종이나 하게 할걸 그랬다고 떠들었다. 모두 날아가던 새떼 걸리듯 김정숙동지 있는데 와서 어째들 이러느냐고 눈들이 덩둘해서 물으며 병풍을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동안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시였다.

《제가 무슨 속앓이를 하겠어요? 전 씨앗이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모두 노나가게 되는 일이 안타깝구 분해서 그래요. 모두 굶어누워있으니 노나다가 한두끼라도 낟알냄새를 쐬는게 좋기야 하겠지만 저 들판을 묵이곤 어떻게 하겠어요. 다 쪼아놓은 들판에 씨앗을 못묻구 그렇게 주먹만큼씩 타가면 그 낟알이 목으로 넘어가긴들 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낙네들은 모두 정색해졌다. 가슴을 문대주겠다고 다가앉던 아낙네는 입을 벌리고 눈물이 맺힌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 아낙네는 김정숙동지의 거칠어진 손잔등을 쓸어주었다.

《아주머니들은 손에 쥐고 가는 그 종곡 한줌이 변변치 않아보일수도 있지만 그 종곡을 공작하기 위해서 적구로 나간 소대야 얼마나 금싸락처럼 생각하며 구해보냈겠어요? 여기 농사가 망쳐질것 같애 한알이라도 빨리 구해들여보내서 땅에 묻게 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뛰지 않았겠어요. 그런 씨앗을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가 땅에 묻을 생각은 없이 한두끼 노나먹어 없애자고 하니 이게 무슨 도리겠어요. 씨앗을 공작해 들여보낸 소대가 이 사실을 알면 가슴을 두드리지 않겠어요? 눈물을 흘리지 않겠어요?》

《그건 그래···》

바로 앞에 앉아있는 아낙네가 눈을 껌벅거리며 한마디 중얼거렀다. 김정숙동지의 눈에 눈물이 있으니 아낙네들의 눈에도 눈물이 괴였다.

《아주머니들이 그 낟알을 가지고 간대야 한두끼밖에 더 자시겠어요. 그렇지만 그 낟알을 땅에 묻으면 몇달 먹을 량식이 생기지 않겠어요. 우리가 낟알이 없어 굶어죽을 형편이라곤 하지만 어떻게 하든지 앞을 내다보며 오래오래 살 생각을 해야 하잖겠어요. 머지 않아 밀보리두 나구 감자두 날텐데 왜 못살겠어요. 그러니까 밀보리나 감자를 먹구 그담에 먹을 곡식도 심어야 하잖겠어요.》

《그럼 심어야 하구말구···》

아낙네들은 또 고개를 끄덕거렸다. 껌벅거리는 눈들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가슴이 아파요. 능수리, 되골, 큰벌형편이야 내가 아주머니들만치 모르겠어요? 내가 가긍하고 눈물나는 형편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앞을 내다보며 살자니 이런 가슴아픈 말을 하잖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며 눈가장을 닦으시였다. 아낙네들이 모두 우르르 일어섰다. 저렇게 가슴아파하는 낟알을 가지고 가서 밥이나 죽을 끓여놓아야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느냐고 떠들었다. 모두 동냥자루같은 낟알자루들을 들고 구정부마당으로 도로 밀려들어갔다. 지쳐서 남의 팔을 붙들고 들어가는 아낙네도 있다. 마당에 밀려들어간 그들은 저희들끼리 빈 마대아구리를 벌리고 자루의 낟알을 쏟아넣느라고 법석을 했다.

《아니 그건 왜 그래?》

토방에서 씨앗을 퍼주던 리억겸이 눈을 흡뜨며 소리쳤다. 양기훈이도 눈이 커져서 내려다보았다.

《우리 생각이 잘못됐어요. 어서 밭에 내다 파종을 하라구요.》

《아니 언젠 달래 인젠 안먹겠대, 무슨 노적들이야?》

리억겸이 눈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낙네들은 대꾸가 없이 연방 자루의 낟알을 쏟아붓고는 돌아서 나갔다.

양기훈은 버드나무 저편으로 다리를 힘겨이 옮겨디디며 걸어가는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니 뒤통수를 되게 후리운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해하며 토방을 왔다갔다했다. 자꾸 기침만 깇었다.

그는 두눈을 슴벅거리며 리억겸이들에게 어서 걷어넣어 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튿날아침이였다. 공청원들이 구정부로 밀려들었다. 어제밤 김정숙동지께서 공청회의를 열고 공청을 씨붙임에 동원시키신것이였다. 온 술기막골 씨붙임을 공청이 다 틀어쥐고 해내려는것이였다. 더구나 공청원들은 씨앗을 노나먹을번했다는 소리에 분개해서 들고일어났다. 오택진이 리억겸을 찾았다. 리억겸은 보이지 않고 양기훈이 나가서 이 늙은게 사람들 굶어죽는다는 생각만 하고 망녕된짓을 했노라고 기가 부푼 오택진을 달래였다.

공청원들이 달려들어 씨앗마대를 한마대씩 지고 일어섰다. 능수리패, 큰벌패, 되골패가 씨앗마대들을 지고 떠들썩 끓으며 떠나갔다. 양기훈이는 구정부 일군들도 따라들서라고 들몰아세우며 자기도 되골패에 섞여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