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3

 

제 2 장

3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용대형제가 희생된 후 마음에 아픈 상처를 안으신채 현관내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매일같이 근거지마을을 돌아다니시였다. 20리, 30리, 때로는 5∼60리씩 떨어져있는 마을에 나갔다가도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을 살려내시려고 밤길을 걸어 돌아오시군 하시였다. 현공청의 한동길이며 평강촌의 정부회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적 《토벌》때 놓여난대로 목숨이나 건지자면 얼마든지 살길이 있었지만 반혁명의 루명을 쓰고는 살수도, 죽을수도 없다고 뻗대다가 도로 잡혀들어갔다. 김기도패들은 적들이 달려들자 경황없이 달아난 자기들의 몰골을 근거지사람들이 다 보았고 《민생단》이라고 잡아가둔 사람들이 맨주먹으로 왜놈 《토벌대》와 맞서 용감하게 싸운것도 온 근거지가 다 아는것만큼 한꺼번에 다 죽이지는 못하였지만 언제 또 악착한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살얼음판을 건느듯 아니아니한 심정으로 오직 장군님 돌아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시였다.

그런데 근거지마을들을 돌아보시니 김기도패거리들의 독스러운 손길은 비단 능지영에만 박혀있는것이 아니였고 그놈들이 해치는것도 혁명가들의 목숨만이 아니였다.

삼도만에 나와서 아동단사업을 료해해보시니 말이 아니였다. 우선 몇명 뭉치지도 못했고 공청은 아동단지도사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공청책임자란 어느 학교에서 교원을 하던 청년이라는데 말끝마다 능지영당현위소리를 껴들며 우들우들 떨기만 하였다.

김기도, 오상묵이들은 대렬쇄신을 부르짖다 못해 아동단도 어린이들의 볼쉐비크적조직이여야 하는것만큼 채로 쳐서 도글도글한놈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리먹였다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것이 바로 충실한 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죽인것과 같은 비수가 아동단사업에 들이박힌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끼고 격분에 치를 떠시였다. 그러나 현위의 지시가 그러하니 어쩌는수 없다는 외마디소리밖에 할줄 모르는 공청책임자를 아무리 타일러보셔야 겨섬에 못질하는것과 같아서 반응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하루동안 선떡 먹은것 같은 공청책임자와 이야기를 하고나서는 자신께서 직접 아동단실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동단지도원을 찾으시다가 아동단원들이 모여들어 총을 만드느라고 법석하는 병기창으로 가시였다. 이곳 병기창은 상촌병기창같이 어느 산속에 있지 않고 마을한판 집이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데 자리잡고있었다. 알아보니 이 병기창에선 작탄같은건 만들지 않고 무기수리를 위주로 하는데 요새는 농기구 벼리는 일이 더 바쁘다는것이였다. 그러니 병기창이라기보다 야장간이란 말이 나을듯싶었다.

정말 가보니 야장간은 큰 야장간이였다. 농민들이 들끓고 애들이 들끓었다. 웃동을 벗은 장정 여럿이 휘친거리는 쇠메를 휘둘러쳤다. 모루앞에 앉은 야장쟁이들은 연방 소탕에서 시뻘겋게 단 쇠를 집게로 집어냈다. 애들도 모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무슨 총을 어떻게 만드는지 땀을 줄줄 흘리며 단쇠를 두드려댔다. 애들 대여섯은 쇠붙이를 줄칼로 쓱싹쓱싹 쓸었다. 야장간앞엔 구경군애들이 병풍을 쳤다. 몇십명 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제길 네까짓것들이 총을 안만들면 혁명을 못하겠기에 그러니? 저리 좀 비켜라. 메바람에 골통 깨지겠다.》

《헹, 메바람이 다 뭐야. 우리가 총만 만들어보지. 아저씨 머리에다 대고 한방 땅하고 갈길테야.》

《이놈의 자식, 왜놈을 쏘지 않고 아저씰 쏴?》

야장간에서 애들과 어른들이 떠들썩 끓는다.

《얘, 너희 아동단지도원이 어디 있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야장간앞에 둘러선 애 하나를 붙들고 물어보시였다.

《몰라요. 우린 아동단 안야요.》

《아니, 그럼 어느 애가 아동단이냐?》

《저기 총 만드는 애들이 아동단이야요.》

《그럼 너희 구경하는 애들은 모두 뭐구?》

《우린 꼴군이야요.》

《뭐 꼴군?》

《소 먹이는 애 몰라요. 아동단 아닌 애는 다 꼴군이래요.》

애는 눈까지 찔 흘기며 종알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섬찍하시였다. 병풍을 친 숱한 애들은 다 꼴군이고 야장간에서 뚝딱거리는 애들 몇만이 아동단원이라니 이것이 바로 아이들의 순진한 가슴에 박히는 비수가 아닌가. 볼쉐비크적조직이요, 삐오네르요 하고 떠들던 오상묵의 상판이 얼른 눈앞으로 스쳐가기도 하시였다. 격분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총 만드는 애를 한명 불러낼가 해서 애들을 비집고 야장간안으로 한걸음 들어서시였다.

《동무들이 아동단원이야요?》

《넷.》

여기저기서 애들이 땀투성이 얼굴을 들며 대꾸했다. 망치, 집게, 쇠붙이따위를 들었는데 모두 눈들이 시뻘겋다.

《동무들 지도원이 어데 있어요?》

《집에 있어요.》

제일 조그만 꼬마가 흘러내려간 바지괴춤을 춰올리며 대꾸했다. 그러더니 한마디 더 보탠다.

《지도원이 우리 누나예요.》

《그래, 그럼 나 좀 만나게 해줄수 없어요.》

《어데서 왔나요?》

《난 능지영에서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꼬마의 뒤머리를 쓸어주며 앞세우셨다. 꼬마는 야장간에서 나오다가 둘러선 애들을 어깨짓으로 밀쳤다.

《이자식!》

《뭐가 어째? 너들 우리 총 만드는데 뭘하러 왔어?》

《왔는데 어떻단말야? 이자식 보자보자하니까···》

뒤에 서있던 큰애가 닁큼 나서더니 꼬마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자식이 아동단원 멱살 잡는다.》

《개수작 말아. 너 오늘 뼉다귀 불러지겠니?》

《이자식, 너 죽어보겠니?》

꼬마가 조그만 주먹으로 큰애를 한개 올려붙였다. 그러자 큰애도 갈기기 시작했다. 야장간안과 야장간밖에서 패주라는 소리가 일어났다.

《이런 망할녀석들 봤나? 총을 만든다기에 야장간을 빌려주었더니 모여들어 패싸움을 해?》

메질군들이 뜯어말렸다. 땅에 메때리웠던 꼬마는 흙투성이가 되여 일어나며 또 큰애를 치자고 덤볐다.

《네따위 꼴군들이··· 덤벼라!》

《이게 무슨 짓이예요? 동무들끼리 이렇게 싸우면 돼요? 어서 돌아서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꼬마를 붙안고 돌려세우시였다. 꼬마는 놓으라고 팔굽질을 했다. 그러는것을 그러면 못쓴다고 뒤통수도 쓸어주며 가까스로 돌려세워 밀고나오시였다.

김정숙동지의 말씀은 부드러웠고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은 따뜻하였으나 이때 그이의 가슴에는 꼭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힌 창고로 밥을 해이고 가는 때와 같은 의분이 끓고있었다.

꼬마는 흘러내려간 바지괴춤을 춰올리더니 주먹을 쥐고 냅다 걸었다. 땅에 메때리우는바람에 뒤통수에도 흙이 묻었다.

《동무들끼리 그렇게 싸우면 못써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통수의 흙을 털어주며 나무라시였다.

《피, 그까짓것들은 때려줘야 해요.》

《왜 때려줘야 해요? 같은 동무들끼리···》

《체, 동문 무슨 동무야요. 아동단원도 아닌데···》

《아동단원 아니라도 왜 동무가 아니겠어요? 그 애들은 왜 아동단에 못들었어요?》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그렇게 많이 뭉치면 아동단값이 떨어진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나 어이없어 웃으시였다. 점점 더 기막힌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는가.

꼬마의 집은 병기창뒤에서도 마루턱 하나를 넘어가 있었다. 집앞에 거의 가니 키가 작달막한 처녀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내다보았다.

《누나, 능지영에서 어떤 누나가 찾아왔다.》

꼬마가 앞서 들어서며 소리쳤다. 처녀는 눈이 둥그래서 내다만 본다.

《수고해요, 난 현공청에서 왔어요.》

《어마나···》

처녀는 머리태를 흔들고 돌아가며 서둘러 빨래버치를 힝 들어 퇴지우에 갖다놓는다.

《왜 빨래를 널지 않고 버치를 치워요. 나두 함께 널자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퇴지우의 빨래버치를 도로 마당에 내려다놓고 방금 개가에서 빨아가지고 들어온듯한, 비틀어짠 빨래를 꺼내서 줄에 펴널으시였다.

《난 현공청지도원이야요. 이름은 김정숙이라 불러요.》

《어마나, 난 정말 현지도원인것두 모르고···》

처녀는 둥근 얼굴이 붉어져 자꾸 어마나 소리를 지른다. 무척 순해보이고 입가엔 내내 부끄럼을 타는 웃음이 함빡 어렸다.

그도 빨래를 널었다. 무슨 헌옷을 묵여두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빨았는지 비틀어짠 빨래가 버치에 그득했다. 중의적삼, 치마, 무슨 애들 기저귀같은것도 빨았다. 모두 해져서 줄에 펴너는데도 바륵바륵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난 아동단사업을 함께 해보자고 내려왔어요.》

《어쩜···》

《와보니 혼자서 무척 애를 쓰는것 같군요.》

《내가 뭘 하는게 있다구요. 난 아직 신문두 제대루 읽지 못해요. 그래서 공청책임자는 날···》

《동무를 뭐라구 해요?》

《까막눈을 빼고 올빼미눈을 박아야겠다고 을러메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처녀의 소박한 말을 들으니 가슴이 밝아지는것을 느끼며 웃으시였다. 처녀도 고개를 꼬며 웃었다. 정말 닥달된 구석이란 꼬물만치도 없다. 품에 꼭 끼고싶은 련민의 정이 가기도 하시였다.

《그래 아버님이랑 어머님이랑 계셔요?》

《아버지, 어머닌 다 돌아가시구 할아버지만 한분 계셔요.》

《동생들은 여럿 있어요?》

《오뉘야요.》

《어머니두 안계신 살림을 하면서 아동단사업까지 맡았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자신의 부암생활이 추억되기도 하시였다. 처녀의 신세가 그때 자신의 신세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처녀가 얼마나 고달픈 세상살이를 헤쳐나가며 이 낮은 처마밑에서 눈물의 어린나이를 세여넘겼을가싶으셨다. 가슴이 아프시였다.

《누나, 내가 꼴군새끼들 때려줬다.》

방안에 들어가 무얼 한참 덜거덕거리며 뒤지던 꼬마가 철사타래를 들고나오며 누나에게 말했다.

《뭐, 꼴군애들은 왜 때려?》

《그 새끼들 내 턱주가리 쳤다.》

《턱주가린 왜? 맞을 짓을 한게구나. 너 쌈했다간 아동단규률을 볼테야.》

누나가 을러메였다. 이런 때 보면 처녀가 손탁은 있는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빨래를 다 널고나서 처녀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아동단사업을 어떻게 하고있는가를 료해해보시였다. 처녀는 그래도 애들을 영 송아지떼 길들이듯하지는 않았다. 하루 한번씩 자기 집마당에 모아세우고 어떻게 놀라는 주의도 주고 싸운 애가 있으면 불러내다세워놓고 다시 그러겠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십여명 되는 애들의 명부라는것도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웃방 바람벽에 조그만 칠판도 달아놓고 밤이면 까막눈이란 말을 듣는 처녀자신이 글도 가르친다고 했다.

《글은 무슨 글을 가르치세요?》

《기윽 니은이죠. 내가 기윽 니은밖엔 모르는 정도니까···》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고 처녀도 웃었다. 그래도 처녀는 웃음이 아까 마당에서 웃던 웃음처럼 부끄럼 타는 웃음은 아니였다. 속을 깡그리 주는것 같은 웃음이였다.

《봉희동무!》

처녀는 이름이 봉희였다.

《아동단을 왜 이렇게 옹졸하게 해요? 내가 인제 오다가 보니 야장간 주위에 아동단아닌 꼴군이라는 애들이 성을 쌓고 서서 아동단원들이 총 만드는걸 부러운 눈으로들 바라보고있지 않아요. 그 애들을 죄다 아동단에 들이면 못써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상급의 지도원이라기보다 자신의 동생을 상대하는것 같은 따뜻한 정이 솟아올라 연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봉희는 눈이 둥그래서 또 어마나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요? 그 애들을 다 뭉쳐가지고 이 삼도만이 들썩하게 아동단을 한번 크게 해보면 나쁘겠어요? 기발을 들고 행진해가며 북도 치게 하구 큰 집이 툭 터져나가게 야학도 열구···》

《현에서 그러라구 해요?》

《누가 그러라고 하길 바라겠어요?》

《아이참 언니두, 여기 공청책임자한테 그런 말을 했다간 변날거야요. 아동단원 하나를 받는데도 별걸 다 따지라는거야요. 애가 똑똑한가, 애아버지가 과거에 제밭 가지구 농사짓지 않았는가, 애어미가 어떤데서 시집을 왔는가, 일가친척중 돈냥이나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는가, 이걸 다 따져보면서 받으라는거야요. 채로 치구치구 해서··· 그러지 않다간 능지영으로 붙잡혀간대요.》

봉희는 눈이 커져서 설명했다.

《그래 봉희동무는 그 소리가 옳다고 생각해요?》

《내가 뭐 그런걸 어떻게 알겠어요?》

《아동단지도원을 하는 동무가 왜 그런걸 모르겠어요. 실지 아동단을 해보니 어때요? 한 십여명 뭉쳐가지구 다른 애들을 다 꼴군이라고 밀어던져서 아동단과 꼴군 사이에 패싸움이 나게 하고 그게 좋아요?》

《···》

《우리가 애들을 그렇게 길러서야 되겠어요? 편이 갈려서 싸우게말예요. 아이고 어른이고 한덩어리로 뭉치라는게 김일성장군님의 사상이예요. 온 민족이 한덩어리로 뭉쳐야 왜놈을 내쫓구 나라를 광복할수 있다고··· 그런데 아직은 어린애들이니까 이 사상으로 교양하지 않고 단합시키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말할수 있겠어요. 애들이 어떻게 교양받구 어떻게 자라거나 마구 내깔려둘수 있겠어요?》

봉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확실히 그 무슨 충격을 받은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입을 벌리지는 못한다.

《봉희동무, 래일부터 아동단을 아름이 벌게 만들어보자구요. 내가 도울게··· 그래서 이 삼도만애들을 다 망라시켜가지구 큰 아동단을 결성해보자구요.》

《글쎄 공청책임자가···》

《공청책임자가 반대할가봐 두려워요?》

《그래요, 난 정말···》

《념려 말아요, 그 동무의 주장을 내가 눌러놓겠어요.》

봉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단정한 가리마밑 하얀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그 땀방울을 일에 다지운 험한 손으로 이리저리 문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튿날 즉시 공청책임자를 또 찾아가 아동단확장문제를 제기하시였다. 공청책임자는 안날에도 이야기가 있었던 문제라 당장 상대방이 느낄수 있을 정도로 당황해하였다. 보매 그도 악한 사람 같지는 않았으나 주대가 없어서 우에서 내리먹이니 좋건싫건 그대로 할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어물어물해오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어제 김정숙동지께서 너무나 원칙적인 말씀을 들이대셨기때문에 놀랐던것인데 오늘 다시 나타나서 아동단을 확대하겠다는바람에 이게 바로 누구인가 하는 의심도 가지며 눈이 커졌다. 공청책임자는 코등에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려밀며 김정숙동지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정숙동무, 그러되 능지영에 올라가선 일을 그렇게 지도하고 올라왔노라는 소문을 내지 마십시오.》

《어째서요?》

《현당에 그 소리가 들어가면 좋지 않게 들을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그의 주대없는 성격을 보여주는 소리였다.

《그럼 현당은 장군님의 로선대로 일하지 않는다는말이예요?》

《글쎄 어느것이 장군님의 로선을 받드는건지 그들도 그들대로 주장과 리론이 있으니까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공청책임자를 쳐다보시였다. 그의 립장을 가히 알만하시였다. 목이 필요한 경우엔 목을 내대고라도 일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유약한 립장이라도 아주 김기도들의 손발이라는것보다는 나았다.

이렇게 공청책임자를 눌러놓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봉희와 둘이 부랴부랴 아동단에 받아들일 애들의 명단을 만드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애들을 한명한명 불러다 만나보기도 하시였다. 애들도 벌써 아동단에 들여준다는 기미를 눈치했는지 벌쭉벌쭉 웃으며 대답도 쩡쩡 잘했다.

《너두 가갸거겨를 모르니?》

《그따건 다 알아요. 쓸줄도 알고 읽을줄도 알아요.》

《집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냐?》

《계셔요. 우리 아버진 책두 썩 잘 봐요. 땔나무도 잘해오구요.》

《그래 너희 아버지, 엄마가 그전에 잘살았다고 하더냐?》

《잘살게 뭐야요. 맨날 죽만 쒀먹었다는데···》

눈이 초롱같은 애들이 아동단에 들여주지 않을가봐 눈치를 슬슬 보며 대답하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과 웃음을 지으시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속으로는 가슴아픈 생각을 하시였다.

어디에나 상처가 널려있구나. 그 상처들을 한시바삐 가시고 저 순진한 얼굴들에 장군님을 따르는 해바라기와 같은 웃음이 활짝 피게 해야 한다. 애들은 다 아동단에 들어가려는 열망이 불같았다. 모두 똑똑도 했다. 온 근거지가 먹을게 없어서 풀뿌릴 캐먹는 형편인데 애들은 그래도 무얼 얻어먹는지 눈찌가 개풀린 애는 하나도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날 밤 큰 집을 하나 얻어가지고 애들을 죄다 모여앉히시였다. 삼간방에 빼곡 찼다. 모두 한또래애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배겨앉아서 김정숙동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가 하고 눈이 초롱초롱해서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이름을 한참 내려부르시였다.

《옛.》

《옛.》

모두 좁은 자리에서 어깨를 솟구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이름을 내려부르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음띤 얼굴을 들고 애들을 또 한참 내려다보시였다. 애들은 흡뜬 눈들을 깜빡이지도 않고 마주 바라보았다.

《방금 이름을 부른 어린 동무들은 모두 영광스러운 아동단 단원들이예요. 공청의 후비대, 혁명군의 후비대인 아동단원들이예요. 인젠 삼도만에 아동단원이 따로 있고 꼴군이 따로 있지 않아요.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삼간방이 떠나가게 대답소리가 요란히 울리였다. 그중에는 눈물을 씻는 애들도 있었다. 본래의 아동단원들이 눈물씻는 《꼴군》들을 울지 말라고 달래였다. 벌써 마음은 하나로 화합되였다. 아무것도 없는 깨끗하고 단순한 세계였다. 봉희의 동생 봉호가 좁은 자리에서 몸을 뽑으며 얼른 일어섰다. 그는 애들을 바라보며 인젠 모두 달라붙어 권총을 한 댓개 만들자고 했다.

《왜 댓개만 만들겠니? 열개도 더 만들겠다.》

《정말야, 우리가 다 달라붙으면 권총이 다 뭐야. 큰 총도 만들지.》

《체, 큰 총은 못만들어. 그따건 만들어도 우리가 어떻게 메고 다닐테야?》

봉호가 바지괴춤을 춰올리며 이러자 애들이 못메고다닐게 뭐냐고 갈가마귀떼 끓듯했다. 봉희가 동생더러 앉으라고 소리쳤다.

《헹, 아동단 지도할줄도 모르면서 고함만 치네.》

봉호의 소리에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뭐라고 까부니? 너 앉지 못하겐?》

《체, 기 딱 막히네. 아동단을 지도한다는게 꼴군만 하나가득 만들어놓구···》

《뭐야?! 얘 뭐야?》

봉희는 소리를 치다 말고 눈물을 씻으며 울었다.

《누나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돼요? 아동단을 잘못한게 뭐 누나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봉호를 타이르시였다. 그제야 애들이 정말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들도 무얼 아는것 같았다. 그래도 봉호는 시뻘건 얼굴을 하고 주저앉아 씨씨하면서 제 발가락을 비틀었다.

아동단을 크게 만들어놓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동단을 운영할 준비에도 팔을 걷으고 나서시였다. 아동단원들의 일과표를 만들고 성격검토회 날자를 정하고 집합장소도 새로 선택하시였다. 그리고 근거지 전지역의 요소요소에 경비초소를 설정하고 경비를 서는 방법, 주구나 밀정을 붙잡는 방법, 순찰하는 방법, 순찰구역의 분담, 모든것을 도표를 그려가며 가르쳐주시였다. 야학도 큰 집들을 얻어 두곳에서 열기로 준비를 시키시였다. 그리고 칠판과 교탁도 만들게 하시였다.

봉희네 마당에서는 연방 찰싹찰싹하는 소리가 울리였다. 애들이 널장을 메고와서 메때리는 소리였다. 어데 가서 구해들이는지 널판자, 각자목, 생철, 못, 별걸 다 구해들였다. 우르르 달려가고 달려오는것이 불개미진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봉희와 둘이 치마를 걷어올려 중둥매끼를 매고 톱으로 썰고 대패로 밀고 하시였다. 칠판도 봉희네 바람벽에 매단것은 작다고 아예 큰걸 두개 만들 작정을 하시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봉희의 할아버지도 매일 신명이 나서 일을 도왔다. 그는 북통을 만들 나무의 속을 태우느라고 마당에서 뻗닿게 연기를 피워올렸다. 애들이 메고나니며 칠 개가죽북을 만들겠다는거다.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을 때였다. 애들이 우야 봉희네 마당으로 달려들어오며 장군님께서 오신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장군님께서?》

모두 놀라서 소리치며 일어섰다.

《저기 장군님께서 오셔요. 사람들두 많이 와요.》

애들은 집뒤쪽 큰길을 손질하며 떠들었다. 벌써 울타리 옆길에서 웅성웅성 끓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수고들합니다.》

맨앞에 군복을 입으시고 걸어오시는 키가 후리후리하신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모두 일하던 어지러워진 손을 털새도 없이 장군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고 악수를 하였다.

《장군님!》

봉희 할아버지는 악수를 하고나서 또 장군님을 우러르며 절을 올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활랑거리는 가슴으로 악수를 하고 또 어깨를 숙여 인사를 올리시였다.

《우리 근거지에서 두번째로 나이 많은 할아버지입니다.》

키가 큰 구정부회장이 봉희 할아버지를 소개해서 말씀을 올리였다.

《그다음 동무가 바로 인제 말씀을 올린 공청현위에서 내려온 지도원동무입니다. 그담 동무는 이 할아버지의 손녀이구요.》

《모두 수고를 합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집안살림이 어렵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 봉희 할아버지에게 물으시였다. 로인은 또 머리를 수그리며 말씀을 올리였다.

《좀 생도가 어려운들 어떻습니까. 앞을 내다보며 기쁨을 가지고 사옵니다.》

《생활이 어려우면 혁명정부에 이야길 해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며 기쁨을 가지고 산다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무쪼록 조선이 독립되는 날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죄송하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담엔 김정숙동지를 잠간 바라보시였다. 약간 볕에 감실감실해진것 같은 얼굴에 단정히 단발머리를 하고 검은치마저고리를 입고계시였다.

《이 동무가 이번에 큰 수고를 했습니다. 삼도만을 아동단의 노래소리로 들썩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정말 우리 세상같은 맛이 납니다.》

정부회장이 또 장군님께 말씀을 올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시였다.

《정숙동무를 한번 만나보려고 하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뜻밖에 상봉을 합니다··· 그리고 동무는 이 할아버지의 손녀라구요?》

《네···》

봉희도 치마앞자락을 여미며 대답을 올리였다. 그는 그래도 숙인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웃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잠간 마당에 널린 물건들을 바라보시였다. 마당엔 별게 다 있다. 대패질하던 널판자가 얼기설기 흩어져있고 도끼, 톱, 거의 만들어진 칠판들, 봉희 할아버지가 북을 메우겠다고 얻어다놓은 가로세로 활을 해 뻗친 개가죽···

장군님께선 아무 말씀이 없이 군모채양을 넘겨미시고 땀을 씻으시며 널린 물건들을 바라보시였다.

《글쎄 능지영지도원애기가 와서 아동단을 크게 만들고 숱한 애들의 등을 밀어주니까 저녀석들이 별걸 다 만들어내라고 조릅니다. 북을 만들어달래, 나팔을 만들어달래··· 제 그래서 나팔두 하나 만들어볼가 해서 여기 생철과 납도 구해다놓았습니다.》

봉희 할아버지가 장군님께 말씀을 올렸다. 정말 퇴지우엔 생철두루마리, 납덩이, 청강수병따위가 놓여있었다.

《만들어보십시오. 그것두 다 사람이 만드는건데 무얼 못만들겠습니까? 아이들한테 나팔 하나 쥐여주지 못하는 우리가 면목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말씀을 받으시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둘러서서 심려어리신것 같은 장군님의 안색을 살피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사람들옆에 치마폭을 여미고 서계시였다. 그곁에 봉희가 가지런히 서있다.

《정숙동무, 동무가 상촌에서 책임지고있던 아이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되였습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지금도 상촌근거지에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대답을 올리시였다. 그저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심정이기도 하시였다. 어쩜 이렇게 상촌아이들 말씀부터 하실가. 간고한 나날 한번 들으신 이야기를, 신문에서 얼핏 보셨을 이야기를 그렇게도 잊지 않으시고 이처럼 각근히 말씀해주실가.

《상촌에 아이들을 잘 거두는 동무가 또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는 우리 혁명에 리롭게, 조선혁명을 책임진 혁명가답게 생각하고 일하는 마음씨가 중요한것입니다.

내 정부회장동무로부터 능지영현일군들은 아동단문을 닫아걸고 받지 않는걸 동무가 이번에 와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숱한 아이들을 받아들여 삼도만이 지금 아이들의 왕국같이 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주장이 바로 그런것입니다. 현당에 있다는 어떤 사람은 아동단을 무슨 <삐오네르>요 또 무슨 <아이들의 볼쉐비크적조직>이요 했다는데 우리 아이들의 조직은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조선의 아이들을 다 받아서 혁명의식이 자라도록 교양도 주고 훈련도 주자는것이 우리 아이들의 아동단조직입니다. 어떤 선발된 아이들만 뭉쳐가지고 나가자는것이 아닙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얼른 손길을 들어 훔치며 장군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를 가슴에 새기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겉으로 듣기에는 퍽 부드러운듯 하시였으나 어쩐지 가슴의 분노를 힘겹게 참고계시는듯 하였다.

북만원정에서 갓 돌아오신 그이께서 벌써 김기도, 오상묵이들이 저지른 그 몸서리치는 죄악을 모두 알아내신것일가. 그렇다면 간고한 원정의 길을 헤쳐오신 그이의 가슴이 오죽이나 아프실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그이를 뵈옵고보니 이미 희생된 동지들의 모습이 얼씬얼씬 눈앞을 스쳐지나는가 하면 그렇게도 불안스럽게 지켜보던 한동길이며 평강촌정부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루명을 벗고 장군님 품에 안기여 다시 혁명을 하겠구나 하는 기쁨이 안도감과 함께 가슴에 넘치도록 차오르시였다.

이 생각이나 저 생각이나 그저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송구스러움을 자아내는 생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격한 기쁨과 송구함이 한데 어울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살눈섭을 적시며 슴새여나오는 눈물을 닦으실념도 못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의 고개 숙이신 모습을 잠시 지켜보시더니 이번에는 확연히 노기가 어리신 목소리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내가 왜 이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혁명하는 자세에 대해 말하게 되는가? 아동단을 그 무슨 볼쉐비크적조직이다 어쨌다 하는 이러한 주장들이 바로 우리 혁명을 송두리채 말아먹고 혁명적력량을 갈갈이 헤쳐놓자는 반혁명적인 책동과 한줄에 련결되여있기때문입니다. 이러한자들은 중농이 혁명에 반기를 들고나올 요소가 다분히 있다고 규정을 내리면서 그들이 혁명대오에 접근하면 계급진지가 물렁물렁하게 되여 혁명을 할수 없다고 합니다. 저 혼자 혁명을 다 할것처럼 피대를 돋구는 이러한 주장이 실지는 바로 음흉한 반혁명적책동과 련결되여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벌써 중농을 혁명의 중요한 동력으로 규정한지가 오랩니다. 중농뿐아니라 그보다 더 부유한 계층까지도 일제를 미워하는 량심적인 계층은 다 우리편으로 간주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아동단에 들이는데 중농의 자식은 무산계급이 아니라고 배격한다니 아이들한테 어릴 때부터 그런 정신적타격을 가해서 장차 우리 혁명을 어디로 끌고가자는것입니까? 현당 간부든 누구든 이런 주장으로 목대를 세우고 다닌다면 그건 우리의 혁명로선도 모르고 방침도 모르는 아주 좋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혁명의 원칙과 관련되는 문제에서는 크든 작든 조그마한 타협도 없이 싸워야 합니다.》

모두 정신이 쩡 드는것 같은 느낌이였다.

《아동단은 이렇게 꾸려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자는것이 우리 혁명의 주장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다소곳하고 서서 말씀을 들으시였다.

눈에는 이슬이 그냥 괴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한참동안 아동단실정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아동단원이 모두 몇명이나 되느냐, 몇살씩이나 먹었느냐, 글은 어느만치 알고있느냐, 구체적인걸 세세히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김정숙동지에게 래일 간부회의를 하겠으니 참가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다른 마을로 떠나가시였다. 몹시 중요한 사업을 돌보시려 오신것이 분명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서서 밭머리길로 걸어나가시는 장군님을 그렁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속으로 장군님을 부르며 자신께서 정말 꿈을 꾸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하시였다. 그렇게 안타까이 그리워하던 장군님, 그 장군님을 우러르며 수많은 슬픔도 디디고 넘었고 험한 가시밭도 헤치며 걸어오지 않았는가.

곡절 많은 혁명의 길에서 수없이 눈물도 흘렸고 답답한 생각에 뜬눈으로 밝힌 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장군님의 영상을 그리면 힘이 솟고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김기도네의 피비린 만행이 저질러진 능지영의 밤길을 꿋꿋이 걷기도 하였고 억울하게 고생하는 동지들때문에 장군님 돌아오실 날을 목마르게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뵈왔을뿐아니라 장군님께서 철없는 아이들의 일을 가지고 그처럼 치하해주시고 그것을 혁명의 근본문제와 결부된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로 보아주실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해빛같이 밝으신 눈으로 김기도일당의 죄악을 꿰뚫어보시고 그처럼 분노에 차서 규탄하셨으니 장군님께서 제일 귀중하게 보시는 사람들문제, 그중에도 혁명가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야 그중 선참으로 풀릴것이 아닌가.

이제는 장군님께서 돌아오셨다. 근거지에는 또다시 밝은 생활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이 혁명의 거세찬 흐름을 이루어 와-와- 소리치며 흘러갈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덧 고마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두볼을 적시는것도 못 느끼고 장군님 걸어가신 밭머리길만 바라보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다시 일손을 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봉희를 데리고 이날엔 밤에도 일을 계속하시였다.

마당가에 솔광불을 피워놓고 톱질, 대패질을 하시였다. 봉희 할아버지도 수건을 동이고 마당으로 나와 북통을 만들 나무속에 뚝딱뚝딱 끌질을 했다. 새벽녘엔 칠판 두개에다 분필가루가 떨어져 내릴 홈탁도 만들어붙였다. 오상묵이같은 인간이 와서 보면 입을 쩍 벌리고 넘어지게 칠판은 둘 다 웬만한 집의 한벽을 차지할만큼 크게 만들었다.

애들은 칠판에 먹칠을 하느라고 먹을 여기 문대고 저기 문대고 해서 손과 얼굴이 얼룩고양이같이 되였다. 한낮이 다 되여 야학할 집으로 칠판을 옮겨갔다. 애들 한패가 휘뚝거리는 칠판밑에 머리를 디밀고 이야 소리치며 일어섰다. 다른 하나는 김정숙동지께서와 봉희가 맞잡아들고 일어섰다. 거기에도 애들이 개미떼같이 달라붙었다.

《인젠 걸어요. 머리우에 칠판을 인 동무들이 앞서서 걸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애들이 칠판밑에서 숫가마가 아프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넓은 칠판을 둥둥 띄워가지고 나가며 멋있다고 소리치기도 하였다. 봉희 할아버지도 못뽑이와 망치를 들고 뒤따라 걸었다. 애들이 어떻게 세찬지 김정숙동지께서 받든 칠판도 거의나 그들의 어깨힘에 들려서 나갔다. 애들은 그저 바글바글 끓었다. 정말 불개미진의 역사였다.

그들이 혁명정부가 있는 큰동네로 가느라고 앞등성이를 넘어가고있을 때였다.

뜻밖에 벌판쪽 언덕길로 장군님께서 경위성원들과 함께 걸어올라오시였다.

정부일군들은 보이지 않는다. 애들이 먼저 장군님께서 오신다고 소리를 질렀다.

《놓자!》

《응야라 놓자!》

애들은 길바닥에 칠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걸어오시는 장군님 앞으로 우르르 달려가 장군님께 굽석굽석 절을 했다.

《어, 꼬마둥이들이 수고를 하는군··· 할아버지도 수고를 합니다.》

《수고가 무슨 수고겠습니까··· 이녀석들이 장군님의 발등까지 밟아치며··· 비켜서지들 못할가?》

봉희 할아버지가 엄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애들은 들은체 않고 장군님의 팔을 잡는다 손을 잡는다 법석을 한다.

《칠판을 야학할 집으로 옮겨갑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네, 큰 마을에 집 둘을 얻어놓았기에 그리로 옮겨갑니다.》

김정숙동지께서 대답을 올리시였다.

《음, 그래서 꼬마둥이들이 한바탕 신명이 났군.》

장군님께서는 에워싼 애들을 돌아보시며 웃으시였다. 애들도 모두 싱글벙글 웃었다. 칠판을 메고오느라고 얼굴마다 땀이 번질번질 흘렀다. 코끝에서 땀방울이 떨어지는 애도 있다.

장군님께서는 한아이한아이 뒤머리를 쓸어주시였다. 어떤 아이는 땀이 번질거리는 둥근뺨을 자작자작 두드려주시기도 하시였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시며 머리에 이고온 애들은 숫가마우를 눌러보시기도 하시였다.

《자, 그럼 우리가 칠판을 메고가자구. 석진동무가 앞에서 메오. 내가 뒤에서 멜테니 그리고 한동길동무와 최동무는 저 꼬마들이 이고오던 칠판을 메라구.》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이를 수행하여온 유격대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중 한사람이 김정숙동지 앞으로 달려와서 말을 못하고 우뚝섰다. 한동길이였다.

《아니 동길동무 아니예요? 나왔군요. 나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엿한 군복차림으로 서있는 이 끌끌한 청년이 더운 죽가마곁에서 눈물짓던 그 한동길이가 옳은가싶어 그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시며 격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정숙동무, 고맙소. 정말 고맙소. 장군님께서 우리를 다 구원해주셨소. 평강촌아바이랑 다 나왔소. 어제 삼도만에 오는길로 정숙동무를 찾아보려고 했댔는데 우리는 솔모루에 먼저 가다나니 이제야 왔소.》

한동길은 아직 물집이 잡힌채로 있는 입술을 떨며 부르짖다싶이 말했다.

《가만 한동길동무는 정숙동무에게 할 이야기가 많겠는데 우리끼리 갑시다.》

장군님께서 두사람을 바라보시며 웃음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장군님께서 메시는 칠판으로 달려가시였다. 한동길이도 달려갔다.

《장군님, 저희들이 메겠습니다.》

《일없습니다. 우리도 힘을 좀 보탭시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대답하시며 넓은 어깨우에 칠판을 올려놓으시고 성큼성큼 걸어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어깨가 무게를 받지 않으시게 따라나가며 부축하시였다. 봉희도 부축했다. 모두 얼굴들이 딸기빛이 되였다.

칠판에서 놓여난 애들은 마을로 먼저 달려내려가며 장군님께서 칠판을 메고오신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찔떼군들이 무슨 소리야?》

동네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장군님께서 우리 야학방 칠판을 메고오셔요. 인젠 삼도만에서 우리 아동단이 첫째예요.》

《에끼, 이놈들, 희떠운 수작 말아.》

그래도 애들은 뛰여돌아가며 동네방네에 대고 장군님께서 칠판을 메고오신다고 더 버쩍 소리를 질렀다. 그통에 동네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모여들었다. 동네사람들이 나가서 장군님께서 메고오시는 칠판을 받아메였다.

장군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애 하나의 손을 잡으시고 걸으시였다. 약삭바른놈 하나가 칠판이 동네사람들 어깨로 넘어가자 냉큼 달려들어 장군님의 손을 쥔것이였다.

칠판은 사립문우로 둥둥 떠들어갔다.

딴 야학방에 칠판을 가져다놓은 사람들도 장군님 계신곳으로 죄다 몰려왔다. 안팎마당에 어른들 애들 사태가 났다. 방안에다 칠판을 다는것도 장군님께서 손수 달아주시였다.

칠판을 달아놓으니 정말 벽하나만큼은 컸다.

《흥, 찔떼군들이 성수가 났다.》

《성수가 나다마다 인제 또 나팔을 불고 북을 친다던가.》

《뭐 뭐 목에다 시뻘건 넥태도 두른다고 합디다.》

《넥태가 아니라 넥타이라우.》

사람들은 떠들며 웃었다. 애들은 신이 나서 어른들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칠판을 다 다신 장군님께서는 애들을 방안에 빼곡 모여앉히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이들에게 한참 말씀도 하시였다.

애들의 눈엔 기쁨이 끓었다. 까딱 움직이지도 않고 장군님의 말씀을 들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한다, 나팔도 잘 불고 행진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불러야 한다, 규률도 잘 지키고 자기 잘못이 무엇인가를 깨달을줄도 알고 그 잘못을 고칠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의 경우 어디 멀리로 떠나가도 울지 말고 떠나가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격해서 눈에 눈물이 다 글썽해지시였다.

어쩌면 장군님께서 아동단아이들 생활에까지 이처럼 심려를 기울여주실가. 어느 한구석 그늘진데가 있을가봐 이러실가. 큰 빛발을 세상에 비쳐 그 빛발속에서 세상이 소리치며 일어나게 만드시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로고를 바쳐 찾아다니시며 어느 한구석이라도 시들세라 사랑우에 사랑의 샘물을 더 부어주시는가! 아 장군님, 장군님 !

근거지는 웅성거리며 끓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저녁 근거지간부들을 모여앉히시고 협의회를 여시였다.

정부회장과는 이미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시였지만 딴 동무들은 이게 무슨 말이냐고 놀랄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요영구회의에서 채택된 근거지해산방침에 대하여 한참 말씀하시였다.

승승장구 발전해온 우리 혁명이 오늘에 와서는 고정된 근거지를 지키고만 앉아있을수 없게 되였다, 전략적인 방어로부터 전략적인 공격에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혁명력량이 광활한 무대로 달려나가 종횡무진 일제를 타격해야 한다, 그래서 남북만주는 물론 조국강토도 들썩들썩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을 강화하고 그 영향하에 자라나는 전인민적항쟁을 우리의 투쟁에 배합시켜야 한다.

장군님께서는 천하를 휘여잡으시는것 같은 안광으로 회의장을 돌아보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고생을 겪는 사람들이 모두 진중한 얼굴로 앉아서 처음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장군님의 말씀을 조용히 새겨들으시였다. 근거지해산이라니 처음엔 놀라운 생각이 드시였다. 이런 큰 문제를 가지고 오셔서도 어쩌면 그렇게 온화하신 안색으로 아동단 야학방에 칠판을 달아주시고 아이들한테 다심한 말씀을 해주셨을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선우선하신 안색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 일은 우리 혁명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목마르게 바라고있는 조국광복의 서광을 하루빨리 앞당겨오는 길이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먼저 이 근거지에서 여러해동안 활동한 당 및 공청일군들, 인민혁명정부일군들 그리고 반군사조직과 혁명조직들에서 우수한 청년들을 뽑아서 혁명군에 입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재봉대, 병기창에도 받아들여 일을 하게 해야 한다, 그다음 근거지군중은 적구로 내려가거나 친척을 찾아가게도 하고 국내로 들어가게도 해야 한다, 그래서 적구로 들어가는 혁명군중은 적구에서 과감하게 활동을 벌리면서 적구에 지하조직도 내오고 적구 전체 군중을 혁명화시켜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게 바로 전인민적항쟁을 조직하는 길이다.

장군님께서는 누구나 다 알아듣게 말씀하시였다. 인제야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가슴이 쿵덩거리며 뛰였다. 장군님의 통이 큰 전략이 머리속에 석연히 들어오고 혁명의 미래가 어떻게 된다는것이 눈앞에 펼쳐져보이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이 뛰시였다. 방금전만 해도 무슨 말씀이신지 딱히 몰랐는데 인제야 가슴속에 거창하고 눈부신것이 확 다가와 안기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창창한 혁명의 미래, 조국광복의 찬란한 미래가 눈부시게 펼쳐져보이시였다. 정말 장군님께서 천하를 한줌에 걷어쥐시고 쥐락펴락하신다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가 하는것을 더 깊이 깨달은듯싶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 한참 근거지일군들이 오늘밤부터라도 곧 이동해야 할 인민들에 대한 개별료해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시였다. 누구는 어데로 갈수 있는가, 가자면 로자는 얼마나 들어야 하겠는가, 량식은 얼마나 있어야 하겠는가, 입고 떠날 옷들이나 변변한것이 있는가, 죄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혁명정부가 그 자료를 쥐고 일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방안을 둘러보시다가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근거지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로 진출한다는것이 물론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근거지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공격으로 나가 적이 있는 모든곳에서 군사적으로도 치고 정치적으로도 치며 광범한 혁명력량을 묶어세워 근거지의 혁명력량을 전국적판도로 넓혀나간다는것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4년동안이나 근거지를 지켜왔습니다. 그러한 투쟁과정에 유격대도, 혁명군중도 크게 자라났으며 적구의 인민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혁명력량이 능히 광활한 지대로 진출하여 전인민적항쟁을 조직할만 한 력량으로 장성강화되였습니다. 이것이 지난 기간 우리 근거지들이 수행한 력사적사명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우리 혁명이 얼마나 튼튼히 자라났는가 하는것을 나는 이번 북만원정에서 돌아와서 들은 한두가지 사실을 가지고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에 끓어번지시는 격정을 진정시키시려는듯 한동안 말씀을 중단하시고 생각에 잠기셨다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북만원정에 나가있는 틈을 타서 일제와 야합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이렇게 억세게 자라나는 우리 혁명을 내부로부터 순을 잘라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습니다. 여기 능지영에서도 김기도, 오상묵이같은 혁명의 배신자들에 의하여 아까운 동무들이 적지 않게 희생되였습니다. 이놈들은 혁명가들을 학살하였을뿐아니라 정수분자요, 대렬쇄신이요 하면서 광범한 군중을 우리 혁명으로부터 떼내려고 하였습니다. 그 간악한 책동이 바로 여기 삼도만의 아동단사업에까지 뻗어왔습니다. 아동단을 어린이들의 볼쉐비크적조직으로 꾸려야 한다는 반혁명적구호의 뒤에는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가슴에까지 못을 박고 그것을 통하여 그 부모들과 주변의 군중들을 우리 혁명에서 멀어지게 하자는 실로 악독한 흉계가 숨어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충실한 혁명가들에게 <민생단>의 루명을 들씌워서 학살한것과 똑같은 반혁명적책동입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분한 일입니까. 내 그래서 근거지가 해산된다 하더라도 나쁜놈들이 어린 가슴에 지어놓은 상처는 가셔서 보내고싶어 떠나기전까지는 새 칠판앞에 앉아 글을 배우라고 오늘 새 칠판을 달아주었습니다. 아동단조직에 못들어서 비실비실 쫓기다가 아동단생활도 하게 되고 동무들이 다같이 모여서 공부도 하게 되였다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던 그 반짝반짝하던 눈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아픈 심정으로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시였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깊이 분석해주시니 이제는 김기도, 오상묵이같은 놈들이 벌린 음흉한 책동의 본질을 낱낱이 알게 되시였지만 그놈들이 높은 자리에 틀고앉아 장군님의 사상과 분명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있다는것을 느꼈을 때 그렇게도 안타깝고 분하던 생각이 이제는 고마운 눈물이 되여 살눈섭을 축축히 적셔주었다.

《이번에 다홍왜와 요영구에서 회의를 열어 이 반혁명집단의 본질은 낱낱이 밝혀졌고 그 후과들은 수습되였습니다. 능지영에서도 내가 김기도와 오상묵이같은 우두머리들은 기본적으로 처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물론 그 잔당들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기때문에 그 잔뿌리를 낱낱이 뽑아던지기 위한 투쟁을 한시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자는것은 놈들의 책동은 간악했지만 우리 혁명은 이런 놈들과의 싸움속에서도 억세게 자라났다는것입니다.

내가 북만에서 돌아오니 능지영에서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된 동무의 말을 누가 전해주었습니다.

그 동무는 종파분자들이 적의 <토벌>때 가두어둔채 달아났기때문에 목숨이나 건지기는 쉬운 일이였지만 동무들과 함께 돌멩이를 굴리면서 적들과 싸웠고 적들이 도망치자 다시 잡혔습니다.

자기는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기어코 밝히고야 말겠다는것입니다. 그 동무가 학살당하면서 나에게 전한 말이 나는 억울하게 죽는다, 그러나 나는 우리 혁명의 미래를 락관한다, 지금 <민생단>혐의자를 동정하면 <민생단>에 몰리여 누구나 목숨을 잃게 되는 판인데 그런 속에서도 밥을 들여보내주고 전투속에 끓는 죽가마를 이고 와서 우리를 먹여살려주는 혁명전우들이 있다, 이런 밝은 눈, 깨끗한 마음씨를 가진 혁명가들이 장군님의 사상을 지켜싸우는데 어찌 우리 혁명이 승리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렇기때문에 비록 우리는 억울하게 죽지만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 동무와 전적으로 같은 의견입니다. 자, 여기 삼도만에서도 봅시다. 김기도, 오상묵이같은 놈들은 우리 어린것들의 가슴에 못을 박자고 그렇게 발광했지만 결국 여기서도 밝은 눈과 혁명에 대한 깨끗한 충성심을 간직한 동무들에 의하여 아이들의 노래소리와 웃음소리가 랑랑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우리 혁명이 크게 자라났다는것을 보여주는 몇가지 실례이며 동시에 우리가 요영구회의에서 근거지해산에 대한 새로운 방침을 채택한것이 정당하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침내 얼굴을 치마폭에 묻고 흐느끼시였다. 밥을 넣어주러 가셨을 때 지주집 창고안에서 그 누군가가 그렇게도 절통하게 부르짖던 그 말까지 장군님께서는 다 들으시였으며 그 넓으신 가슴에 그들을 잃으신 슬픔과 함께 그들의 깨끗한 충성심을 깊이 품어주신다는것을 느낄 때 아무리 참자고 해도 눈물을 멈출길이 없으시였다.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모대기고 모대기다가 저로서 할수 있는 일을 한데 지나지 않는 자신의 일까지 념두에 두시고 이처럼 혁명의 중대한 문제와 결부시켜 높이 평가해주시니 고개를 들수가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회의를 잠간 쉬시는 사이에 김정숙동지를 따로 불러주시였다.

《정숙동무, 정말 고맙소. 아주 잘 싸웠소. 내가 회의에서는 일반적으로 말했지만 사실 동무가 한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송구한 생각을 금할수가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리시였다.

《장군님께서 오늘 밝혀주신 사상을 제가 좀더 미리 알고있었더라면 이렇게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릴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막을수 있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뿐입니다. 저는, 저는 정말 한 일이 너무도 없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회의에서도 말했지만 정숙동무가 한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나쁜놈들이 혁명대렬의 책임적인 지위에 숨어들어 간교하게 날치는 속에서 옳고 그른것을 바로 보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행동하고 투쟁한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짜 혁명가의 눈과 심장이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점을 놓고 생각할 때에도 내가 능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또 이번 삼도만에 와서 정숙동무가 아동단사업을 하는걸 보니 아주 기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과분한 치하에 몸둘바를 몰라 고개를 다소곳하고 앉아 치마주름을 주무르시였다.

《어쨌든 정숙동무는 이번 근거지를 해산하는 일에도 어깨를 디밀고 한몫 해주어야겠습니다. 내 생각엔 동무는 빨리 상촌으로 내려가는게 좋겠습니다. 거기 가서 이동하는 인민들이 고통이 없이 떠나가도록 조직사업과 보위사업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정숙동무가 가게 되면 내가 상촌근거지문제는 마음을 놓겠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하면서도 굳은 결심이 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올리시였다. 가슴속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시였다. 어떻게 되여 이처럼 장군님 앞에 앉아 장군님의 무거운 심려를 갈라서 받아안는것 같은 영광스러운 과업을 맡게 되였을가 하는 감격스러운 생각으로 목이 메시였다.

《그 다음 내 한마디 더 하고싶은것은 앞으로 동무는 우리 녀성들의 힘을 키우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이들 일에 힘을 썼지만 이제부터는 녀성문제에 눈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녀성같이 천대와 멸시속에 산 불쌍한 녀성은 없다고 하시면서 녀성문제를 생각하실 때마다 가슴속에서 눈물이 흐르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번 근거지해산에서도 녀성들에게 제일 무거운 부담이 갈수 있으니 녀성들을 잘 보살피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이 불행한 녀성들을 하루빨리 눈을 띄워서 투쟁에 떨쳐일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 동원되여 일어나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밀고나가게 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 혁명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2천만이라고 한다면 그중 1천만은 녀성이 아니겠습니까. 이 1천만이 각성되여 일어나 제 한몫을 한다면 그 힘이 어데입니까?》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얼굴을 들며 장군님을 우러러보시였다. 장군님께서도 김정숙동지를 마주보시였다.

《꼭 녀성혁명화의 앞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녀성들이라고 총 한자루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총을 못들겠습니까? 총을 들고 싸우게도 만들고 조직을 꾸려가지고 적후에서 싸우게도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녀성이 다 들고 일어나 싸움에 참가한다면 우리의 힘이 얼마나 커지고 강해지겠습니까? 꼭 이 문제를 명심해야겠습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말씀을 뜨거운 심장에 새기고새기시였다. 얼른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닦으시였다.

영원히 잊을수 없는 삼도만의 밤은 깊어갔다. 눈물속에 흘러간 부암의 나날부터 긴긴날을 두고 흠모하여온 장군님을 따뜻이 모시고 앉아 장군님으로부터 혁명사업을 어떻게 하라는 절절한 말씀을 듣는, 한생의 영광으로 새겨질 력사의 밤은 깊어갔다.

장군님께서는 한참 또 정부일군들에게 근거지해산하는 일을 어떻게 시작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주시였다.

《자, 인젠 내가 떠나야 하겠습니다. 한 근거지만이 아니고 수많은 근거지가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군모를 쓰시며 총총히 일어서시였다. 모두 장군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하현달이 푸르게 비친 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경위성원들과 함께 먼 벌끝으로 걸어가시였다. 인민의 고통을 심려하시여 낮에 밤을 이어 가고가시는 길, 이 밤엔 또 어디로 가시려는가! 부디 고생스럽더라도 근거지를 떠나가달라고, 정든 근거지에 눈물을 뿌리면서라도 떠나가달라고, 혁명이 큰 날개를 펴는 일을 생각해서 떠나가달라고, 혁명이 승리하고 조국이 광복된 뒤 서로 만나서 두손길 붙잡고 잘살아갈 날을 생각해서 떠나가달라고, 그 아픈 부탁을 전하시려고 푸른 달빛을 밟고 가시는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래도록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깊이에 뜨거운 눈물을 삼키시였다.

그런데 이 영광의 밤을 샌 이튿날 아침엔 근거지에 또 감격의 사변이 일어났다. 장군님께서 삼도만가까이에 오시여 조직해놓으신 일이 근거지인민들을 껑충 놀라게 만들었다.

혁명군의 한개 중대가 어느 일본놈 목재판을 들이치고 량곡과 피복천을 한짐씩 골박아지고 들이밀렸다. 백여명되는 목재판로동자들도 짐을 지고 들이닿았다. 한 대원은 돈도 한보퉁이 지고왔다. 해산해가는 인민들이 옷도 해입고 밥도 지어먹으며 로자도 쓰라는것이였다. 정부간부들과 인민들은 모두 물건을 붙안고 울었다. 하늘같은 장군님의 은혜에 목이 메여 장군님을 부르며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감격의 울음이 터지는 속에서 부랴부랴 상촌을 향해 삼도만근거지를 떠나시였다.

×

 

이것이 바로 지난달에 있은 일이다. 아 장군님! 아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느곳에 가 계실가. 어느 근거지에 가시여 인민들이 굶지 않는가 헐벗지 않았는가 근거지를 떠나서 이제는 발을 붙이고 살게 되였는가 한시도 심려를 못 놓으실 장군님.

삼도만의 그 밤에 장군님께서 제일 걱정하신것이 이 술기막골로 이동하게 되는 로약자들과 아이들, 의지가지 없는 인민들에 대한 문제였다. 상촌에서도 유격대의 기본력량은 김봉석의 지휘하에 장군님을 모시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해나가게 되는것이니 오히려 사기가 충천하였고 혁명조직의 태반의 일군들과 조직군중들도 적후로 공작임무를 맡고 나가게 되는만큼 다 끌끌한 사람들이였다. 누가 옆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로약자들과 아이들의 문제만은 장군님께서도 종시 마음을 못놓으시고 대걸소대를 보내주셨으며 많은 일군들을 떼여 술기막골로 함께 가도록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런데 여기 술기막골의 일이 잘되여나가는가.

식량은 벌써 떨어지고 봄이 짙었는데 씨앗도 여태 묻지 못하고있다. 그런가위에 반혁명분자들이 간부를 살해하고있으며 남편과 시아우의 원쑤를 갚기 위하여 죽어도 혁명을 하겠다고 아이까지 버리고온 음전이같은 녀자를 《민생단》련루자라고 따돌리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록새록 머리속이 밝아지시였다. 반혁명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처리했건만 그 잔무리들은 도처에 널려있는것만큼 그것들을 뿌리채 뽑아버리기 위한 투쟁을 한시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던 장군님의 간곡하신 가르치심이 선히 떠오르시였다.

무언가 모르게 이 술기막골에 능지영에서 불어치던것 같은 음산한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밤바람을 맞으시며 버덩으로, 버덩으로 걸어가시였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오고 그 어떤 기아가 덮어쳐도 장군님께서 그처럼 심려하시던 인민들을 기어이 지키리라. 이들을 잘 준비시켜 장군님의 말씀대로 녀성혁명대오도 꾸리고 장차 적후에 나가 싸울수 있게끔 끌끌한 혁명가들로 준비시켜나가리라는 결의가 억세게 다져지시였다.