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한기천은 자기 사무실에서 몸부림치며 돌아갔다. 두눈이 눈같질 않고 황황 불타는 큰 불덩이 같았다. 그는 헐떡거리다간 책상을 탕 치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놈이 그따위 수작을 돌리는거냐, 내가 뭐 차응도를 살해했다구. 어둔 골목에 숨어있다가 길이가 한자나 되는 칼로 찌르는걸 본 사람이 있다고. 이 말이 글쎄 어데서부터 어떻게 시작된거냐. 어느 주둥이를 찢어놓을 년놈이 그따위 수작을 지어낸거야. 그런데 양기훈회장은 동네에 그따위 흉칙한 소리가 떠돌고있으니 경각성을 높여야 하겠다는 말은 하면서도 왜 그 말을 어데서 들었다는 소리는 못해주는거야. 양기훈령감자신도 태도가 이상하단말야. 한기천은 양기훈에 대해서도 욱하고 분기가 솟았다. 그는 자기 방문을 소리나게 열어던지며 급한 걸음으로 양기훈의 방으로 갔다.

양기훈이도 피줄이 동한 얼굴을 하고 앉아서 담배연기를 푸푸 내뿜었다.

《회장동무, 말씀을 죄다 까밝혀 하시오. 어느놈의 입에서 그런 말을 얻어들었는지 그걸 나한테 말해주시오. 내가 지금 그걸 알아내지 않구는 숨이 막혀 죽을것 같습니다.》

《내가 그래서 그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우. 누구라는걸 이야기하면 동무는 지금 당장 그 사람한테 달려가서 따질테지요. 그 사람이 또 누구한테서 들었노라면 그담엔 또 그 사람한테 달려가서 누구한테서 들었느냐고 야료를 들이댈테지요. 그러노라면 동네에 어떤 소동이 일어나겠소. 소동이 일어나면 동무는 동무대로 망신을 당하고 결국 원쑤는 못잡아낼것 아니요.

이러지 말자는거요. 조용히 원쑤의 모가지에 올가미를 걸어보자는거요.》

속이 깊은 양기훈은 벌써 무슨 계략이라도 선듯 단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꼭 조용한 방법이 필요할게 무업니까? 군중앞에 로출시키고 색출해낼수도 있지 않은가요?》

《그따위짓을 하다간 원쑤를 놓치오. 어느놈인지도 모르는데 버쩍 떠들어보시오. 그래 원쑤가 부처님처럼 어서 나 잡아가시오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리라고 믿소? 삼십륙계 줄행랑은 놓지 않구···》

한기천은 그담엔 말을 못했다.

《꼭 각처에서 벌어지고있는 반<민생단>투쟁의 수법이요. 간부를 은밀히 죽이기도 하고 또 군중여론에 돌려 모해하기도 하고··· 저 능지영에서는 그런 도깨비바람이 불어서 온통 현당간부들이 살판치고 돌아간다오. 원쑤들의 획책에 빠져 우두머리들이 칼자루를 잡고 나섰으니 셈판이 있게 되였소? 여기 바로 그런 줄이 뻗어들어오지 않았는가싶소. 무서운 일이요. 었소, 담배나 한대 피우오. 아침에 담배가 없다고 했는데 종일 굶지 않았소? 아까 조삼룡령감네 집엘 가니까 되초를 한쌈지 넣어줍디다.》

양기훈은 담배쌈지를 밀어내놓았다. 그러나 한기천은 쌈지를 도로 양기훈의 앞으로 밀어버리며 이마의 땀기를 씻었다. 여기에 반《민생단》투쟁줄이 들어온것 같다고? 그럼직한 말이기도 했다. 다른곳에서 벌어진 일을 자기도 알만치는 알고있다. 한기천은 치가 떨렸다. 그는 부리나케 도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앞 의자에 쿵 주저앉은 한기천은 피줄이 일어선 이마를 또 어지러운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그도 담배쌈지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한대 말았다. 양기훈은 자기만이 동네에 나가 담배를 한쌈지 얻었다고 생각하며 한기천에게 한대 피우라고 했지만 한기천이도 아까 큰벌에 올라갔다가 한쌈지 얻어넣어가지고 내려왔다.

한기천이 눈물이 그렁해서 한창 담배연기를 푸푸 내뿜고있는데 얼굴이 감실감실하게 탄 국금이가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기천은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네가 왜 나타났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때문에 왔느냐? 어서 앉으렴.》

《왜 우세요?》

《응, 울지 않는다. 뭐 크다란것이 울겠니?》

한기천은 이러며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국금이는 그저 눈이 둥그래서 쳐다만 보았다. 무엇때문에 이 큰 사람이 눈물을 씻으며 이 야단일가. 씨앗과 식량문제때문에 이러는것이 아닐가. 국금이의 생각엔 꼭 그러는것만 같았다.

《그래 요새 먹을것이나 먹고 지내느냐?》

《먹잖구요. 식량부장아저씨는 영 얼굴에 뼈만 남았어요.》

《그까짓 아무런들 어떠냐?》

《그래도 자실걸 못자시니까 그렇게 되지 않아요.》

《못먹을게 무어냐? 다 풀을 먹는데 풀을 먹었으면 됐지. 너희들이 굶을가봐 걱정이다. 그 응석받이가 너한테 성화나 먹이지 않니?》

영금이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성화는 무슨 성화겠어요?》

《그 응석받이를 사랑해줘라. 내가 너의 아버지 생전에 그것의 국수까지도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네 국수도 못먹었구나.》

《아이참···》

한기천은 그제야 속이 좀 훈훈해져서 입가에 웃음을 띠였다.

도대체 어느놈이 무슨 수작을 하면 어떻단말인가, 내가 이것들을 내 혈붙이같이 여기고있는데··· 그 진정에 실오리만한 흠이라도 생기리란말인가.

《그래 무엇때문에 왔느냐?》

《너무도 답답해서 왔어요. 정숙언니는 씨앗이 안온다고 얼굴이 캄캄해서 속을 태우고있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식량부장아저씨는 못찾아오겠다고 해요. 자기보다 속이 더 타할 아저씨한테 와서 무슨 씨앗걱정, 식량걱정을 하겠느냐고요. 오늘아침에도 그 언닌 풀 한줴기로 끼니를 굼때고 되골로 올라갔어요. 그 언닌 정말 몸이 무섭게 상해가요. 그렇지만 제몸 돌볼 생각은 없이 어떻게 하든지 근거지 군중을 다 살려내야 되겠다고만 뛰지 않아요. 군중을 살려내지 못하면 혁명앞에 큰 죄를 짓는다고···》

한기천은 후유 한숨을 내쉬였다.

《씨앗은 언제나 올것 같애요? 땅은 오늘래일이면 다 쪼아엎을것 같대요. 쪼아엎은 땅이 갈풍에 포실포실 마른다고 정숙언닌 애가 타서 잠두 못자요.》

《좀 기다려보자. 그저께밤 군사부장이 또 적구로 떠나갔다. 소대가 어데 가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군사부장이야 핍박한 형편을 보고 나갔으니까 구하든 못구하든 이어 소식이야 보내오겠지.》

《소식이나 보내오면 뭘하게요?》

《왜 소식만 보내올테냐? 씨앗이 들어오겠지. 정숙동무보고 그래라. 이 일 저 일 다 걷어안고 나가며 너무 속을 태우지 말라고···》

《온 아저씨두, 왜 속을 태우지 않겠어요. 이것두저것두 다 군중을 살려내는 일인데··· 그 언니가 삼도만에서 장군님으로부터 무슨 곡진한 과업을 받았는지 알아요?》

《나두 안다.》

국금이는 한숨을 지으며 한참 앉아있었다. 얼마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벽에 걸려있는 한기천의 헌옷가지들을 벗겨서 꾸둥켜안았다.

《그건 왜 그러느냐?》

《빨자구 그래요.》

《놔두려마.》

《놔두긴 왜 놔뒤요. 집에 재물 밭아놓은것도 있어요.》

한기천은 또 검실검실한 눈에 눈물이 그득 괴였다.

밖으로 나온 국금이는 종종걸음을 쳤다. 정숙언니가 되골로 갔는데 자기는 빨리 큰벌로 올라가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앓는 사람들, 굶어서 누워있는 사람들, 큰벌에 시중을 들어줘야 할 사람이 더욱 많았다. 요새는 김정숙동지와 함께 그 일에 붙박혀 뛰였다. 한창 달음박질하듯 걷고있는데 리억겸이 걱실걱실 마주 걸어왔다. 어데 갔다오는지 숙여쓴 모자밑에서 안경이 번쩍거리고 로동복저고리는 벗어서 둘러메였다.

《그게 무어냐?》

리억겸은 걸어오다가 문득 서서 국금이가 안고가는 의복에 눈길을 주었다.

《식량부장아저씨 옷이예요.》

《그건 어디로 가지고 가니?》

《빨아드리려구 그래요.》

《음, 빨아다드려라. 회장령감네 집에 끼니는 붙이고 먹는데 옷은 차마 빨아달라기가 안됐다고 걱정을 했다. 이것 보아라, 진때가 얼마나 올랐어? 온통 진때투성이다. 재물에 부글부글 삶아야 때가 질거다.》

리억겸은 안고선 옷을 펼쳐보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그는 연방 후유 한숨도 지었다.

《부회장동지, 그런데 왜 식량부장아저씨가 울어요?》

《울어?》

《네, 방금 사무실로 들어서니까 혼자 앉아서 울지 않아요?》

《그래, 어째 우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니?》

《어째 우느냐고 하니까 그저 안운다고 하면서 눈물을 씻지 않아요.》

《허허허, 알겠다. 나두 혼자 있을 땐 도둑눈물을 흘린단다. 근거지의 이 암담한 형편을 놓고 울지 않을 사람이 있니? 어서 가보아라.》

국금이는 얼른 지나쳐 걸었다. 구정부에 앉아있는 억대우같은 사람들이 남이 안보는데선 도적눈물을 흘린다니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얼마나 답답하고 애가 타면 그 불이 펄펄 끓는것 같은 눈에서 눈물이 괴여 떨어질가. 하긴 자기 아버지도 그런 때가 종종 있었다. 끼니상을 받았다가도 후유 한숨을 쉬며 어서 너희들이나 먹어라 하고 상을 도로 물렸다. 그런 땐 뿌연 재빛눈속에 눈물이 그득했다. 그 눈물을 자식들앞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삐죽삐죽한 속눈섭을 자주 껌뻑거리며 어흠어흠 기침도 했다. 정말 혁명이란 이렇게 큰 어른들까지도 사정없이 울리는것인가. 국금이는 얼른 안고가는 옷을 들어 제 눈구석에 내배는 눈물을 씻었다.

리억겸은 구정부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도끼목수들이 짜놓은 책상 하나와 걸상 몇개가 놓여있는 방이였다. 그는 웃저고리를 벽에 걸고 걸상에 들어앉아 담배 한대를 말아물었다.

《개자식, 떠벌이지 말랬더니 무슨 허튼수작을 떠벌였어?》

무슨 소린지 한마디 뇌까렸다. 그리고는 이마에 피대가 뻗쳐 담배연기를 푸푸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