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공청파종대는 동녘하늘이 불그레해올무렵부터 농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꿍챙꿍챙하며 북과 꽹과리가 소리를 맞춰 울리기 시작하면 시원한 새납소리가 이어 뒤따라선다. 멋진 가락이 접었던 날개를 펴고 유연히 그리고 둥둥 가벼이 능수리하늘을 굽이굽이 울려가면 하늘은 점점 더 붉은 빛이 타오르고 땅을 덮었던 고동하의 물안개는 꿈같이 밀리고 사람들의 생활은 막을 활짝 연다. 능수리의 하루생활은 농악이 울리는 학교마당에서부터 시작되는것 같았다.

공청책임자로 된 김정숙동지께서는 큰벌에 북, 꽹과리따위 농악기가 있다는걸 알고 파종대안에서 농악을 울릴줄 아는 농악잽이 청년들을 뽑으시였다. 그리고는 그 청년들로 농악대를 조직하고 농악대는 모두 학교 교실에 와서 자다가 신새벽에 메고 나서서 두드리고 불게 하시였다. 온 근거지에 생신한 기운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는것이였다.

농악이 학교마당에서 울리는 바람에 교지기네 집에서 자던 애들과 교실에서 자던 애들이 새벽마다 농악치는 구경은 실컷들 했다. 지금 상촌아동단애들은 본시 비여있던 교지기네 집과 학교 교실에서 살고있는데 곯아떨어지게 자다가도 농악소리만 나면 두눈을 번쩍 뜨며 《또 친다》 하고는 달려나갔다. 몰려나온 애들은 북잽이, 꽹과리잽이들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선 으쓱으쓱 저들도 농악치는 흉내를 냈다.

《야 신난다!》

어떤 애는 농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아침에는 농악소리가 울려도 애들이 몇명 뛰여나오지 못했다. 두눈이 우묵해진 애들이 학교에도 한교실 누워있고 교지기네 집에도 한구들 누운채 일어나질 못했다.

《얘, 저 농악치는 청년들은 잘 먹겠지?》

《힝, 잘 먹을게 뭐야? 어제두 보니까 수수겨떡을 먹던데 뭐.》

《그런데 저렇게 꽹과리, 북을 세차게 칠가?》

《그거야 못쳐? 아무리 배가 고파두 헝겊망치를 휘두르지 못할가.》

교실에 누워있는 애들은 이런 소리를 주고받으며 갈품같이 마른 입술들을 다시였다. 그들은 지금 창자가 홀쪽하게 비였다. 상촌에서 지고온 쌀을 다 먹은지는 이미 오래다. 그 쌀이 떨어진 뒤엔 애들이 내내 칡쌀과 산나물로 살았다.

그러다가 어제저녁엔 그것마저도 푼푼치 못해서 저녁끼니를 먹는둥마는둥 넘겼다. 그래서 모두 몸을 들고일어날 기운이 없는것이였다.

교지기네 집에선 아동단지도원을 하는 분임이도 애들곁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는 박대동네 집에서 태먹은 몸이여서 일이 좀 고되든가 끼니를 설치기라도 하면 이어 몸에 그 대답이 온다. 두통이 오르는가 하면 사지가 물러나는것 같이 쑤시고 일어서려면 마구 휘여박군했다. 오늘아침에도 그런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리상녀는 꿋꿋한 힘으로 일어나앉아 어제 밤중에 얻어온 메밀속깝대기를 망에 갈았다.

《얘 분임아, 좀 일어나서 정부에라도 가보렴. 이까짓걸 갈아야 깊은 소에 돌던지는 격이지 무슨 애들의 량식보탬을 하겠니?》

《어머니, 정부에 가면 뭘해요? 모두 얼굴이 캄캄해 앉아서 공작나간 대걸소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있는데···》

《그럼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겠니? 속수무책이다 하고 애들 굶어죽는 꼴을 보고만 있을테냐? 우리가 누굴 믿겠니? 정부를 믿어야지. 정부에 찾아가서 애들 굶는다는 소리를 자꾸 들여대야지.》

분임이는 할수없이 기를 쓰고 일어났다. 리상녀가 들모는것이 야속한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는 단발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삔도 찾아서 꽂았다. 그리고는 입을 감차게 옥물고 리상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가낼것 같으냐?》

《가지 않구요.》

분임이는 야속스러운것 같은 감정으로 대답을 했다. 아무러면 사람이 아프다는것도 그렇게 세지 않을가. 상녀어머니는 이 험악한 땅에서 애들을 어떻게 살려내겠다고 그렇게 기를 올리는지 알수 없었다.

분임이는 긴 허리를 휘청거리며 부엌으로 내려섰다. 그는 그래도 낟알을 주면 넣어가지고 오겠다고 빈 자루를 탈아쥐고 부엌문을 나섰다. 분임이는 리상녀를 원망해도 리상녀는 또 리상녀대로 나가는 분임이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리상녀의 생각에도 앞일이 막막했다. 지금 온 근거지가 굶는걸 보면 어데 가서 낟알 한알 얻어낼수 있을것 같지 못했다. 술기막골이라니 정말 이럴줄은 몰랐다.

그래도 자기가 부암에서 맞들려 상촌으로 왔을 때엔 상촌엔 낟알도 많고 인심도 좋았다. 그래서 근거지가 좋다는걸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기도 했는데 여기는 어떻게 되여 형편이 이럴가. 하긴 여러 근거지들에서 숱한 사람이 밀려들었다니 그럴수밖에 더 있을가. 장차 이 어린것들을 다 어떻게 살려내는가. 떠나온 상촌생각이 가슴을 우벼파고들기도 하였다.

구정부로 걸어가는 분임이는 사방이 온통 누릿누릿해보였다. 아직 해도 뜨기전인데 누런 해빛속을 걷는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파종대가 지척에서 농악을 울리며 떠들썩 끓는데 그 소리도 아득히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분임이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길가의 나무를 붙잡고 잠간씩 섰다간 또 걸었다.

구정부에 오니 안팎이 조용했다. 들끓을 땐 장마당같이 정신을 못차리게 들끓는데 이런 땐 왜 이렇게 조용한지 알수 없었다. 분임이는 식량부장실앞으로 가서 조용히 식량부장을 찾았다. 대답이 없었다. 또 한번 불러보았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아이참···》

그는 그담엔 누구를 찾아야 할지 알수 없었다. 리범진을 찾긴 찾아야 할텐데 자꾸 망설여지였다. 쌀때문에 왔다곤 하지만 리범진이 그자신도 달리 보고 남들도 달리 보지 않을가. 자기자신이 찾아다니며 그렇게 달리 보도록 만들것이야 있을가싶었다.

지난해 여름 이슬비 내리던 날이였다. 그날 아이들의 식량을 타러 상촌정부로 가니 눈섭이 검실검실한 리범진이 혼자 앉아서 글을 쓰다가 불쑥 일어섰다.

《원 젠장, 비가 와서 고생을 하는구만, 우비가 그렇게도 없소?》

분임이는 옷이 얼마 젖지 않았노라고 대꾸했다.

《내 동무 경력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소. 박대동네 같은놈들의 세상을 때려부시려니 이 고생이 아니요. 혁명을 같이 해봅시다.》

분임이는 자기 경력이란 말을 하는바람에 부끄러워 얼른 얼굴을 숙였다. 그날 리범진은 직접 자기를 이끌고 창고로 가서 량식을 퍼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올 때 비를 더 맞지 말라고 대가 부러져 동여맨 우산을 펴서 들려주기까지 했다. 그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람부는 사막을 가고가다가 진한 꽃향기 풍기는데를 얼른 지나친것 같기도 했다. 분임이는 어찌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항다반으로 있을 이 평범한 일을 두고두고 생각했다. 가슴속깊이에 그윽하고 연연한 생각이 서려왔다. 오늘아침에도 구정부로 향하려니 느닷없이 그 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때, 이렇게 각박한 때 리범진의 얼굴이라도 한번 쳐다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가싶었다. 그러나 분임이는 이런 생각을 늘 무섭게 경계하기도 했다. 한번 길을 잘못디뎠던 자기자신이 이건 무슨 녀자답지 못한 생각을 할가고 자기를 꾸짖고 매질하고 했다. 내가 글쎄 누구를 생각한다는게 다 무언가. 녀자란것이 한번 자기의 길을 걸어보았으면 그만이지 인제 또 무엇을 바란단말인가.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울렁거리였다. 분임은 그러는 자기가 미워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아무래도 그냥 돌아설수가 없어서 맘을 굳게 다잡으며 리범진을 찾았다.

《군사부장동지!》

대답이 없었다. 그는 또한번 불러보았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그는 벽을 짚으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였다.

얼마후에야 그는 이 문 저 문 두드리며 잡아당겨보았다. 문마다 죄다 걸려있었다. 문 하나가 열리는데 그건 사무실이 아니고 무슨 물품창고 같았다. 빈 마대가 수태 쌓여있고 비자루같은게 널려있었다.

《회장동지!》

양기훈의 방문도 두드리며 불러보았다.

그러나 양기훈이도 대답이 없다. 모두 어데로 갔을가?

인기척없는 빈 처마밑에 제비가 날아들어 지저귀였다. 그래도 이 쓸쓸한 바람이 차있는것 같은 집 어느 구석에다 둥지를 틀가고 부리를 모아대고 지저귀는것 같다.

분임이는 눈에 눈물이 괴여 정부마당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걸어나오다가 큰길옆 버드나무밑에 조용히 앉았다. 다리가 쑤시고 온 뼈마디가 물러나는것 같이 아팠다. 그는 한참 앉아서 쑤시는 다리를 주물렀다. 자꾸 나른해오며 눈이 감겨지였다. 이대로 그냥 이 세상에서 눈을 감고말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정말 앞이 막막했다. 어데로 가야 살아날 길이 있겠는지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혁명이 어렵고 간고하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간고하고 기가 막힐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숱한 합숙애들을 어떻게 살려낸단말인가.

벌써 술기막골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대걸이의 소대가 식량공작을 나갔다한들 어데 가서 이 근거지의 숱한 사람이 먹고 살아갈 낟알을 공작해오겠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사정을 누구와 속터놓고 이야기라도 한단말인가. 정숙이는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발을 굴러치며 놀라겠지. 혁명을 비관한다고 사정을 보지 않고 꾸짖겠지. 그 억세고 이악한것이 여기 와서도 공청을 책임지고 제 고생은 돌보지 않고 남을 살려내겠다고 뛰는걸 보면 보이는 앞날이 있어서 그러기야 하겠지. 그렇지만 그 보이는 앞날이 어떻게 보이는 앞날대로 될테란말인가. 내 눈엔 감감 보이지 않는 그날이 어떻게 정숙동무의 눈에만 보일테란말인가.

분임이는 몸이 노곤해오는대로 버드나무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앞을 내다보았다. 들판엔 공청파종대가 주런이 나가붙었다. 정숙이가 공청책임을 진 뒤엔 파종대도 더 극성인것 같다. 밭머리에 꽂아놓은 붉은 기발이 기세차게 날렸다. 정말 파종대로 하여 충격받은 농민들이 오늘은 더 많이 나가붙었다. 소도 여러마리 보인다. 어제 밭에서 소 한마리가 죽었다고 떠들썩했는데 그래도 자꾸 끌어내다 세우고 채찍질을 하는것 같다. 어쩜 저렇게 기세차게들 해낼수 있을가. 그래도 무얼 먹은게 있기에 저렇게들 뛰지 않을가. 나처럼 이렇게 사지가 쑤시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하늘땅이 누렇게 변해보여서야 무슨 땅을 파낼수 있을가. 분임이는 두어깨를 낮추며 또 한숨을 지었다.

이러는데 금실이가 마을앞 큰길로 바삐 걸어내려왔다. 무얼 넣은것 같은 자루도 한손에 들었다.

《아니 왜 여기 와 앉아있어요?》

땀이 함빡 난 금실이가 앞에 와서며 물었다. 그의 모습도 올 때 모습 같지 못했다. 목이 성큼해지고 허리도 가늘어졌다.

《구정부에 왔다가 가는길이예요. 자루의건 뭐예요?》

《큰벌에 가서 쌀을 좀 구해가지고 온다우. 음전아주머니를 추세우자고···》

《어쩜···》

분임이는 쌀이라는 말에 놀라는 소리가 절로 나갔다. 쌀이래야 자루에 든것이 두어되박 될가말가는 하지만···

《아이 더워라!》

금실이는 손부채질을 하며 분임이의 곁에 들어앉았다.

《언니도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나타났군요?》

《그럼 나타나잖구. 풀과 칡쌀로 살아가는데 얼굴인들 제빛으로 있겠어? 그까짓 주근깨가 혁명을 못하게 하겠어요?》

금실이는 웃었다. 분임이도 시무룩이 웃었다. 역시 금실이도 자기 같지는 않은것 같다. 다기차게 무얼 해내자고 뛰는것 같다.

《글쎄 정숙동무는 어떻게 하든지 동가촌 맏동서를 빨리 추세우라는거죠. 그래서 이 쌀두 정숙동무가 이야길 해서 가져오지 않아요.》

《동가촌 맏동서는 무슨 맏동서야요?》

《호호호, 나보다 두살 우이라기에 맏동서 내자고 했지. 글쎄 독하긴 독하지 않아. 혁명을 하겠다고 어린애까지 남의 집 울바자굽에 눕혀놓고 왔다니···》

《어쩜 제 아일 그렇게···》

《정숙동무는 그 맏동서를 빨리 추세워가지구 이 근거지에서도 아낙네들의 힘을 묶어세우겠다는거야요.》

분임이는 또 《어쩜》소리를 했다. 지금 기아가 덮어쳐 사람이 모두 죽음의 함정으로 밀려들어갈것 같은 형편인데 아낙네들 힘을 묶어세우겠다니 그저 해보느라고 한 말이겠지 진담으로야 그런 말을 했을가싶었다.

《언닌 여기서 무슨 부녀회사업같은게 될것 같애요?》

《그럼 되잖구···》

《다 누워있는데 무슨 부녀자들 가지구 부녀회를 하겠어요? 오죽했으면 부녀회장하던 녀자도 땅파다가 밭머리에서 숨을 거두었겠어요?》

《그렇다고 부녀회를 어떻게 아주 저세상 간것 같이 내버려두겠어요?》

금실이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앞이 막막한지 호 한숨을 짓는다. 분임이는 금실이에게 언니는 앞이 보이느냐고 물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분임동무, 극복해보자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요. 아무렴 우리가 이 술기막골근거지에서 꺼꾸러지고말겠어요? 혁명을 한다는 우리가 말예요. 난 고생이란것두 맘먹기탓이라고 보아요. 이걸 어떻게 살아내겠는가 하고 근심을 하기 시작하면 손끝하나 놀리기가 귀찮아지고 힘들어지고 다 모르겠다 하고 쥐여뿌려던지고싶어지는거예요. 그렇지만 앞을 내다보고 살면 기운두 씽씽 나구 힘든 일도 헝그러워지구··· 아니 어째서 목을 꼬며 눈을 감아요?》

《맥이 없어서···》

금실이는 얼른 분임이를 받들어 일궈주었다. 그는 그담엔 분임이가 듣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것 같아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얼마후에야 그들은 버드나무밑에서 일어섰다. 분임이는 아동단합숙을 향해 걷고 금실이는 음전이가 있는 집으로 넘어가는 비탈길로 종종걸음을 쳤다.

금실이도 공연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분임이의 일이 어쩐지 내일같은 생각도 들었다. 저게 정말 숱한 아이들의 치닥거리를 하면서 무얼 얻어먹지도 못하고 빈 자루를 탈아쥐고 뛰여다니려니 모습이 저 몰골 되여가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넘어 음전이가 있는 집에 오니 집안팎이 조용했다. 큰방집 식구들이 모두 일을 나간것 같았다. 큰방집 아낙네 울손에미는 왜놈앞잡이의 녀편네한테 몰려다닌다고 두터운 입술을 비쭉 내밀고 찡그린 얼굴로 보기가 일쑤였는데 마침 없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실이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음전이는 기를 버리고 누워있는데 몸에 부기까지 났다. 먹는건 없는데 무엇이 들어가 눈가장이 우둥부둥해지는지 몰랐다.

《성님 좀 어때요?》

금실이는 곁에 앉으며 물었다. 음전이는 부은 눈덕을 간신히 밀어올리며 쳐다보았다.

《수고했어요. 동서!》

《성님, 왜 이렇게 돼요? 어제보다 더 붓지 않았어요?》

《그저 그렇지···》

금실이는 음전이의 팔목을 잡았다. 팔목도 좀 부은것 같았다.

《숨이 차요?》

《차오···》

음전이는 한참 물기머금은 눈망울로 쳐다보았다. 방금 숨이라도 넘어가는것 같은 정상이였다.

《동서두 남편이 능지영으로 갔다지?》

《그래요···》

금실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음전이의 남편이 《민생단》으로 몰려 희생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쩜 자기 남편의 소식이라도 듣는것 같아 가슴이 선뜩했는데 또 그런 비수가 와서 가슴을 쿡 찌르는것 같았다. 음전이의 말은 그 험악한 곳에서 자기 남편이 무서운 불행을 겪으리라 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일없겠지, 무시무시한 판이라고 다 나쁜놈들의 오라줄에 걸릴가?》

《성님,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해요?》

《그저 걱정이 돼서 그러지 않수.》

《내 남편은 그렇게 잡힐 사람이 아니예요. 리론도 있구 힘도 있어요. 난 그러게 능지영 하늘을 빙빙 날아돌아가는 독수리같은 인상으로 남편을 생각해요. 창끝같은 부리로 나쁜놈들의 멱살을 찍어당기면 당겼지 그 독수리가 잡혀요?》

금실이는 눈가장이 새파래서 부르짖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수.》

《뭐 말을 잘못한거야 있어요?》

음전이는 그담엔 말을 안했다. 부기가 난 손으로 자꾸 금실이의 손잔등을 쓸어주었다. 눈귀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실이는 얼른 일어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음전이에게 먹을걸 끓여줄 생각도 없이 부엌드렁에 걸터앉아 괜히 더 숨이 차서 쌔근거렸다. 정말 남편생각이 버쩍 솟아올랐다. 당장 능지영으로 달려가고싶었다. 정숙동무는 자기 남편이 능지영에 가서 아무일없이 잘 싸우고있다고 했지만 그 속깊은 동무가 나를 달래느라고 하는 소린지 어떻게 알겠는가? 금실이는 능지영으로 가고싶은 생각이 불같아졌다.

이러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부엌으로 들어서시였다.

온 얼굴에 땀이 함빡 났다.

어데로 바삐 돌아다니였는지 고무신 신은 발이 젖기도 하였다. 무엇인가 닭의 염통만 한, 헝겊에 싼걸 치마끈에 매달고 오시였다.

《왜 이러고 앉아있어요. 빨리 끼니를 끓여서 대접하지 않구···》

《인제 끓이지···》

금실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음전이한테로 들어가시였다. 음전이는 혼자 울고있었다.

《아주머니, 울지 마세요. 무슨 눈물을 자꾸 흘리세요. 방금 의사가 큰벌로 올라가면서 오후에 여기 들리겠다고 했어요.》

《정숙동무, 고마와요. 이건 뭘 이런걸 치마끈에 매달고 다녀요?》

《금산집 어린애가 젖을 얻어먹지 못한다기에 암죽 끓일 쌀을 큰벌에서 한홉 얻어서 닦아가지고 왔어요.》

《원 애들 암죽쌀을 다···》

음전이는 김정숙동지의 저고리앞섶을 자꾸 쓸어내렸다.

얼마후 부엌으로 도로 내려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도 금실이가 부엌드렁에 퍼더버리고 앉아있는것을 보고 놀래시였다.

《언니, 어디가 아프세요?》

《아프긴···》

《그럼 어째 그렇게 기맥을 풀고 앉아있어요?》

《분임동무가 몹시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인제 오다가 구정부앞에서 만났는데 영 지쳐서 헐헐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여기서 과연 혁명을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자기의 그늘 비낀 심정을 분임이를 빌어 한번 비쳐보는 말이기도 했다.

《언니, 왜 힘들어하지 않겠어요. 이곳에서 지금 그 누가 힘들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힘들어두 해내야 해요. 힘든걸 밀고나가는게 혁명이 아니겠어요.》

《그래두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아요.》

《참 언니두, 그렇게 말한다면 언닌 뭐 불쌍하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롱절반으로 말씀하며 웃으시였다. 금실이도 웃기는 하였으나 볼편이 불그레해졌다. 사실 김정숙동지께서도 분임이에 대한 자신의 맘속을 다 말하지 않으시였다.

좀전에 큰벌에서 내려오다가 애들이 아침끼니나 해먹었는가 해서 아동단합숙에 들리니 분임이는 눈물이 글썽해 방구석에 앉아있었다. 애들 끼니를 해먹였느냐고 물으니 리상녀가 송기죽을 쒀서 한사발씩 먹였다고 대답했다.

나올 때 분임이를 다시 쳐다보니 돌아앉아 울고있었다. 신개동 박대동네 집에서 뽑아내온 분임이가 상촌에서 큰 시련을 못겪었으니 이곳의 고통을 이겨내기 어려우리란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혁명의 길을 그만치라도 걸어온 그가 눈물만 짜고있을수 있을가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일이 안타깝고 노엽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이 말을 금실이에게 다 해주고싶진 않으시였다.

《정숙동무, 난 아무래도 능지영에 한번 가봐야겠어.》

《능지영엔 어째서요?》

닦아가지고 온 암죽감좁쌀을 부엌바닥돌절구에 찧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금실이는 새빨간 얼굴을 다소곳하고 앉아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글쎄 방안의 맏동서이야기를 들으니 맘이 자꾸 들썽거리고 불안스럽지 않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음전아주머니가 불행하게 됐다고 해서 언니한테도 무슨 불행이 있으리라는 법이야 없지 않아요?》

《뭐 그런건 아니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담엔 한참 말을 안하시였다. 그저 은연중 마음속깊이 짐이 또 하나 무겁게 실려오는것 같은 느낌을 받으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짐짓 웃는 얼굴로 말씀을 꺼내시였다.

《언니, 맘을 다잡으세요. 희섭선생만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겠어요. 우리도 어려운 형편에서 싸우고있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 언니가 능지영에 가면 그전날 태봉시에 있다가 상촌에 갔을 때와 같이 희섭선생이 어서 돌아서라고 성을 내진 않겠어요. 그리고 거기도 다 해산됐겠는데 희섭선생이 능지영에 있기나 하겠어요?

언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구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없는 근심두 생기구 손끝도 까닥거리고싶지 않아 일도 못해요. 언니가 지금 여기서라도 억세게 일을 잘하면 희섭선생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뒤날 만나면 술기막골에서 수고를 했다구 손마디가 얼얼하게 악수를 해주지 않겠기에 그래요.》

《어이구 악수나 새나. 그깐 량반 골탕을 먹겠으면 먹구 내가 옥생각을 했댔어. 인제 한 말은 취소야.》

금실이는 낯을 붉히며 웃었다. 김정숙동지의 말에 마음이 가벼워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끼니 끓일 차비를 했다. 쌀을 가마에 안치고 아궁속에 섶나무를 와짝와짝 꺾어서 밀어넣었다. 팔뚝같은 나무도 무르팍에 대고는 우지끈 꺾었다.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얼굴엔 콩알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도 분임이같이 아주 주저앉지 않고 희섭이 늘 말하듯이 양은쟁개비 끓듯 끓기라도 하니 좋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찧어낸 암죽가루를 다시 헝겊주머니에 넣어 치마끈에 차시였다. 그리고는 총총히 밖으로 나서시였다. 배가 몹시 고프시였다. 어제저녁 송기죽으로 끼니를 굼때고는 아직도 자고난 그대로 빈속이시다. 빈속으로 파종대에 나가보고 또 큰벌 량식 떨어진 집들에서 무얼 끓여먹기라도 했는가 해서 집집을 돌아다니며 보다가 내려오시였다. 그러니 몸이 휘청거리고 시장기가 날밖에 없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넘어 한참 걸어오다가 개울가에 와앉아 세수를 하시였다. 눈앞에 엉망으로 덮어치는 일을 헤쳐나가기가 조련치 않기도 하시였다. 배가 고프고 일이 힘드는건 몰라도 이모저모에서 가슴쓰린 정이나 우벼내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물가에서 훌 일어서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국금이네 집에 가면 입에 넣을게 한숟갈이라도 있을가싶어 그쪽으로 달리시였다. 푸른 방석을 깐것같은 풀밭우로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이리 날고 저리 난다. 얼른 떠오르는 생각은 날개라도 있으면 제비들같이 가벼이 날며 눈물의 이 현실에 기쁨의 이슬비라도 뿌리고싶으시였다.

국금이네 집에 오니 영금이가 정말 그렇게 자기 생활에 기쁨을 뿌리며 사는것 같기도 했다. 그는 부엌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벌써 식전에 땔나무도 한지게 해내려왔다. 차응도가 둘째딸 영금이에게 주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곰방지게가 있는데 그 지게에 삭정이가 한짐 짊어지운채 뒤로 나가번져져있다. 아마 나무를 해다놓고는 무슨 일이 급해서 바줄도 풀지 못한채 집안으로 달려들어간것 같았다.

얼른 들여다보니 부엌에서 그릇을 부시며 노래를 부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살금살금 마당으로 걸어들어가 부엌문뒤에 붙어서시였다.

 

언제면 울아버지 내곁에 오나

학이 되여 퍼벌펄 날아 못오나

 

《무슨 청승궂은 노래냐? 그런 노래를 또 불러?》

김정숙동지께서는 문을 두드리며 발을 구르시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영금이는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부엌문밖으로 뛰여나왔다.

《언니! 언니! 호호호.》

영금이는 두발을 모두구르며 깡충깡충 뛰였다. 그렇게 놀래워주니 기쁘고기뻐서 어쩔줄 모르겠다는거다. 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밀어내주며 기쁨을 가져온 언니! 영금이는 그 언니가 늘 이렇게 좋았다.

《됐어. 그만 뛰래두.》

《왜, 난 자꾸자꾸 언니품에서 뛸테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영금이를 꽉 다가안으시였다. 영금이도 언니를 꽉 부둥켜안았다.

《영금아, 넌 오늘을 어떻게 생각하니?》

《언니, 무엇말이야요?》

《오늘 이렇게 사람들이 굶고 쓰러지고 하는 문제를말이다.》

《그야 혁명을 하고 조국광복을 하자니까 그렇지뭐···》

소박한 말이다. 옳은 말이기도 하다. 영금이의 입에서 그 이상의 대답을 어떻게 들으랴, 자기가 이 소리를 어째서 이 귀염둥이 소녀에게까지 묻는가, 이게 핍박한 현실을 이겨나가기 힘들어하는 소리는 아닌가, 내가 힘들어한다면 누굴 어떻게 이끌어내겠는가, 이 기아가 덮어친 암담한 땅에서 맘이 뒤흔들려 손맥을 놓는 사람들이 앞에서도 나타나고 뒤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들에게 그 누가 장군님을 우러르며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싸우라고 손잡아 이끌어주겠는가. 그 누가 밝은 앞날을 내다보며 힘을 내서 싸우자, 마음의 기둥을 튼튼히 가지고 살자 소리쳐주며 어깨겯고 나가겠는가.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삼도만에서 장군님을 우러러 뵈옵고 그 위대한 말씀을 새겨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지금 이 귀염둥이에게 무슨 말을 물었는가. 무슨 당찮은 말을 물었는가.

《영금이, 내가 잘못 물었어.》

《뭐가 잘못 물었다는거야요?》

《호호호, 그저 아무것도 아니야. 너두 투쟁을 잘해야 해···》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번 영금이를 다가안으시였다. 그리고는 그의 보드라운 머리칼에 볼을 문지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